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고전 10:20-21 그리스도인은 제사(추도예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아들 2012. 9. 26. 22:59

 

고전 10:20-21 그리스도인은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민속적인 2대 명절이라 하면 음력설인 정월 초하루와 8월 추석(음 8월 15일)일 것입니다. 설과 추석에는 헤어져 살던 부모님을 뵈옵고 가족끼리 서로 모일 수 있는 기회이고 객지에 살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명절과 직접 연관을 갖는 것이 제사 문제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아니면 고통을 당하는 날이도 합니다.

요즘에 인터넷 상에 제사 문제와 관련하여 뜨거운감자로 떠돌고 있어 마태복음 강해를 뒤로 미루고 제사문제를 다루어보고 믿음안에 바로 서기를 소원합니다.

 

우라나라에서 제사의 역사적인 근거를 살펴봅니다.

1. 제사제도의 역사적 근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관습은 12세기말 중국 송나라 때 주희(주사)가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주희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아 유교 철학을 만들어 냈고. 그의 철학을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라 했으며 서양에서는 신유교라고 했습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관습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몇 개 부족 외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시아권에 35개 나라 가운데 제사 지내는 관습을 가진 나라는 유교 영향권에 있었던 대만, 중국, 일본, 홍콩, 한국 정도입니다.

본래는 부모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고 정치를 잘한 뛰어난 황제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황제가 제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후들도 따라서 조상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도 ‘왕들의 조상만 훌륭하냐? 우리 조상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조상 자랑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13세기 고려말기에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대표적인 학자가 정몽주, 이색 같은 분들인데, 주희의 성리학을 본받아 사당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뛰어난 조상을 자랑하기 위한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습니다.

그 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고려의 불교로부터 국교를 성리학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유교를 조선의 종교로 받아들이면서 조상의 제사를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즉 고구려, 신라, 백제시대나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제사가 없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오히려 하늘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제사제도를 장려한 이유는 정치적인 목적이었습니다. 즉 임금에게 충성할 것을 주장하려니까 먼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말하게 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효도중의 효도라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제사는 한국 것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입니다. 본래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해 오던 전통이 아니고 13세기 이후에 그것도 왕가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강요에 의하여 생겨난 풍속입니다. 인간 본성에 근거한 곳도 아니고 본래 한국 사람들이 해 오던 것도 아닙니다. 단지 유교에서 들어온 풍속을 정착시킨데 불과한 것입니다.

 

2. 성경이 말하는 효도를 살펴봅니다.

출애굽기 20:12에 기록된 십계명 중 5번째 말씀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효도의 근본적인 말씀을 율법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레19:3,‘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말씀합니다.

경외란 무겁다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 가볍게가 아니라 무겁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공경이란 공손히 섬긴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님을 공손히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5:16에도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 6:2-3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장수는 ‘생명이 길리라’, 혹은‘오래 살리라’와 같은 말입니다. 이말씀은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경외와 공경과 효도를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첫째 네 부모를 경외하고 공경하라는 말은 사회질서의 시작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정 질서가 깨어지면 사회질서가 깨어집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자세를 가진 자녀는 사회에 나와서도, 직장에서도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래 사람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농협을 갔습니다. 출입구에 마른여자와 뚱뚱한 어린아이가 서 있습니다. 아이가 과자를 사달라고 합니다. 여자는 안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이가 여자의 뺨을 찰삭하고 소리가 나도록 때립니다. 소리에 돌아보니 여자가 아이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했지 하고 이마에 꿀밤을 주고 마는 것을 보고 저 아이가 지금은 힘이 없어 저정도이지 나중엔 어찌 될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가볍게 하찮게 대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금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 경외와 공경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는 것, 바르게 모시는 것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이것이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에 대한 윤리적인 측면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실동안에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가신 후에는 소용이 없다고 하십니다.

 

다음으로, 공경의 순서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성도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부모님께 복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한다고 하면서 부모님께 복종치 않음은 그는 하나님앞에 복종하는 것이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요일4:20,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사람의 유전은 지키고 신의는 버렸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르반, 부모에게 드려야할 돈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고르반 하면 안드려도 괜찮은 그 행위를 책망한 것입니다. 지금의 예로 말하면 이것은 십일조야 이것 밖에 가진것이 없어 하면 그것으로 끝내고 마는 행위이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3. 부모에게 효도와 제사를 살펴봅니다.

제사드리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별세한 순간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24시간이 지나야 입관을 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장지를 택하여 장례식을 행합니다. 그 다음에 3일만에 산소에 가는 삼오제와 연중에 성묘 가는 것과 기일을 기억하여 안 믿는 사람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이를 성경적으로, 신앙적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에는 별세한 사람에 대하여 교훈을 주는 말씀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개인 개인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불신자는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90:3“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육신은 재림주 예수님이 오실 때 무덤 속에서 그 음성을 들어 다시 일어나는 축복을 받아 변화체로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별세한 사람에 대한 기도나 그를 위한 어떤 행위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가운데 한 번도 장례를 집례하신 일이 없습니다. 죽은 부친을 장사하고 주를 따르게 하소서 할 때 주님은 죽은 자는 죽은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또 성경에는 구체적으로는 죽은자에 대한 제사 이야기는 없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1)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말라(신26:14).

2)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사례가 있으며(시106:28).

3)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라(렘22:10).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라(겔24:17)

4) 성도는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살전4:13).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추도하는 예를 갖추라고 한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말라(신26:14)고 하였고,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사례가 있습니다(시106:28)

 

바울의 권면 고전10장에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전10:21-고전10:28)

 

우상이나 우상의 제물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악령들을 믿는 혹은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기념일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친교를 나눈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추도예배, 혹은 추도식은 어떻게 받아 들여나 하나?

추도예배 혹은 추도식은 엄밀하게 말하면 불필요한 것입니다. 추도식(추모식)기독교에서 예배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쓰는 말이고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뿐인데, 죽은 자를 사모하며 예배한다는 것은 귀시에게 예배하는 행위이고 하나님과 예배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와 예식은 구별됩니다. 예식은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을 줄 필요가 있을 때 교회가 유연성을 발휘하여 제공하는 목양적, 선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추도식'(추도예식)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그리고 추도식은 고인의 유언을 상기하거나, 고인의 살아생전 추억들을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 혹은 후손들을 향한 교훈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고인을 중심으로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는 것은 무엇보다 귀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제사를 추도예배로 처음으로 바꾼 사람은 ‘이무영’이라는 정동 감리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는 70년대 말에 인정 하였다고.<세필드대 제임스 그레이슨 교수(한국명 : 김정현, 감리교 목사) 증언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사,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외에 어떤 것도 예배라는 칭호는 맞지 않습니다. 고인을 생각하고 그날을 기념한다면 추도식이란 말이 더 타당합니다.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면서 교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일이 아름다운일이라 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자손들을 신앙의 교육의 장으로 삼는다면 유익하고 좋은 일일 것입니다. 내일 추석날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고 즐거운 축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하늘산소.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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