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의 자격 및 직무
대제사장(Chief priest, High priest)
성막과 제사의 일을 담당했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고 제사에 관한 제반 사항을 지휘했던 제사장직의 최고위자이다.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히브리어는 대부분 '학코헨 학가돌'(hakkohen haggadol; 위대한 제사장)과 '학코헨 함마쉬아흐'(hakkohen hammashiach;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가 쓰였고 어떤 곳(왕하 25:18; 대하 19:11; 렘 52:24)에서는 '코헨 하로쉬'(kohen haro'sh; the chief priest)가 쓰였는데, 개역성경은 모두 대제사장으로 번역했다. 신약에서는 '아르키에류스'(archiereus; 단수)와 '아르키에레이스'(archiereis; 복수)가 쓰였는데, 단수로 쓰일 때는 현직 대제사장(신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제사장은 안나스의 사위 가야바로서, 그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인물이다)을 가리키거나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을 가리킨다(가야바- 마 26:57; 요 18:13; 안나스- 눅 3:2; 요 18:24; 행 4:6; 아나니아-행 23:2; 24:1). 복수로 '대제사장들'이라고 쓰일 경우는 공회를 구성하는 대제사장 가문들, 저명한 대제사장의 문중들과 함께 다스리는 대제사장들과 과거의 대제사장들을 포함한다(행 4:6). 여기에 성전을 관리하던 책임자들과 경비 대장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반대하는 종교적 권위를 지닌 집단으로서 언급되며, 개인적으로는 언급되지 않고 공회의 다른 관원들(눅 23:13; 24:20)과 서기관들(마 2:4; 20:18; 21:15)과 서기관들 및 장로들(마 16:21; 27:41; 막 8:31; 11:27; 14:43, 53; 눅 9:22)과 장로들(마 21:23; 26:3)과 함께 등장한다.
대제사장은 아론으로부터 엘르아살로 계승되었으며(민 20:23-29; 27:18-23), 그 이후부터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장자에게만 계승된 종신직이었다(민 25:10-13).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그 성격이 변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헤롯 및 로마 정부에 의해 임의대로 임명되기도 했다.
대제사장의 임무와 규례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에 세움을 받은 자(히 5:1)로서 일차적으로 매일 소제를 드리는 일과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레 16:2, 11, 14, 34; 히 9:7; 10:3).
특별히 일 년에 한 번(7월 10일)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속죄일'(Yom kiphur; 욤 키푸르)은 대제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였다(레 16장; 히 9:7; 10:3). 대제사장이 세마포 옷을 입고 단독으로 속죄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권속(참고 - 가족)들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는데 그러기에 앞서 대제사장은 번제단에 있는 숯을 향로에 가득 담고, 지성소 안에 들어간 준비된 향료를 분향하여 법궤 위 속죄소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였다(레 16:11-13). 대제사장은 다시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먼저 속죄소 동편(입구편)에 손가락으로 그 피를 뿌리고, 또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렸다(레 16:14). 첫 번째 피를 뿌린 것은 지성소를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일곱 번 뿌린 것은 대제사장 자신의 속죄를 위해 뿌린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한 두 번째 제사에는 두 마리의 염소가 드려졌다(레 16:6-10). 제비를 뽑아 그 중 한 염소는 잡아서 세 번째로 지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수송아지처럼 속죄소 위와 아래에 뿌렸으며, 다른 한 염소는 대제사장이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 후 광야로 내보냈는데(레 16:21-22), 이를 '아사셀 염소'라고 불렀다. 이때 비로소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를 벗고 나와서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번제를 올렸다(레 16:23-24). 대속죄일에는 특이하게도 위엄스런 본래의 대제사장 복장이 아니라 단순한 세마포 옷을 입고 이 예식을 거행했는데, 이는 죄에 대한 겸손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음.)
속죄일(Day of Atonement)
일 년에 한 번 하나님께 대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날로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티쉬리 월-태양력으로 9-10월경) 10일을 말한다(레 16:30, 33-34; 23:27).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속죄 제물을 위한 숫염소 둘과 번제를 위한 숫양 하나를 취하고 대제사장 자신과 그의 가족을 위한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와 번제를 드릴 숫양을 취하여 취하여 회막에 나아갔다(레 16:3, 5-6). 대제사장은 그와 그의 가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렸는데(레 16:6), 수송아지 피를 지성소 속죄소 동편에 손가락으로 뿌리고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려 속죄하였다(레 16:14). 그리고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려 백성의 죄를 대속하였다(레 16:15-16). 하나님은 바로 속죄소에서 모든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해 나온 대제사장을 만나 주셨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해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려 피흘려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히 7:26; 9:12; 10:10).
한편 속죄 제물로 쓰인 두 마리 염소 중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광야로 보내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였는데(레 16:10) 이것은 백성의 죄를 진 밖으로 내보냄을 교훈하는 강력한 시각 교재였다. 광야로 내보낸 속죄 염소에 대해 신약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속죄 염소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생각하고 있다. 속죄 염소가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로 나가 죽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번제단에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뿌려 번제단을 정하게 하였고(레 16:18-19) 속죄 제물로 드려진 동물의 가죽과 고기, 배설물 등은 진 밖에서 불태워졌다(레 16:23-27). 속죄일은 큰 안식일로 지켜졌다(레 16:31). 이스라엘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되었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날로 지켜야 했다(레 16:29).
속죄일에 대제사장의 개인적인 준비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과 고의를 입고 세마포 띠를 허리에 두르고 머리에는 세마포로 된 관을 썼다(레 16:4). 이 날 대제사장이 입는 것은 모두 세마포로 만든 것으로 평소보다 덜 화려하고 수수한 복장이었다.
대제사장의 고유한 복장은 아름다운 색상의 옷감에 화려한 자수,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것이었지만(출 28장), 속죄일에 입는 복장은 마치 노예가 입는 것과 같았다. 속죄일에 입는 대제사장의 옷은 왕 중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종의 모습을 보여 준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속죄일
속죄일에 관한 내용은 히브리서 특히 히브리서 9장에 나온다. 히브리서 기자는 속죄일에 행하는 의식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말하고 있다. 최초의 성 금요일은 인간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제거되는 최종적인 속죄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일에 이루고자 하였던 속죄를 완전히 성취하셨던 것이다(히 9:12).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이후에는 모든 성도들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10:19-20).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점
히브리서는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유사점을 '이와 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히 5:5). 우선 신분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되는 존귀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영광도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히 5:4-5). 히브리서 기자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와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는 두 개의 시편으로 입증한다. 또한 성품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히 5:2) 같이, 예수님께서도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시다(히 4:15).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는 것'(히 5:2)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로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히 5:7)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1. 죄(罪)의 문제이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렸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레 16:11; 히 5:3).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로서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이었다(히 5:1-2).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히 4:15) 자기 자신을 위해 속죄할 필요가 없으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2. 대제사장의 반복적인 제사의 문제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으로 설명된다. 우선 대제사장의 제사의 반복은 대제사장의 수효와 관련이 있다. 대제사장의 숫자는 아론 이후로 많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죽음으로 인하여 항상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히 7:23).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히 6:20; 7:21). 예수님은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한다(히 7:24). 또한 대제사장의 반복은 대속죄일의 시효와 관련이 있다. 대제사장은 매년 다른 것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만 했다(히 9:25). 그러나 예수님의 제사는 자기를 단번에 드린 단회적인 것이며(히 9:26; 히 10:10), 이 때문에 '영원한 제사'(히 10:12)라고 부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의 종말론적인 성격과 영원한 성격이 결합된다(히 1:2).
3. 대제사장의 반차 문제이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만(히 5:4)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다(히 5:6, 10; 6:20).
히브리서 기자는 6-7장에 걸쳐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임을 집요하게 입증한 후, 어떻게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큰 대제사장인지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멜기세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히 7:1-3). 둘째, 아론(또는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멜기세덱과의 관계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예물을 드렸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는데(창 14:18-20; 히 7:4-10), 낮은 자가 예물을 드리고 높은 자가 축복을 하는 법이다. 셋째, 멜기세덱의 시간적인 우선성 때문이다. 멜기세덱은 레위(또는 아론)보다 훨씬 먼저 활동했다(히 7:5, 10). 넷째, 대제사장의 조건 때문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은 맹세 없이 되었으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은 맹세로 되었다(히 7:11-28). 아론의 반차에서 나오는 대제사장들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히 7:16상)을 따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에서 나오신 그리스도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히 7:16하)을 따르신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자는 율법의 계명으로 된 대제사장이요 후자는 맹세의 말씀으로 된 대제사장이다(히 7:28).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4. 대제사장의 기능의 문제이다. 먼저 대제사장이 섬기는 공간은 땅에 있는 성소이지만 예수님이 섬기시는 공간은 하늘에서이다.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히 8:1-2). 이 장막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히 8:2).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섬기신다(히 9:11; 참고, 9:24).
5.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있어 제물의 피가 중요하다는 점은 공통적이나 종류가 다르다. 대제사장은 속죄를 위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사용하지만(히 9:12-13, 19; 10:4)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피로 속죄를 이루신다(히 9:12, 14). 염소와 송아지의 피는 온전한 속죄를 이루지 못하지만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예수님의 피는 진정한 속죄를 이룬다(히 9:14).
<비전성경사전>(사단법인 두란노)
- 편찬/하용조 목사 -
대제사장의 자격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람이며, 죄를 위해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아야 했다. 성경에 나오는 아론과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론 |
예수님 |
레위 족속 중에서 뽑혀 하나님께 임명받았다. |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셨다. |
여러 번의 제사를 드렸다. |
단 한 번의 제사를 드렸다.(참고 - 모든 시대를 위한 한 번의 제사) |
자신이 죄인이었다. |
죄가 없으신 분이었다. |
일시적 도움을 주었다. |
단번에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
<(신약)새한글비전성경 (두란노 새한글판)>(도서출판 두란노)
<비전성경 (한글개역판)>(도서출판 두란노) - 편찬 / 하용조(온누리교회 담임) 목사 -
<큰 글자로 만든 비전 성경>(도서출판 두란노) - 편찬 하용조 목사 -
※ 제사장(Priest) ※
제사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을 했다. 히브리어로는 '코헨'(kohen)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이외에 애굽의 제사장(창 41:45; 47:26), 블레셋의 제사장(삼상 6:2), 다곤의 제사장(삼상 5:5), 바알의 제사장(왕하 10:19), 그모스의 제사장(렘 48:7), 아세라와 바알의 제사장(대하 34:5)에게도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제사장의 모습은 성경 시대 초기에 자신을 위해 제사드렸던 아담, 가인, 아벨, 노아, 아브람 등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이 외에도 가족을 위한 제사장으로 일했던 가장들(출 12:3), 국가를 위해 제사장으로 뽑혔던 아론 자손 제사장,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제사장이셨던 예수님(히 3:1)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믿는 모든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본다(벧전 2:9).
제사장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고 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가 되어 제사를 집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본을 보였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제사장 직분을 존속시킴을 통해 이어졌다.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출 34:19-20; 민 18:15; 신 15:19), 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들을 주관했던 아론 자손 제사장,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출 28:29) 등으로 나뉜다.
제사장의 임무
제사장은 아론 지파에 속한 사람만 될 수 있었으며(출 28:1; 레 1:5, 7-8) 육체적인 흠이 없어야 했다(레 21:16-23). 제사장들은 다윗 때에 24반으로 나뉘어 일주일씩 봉사하고 안식일 저녁에 다음 번과 교대했으며(대상 24:1-19), 큰 절기 때에는 모든 제사장들이 함께 봉사했다. 이들 24개 가문 중 16개는 사독 가문, 8개의 가문은 이다말의 가문이었다(대상 24:1-19).
제사장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성소나 제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담당하는 것이었다(민 16:40). 그들은 매일의 희생 제사를 주관했고(민 28:3-8)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대하 15:3; 겔 7:26) 하나님의 뜻을 묻고(출 28:30) 문둥병자를 가려내는 일(레 14:2)도 했다. 재판관의 역할도 하여(신 17:8-9; 대하 19:8-11) 간음한 여인을 검증했고(민 5:11-31), 나실인의 정결 제물(민 6:1-21)이나 서원제(레 27:8-25) 등을 드리는 것에도 관여했다.
또한 제사장들은 축제일이나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기도 했다(민 6:22-27).
제사장의 재산들
제사장의 재산 목록 1호는 하나님이었다(민 18:20). 하나님이 이들의 분깃이자 기업이었던 것이다. 이 외에 제사장들은 첫째로, 첫 아들과 짐승의 첫 새끼, 첫 수확물 대신 바친 돈(출 22:29; 민 18:15-16), 둘째로, 제사 때의 희생 제물 즉 제사 때의 요제물, 거제물(민 18:8, 11, 19), 소제물의 남은 것(레 2:3), 셋째로, 레위인이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일부(민 18:26-28) 등을 받았다. 또한 48개의 레위인의 성읍 중에서 13개가 제사장들에게 주어졌다(수 21:4, 13-19).
※ 레위인(Levites) ※
일반적으로는 레위의 아들인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들을 이르는 말(출 6:25; 레 25:32; 수 21:3, 41)로 제사장과 제사장을 도와 성막(성전)에서 봉사의 일을 하는 모든 레위 후손들을 말한다(민 8:19, 22). 이런 의미에서 레위인과 제사장은 종종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대하 20:14; 31:12, 14). 좁게는 아론과 그의 자손으로 구성된 제사장 계급을 제외한 레위 후손들만을 말한다(민 8:6-26).
레위인의 역할과 의무
모세 시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일하게 한 레위인의 성막봉사의 일은 게르손, 고핫, 므라리 세 계열로 나뉘어졌다. 이들의 역할은 계급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기능의 차이였다. 이들을 통할하며 지도한 사람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었다(민 3:32).
● 게르손 사람들: 성막, 장막의 덮개, 회막 문장, 뜰의 휘장과 문장, 모든 것에 쓰는 줄들 등 회막에 쓰이는 장막류를 수레를 사용하여 옮기는 일을 하였다(민 3:25-26; 4:22-28; 7:7-8). 이들에게는 수레 둘과 소 네 마리가 주어졌다(민 7:7). 이들에 속한 사람은 7,500명이었으나 실제로 성막 봉사에 참여할 만한 사람은 2,630명이었다(민 3:22; 4:40).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지도하며 감독하는 사람은 엘리아삽(민 3:24)과 이다말이었다(민 7:8).
● 고핫 사람들: 증거궤와 진설병의 상과 등대, 번제와 분향하는 제단들, 봉사하는 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 등 성막 안의 모든 지성물을 메어 나르는 일을 하였다(민 3:27-32; 4:2-15). 그들의 수효는 8,300명이었으나 실제로 성막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2,750명이었다(민 4:36). 이 모든 일을 지도하며 감독하는 사람은 엘리사반이었다(민 3:30).
● 므라리 사람들: 성막의 기둥들과 받침들, 줄들, 말뚝들, 띠들을 옮기는 일을 맡았고(민 3:36-37) 성막을 세우며 걷는 일을 하였다. 그들이 옮겨야 할 것들이 무거워 수레 4개와 소 8마리가 이들에게 주어졌다(민 7:8). 이들의 지도자는 수리엘이었고(민 3:35) 이다말은 이들을 감독하는 사람이었다(민 7:8).
다윗 시대-솔로몬 시대: 30세 이상의 남자 레위인은 3만 8천명이었다. 그 중 2만 4천명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도와 제사 업무에 종사하였고 6,000명은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유사와 종교 문제를 판결하는 재판관으로, 4,000명은 문지기로, 4,000명은 성가대로 봉사하였다. 성전에서 봉사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은 24반열로 나누어 일 년에 두 달씩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다(대상 23:6-23). 이들이 성전에서 하는 일은 제사장을 도와 제사 드리며 성물을 정결하게 하고 보관하며 진설병과 소제물을 만들고 성소에서 사용하는 저울이나 자를 관리하는 것이었다(대상 23:28-32). 또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성전을 지키는 일을 하였다(대상 25-26장). 다윗 때는 이런 성전 봉사의 일을 20세부터 시작하였다(대상 23:27).
분열왕국 시대
● 여로보암 때: 여로보암의 우상 정책에 반대하여 북이스라엘 레위인들은 남유다로 내려왔다(대하 11:13-15).
● 여호사밧 때: 하나님의 일을 하며 예루살렘 사람들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는 일을 하였다(대하 19:8-10).
● 요아스 때: 성전을 재건할 때 성전 수리에 필요한 돈을 거두는 일을 하였다(대하 24:5-7).
● 히스기야 때: 히스기야는 레위인의 반차를 정하고 그 직임을 수행하도록 하였다(대하 31:2). 이들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여 성전 정화 작업을 하였다(대하 29:12-19). 제사 드리는 여러 일을 수종드는 것과 아하스 시대에 중단되었던 십일조도 다시 받았다(대하 31:2-7).
● 요시야 때: 요시야의 명을 좇아 유월절 의식을 수행하였다(대하 35:1-19).
포로 시대 이후: 포로지에서 귀환한 레위인들은 반열을 좇아 성전의 문을 열고 문을 지키는 일, 제사에 쓰이는 기명을 맡고 진설하는 떡을 만드는 일, 찬양하는 일을 다시 하였다(대상 9:14-34). 포로 귀환 후 장막절을 지킬 때 율법 교사와 해석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느 8:7-8).
신약 시대: 신약성경에는 레위인의 역할과 모습에 대해 특별한 기록은 없다. 단지 예수님이 이웃 사랑의 교훈을 하실 때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마리아 사람을 피하여 간 레위인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눅 10:32). 자기의 밭을 팔아 교회 앞에 내어 놓은 바나바는 레위인이었다(행 4:36).
레위인의 자격과 연령
레위인의 자격은 혈통으로 상속되었다. 레위인들이 봉사하는 기간은 25-50세까지였다(민 8:24-25). 다른 곳에서는 30세부터 봉사의 일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민 4:3-49). 이 둘 사이의 기록에 대해 필사자의 오류라는 견해도 있지만 25세부터 30세 전까지는 견습생으로 일했다고 보기도 한다. 다윗 시대(대상 23:24)와 히스기야 시대(대하 31:17), 포로 귀환 시대(스 3:8)에는 20세 이상부터 봉사의 일을 시작하였다.
레위인의 기업
가나안 정복 후 48개 성읍과 사면의 들(민 35:1-8), 각 지파에서 드린 십일조를 분배받았다(민 18:20-25). 48개 성읍 중 13개 성읍은 제사장 소유였고(수 21:4) 6개는 도피성이었다(민 35:9-34; 신 4:41-43).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고 이같이 열두 지파 내에 흩어 놓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셨으며(민 8:14-19)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지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신 33:10). 6개의 도피성은 율법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만들었다(신 19:1-3:7-10, 17).
번호 |
대제사장 |
제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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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
관련 성구 |
하는 일 |
관련 성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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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흉패, 에봇, 겉옷, 반포 속옷, 관, 띠 등을 입고 사역함 |
출 28:4 29:5 |
속옷, 관, 띠 등만을 입고 사역함 |
출 28:40 29:8, 9 |
2 |
관유를 머리에 부음 받음 |
출 29:7 레 8:12 |
대제사장과 함께 관유와 피를 자신들의 옷에 뿌림 받음, |
레 8:30 |
3 |
1년에 한 번씩 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 백성들을 위해 속죄함. |
레 16: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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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골육지친(骨肉之親)은 물론 부모의 시체로도 몸을 더럽힐 수가 없음 |
레 21;11, 12 |
골육지친 및 부모의 시체에는 가까이 갈 수 있음. |
레 21:2,3 |
5 |
과부, 이혼당한 여인, 더러운 여인, 기생 등을 아내로 취할 수가 없고, 이스라엘 중에서 처녀를 취해야 함. |
레 21: 13,14 |
기생, 부정한 여인, 이혼 당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지 못함. |
레 21:7 |
6 |
회막 안의 등잔불을 정리(간검)함. |
레 24: 3,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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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아침마다 분향단의 향을 사름. |
출 30:7,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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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 상에 떡을 진설함, |
레 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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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계수 함. |
민 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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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레위인의 성결의식을 집전함. |
민 8: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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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지도자를 위해 여호와의 계시를 받고 보여 줌. |
민 28:18-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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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왕에게 위임 기름을 부음. |
왕상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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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종합주석 레위기 21장 p 764 에서 옮김
대제사장의 직무
“백성을 위한 속죄제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와서, 그가 수송아지의 피로 했던 것과 같이 자비석 위와 자비석 앞에 그것을 뿌릴지니 이스라엘 자손의 불결함과 그들의 모든 죄들 가운데 있는 그들의 죄과로 인하여 성소를 위해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불결함 가운데 그들 사이에 남아 있는 회중의 성막을 위하여도 그렇게 행할지니라”(킹성성 16:15-16).
“그가 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신과 자기의 가족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올 때까지 회중의 성막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것이며 그가 주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아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제단 주위의 뿔들에 바르고 그 위에 그 피를 손가락으로 일곱 번 뿌려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불결함에서 제단을 거룩하게 할지니라”(킹성경 레 16:17-19).
“그가 성소와 회중의 성막과 제단에 화해하게 하는 것을 마치고 나서, 살아 있는 염소를 가져올지니 아론은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악과 그들의 죄들 가운데 있는 모든 죄과를 고백하고, 그 죄들을 그 염소의 머리에 얹어서 적합한 사람의 손에 의해 광야로 보낼 것이요 그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이르면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아 줄지니라”(킹성경 레 16:20-22).
제사장들을 세우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피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세가 만든 회막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양분되었는데 제사장들은 첫째 장막 성소에서 직무를 행하였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일을 하였다(히 9:6-10). 이는 단번에 제사가 이루어졌다(히 9:10-12).
(1) 대제사장은 둘째 장막에 들어가 속죄를 구했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 9:7).
◎ 대제사장의 직무
① |
레 16:34 |
속죄를 위해 일년 일차씩 지성소 들어감 |
② |
출 30:10 |
아론은 피로써 일년 일차씩 속죄를 드림 |
③ |
눅 1:9-10 |
제사장들이 성소 안의 향단에 분향함 |
④ |
레 24:2-3 |
제사장들이 성소 안의 등불을 간검함 |
⑤ |
레 24:8 |
제사장들이 성소 안의 진설병을 진설함 |
⑥ |
레 1:6-9 |
제사장들이 놋제단에서 제사를 집행함 |
3. 제사장들의 자격과 의무
“너는 다른 수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수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수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 부리와 그 아들들의 오른 귓 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단 위의 피와 관유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출 29:19-21).
“또 너는 그 수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우편 넙적 다리를 취하라 이는 위임식의 수양이며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덩이와 기름 바른 과자 하나와 전병 하나를 취하고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를 삼을지며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출 29:22-25).
대제사장은 만민 중에서 구별 받고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씨 중 이스마엘의 씨에서 나지 아니하고 이삭의 씨에서 출생하고, 에서의 계통에서 나지 아니하고 야곱의 씨에서 출생하며, 야곱의 열두 지파 중에서도 특히 레위 지파를 택하였으며 그 중에도 아론을 선택하여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
이같이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무나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론의 씨로 출생하여 자격을 갖출 때에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막 안 성소와 제단에서 직무를 행하였다.
(1) 대제사장의 씨로 출생해야 한다.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라”(출 28:40-41)고 하였으니, 아론의 씨로 출생했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은 절대로 제사장이 될 수가 없었다.
◎ 제사장들의 직무
① |
출 28:1 |
아론과 그 아들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장 직분을 행함 |
② |
출 29:4-9 |
아론의 아들들이 물로 몸을 씻고 제사장 예복을 입고 직분을 행함 |
③ |
레 1:5-9 |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피를 뿌리고 제사를 집행함 |
(2) 제사장 의복을 입고 직무를 행하였다. “그들이 또 직조한 가는 베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짓고 세마포로 두건을 짓고 세마포로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실로 짜서 세마포 고의들을 만들고 가는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놓아 띠를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출 39:27-29, 4-9).
◎ 제사장의 거룩한 옷
① |
출 28:43 |
제사장의 옷을 입어야 죽지 않고 제 사 직무를 행할 수 있었음 |
② |
히 9:6 눅 1:9-10 |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 에 들어가 분향함 |
(3) 피 없이는 제사(피 뿌리는 의식)를 드리지 못하였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라”(레 1:4-5).
◎ 제사장들에 의해 피 뿌리는 의식
① |
레 1:5, 11, 2:8 |
놋제단 사면(동서남북)에 피를 뿌림 |
② |
레 4:18, 25, 30 |
놋제단 사면(동서남북)의 뿔에 바름 |
③ |
레 1:15, 4:7, 30 |
남은 피는 단(놋제단) 밑에 쏟음 |
④ |
레 4:4-6, 17 |
성막(회막) 앞에 일곱 번 뿌림 |
⑤ |
레 4:7, 16:18-19 |
성막 안의 향단 뿔(네 뿔)에 바름 |
⑥ |
레 16:14, 15 |
법궤 앞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림 |
⑦ |
레 16:15-17 |
법궤 앞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림 |
⑧ |
레 8:23-24 |
제사장들의 오른손, 발 엄지에 바름 |
⑨ |
레 8:30-31 |
제사장들의 의복에 피를 뿌림 |
⑩ |
히 9:21-22 |
성막에서 쓰는 단과 그릇에 뿌림 |
⑪ |
출 24:6-8 |
피를 반은 단에, 반은 백성에게 뿌림 |
⑫ |
출 12:4-7 |
가족수대로 양 피를 문설주에 바름 |
(4) 제사장들은 율법대로 직무를 행하였다.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19-22).
◎ 제사장들의 성막에서의 직무
① |
레 8:14 |
아론의 아들들이 제물 머리에 안수함 |
② |
레 8:18-21 |
제사장들은 안수하고 모세를 도와줌 |
③ |
출 29:10-11 |
제물은 회막 앞에서 안수하고 잡음 |
④ |
출 29:15-16 |
제물에 안수하고 잡으라 명하심 |
⑤ |
대하 29:34 |
제사장이 부족할 때 레위인이 도와줌 |
(5) 제사장들은 제단에 속한(제물) 식물을 먹고 생활하였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14). 율법이 명한 대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감 같이(히 9:7)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들의 죄를 위해 하늘나라 지성소에 들어가셨다(히 7:12-16, 27-28, 8:5, 7, 9:23-25, 9, 10:1).
◎ 제사장들의 식생활
① |
출 29:28 |
화목제의 희생물 중에서 거제물은 아론 의 자손에게 돌릴지라 하심 |
② |
고전 10:16-18 |
주는 하나요 우리는 한 몸이니 주의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됨 |
③ |
고전 9:8-11 |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고 일한 대로 축 복을 주심 |
대제사장과 목사
감히 기름 부음 받은 주의 종을 대적하다니
송인규 교수의 '쉽지 않은 주제, 풀어야 할 숙제' - 제사장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교회에서 목사를 가리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이라 부르는 소리를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부흥회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초청 강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호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다.
또 본 교회의 목사들도 자신의 권위가 도전을 받든지 일사불란했던 위계질서가 삐거덕거린다 싶으면, “감히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을 대적하느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규정하곤 했다.
부흥 강사건 해당 교회의 목사건 결국 주장하는 바는 동일하다.
즉 그들은 구약에 흔히 등장하는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은 구약의 제사장 계층에 해당 되고, 일반 교우들은 평범한 백성과 같다는 것이다.
비록 오늘날 목회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을 이렇게 명시적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밝히지는 않지만, 근본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같은 계층의 사람들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예’와 ‘아니오’ 두 가지다.
말씀(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적(종교적)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측면에서는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연속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일반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조차 다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자신들만이 제사·축복·중보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도 안 된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나누어지는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이나 제사?축복?중보 기도의 기능 때문이 아니요,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지도력을 행사하는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치고 지도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목회자’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가리켜 ‘평신도’라고 부를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보유하고 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축복·중보기도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는 목회자나 평신도가 동등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물론 앞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해 전혀 답변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 당시 주창한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이론이 부분적으로는 이미 상기한 질문에 답변을 제시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인 제사장 이론만으로는 상기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목회자와 구약의 제사장 사이에는 과연 어떤 함수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인가?
구약 시대 : 인간 중보자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 어떤 인물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으로 ‘인간 중보자’라는 개념부터 설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다스리심-소위 신정 통치(神政統治, theocracy)라고 한다-에 있어 인간 지도자들을 활용하시기로 정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서서 맡겨진 종교적?정치적?군사적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인간 중보자(human mediators)라고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로서 모세를 들 수 있다.
성경(갈 3:19~20, 신 5:5)에 의하면 두 가지 사실이 명료히 드러난다.
(i)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해 있는 존재이다.
(ii)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전달함에 있어 인간 중보자(이 경우에는 모세)를 활용하셨다.
그런데 모세는 인간 중보자로서 율법뿐이 아니요 궁극적으로는 언약에 있어서도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예수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인 것(히 8:5~6)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옛 언약의 중보자(출 24:3~8)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 시대 인간 중보자는 모세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은 제사장들이 모두 인간 중보자였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히 5:1, 4)
제사장이 인간 중보자라고 할 때 세 가지 사항이 포함된다.
(i) 그는 자기 스스로가 아니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그러한 신분을 갖추게 된다.
(ii) 그는 하나님께 속한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은 것이다.
(iii) 그는 사람 가운데서 선택을 받아 사람을 위하여 일한다.
이렇게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하여 하나님께로 받은바 소임을 다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제사장이 되면서부터 비(非)제사장 계층과 다른 독특한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아예 신분에 있어서조차 일반 백성과 구별이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기능의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 그는 기름 부음을 받았다. (출 28:41), (민 3:3)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성별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름 받음을 받는 일은 제사장 계층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왕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삼상 15:1), (삼하 5:3), (왕상 1:39)
또 선지자들 역시 사명자로 나섬에 있어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주-1).
이렇게 본다면 결국 구약에는 제사장·왕·선지자 그룹이 기름 부음을 받은 이들(히브리어로는 ‘마시아흐’로써 여기에서 메시야(messiah)라는 단어가 생겼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께 성별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감당했는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인간 중보자로 자리매김을 함으로서 기능에 있어서 뿐 아니라 신분에 있어서도 일반 백성과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세 그룹 모두가 인간 중보자에 해당하지만, 이 글에서는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구약 시대 : 제사장과 일반 백성과의 차이점
위에서 언급했듯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일반 백성과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에 있어서 일반 백성과 달랐다.
제사장의 효시인 아론은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에 의해 제사장이 되었고(히 5:4), 그 이후에는 세습에 의해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구약 시대에 제사장이 되려면 레위 지파에 소속되어 있어야 했고 레위 지파 가운데에서도 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나야만 했다. (출 40:15)
이처럼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제사장은 아예 신분에 있어서조차 일반 백성과 차이가 나는 것이었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은 것”(왕상 12:31)은 그 근본부터가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둘째, 제사장들은 직분을 수행하는 기능의 면에서 일반 백성과 달랐다.
즉 일반 백성으로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사장 고유의 기능이었는가?
다섯 가지 사항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린다는 독특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레 4:20), (민 15:25)
제사장들이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죄를 누릴 수가 있었다.
② 제사장들에게는 백성을 축복하는 기능이 있었다. (민 6:23~24), (삼상 2:20)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집합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축복할 때, 축복의 대상들은 실제적으로 그 복의 내용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향유할 수 있었다.
③ 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린다는 고유의 기능이 있었다. (삼상 7:9), (시 99:6)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을 포함하여 인간 중보자들만이 백성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주-2) (물론 자기 자신을 위한 개인 기도는 누구든 가능했다.) 또 이런 중보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④ 제사장들은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신 33:8, 10), (스 7:10~11)
제사장은 백성에게 율법의 내용을 가르치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에스라는 포로 귀환 후 이 책임에 착념했던 것이다.
⑤ 제사장들은 백성에 대해 종교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기능이 있었다. (삼상 7:3), (스 8:15)
제사장들은 유사시에 백성의 지도자로서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나 제사장을 포함하여 구약 시대의 인간 중보자들은 머지않아 쇠퇴를 맞게 된다.
제사장들 그룹만 하더라도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부터 율법을 범했고(겔 22:26), 포로 귀환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에 거치게 만들었다(말 2:7~8).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참된 중보자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셨고(겔 22:30), 결국 스스로 대책을 강구하셨다(사 59:16).
이제는 인간 중보자의 완성이신 진정한 메시야 -기름 부음 받은 자 (시 2:2)-가 요청되었다.
그는 왕이시고, 선지자이신 동시에 제사장이시기도 할 것이었다.
신약 시대 : 만인제사장론의 요체
신약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사 제도에는 총체적인 변화가 찾아 왔다.
다음 구절을 보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으로서 롬 12:1을 읽기 때문에 이 구절의 의미심장함을 너무도 빈번히 놓치고 만다.
만일 구약 식의 제사 제도에 인이 박인 유대인이 이 구절을 접하게 되었다면 그는 아마도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그가 경악한 이유는 최소 세 가지 사항에서 찾을 수 있다.
① 이방인을 향하여 제사를 드리라(제사장이 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을 향하여 제사를 드리라고 했으니 정통 유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살펴보았듯, 제사를 드리는 일은 유대인 가운데에서도 레위 지파에게, 또 레위 지파 가운데에서도 아론의 자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요 사명이었다.
그런데 아론의 자손은커녕 유대인도 아닌 이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니 이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② 제물이 바로 자기의 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에는 제물이 주로 소나 양 등 짐승이었다.
그런데 롬 12:1에서는 ‘너희 몸’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③ 제물과 제사장이 한 개인 안에서 통합되기 때문이다.
역시 구약 시대에는 제물과 제사장이 존재론적으로 일치될 수가 없었다.
제물은 제물[짐승]이고 제사장은 제사장[인간]이었다.
이것은 별개 제물(other-sacrifice)로서 구약 제사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물과 제사장이 한 개인에게서 통합되고 있으니 (즉 동일 제물(self-sacrifice)이라는 것) 참으로 경이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사 제도에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찾아 왔단 말인가?
한 마디로 답하자면,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런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고 만인제사장론의 요체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메시아 중의 메시아요, 구약 시대 인간 중보자들(제사장, 왕, 선지자)의 완성으로 오셨다.
따라서 그는 우리의 참되고 진정한 제사장이시기도 한 것이다.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왜, 그는 제사장으로 오셔야 했는가?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는 구약 제사 제도를 보완하시고 완성하시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두 가지 면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① 우선 제사장이 자꾸 죽고 갈리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직분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히 7:l1), (히 7:23), (히 7:27, 28)
이처럼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야 했고, 그 때마다 제사장이 수시로 갈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아 제사 제도가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② 뿐만 아니라 제물 또한 문제였다. 근본적으로 범죄의 주체자는 인간인데(창 2:17) 어떻게 짐승이 대신 형벌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히 10:1, 3~4)
비록 짐승 제사가 일시적으로는 사죄의 방편 노릇을 했지만, 그것은 피상적 수준의 영향만 발휘했을 뿐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가 제사장과 제물 각각의 요소에 있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제사 제도의 두 요소가 제사장과 제물임을 고려할 때)제사 제도 자체가 온전히 혁신되어야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이런 차제에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이다. (시 110:4), (히 6:20)
이처럼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는 구약 제사에 있어 제사장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히 7:24~25)
또 동시에 그가 온전한 인간으로서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제물의 약점 또한 개선할 수 있었다. (히 2:14), (히 10:10)
그가 이처럼 구약의 제사 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또 그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제사 제도가 종언을 고했다는 증거는 그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지성소로 통하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두 동강이가 난 사건에 반영되어 있다.
예수님이 제사장으로 오신 결과
이상의 내용에 의거하건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으로 오셨을 때 그로 말미암아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① 예수께서는 유다 지파에 속해 있어서 아론의 후손이 아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셨다 (히 7:14~15)
② 예수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 (히 7:27; 9:12, 25~26; 10:10, 12)
③ 그는 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제물이 되심으로서(히 7:24~27; 9:11~12, 24~27; 10:10~12, 19~21) 제사장과 제물이 한 개인에게서 통합되도록 하셨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항목은 바로 롬 12:1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이점들이었다.
즉 ①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셨으므로 우리도 제사장이 되었고,
② 그리스도께서 제물이셨으므로 우리도 제물이 되었으며,
③ 그리스도 개인에게서 제사장과 제물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우리 개인에게서도 제사장과 제물이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때문에 이와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허락 받은 셈이다.
우리는 본래 제사장도 제물도 될 수 없었지만 (더구나 우리 자신에게서 제사장과 제물의 역할이 통합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와 연합한 바가 되었고, (cf. 롬 6:3~6)
이 신비로운 연합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되심, 제물 되심, 제사장과 제물이 한 개인에게서 통합되심과 같은 사항들이 우리에게서도 똑같이 재현되도록 유익을 끼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복음의 유익의 내용으로부터 만인제사장 교리가 발원한 것이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오늘날의 목회자
앞에서 필자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 신분 및 기능에 있어서 일반 백성과 차이가 남을 설명했다.
제사장의 남다른 기능은 다섯 가지로서 ① 속죄 제사를 드림,
② 백성을 축복함,
③ 중보 기도를 함,
④ 율법을 가르침,
⑤ 종교적 리더십을 발휘함이었다.
예수께서도 제사장으로서 오셔서
① 제사를 드렸고 (히 7:24~27; 9:11~15, 24~27; 10:10~12),
② 사람들을 축복하셨으며 (막 10:16; 눅 24:50),
③ 중보 기도를 하셨고 (눅 22:32; 23:34; 요 17:9, 15, 20),
④ 율법을 가르치셨는가 하면 (마 5:18~19; 12:5; 22:37~40; 눅 10:25~26),
⑤ 신앙적 지도력을 행사하셨다 (마 23:10; 막 10:35~45; 요 10:10~15; 13:12~15).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하여 제사장이 되었을 때 우리 또한 제사장이 되었음은 지난 분단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우리가 제사장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신분과 기능의 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신분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되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5)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둘째, 그렇다면 기능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① 제사를 드리는 기능에 있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히 13:15~16)
② 복을 비는 기능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롬 12:14)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8~9)
③ 중보 기도를 하는 기능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다.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엡 1:16)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9)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 5:16)
지금까지 세 가지 기능(제사, 축복, 중보기도)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게 허락되어 있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 기능은 그렇지 않다.
④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능이 아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 6:6)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1)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2)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
⑤ 신앙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도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능이 아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 1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 12:28)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 5:12)
목회자는 신분이 아니라 기능으로 구분한 것일 뿐
그렇다면 두 가지 기능(말씀을 가르침, 지도력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어떤 이는 말씀을 가르치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지도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나누어지는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이나 제사?축복?중보 기도의 기능 때문이 아니요,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지도력을 행사하는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치고 지도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목회자’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가리켜 ‘평신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공통점은 두 계층 모두 ① 하나님 앞에서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② 제사·축복·중보기도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목회자의 경우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신앙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기능이 보유된 반면 평신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목회자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같은 계층의 사람들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예’와 ‘아니오’ 두 가지로 구성이 된다.
① 오늘날의 목회자들이나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나 똑같이 말씀(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적(종교적)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연속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② 그러나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매우 다르기도 하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일반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에 있어서 동일하지만,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일반 백성들과 신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일반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기능(제사·축복·중보기도)을 수행하지만,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자신들만이 이런 기능을 수행했을 뿐 일반 백성은 그 수혜자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일반 그리스도인과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조차 다른 것처럼 잘못 생각하든지 거들먹거려서는 안 된다.
또 자신들만이 제사·축복·중보 기도를 할 수 있는 양 오해해서도 안 된다.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신앙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면에서는 경험·지식·기술이 뛰어남으로써 일반 그리스도인들과 차별화가 되어야 하고, 이로써 다른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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