구약신학!! 구약개론!!

구약총론

하나님아들 2021. 9. 10. 23:53

구약총론  

 

Ⅰ. 서론
1. 신학이란 무엇인가?
   토마스 아퀴나스 - 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
            -      +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 - 말씀연구(기도가 필수적임)
 
  ☞Every Pastor must be a theologian

2. 신학의 분과
  1)주경신학
             - 총론(구약총론, 신약총론)
               - 일반총론 - 정경학
                            비평학 - 고등비평
                                     하등비평(본문비평 -저자, 역사성, 특징, 문체, 본문전승)
               - 특수총론(각론) - 성경 각 권의 저작 및 개요
             - 역사(지리, 고고학, 이스라엘 역사, 구약역사)
             - Hermeneutics(성경해석의 방법론)
             - Exegesis(석의, 주석) -  성경 각 권의 연구(성경해석방법)
             -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 또는 계시역사)
                - 석의 결과 신학이 형성됨. 신학이 주석을 보조함
     유대인들은 '구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 고후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으질 것이라"
  2)조직신학(교의학) - 변증학(Apologectics), 험증학(Evidence), 윤리학(Ethics)
  3)역사신학(교회사) -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교회개혁사, 근세교회사, 선교운동사, 한국교회사
  4)봉사신학(실천신학) - 설교학, 목회학, 교회정치, 선교학, 전도학
  5)선교학 - 실천신학에서 거의 분리됨.
  6)윤리학 - 조직신학에서 거의 분리됨
   (기타, 종교경책학 elenctics)

3. 신학의 목적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 속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

   칼빈신학, 칼바르트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이해한 신학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고,
   중세신학, 현대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시대마다 다른 해석에 기인한 것이다.

   신학이 유기적 통일성이 없다면 교회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접근 방법이 달라도 결론은 같아야 한다.

4. 신학의 꽃 - 설교
   설교 한 편 속에는 설교자의 신학적 소양과 신앙의 고백이 다 포함되어 있다.
5. 성경신학 - 성경연구를 통해 얻어낸 신학적 관점으로 성경을 다시 연구하는 것
  주제)기독론, 언약신학, 하나님 나라(창조, 타락, 구속) 등등
  구약성경에 흐르는 통일적인 사상이 있다. 구약신학(약속성취, 구속사적 언약, 하나님의 나라)

6. 개혁주의 성경신학
   개혁주의 성경신학은 그 특징적인 성경관 및 성경 해석학의 명제에 기촐르 두는 동시에 신학 수련의 4분야(주경신학, 역사신학, 이론신학, 봉사신학)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주경신학의 면류관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개혁주의 성경신학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sui ipsius interpres)"해야 하며, "언약적, 구속사적, 기독론적, 십자가와 부활 신학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해석학적 방법론을 견지한다.

7. 성경의 흐름(언약신학적 관점)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피조 세계를 구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영광받으실 뿐 아니라,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영생을 선택하지 않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함으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불순종은 인간에게만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도 영향을 끼쳐 모든 피조물도 인간을 섬기는 자리에서 이탈하여 인간과 투쟁의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러한 파괴된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은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통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오는 영적인 공허감은 그들을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죽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속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다시금 창조시의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의 상태로 회복하시려고 하는데, 이것이 구속이다. 이렇게 구속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먼저 인간을 구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 중에서 셋의 계보를 통해 노아를 택하시고, 그의 후손 중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말1: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을 통해 당신이 친히 왕으로 다스리며, 백성들이 당신의 왕권을 인정하는 나라를 세우시기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던 이스라엘을 순결하게 보존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애굽으로 옮기셨는데, 그 방법이 기근이었다. 요셉 개인에게는 고난의 시절이었으나, 그의 고난과 승귀를 통해서 자신의 가족이 구원받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구원하실 때가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을 통한 복음의 전초기지를 만드신 것과 같다고 본다.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머물러 있으면 가나안 문화에 물들고, 어쩌면 그들의 혈족에 동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옮기시고, 그곳에서 애굽인이 가증히 여기는 목축업에 종사함으로 그들과 격리된 고센지방에서 살게 됨으로 결국 순수한 혈통과 종교를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가나안의 죄악이 관영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심과 동시에 가나안을 징계하시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법을 주시며, 그들에게 친히 왕이 되어 주셨다. 이제 그들은 땅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다. 그들에게 주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이제 그 땅을 주시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다스리셨다.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심을 드러내야 하는 대리자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음으로(민20장),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하나님을 대리하여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제 여호수아의 지도를 따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백성들은 그들의 법을 준수하며 땅을 차지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에 대한 기록이 여호수아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구속해 가셨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당신의 택한 나라를 어떻게 영도해 가셨는지를 보여준다.

   시가서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예배와 제의를 통해 어떻게 신앙을 고백했는지를 보여주며, 그들의 문학(시) 속에 투영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근거를 보여준다.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에 대하여 해석함과 동시에 그 나라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회복시킬 것인지에 대한 소망을 주고 있다. 특히 소선지서에서는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나라들이 어떻게 멸망당할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Ⅱ. 본론
1. 구약 총론의 과제와 목적(Tast and Purpose)
1) 왜 총론이 필요한가?
  ①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언어적, 문학적 고찰).
  ②성경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주어졌기 때문이다(시대적 배경연구).
  ③쓰여가게 된 경위, 저자를 알아야 한다.
 
  ☞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기에 그 시대의 언어를 공부해야 하고, 그 시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했기에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저자, 역사적 배경을 연구해야 함.

2)따라서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①역사(History)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 즉 역사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총론에서 민족, 역사적 상황, 종교 및 문화 등을 다룬다.

  ②Literature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따라서 언어와 문학의 형태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언어, 편집연대, 본문의 완전성, 본문의 전승사(傳承史) 등을 다룬다.

  ③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 신앙형태(어떤 하나님을 믿었는가?)
    그들이 그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고백했는가?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방법은 어떻했는가?

   ☞ 총론에서 우리가 취급할 분야는 the literary problems, genres of literature, the composition and formation of the individual books, the transmission of the text and origin of the canon, the outline of individual books.

2. 총론의 발달사
1)Jerome(340-420)
  Jerome이 Vulgate(구약, 외경, 복음서만 번역)를 편집하면서 각 권에 Introduction을 썼다(저자, 시기, 대략의 내용 - 이것은 구약총론의 성경을 가지는 것이다). 제롬은 여러 히브리어 text를 참고하여 성경을 번역했지만, 본문 비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저자도 전통적으로 전해내려 오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16세기: 종교개혁 시대
  종교개혁(교회개혁) 시대에 성경에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더 이상 dogmatic한 교회전통의 강요를 거부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성경을 직접 연구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구해 본 결과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주의의 영향이다.

 (1)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종교개혁은 인문주의(문예부흥)로부터 시작함) - "진짜 원어성경을 가지고 성경의 바른 뜻을 알자"라는 운동
 (2)교회가 해석한 교리보다, 성경을 직접 읽고 이해하자는 운동
   루터는 교회전통이 아닌 성경을 central position에 놓았다. 성경을 번역(독일어로)하고 매 성경의 각 권마다 introduction을 썼다.

3)17세기: Ludovicus Cappellus(1650년)
  17세기 동안은 다시 orthodoxy한 견해가 득세했다(제도권교회로 복귀). 제도권 교회(카톨릭이 아니라, 개신교회)는 다시 전통주의로 복귀하여 안주하게 되었다. 개신교회가 제도권화 되고 교리화 되어가고 있었는데, 개혁된 교회가 조직된 교회로 안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에 Ludovicus Cappellus(1650)가 본문비평을 발전시켰다.

4)18세기: 경건운동
  전통주의에 대한 반향으로써 평신도들이 교회 밖에서 경건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영적인 개목운동을 일으킴).
  ※18세기 경건운동의 여러 가지 양상(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남)
    ①영국의 조지 휫필드 - 경건한 운동가, 칼빈주의자
    ②영국의 웨슬레 형제들 - 교회밖으로 나가서 새 조직을 결성하였는데, 인간이 노력에 의해 완전한 거룩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Medodist)
    ③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
    ④Simon - 비평적 사상을 도입하여 교회로부터 정죄를 받았다.
    ⑤Thomas Hobbes - 성경 각 권의 저자와 저작 연대를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비판하였다. 특히 오경의 모세의 저작설에 회를 일으켰는데, 그는 저작의 문제는 교회전통의 측면에서 보다 성경 자체에서 그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교회가 가르치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연구해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
    ⑥Spinoza - 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했다. 그는 창세기에서 열왕기하까지 에스라가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 이 시기까지는 조직신학(교의학)과 주경신학 둘 다 필요한 것을 인정했는데, 둘은 뼈와 살의 관계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건주의 운동과 함께 이성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교회 전통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교회를 경시하게 되고, 경건주의자들에게 성령운동이 뜨거웠으나 성령운동이 식어지게 되자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스스로 깨우치려고 노력하는 이성주의 운동으로 변하게 되었다(합리주의 운동으로 변질되어 가면서 이성주의는 더욱 거세게 득세하게 되었다).

  ※이성주의 등장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이성주의가 등장했다. 당시 프랑스는 Descart, Bayle, Spinoza 등의 계몽사상이 대학가를 점령했는데, 이 바람이 유럽의 다른 대학으로 몰아쳤다.
   ①Descart - 자연법칙 강조 - 우주가 자연법칙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말했다. 당시에 이런 말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때까지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어왔는데, 그 믿음의 체계를 완전히 뒤바꾸었고, 그 의문이 자연법으로 제시되니 믿음이 회의를 일으키게 되었다.
   ②Spinoza - 인간의 자율성 강조 - 인간의 이성에 대치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③Kant - "순수 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등을 출판했다.

     ※계몽사상과 결부하여 이성의 한계 내에서 신을 논함: 나를 위해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서 내 속에 있는 종교이기에 이성으로 이해되는 종교를 스스로 형성해 나가는 주관적 신앙. 이성중심
     ※나폴레옹이 다른 나라를 점령할 때 계몽사상이 점령지에 안주하여 영향을 미쳤다.(상류계층은 자유주의, 하류계증은 전통주의)
     ※1800년대에 영국이 근동지방(메소포타미아)을 장악할 때, 군인들이 그 유물들을 옮겨갔는데(탁본 등) 그것을 연구했다. 1948년 니느웨 발굴(앗수르 수도)할 때, 왕궁을 발굴했는데, 한 집에 토판물 발견(앗술바니팔: B.C. 688)했다. 그 중에 창조설화와 홍수설화를 발견했다. 고고학의 발달로 역사연구가 일어났고, 성경의 진짜 역사를 연구하게 되어 다시 비평적·방법적 과정을 통해 판단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신약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불투만의 역사적 예수 연구

5)19세기: 비평시대(The Critical Period)
  계몽주의의 결과로 성경의 정경성에 논란을 일으켰다. 모든 교회 전통은 성경 안에서의 확실한 증거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19세기부터 구약총론이라는 과목이 생기고 비평학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발생했다. 그 발생원인은 이성주의가 활기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었다.

   ①Semler - 성경연구에 역사적 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②Johann David Michaelis - 첫 근대적인 총론의 책을 출판했다(Introductory lectures to the Sacred Books of the New Testament, 1750).
   ③Johann Gottfreid Eichhorn-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1780-83을 출판했다. 그는 진보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아직은 전통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계몽주의 결과로 이성을 모든 사실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마침 고고학의 발달로 고대 역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두 개가 승층효과로 일어나서 Historical-Critical Method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④De Wette(1780-1849) - E. Ewald - K. H. Graf - J. Wellhausen을 잇는 역사학파가 성경 연구의 주류를 이루었다(The School of the History of Israelite religion).
     그 이후, 성경 연구의 관심은 역사에서 문학으로 옮겨져서 Gunkel을 선두로 한 Form Criticism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또한 저자 혹은 편집자의 신학으로 관심이 옮겨지고, 그 이후 관심이 독자에게 옮겨지면서 New Criticism이 발생하게 되었다.

    ※역사(Historical Critical Method) - 문학(Form Criticism/ Gattungsgeschichte) - 저자/편집자(Redaction Criticism) - 독자(New Criticism)

 

 

 


3. 고등비평(Higher Criticism)
1)역사적 비평적 방법(Historical-Critical method)의 시작(문학비평)
   역사적 비평적 방법은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축해 보려는 시도와 성경을 이루고 있는 문학 작품이 어떻게 해서 쓰여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두 가지 면에서의 시도가 합해서 이루어졌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의 기본 태도는 : ①성경은 실재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②전승되어 내려온 자료들을 후에 편집한 것이다. ③전통적으로 믿어 오던 저자들을 부인 ④실제 이스라엘 역사를 찾아보자. ⑤전승되어 내려온 자료들이 어떤 역사적인 배경을 가졌고, 그것이 어떻게 전승되어 내려왔는지를 알아보자.

※문서설(Fragmentary Criticism)
(1)J. S. Vater : 19세기에 들어오면서(1805년) "오경 주설"을 출판했다. 그는 오경주석에서 오경은 40개의 단편 자료들로써 이루어졌다고 가정했다. 많은 부분이 모세의 기록들도 포함하지만 오경의 완성은 포로시대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2)Jean Astruc : 창1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엘로힘 문서 : E 문서)이라고 언급하고, 2장은 여호와(여호와문서 : J 문서)로만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세가 창세기를 편집할 때에 참조한 문서들이 따로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문서와 J문서, 두 가지 문서를 편집자가 편집했다고 믿었다.

(3)J. G. Eichhorn : 1780년대에 구약서론을 출판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앞부분을 J와 E문서로 분류했다.

(4)W. M. L. De Wette : 오경 중 어느 것도 다윗 이전 시대의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1806년). 신명기를 D문서로 보고, D문서가 발생한 시기를 요시야의 개혁시기로 보았다.

(5)그후 A. Geddes, H Ewald 등이 더욱 발전시킴

(6)K. H. Graf : D문서는 제사문서를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P문서를 포로시대의 것으로 제시했다. 제사제도는 포로시대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보았다.

(7)Wellhausen : 네 가지 문서(J, E, D, P)들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종교역사를 발전시켰다.
 J 문서 : 오경의 문서의 분류는 처음에 하나님의 이름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했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담은 문서들을 J문서로 명명했다. 그리고 J 문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①남쪽 유다의 익명의 저자에 의해(선지자?) 약 B.C. 850년경에 쓰여졌다고 보았다(여호사밧 시대).
②개인의 전기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인문과 사건 중심으로 기록)
③애국적이고 종교심이 강한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④보다 언약적이고 보다 국가적이다(이스라엘이 중요하게 인식됨). 이스라엘의 탄생은 언약의 약속(축복)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약속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이 부각되었다.
⑤하나님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친근하고 가까이 계신 분이다. 따라서 J 문서에서는 하나님이 신인 동형적(anthropomorphism)으로 종종 나타나고 있다.

 E 문서 : "엘로힘"의 이름을 담은 문서들을 E문서로 명명했다. E 문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①오경에 나타난 E 기자의 단편들이 그 자체의 독립적인 메시지를 가진 것 때문에 독립된 문서 자료였다.
②저자와 쓰여진 시기에 대해서도,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무명의 저자에 의해 초기 선지자들에 의해(엘리야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모스, 호세아 등의 활약시대 : 주로 약 B.C. 750년경, 여로보암 2세의 시대로 많이 주장하기도 함) 쓰여졌다고 보았다.
③E 문서의 청중은 북왕국이며, 엘리야에서 호세아 시대로써, 이 시대는 이방 신들에 대한 위협이 극도로 달했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시험대 위에 올려진 때이다. 부패한 재판 사건(나봇의 경우) 등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였고, 종교적으로 이방(바알) 종교와 혼합주의가 성행하던 시대의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④메시지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 경외"였다. 하나님은 좀 더 멀리 계시고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예, 창20:1-18, 아브라함이 그랄 사람에게 사라를 누이로 속였고,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밤에 하나님이 무서운 존재로 나타나심; 창22장, 이삭을 바치는 사건). E 기자는 "하나님 경외"는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순종하지 않을 때에 가차없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있다.

 D 문서 : 신명기서
 P 문서 : 제사장 문서(레위기서)

☆Wellhausen : The evolution of the history of Israelite religion(이스라엘 종교 역사의 발전)
  Wellhausen은 문서설을 총정리하여 이스라엘 종교역사를 재편성하였다. D문서가 Wellhausen의 이스라엘 종교 역사의 발전에 핵심을 이룬다. 이것은 De Wette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이론을 근거로 하여 논리를 발전시켰다.

  Wellhausen은 De Wette의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논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D 문서를(특히, 신12-26장, generally refering to "Deuteronomic code", 특히 12장이 핵심) 요시야 시대로 정하고, 그 외의 J, E, P문서들을 역사적인 연대순에 따라 배열했다.
  *신명기적인 율법 보다 먼저의 율법문서(the earlier legal material)는 "언약의 책"(the book of the covenant: 출20-23장, 참고 M. Noth는 출20:22-23:19을 계약책이라고 함)에서 발견되어 진다고 하였다. 그는 이것을 covenant code라고 불렀는데, 이 covenant code는 J문서 혹은 JE문서에 속한다고 하고, 이 문서의 기원을 B.C. 850년으로 잡았다.

  *J의 십계명은 출 34장 :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무교병 절기를 지키라.  첫 아이는 나의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 .......
   E의 십계명은 출20장

  *JE문서는 어느 곳에서나 아무 단에서나 예배하게 하였다(출20:24). 반면에 D문서는 오직 한 곳에서만 예배하도록 요구한다(신12장, the place which the Lord your God shall choose). All alters outside of Jerusalem would be illegal.)

   *이스라엘 종교역사의 발전
   제1기 : 이스라엘의 종교 = 가나안종교(가나안에서의 제의적 종교)
   →벨하우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인들이 제사 드리던 산당을 물려받아 가나안 사람들처럼 제사지냈다고 생각했다. 이 기간에 제단은 한 곳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어느 곳에나 제단을 쌓았다. ex)①라마에 제단을 쌓음(삼상 9:12이하), ②미스바에 제단 쌓음(삼하7:6), ③길갈에 제단을 쌓음(삼하11:15), ④다윗의 가족들이 베들레헴에서 제단을 쌓음(삼상16:6), ⑤압살롬이 다윗에게 헤브론에 제사 드리러 가겠다고 허락을 받음(삼하15:7이하)
   →700년 이전의 이스라엘 종교의 증거는 성경에서는 극히 작은 흔적만 보일뿐이며, 고고학의 결실에 의한 비교 종교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고대 근동지방의 종교).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유일신 도입 이전의 개념은: ①엘로힘이라는 말은 다신교의 "신들"을 반영한 것이다. ②입다가 여호와와 그모스를 비교한 것(삿11:24), ③호3:4에 우상 숭배가 합법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초기의 가나안 종교는 "정령숭배" 형태의 것이었다고 한다(돌을 세워놓고 숭배한 것). 이러한 종교 형태가 성경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①창28장에 야곱이 벧엘에서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은 것, ②출20:25에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을 것을 명령한 것, ③수4장에 길갈에 12돌을 세운 것, ④사무엘이 기념석을 세우고 "에벤에셀"(여호와께서 여기에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이라고 부른 것.
   →정령숭배의 또 다른 형태들도 성경에 흔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①아브람이 "모레 상수리 나무 밑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 ②fp19:9-18, "추수할 때에 밭 모퉁이 곡식은 남겨두어 가난한 사람이나 타국인들이 먹게 하라"는 명령(원래 밭 모퉁이에 남겨 둔 것은 채소의 영을 쫓아 버리지 않기 위해 남겨 두었던 고대 종교의 습관이라는 것).

   제2기 : 윤리 중심의 종교(유일신사상 도입), Cultic에서 Ethics로 바뀜
   →JE문서가 형성되던 시기(Cultic에서 Ethics로 바뀌는 과정에서 J. E문서를 썼고, 이 저자는 초기 선지자였다고 주장)
   →전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아모스, 호세아 등) :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Cultic과 Ritual observance에 밀착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 종교에 위험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일신 사상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즉, 산당에서의 예배를 꾸짖고, 짐승을 제사 드리는 것 보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윤리적인 종교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evolution).
     그러나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남,북이 나누어져서 경쟁하는 시기)이 유일신의 윤리적 종교로 백성들을 모으지 못했고, 요시야 시대에 와서 제사도 어느정도 허용했지만, 산당은 허용하지 않았고, 중앙성소시대를 부르짖게 되었다. 하지만 백성들이 너무 cultic에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돌이킬 수 없었다.

   제3기 : 중앙성소의 시기
   →D문서가 형성되던 시기(요시야시대 - 포로기간) : 722 B.C.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 예루살렘으로 민족의 초점을 모을 수 있었다. 이사야 이후의 선지자들은 제사장들과 연합하여 윤리+예배를 절충했다.
   →이때의 예배는 산당에서의 예배가 아닌 중앙성소 즉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로 발전시켰다(evolution).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예레미야 선지자 등의 활동. 그러나 실패했다. 백성들은 너무 cultic에 밀착되어 있었고, 요시야 왕이 죽자마자 곧 산당예배로 돌아갔다. 이 실패로 인하여 그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포로로 잡혀간 그드이 왜 포로로 와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유를 D문서 중심으로 회상해 보았다. 그래서 P문서를 만들었다. 포로후기에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P문서를 만들었고, 진짜 구체적인 예배를 드리는 순서와 방법과 절차가 여기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제4기 : 포로이후 시대(유대 종교의 완성)
   →P문서의 발전, 포로 후반기부터 발전하여 귀환 후 완성했다는 것이다.
   →포로 이후 그들의 종교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P문서 시대는 centralization of worship이 전제되었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더 이상 산당들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야훼에 대한 참 예배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귀환이후 이 참 예배를 실현할 수 있었다(evolution).

 

※문서설은 오경에서 발견했으나, von Rad와 M. Noth 등이 여호수아에서도 JEP 문서가 발견된다고 하여, "육경"이라고 불렀다. Noth는 1938년 여호수아 죽석을 편찬하였는데, 거기서 JEP 문서를 분류해 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1943년에 이르러서는 창-민은 JEP 문서로 분류하고, 수-왕하는 D문서로 분류함으로써 앞의 견해를 완전히 뒤집었다.
   I. Engnell은 창-민까지와 신-왕하를 두 큰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은 P문서와 D문서가 주요한 자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벨하우전의 『육경의 구성』(Die Komposition des Hexateuchs)의 내용 요약
   ①야웨 문서 기자는 J와 E로부터 자료를 뽑아서 이야기(narrative)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문서를 편집했으며, 요시야 왕 시대에 신명기 문서가 이것에 첨가되었다고 한다. 또한 레위기 17-26장은 에스겔 때에 제사장 문서에 포함되었으며, 그 밖의 엘로힘 자료 안에 들어있던 제사장 자료들은 에스라에 의해서 편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전체적으로 오경이 편집되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마도 주전 200년경이었을 것으로 벨하우젠은 생각했다.
   ②히브리 종교의 모습을 재건하는 데에 이스라엘 종교의 발달사를 다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모세 법전은 이 발달사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오히려 포로 후기 유대주의 법전의 기초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③이스라엘 족속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후에 그들이 가나안의 예배 형태를 흉내내어 받아들였던 사실을 예로 들어서 벨하우젠은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유일신 신앙으로 발전한 하나의 단계였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주로 예언자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④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있기 이전에 이스라엘에는 중앙성소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때까지 가나안 여러 지역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⑤유일신론에 관한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예전의 집중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러한 종교적 활동을 통한 추진력이 포로 후기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어서 제사장 문서의 형성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벨하우젠이 역사비평학의 마지막 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문학비평을 자신의 진화론적인 구약성경 역사관에 접목시켜서, 구약의 사건들이 역사성과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도구로서 진화론적인 역사비평학 연구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2)양식사비평(Form Criticism, Gattungsgeschichte)
   양식사비평은 그라프-벨하우젠 학파를 독점적인 위치에서 확실하게 끌어내렸다. 문학비평을 사용하여 성경을 연구한 결과로 오히려 더 많은 연구 과제가 생겨났다. 왜냐하면 문학비평을 통하여 제시된 수많은 해답 중에서 가장 타당한 것을 골라내는 작업 역시 모호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구약 학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의 등장이 절실했다. 그래서 고대의 종교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들을 사용하면서, 히브리인들이 만들어낸 문학작품을 함께 연결하여 연구하는 작업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한 학자들 중에서 학계의 전면에 부상한 사람이 헤르만 궁켈이다.

(1)헤르만 궁켈(Herman Gunkel)이 제일 먼저 발전시킴(20세기 초반).
   ①처음에는 그는 성경의 묵시문학들을 연구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문학이 독창적인 것인가에 의문을 가졌다. 유대인들의 묵시문학과 신약시대의 기독인들의 묵시문학이 근동지방의 문학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사상을 구약에 대입하였다. 그는 구약의 신화적인 기록들은 근동지방의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②맛소라 본문(Massoretic Text) 안에 감추어져 있는 구전의 원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연구에서 궁켈은 "삶의 정황"(Sitz-im-Leben des Volkes)을 무엇보다도 중시했으며, 이것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현존하는 문학적 형태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③궁켈은 또한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요소들과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혹은 히타이트의 종교들이 가지고 있던 신화와 예전의 양식을 함께 비교하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유는 만약 가능하다면, 고대 근동의 문화로부터 히브리 사회가 받은 영향의 범위를 알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④궁켈은 문학이라는 것이 곧 인간의 정신사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존하는 형태의 문학작품을 관통하여 그 속에 들어있는 궁극적인 구전의 자료들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⑤궁켈은 그의 저서 "Die Sagen der Genesis"(1901)에서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원래 독립된 영웅담(saga)의 형태로 구전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이 영웅담은 전승되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 관한 자료와 연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후대에, 아마도 예언자들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어떤 이야기꾼(storyteller)이 상당히 심미적인 가치를 지닌 문학의 형태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웅담을 묶어놓은 수집물이 야웨자료와 엘로힘자료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이 두 자료가 결국 연결되어서 오경의 현존하는 형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궁켈은 자신의 방법으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이, 그라프-벨하우젠 학파의 비평적 연구로 인해서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있던 구약의 종교적인 가치를 붙들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 역시 구약의 영웅담이 기본적으로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들이 갖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민간 전승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러한 이야기의 역사적 실체를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⑥비평학의 입장에서 말하는 문서(documents)는 한 개인의 저작물이라기 보다는 구전으로 되어 있던 영웅담의 수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⑦인물 이야기의 원래 형태가 상대적으로 고대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라프-벨하우젠 학파가 견지한 것처럼 후대에 편집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⑧구전 형태의 문학이 모여서 수 세기를 내려오며 사용되는 동안에 그것이 하나의 전승이 되었는데, 궁켈은 이러한 논리의 바탕에서 보면 시편 역시 대단히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세기의 영웅담과 마찬가지로 시편 역시 원래 구전 형태로 존재했으며, 이것이 포로기 전에 이미 절정기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⑨시의 형태가 하나의 문학으로서 훌륭한 양식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많은 징후들을 발견해 냈다. 궁켈은 포로 후에 시편들이 씌어진 당시부터 오늘날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들이 훨씬 고대의 문학작품이 가지고 있던 요소들을 대단히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궁켈과 벨하우젠의 비교
  *같은 점 - ①궁켈은 벨하우전의 문서설에서 그의 이론을 출발한다. 즉, J. E, D, P 문서들을 인정한다. ②그러한 문서들이 대략 그 시대에 발생하였다고 인정했다(J. E - 초기 선지자 시대, 선지자들이 창출: D - 요시야 시대, P - 포로시대). ③그는 이스라엘 종교발달도 인정했다.
  *다른 점 - ①벨하우젠은 각각의 문서들이 한정된 시대에 지어진 단일작품이라고 한 반면, 궁켈은 따로 떨어진 단편들을 편집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작품이 편집되기 이전에 여러 단편들이 각각 따로 떨어져서 오랜 이스라엘 역사 동안 전승되어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단편들이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②벨하우젠은 종교 역사를 취급한 반면에, 궁켈은 이스라엘 문학의 발달사를 취급했다(종교발달사에 관심).
  ⇒궁켈은 창세기의 여러 story들이 각각 따로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왔는데, 전선지자들의 시대에 와서 하나로 묶어져서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story들을 따로 분리해서 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추적해 거슬러 올라가 보려고 한다. 결국 그 문서들이 발생한 그 고대의 시대적 상황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식비평이다(Gattungsgeschichte)

   ※Gattungsgeschichte의 의미
   ①Gattung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적인 규범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관습적인 틀이다. 그것은 형식적인 관습들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회적인 상황(Sitz im Leben) 속에 있는 특별한 사회에 사용되곤 했다.
   ②문학형태는 그 시대의 사회를 잘 반영한다. 예를 들어, 고대 프랑스 문학작품에 비극적 작품들이 한 때 성행했다. 영국 세익스피어는 희곡과 익살을 좋아했다. 한국은 비극을 좋아했다. 현대 미국은 액션을 좋아한다. 미국도 한 때는 서부극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그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이러한 시대의 상황을 Sitz-im-Leben(삶의 정황)이라고 한다. 이 정황 속에서 문학형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Gattung은 바로 이러한 Sitz-im-Leben이 포함된 문학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③대부분의 학자들은 오경의 단편들의 Sitz-im-Leben은 "Cultic"(제의)라고 주장한다.

   ※궁켈 이론 요약
①성경을 type과 form을 따라 "단편"(source or tradition)으로 구분했다.(literary type = Genre)
②각 단편들은 쓰여지기 전에 구전(Oral stage)으로 오랜 기간 동안 전해 내려왔다고 보았다.
③전승되어 오던 과정에 있었던 Sitz-im-Leben(삶의 정황)이 무엇인가를 밝혀보려고 했다.
④전승되어지는 과정 중 어떤 stage에서 그들이 앞에서 전승되어 온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에서 재해석하여(신앙고백),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었는가 하는 각 stage의 신앙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다(kerygmatic approach).
   ⇒문학 혹은 언어로서의 표현이 발전되어 온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개입했던 "사회"(social institutes)을 추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 사회의 역사적인 상황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회가 가졌던 신앙이 어떠한 것이었느냐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2)모빙켈(Mowinckel)
   궁켈은 오경의 범위를 벗어나서 그보다 더 폭넓은 자료를 바탕으로 전승의 발달을 추적하는 작업을 했으며, 가능한 한 그 전승들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입장을 따라서 연구하면서, 히브리 시와 예전(cultic)과의 관계를 조사하는 공헌을 했다.
   ①모빙켈이 궁켈의 이론을 더 발전시켰다. 10계명의 삶의 정황(Sitz-im-Leben)은 포로이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했던 위대한 가을 축제였다고 주장한다(a great autumnal celebration in the temple in Jerusalem in pre-exilic Israel).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은 예전 가운데서 우주의 왕으로서 권좌에 앉아 계셨으며 이러한 신앙이 바로 가을에 있었던 신년축제의 유명한 한 부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모빙켈의 주장이다.
   ②모벵켈도 오경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 상황이 제의(cult)에 기원한다고 주장했다(the rites and liturgies of worship).
   ③모빙켈은 신탁의 양식(oracular type)을 가지고 있는 시편의 존재(예: 시60:6이하; 75; 82)를 주장했다.
   ④여로 곳에 위치한 성소들과 관련된 예언 예언자(cult-prophet)들이 예배자들에게 매개 역할을 하면서 전한 신의 응답을 자료로 하여 이러한 양식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⑤그가 분류해 놓은 시편들의 양식들이 예배의식에서 단 한번만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⑥하나님께서 창조자 혹은 왕으로서 각 시편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이며, 사실상 이 모든 시편이 신년의 대관식 축제 개념과 관계가 있으며 좀 더 넒고 일반적인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⑦모빙켈은 특히 시편을 가지고 양식사비평을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시들은 예배(cult)에서 사용되기 위해서 지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가을추수 때에 언약을 체결하면서 사용되었고, 왕의 노래들은 가을 축제 때에 하나님이 보좌로 좌정하시는 것에 대한 묘사로 여겼다. 그는 이러한 축제는 바벨론의 축제와 비슷하다고 보았다(Sitz-im-Leben은 가을축제).

    ※궁켈과 모빙켈 비교
   ①궁켈이 히브리 종교 문학의 개인적인 성격에 관심을 가졌던 반면에, 모빙켈은 히브리 종교문학을 사회를 움직여 가는 추진력의 전개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②"대관식 시"(enthronement psalms, 시편 47, 93, 97-99, 106:10 이하)는 예전의 양식으로서 대단한 중요성을 지닌다. 하지만 궁켈에게 이러한 양식은 이미 바벨론의 신년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증명이 된 원형이었기 때문에 이 시편들은 따로 분류되어 있던 것들이다.
   ③궁켈은 여호와의 왕좌에 앉으심이 제2 이사야의 설교와 일치한다고 보고, 따라서 시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모빙켈은 시는 원래 예배에서 기원했다고 보고, 그것들은 예배의 목적에 의해서 형성되었지(이스라엘 종교는 선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전예배에서 발전한 것으로 주장했다. 예배 중 언약 체결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보았다), 종말론적인 사상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고, 이렇게 예배에 사용되어 오던 것을 선지자들이 메시지로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The religion of the Psalms is the spiritual background of the prophets).

(3)페더슨(J. Pedersen) - 출1-15장의 이야기는 유월절의 기념의식에서 형태를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4)폰 라드(Von. Rad)
   ①신26:5-10(credo)은 출애굽의 전승(the Sinai tradition)이 그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②Sitz-im-Leben은 covenant ceremony of harvast festival이라고 주장했다. 출애굽과 얽힌 성경기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covenant festival의 삶의 정황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출애굽의 기사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들이 신앙을 고백한(cultic confession) 내용이라는 것이다. 즉 기록된 역사는 내적 사건이며, kerygma라는 것이다.

(5)멘덴홀(Mendenhall) - 십계명과 시내산 언약, 그리고 신명기 문서는 Hittite vassal-treaty에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3)편집사 비평(Redaktiongeschichte, Redaction Criticism)
   편집사 비평은 전승되어 오던 수 많은 자료들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완성된 본문으로(the finished text fo a work as complex) 모아졌느냐(fixed)를 살피는 것이다.
   전승되어지는 과정에서 작용을 한 그 사회의 정황도 중요하지만(양식비평), 마지막 편집자(editor)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모으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어떤 신앙과 신학적인 사상을 가지고 편집했을 것이다. 따라서 section or fragments를 추적하는 것 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편집되어진 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1)편집자를 찾는 일
   성경은 단순하게 이것 저것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다. 자료들이 잘 연결되어 있고, 독자들에게 거의 자료들을 독자적으로 분리해 낼 수 없을 만큼 잘 연결되어 있다. 주제가 계속적으로 잘 흐르면서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section을 smooth하게 잘 구성시키고 있다.
   Redactor 또는 Collector는 자기의 신학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기의 목적에 부합되게 여러 자료들을 모았다. Redactor는 자료들을 연결할 때 자기의 입장에서 꼭 comment를 하거나 결론을 맺고 다음으로 연결한다. 즉 성경의 책은 "a continuous whole"을 이루고 있다.
   예)창 1장을 P문서로 보고, 2장을 J문서로 본다. P문서의 목적은 안식일의 의미를 찾는 것(2:3, "일곱째 날을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고, 모든 창조하시던 일로부터 쉬셨다")이라고 보았다. J문서는 "These are the generation of ......"라고 시작하면, introductory formula는 있는데, 결론은 없는 게 특징이고, 뚜렷한 결론 없이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2)편집자가 속한 사회를 아는 것
   이 편집자의 사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집자가 속한 사회의 상황 즉 삶의 정황(Sitz-im-Leben)을 알아야 한다 (양식사 비평은 전승과정에서의 Sitz-im-Leben을 찾자는 것이고, 편집사 비평은 마지막 편집할 당시의 Sitz-im-Leben을 찾자는 것이다).

(3)편집자의 사상을 찾는 일
   Redaction Criticism은 편집자를 찾고, 특히 편집자의 사상과 편집 목적을 찾자는 것이다.

(4)편집자가 독자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의미를 찾는 일
   How did he mean us to read his finished text. what was he trying to tell us through his book.

   *편집사학파들의 관심은 본문의 성장 과정을 추적해서 조사하는데 두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저자(편집자)에게 관심이 있으며, 궁극적인 목표는 편집자의 신학적인 사상을 찾아내는 데 있다.

   *평가
   1)비평가들은 성경을 한 사람의 저작으로 보지 않고, 편집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저자라고 하던지 편집자라고 하던 지를 구분하기란 심히 어렵다. 비평가들은 편집자가 고도의 기술로서 각 단편들을 매우 smooth하게 연결했다고 본다. 또 성경은 한 사상이 흐르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 이는 바로 저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우리는 본문의 가능한 의미를 찾아내기는 쉬워도 redactor 또는 community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4)신비평(New Criticism)의 발생(Canonical approach를 중심으로)
   Old Criticism의 관심은 성경의 본문이 발생되었거나 혹은 마지막 성경에 옮겨질 때의 역사적 사회의 정황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진 본문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하는 것을 밝히기를 원한다. ⇒ what it meant (to them) = descriptive(객관적 사실 기록)
   New Criticism은 옛날의 역사적 상황을 아는 것과 나(독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신비평은 성경을 문학작품으로 본다. 문학작품이란 저자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민 이이기(made up stroy)이다(The world of the text and the story of the text is a made-up world and a make-up stroy even though it might be based on many historical events and persons).
   저자가 작품을 쓰고 난 뒤 text는 저자에게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죽은 이후 본문은 계속 남아서 뒤에 오는 세대들에게 귀중한 진리들을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는 저자 혹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What it means (to us) = normative(나의 신앙 규범이 되야 한다)

 

   ※Canonical Approach(by B. S. Childs)
   1)Canon의 의미
   ①Canonical Approach는 "canon"을 중요시 여긴다.
   성경의 완성된 모양 즉, canon을 중요시한다. 즉 그 본문이 쓰여지기까지의 발전과 형성과정의 역사를 재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라, 쓰여진 완성된 책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기에 성경을 역사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성경이 역사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 본문이 정경으로 고정될 때(fixed), 그것은 더 이상 과거 역사를 증언하는 문서가 아니며 역사 그 자체로서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즉 그 옛 역사를 재구현해 볼 필요가 없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세속역사가 아니라 계시역사이다.
   전승되어 내려오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마지막 편집자가 선별하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다시 배열하기도 하였다. 이 역할은 당시의 한 신앙 공동체의 권위에서 한 것이다. 이렇게 조정되고 배열을 한 정경을 다시 역사를 재구성하겠다고 분석한다면 그 마지막 배열에 큰 혼란을 줄뿐이다.
   정경의 형성과정을 보면 오랜 기간동안 걸쳐 완성되었다. 이 작업은 포로 이전부터 시작하여 포로 이후에 급속도로 진전되어 선별되고 정리된 문학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 작업은 분명 어떤 특정한 사회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편집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이 누구라는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 분명 어떤 공동체의 Sitz-im-Leben 속에서 발생하였지만, 그 삶의 정황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모호하고 혼미하다. 이러한 모호한 당시의 정황을 찾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descriptive). 본문을 오늘날 나에게 재현시키는 것이 그 본문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다.(Normative)
   ②Canon의 권위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니(인정하니) 권위가 있는 것인가?
   중세 로마교회는 교회권위에 근거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기에 권위가 있다고 믿었다.
   19세기에 일어난 역사적-비평적 방법은 교의 신학적 견해와 로마 교회의 권위 모두에게 크게 도전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일반 문서와 같이 취급했기 때문이다. 1차 대전 후, 이러한 도전에 로마교와 개신교가 손잡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했다.

   B.S. Childs는 교회 전통이나 dogma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않고, 극단적인 주장에 반대했다. 즉 성경을 성문서로 읽자는 것이다(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니). 그리고 신앙공동체가 이것을 풀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①Childs는 Theocentric에 초점을 둔다. 즉 성경의 권위의 부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즉, 형성과정이 어떻게 합당하게 이루어졌는가? 혹은 정경으로 받아들인 그 당시의 교회의 권위가 어떠한가? 라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②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권위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독자 혹은 교회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때문에 그 성경은 살아있는 성경의 권위를 가진 것이다.

   2)Context의 의미(church as the context of the canon)
   ①Context는 그 시대의 환경(environment)이라는 것이다.
   Old Criticism 은 고대사회의 Sitz-im-Leben을 중시하고, Canonical Approach는 현재의 교회, 회당의 환경이 중요시한다. 현대 구약 연구는 성경을 너무 쪼개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은 이스라엘 대한 이해에는 도움을 주지만 현재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상관이 없다. 성경은 현재 어느 한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생명력이 있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Canonical Approach는 본문이 읽혀지고 있는 그 공동체에 어떠한 신앙적인 규범을 주느냐에 관심을 둔다.
   성경(canon)의 기능은 공동체에게 신앙을 주는 것이다. 즉 현 교회라는 공동체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은 반드시 그 공동체의 신앙의 눈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은 오늘의 교회에 신앙을 형성시키는 기능을 해야 한다(Bible must function normative for church). 그는 성경이 시대를 "초월한 진리"라는 말을 거부한다. 과거의 시대는 의미가 없고, 현재 내가 어떻게 받느냐를 중시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현재 내가 읽을 때에 그것이 말씀이라는 것이다.

   ②두 번째 Context의 의미는 "문맥"이라는 것이다. Childs는 Genre에 따라 성경을 분류하여 부분 부분으로 쪼개는 것을 반대한다. 이미 성경이 단편에서 있다가 성경으로 옮겨지게 될 때에 그 단편들이 가졌던 역사성을 떠나 전체의 일부가 된 것이다. 단편은 더 이상이 가졌던 개적인 의미는 상실했다는 것이다.


   3)Theological shape of the canon
   Childs는 정경의 형태(canonical shape)를 중요시했다. 단편으로 분리하여 역사를 재구현 한다는 것은 이 마지막 shape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이 shape을 이룬 것은 무엇인가? 바로 신학이다. 정경은 단순한 문학의 모음집이 아니라, 신학에 의해 그 모양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정경은 신학으로서 그 모양이 갖추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가
   (1)도대체 어떤 정경을 받아들일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는 정경이 다르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또 다르다. 그러면 이렇게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2)정경의 권위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받아들이는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내가 인정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권위가 첨가되는 모순을 낳는다. 성경의 역사성을 믿지 못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3)본문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Normative) 제일 관심사이다. 그러다 보면 독자에 따라서 성경에 대한 의미와 성경에게 주는 권위부여가 달라질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진리도 변해야 한다는 원리가 되고 너무나 주관적이게 된다. 구원은 영원한 진리이지, 상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4)Canon의 신학을 먼저 가지고 각 부분을 해석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한 전체 상황에서 부분을 볼 수 있겠는가? 부분 부분을 보고, 전체를 형성할 수 있고, 이후에 다시 부분을 보아야 한다. 부분이 존재치 않고 전체가 존재할 수 없다.
4. 하등비평(본문비평)
A. 본문비평
1)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란? 본문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criticism" = to eval‎uate it, to judge its wroth.
   "Textual criticism" = judgement of the worth of a text

2)본문비평의 두 가지 목적
  (1)전승된 본문의 정확성 평가 - "the eval‎uation of the accuracy of transmitted texts on the basis of other copies of them"
  (2)원래의 문서로 복구 - the possible restoration of assumed 'original manuscripts' on this same basis.

3)본문 비평의 역사
   (1)가장 고대의 본문 비평은 오리겐의 육조경(Hexapla) : 가이사랴 도서관에 보관하던 중 이스람교도들(638)의 침입 때, 불타서 소실되었다. 여러 곳에서의 인용 부분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제1열 - 히브리어;    제2열 - 히브리어의 헬라어 음역;    제3열 - 아퀼라역
    제4열 - 심마커스역;  제5열 - 오리겐이 개역한 70인역;    제6열 - 데오도숀역

   (2)문예부흥운동: 인문주의자들의 고전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있었다. 그리하여 원래 성경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번역사업도 했다(루터 -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인쇄술로 성경 보급이 확산되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개혁가들에 의해 히브리어 본문 성경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①The Bomberg Bible of Felix Pratenis(1517-1518)
     ②The complutension Polyglot of Ximines de Cineros(1520-1522)
     ③The Ben Chayyim Bible(1521)
     ④The Antwerp Bible(1572)

   (3)종교개혁가들과 그 후예들(종교개혁가들이 구축한 본문에 대해 그 후예들은 낙관적이었다)
    ①Dean Burgon of Oxford University - 현재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하여 낙관함 "Every book of the Bible, every chapter of it, every syllable of it, every letter of it, is the direct utterance of the Most High"
    ②Aappelus(1650) - "original text"를 재구축하기에 그리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때로는 다른 본문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다른 본문들이 진리를 오도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③The Ginsburg edition -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에서 1908년 Ginsburg를 초청하여 히브리어 본문성경을 편찬하여 춮판하였고, 1926년에 개정하였다.

   (4)BHK(Biblia Hebraica) - 3판
     Rudolf Kittel이 Biblia Hebraica를 1906년에 만들었고, 1912년에 Pocket용으로 출판했다. Ben Asher의 본문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a pure Ben Asher text = the pure Massoretic text라고 주장했다) Kittel의 성경은 Ben Chayyim의 본문을 수정한 정도였다. 그러나 foot note를 두어 고대의 여러 사본들과 비교 연구할 수 있게 하였다. Biblia Hebraica의 제3개정판이 Paul Kahle에 의해 1937년에 출판되었다(본문비평을 가미함). 여러 다른 학자들이 다른 전승되어 오는 본문들을 부분 부분 선택하여 맞추었다. 그 이후 Kahle에 의해 계속 개정되어 1951년에 제7개정판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C. C. Torrey와 Montgomery 등이 성경을 그렇게 짜집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기 시작했다(1927).

   (5)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 4판
     K. Elliger and W. Rudolph 등에 의해 Leningradensis 본문을 본문비평 없이 그대로 1968년에 Pocket용으로 출판했다. 그 이후 본문비평 작업을 시작하여 1977년에 출판했다. 본문비평 작업을 한 것은 주로 foot note에서 취급했다. 본문은 최소한의 것으로 고치는데 그쳤고, 본문비평은 새로운 전기에 돌입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Leningradensis 본문을 근간으로 삼고 가급적 고치지 않고 그대로 재인쇄하였다.

   (6)BHQ(Biblia Hebraica Qiunta) - 5판
   Qiunta는 다섯 번째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이름은 Biblia Hebraica의 다섯 번째 판이라는 뜻이다. 1937년에 편집된 BHK를 Biblia Hebraica의 제3판, BHS를 제4판으로 보고,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서 BHQ라고(제5판)고 부른 것 같다. The United Bible Societies가 주선하고, 독일성서공회가 후원하는 것으로 된 세계적인 합작품이다.
    1969년 Eugene A. Nida의 주도하에 히브리어 구약본문의 연구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까지 3권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들을 내용으로 Biblia Hebraica를 편집할 계획을 세우고, 1990년 8월에 HOTTP 편집위원회를 만들고 BHQ의 편집작업에 돌입하였다. 2002년경에 출판될 예정이었으나,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4)본문이 다양하게 나타난 원인들
   (1)단어 혹은 문구가 세월이 감에 따라 spelling이 달라지거나 그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겨서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바꾼 경우
   (2)실제로 필사자의 실수로 인해 생긴 경우
     ①자음이 비슷한 경우에 착각
     ②발음이 비슷한 경우
     ③빠뜨린 경우. 중복되어 쓰여져야 할 것이 빠진 경우
     ④중복되어 쓴 경우
     ⑤순서를 바꾼 경우
     ⑥잘못 띄어 쓴 경우
     ⑦모음을 자음으로 오인 한 경우(모음문자의 경우 -  ,   ,   ,   )
     ⑧모음부호를 잘못 붙인 경우
   (3)Scribes 또는 editors 가 의도적으로 바꾼 경우(자기들의 생각이 맞다고 판다하여)

5)본문비평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
   (1)가장 신뢰할만한 권위있는 본문(authorized text)를 정한다(Textus Receptus).
   (2)건전한 비평적 기준을 세운다.
     비평학적인 기준의 예
     ①더 오래된 것(가장 오래 된 본문)일수록 우수하다.
     ②더 어려운 독법일수록 신빙성이 있다.
     ③더 짧을수록 좋다.
     ④단어간에 서로 혼돈을 관찰한다(한 단어를 혼돈하여 다른 말로 읽은 경우가 없는지?)
     ⑤폭넓은 다른 지역의 지지를 받는 독법
     ⑥저자의 문체와 어투에 가까운 것
     ⑦교리적 편견이 없는 독법
   (3)어학과 신학적인 능력을 갖춘다.(저자의 의도하는 바를 문맥을 통하여 철저히 파악하고, 신학적인 해석도 신중을 기하여 가미해야 한다)

6)본문비평에 있어서 우리가 취하여야 할 자세
   (1)가장 확실하다는 사본을 선택(현재는 MT의 Leningradensis)
   (2)MT가 확실하게 틀렸다고 인정할만한 근거가 없을 때에 이 독법을 반대하거나 추측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3)MT와 다른 본문이 서로 뚜렷이 다를 때에, 그리고 양쪽이 다 그럴듯한 경우에는 MT를 선택한다.
   (4)MT의 것이 문맥에서 이탈된 뜻을 지니는데 반해, 다른 본문은 만족스러운 증거를 가졌을때에만 MT의 것이 필사자의 오류로 생각할 수 있다.
   (5)만약 오류가 있다면 왜 필사자가 이런 오류를 일으켰을까를 생각해 보고, 그 오류를 범한 필사자의 심리 등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6)MT와 다른 것이 모두 가능성이 있거나, 그 반대로 가능성이 짙은 본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독법을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하나, 그것도 추측에 불과하므로 오만하지 말아야 한다.
   (7)확실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본문에 수정을 가하지 말고 foot note에서 처리하여 목사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

B. 히브리어의 발달
1)문자의 발달
   (1)Sumerian cuniform signs(수메르 설형문자)
   (2)Akkadian - Sumerian system을 본땄음.
   서북셈족어와 남셈족어로 갈라짐
   (3)서북셈족어 계통(알파벳)
    ①Ebla어
    ②Mari어
    ③Ugarit어 -  Ras Shamra(옛, Ugarit, South of Antioch, 지중해 연안) 문서들
    *The Ugarit System - 30개의 표식을 기본적인 알파벳으로 사용함. 그러나 아직 Cuniform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④Canaanites alphabet(히브리어가 여기에 속함)
    *Phoenicians들이 발전시켰다. 우가릿알파벳보다 더 일찍 거슬러 올라간다(약 B.C. 2000년대)
    *Canaanites-Hebrew system이 약 B.C. 6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추측된다. 히스기야의 상수도 시설에서와 Lachish편지들에도 이 형태의 글씨가 발견된다. 이 문자들이 마카비 시대에도 일부 사용되었고, 심지어 초창기 쿰란 글씨에도 간혹 나타난다.
    ⑤Aramaic system도 Phoenician들이 만들어낸 Canaanites system을 거의 답습한 것이다. B.C. 8세기 아람어가 가장 우세한 공식언어가 되었다. B.C. 3세기 경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사용한 것은 Jewish-Aramaic Characters이다. 예루살렘 멸망 때(A.D. 70년)까지 이 systme이 계속 사용되었다. 예루살렘 멸망 후 바리세 랍비들이 Square 문자를 사용했다.

   *Writers copying the texts
    ①삼하8:17 - 다윗 왕궁의 서기관 스라야
    ②왕하22:3 - 요시야의 서기관 사반
    ③왕하18:18, 37 - 히스기야 시대 서기관 셉나
    ④렘36:4 - 선지자 예레미야 개인을 위한 대필자 바룩

   *Writing materials
    ①고대의 글을 주로 돌에 새겨진 inscriptions이 많이 남아 있다. 히스기야의 상수도 돌에도 신27:2의 내용이 남아 있다.
    ②Clay tablets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Ugarit epics 혹은 Babylonian epics 등이 clay에 기록되어 있다. 라기스와 사마이라에서도 clay 문서들이 발군되었다.
    ③Papyrus의 사용도 상당히 오래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잡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널리 쓰여진 것은 B.C. 9세기경이다. 이떼는 바벨론에서도 사용되던 시기이다.
    ④양피지 - 주로 양피지에 쓰여짐
    렘17:1 - 철필(an iron pen)
    시45:1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 잉크를 사용한 펜으로 추정됨(참조 겔9:2)
    Scroll - 두루마리
    Codex - 한 장씩 넘기는 책으로 꾸밈

 

C. 본문의 전승
1)성경의 전승가들
   (1)구약시대
    ①삼하8:17 - 다윗 왕궁의 서기관 스라야
    ②왕하22:3 - 요시야의 서기관 사반
    ③왕하18:18, 37 - 히스기야 시대 서기관 셉나
    ④렘36:4 - 선지자 예레미야 개인을 위한 대필자 바룩
    ⑤느8:9 - 제사장 겸 서기관 에스라
   (2)sopherim 시대(이 시기의 서기관)
    에스라의 후예, 성경을 기록, 전사, 가르치고 해석했다.
   (3)Tannaim 시대(생도에 가까운 자들)
     Tanna =  repeat
     A.D. 2세기 이후, 암기하여 본문들을 전승시켰다
   (4)맛소라 학파
     Massora(     ) = 아람어로 "transmit", "transmitters"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정확한 전통을 살리려는 노력에서 시작했는데, 주후 5세기 말경 가버나움 호수 근처 디베랴에 유대인 학자들이 학술의 본거지를 만들고 본문 전승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2)맛소라 학파들의 업적
   (1)당시 난립되어 있던 히브리 사본들을 모집하여 일원화시켰다.
   (2)자음문자에다 모음을 붙혔다.
     ①Kethib(    ) = "이렇게 쓰라"
     ②Qere(   ) = "이렇게 읽으라"
     이들은 분명히 틀린 것이 있는 경우에도 자기들이 본문을 함부로 고치지 않고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려고 노력했다. 고쳐야 될 부분이 있으면 난외주에서 처리했다.
     ③또 단어가 누락된 경우에도 자음은 삽입하지 않고 빈 자리에 모음만 붙이고 난외주를 달았다(예, 삼하8:3; 렘3:38).
     ④또 단어가 누락되어야 될 경우 모음을 붙이지 않아서 읽지 않고 지나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난외주에서 처리하였다(예, 렘5:3).
   (3)히브리 성경에 장, 절을 붙였다.
      Mishnah에서 절로 나누는 것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A.D. 200년경).
      그러나 그것은 극히 초보적인 것이었다. 맛소라에 의해 조정보완된 것이다.
     *가장 위대한 맛소라 학자는 Ben Asher(A.D. 10세기)이다. 그에 의하여 완성된 본문이 오늘날 가장 권위있게 전달되었다.


D. 구약의 사본
1)쿰란의 사본들
   (1)The Isaiah Scrolls
    두 개의 이사야 Scroll들이 발견되었다. 하나는 이사야 전권이고 하나는 부분이었다. 약 B.C. 150-100사이에 필사된 것이었다. 그런데 두 개의 사본이 서로 틀리는 것이 많았다. 하나는 MT보다 조금 자유로우며, 다른 하나는 거의 MT를 따르고 있으나 일부분만 보존되어 있다. 원래의 두 개의 다른 사본이 있었는지 아니면 한 사본을 가지고 한 사람은 조금 자유롭게 베껴썼고, 다른 사람은 엄격하게 베껴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2)하박국 주석
     B.C. 100-50년경. 합1-2장 절 사이 사이에 주석을 달아놓았다.
   (3)사무엘서
     MT 보다 LXX에 더 가깝다(사무엘서에는 MT와 LXX 사이에 큰 차이가 남). 그러나 LXX가 사용한 히브리어 사본과 쿰란의 것이 같다고 할 수 없다.
    

1. 정경론
               : 겔 40:3(측량하는 장대), 겔 27:19, 렘6:20   GI-NA(수메르)
                                   qn(우가릿) - '갈대'
   reed, stalk, bone, balances. (ASV and RSV translate similarly.)
   갈대: 측정도구, 규범, 기준, 범주, 모범, 한계, 연대표

1.1
        이 교회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
①공식화된 신앙고백 - 교회, 교회법
②4세기 중 성경에 적용 - 오리겐이 최초 작용 가능성이 있다.
  최초 사용 증거 - 아타나시우스가 니케아 신조(325년) 18항에서 정경만이 거룩한 문헌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정경의 한계를 나타낸다.
③성경 이름 자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성경은 신적권위를 가진 생활 규범이다.
  구약정경: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 문헌을 최종적으로 수집한 것.
  규범적 의미와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 된다.
 
구약총론 시험
2003. 3. 27.
이름:
학번:
1.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2세기의 유명한 이단자이며 기독교회 감독의 아들이었으며, 성경 본문이 문자적해석을 채택하여으며, 하나님은 유약한 존재이고 불공정하며 예지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근본적으로 변덕이 심하다는 결론을 내려 자신의 정경 속에서 구약성경을 완전히 배제하고, 마침내 바울자료를 중심으로 구성한 누가복음서를 편찬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마르키온   ②루터    ③칼빈   ④벨하우젠

2. 마틴 루터는 대체적으로 신약의 정경들에 한해서만 비평적인 견해를 가졌습니다. 그는 먼저 신학적 기준을 나름대로 사용해서 일반적으로 보아 정경으로 인정되던 4권의 책(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했습니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구약에 대해서는 구약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루터는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을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얼마나 (             ) 중심적인가 하는 것

3.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유대계 철학자로서 홉스의 경향을 계승하여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그는 과학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종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저자들의 목적과 특성 그리고 삶을 연구하는 것이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이븐 에즈라의 견해를 어느 정도 수용했으며, 따라서 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창세기로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작품들을 전부 에스라가 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①베네딕트 스피노자   ②이븐 하잠   ③로버트 라우드   ④아이히호른

4.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료비평이라고 불릴만한 초기의 시도는 이 사람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그는 창세기에 관한 논문을 통해 오경 연구에 자료비평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는  모세가 접근했던 자료가 여러 세기에 걸쳐서 구전(orally) 혹은 기록(written form) 형태로 전해져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중에서 기록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고대의 자료들을 나누거나 조합해서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로 만들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창세기를 편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창세기 전체와 출애굽기 앞 부분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엘로힘과 여호와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①장 아스트뤼   ②데 베테   ③에발트   ④벨하우젠

5. 계몽주의 시대의 특징은 한 마디로 인간의 (        )을 최고의 가치라고 인식한 것이다.

6. 에벨트는 엘로힘 자료가 오경과 여호수아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으며, 십계명과 같은 고대의 자료들이 보충적으로 거기에 추가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 가설은 무엇입니까?(       )가설

7. 다음의 설명은 무슨 가설입니까? "오경의 어떤 부분은 엘로힘 문서나 야웨문서 혹은 신명기 문서에 속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후대에 첨가된 부분들에는 계약법전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연대는 대략 사사기 때로 추정된다. 그뿐 아니라 주전 500년경에는 앞서 언급한 세 문서의 편집자들이 육경의 편집 과정 속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       )가설
구약총론 시험
2003. 4. 10.
이름:
학번:
1. 다음의 주장은 누구의 주장인가?
  ①소위 기초문서(Grundschrift)가 오경을 구성하고 있는 제일 오래된 문서라기보다 가장 후대의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②로이스의 이론(엘로힘 자료는 가장 고대의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오경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문서들 가운데 가장 후대의 것이라는 주장)을 수용하여, 기초 문서 안에 제사장들이 그 형성에 관련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신명기의 뒤를 이어 후대에 기초문서가 편집되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했다. ③또한 기초문서의 연대가 포로기 이후이며, ④성결법전이라고 불리는 레위기 18-26장의 부분만큼은 에스겔 시대에 씌어진 것으로 구별했다. ⑤오경의 나머지 부분에 관한 그의 견해는 보충가설의 논리와 같은 것이었다. ⑥야웨 자료의 첨가가 이루어진 것은 신명기 편집자의 작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①콜렌소     ②파트케      ③더 베테     ④그라프

2. 다음의 주장은 누구의 주장인가?
  ①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민수기의 내용 가운데서 야웨 자료(prophetic material)의 연대는 다른 기초 문서 부분보다 그 연대가 상당히 고대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②그는 1870년 출판된 그의 저서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그라프의 견해를 지지했다. 그는 야웨 자료는 오경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엘로힘 자료에서 뽑아낸 부분과 신명기가 요시야 왕 시대에 보충되었다는 것이다. ③또한 포로기 동안에 법에 관한 자료들이 여기에 부가되었으며, 이 자료는 "성결 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④그리고 에스라 시대에 제사장 문서와의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전의 비평학자들이 P E J D로 생각했던 문서의 순서가 그의 연구를 통해서 J E D P의 순서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누구인가?
①에두아르 리임(Eduard Riehm)    ②딜만(Dillmann)
③바우디신(Baudissin)    ④아브라함 퀴넨(Abraham Kuenen)

3.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이 사람은 퀴넨의 이론(J E D P)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가 말하는 고전적인 문서 가설의 체계를 갖춘 사람입니다. ②그는 철저한 헤겔주의자였던 파트케의 진화론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해서 이스라엘 종교의 성립과정을 성립했으며, 여기에 그라프에 의해서 완성된 예전법을 연결했다. ③그는 법전의 전승과 이스라엘 종교의 점진적인 발달사가 하나로 묶여진 것은 제사장 문서의 연대만큼이나 후대일 것이라는 주장을 사실로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①다윈(Darwin)   ②에발트(Ewald)   ③헤르더(Herder)   ④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4. 괄호넣기 문제
   초기 단계에 역사비평학은 (               )(textual criticism)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연구를 통해서 본문을 구성하고 있던 원래의 단어와 문장이 어떤 것인가를 가능한 한 완전하게 밝히는 데 있으며, (               )을 통해서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              )은 역사비평학의 분야에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①히브리 본문이 가지고 있는 신뢰성이야말로 다른 제분야의 비평학이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②인쇄 기계가 발명되고 필사본이 책으로 바뀐 이후에는 본문의 내용을 인쇄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거의 없어졌지만, 그 이전에 손으로 한권씩 원본을 필사하던 시절에는 필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상당히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5. 본문비평은 하등비평이며, 고등비평은 (       )비평이다.  (        )비평은 한 문서나 책에서 그 기저에 놓여있는 자료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라고할 수 있다. 그리고 더불어서 이 자료의 저자와 연대를 알아내기 위해 추적하는 연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아가서 고등비평은 문학을 양식에 따라서 구별하는 과정에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6.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영국의 구약학자로서 벨하우젠의 글을 아무런 비평없이 받아들여, 저작활동을 통하여 역사비평학의 확산에 일조한 사람이었다. 그는 1875년에 Encyclopadia Britannica에 대단히 중요한 논문을 실었는데, 이 때문에 나중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결국 1881년에 에버딘의 자유 교회 대학에서 추방되기까지 했다.
①베네딕트 스피노자   ②이븐 하잠   ③로버트 라우드   ④로버트슨 스미스(W. Robertson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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