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 무엇입니까?
Q. 이단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단에 속한 사람인가요?
A. 안녕하세요? 저는 *******교회 이한규목사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단(異端)과 정통에 관한 시시비비가 종종 일어나곤 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이단에 속한 사람인가?” 에 대해 성경에 있는 이단에 관한 말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단을 분별하는 정확한 잣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보기에’ 이단(異端)에 속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경계, 배척, 비방하고, 이단에 속한 사람들과는 아예 상종하기조차 꺼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런데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단이냐, 아니냐? 어떤 사람이 이단에 속한 사람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참 중요한 것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정확한 잣대(尺)입니다. 특정한 교파의 교리나 신학, 또는 어떤 목사님의 개인적 견해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냐, 이단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이단’에 대한 정확한 규정부터 알아야 합니다.
종종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성경의 어디에, 어떤 사람을 이단이라고 규정해 놓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의외로 정확한 대답을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정확한 성경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남의 교회를 정확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다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섣불리 ‘이단’이라고 정죄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어찌 참된 신앙인의 자세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은 곧 틀린 것, 잘못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문제는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정말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남의 교회가 어떠하다는 폄론(貶論)보다 누구와라도 선입관을 버리고, 성경 말씀을 앞에 놓고 격의(隔意) 없는 교제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의 교회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성경 말씀에 따른 교제는 거부하면서 함부로 남을 정죄하거나 사실근한 이야기로 남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닙니다.
저도 실제로 저희들 교회에 와서 직접 대화 한 번 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저희들 선교회나 저에게 믿음의 삶을 가르쳐 주신 목사님을 이단이라고 비방하며,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사실 저도 거듭나기 전에 기독교한국침례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에 소속된 다른 교회에 12년 정도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1985년 8월에 저희 선교회의 여름 수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던 중 로마서 4장 5절과 8장 1절 말씀이 마음에 임하면서, 나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써 나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의롭게 해 놓으신 약속이 마음에 임했고, 그 날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나서 보니까 성경 말씀도 참 새로웠고, 교회의 분위기도 너무 말씀적이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죄 사함의 확신과 생명을 갖게 해준 교회로 가서 새롭게 신앙 생활을 하게 되자, 그 전에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 이단 에 빠졌다며 많은 염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상 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은, 이 교회가 너무 복음을 사랑하는 교회이며, 말씀이 분명하고, 목회자들의 삶이 깨끗하고 헌신적이어서 저희 교회를 곡해하고 비방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 사실무근한 이야기들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교회 안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정말 제가 교회 하나는 너무 잘 만났고, 내 영혼의 목자는 너무 잘 만났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고, 감사한 일들, 복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복되게 사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밖에서 듣는 것과 안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너무 달랐습니다. 마치 구약 성경의 성막이 밖에서, 멀리서 보면 너무나 볼품이 없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보면 황금으로 찬란하게 만들어져 있듯이 말입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사실들
저는 가끔 사람들에게 성경의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을 물어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보혈이 당신의 마음을 죄에서 해방시킨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갑니까?” “사도 바울이나 다윗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았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하고 물어 보면, 기독교 신앙의 초보적이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내용들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먼저 그에게 남의 교회를 비방하고 송사하는 이야기부터 하기보다, 자기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은혜, 하나님께 받은 약속과 소망, 주님이 자기 삶 속에 주신 복된 일들부터 간증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통하여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짓된 사단의 사상을 분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구원하셨고, 어떻게 인도하셨고,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지 간증하기에도 시간이 바쁠 것입니다.
‘이단’의 축어적(逐語的) 의미- 끝이 다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한다면 왜 이단이라고 하는지, 성경적으로 분명한 근거를 두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단(異端)’의 축어적(逐語的) 의미부터 설명해 드리자면, 한자어 ‘異端’은 ‘다를 이(異)’, ‘끝 단(端)’字로서 “끝이 다르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길은 생명과 천국에 이르는 길이지만, 어떤 길은 사망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어서 그 끝이 너무 다르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단’은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나야 진리이고,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으로 끝나야 진리인데, 이단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끝에 가보면 자기네 교리나 교파의 신학적 주장이 나타나고, 예수님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끝에 가보면 예수님이 아닌 어떤 인간을 교주로 내세우고 신격화시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어떤 인간도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4:12)
제가 어떤 교회 목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 교회에 대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은 그 목사님이 ‘이단들도 근본적인 얘기는 비슷한데, 끝이 조금 다르니까 목사님도 주의해야 합니다.’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목회자가 이런 상식 이하의 이야기를 하다니, 저 사람은 성경도 안 읽어 보나?'하는 마음이 들어 실망스러웠습니다.
정말 근본적인 얘기가 같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이단은 끝만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근본부터, 시작부터 다릅니다. 양(羊)의 탈을 쓴 이리는 양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이단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40절에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고 씨를 뿌립니다. 겉모양은 꼭 같아 보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사람들의 마음밭에다 말씀의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끝이 어떻게 다릅니까? 한 사람은 주님이 데려가시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끝이 조금 다릅니까?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데려감을 당한(휴거된)사람은 말씀을 따라 생명의 길로 갔지만, 버려둠을 당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 멸망의 길로 간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道)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세아 14: 9)
“복 있는 사람은 …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 죄인(罪人)이 의인(義人)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여호와께서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1:1∼6)
겉으로는 똑같은 하나님의 종 같아 보이고, 똑같은 성도(聖徒) 같아 보여도 죄인의 길과 의인의 길은 이토록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단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들만 조금씩 뽑아서 이야기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단들은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만 뽑아 부분적인 말씀만 이야기한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어떤 특정한 구절들만 뽑아서 이야기한다는 점 때문에 이단이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사실 성경 66권 전체를 어떻게 한 입으로 동시에 다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더라도 성경 말씀 중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초점을 잡아서 이야기합니다. 제한된 시간에 무슨 수로 성경 전체를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의 뜻을 곡해시키는 것이 문제지, 성경을 부분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점 때문에 그것을 이단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제를 할 때 그 사람의 영적 상태에 맞는 말씀을 찾아서 교제를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 필요한 말씀을 골라서 그 마음을 말씀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성경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주장을 펴면서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마음을 닫게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미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이사야28:9∼10)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종교인들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 중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가려 뽑아서 곡해하는 것처럼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사야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마음을 닫게 하는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그럼 이제 성경에서 ‘이단’에 관한 가르침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같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면 정말 이단일까요? ‘자기 생각에’ 이단으로 보이면 이단일까요? 남들이 이단이라 하면 이단입니까? 성경에 하나님이 이단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이단이고, 온 세상이 다 이단시해도 하나님이 이단이 아니라고 하시면 이단이 아닙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로마서4:3)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와 한국 교회의 현실
만일 예를 들어 장로교회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규정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측에서는 장로교회를 이단으로 여길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했을 당시 천주교회에서는 루터를 이단으로 몰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르틴 루터가 전했던 말씀 - <그리스도인의 자유> <갈라디아서 강의> <로마서 강해>등 -을 읽어 보면, 그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사도행전20:24)을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죄가 사해진다고 주장하는 교리가 성경적이었습니까? 반면 따르는 사람이 적었던 루터는 이단이었습니까? 그는 정말 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레는 소위 ‘모태 신앙인’이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었고, 옥스퍼드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었지만 거듭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1738년 5월 24일에 거듭났습니다. 그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복음을 증거하자 당시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많은 기성 교회가 그를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우리가 경건하고 선한 삶을 살아서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100% 예수님의 은혜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은혜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감리 교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1991년 11월에는 감리교 신학대학 홍정수 교수가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글을 교계 신문에 기고하여 물의를 일으키자, 감리교단에서는 비슷한 입장을 견지해 온 감리교 신학대학의 변선환 당시 학장까지 교단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시끌벅적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신학을 신봉하고 주장하는 교수들 밑에서 배운 신학교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신학교의 학장으로, 교수로 있으면서 가르치고 길러낸 많은 학생들이 현재 감리교단 안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리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에서는 제78회 총회에서 조용기 목사가 사이비인지, 정통인지에 대한 의견을 모은 결과 조용기 목사의 종말론, 계시론, 인간론 등 여러 부분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 놓고 그 다음에는 조용기 목사가 이단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같은 조용기 목사를 두고 장로교단에서 조용기 목사를 오판했다는 것입니까? 조용기 목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것입니까? 만일 조용기 목사가 이단이 아닌데, 장로교단에서 이단시했다면 참된 하나님의 종을 함부로 정죄한 악을 행한 것이며, 그것은 사탄의 역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장로교회 안에는, 어떤 사람이 이단인지 아니지를 제대로 분별할 만한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 생각과 안 맞으면 이단인가?
‘이단’을 분별하고 규정하는 정확한 기준은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이단’은 어떤 교단의 교리나 교세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분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전통있고 유력한 교파라도 성경에서 벗어나면 이단입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목사님이나 저명한 신학박사라도 성경에서 이단이라고 한 그 말씀에 해당된다면 이단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그분이 하신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하신 일과 예수님이 의롭다고 하신 약속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로마서 4장 25절에 분명히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범한 죄값을 지불해 주시려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바 되었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의(義)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의롭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고,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증하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끝이 났고, 예수님의 부활로 사망의 권세가 끝이 났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로마서4:25∼5:1)
우리는 이 사실을 그대로 믿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믿지도 않으면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생명의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마태복음 7:13-15)
이 성경 말씀이 사실이라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더 많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많겠습니까?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3-24)
노아 시대에 온 지구에서 방주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멸망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8명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도 이 세상은 노아 시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1000만 명 가량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
이단에 대한 성경 말씀들
성경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단에 속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떠어떠하게 대하라.”는 분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성경의 어디어디에 ‘이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지 찾아볼까요?
사도행전 24장 5절에 보면,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보고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plague)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ringleader of the sect of the Nazarenes)라”는 말을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보니’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의 삶(사도행전 23장 7-10절에 보면 바리새인도 하나님, 성경, 부활, 천사, 영을 다 믿고 있습니다.)을 버리고 뜨겁게 복음을 전하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하던 유대인들 사이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무리는 복음을 대적하며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로마의 총독 앞에 끌려나와 더둘로라는 유대인으로부터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바울을 비방, 모해했던 그 많은 종교인들(사도행전 24:1)이 이단이었습니다.
진리를 증거하는 참된 하나님의 종 바울이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모함과 핍박을 받았습니다.복음 안에서 복음에 순종하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도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믿음의 사람 다윗도 시편 3편에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시편 3:1)라고 했고, 시편 56편에서는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모해, 참소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믿음과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24:14에서 바울은 “저희(※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하나님을 섬긴다는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나름대로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며, 오랜 전통과 막강한 교세를 가진 사람들이 바울을 볼 때 이단으로 보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울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대적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바울을 대적하고 정죄했던 그들이 오히려 이단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자칭’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하나님의 종들을 모함하고 멸시, 대적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러다가 지금은 뜨거운 지옥 불못에서 울부짖으며 후회하고 있겠지요. 무서운 일입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단의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디도서 3장10절-11절에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① 부패하여서 ② 스스로 정죄(定罪. being self-condemned)한 자로서 ③ 죄를 짓느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의 특징은 첫째 부패(腐敗)했다는 것입니다. 썩었다는 것이지요. 무엇이 썩었다는 겁니까? 목사나 교인들이 타락하여 돈밖에 모르고, 육체의 정욕과 세상 풍속을 좇아 주색잡기에 빠지고, 교회를 사고 팔며 세습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성경에서 부패했다는 것은 그 마음, 즉 심령이 썩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디모데전서6:5)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디모데후서3:8)
그럼 어떤 마음이 부패한 심령이며, 사람의 심령은 어떻게 부패합니까? ‘부패’는 인생들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나뭇잎이 살아 있는 나무에 붙어서 그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고 있는 동안에는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뭇잎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나뭇잎은 마르고 시들고 죽어서 결국 썩게 됩니다. 그렇듯이 인간들이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마음이 떠나면 사망과 부패가 옵니다. 비록 교회를 다니고 있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마음이 말씀에서 떠나 있으면 하나님이 보실 때 다 타락한 것이고, 부패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마음이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죄악의 바람이 불어올 때 그것을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죄악에 몰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이사야 64:6)
냉장고가 전원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음식이 부패되지 않고 보존됩니다. 하지만 냉장고가 전원과 단절되면 그 안에 있는 음식이 다 상해 버립니다. 그처럼 우리 심령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생명의 은혜를 받아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단절되면 사망과 저주 아래 머무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에서 말하는 이단의 두 번째 특징은 ‘스스로 정죄한 자’(being self-condemned-KJV, he is self-condemned-NIV)라는 것입니다. 영어의 ‘condenmed’이란 단어는 ‘유죄를 선고받은, 죄 있다고 하는, 정죄하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은 ‘하나님께서 정죄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정죄하는 자’ 곧 ‘자기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자, 스스로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죄하는 자, 즉 자기가 스스로 자기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자가 왜 이단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골로새서 2:13) 영원히 사해 놓으시고(히브리서 9:12),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과 저주를 친히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가 끝났다(베드로전서 4:1), 결코 정죄함이 없다(로마서 8:1), 의롭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자신을 정죄한다면 그는 자기 판단을 주의 판단 위에 두는 사람입니다. 주의 판결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님보다 자기를 더 옳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그 마음에 죄가 있다면, 그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공로를 부인하는 사람이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사람입니다. 죄인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은혜를 모르고, 그 영원한 속죄의 능력을 부인한 채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 이단이 아니면 누가 이단이겠습니까?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브리서 9:12∼14)
이것이 은혜의 복음인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온전히 치르셨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거늘 어찌하여 아직도 죄가 남아 있단 말입니까?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요한일서 3:5)
여러분은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마음에 죄가 있다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어도 자신의 죄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요한일서 2:2)께서 어찌 그 한 사람의 죄만 씻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2000년 전에 모든 죄를 다 해결해 놓으셨는데도 또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빈다면, 그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을 무효로 만드는 것이며, 예수님을 헛되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판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위치에 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재판장의 위치에 서서는 안 됩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린도전서 4:3, 4)
내가 나를 볼 때 죄인 같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로마서 8:33)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것입니다. 그분은 진실하시고 거짓말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자기 스스로 자신을 정죄한다면 자기가 하나님보다 나은 자입니까? 하나님이 무죄 선고를 내리셨는데, “아닙니다. 그 판결은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게 교만이고, 그게 재판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며, 재판장의 판결에 불복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행위가 의롭게 된 것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흘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아서 의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셨기 때문에 의인인 것입니다. 이단들은 이 은혜의 복음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죄를 짓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7,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36, 37)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은혜와 그것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 마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영원한 속죄(히브리서 9:12)를 불신하는 죄(요한복음16장 9절)를 계속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도서에서는 이단의 세 번째 특징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생각을 품고 사는 것이 바로 죄를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해 주고 그래도 안 들으면 멀리 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베드로후서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멸망케 할 이단(2장 2절)을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하면서 그들은 진리의 도를 훼방한다고 했지요(2절 끝부분). 그러면서 오직 의(義, righteousness)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가족이 구원받은 사실과 의로운 롯이 구원을 받았다고 (6절-8절) 증거하지 않습니까? 멸망케 할 이단"이라 하셨으니 이단의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천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가나?
예수님은 우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진 의(義)는 인간의 의(義) 중에서는 최고의 의를 가리키지요. 그 의로도 천국에 못 들어간다면 결국 인간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의롭게 살아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한평생 의에 이를 수가 없지만, 예수님이 의롭게 해 주시는 은혜를 입어서 의롭게 된 사람은 의롭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흘려졌다면(로마서5:9) 그 귀한 보혈이 우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했겠습니까?
소위 정통
어떤 사람들은 천하보다 귀한 자기 영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가 소속된 교파나 그 교단의 교리를 더 신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세나 교단이 좀 크고, 교단의 역사가 다른 교파보다 좀 길면 자기네들이 ‘정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통이 무엇입니까? 전통(傳統)이 정통(正統)은 아닙니다. 교세가 크다고 정통이 아닙니다. 다수(多數)가 곧 진리는 아닙니다. 어떤 나라에는 천주교도가 많고, 어떤 나라에는 침례교도가 많으며, 어떤 나라에는 장로교인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힘 있게 복음을 전했는데, 지금은 아예 없어진 교회(교파)도 있습니다. 교세가 미미하다가 성장하고 있는 교단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칭 정통교단이라고 일컫는 교단에서 어떤 교단을 이단으로 단죄하다가 이제는 그 주장을 철회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같은 장로교단 안에도 수십 개의 분파가 생겼습니다. 한 종교 안에 기독교처럼 종파가 많이 나뉘어져 있는 종교도 없습니다. 그럼 어떤 종파가 과연 정통입니까? 현존하는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은 16세기에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이후에 생겼습니다. 장로교회는 칼빈 이전에는 없었던 교파이며, 감리교회는 1738년 5월 24일 요한 웨슬레가 거듭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교단입니다. 어디가 정통입니까? 누가 정통입니까? 장로교회의 교리가 정통이라면 장로교회가 생겨나기 전에는 정통이 없었으며, 장로교회 외에는 다 사이비입니까? 영국이나 미국에 가서 장로교회가 정통이라고 해 보십시오. 폴란드에 가서 감리교가 정통이라고 해보십시오. 유럽에 가서 성결교회나 오순절교회가 정통이라고 주장해 보십시오. 다들 웃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마음에 참된 말씀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정통’이 되어 있지, ‘정통’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습니다.
굳이 정통을 이야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통이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정통입니다. 그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정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모르니까,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은 자랑할 게 없습니다. 기껏 자기 학벌이나 세상적인 약력이나 자랑하며, 자기 교단만 정통이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선택과 결정
여러분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는 가르쳐 주지 못하면서 참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오히려 이단으로 정죄하고, 터무니없는 온갖 악한 말로 비방과 불신을 일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단 경계령’이란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진리와 함께한다면 이단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진리가 없으니까 이단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있다면 진지하게 진리를 전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모든 죄를 사함받았습니까? 오늘밤에 이 세상을 떠나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있는 모든 죄는 흰 눈보다 더 희게 씻겼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 편에 서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서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세간(世間)의 소문을 믿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까? 이 중요한 선택이 여러분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제 성경이 말하는 이단이 무엇인지 잘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정직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영혼을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남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말씀에서 분명한 주님의 뜻을 알았다면, 말씀 편에 마음을 정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의 영원하신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이단이란 무엇입니까?|작성자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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