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이단성! 사이비성!

상급이 없다는 말에 속지말라!!

하나님아들 2021. 6. 5. 23:35

상급이 없다는 말에 속지말라!!

상급이 없다는 말에 속지말라!!

 

상급에 등급이 있다는 말에 속지 말라!

‘오직 은혜’(Sola Gratia) 교리에 반대되는 차등상급론

 

“열심히 봉사 헌신한 사람은 더 큰 상급을 받고, 덜 열심히 일한 사람은 상급을 덜 받고, 일을 게으르게 한 사람은 상급이 없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라. 더 높은 등급의 상급을 얻기를 축원한다.”

 

 

이런 논리가 ‘차등상급’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차등상급은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오히려 성경은 반대로 말씀합니다.

서로 수고는 다른데 상급이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상급’은 있습니다. 그러나 상급에 등급이 있다고 하는 ‘차등상급’은 없습니다.

 

‘차등상급’은 순전히 교만한 인간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교리입니다.

 

차등상급교리는

상급의 결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나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라 나의 공로에 좌우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인본주의적인 교리입니다.

그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고, 율법주의입니다.

 

 

이에 대해 몇가지 정리를 해봅니다.

 

 

 

[1] ‘상급’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용례

 

‘상급’이라고 하는 단어는 ‘임금’, ‘보상’ 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구약에서는

① 싸카르 : 보상, 급료, 임금(창15:1, 대하15:7, 시127:3, 사40:10, 사62:11 등등)

② 네비즈바 : 상, 상금, 보상(단2:6, 5:17)

③ 마쓰코레트 : 임금, 보상, 급료(창29:15, 39:7, 31:41, 룻2:12) - 이단어는 ‘싸카르’에서 유리한 단어임.

④ 가말 : 보답, 보수, 보응(시7:4, 삼하22:21, 시18:20 등등)

이라는 네개의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혹시 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신약에서는

① 미스다포도시아 - 보응, 보답, 보상(히2:2, 10:35, 11:26)

② 미스도스 - 상, 보상, 보응, 임금, 삯, 보상(마5:12, 46, 6:1, 2, 5, 계11:18, 22:12)

등의 단어가 사용 되었습니다.

 

위와 같이 '상급'은 ‘상’(賞)의 개념 보다는 ‘대가’라는 개념이 더 맞다고 하겠습니다.

 

영어성경들(KJV, NIV)에서도 ‘prize’가 아니라 ‘reward’(보상, 보상금)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상급을 보상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맞는 것입니다.

 

 

 

 

[2] 무엇이 상급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상급으로 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땅? 아파트? 금은보화? 돈? 더 높은 권세? 더 큰 면류관?

차등상급교리를 주장하는 분들은, 상급을 다르게 받기는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받는 상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왜 말해 주지 않겠습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급이 무엇인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아래에서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등상급주의자들은 천국에서 누리는 상의 정도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 상급의 차이는 그로 인해 누리는 ‘기쁨’의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고, ‘행복’의 차이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치로 표현하자면 30정도의 기쁨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60 어떤 사람은 90의 기쁨을 누린다는 말이 됩니다.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요?

최소한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나 비슷한 말씀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인간의 상상력, 추론으로 만들어진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

 

 

 

 

[3] 우리는 정말 상급을 받아야 할까?

 

사실 우리는 상급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일을 매우 많은 수고로 감당했다고 해봅시다.

그것이 과연 상급을 받아야 할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보상을 받는 것은 은혜이지 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수고했으니 더 상급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밥을 먹지 않는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밥을 먹으면 장난감을 사주겠다”라고 말한 부모의 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린아이 생각과 같습니다. 밥을 먹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자기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를 위해 한 일을 가지고도 보상을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고 상급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상급이 은혜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일한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분들을 보십시오.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입니까?! 주님을 위해 일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가 주님을 위해 일하지 못함은 저주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도록 지음 받은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 그자체가 복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주님을 위해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오직 택함 받은 우리 소수만 주님을 위해 일합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기쁨이며, 영광을 주셨기에 상급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예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순한 의도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지,

더 큰 상급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순수한 사랑과 헌신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기를 바랍니다.

 

 

 

 

 

[4] 상급에 등급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성경구절, 1 - 마태복음 20장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 품꾼을 고용하는데,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에 사람들을 고용하여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주인이 상급, 미스도스(misqov")를 주는데 모두 동일하게 ‘한 달란트’씩을 주었습니다. 9시간 일한 종이나, 6시간 일한 종이나, 3시간 일한 종이나, 1시간 일한 종, 4명 모두 동일한 상급, 미스도스(misqov")를 받았습니다. 서로 헌신하고, 수고한 것이 각각 달라도 너무 달랐는데 상급은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법’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람의 공로, 사람의 의로 상급 받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9시간 일한 자가 1시간 일한자와 동일한 상급을 받는다고 해서 결코 질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① 주님을 위해 일한 것 자체가 은혜고 복이고 영광이고,

② 상급을 안 받아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며,

③ 일한 것 자체가 은혜이기에, 오히려 1달란트를 주인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에 결코 동의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더 수고했으니 더 받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수고한 것은 은혜가 아니고, 자기 공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도 동일하게 생각하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삼시, 육시, 구시에 와서 더 일했으나 똑같이 한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은 주인을 비난하며 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더 일을 했으니 상급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차등상급을 주장했던 종들을 향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20:14-16)

 

상급을 차등하게 받지 못한다는 것을 부당하게 생각했던, 은혜를 망각했던 종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 된 자들’ 즉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자들이 많습니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다 구원 받은 참된 종들이 아닌 것입니다.

잘못된 동기에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많으며,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일을 하는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차등상급교리를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자신을 잘 돌아봐야 합니다.

 

 

 

 

 

[5] 상급에 등급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성경구절, 2 - 고린도전서 3장 8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하나이다’ ‘같다’ ‘동등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는 것과 물 주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서로 일의 강도도 다르고, 헌신의 크기도 다릅니다. 그리고 거두는 자도 있습니다. 거두는 자는 아마 자기가 가장 많이 헌신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많고 큰 보상을 받아야 합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각각 자기의 수고를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자기가 받을 보상을 충분하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각각 받는 보상들이 비교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저런 보상을 받고, 나는 이런 보상을 받을지라도 각각 자기에게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일로 수고할지라도 질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자기가 100퍼센트 헌신하였으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앞서 3절에서 “시기와 분쟁이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서로 더 큰 보상을 받고, 더 적은 보상을 받는 것을 따지는 것, 더 많은 수고를 했으나 똑같이 받는 것에 불평을 같은 것들은 시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더 수고했는데 똑같이 보상을 받는다니 참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시기와 분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6] 상급에 등급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성경구절, 4 - 요한계시록 22장 11,12절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1,12)

 

계시록 22장 11,12절은 보상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잡아 줍니다.

불의한 자에게는 형벌로 보상하시고, 의로운 자에게는 영생으로 보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의로운 자에게는 더 큰 보상을 주시고, 덜 의로운 자에게는 더 적은 보상을 주신다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더 의로운 자, 덜 의로운 자가 없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가 있을 뿐입니다.

 

 

 

 

[7] 상급에 등급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성경구절, 5 - 고린도전서 15장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바울은 자기가 가장 많이 수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기독교 전체 역사 속에서 바울이 가장 많이 수고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도들보다 더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장 큰 상급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더 수고했지만 자기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더 큰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인하여 수고한 자는, 차등상급을 주장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8] 무엇이 상급인가?

 

다시 초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우리가 장차 받게 될 그 상급, 보상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에게 있어서 보상이 될 수 있을까요?

땅? 아파트? 금은 보화? 돈? 더 높은 권세? 더 큰 면류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상급, 보상은 무엇입니까?

 

 

 

상급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보다 더 뛰어난 상급이 있습니까?

하나님 보다 더 큰 상급이 있습니까?

하나님 보다 더 좋은 상급이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상급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보상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 밖에서는 모든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상급, 보상, 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아브람에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15:1]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라는 단어 ‘메오드’는 최상급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가장 큰 상급을 받은 자들이며, 그 상급이 보장된 자들입니다.

열심히 헌신 봉사 더 하면, 더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큰 실수입니다.

 

 

우리는 이미 상급을 받았으며,

가장 큰 상급을 받았습니다.

그 상급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최고의 상급을 이미 받았습니다.

 

헌신과 수고가 적으면, 더 작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큰 실수이거나 거짓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기꾼, 거짓 목사들이 이런 말로 성도들을 속이고 꿰고 있습니다.

나는 그 사기꾼들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1. 하나님이 상급이십니다.

2. 하나님이 가장 큰 상급이십니다.

 

 

 

 

 

[9] 결 론

 

“이 땅에서 교회에 헌신 봉사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상급을 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교회 봉사 해라. 전도해라”

라고 가르치는 목사는,

 

 

1. 큰 착각 속에 잘못하고 있거나,

 

 

2. 거짓말로 여러분을 미혹하는 거짓 목사인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대게 그런 식으로 여러분을 사탕발림으로 꾀어내서 자기들 잇속을 더욱 채우는 도구로 이용해 먹기 위한 의도로 속이는 거짓 목사들일 확률이 많습니다.

 

아니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도 모르는 자격 없는 자이던지 말입니다.

 

거짓 목사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 기본 핵심 교리도 모르는 무식한 목사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룩해 보이는 옷을 입고, 담임 목사의 옷을 입고 여러분을 노략질 하고 있습니다.

 

거짓 목사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맹인의 인도함을 받으면 맹인도 망하고, 그를 따르는 자도 망합니다.

무식한 목사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우리 의로 하나님 앞에서 상급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상급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다고 하는 것은, 내 행위, 내 공로, 내 의가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차등상급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만을 의지하는 데에서 벗어난 율법주의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 받고,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며.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이설입니다.

 

우리는 구원 뿐만 아니라 상급도 오직 은혜로 받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받지 않습니다.

자기의 행위로 상급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며,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한 일의 삯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일의 삯을 은혜로 받을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4. 차등상급이 없다고 하면 성도들이 방탕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의 법은 절대로 방탕과 방만한 신자의 삶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은혜의 법의 왜곡된 이해가 방탕과 방만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더 큰 상급을 받느라 어떤 형제가 나보다 더 작은 상급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게으르게 행동해서 내 형제가 더 큰 상급을 받게 하겠습니다.

 

차등상급이란 철저하게 상대적인 개념인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서로 비교해서 더크고 적은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각 일한대로 자기의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고전3:8)

 

 

 

5. 참 신자는 천국에서 자기 상급을 다시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수고하였더라도 주님의 은혜가 동기가 되었던 것이며, 동력도 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과정과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었기 때문에 상급을 주님께 돌려야 마땅하다고

참 신자들은 한결같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참 구원 받은 자인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0,11)

 

 

 

‘차등상급교리’를 말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이신칭의’를 모르는 무식한 목사이거나

거짓말쟁이 가짜 목사들입니다.

그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