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예화 모음
제목: 하나님의 예비하심
한 청년이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대학의 신학과정을 마친 후 선교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청년은 너무 기뻐서 당장 옷과 구두를 준비하려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자동차 사고를 당해 부득이 한쪽 다리를 자르게 되었습니다. 의족을 하게 된 그는 크게 낙망하여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간다는데 어찌하여 다리를 자르시는 겁니까.”라고 울부짖으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낙심해 있던 그는 어느날 아프리카로 갈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마 나같은 사람도 받아주겠는가.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하였으나 합격을 하여 마침내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나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식인종들을 만나게 되어 죽음의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식인종들이 빙 둘러싸고는 이 백인을 잡아먹겠다며 축제를 벌입니다. 그때에 이 선교사는 의족인 자기의 한쪽 다리를 뚝 떼어서 저들에게 던졌습니다. 고무다리를 받아든 식인종들은 이것을 먹어보더니 질겁을 합니다. “이것은 신이다.”라고 하면서 이 선교사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을 쉽게 전도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그때에 가서야 자기의 다리 하나가 잘린 이유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끔 어리석은 원망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러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우리 사람이 어리석고 미련하여 그 얄팍한 부분적인 지식으로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오른팔이 되려면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사도행전 20:9절의 말씀입니다.
오래 전 신학교 다닐 때 한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와 어느 좌석에 앉아 공부하는가를 보면 그 학생의 성적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의 주장에 의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대게 교실의 제일 앞 좌석과 중간사이의 앞 부분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제일 앞 좌석과 중간이요, 공부를 못하거나 출석만 부르고 빠져 나가려는 학생들은 뒤쪽에 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옳은 관찰 이었습니다. 제가 학생시절을 회상해 봐도 뒷 좌석에는 주로 골통들이 앉았습니다. 유두고는 3층 창문에 걸터 앉아 바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곤 졸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다행히 바울의 기도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은 많은 교훈을 줍니다. 3층 창문이니 시원하고, 전망도 좋았을 것입니다. 고개를 우로 돌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좌로 돌리면 세상이 한 눈에 보이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졸았습니다. 왜 졸았을까요? 물론 피곤해서 졸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 생각으론 그게 아니고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도 집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집중하여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경계선에 서지 말고 한쪽에 분명히 서라고 말씀합니다."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요한계시록 3:15-16절 말씀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15절 말씀입니다. 분명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사람은 정이 안가고, 크게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오른팔로 쓰이려면 열심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분명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오른팔로 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환상으로 잠깐 천국을 봤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확실히 서십시오. 하나님 편에 가까이 나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오직 하나뿐인 아들
요 1:14, 28; 3:16, 17; 5:19-26; 롬 1:3, 9
선교사들은 이교도 민족 속에 들어가 선교할 때 우선, '하나님'이라는 말을 본토민의 언어에서 찾아내고 또 '아들'이라는 말을 발견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이를 연결시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했다. 대부분의 이민족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 이런 식으로 하지만 북부 멕시코의 타라후마라 족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교만한 민족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하면 바로 자기 종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민족, 즉 타라후마라 족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 외의 이방인들은 모두 '마귀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민족적 교만은 앵글로색슨 족보다 더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민족들의 민족적 우월성은 자명한 이치이므로 그것을 선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선교사들은 그들의 언어로 번역할 때 그리스도를 모조리 '하나님의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는 또한 사람의 타라후마라 족 홍인종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님의 오케스트라
지난 여름 8월 첫 주일 저녁에 우리 교회가 대학 합창단을 초청하여 예배드린 일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각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기독교인 학생들 중에서 선발하여 3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었습니다. 설교 후 약 40분간 그들은 준비한 곡을 거의 무반주로 찬양 했습니다. 티없이 깨끗한, 마치 크리스탈 컵을 조심스럽게 튕겨주는 것같은 아름다운 음색, 조화, 그리고 은혜로운 가사 전달! 너무 아름답고 감동이 되어 눈물이 글썽 글썽해졌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라는 소절을 부를 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가 제 마음에 흘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합창! 조화! 아름다움! 세계적인 상담 심리학자인 클라인벨 박사는 말하기를 “교회는 오케스트라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들이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형성하듯 교회란 교인들 각자가 가진 재능, 성품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휘자에 의하여 각각 악기는 소리를 다듬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크고 작게, 높고 낮게 하여 아름다운 음악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의 '합창단'과 같습니다. 그런데 종종 독창만 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자기 소리를 좀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조화의 미입니다.
즉 신앙인의 덕성 훈련의 모습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요청과 포기
샌프란시스코의 버클리 대학교 앞에 한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두분 목사님이 함께 개척을 했었다. 그 중 한 분 목사님이 보스턴으로 개척교회를 하러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 목사님은 지난 4년 동안 훈련시킨 가정들에게 보스턴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 가정 모두가 그 목사님을 따라나섰는데 특히 그들 중 두 형제의 결단이 충격적이었다. 한 형제는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버클리대학교의 조교수로 발탁되었다. 출세 가도에 확실히 들어섰음에도 그는 그것을 포기하고 자기 부인과 함께 기도하고 돌아와서는 “목사님께서 제안하신 대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이 되어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형제의 이름은 에드워드 강으로 오랫동안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가 드디어 합격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형제도 집에 가서 기도를 하고 돌아와서는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따라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으로 내가 확신하기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각 주마다 법률이 다르다. 따라서 그곳에 가서 다시 자격증 시험을 보아 다시 취득하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두 형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요청하신다는 그 확신 때문에 가진 것을 포기했다.
제목: 하나님의 용서
무디 목사님이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죄를 덮어버리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인간의 방법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만약 당신이 죄를 숨기려고 한다면 그 죄는 언젠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주님께서 그 죄를 덮어버리도록 맡긴다면 악마도, 인간도 그 죄를 다시는 발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조지우돌이 런던의 빈민가 선교사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우돌이 주님께로 인도하였던 아가씨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시 걱정이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제 과거를 용서하셨을까요?” 우돌이 대답했다. “만약 그 점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괜한 걱정하지 말아라'하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 아가씨는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우돌은 예수님이 그녀의 죄를 자기의 일로 삼으셨다고 그녀에게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죄를 제거하셔서 그분의 등뒤로 넘겼다가 저 깊은 바다에 빠뜨리셨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표지판을 세우셨다. “낚시 금지!”
제목: 하나님의 위로
내가 좋아하는 설교가 중에 트루엣 박사란 분이 있다. 그는 텍사스 주의 달라스 제일 침례교회에서 50년동안 목회했다. 그의 설교 중에 한번은 어떤 한 믿지 않는 부부의 갓난 아이가 갑자기 죽은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트루엣 박사가 그 아이의 장례식을 집례했는데, 그 후에 그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수 개월이 지난 후, 또 다른 젊은 여인이 갓난 아이를 잃게 되었기에 다시 트루엣 박사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트루엣 박사의 말은 그녀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아기의 장례식 때, 얼마전 어린아이를 잃음으로 인해 믿게 됐던 그 어머니가 이 여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과 똑같은 일을 겪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불러 주셨읍니다. 저는 암흑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갔읍니다. 그러자 하나님꼐서는 저를 위로해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도 큰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트루엣 박사는 말하기를, "그 여인은 내가 여러 날, 아니 여러 달 걸려야 할 수 있었을 일을 해냈읍니다. 자기와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한 어머니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는 그녀 자신이 그 고통의 길을 몸소 걸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읍니다"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했다면, 우리는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비슷한 종류의 고난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느낌을 보다 잘 이애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경험이 하나님의 위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의 과거의 경험이 어떠했든지 간에 하나님의 위로는 그것 자체로 충분하여 결코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은혜
교회 등록한 후 어느 날 남편이 세일즈맨인 친구의 권유로 .여행가이드. 라는 책을 사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진들로 가득찬이 책을 보면서 일요일마다 한 군데씩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주일을 지켜야하는 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이른 아침부터 야외놀이의 즐거움에 가슴이 부풀어 남편과 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목적지인 일영에 도착하여 하루를 보내고 저녁 늦게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은 복잡하지 않아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게되었고. 피곤한 아이들은 남편과 저의 무릎을 각각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으나 차창 밖으로 희미하게 스쳐가는 벌판이 보였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구슬만한 돌이 제가 내다보고 있던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저의 관자놀이를 쳤습니다.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날아온 작은 돌맹이에 두꺼운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고 깊이 잠든 아이들의 머리와 얼굴 위로 깨어진 유리 가루가 쏟아졌습니다. 기차는 급하게 멈춰서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습니다.
상비 의료상자를 든 승무원들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아니라 아주 고운 유리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쓴 아이들과 두께1㎝가 넘는 유리를 박살낼 정도의 힘으로 날아온 돌맹이에 맞은 저는 놀랍게도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입니다. 속눈썹에까지 달라붙은 유리 가루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저는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주일인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바 된 저는 과천으로 이사와서 성전 중심의 생활로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은혜
밥은 자기의 젊은 시절에 관하여 쓰기를 “나의 목표와 열망은 직업적으로 그리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있었다. 나는 나의 목표에 도달하였으나 성취감도, 마음의 평화도, 기쁨도, 심지어는 행복도 찾지를 못하였다. 나는 하나님을 떠났고,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실상은 아내와 자식들마저 잃은 거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와 사랑 가운데서 나를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게 하여 나의 마음이 그분을 찾기에 갈급하게 만드셨다”고 하였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그의 아내 지미도 주님께로 돌아왔다. 이들 부부는 후에 간증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용서하셨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서로를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진심으로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멀고도 험한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성령을 통하여 조명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진리의 도를 가르쳐 줄 강한 믿음의 성숙한 크리스천들에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사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우리를 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은혜
영국 어느 시골의 한 가정에서 딸이 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도시로 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자 소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이나 멀리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고향집을 찾아갔습니다.
한밤중이지만 정원에는 자신이 가꾸던 장미꽃도 보이고,어릴때 뛰어놀던 잔디밭도 보였습니다. 자기 집 가까이 가보니 자신이 놀던 담장의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 문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운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아버지"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현관 문이 열리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뛰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느냐?
우리는 네가 집을 나간 뒤 한 번도 대문을 닫아 본 적이 없었단다. 언젠가는 돌아올 줄 믿고 기다리고 있었지."
혹시 밤중에 딸이 돌아올까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 어머니는 딸이 작은 소리로 부르는 것을 듣고 뛰어나 와 그 딸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들의 행위를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게 하시는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은혜
위대한 기독교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보함은 자기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다음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아직 청년이었을 때에 나는 친구의 집에서 그 친구와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집에 처음 갔었고. 그 친구는 나에게 응접실 건너편에 있는 방은 출입금지의 방이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무도 그 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그의 말을 따라서 나는 그 방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나는 잠이 깨었는데 그때 출입금지의 방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래서 방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니 그 방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침대 위에 한 어린 소년이 누워 있었다. 그 소년은 정신병으로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는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누운 침대 앞에 친구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년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그때 흐느끼면서 정신이상인 자기 아들에게 속삭이던 그 어머니의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고 너에게 생명을 주었다. 나는 너에게 먹을 것도 주며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있단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는구나.” 그 어머니의 고민은 사랑없음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오는 고민이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으나 자식은 아직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일방적인 사랑의 고민을 그 어머니는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고민도 사랑의 고민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계약관계를 맺은 백성 이상이었다. 계약대로 한다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포기하고 우상과 음행으로 얼룩진 이스라엘이 온전할 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손을 벌리고 계신다. 이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고민이다. 당신은 진정 하나님의 고민을 함께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는구나”하는 하나님의 탄식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제목: 하나님의 은혜
초기 영국의 케스윅 교단에서 가장 위대한 성경 교사들 중의 하나였던 웹피플이라는 성직자는 젊은이였을 때 해변에 갔다가 그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녀들 중의 하나를 갑자기 잃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오자 이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서재에서 무릎을 꿇고 이 슬픔의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게 해 주실 것을 가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위로가 마음에 찾아오지 않았으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그에게 아무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 벽난로 위에 길게 내려진 이 말씀을 맺힌 눈물을 통해서 다시 읽었다. 처음으로 그는 대문자로 인쇄된 한 단어를 주목하게 되었다. "족하다(is sufficient)" 그는 성별된 눈으로 읽었다. 그리고 외쳤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나는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당신은 언제나 내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읍니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나는 족한 은혜를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리며 그것을 이제 제것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적절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때를 위해 유용하다. 우리는 은혜를 구할 필요가 없다.
은혜는 이미 주어졌으며 우리가 받아들일 때에 머물게 된다. 이 언급이 얼마나 웅대하며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 실패한 결혼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무정한 가정, 육체의 연약함과 고통, 선교 생활의 압박감, 압도해 오는 비애 중에도 은혜는 족하다.
제목: 하나님의 음성
선지자 엘리야의 생애는 파란만장 풍운아적이다. 그 절정은 갈멜산상에서 이교화된 바알 정권과 450명의 섹스종교 바알제사장들을 상대로 참신과 거짓 신을 입증하는 건곤일척의 종교시합을 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3년6개월 닫혔던 하늘 문을 열어 비를 내리는 기적을 행하여 거짓 종교를 박살내고 그 선지자들을 청소하여 여호와 종교의 참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황후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 홀로 죽기를 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혼의 심연을 거쳐 다시 금식 40일의 광야 길을 거쳐 호렙산 동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폭풍 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가운데도 하나님은 안계시고 세미한 음성속에 하나님을 만났다.
제목: 하나님의 응답
대략 내가 35살 되던 해의 간증인데, 그 때는 기도문을 작성치 않고 주로 묵상 기도를 하였다. 문득 거의 매일 하는 가장 중요한 기도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작은 기도들만 응답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의심이 계속되었다. “가장 중요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인가?”“너는 기도 응답을 원하지 않고 있어”하는 말씀이 마음 속 깊숙이 들려왔다. “원하지 않는다고요.” 놀라서 말했다. “그래.” 또 계속하셨다.“네 기도를 응답하려 할 때마다 넌 그것을 거절하고 있어.” 머리로는 진지한 간구를 하고 있지만 심층 깊은 곳에서는 어떤 알지 못하는 무엇이 응답을 회피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주님께 질문했다. “주님께서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오셔서 당신의 선물을 거부하지 않도록 도우실 수 있겠어요.” “물론 할 수 있지. 네가 아는 범위 안에서 순종하기만 한다면 말이야”라는 응답이었다. 나는 순종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사실상 순종을 놓고 기도해 보거나 생각한 적도 없는데―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갑자기 한 분명한 명령이 나의 마음을 때렸다. 전혀 순종할 마음이 없는 그런 명령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간구 내용과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어려운 순종이었지만 즉시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그것이 기초가 되어 개인적인 삶은 폭넓게 변화되었고 주님과 많은 교제들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꿈꾸어 왔던 것, 그 이상으로 풍성한 하나님의 응답을 수년 동안에 받게 되었다.
제목:하나님의 의지에 맡기는 것
고후 1:8, 9; 딤후 2:1; 시 37:5; 잠 16:3
중국 오지에 간 위대한 션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자기로서는 거의 견딜 수 없는 믿음의 시련을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경우마다 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로 인해 신뢰와 평화가 회복되었다.
"내 영혼의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친구가 보내온 편지가 우리와 예수가 일치되어 있다는 진실을 나에게 계시해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 편지 내용을 요약한다면, 믿음이란 것은 더 많은 믿음을 가져보겠다고 내 힘으로 애쓰는 데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맡기는 데서 강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읽는 동안 디모데후서 2:1의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그는 언제나 신실하십니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바라보며 혼자 말했다.
"나는 애타지 않으련다. 그가 친히 약속하신 것을 어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님의 의지에 맡기는 것
고후 1:8, 9; 딤후 2:1; 시 37:5; 잠 16:3
중국 오지에 간 위대한 션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자기로서는 거의 견딜 수 없는 믿음의 시련을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경우마다 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로 인해 신뢰와 평화가 회복되었다.
"내 영혼의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친구가 보내온 편지가 우리와 예수가 일치되어 있다는 진실을 나에게 계시해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 편지 내용을 요약한다면, 믿음이란 것은 더 많은 믿음을 가져보겠다고 내 힘으로 애쓰는 데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맡기는 데서 강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읽는 동안 디모데후서 2:1의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그는 언제나 신실하십니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바라보며 혼자 말했다.
"나는 애타지 않으련다. 그가 친히 약속하신 것을 어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님의 인내가 끝났을 때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십대였을 때 저는 서부 텍사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부흥회 기간 중 토요일 밤이 되었을 때, 저는 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로이, 이번에는 꼭 가야 해, 하나님께서 네 마음에 말씀하시고 있어. 만약 네가 그리스도께 나아온다면, 네 친구들도 역시 구원받게 될거야. 로이, 함께 가지 않겠니?” 하지만 로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늘밤에는 가지 않을테야.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좀더 말해 보았지만 쓸데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저는 그를 떠났습니다.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로이는 망아지가 끄는 이륜 마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난기 있는 카우보이가 망아지에게 모자를 던져서 그만 망아지가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친구는 마차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흙이 약간 묻었을 뿐 다친 곳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나중에야 그가 넘어졌을 때 땅에 부딪혀 다친 것을 의식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마차에서 떨어졌을 때의 충격으로 뇌에 피멍울이 생겼던 것입니다. 결국 로이는 그 다음날 죽고 말았습니다. 오 죄인이여 할 수 있을 때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을 얻으십시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에게 자비와 용서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인도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한국인 아가씨가 한 분 있는데, 킴 윅스라는 맹인 아가씨입니다.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라났는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크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놀라운 간증을 갖게 되어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날 저는 그녀의 다음과 같은 간증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 뒤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 놓으라고 말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그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면 하나님을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순종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인도
언제인가 자동차를 타고 심방을 가는데, 길 한가운데에 [이 길은 막혔으니 다른 길로 돌아가시오]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을 보니까 아주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이 곧게 뻗어나가 있어 저는 표지판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한참 달렸습니다.
한참을 들어가다 보니까 강을 가로지른 교량이 끊어져서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다시 차를 돌려서 되돌아 나왔습니다.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근시안적인 판단만을 믿고 살다가 좌절하고 되돌아서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표지판을 믿지 않고 그 뜻을 어긴 까닭에 잘못된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표지판 앞에서 순종하십시오. 그분은 당신보다 지혜롭고, 당신보다 강한 분이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인도
뉴욕에서 십대들을 위한 독특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축복을 받은 사람인 데이빗 윌커슨은 .십자가와 주머니칼.이라는 저서의 첫 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 새로운 길로 인도를 받았는지 밝히고 있다. 그는 중앙 펜실베니아 주의 오순절 교회 설교자였다. 그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모든 것을 아주 잘 해나가고 있었다. 교회는 날로 성장해갔고 새 건물도 몇 개 더 세워졌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함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텔레비젼을 보는데 허비했던 저녁 시간을 기도 시간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많은 망설임 끝에 그는 텔레비젼을 팔고 주님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은 그는 그렇게 지냈다. 그러던 중 그 저녁 시간을 통해 마침내 그는 약물 중독에 걸린 맨하탄의 불량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도록 인도받았다. 데이빗 윌커슨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시골의 한 설교자를 도심으로. 더군다나 도시의 비통한 자들에게로 인도했던 것이다. 이같은 일은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이전에라도 그것을 행하고자 결심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소리에 응답하면서 그분을 응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주실 것이며 좀더 넓고 좀더 흥미 진진한 길을 당신에게 지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가까이 와주실 것이며. 당신이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인도 방법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한국인 아가씨가 한 분 있는데, 킴 윅스라는 맹인 아가씨입니다.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라났는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놀라운 간증을 갖게 되어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저는 그녀의 다음과 같은 간증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 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 놓으라고 말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그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면 하나님은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순종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일
1955년 어느 가을 미국 오레곤주 유게네라는 마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그곳의 신문에는 마을 회관에서 종교 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그 중에 한 농부 부부도 참석했습니다. 그날의 영화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생긴 고아들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손길을 찾는다는 내용이 결론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참석했던 그 농부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가난한 농부야. 우리같은 농부가 무엇을 할수 있을라고” 하는 자탄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날의 가슴아픈 영화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되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기도하였으며 이윽고 농장의 일부를 팔고 직접 한국에까지 와서 8명의 혼혈 고아들을 양자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로 나가자 각 곳에서 그들을 돕겠다는 편지가 왔고, 어떤 가정에서는 그런 혼혈 고아를 양자로 맡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 농부는 차츰 농토를 팔고 이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 부부는 1만 6천여 명의 전쟁 고아를 각 가정에 맺어주게 되었습니다. 이 농부가 유명한 홀트 양자회 주인공인 해리 홀트 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고 하며 겸손히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일을 맡겨주신다는 진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지혜라든가 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하는 확신 가운데 시작하는 일에 하나님은 지혜도 돈도 풍성히 주시게 됩니다.
제목: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완전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일수록 하남의 나라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지난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쉘필드에와서 부흥회를 하실 때에 우리는 수천명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도록 자문을 했습니다.그 집회를 위해서,또 많은 사람들을 그 집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교인들에게"자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나는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내이웃 사람들을 인도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오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저는 그런 사람들 에게 일하라고 하면서 중요한 임무를 주고 임명했습니다.'나는 할 수 없다,무능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꾼인 것입니다.그리고 얼마 후 저는 그들이 겸손하게 주님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 저를 인도해주셔서 일하게 하신 것 정말 감사해요"라고 제게 말했습니다.우리가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할 때 주님께서는 '네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십니다.그렇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성결--
제목: 하나님의 임재 하심
1960년 딘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말기의 고통을 겪을 때 찬양이 그의 삶에서 새로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늘 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겠지만, 이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사는 동안에도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딘은 그의 병실을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몇 달 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서 그의 가까운 어느 친구는 "그의 병실은 지성소같았고, 그가 누웠던 침대는 설교단상 같았으며, 그에게 병문안 왔던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받았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찬양을 했다고 해서 그의 암이 나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찬양고 믿음을 통하여 딘은 고통스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새로운 기쁨을 불러일으켰으며,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축복 가운데 있을 때나 고난 가운데 있을 때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임재하심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임재하실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분이 임재하실 때 대적들은 꼼짝 못하고 사탄의 세력은 두려움에 떱니다. 그분이 임재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엄위하심과 두려우심과 영광과 기쁨과 능력 가운데 살게 됩니다. 사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임재해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풍성함을 여러면으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그분을 찬양할 때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자녀
스코트랜드의 어느 어린 왕자가 왕궁에서 예의와 법도를 익히며 사는 것이 너무 지겹고 귀찮아서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날 자리에서 일어나 평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방을 빠져나와 담을 넘어 숲 속으로 갔읍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왕자는 그가 소원하던 대로 마음껏 뛰고 딩굴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하고싶은 대로 다 했읍니다. 밤이 깊어 가는 것도 몰랐읍니다. 얼만큼이나 걸어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궁전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궁전으로 찾아갔으나 불행히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읍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누구 한 사람의 대답이 없었읍니다.
이 어린왕자는 밤새 얼마를 더 걸었는지 모릅니다. 어두운 산속길이 무섭기도 하였읍니다. 짐승들의 이상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읍니다. 가시에 걸려 옷이 찢어지고 돌에 걸려 넘어지고 지칠 대로 지치게 되었읍니다. 도저히 궁전을 찾을 길이 없었읍니다. 이 어린 왕자는 더 이상 걸어갈 힘도 없었읍니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읍니다. 이른 아침 눈을 떠 보니 큰 나무밑 낙엽 위에 쓰러져 자고있는 자기를 발견했읍니다. 밖에서 노숙을 했으니 아침 이슬을 맞아 몸도 으슥으슥합니다. 밤새 걸었으니 피곤하고 시장도 했읍니다. 건너편 언덕을 바라보니 아침을 하는 연기가 보였읍니다. 인가가 있는 것을 짐작하고 간신히 걸어갔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소를 쓰다듬고 있다가 이 초라한 어린애를 보고 "너 누구니?" 하고 물었읍니다. 이때 이 아이는 대답했읍니다.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답게 삽시다.
제목: 하나님의 자녀
제가 언젠가 부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서 짐을 배로 보내려고 트럭에 실어서 부산에 보내고, 저느 밤기차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모처럼의 밤기차 여행이어서 좋은 자리인 무궁화호 특실표를 샀습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원까지 갔을 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저더러 일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황하여 그에게 표를 보이며 내 자리임을 확인시켰습니다. 그 사람 역시 표를 보였는데 두 사람의 번호가 똑같은 것입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두 사람이 멍하니 있을 때에 차장이 와서 표를 확인해보더니 그사람의 자리는 보통칸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보고"여기는 특실이니 보통칸으로 가시지요" 했더니, 차장이 말하기를 "아저씨, 여기가 보통칸이니 아저씨가 특실로 가시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특실표를 가지고 보통칸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얼른 특실로 갔습니다. 그 곳의 내 자리는 넓었으며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 침대도 되는 너무도 좋은 자리였습니다. 그런 나의 자리가 서울에서 수원까지 비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우스워집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이 날 때마다 큰 교훈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자격, 조건을 내 스스로가 찾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확인하지 못해서 내가 누려야 될 복을 누리지 못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비굴하게 살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잊지 맙시다.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고, 가슴을 펴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힙있게 살아갑시다.
제목: 하나님의 자녀가 갈길
엊그제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갔더니 표가 없어요. 아니 꼭봐야 되는 사람이 왔는데 표가 없으면 어떡해요. 안 봐도 되는 사람들이 표를 사면 어떡합니까. 봐야 될 사람이 봐야 될 것 아닙니까. 들어갈 수도없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 사장님께서 극장 앞을 나오셨다가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을 본 것입니다. 벌써 다르잖아요.
영력 있는 사람이 보면. “아니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영화구경을 하러 왔는데 표가 없어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십시오.” 제가 여러 사람들과 같이 갔었는데 다 같이 따라서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기뻐요. 공짜로 넣어주었는데요. 중앙일보 사장이 넣어주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그랬어요. 우리 또 나갑시다. 왜요. 또 넣어줄 것 아니예요. 물론 또 넣어주죠. 밤낮 거기서 우린 표 없이도 들락거린다라고 합니다. 극장에 왜 들어간 것입니까. 영화를 보러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난 표 없이도 들어갔다 이것이 자랑입니다. 그래서 들어갔다가 나가고 또 들어옵니다. 구원이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갈 길이 있고 이제부터 경험할 것이 있고 이제부터 획득할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에베소서 4장에 의하면 이 부분은 이렇게 요구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4:22―24 .새사람이 되라.가 아닙니다. 새사람인데 새사람다운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자연법칙
요 14:15-21; 눅 22:41-43; 요일 4:18, 19
어떤 젊은 부부에게 외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수술할 수 없는 뇌의 종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부부는 물론 여러 친구들이 그 아이의 병낫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 그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병을 낫게 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는데도 끝네 죽고 말았다.
그럼에도 부부는 비통 중에서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지 않고 천국으로 아이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이 부부는 얼마 후 다시 아이를 잉태하게 되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축복하심을 굳게 믿게 되었다.
그리고 생명을 주며 거두시는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깨달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제목: 하나님의 자유기도응답
어느 집사님이 간증을 하면서 자기 아들이 명문대학에서 낙방을 했는데 1년동안 열심히 기도했더니 그 다음 해에는 넉넉히 입학한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도 은혜가 되고 감사하다했다. 나도 그 간증을 은혜스럽게 들었다.
그런데 두 학생이 그 간증을 놓고 신학논쟁을 벌였다. 실력으로 들어가지 않고 하나님 빽으로 기도해서 들어가게 하려는 심리도 안됐고 실력으로 들어가라 하지 기도한다고 들어 가게 한 하나님도 나쁘다는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은 무서우리만치 날카롭고 비판적이다. 그의 말이 별로 틀린것은 없다. 물론 내가 그의 논리만 못한것이 아니지만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하시느니라(롬9:18). 물론 이 말이 논리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진리이고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아멘으로 믿는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면 너를 건지리라(시50:15). 구하라 주시리라(마7:7). 이 말씀은 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으리라도 포함되었다.
제목: 하나님의 자취
옛날 어떤 여행자를 약대에 태우고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데 날이 저물어 한 오아시스 곁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때에 그 약대를 몰던 마부는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때 여행자가 “지금 무엇을 하였습니까.” 물으니 “기도를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누구에게 기도를 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묻기를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못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줄 어떻게 아십니까.” 그 마부는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그 여행자의 말이 “아. 간밤에 약대가 우리 천막을 몇 바퀴 돌았구먼”하였다. 그때에 마부가 물었다. “약대가 도는 걸 보았습니까.” “보지는 못했오” “만저는 보았습니까.” “만져보지도 못했오.”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그때에 그 여행자는 “아. 이 사람아 여기 모래 위에 약대의 발자취가 있지 아니한가.” 그때에 아침 햇빛이 온 사막을 비치며 찬란한 사막의 풍경을 이루었다. 마부는 그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가리키면서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발자취가 아닙니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제목: 하나님의 존재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5~16)
미시시피 대학 철학 개론 과정 중, 교수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신중한 논쟁을 제시하는 기간에는 언제나 수업에 사람이 꽉 찬다. 마지막 총정리에서, 학생들은 모두가 조용해지고 그 교수는 자신이 한 일에 큰 즐거움을 갖는다. 학생들에게 말하는 도중, 그는 물었다. 그린 양, 제가 당신에게 하나님이 있음을 증명했나요? 그녀의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요, 제게 증명하지 못하셨어요. 내가 언제나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나님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믿음의 대상인 거예요. 라고 교수는 답변했다.
제목: 하나님의 증거
두 사람이 등산을 갔다가 산 속에서 큰 비를 만나 길을 잃고 갇혀버렸습니다.
한 사람은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한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신은 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해서 바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을 감고 기도하면 느낄 수가 있죠."
아직도 못 미더워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당신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난 지금도 마음이 평안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지요."
이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근심 걱정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맡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다른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늘 찡그리고 다닌다거나, 화를 자주 낸다면 그 누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마음의 근심 걱정 다 하나님께 맡기고 웃어보세요.
생활이 한층 즐거워 질 겁니다.
제목: 하나님의 짝사랑
구약성경 중 호세아서에는 이런 안타까운 Love Story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고멜은 남편을 배신하고 창녀의 소굴로 도망쳐 버리고, 남편 호세아는 보리를 싸들고 찾아가서 팔려간 고멜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겁니다.
그녀의 배은망덕한 사랑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계속되는 배신은 하나님을 짝사랑의 애닮은 연인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짝사랑의 아픔을 앓고 계십니다.
헌데 당신도 하나님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느 날인가 복잡한 통근시간에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한 여학생이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앉아 있던 나는 꼭 그 여학생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뻗쳐 가방을 받기에는 애매한 거리였습니다. 그저 그 학생이 한번만 돌이켜본다면 나는 그를 부를텐데, 조금만 더 다가선다면 그 가방을 받아줄텐데--그녀는 끝내 더 먼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눈뜨는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돌보시는 그의 사랑을 아십니까? 당신의 먼 장래까지 보장하시는 그의 관심을 아시나요? 그런데 당신은 어쩌면 주님께 시선한번 안 돌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안 보고, 하루 중 기도 한 번 안하고, 그나마 주일 예배엔 늦게 나오고, 오후 집회엔 관심도 없고......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슬프다! 당신은 그 분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도움의 손길이 끝내 근처에 머물고 있음을 아십시오...
제목: 하나님의 참된 은혜
카바나우 주교는 어느 날 한길을 걸어가다가 그 도시의 유명한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의사는 불신자였다. 서로 얘기를 주고 받는데 그 불신자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주교님처럼 명철하신 어르신네가 기독교라는 우화를 아직도 믿으신다니 저는 그저 놀랄 뿐입니다.” 주교는 당장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에 이런 대답을 했다. “의사선생님,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에게 폐결핵에 잘 듣는 약과 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처방해주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 약을 처방전과 함께 결핵 환자들에게 권했는데, 그들이 한번도 실패없이다. 치료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처방과 약을 믿지 않고 그것을 계속 거부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의사는“저는 그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주교는 말을 계속했다. “저는 25년 전에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사용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 저는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해 주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유식한 사람이든, 무식한 사람이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모두 영적인 질병에서 고침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주교님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바보였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진짜 은혜'이다.
제목: 하나님의 채찍 속에 살아온 일생
고후 10:6; 욘 1:1-3; 2:1, 2; 슥 14:19
제자훈련 과정 중 강사 한 분이 "나는 내 생애 대부분을 하나님의 채찍 속에서 살아 왔습니다."하고 고백한 말 때문에 학생들이 놀란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놀랒, 그는 강의 대신 사연을 들려 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청년 시절 그에게 하나님은 선교사가 되라고 계시하셨다. 그러나 그는 결혼함으로써 그 말씀을 피하고자 했다. 그는 실지로 주님의 일을 포기하고 은행원으로 취직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의 1차적인 목표는 좋은 집을 사고 돈을 모으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계속계시를 통해 말씀하셨으나 그는 순종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어느 날, 그는 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청천벽력과도 같은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의 어린 딸이 높은 의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쓰라린 사건은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그는 밤새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고는 주님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선교사가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비로소 그는 자복하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주님께서 자신의 불순종했던 삶을 어떤 방법으로든 부수어 달라고 기도 드렸다.
제목: 하나님의 처방 약
나는 “그것은 효과가 없어요. 효과가 없단 말이예요!”라고 외쳐대는 미친 듯한 젊은 여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녀가 진정된 다음나는 “무엇이 효과가 없다는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저는 그들이 세미나에서 하라고 한 것을 빠짐없이 다 하였고 모든 절차들을 밟아보았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그녀는 자살해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매우 괴로워하였다. 의사들은 다른 사람에게 처방된 약을 먹는 것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데. 이러한 경고는 영적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 체험을 다른 사람의 영적 체험과 비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원칙은 모든 신자들에게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그분의 계획과 의도는 서로 다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믿음을 존중하시는데.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믿음을 그분 나름의 방식대로 존중하시게 하여야 한다.
사도 야고보와 베드로는 모두가 다 하나님께 대한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야고보는 죽임을 당하였고 베드로는 옥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絲12장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피하고 모면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인내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공식화된 믿음'과 '복사판 기독교'를 실천에 옮기려고 해서는 안된다. 신자와 교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개별적인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는 각자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빌2:12,1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다루실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는 그러한 주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마리아의 믿음과 같아야 한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1:38
제목: 하나님의 치료방법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상당히 깊숙히 들어간 농촌에서 전도하던 선교사 스미스 부인이 심한 병에 시달리게 되어 선교 본부에 자기 병의 증상을 낱낱이 보고하고 돈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돈이 오질 않아 안달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음식도 넉넉하지 못하고 약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한 달 가량 고생을 하고 있는데 송금이 도착했다. 참으로 원망스럽기 짝이없는 일이었다. 이듬해 안식년을 맞아 본국으로 돌아간 스미스 선교사는 건강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1년 전 몹시 앓았던 병의 증상을 설명하자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병을 알겠군요. 그 병은 오트밀 정도의 부드러운 식사로 조금씩 영양을 섭취해가며 한 달 정도를 거의 굶는 식이요법으로 음식을 조절해야 낫는 병이었는데 송금한 것이 꼭 한 달 늦게 도착했다니 그 늦게 도착한 것이 선교사님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뜻깊게 이뤄나가시는 것을 알고 스미스 선교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을 다 보시는 하나님과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가지는 생각의 차이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수도물 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 모든 것이 즉각 응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고 믿음이있는 것같이 보이나 하나님의 주판에는 그런 계산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때와 장소는 물론 응답되고 안 되는 것까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에는 다 다르게 비치고 있을 경우가 허다함을 알아야 한다.
제목: 하나님의 치유책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소망으로 가득 채워준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영혼의 굶주린 부분에 흘러들어와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해준다. 그렌빌 클라이저의 충고어린 시구가 생각난다. “생각을 살피라. 강하게 하라. 굳은 결심은 악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살피라. 명확히 하라.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생각을 살피라. 바르게 하라. 믿음과 지혜는 빛을 가져다 준다. 생각을 살피라. 참되게 하라.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가 다스리신다.” 차의 기름통이 텅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동시에 그것이 꽉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공기로 가득 차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공기로 달리게 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공기를 몰아내려면 거기에 석유를 채워야만 한다. 악한 생각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책은 우리의 생각을 선한 것으로 가득 채우시는 것이다. “형제 여러분,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십시오”(빌 4:8).
제목: 하나님의 팔에 안긴 어린 아기와 같이
시 46:10; 출 14:13; 행 19:36
허드슨 테일러 목사는 임종을 몇달 앞두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그의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여보게, 나는 지금 몸이 너무 쇠약해서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라네.
그리고 나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심지어 기도도 못하고 있네. 단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팔에 안긴 어린 아기와 같이 누 워 있는 것이라네. 그리고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듯이 나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라네."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걸었던 위대한 테일러 목사가 지금은 육체적 고통과 쇠약함에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동요 없이 조용히 누워서 하나님을 향한 그이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태도다. 그 분은 당신이 곤경에 빠져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
"더 강해지려고 애쓰지 말아라. 단지 그냥 그대로 너의 믿음을 지키고 있어라." (제임스 H. 매콘케이)
제목: 하나님의 평화
C.C.C. 총재인 빌 브라잊은 어느날 미국 대통령 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이곳에서 자기의 절친한 대학교 친구였던 해군장관을 26여년만에 만나게 되었읍니다. 아주 반가왔답니다.
그 가정이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여러가지를 다 갖추었는데 가정분위기가 불안한 모양이어서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였고, 또 당시 그 가정의 막내아들이 앓다가 죽은 직후여서 더욱 그를 위해 기도한 후 헤어졌읍니다. 얼마 후에 다시 만났는데 그 친구의 다른 딸이 임파선에 암이 생겨서 죽었다는 소식을 또 들었읍니다. "얼마나 슬픈가?" 고 위로했더니 "아니야, 내가 내 딸을 생각할 때는 심히 슬프고 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지만, 이 어려운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을 내게 주셨다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평화"가 있읍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평화가 있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화목
염려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기도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평안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꽉 채울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우리의 대적이 되기도 하고,우리의 대적이 홍수처럼 밀려올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이 세상의 불안은 하나님의 자녀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마음과 생각의 이평안은 불쾌한 환경에서 수동적으로 피해서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은 폭풍과 혼돈 중에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에베소서2:14은 "주는 우리의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평안이신 주님은 우리 삶을 감싸주십니다. 이것이 세상이 주지못하는 평안이며 빼앗지도못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훈련
광야 기간의 시험이 북경의 왕 밍따오 박사에게 왔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만일 타협하지 않는다면 중공에서 투옥되어 고난을 받게 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기를 소원했었는데 하나님의 부름과 훈련으로 그것이 좌절됐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외국에 나가 훈련을 계속 받아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훈련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몇 달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집에 가두시고 마루를 쓸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옷을 수선하는 등의 집안 허드렛일을 하게 하셨다. 처음에 나는 불행을 느끼며 나를 이와같이 대하시는 그분께 불평했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비천한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삼 년이 자난 뒤 나는 이런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야망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교자가 되고자하는 포부까지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말단의 지위도 원치 않았다. 대신에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평생 동안 비천한 가사일만 보라고 하시더라도 기꺼이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모든 헛된 소망과 야심을 포기했다. 이 일들을 회상해볼 때, 듣기에는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그 당시 그것은 많은 눈물과 투쟁과 어마어마한 희생의 대가를 치루어야했다. 이러한 호된 시련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문을 열어주셨고 몇 해지나지 않아서 사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 엄격한 훈련이 없었더라면 높은 명성에 대한 욕심과 대단한 직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역이 내게 위험한 것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제목: 하나님의 흥정
유대인 둘이 구명보트를 타고 있었다. 사면을 둘러 보아도 배는 커녕 섬 그림자도 안보인다. 한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오, 하나님, 만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재산의 반을 자선사업에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를 저어도 구조의 손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밤이 되었다. "오오 하나님"하고 앞서 사나이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만일 구조해 주신다면 재산의 3분의 2를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날이 새도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절망에 빠진 사나이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오 하나님, 부탁입니다. 만약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게 된다면 저의..." 잠깐!" 하며 다른 사나이가 소리쳤다. "거래를 멈춰라. 섬이 보인다."
제목: 하나님이 가라는데!
신27:10;갈2:5;히11:8;딛2:9
평양신학교 교수 엥겔 목사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미워하는 학생은 항상 미워하고 좋아하는 학생은 늘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첫인상이 나쁘면 졸업할 때까지 미움을 받았다.
1937년 봄학기 때 하루는 엥겔 목사가 교실에 들어오면서 싱글벙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국에 온지 40년 됐지요. 나는 한국에서 죽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우리 미션회가 나를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지요. 불가불 돌아갈 수밖에 없지요." 학생들은 조용히이 말을 듣고있었다. 이 때 박창목이라는 학생이 입을 열었다. 평소 박창목은 엥겔목사에게 곱게 뵈지 못한 학생이었다.
"아니 선생님, 본국으로 돌아가시면 원어는 누가 우리에게 가르치십니까?" 이 때 엥겔 목사는 매 같은 눈을 하고 박창목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하나님이 가라는데!"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웅
마 6:1-4; 사 61:6; 빌 2:17
알려지지 않은 이름 속에 위대함이 숨어 있고, 조용히 행하는 의무속에 영생이 주어진다. 인류 가운데 가장 비천한 부류에 속한 이들이 그 위대함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심판이 모든 것을 뒤집어 제자리에 놓을 때 지금의 나중된 자가 처음된 자로 바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작은 공간을 채워가는 것, 작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기쁘게 달려가는 것, 비천한 직업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여 열심히 일하는것, 낮은 지위라도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것, 오해받고 왜곡당하고 시기와모략을 당하더라도 의연히 참고 견뎌내는 것, 마음의 고통이 심할지라도 이웃의 기쁨을 위해 즐거운 미소를 띄우는 것, 모든 이기적 야망과 자만과 모든 서두름들을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한 봉사의 이름으로 쫓아내는것. 이러한 일들에 충실한 사람이 불 뿜는 총구 앞에서 한 시간, 또는 하 루 동안 담대히 버텨나가는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영웅이 될 것이다. 그 루 동안 담대히 버텨나가는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영웅이 될 것이다. 그에겐 늘 봉사의 일이 따라다닐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추앙받는 영웅이아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웅인 것이다. (파버)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에릭 프롬은 현대 사회가 갈등과 혼란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모든 현대인들이 너무나 이기형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현대인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수용지향적 성격의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이나 돈, 권력 같은 것에 쉽게 노예가 되어 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 탈취 지향적 성격의 인간은 소유할 수만 있다면 불법으로라도 내 소유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저장 지향적 성격의 인간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을 소유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재물이 생기면 쓰지 아니하고 저축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시장 지향적 성격의 인간은 무슨 일이든지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를 전제로 해서 따지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 사람은 절대로 손해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애사 지향적 성격의 인간은 죽음을 우상처럼 생각한 나머지 죽기 전에 관광, 스포츠, 섹스, 오락이나 즐겨보자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오리를 가자 하면 안 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도 이익이 있어야 하고, 신앙생활도 이익이 있어야 하며, 이웃 사랑도 먼저 이익부터 따져보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사회는 언제나 범죄와 범법이 있기 마련이며, 긴장과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참된 크리스챤은 “오 리를 가자”하면 오 리까지만 가는 교양인이나 지성인 정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오리를 더 가주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능력은 이기심을 초월하며, 책임을 능가하고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합니다.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옛날에 '안토니'라는 수도사는 하나님과 함께 일생을 보내기 위하여 사막에서 지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오직 기도만 했다. 어느 날 뜨거운 한 낮에 음성이 들려왔다. “안토니, 그대의 아름다운 생활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데 저쪽 한 도시에는 그대보다 더 신앙이 깊은 사람이 있다.” 안토니는 자기보다 더 경건하고 신앙심 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더 경건한 삶이겠습니까?” 그때 또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내 아들아, 너는 네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안토니는 그 음성이 말하는 사람을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는 길고 먼 여행길에 나섰다. 사막을 지나서 어떤 도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존이라는 이름의 구두 고치는 사람을 만났다. “무슨 일을 하시기에 그 덕행이 하늘에까지 알려졌습니까?”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한일이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구두 한 켤레를 수선할 때마다 예수님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수선한 것뿐이랍니다.”
제목: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거칠게 살다 변화를 받은 늙은 선장이 임종을 앞두고 침구로 부터[무엇이 자네의 인생을 변회 시켰나?] 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 내가 다른 배의 선장이었을 때 하루는 구조 요청을 받고 침몰중인 배로 갔지. 마지막으로 구조된 사람은 그 배의 선장과 아내, 그리고 네살된 딸이었다네. 구조받은 선장의 아내는 남편에게 [여보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 후 나에게 [우리 하나님께 감사 기도 드릴동안 제 딸을 맡아 주시겠어요?] 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 딸이 [엄마 이 아저씨가 하나님이야?]하고 물었다네. 그 때 선장의 아내는 [아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란다]하고 말했는데 그 말이 거칠게 산 나를 변화시켰다네]
제목: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얼마 전 나는 상업을 하는 어떤 그리스도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한 분명한 진리를 내게 말해 주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기를 사용해 달라고 부르짖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못하시는 걸 자주 봅니다. 경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헌신되지 않았고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 가게에 와서 일하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내 일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람을 새로 채용하려고 광고도 내고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기도 했지만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은 좀처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죠."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엄연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되 알맞는 자를 택하셔서 최대한도로 일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만 계속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알맞는가를 한 번 자세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상인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도 아무나 쓰시지는 않는다. 다만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딤후 2:21) 자라야 한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며 맘껏 쓰시게 된다.
제목: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심
옛날 송나라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관상쟁이에게 가서 자기가 재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상을 좀 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 관상쟁이는 범문공을 가만히 보더니 재상이 되지 못하겠다고 해서 그는 되돌아왔다가 얼마 후에 다시 찾아가서 의원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는 의원이 신분이 아주 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상쟁이는 왜 의원이 되려 하느냐고 묻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지기 위해서 재상이 되고 싶었는데 안된다고 하니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돕고 싶어서 의원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관상쟁이는 “당신은 재상이 되겠소”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범문공은 어리둥절하여 “얼마 전에는 안된다고 바로 당신이 말해놓고 이제 와서 재상이 된다니 어떻게 된거요.”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상쟁이는 웃으면서, 관상이란 색상이 먼저이고, 둘째는 골상이며, 세째는 심상인데, 당신의 골상은 시원치 않아 재상감이 아니지만 심상을 보니 재상이 되겠다고 설명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논어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하면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면 그는 나쁜 사람입니까?” 역시 아니라고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고 묻자 “훌륭한 사람이 그를 훌륭하다고 하면 훌륭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이 그를 나쁘다고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공자는 대답했다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를 누가 인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옳다고 인정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한다고 옳은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실 때에 비로소 옳은 사람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제목: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
성경의 여러 인물 가운데 다윗만큼 자기 소원을 이루면서 산사람도 그리 흔치 않다. 부귀영화는 물론이고 적과의 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셨고 나라가 태평 성세하기를 꿈꾼 대로 성취했다. 단하나 그의 뜨거운 갈망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소원이 있었다. 바로 성전 건축하는 일은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셨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 건축에 열의가 대단했으므로 모든 재료와 터전을 준비했다. 물론 전쟁을 통하여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는 하나님의 충분한 이유도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소원하면 어김없이 허락하시던 하나님이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소원은 이유야 어떻든 간에 묵살하셨다. 만일 우리 같으면 낙심하고 실망 할 법도 하다. 그러나 역대상 29장의 사건을 자세히 보면 다윗은 성전 건축을 자기 손으로 건립하지 못해도 결코 섭섭해하시지 않고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 전쟁노획물로 모든 준비가 다 되었음에도 다윗은 기쁨으로 자기의 재산 까지 바쳐서 성전 재료를 더 풍성히 준비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소원 성취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갈망, 꿈을 기뻐했던 것 같다. 우리도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간직하도록 애쓰고 마음 가득히 하나님이 주시는 갈망으로 가득 채우자.내게 하나님이 주시는 갈망으로 기뻐하는 일이 있는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나니"(빌립보서 2:13)
제목: 하나님이 주신생명
어느 날 밤 젊은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는 복잡한 집안 형편을 믿음으로 극복해가며, 교회 생활도 열심히 했고, 어느 여자 전도사님의 따님과 교제하여 정식으로 혼담이 나오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께서 형편없는 집안에 딸을 줄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절하시는 겁니다. 겪는 일마다 고통인데 마음 놓고 결혼도 할 수 없으니 살아서 뭘 합니까?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나는 독약을 손에 들고 이 전화를 마지막으로 거는 겁니다.” 젊은이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했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결심을 굳힌 듯했습니다. 한순간 난감하고 막막했습니다. 잠깐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지혜를 주십시오. 한 생명을 우주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시오니, 이 젊은이를 구하실 말씀을 주십시오.' 그 순간 저는 저 자신의 아픔에 대한 것으로 입을 열게 되었습니다. “보세요, 젊은이. 나는 결혼한 지 8년째 되지만 아직 아기가 없어요.
생명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거예요. 그렇게 애절하게 원해도 아직 허락을 하시지 않는 그 생명을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간단히 버리려고 합니까? 생명은 당신의 것이 아니예요. 자, 전화를 끊지 말고 우선 그 독극물 약을 버리세요. 어서!” 전혀 예정에 없던 말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격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뒤 한참만에 전화를 다시 드는 듯했습니다. “선생님, 약을 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문제가 저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던 탓이었습니다.”
제목: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약한 종이 한장은 새끼손가락 가지고도 찢어지지만 철판이나 나무판을 의지하고 있으면 주먹으로 쳐도 찢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연약한 인간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죄사함받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어떤 고난과 고통이라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이사야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며 예수를 말미암치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벅차고 고달픈 인생길,미칠 것만 같은 고통을 받는 인생들이여! 예수님께 나아 오십시오.
제목: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공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① 알지 못한 사람이 너를 도울 것이요.
② 생각지 못한 재물이 너를 도울 것이요.
③ 기억하지 못한 일들이 네게 복으로 변하리라.
제목: 하나님의 보증 수표
어느 가난한 농부 가정의벽에 붙여 놓은 종이가 있었읍니다. 어떤 사람이 그 종이를 보고 우리 나라 돈으로 2억여원 상당의 유언서라는 것을 발견했읍니다. 은행통장에 있는 돈 전체를 아무개에게 기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이 적혀 있고 사인이 되었고 지문이 찍혀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 농부는 빚에 쪼들려 가난에 빠져 있었읍니다. 농부가 유언서를 소지하게 된 사정은 이렇습니다. 전쟁 때에 어느 병사가 중상을 입고 들에 쓰러져 거의 의식 불명인 것을 그 농부가 집에 데려다가 며칠 동안 간호를 해 주었는데 그 병사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장에 자기가 사인을 다 해놓고는 돈의 액수가 얼마라는 말을 하지 않고 "이것을 기념으로 드립니다."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농부는 그 병사를 부근에다가 묻어 주고 그 병사가 준 것을 자기 자손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벽에다 딱 붙여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보증 수표 같은 유언서임이 밝혀져서 2억여 원을 찾아 썼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이와 같이 보증수표나 유언서를 현금으로 바꾸지 못하는 비극이 우리에게 있읍니다. 수학적으로 아는 지식이 자기의 피와 살로 육신화가 안 되고 활성화가 안 됩니다. 통장만 가지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현금으로 바꿔 써야 합니다. 예수를 너무도 제한하고 믿는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배울 것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보호
옛날 [헤릿그스]란 성도가 어느날 악인들에게 쫓겨 다급한 나머지 굴에 들어가 숨었다.
그때 거미가 나와 굴 입구에 줄을 치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다 되어 갈 무렵에 악인들이 나타나 굴속을 수색하려고 하다가 거미줄을 보더니 "여긴 없어"하면서 지나가 버리더란 것이다.
화를 면한 [헤릿그스]가 세월이 지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아니하신다면 절벽도 거미줄과 같을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은 거미줄도 절벽같더라"
제목: 하나님의 보호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분들 중에 아셀트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활동을 하는 중에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아셀트 선교사 집을 밤에 침입했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갈 때마다 대문 앞에서 창칼을 들고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데, 밤에 와서 끌고가 잡아먹으려 하면 그 사람이 창칼을 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고 또 그 다음 번에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아셀트 선교사를 낮에 찾아갔습니다. “낮에 가보면 없는데. 이상하게 밤에 가보면 누군가가 칼과 창을 들고 너를 지키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 식인종들의 물음에 아셀트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 그러자 식인종들은 “거짓말 마라. 한두 번이 아니고 우리가 너를 끌어다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는데도 밤만 되면 창칼을 들고 지키는 자가 있어서 무서워서 너한테 갈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가장 약할 때는 자기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한 때는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믿을 때입니다.
숨어 계신 하나님. 김우영
제목: 하나님의 보호
아폴로 13호 사건에서 인류는 인간의 능력과 과학의 한계를 배웠읍니다. 이 사고는 확률상 100만분의 1에 속하는 사고였다고 합니다. 미국 상원의 결의로 닉슨 대통령을 비롯해서 우주 비행사의 무사 귀환을 위해 4월 19일 9시를 기하여 온 국민이 기도를 했읍니다. 인간은 영원히 기도하지 아니하면 살 수가 없읍니다. 금후에 인류가 온 우주를 남김 없이 다 탐사한다 해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어린 아이와 같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읍니다. 이 100만분의 1의 사고가 미.소 핵무기 관리에 생기면 인류는 파멸입니다. 태양이 한 발자국 다가서면 우리는 모두 타서 죽고, 한 발자국만 후퇴해도 우리는 얼어 죽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잠시라도 떠나면 인류는 전멸될 요인이 이 우주에 무한히 많이 있읍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조찬 기도회 때 레너드 국방 장관은
그의 간증에서 "미국의 국방의 힘, 경제의 힘, 과학의 힘은 사상 최강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떠나서는 모두 무에 가까운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인상적인 말을 했읍니다.
제목: 하나님의 보호하심
내가 여섯 살 난 벌거숭이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나는 흐르는 시내의 뚝위 낭떠러지 기슭에 서 있었습니다. 다음 날 같은 장소에 선 나는 내가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진 커다란 바위를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어린 아이로서 그 재앙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와했습니다. 그후.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세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아리조나를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때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밤낮 차를 몰아 서로 교대로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우 이른 아침 시간에 운전을 하였으므로 운전석 옆 자리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잠이 깼습니다. 그리고 차는 길의 험한 만곡을 향하여 맹렬하게 달리고 있었고. 운전하던 친구는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즉시 운전대를 잡고 그의 발을 가속 페달에서 밀어내고 차를 돌려서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누가 나를 그 순간에 깨웠을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후 내가 목사가 되었을 때 어느날 거대한 아마존 정글 위를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길도. 건너갈 다리도 없으며 그 숲의 깊이는 90.나 됐습니다. 수많은 다른 조건들 중에서 무엇이든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지만 내가 탄 비행기는 정글로 떨어지지 않고 우리는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수호 천사가 우리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종인 천사들은 불완전한 우리를 섬깁니다. 나는 늘 가장가까운 곳에서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나 정의의 유한한 상자속에 한정할 수 없는 분이지만 인간본성 가운데 하나님의 실존과 그 신성과 능력을 알도록 창조되었으며(롬1:18-20) 특히 성서에 하나님의 본성이 4가지로 소개되었다.
첫째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계시되었다. 눈을 만든 자가 보지 않으랴, 귀를 만든자가 듣지 않으랴, 사랑을 만든 자가 사랑하지 않으랴, 부모나 부부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예수는 그 사랑의 성육신하신 분이시고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다.
둘째는 하나님의 빛이시다. 예수님이 "나는 빛이라"고 하셨다.
1.빛은 조명 즉 보고 아는 것과 관계가 있다.
2.빛은 열의 근본이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은 이 빛의 작용이다. 힘과 에네르기의 근본이기도 하다.
3.빛은 어두움(악과 무지)을 추방하는 선과 미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4.우주에 편재 충만하여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세째는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십계명은 그 거룩하심의 표현인 것이다.
네째는 하나님은 영이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분이다.
제목: 하나님의 부르심
몇 달 전 저희 교회를 다녀가신 영국의 로즈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영국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스미스라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는 원래 평신도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그가 목사님이 된 연유는 아주 놀라운 사건에 의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그가 신앙 간증을 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의 주보에 스미스 씨라고 써야 할 것을 스미스 목사라고 잘못 썼다는 것입니다. 잘못 인쇄된 주보를 보고, 그는 그 후로 모든 것을 청산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마침내 유명한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인쇄 활자를 동기로 삼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예기치 못한 기회에 부르셔서 주님의 종,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언제나 민감히 반응하여 그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분별
존 웨슬리가 32세의 선교사로 조지아주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는 한 아름다운 크리스챤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독신으로 있는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한 친구가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웨슬리는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 친구는 세 장의 종이를 준비해 한 장에는 "결혼하라", 또 한 장은 "올해는 생각지 말라", 마지막 장에는 "더이상 생각지 말라"라고 썼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했다. 15년후 그는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부적당한 배우자였으며, 웨슬리의 전도사역에 큰 장애물이었다. 20년간의 비참한 결혼생활 후에 그녀는 그를 떠났다. 제비뽑기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조지아에서 결혼했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살 때,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표적을 통해서 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성경의 원리와 훌륭한 크리스챤들의 조언과 환경과 그가 우리 마음에 주신 바른 소원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제목: 하나님의 빛
고갱의 그림에 [하나님의 빛]이란 제목이 붙은 그림이 있다. 그 내용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상적으로 된 집 한칸이있는데 이상하게도 이 집 문들은 밖에서는 열 수 없고, 집안에서 문을 열 수 있도록 문고리가 되어 있다. 고갱의 화상은 계시록 3장에 있는 예수께서 문전에서 기다리신다는 것을 상상하고 집안에서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자는 뜻이겠다.
제목: 하나님의 사람처럼
어느 사람이 세계의 존경을 받던 그렌펠 선교사에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처럼 헌신적인 생애를 살도록 영향을 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어느 날 밤, 그가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병원에 불에 몸을 몹시 데인 여인이 응급환자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여인은 몸을 너무 많이 데었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그 여인은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파라핀 등불을 던져서 그렇게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술이 반쯤 깬 남편을 경찰이 연행하여 병실로 끌고 들어왔을 때, 책임 담당관은 그 여인의 목숨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어떻게 그런 화상을 당하게 되었는지 경찰에 그대로 말해주기를 재촉하였다. 그 불쌍한 여인은 자기 침대의 곁으로 끌려온 남편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남편의 그 억센 손에 닿게 되었다. 여인의 기운없는 시선은 남편의 팔을 따라서 어깨, 그리고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고통 중에 있는 여인의 얼굴이 잠시 고결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책임 담당관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냥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그런 뒤 베개에 머리를 묻고 곧 사망했다고 한다.
윌프레드 그렌펠은 이 이야기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맺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사랑과 똑같았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사랑
한 수도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제까지의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훌륭한 설교를 하겠다고 알리며, 모든 사람들이 모이기를 강요했다. 시간이 흐르자 성전은 노인과 청년들로 가득 찼다. 모든 사람은 그 예배를 통하여 훌륭한 설교를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수도사는 설교를 시작하지 아니하였다. 대신에 촛대를 꽂아 둔 곳으로 가 밝게 타고 있는 초가 꽂힌 촛대를 집어들고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이 조각되어 있는 제단으로 올라갔다. 그 수도사는 조용하고 밝게 타고 있는 촛불로 못 박히신 예수님의 팔을 비추어서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히 볼 수 있게 하였다.
다음에는 촛불을 옮겨 역시 못 박히신 예수님의 다른 한 팔을 비췄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때 촛불은 못 박힌 예수님의 두 발을 밝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 수도사가 일어나서 돌아섰다. 그때에도 손에 쥐고 있던 촛불은 그의 얼굴을 밝게 비춰 모인 사람들은 그 수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뺨을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설교입니다."그리고 그는 축복기도를 하고서 사라졌다.
로버트 슐러
제목: 하나님의 사랑
수라는 이름을 가진 한 십대 소녀가 사회 姸╂割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농촌 주민들을 위한 기독교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생을 하는 한 마을에 도착해서 흑인 아이들을 돌보는 중에. 그녀는 흉측한 왼손을 가진 한 작은 소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몇해 전에 그 소녀의 어머니가 그 소녀의 손에 끓는 물을 엎었는데 그 가족에게 충분한 돈이 없어서 많은 돈이 드는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한 까닭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는 그 소녀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빈민가의 아이들을 위해 계획된 활동들에 참여하기를 피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손 때문이었다. 수는 그 소녀가 쌓고있는 벽을 허물고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지만 그 불구 소녀는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에 상황을 바꾸어 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수는 다른 젊은이들의 무리와 함께 그 소녀의 옆에 서 있었다. 그때 수는 곁눈으로 그 소녀의 불구가 된 왼손이 그녀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며. 이윽고 그 소녀 손의 상처 조직이 닿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몸을 움츠리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은 내가 치러야 할 시험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내 기도의 응답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해심이 담긴 미소를 그 작은 소녀를 향해 짓고. 그 상처 나고 비틀어진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바로 그 순간부터 담은 무너지게 되었다. 화상을 입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이후 최초로 그 소녀는 남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체험하였다. 수는 소녀의 친구가 되었다. 소녀는 수를 신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수는 소녀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르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쉬워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목: 하나님의 사랑 한가운데
롬 11:33-36; 엡 3:19; 골 3:14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붙잡고 주변의 높은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언덕 꼭대기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북쪽으로는 스코틀랜드, 남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대양, 서쪽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언덕과 계곡을 가리키며 팔을 들어 전체 수평선을 둥글게 그리면서 말했다.
"얘야,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이것만큼 크단다."
이 말에 아들은 생기에 차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였다.
"와! 그럼 아버지, 우리는 그 한가운데 제대로 서 있는 거네요."
제목: 하나님의 사랑 법
나는 몇 년 동안 신경질적이었다. 불안과 좌절에 빠졌었고 이기적이었다. 모두가 나를 변덕장이라고 했으며 신경질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들을 괴롭혔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고서 마음을 고쳐먹고 노력을 많이했는데도 나 자신을 개조할 수는 없었다. 가장 쓰라렸던 일은 제일 친한 친구마저 내가 너무 신경질만 부려왔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 역시 나의 개심을 고집했다. 나는 이번에도 그에게 수긍은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무력해졌고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말하였다. “바꾸지 말게나. 자넨 그대로 있어야 하네. 바꾸고 말고 할게 있겠어. 나는 자네다운 자네를 좋아하네. 자넬 더욱 사랑할 여력도 없네만.” 이 말이 음악처럼 내 귓전을 울렸다. “바꾸지 말아라. 절대 바꾸지말아라.. 나는 널 사랑해.” 그래서 나는 안심했고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오, 그 얼마나 놀라운가. 내가 바뀐 것이다. 지금은, 내가 바뀌든 바뀌지 않든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발견할 때까지 실제로 내가 빠뀔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하나님. 당신은 이런 식으로 절 사랑하시지요.
제목: 하나님의 사랑처럼
어느 사람이 세계의 존경을 받던 그렌펠 선교사에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처럼 헌신적인 생애를 살도록 영향을 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어느 날 밤, 그가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병원에 불에 몸을 몹시 데인 여인이 응급환자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여인은 몸을 너무 많이 데었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그 여인은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파라핀 등불을 던져서 그렇게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술이 반쯤 깬 남편을 경찰이 연행하여 병실로 끌고 들어왔을 때, 책임 담당관은 그 여인의 목숨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어떻게 그런 화상을 당하게 되었는지 경찰에 그대로 말해주기를 재촉하였다.
그 불쌍한 여인은 자기 침대의 곁으로 끌려온 남편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남편의 그 억센 손에 닿게 되었다.
여인의 기운없는 시선은 남편의 팔을 따라서 어깨, 그리고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고통 중에 있는 여인의 얼굴이 잠시 고결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책임 담당관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냥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그런 뒤 베개에 머리를 묻고 곧 사망했다고 한다.
윌프레드 그렌펠은 이 이야기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맺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사랑과 똑같았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사역
유명한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읍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성업을 감당하시고 계신 비밀이 어디에 있읍니까?" 이때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는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읍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땅 위 모서리 한 구석에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시기 시작하셨읍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눈동자는 머무셨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렇다, 저 사람이다.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나의 지혜로움과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나의 지혜로움과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인간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본래 똑똑하니까 저 사람은 본시 뛰어났으니까 그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인간적인 조건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때때로 인간적인 선택 기준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말씀 앞에서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의지를 따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당신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서치라이트
신 3:24; 시 119:105; 단 10:17
어느 목회자가 목회의 한계를 느껴 인생방향을 바꾸는 문제로 고민하며 기도했다.
"주님, 저는 초조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당신이 어느 길로 이끄시든지 상관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저녁, 그가 교회를 향해 차를 몰고 가고 있을 때 새로 백화점의 개관을 알리는 커다란 서치라이트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5년, 10년, 가능하면 15년 동안 살면서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시기를 원했다. 나는 하나님이 서치라이트를 들고 내 인생의 장기적이 계획을 보여 주시기를 바랐다."
그 순간 그는 마음속에 말씀하고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존, 나는 너의 길을 안내해 줄 등불을 약속했지, 인생의 과정 전체를 드러내 줄 광선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나의 등불은 네가 넘어지지 않게 지켜 줄 것이며 네가 나를 따르는 데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그는 교회에서 한 구획 떨어진 모퉁이를 돌면서 순종의 기도를 드렸다.
방황의 시간이 끝나고 있었다.
제목: 하나님의 선물
제가 미국에서 보좌 신부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열심인 부부가 아들을 데리고 늘 아침 미사에 참석하고. 종종 사제관에 들려 본당 신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년만에 아들을 갖게 되었는데. 6살이 된 그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매의 참귀한 아이였습니다. 더욱이 자녀갖기를 포기한 상태에서 얻은 귀여운 아들이었으므로 이 부부가 아이에게 쏟는 사랑과 정성은 지극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길을 건너다가 달리는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숨진 어린이를 붙들고 통곡하는 엄마 곁에 서서 본당 신부와 저는 할 말을 잃고 함께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죽은 후에도 그들은 미사에 계속 나왔지만 본당 신부나 저나 누구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한마디 말도 못한채 눈 인사만 교환(?)하면서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부부가 함께 사제관을 찾아왔습니다. 그들 부부에게 슬픈 표정을 사라져 있었고 놀랄 만큼 안정된 자세로서 잠시 동안 앉아 있더니 먼저 부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신부님. 마이클이 죽은 며칠 사이 우리 두 사람은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또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두 신부님들이 함께 슬퍼해주며 말없이 보낸 한 주일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마이클을 통해 6년 동안 지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자녀를 포기하고 살던 저희 부부에게 자녀를 주셔서 6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키워보는 낙을 가질 수 있었고.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선물은 우리들의 소유물이 아닌 바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지난 한 주일 동안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면 결코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선한 손길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 총장까지 지냈던 유명한 석학이 있었다. 그분은 원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사회적 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점 하나님을 멀리했다. 그리고 부와 명예와 지식으로 교만하다 폐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런데 폐병이 점점 심해져 요양소로 격리되었다. 그는 요양소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여러 번 자살의 충동을 느꼈다. 어느 따뜻한 봄날, 그가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한 마리의 나비가 창문 틈새로 우연히 들어왔다. 그리고 곧 그 나비는 밖으로 나가려고 창문 틈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긁무나 안스러워서 그는 나비를 잡아 밖으로 날려보내려고 하는데 나비는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자꾸만 그의 손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나직한 울음과 함께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하나님! 나는 저 나비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평안과 안식의 장소로 인도하시기 위해 선한 손길을 펴시는데 난얼마나 그 손길을 피해 다녔던가요?” 인생들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의 손에 잡힌다면 그것은 가장 슬픈 일이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잡히는 것은 가장 기쁜일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참으로 사랑하신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줄기차게 인생들에게 뿜어내고 계신다.
제목: 하나님의 속성
몇 년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을 때. 그 얼마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반대해서 싸우고 있는 아프리카 국민 협회 African National Congress 居접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던 한 흑인 그리스도인을 만났습니다. 몇 달 동안 그는 심문을 받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갖은 고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이 사람은 반죽음 상태로 병원 밖의 거리에 버려졌습니다.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이 사실을 조사한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이 흑인 그리스도인을 심문했던 책임자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어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소문만 듣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형제를 때리고 고문 하도록 도운 사람입니다. 나는 이 흑인 그리스도인의 집에서 그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고충과 그 상황에 저질러진 비인간성을 마음으로부터 해결하고 백인 형제를 용서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깊이 흐느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인간의 속성과는 반대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속성과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살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초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 이러한 성품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열매를 원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삶에서 열심히 일하시도록 허락하여야만 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손
신 32:10, 39; 벧전 5:6; 시 138:7, 8
하나님의 손은 보호를 의미한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녹스는 적들의 사악한 음모로부터 무수히 도피하였다. 그는 그의 집의 식탁머리에 있는 창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웬지 그는 그의 지정석에 앉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앉게 하지고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에 그를 죽일 계획으로 창문을 통해서 총알이 날아왔다. 그 총알은 그가 늘 앉았던 의자를 스쳐 지나가 등잔의 밑둥에 구멍을 냈다.
제목: 하나님의 손에 맡겼을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얼리니스트가 그의 놀라운 연주로 청중을 감동시켰읍니다. 한 곡이 끝나자마자 그는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을 산산조각이 나게 청중 앞에서 부숴 버렸읍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바이올린을 들고 "여러분을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부숴버린 바이올린은 길거리에서 아주 싼 값으로 구입한 이름없는 것이었읍니다. 이제 세계적인 명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얼린으로 연주하겠습니다. 하면서 다시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차이점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읍니다. 이때 바이얼린 연주자는 이렇게 말했읍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바이얼린의 가치를 이야기하였읍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음악은 악기에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가지고 있는 재능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한계를 의식하고 있읍니다. 그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문제삼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을 때 그리고 그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되었을 때 우리 모두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놀라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시간 나의 시간
신학교를 다닐 때 경건한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중 몇 명은 매 주일 설교를 했고 정말 그 일을 좋아했습니다. 너무 좋어했기때문에 그 사람들 중 몇 명은 학교를 그만두고 전 시간을 그 사역에 드리고자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학위를 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들 중 한분이 한마디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들, 주님은 오랫동안 기다리시면서 당신들이 잘 해나가는 것을 보시었네, 내가 확신하건데 그 분은 남아있는 일년도 기다릴 수 있을걸세."
그 교수님은 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상황 속으로 바쁘게 돌진하시는 예수님을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그분은 조용하고 세밀하게 일하십니다. 결코 바쁘고 부주의하게 행하시지 않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신호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한 젊은 여성에게, 그 옆에 약혼자가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해 준 적이 있다."이 남자와 결혼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두 사람은 모두 놀라서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이 남자분은 결혼이라는 관계의 가치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중요한 질문들에대해 하나도 옳게 대답한 것이 없읍니다. 이 남잡나에게서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읍니다. 오직 육체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결국 그녀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어느 날인가 내 사무실 문 앞에 서서 두뺨에 눈물을 흘리며 서있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결혼한지 겨우 4달만에 그녀는"그때 제가 목사님의 말을 들었더라면..."하면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하나님을 향하여 귀를 열어 놓지 않으면 반드시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어떤 일을 준비할 때 만약 마음 속에 떨쳐버릴 수 없는 깊은 의심이 일어난다면 행동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안된다"라고 말씀하시는 신호일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지혜롭게,하던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음과 같이 기도하여야 한다."주님, 이 일에 대한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진실을 말씀하여 주시고 당신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심판
흔히 클락과 벨의 운동이라고 알려진. 토론토 테버나클의 집회 기간 중에 프레트 클락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클락 목사는 올드 랜드의 어느 마을에 사는 살롱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는 부흥이 크게 일어남에 따라 살롱 고객이 줄어들게 되자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그 살롱 주인은 손님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전도자를 비난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집회에 참석하였다. 클락 목사는 설교 본문을 찾으려고 애를 썼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구절은“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것 뿐이었다. 다른 구절을 택하려고 여러 차례 찾았지만 도저히 아무 구절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그 구절을 설교 본문으로 사용하기로 작정하였다. 시간이 되어 그가 설교를 시작하였는데 바로 그 순간 이 살롱 주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맹세하면서 욕설을 퍼부어 모든 사람이 질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잠잠해졌는데 다음 순간 그의 목에서 물을 삼키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곧 심한 기침을 시작하더니 목구멍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져나오고 다음 순간 그는 마룻바닥에 쓰러져 어느 새 차디찬 시체로 변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날 밤 모두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와 같이 부흥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뿐 아니라 심판도 행하신다.
제목: 하나님의 십자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유대인들은 놀라운 기적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읍니다.
또 희랍인들은 철학과 같은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수 있읍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십자가를 통하여 겸손하게 일하십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읍니다.인간이 스스로 죄에서 석방될 수 없는 것을그리스도는 십자가로서 해방하셨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겸손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인간의 뛰어난 철학이나 지혜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겸손한 사람입니까?
제목: 하나님의 약속
매릴 그로스는 인공 호흡 마스크를 쓰고 두 손가락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마비된 상태로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침상에서 매릴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확신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 “두려워 말아라. 네게는 지금이 무척이나 힘든 시간들이겠구나.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있다. 너는 지금까지 고통을 받아왔으나 이젠 모든 게 좋아질 것이다.나를 믿어라.” 매릴은 그 후 정말로 병상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녀는 지난 날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지난 날 어려웠던 시절, 나는 하나님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고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내 모든 삶을 인도하고 계셨어요. 이젠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내게 말씀하실 때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파 누워 있는 동안 줄곧 내 곁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받아주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해주신 그 시간들이 내겐 아주 큰 기쁨입니다.” 중병을 겪고 난 매릴은 인생을 아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매릴은 결점 투성이이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매릴은 새로운 의미의 자기 가치를 소유하게 되었다.
제목: 하나님의 약속
2차대전 때에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큰 죄를 범했는데 거기 숨은 일화가 남아 있읍니다. 2차대전을 시작하기 전에 히틀러는 만반의 전쟁 준비를 갖추고 먼저 유대인들을 예비 구속했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갇혀 있는 곳에 히틀러가 나타났읍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죽인다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공포에 쌓여 벌벌 떨고 있었읍니다. 그때 한 노인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웃었읍니다. 히틀러가 "너는 왜 그렇게 웃느냐?" 했읍니다. 그 노인은 나이 많은 랍비였읍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유대인을 죽이려는 시도가 참으로 많았읍니다. 애굽의 바로가 유대인을 멸절하려 했고, 옛날에 아말렉족속이 그랬고, 에피파네스가 유대인을 멸절하려 했으며, 70년에 디도가 또한 그랬읍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멸절하려던 사람들은 다 죽었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금도 살아있읍니다.
앞으로도 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반드시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읍니다. 히틀러 역시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을 죽였으며, 전쟁을 개시했읍니다. 그 예언을 한 때로부터 꼭 5년 끝에 히틀러는 베를린의 포위망 속에서 자살하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살아 남아서 주후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유대인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던 그 랍비의 말대로 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양
앤드류 보나(Andrew Bonar) 박사는 스코틀랜드의 고산지대에서 양이 어떻게 바위 틈에 끼어 못나오게 되는가를 말한 적이 있다. 이 산지의 풀은 아주 달아서 양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양들이 그 풀을 뜯어먹기 위해 10 내지 12피트를 뛰어내리면 다시 올라올 수 없게 된다. 목자는 양들이 고통스러워 우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나 양들은 거기서 풀을 다 먹어치우기까지 여러 날을 있게도 된다. 목자는 양들이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로프를 자신의 몸에 감고는 내려가서 죽음에 처한 양을 건져올린다. "왜 목자들은 양이 처음 빠졌을 때 내려가지 않습니까?"라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렇게 하면, 양들은 어리석어서 목자가 내려오는 것을보고 자신의 힘을 다해 절벽으로 내달아서 죽게 되기 때문이죠."
제목: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라
매주 토요일 런던에 있는 작은 집에서는 다섯 여인이 모여 성령 충만을 얻기 위해 기도했으며. 주님께서 이들에게 임하셨다. 평범한 가정 주부인 캐더린 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에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친히 그녀에게 임하셨다. 그리하여 그녀는 영어가 아닌 새로운말로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녀는 그 당시 가장 신령한 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던 케스윅 집단이 런던에서 개최한 집회에 참석하였다. 예배는 찬송을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예배에는 열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캐더린 프라이스는 원래 지극히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그때 주님의 영이 임하셨으므로 “오. 너희가 어찌하여 이처럼 냉담하고 무관심하며 부주의하게 주님의 보혈을 찬송할 수 있단 말이냐.”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곧 그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교회 밖으로 뛰쳐나갔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진실로 성령의 임재라는 인상을 받았으므로. 이 여인에게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이후로 이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으로 찾아와 성령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집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라”는한 가지 제목으로 기도하는 집회처로 개방되었다. 왜냐하면 어린양이 흘리신 피로 성령의 은사를 샀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님의 역사
나는 인디애나 주의 시골 지역에서 나의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주일 학교에 300명의 어린이를 출석시키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 마이크라는 신실한 젊은이는 이 일에 회의적이었다.
어느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그가 벌떡 일어났다. “목사님.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어요.” 마이크는 비록 진지하고 사랑스러우며 정금같이 멋진 청년이었지만 대범하지는 못했다. “마이크. 만일 우리가 해낸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과하실 수 있습니까. 다시는 속좁은 생각은 않겠다고 성도님들에게 말하시겠어요.”라고 미소 띤 얼굴로 그에게 답변했던 생각이난다. 24세나 된 청년에게 한 말치곤 다소 경솔했지만 마이크는 언짢아하지 않았다. 드디어 주일 학교에 301번째 어린이가 출석하던 날. 마이크는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는 속좁은 생각은 하지 않겠어요”라고 온 회중에게 말했던 것이다. 바로 그날. 나는 마이크를 위해 멋진 일을 해준 것이다. 주일 학교에 301명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마이크의 꽉 막힌 사고의 뚜껑을 열게 되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대적할 거인 하나가 처치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진 애쓰며 중요한 문제에 묻혀 버둥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회자가 한 번도 시범을 보여준 적이 없는 까닭에 거인을 어떻게 눕혀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가 거인 사냥꾼이 되었을 때 자유롭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줄 유익을 상상해보라. 결국 우리 교회의 최대의 문제는 우리가 기적을 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극복할 수없이 많은 장애물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거인들을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목: 하나님의 역사
로버트슐러 목사님이 단돈 500불을 가지고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에, 교인이라고는 자기 부인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500불을 가지고 오르간과 십자가 장식을 하고 나니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슐러 목사님은 위대한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제일 자랑할 만한 유명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형편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셨기에 기적을 창조할 수 있었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지혜나 능력으로 하려 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능력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친히 역사하셔서 그의 일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역할
나는 지도자 훈련사역을 위해서 20만 달러를 6주 안에 마련해야 하는 신앙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다시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나의 역할―지도자 훈련에 참가했었던 재정능력이 있는 사람 50명을 만나보는 일;하나님의 역할―관심을 가진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그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시는 일.” 나는 이 신앙목표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명단에 뽑은 사람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람은 그 일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만 했다. 두번째 사람은 출타중이었고, 세번째 사람은 이미 다른 단체에 기부를 해서 여유가 없다고 했으며. 네번째 사람은 만날 방법이없었고. 다섯번째 사람은 이 일에 흥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만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하나님, 저는 지금 '신앙계획'대로 나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역할을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조용하고 작은 음성으로 내 마음 속에 부딪쳐왔다. “너는 지금 몇 사람이나 방문했느냐.” “다섯입니다.” “너는 몇 사람을 방문하려 했었느냐.” “50명입니다.” 내가 50명을 다 방문했을 때 비록 상상했던 식으로는 아니었으나 그 전체 금액은 마련되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8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역할을 해나가실지 정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대로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하면 된다.
제목: 하나님의 영광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미국에서 절도 잘하기로 유명한 남자와 소매치기 잘하는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읍니다. 산모가 병원엘 가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기가 손을 꼭 움켜쥐고 나왔읍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을 펴 보니 세상에 나오는 그 순간 간호원의 반지를 훔쳐쥐고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꾸민 이야기이지만 세상이 얼마나 험한가를 풍자한 얘기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요 설교자였던 스펄젼은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하고 내가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요,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은것도 도둑질하는 것이요, 주일 지키지 않는것은 주일 도둑놈이요, 예배시간에 예배하지 않은것은 예배도 둑놈이요,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도둑놈이다"고 했읍니다.
제목: 하나님의 영광
외국의 어느 동시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의 대답은 “아니요.”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그것도 아니요.” “그럼 너는 무엇이냐?”“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오.” “그려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 인생이 주님과 함께 할 때 주님의 향기가 내 속에도 생겨나고 이웃에게도 번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롬11:36 그러기에 우리가 구할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고 만물의 근원이고 섭리자이시며 그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진흙과 같은 나에게도 주님의 영광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세세로 돌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위한 것은 배설물과 같은 오물 빌3:7―8 로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삶의 자세 때문에 의의 면류관이 자신에게 예비되었다고 단언하였던 것입니다 딤후.4:8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고전10:31
제목: 하나님의 영광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은 사역의 “성공”을 교인 수. 성전건축. 새로운 프로그램. 전국적인 명성과 위신. 혹은 교회 좌석수 등으로 평가하려한다. 결국. 사업이 번창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이고 반대로. 일이 잘 안 되거나 활발치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지 않거나 그 일은 대수롭지 않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신앙에 관계된 문제이며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성공”의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기준은 뭔가 유형적이고 보다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지침을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 ..1.7:23..―..1.24..에서 자기평가를 확신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시는데. 이는 외관상 “선한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주님의 뜻의 과녁을 완전히 빗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과녁이란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충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공에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 신뢰와 봉사에로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적인 방식으로 우리 사역의 공적을 측정하지 말라고 분부하신다. 우리는 씨를 뿌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거두실 것이다.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권면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기독교인의 “성공”의 기준이 되게 하자.
누가 하나님을 대변하는가 찰스 W.콜슨
제목: 하나님의 예비하심
로라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인 게일의 권유로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만나러 갔다. 거의 40분 동안 목사님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동안 그 목사님은 말이 없었다. 깊이 생각한 후에도 말하기 전에 또 망설였다. 마침내 그는 일어나 그녀의 눈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로라. 당신은 남편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한번이라도 용서해본 적이 있습니까.” 로라는 이런 종류의 말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녀는 남편을 용서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결코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고. 그녀 역시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로라에게 고통을 초래했고. 그녀는 그가 고통에서 책임을 벗도록 하지 못했다. “로라. 내가 오늘 말한 것을 생각해보고 다음 주에 나를 보러 오겠다고 약속해주시겠어요.” 그녀는 문을 열며 혼자 중얼거렸다. 목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 주간에 결혼에 대한 로라의 시각이 변화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어떤 일이 다음 주 로라로 하여금 그 목사님의 사무실을 다시 찾게 했다. 목사님이 한 말을 잊어버리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한 주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으나 올무였던 그녀 남편에게로 생각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로라는 여전히 혼란 속에 빠졌고. 목사님과 만난 다음부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로라의 삶에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 다음 날 오후 목사님의 조용한 서재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겼다. 그녀는 또한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남편이 했던 모든 일을 용서하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제목: 하나님자녀들의 삶
이솝 우화에 보면 충직하게 주인을 섬겨오던 늙은 사냥개가 전과 같이 주인과 함께 노루 사냥을 갑니다. 얼마 후 노루를 발견한 사냥개가 있는 힘을 다해 노루를 쫓아가니 노루가 생명을 내어놓고 도망하다가 더이상 뛸수 없어 쉬는 사이에 늙은 사냥개가 전과 같이 노루의 목을 물고 늘어졌으나 이제는 이가 많이 빠진 터라 노루가 한 번 몸부림을 치자 물었던 노루를 그만 잃고 말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주인은 말채찍으로 늙은 사냥개를 막 때립니다. 사냥개가 애원을 하며 과거의 공적을 얘기했지만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때렸다고 합니다. 사탄은 이와같이 사람을 자기의 도구로 실컷 사용하다가 후에 이용가치가 없으면 지옥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고 바라보며 끝까지 순종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며 나이 많아 늙어도 그의 범사에 끝까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삶을 이 땅에서만 책임지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 나라에까지 인도하여 주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제목: 하나님중심
키엘케골은 말하기를 "기도란 것이 하나님이 내게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총의 보좌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고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 아브라함.링컨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시작되어서 많은 병사가 죽을 때마다 동족이 죽는 쓰라린 아픔 때문에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병사의 숫자가 많고 또 여러가지 여건으로 보아서 다 유리한대도 남군의 용장 로버트. 리장군때문에 늘 지기만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하루에 두 세시간씩 기도했다 합니다.
어느날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대통령을 위로합니다. 리셉션장에서 같이 이야기하다가 한 북군의 교회 대표가 링컨에서 다가가 말했습니다. "각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북군편이 되어서 북군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온 교회가 날마다 눈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랬을때 링컨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대통령의 유명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편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항상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이것은 문제가 다른 이야기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내 축복의 창고를 채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 절 잊으셨습니까?
어느 젊은 여인이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그 여인은 결혼하기로 약속한 남자가 마중을 나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에서 이른 아침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인은 가진 돈도 별로 없는 데다 이 낯선 도시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으므로 절망하기 시작했다.
이때 여행자 안내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던 한 여직원이 그녀의 얼굴에 무언가 난감한 듯한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여인은 자기의 딱한 사정을 털어 놓았다. 여행자 안내 사무소의 여직원은 마중 나오기로 했다는 그 남자에 대해서 친절하게 조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미 이 도시를 떠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직원은 실망한 젊은 여인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고 훌륭한 식사도 대접했다. 그리고 그녀를 어느 그리스도인 가정에 데리고 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거기서 지내도록 배려해 주었다.
어느 날 이 젊은 여인은 사무소에 있는 그 여직원의 친절에 감사를 표하려고 그녀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역에 도착하던 그 날 하나님께서 저를 완전히 잊으신 줄로만 알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절망에 빠진 사람을 돕도록 당신처럼 친절한 사람들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요. 이 깨달음이 저로 하여금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하더군요. 마침내 전 당신의 그 친절한 행위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제목: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남편은 왕복 3시간을 운전해서 직장을 출퇴근해야 했기에 늘 잠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더구나 몇 년 전부터 은행 융자금과 신용 카드, 그리고 각종 세금 등의 독촉으로 가해지는 정신적인 고통은 남편과 나의 환경을 두려움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나는 날마다 가정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나는 원인 모를 병으로 누워 한달 가량을 지내야 했다. 나는 나의 기도에 잠잠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주님 안에서 바로 서지 못했던 까닭은 하나님의 뜻과 나의 고집이 물 위에 떠도는 기름처럼 따로 행해졌기 때문이었음을 기도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나의 기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절망스럽게 보였지만, 나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로서의 기쁨만으로도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편의 직장이 15분 거리의 곳으로 옮겨지고 전에 있던 직장에서 그동안 보험금으로 모아 두었던 돈이 지급되어 재정 문제를 해결받는 기적적인 일들이 벌어진 것이었다. 직면하는 문제들을 놓고 발을 동동거리며 기도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점검하는 기도 방법이 가장 빠른 응답이며 최고의 비결임을 알게 된 것이다.
제목: 하나님과 만남
내 친구 낸시 메츠는 다섯 살도 안 된 두 '극성스런' 애기가 딸린 젊은 엄마이다. 이들의 작은 집에서 조용한 곳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친구는 자기 침실에서 기도해보았지만 애기들이 문을 잠그는 걸 싫어했다. 문을 닫는 게 겁이 나서 애들이 잠시도 못 참고 방해를 했다. 어느 눈 오는 아침에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교육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어서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그 다음날 아침에 또 그 방송을 돌린 낸시는 아이들이 함께 앉아서 그 프로그램을 보게 하고 그동안 자기는 침실에 들어가 문을 열어놓고 예수님과 이야기하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텝요하면 방에 들어가 만나면 될 것이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 같았다. 그녀는 반 시간 동안 하나님과 기도로 만날 수 있고, 아이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이웃 친구와 함께 들어와 방안을 기웃거렸다. 낸시가 들으니 그의 아들이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하며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예수님과 이야기하고계셔!” 어린 소년이 집에서 엄마가 매일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성장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가 자라나면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 이러한 경험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될 것인지 짐작이 가는가?
제목: 하나님과 씨름하며 보낸 밤
창 32:24-30; 엡 6:12
미국이 지금까지 배출한 가장 유능한 목사 중의 하나는 윌리엄 퀘일이다. 그는 설득력있는 웅벽가였고, 상상력이 풍부한 그리고 시적인 유머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설교 중에 어느 날 밤 너무 어려워 풀지 못하는 어떤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때 기도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듯했다. 그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기도했다. 한밤중이 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자 윌리엄, 너는 자러 가라. 남은 밤 시간은 나 혼자 깨어있으마."(DAVID JOHN DONNEN)
제목: 하나님과 우상
믿음의 조상이요, 축복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대한 기사 중에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말둑이라고 하는 태양신을 섬기는 지역이었고,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는 먼저 태양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서산에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내가 섬겨야 할 신은 저렇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와 달처럼 변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을 찾아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 데라가 상점에 우상을 잔뜩 진열해 놓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상점을 지키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우상을 사려고 들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주머니께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고 묻고는 이어서 "연세가 그정도 드신 분이 하루 아침에 깎아 만든 우상에게 절을 하고 복을 달라고 하기 위해 이 우상을 사십니까? 아예 그런 어리석은 짓일랑 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러 오는 사람을 다 돌려 보내는 것 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한 부인이 고기 접시를 가지고 상점에 와서는 우상에게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 고기 접시를 받아 제일 큰 우상에게 안겨 주고는 다른 작은 우상들은모두 부숴 버렸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 데라는 상점이 온통 수라장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우상들이 목이 부러지고 수라장이 되었느냐?"
제목: 하나님과 진실한 과학자
시 97:11; 112:4; 단 2:22
미국의 전신기 발명가인 모스 교수와의 대화에서 허베이 (GEORGE W.H-ERVEY) 목사가 이런 질문을 하였다.
"모스 교수님, 대학 교수실에서 실험할 때에 혹시 계속해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경험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종종 그런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실험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그런 쉬운 문제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좀더 많은 빛을 주십사 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빛이 옵니까?"
"예. 그러나 내가 발명한 것으로 인하여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나에 대하여 굉장한 영예를 안겨줄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영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이 그런 훌륭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그것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맡기신 것이 바로 내가 그 임무를 맡게 된 것뿐입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발명가 모스가 했던 첫 마디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닌 것이다. (MOODY MONTHLY)
제목: 하나님과 파브르
프랑스의 유명한 곤충학자인 파브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다. 하루는 건방끼가 좀 있는 학생 하나가 파브르 교수에게 따지듯 질문을 한다.
"선생님과 같은 대 과학자가 어째서 하나님의 존재 따위를 믿으시는 겁니까?
그러자 파브르 교수는 태연하게,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지는 않아!" 하는게 아닌가!
학생들이 깜짝 놀라며, "그러면서 어떻게 선생님은 매주일 교회엘 나가십니까?"하고 다그쳤다. 그래도 파브르 교수는 당황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믿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함이지. 내게 있어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곤충을 통하여 눈으로 보여 주시고, 손으로 만지게도 하여 주시고 계시니, 믿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않나!"
제목: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비결
몇 주 전에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의 성도 한 사람이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누군가 우리집 현관 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니 이웃집 부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요즘 차를 자주 사용하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그 차를 좀 빌려 쓸 수 없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라고 물었고, 그녀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플로리다에 저희 친척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집 딸이 별안간 가출을 했다지 뭐예요. 그런데 그 애가 이 근처에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듣고 두 부부가 플로리다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거예요. 그들은 사립 탐정도 고용했어요. 그런데 딸을 찾으러 다니려면 차가 꼭 필요하대요. 사정이 하도 딱해서 이 댁의 사용하지 않는 차를 좀 빌리려고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출한 딸을 찾기 위해서 그 부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낯선 사람에게서 차까지 빌리려 했으며, 사립 탐정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하면서도 아까운 줄을 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도 자신의 뜻을 거역하고 떠난 자녀에게 그와 똑같은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짓고 달아난 그 반항적인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놀라운 비결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께 빚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목:하나님과의간단없는교제
기도는 삶의 계속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1829년 브랫포드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만스톤이라는 요크셔 마을에서 스미드 위글리스워스라는 아기가 태어났다. 그 해는 영국 전역을 뒤흔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제2차 대 전도 각성 운동이 시작된 해였다.
위글리스워스는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여섯 살 때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쓰레기를 치워 돈벌이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손길이 여지없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는 192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를 펼쳤다. 192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각성시키고 실론과 인도에서 사역하였으며 여러 차례 미국을 순방하고 유럽 전역을 돌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60대의 노인으로서 그의 정열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간직하고 살아갔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던 초기에만 해도 매우 오랜 시간을 정기적으로 기도하였으나 중기와 만년에는 '성령 안에서 동행함'을 배우게 되었다. 그야말로 하나님과의 간단없는 교제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랜세월 동안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왔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한 시간 반 이상 기도하지않고 지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발은 부단히 이 땅 위에 든든히 뿌리박혀야 하겠지만 우리의 머리는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하늘나라를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제목: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가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의 노력만 가지고서는 안된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갖가지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출신으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아왔으나 참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으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으로 늘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던 중 어느 시골 농부를 만났는데. 그 얼굴에는 유난히도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 농부에게 가서 평화스런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농부는.“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내 마음은 기쁠 뿐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후 결국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과거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다”라고 고백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적인 생활을 하는것 같아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맺어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여전히 불안한 법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이 현실에서는 그 어떠한 것에서도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인생의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제목: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은 죄
언젠가 한번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기 위해 열쇠를 끼고 발동을 걸려고 하는데 시동이 되지 않았다. 축전지가 약해졌으면 끄륵끄륵 하는 소리라도 나는데 소리 하나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이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로드 서비스'를 불렀다. 트럭을 타고 온 기술자가 이것저것 한참 만지더니 붕-하고 발동이 걸렸다. 하도 이상해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발동이 걸리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기술자의 설명인즉 자동차에는 엔진을 발동시켜 주는 '스타터'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열쇠를 넣고 돌리면 축전지의 힘으로 '스타터'를 돌리고, '스타터'가 엔진의 발동을 시동시켜 주는데, 열쇠를 넣고 돌려도 '스타터'로 연결된 부분이 붙어 있지 않았기에 발동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어야 할 부분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고 하면 아무리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아무리 조금만 떨어져 나갔어도 생명선이 끊어졌기에 발동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진 상태를 죄라고 한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이다. 죄는 아무리 적어도 하나님께로부터 인생을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제목: 하나님과의 관계성
무신론자 철학자로서 유명한 니체(F.W.Nietzsche)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 속에는 신을 살해해 버리 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추악한 인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그가 너를 보고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지? 언제나 네 속을 꿰뚫어보는 그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했지?
너는 너의 증인에게 복수를 했구나. 너는 신을 죽인 것이다." 이 때 그 추악한 인간은 "나는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소."라고 말합니다.
이 추악한 인간은 끈질기게 인간에게 찾아오고 모든 것을 아는 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에는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나니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다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노래가 있습니다.
니체는 숨을 수도 없이 끈질기게 따라오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닐 수가 없어서 신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고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버지와 형제와의 관계를 끊고 도망가는, 정죄할 수 밖에 없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심판하는 대신에 축복을 보여주셨듯이, 오늘날 자신과 단절된 우리에게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를 보내셔서 새로운 관계성을 맺으시고, 새로운 축복을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끝없이 새로운 관계성을 맺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제목: 하나님과의 교제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대단히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으로 그들을 방문하시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담아, 하와야! 잘들 지냈느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주님도 안녕하시죠?” “그래, 잘 지내고 있다. 아담, 넌 뭘하고 있지?” “예. 딸기밭에 물을 주고 있어요.” “딸기가 잘 자라느냐?” “그럼요, 아버지. 아주 잘 자랍니다. 벌써 한 광주리나 따서 하와가 그것으로 딸기쨈을 만들었는 걸요.” “그래?” “예. 정말 맛있어요.”이것이 하나님과 그들이 교제한 방법입니다. 그들은 삶의 평범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종교제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셨을 때. 아담이 “하와, 어서 오르간에 앉아요. '만물들아 여호와의 권능을 송축할지어다'를 연주해줘요”라고 말했을 것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는 그것보다 훨씬 단순했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종교제도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삶 전체를 통괄하는 것으로서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계속적인 인도체계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제목: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제인은 한 성공적인 사업가의 아내로서, 세 딸을 키웠고 지금까지 사랑스런 가정을 유지해왔습니다. 제인은 지역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적인 여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난 후 제인은 공허하고 고독감을 느끼지 시작했습니다.제인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은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 열중하고,남편은 직장일에 열중하여 살아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 돈을 쓰기보다는 주님의 일에 헌금하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영적인 삶에는 깊이가 없었습니다.
제인은 주일이 되면 항상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곤 하였지만 그들의 신앙 생활은 그것으로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제인에게는 조이스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조이스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조이스는 언니의 고독감과 좌절감을 주의깊게 관찰한 결과, 제인의 영적인 삶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이스는 제인에게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면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습니다. 조이스의 충고를 따라 제인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발전시켜 나갔고, 점점 그녀의 태도는 변화되었습니다. 제인은 대학 시절 이후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교회학교 교사를 지원하였고,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이와같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제인은 문뜩 자신이 최근 몇 달 동안 고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인은 주님께 감사드렸고, 또 자기에게 귀한 조언을 해준 여동생 조이스에게 감사했습니다.
제목: 하나님과의 대화
기도는 대화다. 하나님은 성서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나는 기도로 응답한다. 말씀을 들음이 없고 그 말씀을 묵상함이 없이 기도할 때 흔히 독백이 되거나 헛되고 잡된 생각에 흐르기 쉽다.
그래서 성서를 2인칭으로 읽는 것이 유익하다. 예를 들면, 요한 복음 일장을 읽을 때, 주여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만물을 만드셨읍니다. 당신 없이 된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당신은 나의 빛이십니다. 당신 안에 나의 생명이 있읍니다. 당신이 안 계신 곳이 암흑이요, 죽음이요, 죄요, 절망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음같이 당신밖에서 나의 생명은 살길이 없나이다.
이렇게 성서를 읽으면 주님과의 대화는 무한히 풍성해진다.
제목: 하나님과의대화
E.M. 바운즈는 유명한 저서 .기도의 능력.에 프랑스 사람 마르뀌 드랑띠에게 있었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과 시간을 갖기 위해 서재로 가면서 하인에게 30분 후에 자기를 부르러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시간이 되어 하인이 서재로 갔으나 드랑띠가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방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30분 뒤 하인이 다시 왔습니다. 한 시간이나 경과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드랑띠를 방해할 만한 담력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90분 후 다시 서재로 가서 그는 주인에게 사무실로 가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르뀌드랑띠는 깜짝 놀라며. “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때는 30분이 이렇게 짧을 수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 기자가 그의 상대성 이론을 한두 마디로 설명해보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상대성이론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당신이 1분 동안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는 불운을 겪는다면. 그것은 1시간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1시간 동안 매우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가졌다면 그것은 1분처럼 느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말을 통해 배운 교훈은 우리들이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그때 누리는 즐거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음과 뜻과 감정을 나누는 진정한 교제를 나누고 있을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제목: 하나님까지 잃어버리면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윤인수가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닦기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윤인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윤인수는 열심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기뻐하며 그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았읍니다.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윤인수의 등을 두들겨 주며 “십일조를 먼저 떼자”고 했읍니다. 윤인수는 버럭 화를 냈읍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인가 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느냐”며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꼬옥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와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교훈과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 모두는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께 깨어있는 자
어느 친구와 파리 시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7층짜리 낡은 건물에다 8층을 새로 올리는 공사 현장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영적 생활에 대해서도 저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이 아닐까. 영적 생활이라는 것이 일상 생활 위에다 8층을 얹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는 8층에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믿겠지.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지. 성령께서는 그 집의 전체에 살고 계시거나 아예 살고 계시지 않을 거야. 우리 삶은 성령께서 온전히 주인이시며 활동하시는 삶 하나뿐이네.” “자네의 말대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과 자신에게 깨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도록 성령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키워야 하네.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듯 하나님께서도 실제로 존재하시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네. 현실을 도피하면서.
중압감에 쌓여. 쾌락에 탐닉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이지. 기도할 때야말로 하나님의 현존에 최대한으로 깨어 있는 상태이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잠든 삶이라네.” 비탄의 시간에 예수님 곁에는 졸고 있는 제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자주 몸이 무겁고 졸음과 어둠에 잠긴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나 공부 또는 선행 등 자기 성격에 맞는 수단을 동원하여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더 깊은 세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생명의 중심부 뗌쇄로 침잠하여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인간다운 행동도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어야 한다.
제목:하나님께 돌아가는 삶
어떤 분이 자기를 찾아온 학생들을 전도한 이야기를 했읍니다. 사영리 책자 속에 동그라미 도표가 있는 곳을 펴서 그 도표 세 개를 놓고 "자연인은 이렇게 생겼고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생겼는데, 에수 믿는 사람 가운데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과 자기로 충만한 사람이 있읍니다. 당신은 이 것들 중의 하나이죠?"하면 모두가 "예"하더랍니다. 그 외의 사람은 없읍니다. 여기 있는 사람도 그 셋 중의 하나입니다.
한 번도 빛이 없었던 사람,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 생명이 없었던 사람, 그냥 생물 학적으로 산 사람, 자연 인간, 태어난 그대로 생긴 사람, 종교인이 됐든지 철학자가 됐든지 그대로 생겨 먹은 사람, 예수의 생명이 한 번도 마음에 들어와본 적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은 허무이고 절망이고 불안이고 죄책이고 간에 죽음 같은 허무가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냐? 이 사람이냐? 이 사람이냐?' 물어 보면 '난 아무 것도 아니오.'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읍니다. 그 세 가지 동그라미 속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 이 사람이지?' 그러면 '난 그 사람은 아닙니다.' '너 예수 믿지만 네 자신으로 충만한 사람이지?'하면 '그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지?' '그 사람도 아닙니다.' 그럴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세 카테고리 속에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일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이요, 문제가 있어도 다 죽은 사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명부터 받아들여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늘 승리를 한다고 그는 말했읍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안에 살며 성령으로 살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유와 행복이 있읍니다.
제목: 하나님께 돌아가는 삶
어떤 분이 자기를 찾아온 학생들을 전도한 이야기를 했읍니다. 사영리 책자 속에 동그라미 도표가 있는 곳을 펴서 그 도표 세 개를 놓고 "자연인은 이렇게 생겼고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생겼는데, 에수 믿는 사람 가운데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과 자기로 충만한 사람이 있읍니다. 당신은 이 것들 중의 하나이죠?"하면 모두가 "예"하더랍니다. 그 외의 사람은 없읍니다. 여기 있는 사람도 그 셋 중의 하나입니다.
한 번도 빛이 없었던 사람,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 생명이 없었던 사람, 그냥 생물 학적으로 산 사람, 자연 인간, 태어난 그대로 생긴 사람, 종교인이 됐든지 철학자가 됐든지 그대로 생겨 먹은 사람, 예수의 생명이 한 번도 마음에 들어와본 적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은 허무이고 절망이고 불안이고 죄책이고 간에 죽음 같은 허무가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냐? 이 사람이냐? 이 사람이냐?' 물어 보면 '난 아무 것도 아니오.'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읍니다. 그 세 가지 동그라미 속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 이 사람이지?' 그러면 '난 그 사람은 아닙니다.' '너 예수 믿지만 네 자신으로 충만한 사람이지?'하면 '그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지?' '그 사람도 아닙니다.' 그럴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세 카테고리 속에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일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이요, 문제가 있어도 다 죽은 사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명부터 받아들여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늘 승리를 한다고 그는 말했읍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안에 살며 성령으로 살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유와 행복이 있읍니다.
제목: 하나님께 돌아옴
수년 전에 나는 타락한 농부 한 사람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를 주님께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나는 교회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이리 와서 보세요, 목사님”했습니다. 그는 나를 자기 들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추수할 것들을 보쁠시오. 이제 거둬들일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 생전에 이 같은 세대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게을러 빠졌고, 젊은 녀석들은 일을 하려 하지 솥습니다. 내가 기꺼이 좋은 보수를 주려 하지만 일하려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을 전부 거두기 전에 곡식들이 못쓰게 되겠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수년 만에 처음 보는 풍작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저것들을 다 거두어 들일 길이 없습니다.”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습니다.“나의 형제여,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밭이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지만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형제가 하나님이 그의 곡식을 추수하시는 것을 도와주시기를 간청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형제여, 내 생각에 만일 형제가 하나님의 추수밭으로 가시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라도 형제의 밭에 일꾼을 보내어 주시리라 생각되는군요.” 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추수밭으로 나갔습니다. 수일 내에 하나님께서 충분한 일꾼을 보내어 수년 만에 이룬 풍작을 추수하도록 공급하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목: 하나님께 맡김
옛날에 어떤 남자와 그의 부인이 오래 전에 약속한 대로, 약 4~5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상쾌한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섰다. 그 착한 부인은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들고 갔다. 그런데 집을 나선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갑자기 그들이 건너야만 하는 매우 오래 되고 불 완전한 다리를 생각해내고는 그것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 다리 어떻게 건긁지요? 나는 결코 그 다리를 건긁지 못할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그 강을 건널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 깜빡 잊고 있었군! 그 다리는 정말 위험한 곳인데, 만일 다리가 부서져서 우리들이 물에 빠져 죽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했다. 부인은 “그보다 당신이 썩은 널판지를 밟고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해봐요. 그러면 나와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라고 또다시 걱정했다. 이에 남편은 “몰라, 우리 중에 누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는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우리는 당연히 굶어 죽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걱정을 하며 애를 태우고 불길한 것을 생각하면서 마침내 다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보라.
그들이 지난번에 거기에 갔다 온 이후 그 자리엔 훌륭하고 견고한 새 돌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무사히 다리를 건넌 그들은 부질없는 걱정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한 사랑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신다. 미래에 대하여 막연한 염려나 걱정으로 불안해 하지 말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 하나님께 반역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앙화가 없도록 하기 위해 옛날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경배하고 부처도 경배합니다.
추석에는 성묘도 합니다.” 보통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다 하면서 앙화가 없도록 하나님도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사드리는 것이야말로 무관심입니다. 그리고 그 무관심이야말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는 하나님께의 반역입니다. 그것은 좋은 말로써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아내는 청소, 세탁, 취사 등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합니다. 그 남편은 좋은 아내를 얻어 행복할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남편에게 말도 걸지 않고 남편이 머리가 아프든 열이 있든 상관없이 한 쪽으로 제쳐 놓고, 자기 중심으로만 살아 간다면 그 아내가 훌륭한 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네모진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지 않고 대강대강 치우며 죽밥과 탄밥을 번갈아 짓는다해도 마음속 깊이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과 마음이 통하게 끔 해준다면 아내는 그에게 있어 더없이 훌륭하며, 남편 역시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하나님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은 표면상으로는 어떻든간에 마음과 행함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대해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역하는 백성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께 속한 자
영적인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 마음의 중심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계시고, 나는 그분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떡하든지 나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 대신 예수님이 점점 내 삶을 점령하시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한참 예수님 잘 믿다가도 가끔 육적인 생각이 날 때 가만히 나 자신을 돌아보면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내 주장, 내 권리, 내 생각이 점점 없어지게 되니까 말입니다. 1970년대에 제가 어느 미국 텔레비전의 한 시간짜리 대담 프로에 출연해서 진행자와 여러 가지 대담을 나누었는데, 방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라는 인간은 어느새 간 곳 없고 그저 '예수님이, 바울이, 이사야가, 창세기에'등으로 일관된 저의 사고영역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올 때는 원대한 꿈을 갖고, 내 주장과 내 아이디어를 멋지게 펼쳐보이는 위대한 교수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간 데가 없고 남은 것이라곤 성경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되려고 미국 왔나'싶어 공연히 억울한(?)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그러나 곧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직도 더 죽어야 할 나의 자아, 나의 고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매순간 나의 생각, 행동, 말을 통제하고 관할하셔서 나를 통해 예수님만을 늘 나타내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제목: 하나님께 영광
유럽계 유태인들을 구출하는데 참가했다는 명목으로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나이 많은 네델란드인 코리텐 붐 여사는 종종 우리 학교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던 우리들의 오랜 친구이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코리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굉장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로렌, 맞아요. 그렇지만 나는 날마다 내 자신이 죄수 번호66730의 죄수였음을 상기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라벤스쿠르크 집단 수용소에 포로로 있었을 때의 죄수 번호였다. 코리 여사도 연단을 거쳤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목욕 순서를 기다리며 나치 친위대 경비병 앞에서 발가벗은 채로 서 있으면서,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아픔을 기꺼이 감당해야 했었다. 40대 후반의 독신녀로서 어떻게 그녀가 그들의 잔인하고 조롱에 찬 눈길들을 감수한 채 그곳에 서 있을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분 역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발가벗긴 채였음을 기억나게 해주셨다. 그리고 그분을 쳐다본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멸시했음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명예를 포기하셨었음을. 만일 당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당신은 명예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유익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제목: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삶
윌버 채프먼이 런던에 있을 때 부스 장군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부스 장군은 80이 넘은 고령이었다. 채프먼 박사는 이 노장군이 지나간 재판과 투쟁, 승리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경건하게 들었다. 그리고나서 이 미국의 복음주의자는 성공의 비결이 있으시면 가르쳐 주십사고 부탁하였다.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윽고 눈물이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그래, 내 비결을 말해주지. 바로 하나님이오.
나보다 두뇌가 우수한 사람도 많았고 기회가 좋았던 사람도 있었겠지. 그러나 내 가슴에 런던의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던 날부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면 이들을 어찌 구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날부터 나는 결심했지. 하나님께서 윌리엄 부스를 모두 가지시게 될 것이라고 말이오.
오늘날 구세군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모두 하나님 께서 내 마음의 모든 사랑, 의지력,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영향력을 가지신 때문이오"라고 했다.
채프먼 박사는 이 만남에서 다음의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인간의 위대한 힘이란 그의 복종과 헌신에 달렸다."
제목: 하나님께 호소할 고난
고난의 때에는, 결코 자기 스스로와 말하거나, 무리한 생각에 빠지는 일 없이, 하나님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마음에도, 괴로움 그것에도, 전혀 다른 영향을 가져오는 것이다. 결코 인간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또는 증오나 분노에 자리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괴로움을 더할 뿐이고 또는 전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님께는 먼 곳이 없다
마 28:1; 요 20:1-11
영국의 로지 경이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아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 거기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제 무덤에 오지 마세요. 저는 거기 없을거예요."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백록>에도 죽음을 슬퍼하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감동적인 내용이있다. 이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것이었다. 모니카는 처음에 죽으면 자기 남편 곁에 묻히고 싶어했고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자기 무덤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따라 이탈리아로 가서 살게 되었다. 모니카는 자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는 아들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내 몸을 아무 데든 묻어라. 장지 문제로 신경쓰지 말아라."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묻히게 되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께는 먼 곳이 없단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삶은 무덤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목: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테니까요
약 2:14, 17-24; 히 10:38, 39; 고전 15:17
큰 홍수가 났다. 한 성직자가 누구든 구해 주려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부상당한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물은 계속 불어났다. 그 때 보트 한 척이 가까이 오더니 한 사내가 소리질렀다.
"구해 드릴까요?"
그러나 성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그래서 보트에 탄 사람은 그를 지나쳐갔다.
물은 이제 턱에까지 차 올랐다. 그는 여전히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썼다. 한 어머니와 두 아이들을 구하고 있을 때 또 한 척의 보트가 다가왔다.
"구해 드릴까요?"
이 때에도 성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 주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테니까요."
두 사람을 구한 보트는 그를 버려두고 갔다. 그러는 사이에 물은 성직자의 키를 넘어 버렸다. 결국 익사한 그는 천국의 진주 대문에 당도하였다. 성 베드로가 그를 하나님의 대전으로 인도해 갔다. 성직자가 하나님께 말했다.
"주님, 전 언제나 선하게 살았습니다. 주린 자들을 먹이며, 집 없는 자들을 도우며 열심히 기도했고, 사람들을 인도하여 주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왜 그 무서운 홍수에서 저를 구해 주시지 않았나요?"
"날 원망하지 말아라. 난 널 구하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단다. 네게 보트를 두 척이나 보내지 않았더냐?"
제목: 하나님께서 보낸 편지
한 선교사가 브라질의 어느 시골에서 문명과 격리 된 채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교사가 매일 무언가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은 이전에는 종이난 책을 본적이 없었다.
하루는 선교사가 원주민들에게 자신이 매일 보던 성경책을 보여주면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로 부터 온 소식을 듣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부터 원주민들은 선교사에게 묻곤 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무슨 소식을 알려주셨나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편지다.
제목: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다가
남가주에서 있었던 사실이다.
결혼한 젊은 부부가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었다.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동안 자녀가 없었다. 이들 부부는 이것을 목적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일년 오년 십년을 이렇게 하기를 15년이 지나도 자녀가 없었다. 아내는 깊은 실망을 느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낙심치 말자고 위로도 하고 희망을 갖고 계속 기도했다.
16년째 되던 해 드디어 아내가 애기를 가졌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그들은 뛸 뜻이 기뻐하였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해산달이 다가오면서 다니엘과 에스더라는 아들 딸의 이름도 지어 두었으며 아기 방을 온갖 것으로 꾸며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이윽고 산기가 있어 병원에 갔다. 무서운 진통이 있은 후 사내아이를 분만하였다. 고통이 사라지고 아기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보여 주지를 않았다. 몇 번이나 요구한 후 간호원이 데려온 아이를 본 엄마는 까무라쳤읍니다. 온 몸과 얼굴이 뒤틀린 흉칙스런 기형아였다.
그렇게도 잘하고 감사했는데 말이다.
나중에야 안 남편은 더욱 절망으로 사색이 되었다. "오 하나님! 어쩌다가 우리에게 이런 형벌을" 하고 부르짖으며 통곡했다. 아내는 깨어난후 밤새도록 울었다. 의사와 간호원도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남편이 병실의 아내를 찾아왔다.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씻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여보,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어떤 가정에 주면 가장 사랑으로 키울까 하고 지금부터 10년간 고심하시며 찾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생각하시다가 우리 부부 가정에 맡겨지면 제일 많은 사랑을 받으리라 결정하시고 우리 가정에 주신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키우겠습니다. 당신도 이 생명을 도와 주세요."
남편도 울고 아내도 울고 들어왔던 간호원도 따라 울었습니다.
제목: 하나님께서 시키셨어요
그 날 따라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규민이는 용케 자리를 잡아 앉아 있었는데 어느 역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아기를 업고 손에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규민이는 얼른 일어나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가방을 들어 선반에 올려 드렸습니다.
다리는 좀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아주머니께서 내리시려고 하자 규민이는 선반 위의 가방을 내려다주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학생,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
규민이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하나님께서 시키셔서 하는 일인걸요. 저한테 고마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고마워하세요."
그리고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골로새서 3:17)
우리가 가끔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리가 가로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 이룬 것 같이 뻐기기만 하다가 힘든 일이 닥쳐 좌절하고 쓰러질 때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주예수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고 일을 이루든지 못 이루든지 그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 시니까요.
제목: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한번은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말씀과 찬양의 제전 이라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그 모임은 토론토 시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모여서 하는 것으로 말씀은 제가 하고 음악은 토론토에 있는 합창단이 했는데. 저는 그분들의 합창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직까지 그런 합창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헨델의 .메시야.를 불렀는데 얼마나 잘 하는지 듣고 눈물을 흘리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것은 매년 어디서나 듣는 것이었는데도 그때 그 메시지도 감동적이었지만 한국사람들이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이국 땅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국 땅에 와서 까만 치마와 흰 블라우스를 입고 노래부르는 모습은 그들이 비록 햄버거를 구울지언정 그날은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을 쓰십니다. 나는 똑똑한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왜냐하면 똑똑한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지 않고 자기 왕국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너무 잘 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 보이지 예수님은 안 보입니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야 할 수 없이 하나님만 의뢰할 수밖에 없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면
광산촌의 보건소란 특별한 소명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아예 상상도 하지 못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가난하고 작은 한 광산촌에 의사 크로닌이 부임했습니다. 그곳에는 20여 년간을 인내와 헌신 그리고 사랑으로 그곳 주민들을 섬겨왔던 올리브란 이름의 간호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간호원은 항상 즐거움 속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건소에 나가도 크로닌보다 먼저 나와 있고 항상 밝고. 귀한 마음으로 상냥하게 다친 환자들과 찾아오는 병자들을 위로해주며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올리브. 당신은 20년 동안 꽃다운 젊음을 이 광산촌에다가 바쳤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노력과 헌신에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에게 주는 월급이 아주 적은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같은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당신은 불만이나 또는 보건소 당국에 시정을 요구하지 아니하는 것을 볼 때에. 도리어 제가 이상하게 생각이 됩니다.” 그러자 그녀는 살그머니 웃으면서. “아니요. 저는 생활하는데 별다른 불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건소에서 주는 이 월급이 나에게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니요. 절대로 그 월급이 당신에게 충분한 보답이 될 수가 없고 또한 그것을 가지고는 당신의 생활에도 충분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더 받아야 합니다. 이곳 주민들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당신은 더 받아야 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크로닌 박사님. 하나님께서 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알아주신다고 하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들도 올리브 여인의 이 한마디를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제 이 한 주간 동안 우리는 나의 섬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찾아 한 통의 편지나 한 통의 전화를 한 송이의 꽃을 전해주는 우리가 됩시다.
제목: 하나님께서 웃으실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태엽을 바 줄 네지가 없는데 시계가 움직이고 있다. 태엽이 끊긴 시계를 수선할 사람이 없다. 시계방이 없는데 시계가 있다. 기관차가 없는데 기차와 시간표가 있다. 심지를 태울 기름을 부을 사람이 없는 등불이 켜져 있다. 정원사가 없는데 뜰이 있다.
꽃을 만드는 사람이 없는데 꽃이 있다. 조건을 세울 사람이 없는데 조건이 있다.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늘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은, 어리석은 무신론을 웃으실 것임에 틀림없다.
제목: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스트로맨이라는 연구원이 교회를 드나드는 청년 7천명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60% 이상이 선한 생활에 힘쓰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 이상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통계자료가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공로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공로주의를 배격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지혜는 무엇인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죄인인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경건생활에 힘써도 내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기까지 헌신해도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자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내가 얻은 황홀한 구원, 옥한흠)
제목: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인도의 이름난 성자인 선다 싱은 원래 힌두교의 한 분파인 시이크 교도였으며, 성격이 난폭하여 청소년 시절에는 선생님들 앞에서 신약 성경을 한장씩 찢어서 불사를 정도로 악했습니다. 그러나 14세 때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성령으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그를 쫓아내었고, 이웃 사람들은 그를 박해하였습니다. 그 후 고향에서부터 전도를 시작하여 결국 무서운 아버지까지 하나님께 인도하였고, 인도의 부흥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누추한 자기 동족들의 발을 씻기며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40세에 티벳 산속으로 사라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자, 인도 사람들은 그를 인도에 나타난 예수님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는 지난날에는 힌두교의 철학과 죽은 종교를 위하여 살았지만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는 주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복음을 위하여 살고 또 죽어간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해에는 성령 충만을 받도록 사모하고 기다립시다. 나의 힘과 실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힘을 덧입어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감당합시다. 그것이 감격스런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며 하나님의 일을 실수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제목: 하나님께서 주신 것
전쟁터에서 팔 하나를 잃어버리고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간호하기 위해 왔습니다.
어머니는 누워있는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려고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들고 있는 성경을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필요 없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내 팔이 이렇게 잘려지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겠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오른손을 잡으며 "네게는 아직도 오른손이 남아 있지 않니? 하나님은 네 왼팔을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오른 팔을 남겨주신 것이란다. 이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단다."
그 후로 아들은 한 쪽 팔만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아, 이 미련한 민족아, 너희는 어찌하여 주께 이처럼 갚느냐? 그는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희를 만드시고 일으키신 분이 아니시냐? (신명기 32:6)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흙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셔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불평을 합니다.
'왜 나는 키가 작을까?'
'왜 나는 뚱뚱할까?'
그러다가 다쳐서 팔이라도 하나 잃는 날이면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팔을 하나 가져 가신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나머지 몸뚱이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왜 나는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다는 비유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의 지금 모습에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제목: 하나님께서는 정말 계시나요
인생에 있어서 큰 변혁 중의 하나가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성도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아이가 태어나서 자기 아이라고 품에 안아보니까 아이의 눈을 보기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다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니까 우리 주님께 외에는 달리 갈 데가 없더랍니다. 이런 전환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저희 교회에서 과거에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던 최집사님이 처음에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그 집 큰 딸이 유치원을 다니면서 어느 날 아버지에게 질문을했습니다. 그 유치원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습니다. “아빠. 하나님께서는 정말 계시나요.” 안계시다고 말하자니 벌을 받을 것 같고. 계시다고 말하자니 잘 모르겠고 해서 그냥 어물쩡 대답을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하루종일 그 딸 아이의 질문을 생각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저를 만났습니다. 제가 목사라고 소개하니까 “당신이 목사라면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겠네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해서 그 분과 같이 앉아서 성경을 펼치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같이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그 분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처럼 자녀문제로 충격을 받아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아버지 서재 안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그 아이는 아버지 옆에 조용히 앉아서 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얼마 후에 아버지가 말했다"얘야 뭐 원하는 것이 있니?" "아니요" 그 소녀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 앉아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곧 소녀는 들어올 때와 똑같이 조용하게 방을 나갔다. 그소녀는 자기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해 달라고 온 것이 아니었었다. 그 소녀는 그저 아버지 곁에 있고 싶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아버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시간을 보내면서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좀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던가? 혹은 나는 하나님께 간구할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나 바쁘고 필요한 것이 많아서 종종 하나님께 급히 달려가서 우리의 간구를 드리고는 충분히 하나님으로부터 듣지도 않고 다시 급하게 달려나온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제목: 하나님만 아는 비밀
어느 북유럽의 도시에 시계탑이 하나 있는데 그 시계탑을 만들었을 당시에는 시계 만드는 기술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따라 종을 울려주는 그런 혜택을 고맙게 생각하고 시계를 만든 제작자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계를 만든 직공은 그 시계속에 자기만 아는 비밀한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고장났을때 자기가 아니면 아무도 시계를 고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모든 시민들에게 그 시계는 애정의 대상이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시계의 종소리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모든 시민이 이모 저모로 고쳐 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밀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시계를 만든 제작자를 찾게 되었고, 그 제작자는 즉시 고쳤으므로 그 시계는 다시 시간을 알려주는 종을 울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속에는 하나님만 아는 비밀이 있고 하나님만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하나님만이 개발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
어느 날 오후.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내 눈을 피해가며 아무 말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집에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너의 하나님이 너를 위해 베푸신 것이 겨우 요모양이냐.” 사탄의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때처럼 곤혹스러운 때가 없었다. 우리는 그때 오클라호마 한 가운데에 살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막막하기만 했다.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져서 나는 일자리를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반대했다. 내가 돈 버는 일에 시간을 쏟다보면 양육해야 할 형제들을 위해 일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 생각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전 같으면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믿음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앙을 고백했을 텐데 그때는 무기력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아내가 나가 문을 열었다. 나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집 앞에 채소 두 상자를 놓고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 기회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 속에 인내와 소망을 심어주었다. 환난이 없다면 주를 그렇게 가깝게 따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난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제목: 하나님만이 아신다.
의사들간에 쓰는 은어 중에 'G.O.K'라는 은어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신다(God only Know)'라는 뜻으로 의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의학적수단과 방법을 다 쓴 후에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뜻으로 쓴다고 한다.
몇년전만해도 불치병으로 생각되던 많은 병들이 현대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점차 그 위세가 꺾이고 상당수 많은 병들은 간단한 약물치료로 완치가 가능할 만큼 현대 의학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최첨단 시설에서 막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들이나, 첨단장비로 환자들을 진찰한 많은 의사들이 마지막 장벽에 부딪치면 'G.O.K'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의사들의 치료 대상인 사람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이다.
제목: 하나님말씀의 위력
현재 미국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목사님 중에 유명한 저술가요, 탁월한 설교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분이 계쁠니다. 그분이 두 주간 동안 캐나다에 세미나 인도차 혼자서 여행을 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주말이 되었습니다.
무슨 계획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집 생각도 나고 어쩐지 고독해서 호텔을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여기저기를 서성거리고 다녔나 봅니다. 호텔 주변을 돌다가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6층 단추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을 팔로 가로지르면서 아름답게 생긴 젊은 여자 두 사람이 타는 것이었습니다. 몇 층을 가는지 단추를 눌러야 하는데 누르지를 솥았습니다. 그 대신 생글생글거리며 목사님을 쳐다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6층, 어때요? 오늘 오후에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나요? 함께 지내면 참 즐거울 것 같은데요? 순간 그 목사님은 위기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가 그때 무슨 생각을 제일 먼저 했는지 아쁠니까? 이 여자들 하고 한번 재미를 볼까 하는 생각이 아니었고 누가 보면 어떻게 하지 하는 우려감도 아니었습니다. 제일 먼저 마음에 떠오른 것은 자기가 외워 놓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에 말씀을 열심히 외웠기 때문에 적절하게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3층 단추를 눌렀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안녕히 가쁠시오. 나는 여러분이 던지는 그 제안에는 아무 흥미가 없습니다” 하고 냉정하게 말을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유혹 앞에서 얼마나 단호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모릅니다.
제목: 하나님 손에
어느 사람이 교도소에서 30년간을 보내고 세상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서 나왔습니다. 감방 안에 있는 동안 하도 심심하고 답답한 날을 보내다가 감방안에 개미 한 마리가 들어오는 것이 보여서 그것을 잡아 가지고 열심히 훈련을 잘 시켰다고 합니다. 하도 오랜 세월 훈련을 시키니까 미물인 개미이지마는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앞으로 가라면 가고 뛰라면 뛰고 별란 재간을 다 부리는데 이 사람은 그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와서 30년을 교도소에 살았으니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나올 때얼마 받은 돈을 가지고 고급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라도 한 번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30년간 교도소 밥만 먹었으니 지루하기도 해서 식당에 들어가 양식이나 청해 먹으리라 하고 30년간 같이 지내온 개미를 데리고 나왔는데 자기 나름대로는 그것 밖에 다른 것은 사람에게 보일 것도 자랑할 것도 없어서 테이블 위에다 앉혀 놓고 “가만히 앉아 있어”하니 꼼짝않고 앉아서 주인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람은 이 개미가 얼마나 재간을 부리나 하는 것을 자랑하고 놀라게 할 마음이 있어서 시중을 드느라고 바삐 왔다갔다하는 웨이터를 불렀습니다. “여보시오. 웨이터” 했더니 인사성 있게 훈련된 웨이터가 와서 깍듯이 인사를 하며 “손님 부르셨습니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합니다. 이 사람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개미의 쇼를 보여 주려고 30년 동안 훈련시킨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해서 웨이터에게 말했습니다. “웨이터, 이 테이블 위에 개미가 보이시오.” 했더니, 이 웨이터가 얼굴이 붉어지면서 “손님 죄송합니다”하면서 가만히 앉아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며 쇼를 하려 하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집어 싹 비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만든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뜻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실 때는 개미가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 앞에 나를 바쳤을 때
하나님 앞에 나를 바쳤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오셔서 나 자신과 나의 문제들을 당신의 영원한 눈으로 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을 내마음 속에 넣어 주시고 특히 당신의 판단력을 내게 주셨다. 그리고 나의 시야를 넓혀주시고, 삶을 사는 데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며,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지를 가르쳐주셨다. 나는 망상이란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혼동하는 상태라고 본다.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어떤 사건이 가까이서 일어날 때면 나는 몹시 긴장하여 모든 것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하여 엉뚱한 곳에 뛰어들어 싸움을 하려 하거나 엉뚱한 문제에 초점을 두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전부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내 곁에 오셔서 부드럽게 내 마음을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셨다. 그리고 나를 혼동에서 구해 주셨다.
제목: 하나님은 가까이 계셔 기도들
어느날 한 소년이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다.
그때에 한 집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소리를 크게 내어서 기도를 하는지 대들보가 흔들릴 정도 였다.
그 기도가 끝났을 때 아이는 어머니에게 귀속말로 이야기 했다.
<엄마 저 집사님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었다면 저렇게 크게 기도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안 그레요?> 했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고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실 줄 믿어야 한다.
제목: 하나님은 너무 오래 참으셨지
어느 목사님이 주일 예배를 끝내고 점심식사를 마친 뒤 책상 옆 소파에 기대고 사색에 빠져 있었다. 이때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불길한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들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교회 어느 집사님이 교통 사고로 중상을 입어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전갈이다. 부랴부랴 그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다른 데는 크게 이상이 없었지만 얼굴 부위에 붕대를 휘감은채 만신창이가 되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고 한쪽 눈만 겨우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졸지에 당한 일이기도 하고 또 얼굴에 상처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손을 잡고 “집사님, 어떻게 된 일이요?” 하였더니 조용히 목사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한쪽 드러난 눈에서 눈물이 흘러 얼굴을 감은 붕대를 적시었다. 그리고 목사님 손을 더 꼬옥 잡고는 엄숙하리만치 가라앉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목사님 염려마세요.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오래 참으셨지요”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집사의 짧은 말 속에서 이 목사님은 깊은 의미를 알 듯하여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손을 잡은 채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무 오래 참으셨지요”라는 교통사고 환자의 말 속에 감사와 함께 그의 볼 수 없었던 과거를 한눈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지키셨다는 확신이 서려 있기도 한 것 같았다. “하나님이 너무 오래 참으셨습니다”라는 말이 우리들 모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제목: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어느 신학교 학년말 시험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철야 기도만 하는 신학도에게 교수가 공부 좀 하라고 타일렀더니 교수의 말은 듣지 않고 기도만 했다고 한다. 그 신학도는 주님의 말씀대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11:10)는 말씀만 철석같이 믿고 밤새 기도하고 난 다음 그 다음날 드디어 시험에 임했다.
앞에 놓여진 시험 문제의 답을 모르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는 단 한 문장만 써놓고 유유히 교실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시험지를 보고 기가 막힌 담당 교수는 그 답안지에 "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 학생은 다 모르니 0점"이라 채점하여 그 학생은 결국 낙제를 하였다고 한다.
요즈음도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하면서 사는 게으른 교인들이 많이 있다. 게을러 가난하면서도 하나님은 부자라 하여 만족해 하거나 또 인색하여 헌금은 안하면서도 하나님은 내 사정을 잘 아신다고 하며 위로를 받거나 또 세상일에 골몰해서 주일을 잘 지키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은 내 바쁜 형편을 다 아실 것이라는 터무니 없이 왜곡된 사고로 편리하게 살아가는 신자가 있다면 그는 오늘 그의 생각을 고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내가 노력안하는 것 까지도 정말 하나님은 다 아신다."
제목: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데요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차가 나타나질 않습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은 바작바작 다가오고 차는 없고... 그래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도를 할 수 밖에요. 가까스로 택시를 잡았을 때는 20분 밖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역촌동에서 동부이촌동까지 20분 동안에 달린다는 건 힘이 듭니다. 신호등만 없어도 새벽길이니까 어떻게 될 수도 있으련만, 집에서 교회까지 아마 신호등이 30개는 족히 넘는 것 같습니다. 이 신호등이 자동으로 꺼지고 켜지기 때문에, 아무도 건너는 사람이 없지만 푸른 등이 켜질 때까지는 마냥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러니 조바심이 날 수 밖에요. 그래서 엉겹결에 택시 운전사한테 재촉을 했습니다. 비록 빨간 불이 켜져 있지만 건너는 사람이 없으니까그냥 가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택시 운전기사가 이러는 겁니다. "손님. 사람은 보지 않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데요..." 저는 커다란 몽둥이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예리한 비수로 심장이 찔리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한답시고 교회에 가는 목사가 개인택시 운전사 한테 엄청난 설교를 들은 것입니다. 나이 지긋한 그 개인택시 운전기사는 어쩌면 무심결에 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제 심장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바르게 삽시다.
제목: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A)어느 가을 달밤에 어떤 사람이 어린 아들과 같이 바람쏘이려 들판에 나갔더니 무우밭에 무우가 먹음직하게 보여서 아들보고 망을 보라하여 아버지는 밭에 들어가서 무우를 잡고 뽑을려고 하는데 아들이"아버지 누가 봅니다"하니 아버지는 누가 보는 것같읍니다" 아이는 주일하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아이는 무릇 두번이나 번복하였다 아버지는 "에이! 아무도없지 않니!하면서 세번째 밭에 들어기가 무우를 뽑을려고 하는데 "아버지 봅니다"하고 소리를 쳤다 그때 아버지는 또 나와서 "야! 보기는 누가 보느냐?" "아버지! 하나님이 보십니다 하였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는 것이다.
B)어떤 아이가 길을 가는데 전공구 또 철사 전기줄 그리고 여러 가지 철품이 있어서 웬 홍자인가 하여 주어서 가져 갈려고 하는데 어디서 소리가 나기를 "이놈 두고 가거라"하여 아이는 이상하다 생각하고 주위를 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소리가 들리는데 위에서 들려 왔다 그래서 위로쳐다 보았더니 전기기사가 전주대 위에서 전기를 손보면서 말하였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누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도적질하고 악을 행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신다.
제목: 하나님은 사랑 그자체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며, 당신을 사랑하시는고로 당신도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한 나머지 모든 영광과 권능을 버리신 독생자 예수를 나타내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지금 묻고 계신다. "너는 어떻게 그에게 감사를 하느냐" 너는 그를 위해 무엇을 버렸느냐?" 재물로써 단지 물질만 드리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바치라. 당신의 자유와 욕망과 의지와 당신의 마음과 생애까지도 맡기라. 이러한 희생이야말로 당신을 하나님에게 묶는 것이 되고 당신을 그와 연합하는 길이 된다. 그러면 하늘과 땅의 큰 보화를 찾게 되는 것이며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제목: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찰스 스펄전은 어느날 농장 건물의 지붕 위에 달린 바람개비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라는 구절이 쓰여 있는것을 보고 그 주인인 농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이 저 바람개비처럼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핵심을 놓치셨읍니다그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거나 상관없이 하나님은 조용한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바람개비 위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농부의 말 속에는 많은 진리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므로 사랑은 영원하다고 알고있다. 하나님은 절대 변하시지 않기 때문에 사랑도 절대 안변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품성에 뿌리박고 그 위에 세워진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을 알 때에만 사랑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만 사랑받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제목: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팔월 대보름날 고개 넘어 큰 집에 다니러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답니다. 아이는 주일학교에 다니고 아버지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길가는 도중인데 무우밭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 목이 말라 안 되겠다. 무우 한 개 뽑아 먹어야겠다. 너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누가 오거든 빨리 알려라”하고 아들 대답도 들어보지 않고 무우밭에 들어가 다리통만한 무우를 쑥 뽑는데 갑자기 밭머리에서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어쿠. 큰일났구나 싶어 빨리 밭머리로 나와서 보니 인기척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이놈아. 아무도 안 오지 않냐.. 남자가 간이 커야지. 똑똑히 지켜”하고 무우밭으로 또 다시 들어가서 다리통만한 무우를 쑥 뽑으려 하는데 이번에도 또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하고 소리칩니다.
그래서 급히 나와 사방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누가 보더냐.” “하늘에 달과 별이 보고 있습니다” “이놈 자식 똑똑히지켜.” 아버지는 다시 무우밭으로 들어가서 아까처럼 다리통만한 무우를 쑥 뽑으려는데 “아버지. 정말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헐레벌떡 나와서는 “누가 보더냐.”하니까 “하나님이 다 내려다보고 계십니다”라고 아들이 이야기 하더랍니다. 이렇게 되니까 더이상 그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얘야. 내가 잘못했다”하면 될 것을 아들의 머리통을 군밤으로 쥐어박으면서 “가자. 장난으로 그래 봤다” 했더랍니다. 사람은 보지 않았으니 모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은밀한 죄. 부끄러운 죄. 부지중에 지은 죄. 의도적인 죄. 태만 죄. 게으름 죄. 믿지 않는 죄 등을 많이 짓고 사는 게 인생입니다.
제목: 하나님은 어디에
1928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종군 작가인 엘리위젤이 쓴 [밤]이란 책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나치 정권 아래에서 대량 학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일에 주동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인 아히만이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습니다. 어느 날 큰 거리에 아치를 세우고 남녀 각각 한 사람씩과 한 어린 소년의 목을 아치에 매달아두고 많은 사람들을 그 밑으로 지나가게 하며 위협했습니다. 이때 종군 기자이며 작가인 엘리위젤이 한 독일군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능청스런 독일 군인은 “지금 막 죽어가는 저 소년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전 후 아히만은 자기의 범죄상이 너무 두려워서 어디론가 잠적해버렸습니다. 유대 비밀 경찰은 총력을 기울여 아히만을 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여러 해만에 아르헨티나 어떤 시골 공장에서 수염을 기르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이름까지 고쳐 살던 아히만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방탄 유리 상자에 넣어져서 최고 재판소의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위젤은 그의 책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두번째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히만을 심판하고 계신다.”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제목: 하나님은 여기 내가있는 줄도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우주라는 게 너무 커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란게 보잘것 없는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내가 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땅 덩어리 위에 고물거리고 있는 수십 억의 인간들 속에서 저같은 존재야말로 바닷가의 모래 한 알 만큼도 중요하지 못합니다. "너는 나의 아이다." 그리고 제가 살게 된 이 시대 이전의 수 세기에 걸쳐 살았던 사람들.. "나는 너를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게 될 숱한 사람들.. "너는 나의 귀중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 같은 것에게 신경을 쓰실 시간이 있겠습니까? 아니 제가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을 아실 수나 있으시겠어요? 아마도 제가 이렇게 있다는 걸 모르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만들었고 그러므로 너는 나의 아이다. 너는 지금까지 살아 온 그 누구 못지 않게 나에게는 중요한 존재다."제가요? 정말입니까?
제목: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심
호11:8 사49:15,16 시27:10 히2:9 고후5:21
빗나간 자식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서 애태우며 보내는 나이 많은 한 어머니를 옆에서 보다못한 이웃이 말을 건넸다.
"이젠 그런 자식 잊어버리세요. 그러다가 병나겠어요. 아예 안 낳은 셈 치라고요, 소용 없으니까."
시름에 잠긴 노모는 대답했다.
"나도 그 애가 당신 자식이라면 벌써 잊어버렸겠소."
그렇다. 아무리 빗나간 자식이라도 잊지 못하고 시름하며 찾는 것이 어머니이듯 하나님은 그분이 그분의 형상을 닮은 우리들, 손수 빚어 만드신 우리들을 잊으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그토록 초라한 모습으로 멸시받는 존재로 환영받지 못한 삶으로 오실 수가 있었다.
제목: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동독 멕클렌부르크의 한 기독교 가정의 딸인 10세 된 소녀가 지방 공산당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모두 일어서라고 해서 자신이 말하는 것을 따라하라고 시켰다."하나님은 없다." 그 어린 그리스도인 소녀는 선생님께"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선생님이 시키는 말을 따라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 선생님은 "너는 오늘 저녁 집에가서'하나님은 없다'라는 문구를 50번 써오도록 해라"라고 아이에게 시켰다. 어린아이는 집에 돌아가 그녀의 부모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한 후에'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라는 문구를 50번 썼다. 그녀의 선생님은그것을 읽고 크게 분노하면서"내일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없다'라고 100번 써 갖고 와라. 만약 이렇게 계속 반항하면 내가 경찰에 가서 너와 너의 부모를 신고할 테다"라고 소리쳤다.이것은 빛의 세력과 어두움의 세력의 싸움이었다. 그 어린 소녀의 부모는 주님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당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 어린 소녀는 다시"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계시다"라고 100번을 썼다. 다음날 그 선생니은 그렇게씌어있는 종이를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며"좋아,이제 내가 경찰에 가서 너를 고발할 것인데 너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나 어디 두고 보자"라고 했다.
이 말을 하고 그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자전거를 타고 길 쪽으로 달려나갔다.그러나 그 선생님은 얼마가지 않아서 학교 정문을 지날 즈음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이윽고 그 선생님은심장이 멈취 땅 위에 죽은 채로 누워 있게 되었다. 우리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릴때 그 어떤 사탄의 세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든지 아니면 그의 이름을 위한 고난을 능히 감당할 힘을 주시기때문이다.
제목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많이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수용소(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외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감시하다가 한쪽 벽에 쓰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의 사랑? 이 저주와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웬 말입니까?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God is here)."
제목: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
옛날에 한 시골 농부가 평생에 벼슬 한 자리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벼슬을 하려면 한양에 가서 한 삼년 굴러먹어야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날로 봇짐을 싼 그는 한양으로 올라가 가장 큰 거리에 나가 무작정 땅에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즉시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보시오 거 무슨 짓이오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들어보면 어떡헐거요 나는 3년동안 굴러야 되오'
'허허 3년 동안이나요, 이 보시요 곡절이나 좀 압시다'
그 농부로부터 곡절을 들은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하루 이틀 이가고 벌써 몇 달이 되었는데 어느 날 임금님이 평복을 입고 민정시찰을 나왔다가 이 소문을 듣고 오셨습니다.
'이보시오 그렇게 벼슬이 하고싶소?'
'고을에 현감자리는 어떻소?'
'좋지요'
'그러면 판서자리는 어떻소?'
'더 좋지요'
'판서보다 정승이 어떻소?'
'좋다 마다요'
'이보우 아예 임금자리가 어떻소?'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벌떡 일어난 농부는 변장한 임금님의 뺨을 찰싹 후려치면서 하는 말이 '야 이놈아 그러면 나보고 역적질을 하란 말이냐'하면서 죽일 듯이 덤벼들었습니다.
겨우 피해 궁궐로 돌아온 임금님은 그 농부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네가 평생 벼슬 한 자리가 소원이라는 그 농부렸다'
'황공 하옵니다'
'고개를 들라'
임금님을 본 농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온몸이 떨리고 얼굴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따귀를 떼리다니.
'임금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허허허 아니다 내가 너의 충성심에 감동을 하였노라'
그 길로 농부는 벼슬 한 자리를 받아 금의환양 하였고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사람은 감동을 받으면 마음이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감동시켜 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쳤고["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줄 아노라. 창 22:12], 이삭은 죽음을 피하지 않았으며, 야곱은 천사와 씨름할 때 축복을 받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요셉은 안 주인 여자의 성적 유혹을 주인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물리쳤으며, 다니엘은 자신을 잡기 위한 올무인줄 알면서도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다리오 왕의 조서를 정면으로 어기면서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였다.(다니엘 6:10)
모세는 신앙과 민족애 때문에 애굽 관헌을 죽여 왕자의 자리에서 살인자의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으며, 솔모몬은 일천번제를 드렸으며, 바울은 자신의 동료 연갑자보다 더 유대교에 열렬하였고, 고넬료와 한 백부장은 이방인이며 로마의 권력자 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기도와 구제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감동 시킨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만났고 쓰임 받았으며 복을 받았습니다.
대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사람들을 감동 시키려합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신앙생활의 실패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기가 오지 않는데 전구를 아무리 만져봐야 헛일입니다. 사람보다는 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신명기 30:15)에 보면 "보라 오늘날 내가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입사 면접시험에서 주일날 일해야 된다는 시험관의 말에 "그러면 제가 이곳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 하였으나 합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기 힘든 신앙의 선택과 행위를 보여줄 때 감동 하십니다.
구리 영라교회 주보 칼럼에서
제목: 하나님을 괴롭히는 사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매일 밤 철야 기도를 하는 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기도 할 때마다 무슨 죄가 그리 큰지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를 본 목사님이 궁금히 여기다 못해 하루는 그 권사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권사님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는데요"
"그런데 왜 그렇게 늘 울면서 기도하십니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도 위해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사실은 제가 과거에 지은 죄 하나가 있어서 늘 회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궁금하여 계속 물었습니다.
"제가 위해서 기도 해드리면 안될까요?"
그러자 결국 부끄러운 듯이 고백하는데 그 권사님이 처녀시절에 한번은 선을 보게 되었답니다. 옛날인지라 신랑쪽 어른들이 그 권사님의 집으로 와서 선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가난하여 변변히 대접 할만한게 없는지라 이웃집 담장위에 열려있는 호박 하나를 따다가 대접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뒤 세월은 흘러 그 권사님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수를 믿게 되니 오랜 옛날 일이지만 그 때 그 남의 호박 따먹은 죄가 생각나서 10년이 넘게 회개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무섭습니다. 조그만 죄 하나라도 우리를 지옥가게 만드는데 충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를 믿어도 죄 용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괴로움과 두려움만 주는 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깊이 통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어도 그 당사자에게 용서를 빌 수 있으면 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을 경우엔 주님 앞에 진심으로 자백하고 용서를 빌면 주님은 깨끗이 용서해 주십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여러분 그 권사님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믿지 못햇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부모도 죄를 고백하면 용서해 주시고, 한 번 용서해 주시면 더이상 추궁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죄에 대해서 용서를 받고도 매일 아버지에게 용서해 주세요 하며 따라다니면 아버지는 화를 벌컥 내실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에게는 태산처럼 무겁게 다가오시지만 예수안에서 회개한 사람에게는 새 털처럼 가볍게 다가오십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일흔의 일곱번 까지라도 회개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삶을 청산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시지 죄의식을 충동질하여 압박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어느 목사님이 중국 북경에 가서 교인들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가정예배 처소였는데. 그곳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 외부에서 온 사람은 절대로 설교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일어서서 말하면 설교요. 앉아서 말하면 좌담이 되어 외부에서 온 사람도 앉아서 말하면 상관이없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좌담식으로 앉아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말씀 더하라는 회중의 권유에 따라 두 시간이나 설교를 했답니다.
이야기가 끝나 경청하던 청년 하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칩니다. “오늘의교양. 전적으로 접수합니다.” 공산당 교양할 때에 쓰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전적으로 접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을 하지 맙시다. 홍해를 건넜다고 하면 건넌 줄로 알아야 합니다. 장님이 눈을 떴다고 하거든 뜬 줄로 아십시오.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하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거기에 인간의 생각을 더하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이성적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이든지 주시는 대로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에 대한 수용이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전적인 수용입니다.
제목: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최근에 한 가슴 아픈 일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생후 18개월된 조카의 젖떼는 작업(?) 을 지켜본 것입니다.
따뜻한 엄마품에 안겨 포동포동하게 사리 올랐던 모습이 한 삼일동안에 수척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밤중에도 잠을 깨면 사정없이 울어대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엄마의 괴로워 하는 것이 더 애처로웠습니다. 아픈 젖을
동여매고 아이의 더듬는 손길을 피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참된 어머니의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아이가 한 없이 엄마의 젖을 먹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제는 제법 밥상머리에 다가 앉는 어른스러운(?) 조카의 모습을 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해 가라!>고 명령합니다.
이미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여하한 일도 초월하여 주안에서 성장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첫째로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히 12-1~2). 당신의 신앙의 초점이 만일 예수님 외에 다른 곳에 있다면 너무도 불안한 것입니다.
엇그제 한 친구가 상의를 해왔습니다. 교회 대학 부의 한 선배와 같이 자취를 하고 있는데, 그가 가짜 학생임을 최근에 알았다는 예기였습니다. 너무도 실망하고 괴로워서 병이 날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을 실망시켜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철저히 우리가 주님만 볼 것을 원하십니다.
물어봅시다. 우리 교회 중, 고등부 회원인 당신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결코, 담당 교사나 목사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예배시간에 당신은 누구의 얼굴을 봅니까? 목사님의 얼굴이 아닙니다. 그 뒤에 계신
예수님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즉 영원한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주님을 의지할 것일까? 끝까지 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몸위로 칼을 치켜든 순간까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저주의 홍수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 노아의 약한 배를 보호 하시고 항로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선한 사업을 하던 뮬러는 마지막 돈을 다 쓸때야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간증했습니다.
우리 약속합시다.
당신의 남은 일생동안 주님만 의지하겠습니까?
어떤 어려움 중에도 주님의 손을 의지하겠습니까?
엄마의 품이 포근하다고 거기에만 있을 수 없듯이, 유치원이 재미있다고 늘 거기에서 재수만 하고 있을 수 없듯이, 이제 당신은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더욱 성장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어떤 젊은이가 밤중에 급히 갈 곳이 있어서 보트를 타고 열심히 몰았습니다. 밤새도록 속력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보트가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살펴봤더니 보트의 모터만 돌았지 묶여 있는 밧줄을 안 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녁 내내 속력을 내었어도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사탄이 우리를 위협함으로 공포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떤 때는 우리 신앙의 깊이를 덜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들이 믿되 이 울타리안에서만 믿으라고 제한을 함으로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때는 신앙을 갖기는 갖되 너희들끼리만 조용히 믿으라는 위협을 합니다. 어떤 때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섬기되 헌금과 상관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부요에서 떼어놓습니다. 우리는 둘중에 하나를 두려워하며 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든지 아니면 사람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께서 내 편에 계시니 사람들이 내게 어찌할꼬..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우리의 인생의 항로를 향해서 우리의 배가 나아갈 때 풍랑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를 거꾸러 넘어뜨린 것처럼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주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목: 하나님을 믿는 7가지 이유
뉴욕과학협회 회장이었던 A. 크레시 모리슨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로 말한 7가지:
1. 확고한 수학적 법칙에 의하여 우리는 우리의 우주가 위대한 공학적 지능 에 의해 고안되고 이루어졌음을 증명할 수 있다. (By unwavering mathematical law we can prove that our universe was designed and executed by a great engineering inteligence.)
10개의 동전을 1부터 10까지 표시한 후 주머니에 집어넣고 흔들어 보자. 이제 연속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그 동전들을 꺼내려고 노력하면서 일단 꺼 낸 동전은 그때마다 다시 집어넣고 전부 흔들도록 하자. 수학적으로 당신 이 처음에 1번 동전을 꺼낼 확률은 10분의 1이다. 1번과 2번을 연속적으로 꺼낼 확률은 100분의 1이다. 1번 2번 3번을 연속해서 꺼낼 확률은 1000분의 1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당신이 열 개의 동전을 1번부터 1 0번까지 차례로 꺼낼 수 있는 확률은 100억분의 1이라는 믿을 수 없는 수 자가 나온다.
이러한 추론에 의하면 지구상의 생명에 필요한 수많은 어려운 조건들은 우연에 의하여 적절한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지구는 한 시간당 천 마일의 속도로 지축을 자전하고 있다. 만약 한 시간당 백 마일의 속도로 회전한다면 우리의 밤과 낮은 지금보다 열 배나 길어질 것 이고 낮이 계속되는 동안 뜨거운 태양은 우리의 식물들을 전부 태워버릴 것이며 반면에 기나긴 밤 동안의 추위는 살아남은 싹마저 얼려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태양은 화씨 12, 000도의 표면온도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적절히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지구는 또한 자축이 약 23도 기울어져 있어서 우리들에게 사계절을 만들어 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양에서 증발한 수증기들은 전부 남쪽과 북쪽으로 이동하여 우리에게 얼음 덩어리 대륙들을 쌓아 줄 것이다.
달과 지구가 더 가깝다면 조수가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서 하루에 두 번 모든 대륙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만약 지구의 표면이 단 10피트 (3미터) 만 더 두꺼웠더라면 산소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산소 없이는 어떤 동물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태양이 단지 몇 피트만 더 깊었더라면 탄소와 산소가 대양에 거의 흡수되어 식물들의 생명도 끝장났을 것이다.
대기권이 더 엷었더라면 별똥별이 하루에도 수백만 개씩 지구 곳곳에 떨어졌을 것이다.
2. 목적을 성취하려는 풍부한 생명의 지략은 편만한 지성의 증거이다. (The resourcefulness of life to accomplish its purpose is a manifestation of all-pervading Intelligence.)
생명 그 자체는 어느 누구도 일찍이 근원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그것은 무게도 부피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뿌리가 바위를 깨는 것이다. 생명은 물과 육지를 정복했고 그 모든 요소들 을 지배하면서 그것들을 분배하고 재 조합되도록 촉구하고 있다.
생명은 조각가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형태를 만들고, 예술가처럼 모든 나무의 이파리를 구상하며 모든 꽃들을 채색해 준다. 또 생명은 음악 가로서 모든 새들에게 사랑스런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쳤고, 곤충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서로 짝을 부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생명은 뛰어난 화학자로서 수많은 과일들과 향미료에 맛을 주고, 장미 꽃에게는 향기를 주며, 물과 탄산을 설탕과 나무로 바꾸는가 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산소를 방출하여 동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게 해 준다.
3. 동물들의 지혜는, 그것이 없이는 무력한 작은 생물들에게 본능으로 부어넣어 주신 선한 창조주의 존재를 증거 한다. (Animal wisdom speaks irresistibly of a good Creator who infused instinct into otherwise helpless little creatures.)
어린 연어는 바다에서 몇 년을 보낸 뒤 자신이 태어난 강물로 정확하게 되돌아온다.
장어(eel)들은 성숙기에 도처에 있는 모든 호수와 강으로부터- 심지어는 수천 마일의 대양을 가로질러 유럽에서부터- 모두 버뮤다 근처의 동일한 깊은 심연을 향하여 출발한다.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죽는다.
4. 인간은 동물적 본능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데- 곧 사고하는 능력이다. (Man has something more than animal instinct- the power of reason.)
다른 어떤 동물들도 일찍이 열까지 셀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지 못했다.
5. 모든 생물을 위한 준비가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지만 다윈이 알지 못했던 현상에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종 (유전자) 의 신비와 같은 것이다.
(Provision for all living is revealed in phenomena which we know to day but which Darwin did not know- such as the wonders of genes.)
유전자들은 말할 수 없이 작기 때문에 만약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유전자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다면, 골무 한 개보다 더 작은 양이 될 것이다. 이처럼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유전자들과 그것의 동료인 염색체들은 모든 살아있는 세포 속에 살고 있으며, 모든 인간과 동물과 식물들의 특징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열쇠 구실을 하고 있다. 골무 같은 좁은 장소에 20억이 넘는 인간들의 모든 개별적인 특징들 이 들어갈 수 있다니...
6.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우리는 단지 무한한 지혜(신) 만이, 앞날을 예측하고 그처럼 어려운 경작을 준비할 수 있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By the economy of the nature, we are force to realized that only infinite wisdom could have foreseen and prepared with such astut e husbandry.)
몇 년 전에 호주에서 일종의 선인장을 보호용 울타리로 사용하기 위해 경작하였다. 호주에는 해충의 피해가 없었던 관계로 선인장은 곧 놀라운 성장을 시작하였다. 놀라우리 만치 선인장이 번성하자 그것은 영국땅 만큼 길고 넓은 영역을 온통 차지해 버렸고, 주변의 소도시나 마을 주민들 을 밖으로 밀쳐내는가 하면, 농장들마저 파괴해 버렸다.
방책을 구하기 위해서 곤충학자들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다른 식물들은 전혀 먹지 않고 선인장에서만 서식하는 곤충을 찾아내었다. 그것도 역시 마구 번성하기 시작했는데 호주에는 이를 막을 것이 아 무 것도 없었다. 그러자 곧 동물들이 또다시 식물들을 먹어버리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선인장 페스트병은 퇴치되고 아주 소량의 곤충들만 남김 으로써, 식물들을 보호하기에 필요한 정도의 선인장만을 재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억제와 균형은 전 우주에 보편적으로 제공되어 왔다.
7.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을 상상하거나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독특한 증거가 된다. (The fact that man can conceive the idea of God is in itself a unique proof.)
우주의 신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크고 아름다운 세계는,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행성으로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다음) 태양으로부터 구천 삼백만 마일 떨어진 궤도를 공전하고 있다. 이 태양과 아홉 개의 행성이 태양계라는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는데, 태양계 같은 우주 일조개가 모여서 형성된 은하계는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이 은하계의 항성들은 거대한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자리 (Proxma Centauri) 도 사실은 너무 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마일이라는 단위를 가지고는 그 거리를 표현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거리를 그들은 광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1광년은 초속 186, 000마일의 속도로 일년 동안 가는 거리이다 . 따라서 1광년은 오조팔천팔백억 마일에 해당한다. 그런데 센타우리 자리는 우리로부터 4.28광년이 되는 거리에 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의 거리가 100, 000광년인 은하수는, 우주에서 인간에게 알려진 이와 같은 10억개의 은하들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런 우주의 스펙트럼의 다른 쪽 끝에는 원자의 세계가 있다. 원자는 너무 작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화학반응과 핵반응 속에서 그것들의 움직임에 의하여 그것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원자들의 구조도 태양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가 공간으로 되어 있다. 원자들에는 핵이 있으며, 각 원자들에 따라서 서로 다른 수의 전자들이 핵의 주위를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
이런 원자들이 서로 모여서 분자를 형성하며, 바로 이 분자가 물질적인 모든 것들- 바위나 물 혹은 나무나 사람과 같은- 을 만드는 요소가 된다. 만약 분자를 형성하고 있는 그 원자들이 갑자기 압축되어서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 사이에 공간이 없어질 만큼 밀착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단단해 보이는 거구의 사람이라도 무로 화해버릴 것이다. Macro-cosmo and micro-cosmos are of same design!
제목: 하나님을 뵈올 때
미국 보스턴 시에는 헨델과 하이든회라는 것이 있어서 150년간을 계속해서 보스턴에서 연극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실었던 타임지가 계속해서 헨델이 메시야를 쓸 때의 얘기도 조금 썼는데, 이때 헨델이 런던의 어떤 집에 들어가서 23일간을 조용히 방에 앉아서 두문불출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영원한 나라를 묵상하는 가운데서 이 메시야를 썼다고 합니다. 그 메시야를 쓰는 동안에 어떤 날 한 번은 그 집의 일꾼이 들어가니까 헨델의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하면서 울고 있기에 그 일꾼이 무슨일이 있느냐고 묻자, 헨델이 대답하는 말이 "하늘이 내 앞에 열렸다"고,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내가 뵈었다"고 하였답니다. 헨델은 그런 위대한 작곡을 하기전에 하늘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면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면해서 그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보십시오. 고칠 것을 다 고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게 되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내가 깨닫고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써 복음을 전파하면 우리 온 한국이 새 한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 비젼을 보고 이 비젼이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을 비난한 황제
황제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훔쳐냈다고 비난의 말을 하니 신하가 말하기를 "어떤 집에 도적이 들어왔는데 빈 금고를 가져가고 가지고 왔던 금덩어리 보자기는 두고 갔습니다." 하니 왕이 하는 말이 "그런 도둑은 우리 집에 들어와도 괜찮다."고 하니 신하가 하는 말이 "하나님은 갈빗대를 가져간 대신 아름다운 여인을 주셨습니다"하니, 왕은 함구무언이었다.
제목: 하나님을 비웃은 애굽군대의 종말
주님께서 일을 하실 때는 빈틈이 없으시고, 실수가 없으시며, 모든 계획이 완벽하여 수정하거나 변경할 필요가 없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위해 게획을 세우신 십자가의 형틀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장 어리석은 것이요 부끄러운 것인데 그러나 그렇게 어리석고 부끄러운 십자가가 나를 구원할 수 있었다면 어찌 완벽한 구원의 게획이 아닐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조롱했지만, 승리했다고 자축했지만 그것은 곧 그들의 패배임을 아는 것은 길지 않았다. 삼일이면 족했던 것이다.
한가지 예를 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홍해 앞에 이르렀는데
앞에는 바다요, 뒤는 애굽군대요........그러자 하나님은 모세를 명해서 바다를 갈라놓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건너게 하셨다.
= 그 뒤를 따르는 애굽군대는 고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너희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면 무엇하리.지혜가 없는 걸.]
하나님이 갈라놓은 바다길을 자신들도 건너고 있다는 사실앞에서 하나님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을 훨씬 앞지르고 계셨다.
그들이 기고만장해서 바다길 안으로 모두 들어 왔을 때 ......모두 수장.
그것이 하나님의 게획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돕고 게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구원을 인하여 찬양할 일 외에는 없는 것이다.
제목: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16세기의 카르멜회 수사였던 브라더 로렌스는 오랜 세월 동안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주님의 일로 여기고 지속적인 사랑과 순종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임재하심을 실생활 가운데서 누리는 것을 어떻게 배웠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번철 위의 오믈렛을 뒤집을 때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하다 못해 지푸라기 하나를 줍는 일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임재하심을 느끼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무슨 일에나 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할 때에도 그 사랑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좀더 쉽고 직접적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하는 데는 복잡할 것이 아무것도없다. 다만 정직하고 단순하게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브라더 로렌스의 본을 통해 특별히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게 된 것이 사색적인 많은 책들을 읽거나 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는 자기의 일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거룩함이라면 직장보다 더 좋은 훈련장은 없습니다. 까다로운 상사. 패배감과 부족감. 직장 일에 따르는 큰 압력 등은. 우리를 단련시키는 도구로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는 것들이며. 압력 하에서가 아니면 결코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를 성격상의 결점들을 다루도록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극단적인 별난 데를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고 할 때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을 아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을 아는 방법
설익고 건방진 공대 4학년생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대는 모든것을 아는가?" 했더니 조금은 안다고 했다. "10%를 아는가?" 했더니 100만분지 1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대가 모르는 99%속에 하나님이 존재할수도있지 않는가 했더니 그 다음에는 존재하는지 않는지 그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전 공간과 시간, 그리고 모든 존재를 다 뒤져볼 수없다. 하나님을 철학속에서, 비교종교 속에서, 역사 속에서, 이성과 양심속에서, 실험관 속에서, 자연 속에서 찾아봐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을 안다. 그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다. 그말은 하나님의 말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내게 오신 분이다. 그 밖에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
제목: 하나님을 위해 힘써 일하자
어떤 목사님이 그가 설교하도록 되어 있는 시골 교회에 어린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교회의 현관에 이르렀을 때 목사는 그 앞에 헌금통이 있는 것을 보고 25센트 짜리 동전 한 개를 집어넣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나서 그 교회의 회계가 “우리는 항상 우리 교회를 방문한 목사님께 우리의 헌금통에 들어 있는 모든 돈을 드립니다”고 말하면서 헌금통을 열어 그 안에 든 헌금 전부를 그 목사에게 주었습니다. 그 안에 얼마의 돈이 들어 있었겠습니까? 단지 25센트 짜리 동전 하나뿐이었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날 때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가 돈을 더많이 넣었더라면 더 많은 돈을 받았을 것 아녜요.” 우리의 영적 축복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쏟아넣은 것만큼의 결실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귀한 보석들을 보여주면서 “이것들은 참 아름답긴 하지만 소득은 없다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상대편 친구가 “나도 자네에게 두어 가지 보석을 보여줌세. 그것들은 별로 예쁘지도 않고 별로 값진 것도 아니지만 소득을 얻을 수 있다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맷돌 두 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맷돌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여 유익한 결실을 맺어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도 보기에는 훌륭하나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애써 일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을 의뢰함
윗마을 김 서방과 아랫마을 박 서방은 서로 교분이 두터운 사이인데 오랫동안 왕래하지 않아 서로 궁금하였다. 하루는 김 서방이 박 서방 집을 찾아가니 마당에서 박 서방과 8,9세쯤 된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박서방이 먼저 한 아이를 안아다가 높은 곳에 세우고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아이에게 뛰어내리라고 하자 그 아이는 겁도 없이 뛰어내려 박 서방의 품에 안겼다. 이번에는 다른 아이를 높은 곳에 올려놓고 뛰어내리라고 하자 아이는 뛰어내리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였다. 이 광경을 본 김 서방이“어째서 처음 아이는 잘 뛰고 둘째번 아이는 무서워 떨기만 하는가.”하고 물었다. 박 서방은 “처음 아이는 내 자식이라 내가 단단히 붙잡아주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요. 둘째번 아이는 남의 자식이어서 나를 믿지 않기때문에 위태로운 것만 알고 무서워 떨기만 하네”라고 대답해주었다. 이에 김 서방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된 자라야 위태한 곳으로 들어가라 하여도 염려하지 않고 행할 것이요. 마귀의 자식은 믿지 않으므로 위태한 일에 무서워하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가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보고 누구의 자식인가를 알 수 있다. 예화대백과사전
제목: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수마트라 정글에서 주를 위해 일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 그들은 자주 강을 건너게 된다. 어느 날 한 형제가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는 수영을할 줄 몰랐고 홍수 때여서 강물은 가슴까지 차올랐다. 모슬렘교도와 이교도들이 강 둑에서 서 있다가 웃어댔다."하하하, 오늘이 저 친구 장사날이군요."그가 강물을 거스려 건너가려고 애를 쓰는데 악어떼가 그를 삼키려고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악어들은 1∼2미터쯤 접근 해서는 꼬리로 그 형제를 박살내려고 하였다. 악어들이 꼬리로 치는 힘은 카누가 반동강이 될 정도이다. 악어들이 모여들었을 때 이 형제는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순가나에 이 형제가 마가복음 16장 18절을 기억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위기의 순간 담대히 서서 외쳤다. "이 악어들아, 예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이곳을 떠나가라!" 악어들은 획 방향을 돌리더니 헤엄치며 사라졌다. 강 둑에서 구경하던 모슬렘교도와 이교도들이 크게 놀랐다. "이런일은 생전에 처음 보는군. 악어들이 어떻게 저 사람에게 복종하는가?" 이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을 영접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 참 안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제목: 하나님을 잊어버린 시대
시106:21;103:2;50:22;신32:18;28:20;8:11;
오늘날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시대이다. 발달된 물질문명은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말살시켰다. 부자는 배에 기름이 껴서 하나님을 잊었고, 가난한 사람은 배가 고파 하나님을 잊었다. 배운 사람은 적은 지식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기억치 않고, 무식한 사람은 무식하여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법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모른다. 꽃을 노래하고 산수를 노래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줄 모른다. 돈, 연애, 권세에 머리 숙이는 자는 많으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희귀하다. 밥 한 그릇, 돈 몇 원에 사람끼리 감사할 줄은 알면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지는 않는다.
현대는 도덕적인 발광의 시대이다. 일간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반갑고 기쁜 기사는 거의 없다. 속이고 싸우고 감옥에 가고 하는 기사로 가득하다. 자식을 잘못 두어 탄식하는 부모, 부모를 잘못 만나 부르짖는 자식, 사랑에 실패하고 우는, 남녀의 의리도 없고 사랑도 없고 믿음도 없는 시대이다.
제목: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
어느 여름, 내 아내는 유산을 경험하게 되었다. 훗날 그녀가 내게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내가 한밤중에 차를 몰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있을 때 그녀는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우는 것 대신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차의 뒷자석에 몸을 기댄 채, 아기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대신에 그녀 자신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사 그녀의 마음이 찬양으로 넘쳐나게 하셨다. 이는 그분의 손에 모든 것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함을 채우심으로써 기도할 때 우리를 도우신다. 기억할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가를 알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놓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중보기도가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위대한 대제사장의 중보기도를 어떻게 따라할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痢 텝기도 하나님의 해결, 더글라스 F. 켈리
제목: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남편 멜리엘을 뒤따라서 남미의 아우카 인디안들에게 가서 선교하던 엘리자베스 엘리옷은 이런 절망적인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인근 지역에서 보내는 전파를 받아서 종합하여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소식을 받았다. 엘리옷이 선교하는 인디안 지역에 대홍수가 나서 지역은 물바다가 되었으며 일 년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하여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선교 냅센터가 송두리째 홍수에 밀려가버렸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엘리옷이 일 년 동안 이 선교 센터를 짓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하며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이 눈 앞에 있었으나 송두리째 물에 휩쓸려버렸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이 전보를 받고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엘리옷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하나님.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주시옵소서.” 얼마 후 엘리자베스는 엘리옷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홍수에 떠내려가는. 피나던 노력의 열매인 선교 센터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허탈에 빠져 있었는지를 적었다. 그런데 엘리옷은 이렇게 그 편지를 마치고 있었다. “내가 절망의 눈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홍수의 파괴를 보고 있을 때 흐르는 물결과 함께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엘리옷아. 이런 때에라도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때 내 심령이 열리며 나는 감격하여 무릎을 꿇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감찰
어떤 아이가 사과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얘야, 어디서 그 사과를 얻었니"하고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과일 가게에서요"
"아저씨가 주시던?"
"아니, 안 주셨어요,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갖고 왔어요."
"뭐?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셔." 라고 어머니가 말하니까 애는, "괜찮아요, 가게에는 지붕이 있으니까 하나님도 못보셨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우리 어른들 모두가 이렇지 않습니까?
왕양명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안다"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모든 마음 속까지 간파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마치 하나님이 소경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같이 여기는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캄캄한 밤에 검은 개미가 검은 돌 위를 기어가는 것까지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리 깊은 곳에 숨고 인간의 눈을 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 앞에선 숨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개입
어떤 사람이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벨로 호리전테에 출판소가 있어서, 그는 적어도 매년 한 번씩 브라질을 여행하며 거기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여러 단체를 방문합니다.
한번은 서부 브라질을 떠나 벨로 호리전테로 가기 위해 비행기 출발 시간 수 분 전에 공항 매표 창구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표 직원에게 그의 목적지를 말해 주자 매표원은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표를 끊을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완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비록 그가 탈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 있었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야 했지만 그는 매표 창구에서 돌아나와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앉았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그가 기도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포르투칼어로 방송이 나왔습니다.
“공항이 안개에 싸여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그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65장 24절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가방을 집어들고 그는 서둘러 매표 창구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탈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표를 끊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직원은 마지 못해 이 일을 했고 그가 표를 받자 마자 안개가 걷히고 비행기는 이륙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가 어떤 일을 할 기회도 갖기 전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시는데 자신의 성공의 기준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며, 그는 우리가 자신과 협력하여서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계산
교회는 가능한 한 일을 여러 사람이 하게 해야 합니다. 열 사람이 할 것을 세 사람이 하게 하는 것이 경영 합리화입니다. 백만 원 들 것을 십만 원 들게 하는 것이 경영 합리화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세 사람이 할 것을 삼백 명이 하게 합니다.
이 사람이 와서 청소하다가 어질러 놓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청소하다가 또 깨뜨리고.. 하나님은 나중에 이렇게 계산하십니다. 너는 유리창을 갈아끼웠고, 너는 청소를 했고, 너는 휴지를 주웠고, 너는 천정을 고쳤느니라. 우리는 유리창 고치다가 의자 부시고 너도 틀렸고 너도 틀렸다 라고 하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성적표에는 모두 백 점입니다.
이것을 배우십시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납하시는 마음을 배우며, 하나님이 각자를 어떻게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긍휼로 맞이하시는가를 배웁니다. 순종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납하시는 것. 용서하는 것, 참으시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렇게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잘난 척하는 것같이 못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교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구원얻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앞에 칭찬받을 것이 있기를 원하시며, 모두를 사랑하시며, 아름답게 보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울 건수를 찾고 계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계획
그리이스에 집안이 너무나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해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은행에서 수위 모집이 있음을 알고 응시를 했지만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그는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낙심천만한 그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 “하나님. 나는 어쩌다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공부를 못하여 수위 시험에도 떨어져야 합니까.”하고 통곡하면서 기도를 했다. 그러자 “내 계획은 다르다. 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는 곧 짐을 싸서 그리이스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자기 후손들에게는 자신처럼 글도 배우지 못하는 슬픔을 안겨주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많은 돈을 모은 그는 사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그가 중년이 넘었을 때는 금융가인 월가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다. 그의 60회 생일 파티에는 저명한 재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그 생일 파티에 참석하였던 한 기자가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자서진을 내십시오. 선생님이야말로 자서전을 낼 만한 분이십니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면서 “나는 내 이름밖에 쓸 줄을 모른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기자가 애석하다는 듯 “만일 선생님께서 글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훌륭한 일을 하셨을까요.”하자.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글을 알았더라면 나는 기껏 그리이스에 있는 한 은행의 수위장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글을 몰라서 수위 채용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제목: 하나님의 계획
이 곤충은 볼위빌이라고 하는 바구미 벌레이다.
전에 알라바마 주에서는 목화 농사만 지어서 살았는데, 목화 농사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어느해 이 딱정 벌레가 많이 생겨서 목화 열매를 갉아 먹어 큰 흉년이 들었다.
그때 죠지 워싱톤 카버라고하는 흑인 과학자가 이 문제를 놓고 연구한 끝에 땅속에 열매 맺는 식물을 심으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땅콩 농사를 지으면 된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땅콩을 심게 됐는데 이 딱정벌레의 위험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전보다 훨씬 더 잘 살게 되었고 면실유 공장 대신에 땅콩기름 공장이 생겨서 세계적인 땅콩 센터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들이 더 잘 살게 된 것은 딱정벌레의 덕분이라해서 그곳에 아름답고 우아한 곤충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제목: 하나님의 과학
미국에서 수백만 부의 판매고를 자랑하는 명저[기독교와 유물사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질서 있는 우주는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닐 수 없음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즉 "지구는 매시간 10마일을 운행한다고 하는데" 100마일을 운행한다면 주야가 10배나 증가되어 낮에는 식물이 말라죽고 밤에는 꽃순을 동사시킬 것이다. 지구는 23도의 경사가 있기 때문에 사계절이 있으며, 이것이 없다고 한다면 해양의 증기는 남북으로 이동하여 대륙을 동결시킬 것이다.
만약 달이 지구에서 5만 마일을 떨어져 있을 것 같으면, 매일 바다의 조수(밀물)는 대륙의 높은 산까지 잠기게 할 것이다. 만약 땅이 10 피이트가 더 깊어진다고 하면, 산소는 없어질 것이다. 해양지 몇 피이트가 더 깊어진다고 하면 이산 화탄소와 산소는 흡수되어 지구에서 식물이 생존하지 못할 것이며, 대기층이 현재보다 엷다고 하면 매일 공간에서 떨어지는 별똥 때문에 지상에는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앙한다. 오히려 섣불리 믿고 성경을 연구한다는 이른바 신학자 가운데는 무신론자가 되는 경우가 혹 있어도,물리학자들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제목: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잠언 20:27은 이러한 우리의 영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하나님은 여러분이 예배드릴 때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는가, 작은 소리로 부르는가를 점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금식했는지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대신 그분은 여러분의 일상 모든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이 점검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정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찬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마도 낡은 집안의 먼지 수북한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온갖 종류의 버려진 잡동사니, 기어다니는 벌레들, 그리고 거미집과 썩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가 드러나기 보다는 자신과 늘 교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 나타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님과의 교제를 끊음으로써 자신의 더럽고 지저분한 모습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기를 바라십니까?
제목: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은 당신의 직업이 선교사냐 아니면 목수냐에 보다는 당신이 믿음으로 살면서 당신의 직업에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또 한 그는 당신의 그 동료들에게 사랑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더 신경을 쓰십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가정 생활이 하나님의 질서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이지 당신이 대저택에 사느냐 아니면 전세 단간방에 사느냐가 아닙니다. 그는 당신의 자동차가 6년 묵은 중고차냐 아니면 번드르르한 최신형이냐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교만과 탐심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물론 삶 가운데서 이런 영역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결코 요청하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다만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알고 또한 그것을 당신의 관심사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직업이나 직장 또는 경제 문제에 관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도록 기도했으면 잠시 멈추어 일단 당신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혹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지금까지 당신이 해오지 않았던 어떤 일을 하라고 오래 전에 그의 뜻을 보여 주시지는 않았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그의 관심을 둘 수 있게 하고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지금 당신이 순종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데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제목:하나님의 교육과정
{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욥기서입니다. 그러나 욥은 엄청난 불행, 계속하여 날아드는 비보에 넋을 잃게 됩니다. 소유물은 물론이요 사랑하는 자식들과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완전히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그는 급기야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물론 욥과는 그 상황이 다르지만은 야곱 역시 굴곡 많은 생애를 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마디로 가파르게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점에서 두사람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고난은 그 양태가 퍽이나 다릅니다. 욥은 실로 무모한 고난, 까닭 모를 시련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늙어서야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교활한 속임수로 생을 꾸려 나간 그는, 계속 속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므로 말년을 장식하게 됩니다.
그렇게 양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 내십니다. 이유인 즉은 둘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시련을 통해서 더 높은 경지에 .. 더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고백 중에 {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 ( 욥 23:10 ) 하는 말씀은 참으로 주옥과도 같습니다.
야곱 역시 말년에 대 애굽 왕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 창 47:9 ). } 놀라운 경지의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에게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교육과정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오려낼 수 있습니까? 오늘도 당신은 그 하나님의 교육 과정 중의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교육과정
{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욥기서입니다. 그러나 욥은 엄청난 불행, 계속하여 날아드는 비보에 넋을 잃게 됩니다. 소유물은 물론이요 사랑하는 자식들과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완전히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그는 급기야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물론 욥과는 그 상황이 다르지만은 야곱 역시 굴곡 많은 생애를 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마디로 가파르게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점에서 두사람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고난은 그 양태가 퍽이나 다릅니다. 욥은 실로 무모한 고난, 까닭 모를 시련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늙어서야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교활한 속임수로 생을 꾸려 나간 그는, 계속 속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므로 말년을 장식하게 됩니다.
그렇게 양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 내십니다. 이유인 즉은 둘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시련을 통해서 더 높은 경지에 .. 더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고백 중에 {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 ( 욥 23:10 ) 하는 말씀은 참으로 주옥과도 같습니다.
야곱 역시 말년에 대 애굽 왕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 창 47:9 ). } 놀라운 경지의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에게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교육과정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오려낼 수 있습니까? 오늘도 당신은 그 하나님의 교육 과정 중의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구별
출 9:6, 25, 26; 12:23; 시 1:1-5; 잠 11:18
두 집이 나란히 있었다. 한 집은 하난미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해 입히기를 즐겨하는 못된 인격을 지닌 세리의 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집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집이었다. 그들은 날마다 기도생활을 하였고, 하늘에 있는 분깃을 사모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세리의 집에 불이 났다. 그 집은 주로 목재로 지어진 집이었기 때문에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맹렬히 타올랐다. 그 집에 사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몰려와 불길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허사였다. 불은 빠른 속도로 그의 이웃 오두막집으로 옮겨 붙을 기세였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세리의 집을 거의 완전히 태워버린 그 맹렬한 불길을 지켜 보는 가운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그 불을 꺼버렸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가족을 멸망의 위기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제목: 하나님의 구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세가지가 부정되고 있다.
1.하나님 자녀는 유전이나 혈통으로 출생될 수 없다. 베드로의 자녀일지라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영접 안하면 하나님 자녀가 태어날 수 없다. 3.종교적 의지와 노력과 성실을 다하고 고행과 금욕 수도생활로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다.
돌은 아무리 닦아도 돌이고 아무리 좋은 소도 사람은 아니며 성자라도 하나님 자녀는 못된다. 그것이 종의 원리다.
제목: 하나님의 금고
미국의 시카고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전 시가지를 불 바다로 만들었다. 마침 도시 중심에 있던 무디 목사님의 교회도 불에 타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기자가 무디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평소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사랑한다고 설교하시고, 어떤 위험에서도 구해 주신다 말씀하셨는데 교회가 불에 탄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곰곰히 듣고 있던 무디 목사님은 "지금 우리 교회는 너무 성도가 많이 모여서 하나님께 더 큰 건물을 짓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잿더미가 되었으니 이젠 교회를 더 크게 짓는 일만 남은 셈이지요"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다시, "그러면 교회를 지을 돈은 무사하게 보관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무디 목사님은 자신의 오른손에 꼭 잡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보이며 "여기 이렇게 하나님의 금고가 있지 않소!" 라는 것이었다.
그 후 무디 목사님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전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고, 마침내 영국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시카고의 불탄 교회 자리에 더 큰 예배당을 지어 하니님께 봉헌하였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능력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지 며칠 후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전도하기에 제일 힘들고 고집이 센 남자 하나를 내게 보내셨다. 내가 그를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어가는데, 그는 누가 자기에게 하나님 얘기라도 꺼내려고 하면 미친듯이 화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날도 그는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당신 좀 달라보이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래요?” 물론 내가 내면적으로 변화한 것은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 변화가 벌써 바깥으로 나타나는지는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내 안에 사시는 성령이 속삭였다. “그에게 예수님에 관해 알려주자.” 또 아직도 남아있는 내 옛 속성이 속삭였다. “그래, 말해봐. 그가 당장에 내 콧등에 주먹을 날리겠지.”물론 그가 그러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성령으로 단단히 무장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주님을 알리지 않고 참는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쉬운 말로 내게 일어났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서 내 얘기를 들으며 눈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가고 있었다. 내가 약 10분 가량 얘기한 후에 그가 물었다. “나도 당신처럼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나는 정말 기절할 뻔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블레어 리드로서 본래 하던 중개무역사업을 그만두고 북 캐롤라이나주로 이사가서, 벌써 15년째 알콜중독자를 위한 휴식처인 '기도의 집'을 운영해오고 있다.
제목: 하나님의 능력
런던 대학의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약 10만 개이며 최신 전자 망원경을 가지고 한 은하수 안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2, 000억개가 되다고 했다.
그리고 최신 망원경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그 전체 우주속의 별들의 수는 2, 000×1, 000개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볼 수 없는 별의 숫자는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지금 반짝거리는 별빛은 10만 광년전에 반짝였던 빛이 오늘 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밤엔 별빛이 유난히 반짝인다는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겠는가?
그와같은 사실을 알고난 후 보이드 박사는 찬송가 40장이 자신의 간증이라고 덧붙였다.
제목: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강사 윌버 채프만 목사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80세가넘은 윌리암 부스 장군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구세군 교회에서는 교회도 군조직을 따라 '본영', 혹은 '영'이라고 부르고 교역자도 장교 계급을 따라 계급이 있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장군'이 된다. 윌리암 부스 목사는 구세군의 창시자이다. 윌리암 부스 목사는 영국의 빈민 사회층을 위해서 헌신한 영국의 성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부흥강사인 윌버 채프만 목사가 윌리암 부스 목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채프만 목사가 노령의 부스 목사님께 물었다. “부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한평생을 변함없이 성직을 잘 감당하셨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한참 동안 천정을 바라다보던 부스 목사님의 대답이다. “제가 비결을 말씀드리지요. 하나님께서 저의 전체를 소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도 많이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소유하시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영국의 빈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부분을 다 소유하도록 내맡긴 것뿐입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맡긴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닮은 꼴
한 여인이 임신을 한 후 다른 남자의 상을 자꾸만 생각하면 자기 남편이 아니라도 그 남자를 닮은 아기를 낳는다는 토마스 하디의 <환상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면 거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어느 시인을 마음 속으로 사모한 여자가 그 시인을 닮은 아들을 낳았읍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서 오해를 받습니다. 그녀는 한 번도 그 시인을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으로 사모하고 상상하여서 마치 그 사람의 아기를 임신한 것처럼 그 사람을 닮은 아기를 낳았읍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 사모하기를 임신한 여인이 사모하고 상상하여서 마치 그 사람의 아기를 임신한 것처럼 그렇게 사모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야 합니다. 눈도 닮아야 하고 표정도 닮아야 합니다. 이것은 못생기고 잘생기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얼굴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듯이 자기의 눈동자 속에서, 자기의 언어 속에서, 자기의 불행을 통해서, 고독을 통해서 예수가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도우심
어느 영화의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화선을 타고 그리스의 아테네를 떠나 가던 도중 지중해에서 큰 해일을 만나 배가 뒤집혀 호화선에 탔던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고 몇 사람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그들 중 어느 젊은 목사는 뒤집혀진 배에서 그대로 죽기 보다는 구조를 받기 위해 몇몇 사람을 이끌고 위로 위로 올라 갑니다. 마지막에 배 밑창의 철판을 뚫고 나와야 하는데, 뚫을 길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두터운 철판 밑에서 절망중에 있을 때, 그리스의 구조 헬리콥터가 날아와서 그들의 철판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철판을 산소 용접기로 떼어내 그 속에서 그들을 구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좌절과 실망과 근심과 초조와 불안 속에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때때로 영적인 침체 상태에 있을 때 가장 가까이 계셔서 우리의 손목을 붙잡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일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도우심
중국 어떤 도시에 도적떼들이 수백 명의 여인과 어린이들이 피하여있는 몬센이라고 하는 선교사의 저택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전날 밤. 선교사는 말라리아에 걸려 밤새도록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심한 열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약탈자들이 여기에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 저택에 불이라도 지르면 우리가 믿어왔던 그 약속들은 무엇이 되느냐.”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몬센 선교사는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는 이 젊은 사람들에게 수 년 동안 당신의 약속은 진실하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그 약속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벙어리가 되어야 하고 나는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그날밤 그는 밤새도록 깨어 있으면서 놀란 피난민들의 심부름을 하며 하나님께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구해줄 것을 믿으라고 그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생겼지만 그 도적들은 선교사의 저택에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떠나갔습니다. 아침이 되자 각각 다른 방향에사는 세 이웃들이 찾아와서 선교사에게 “어젯밤 밤새도록 당신 집 지붕위에 세 사람은 앉아서 또 한 사람은 서서 집을 묵묵히 지켰는데 그 네 사람은 누구였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가 자기 집 지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자 그들은 모두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걸요” 하면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위험을 당하게 되면 언제나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뜻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학교에 갈 만큼 넉넉하지도 못했고, 어느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 만한 기술도 없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진술을 배워 사진기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술을 엮어 놓은 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서점의 착오로 사진술에 대한 책은 오지 않고 발성법에 대한 책이 왔다. 이 소년은 너무 가난하여 그 책을 돌려보낼 만한 우송료도 없었거니와 반송하는 방법도 몰랐다. 소년의 실망은 너무 컸다. 이 소년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실망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리고 할 수 없이 발성법에 대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이 소년은 그 책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된 차리맥카시이다.
제목: 하나님의 뜻
주여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시 143:10). 예수님은 아버지 뜻을 행하려고 오셨고 아버지 뜻을 행하며 이루는 것이 자신의 양식이라 하셨다 (요 4:34). 주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고(시 40:8) 주의 뜻에 순종함이 우리의 궁극 평안이요 행복인 것을 배워야겠다.
주의 뜻.은 우리가 예수 형상을 닮는 것이다. 성령 충만받는 일, 믿음과 기도로 말씀안에서 예수 증거하는 생활, 사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 아브라함처럼 살고 사도행전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다.
우주 계획보다 깊은 하나님 뜻이 나의 삶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음을 말씀과 기도 속에서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라. 성공을 추구하지 말라. 죽음같은 잔이라도 주의 뜻을 먼저 물어 보라.
제목: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사는 삶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을 때까지도 우리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이 문제를 놓고 년간이나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1976년 봄에 아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임신 6개월이 되었을 때 의사는 우리가 쌍둥이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 나는 너무 기뻐서 “주님 같으신 분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식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두 배로 축복하시는구나.”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검사결과는 오직 한 아이가 태내에 있었는데 그 아이조차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 아이를 제거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곧바로 기도를 하면서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낫다는 것을 하나님께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건강한 산 아이를 주시는 것이 이제 우리 부부가 당해야 하는 이 악몽보다 훨씬 낫다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떼를 쓰며 이틀 밤과 낮을 매달렸다. 나의 모습은 비참하리만큼 처절했다. 그러나 결국 삼일째 되던 날 나는 이 아이에 대한, 아니 미래의 어떤 아이에 대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
비록 아이를 잃게 되었으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 속에 살고 있음과 그의 위로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한 두 아이, 브래논과 나탈리를 주셨다. 이 경험 이후로 나의 아내와 나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려 했을 때, 하나님의 정한 그때에 맞추어서 두 아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마음
때로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무엇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빠는 태어난 지 두 주밖에 되지 않은 아들에게 미식 축구공이나 전기 기차를 사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그것들을 구하기 때문에 아빠가 이 선물들을 사주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그 아이가 그것들을 원하여 구할 것을 알기 때문에 사주는 것입니다. 아들을 위하여 이러한 것들을 사주는 것이 아빠에게는 큰 기쁨이되기 때문에 아이가 구할 때를 기다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자녀들로 부르셨고 우리가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아마도 그분도 우리에 대해 이와 같은 마음이실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을 위해 선물을 구해 놓고 그것을 그에게 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 적이 있으신가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그것을 속히 주고 싶어서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선물을 줘버립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실 어떤 것에 대해 마음이 들뜨셔서 때로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일찍이 주시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기만 하면 그는 때때로 그분이 주시려고 가지고 계신 것을 받는 우리의 얼굴을 보는 것을 지체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 해도 감사하지 솥을 수 없습니다. 책 속에는 무궁무진한 삶의 지혜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책을 만나고 그 책을 통하여 유익을 얻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감동적인 고전인 「죄와 벌」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입니다. 그는 16세 때 자신의 아버지가 농노들로부터 살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사형수들을 싣고 가는 열차가 간이역에 멈췄을때, 그는 어느 부인으로부터 작은 책 한 권을 선사받게 됩니다. 그것이 신약성경이었습니다. 사형을 기다리며 그가 감옥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한 권의 책 속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앙고백은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내게'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같이 있고 싶다. 나는 진리보다도 차라리 예수와 함께 있고 싶다.” 그는 결국 기적적으로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세계 최대의 문학가가 됩니다.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은 언제나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특별히 성경만큼 수 많은 인간을 변화시킨 책은 그 유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시간에도 그러한 변화의 기적은 세상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곧 영혼의 진보를 뜻합니다. 아무리 삶이 분주하고 바빠도 성경은 당신의 생활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말씀은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유 속에 있는 그리스도"라고 표현하였다. 구유는 천하고 더러운 짐승의 밥통이다. 평범하고 구질구질하고 허물 많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표적을 보여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구유에는 더러운 지푸라기들이 있다. 그러나 지푸라기만 보면 안 된다. 지푸라기 위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를 보아야 한다.
킬케골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연애편지"라고 표현하였다. Love Letter는 단순히 문자가 아니다. 그 속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애인의 편지를 받을 때 가슴이 뛰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르고 용기를 얻고, 자신감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행복해진다. 사랑의 편지는 피차의 마을을 묶고 그 모습을 보지 못해도 보게 하며 그 음성을 듣지 못해도 듣게 하고 그 마음을 알고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연서이다.
신학자 에밀 브른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인의 음성"이라고 표현하였다 (My Master's Voice).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되고 수천 년을 두고 전해 왔으므로 이해하기 힘들거나 윤리나 생활 교훈등 따라가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나온다.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도 지식이나 생활면에서 부족이 많다. 그러나 잡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제목: 하나님의 메가폰
C.S. 루이스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많은 책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의사학 교수요, 평신도 전도자요, 문학가였던 그는 그의 아내의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특별히 이 고통에 대해 많은 글들을 기록했습니다. 그 중의 한 부분에서 그는 이런 감동적인 증언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쾌락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다가와 내게 속삭이신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다가와 내게 큰 소리로 고함 지르신다.” 쾌락 속에서는 하나님이 가만히 말씀하시니까 잘 들리지 않습니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지금 바쁜데요.”그러나 고통 속에서는 하나님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시니까 잘 들립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고통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큰 소리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율하도록 듣습니다. 우리는 욥의 고통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계속해서 욥에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듣는 귀가 있었다면 욥은 이 고통의 밤을 축복의 밤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나친 자기 변호가 주님의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막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믿게 된 죄수
히 13:3; 창 29:18, 27; 시 22:30
한 여신도는 생의 대부분을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쳤다. 한번은 그녀가 `갈치'라고 불리는 죄수를 찾아갔는데 그는 증오와 비통에 가득 차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분통을 터뜨렸다.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마시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렇게도 여러해 동안 가족도 못 보고 이렇게 감방에서 지냈겠습니까? 나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도 하지 마시오. 어서 나가시오. 나는 더이상 아무 얘기도 들을 마음이 없습니다."
여신도는 고개를 떨구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즉시 갈치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병들고, 굶주리고, 누더기옷을 입은 그들을 찾았을 때, 그녀는 온 마을 사람들에게 옷과 구두와 약과 음식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다음 여신도는 그 죄수를 대신해서 당국에 호소했다. 그래서 갈치는 다른 죄수들처럼 가족의 면회를 허가받게 되었다. 여러해 만에 처음자기 아내와 자녀들을 보기 위해 감방을 떠나면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쳤다.
"이제는 나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한때는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 찼던 흉악범의 마음이 한 여신도의 헌신과 사랑의 봉사로 변화되었다.
제목: 하나님의 밀사
나는 식인종들이 사는 마을에 와서 사역을 시작했다. 나는 매일 추장을 찾아가 그곳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그들의 언어로 온 힘과 정열을 다해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전했다. 그는 열심히 듣기는 했지만 전혀 마음이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항상 추장 뒤에 앉아 있던 그의 아들이 찾아와 나를 놀라게 하는 몇몇 질문들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힘센 장정 두 명이 나를 끌어내더니 말뚝에 매었다. 늙은 추장은 지팡이를 쳐들며 나의 사형을 선고했고 사람들은 춤을 추며 저녁 늦게까지 시끄럽게 잔치를 벌였다. 추장은 “너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만일 너를 구할 수 있다면 내가 너의 하나님을 믿으마” 하고 물었다. 그때 추장의 아들이 큰 칼을 칼집에서 빼서 휘두르자 사람들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아주 확실한 어조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교사의 하나님은 오늘 밤 바쁘셔서 못오기 때문에 나를 대신 보내셨다. 오늘 잔치는 없을 것이며 선교사님은 죽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내 앞으로 나와라.”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추장은 걸음을 멈추고 자랑스러운듯 아들을 쳐다보다가 그의 부족들에게 “오늘 나는 나의 모든 권한을 아들에게 일임함을 선언한다. 이제부터는 내 아들이 추장이다”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아들에게 “저 선교사의 밧줄을 끊게 해주십시오” 하며 부탁했다.
제목: 하나님의 방법
윗치만 니라는 유명한 성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그 여인에게 요청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의 생각이 계속 그의 마음 속을 지배했습니다. 그는 그 여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모두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두번째 요청을 했습니다. 이때에 이 여인이 허락을 해서 10년 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 인간적인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10년간이나 계속해서 그 여인을 따라 다녔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주의 뜻을 구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혼을 하게 되어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는 후에 간증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방법
무디 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죠지 스위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자녀가 있을 뿐이지 손자는 없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내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아버지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을 나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모태교인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고 착각하지는 마십시오. 개인적인 결단이 당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들에게 전도를 받은 아버지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인도로 예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너무 기뻐서, 아버지를 끌어안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육신의 아버지를 예수 믿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들의 기도를 듣고 아버지도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나의 형님이시여.” 아들이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기도하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야. 이 녀석아. 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내게는 형님이 아니냐.” 하나님 앞에서는 다 자녀만 있을 따름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딸도,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방법
누에는 계속 자라다가 때가 되면 그물을 만들기 시작해서 고치 속에 들어갑니다. 고치 안에서 잠을 자는데 누에의 몸에는 특수한 세포가 여기저기 있습니다. 그 세포들이 애벌레로 사는 동안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않지만. 어느 정도 자랐을 때에는 몸에서 무슨 성분이 나와서 고치를 만들고 잠을 잡니다. 자는 동안 이 세포가 퍼지기 시작하여 서로 연결해서 퍼지고 마침내 이 세포들이 애벌레의 나머지 부분을 다 먹어버립니다. 그리고 누애벌레가 없어지고 대신 나비가 나옵니다. 벌레가 변해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비의 세포가 벌레 안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조그만 세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세포가 퍼지고 퍼져서 변화를 일으켜서 마침내 나비의 몸뚱아리와 날개 등 여러 지체가 따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창조의 과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두서너 명이 모여서 기도하고 셩경을 연구함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퍼지고 퍼져 마침내 서로 연결되어서 완전히 새로운 교회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비와 같은 교회가 나오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잠자는 쓸데없는 애벌레와 같은 기어가는 교회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부활의 교회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싸우거나 요란한 외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벌레에 속하는 신자들이 우리를 보고 “나도 성령을 받아야겠다. 성령을 받아서 나비에 속하는 신자가 되어야지” 그래서 육적인 신자들이 점점 없어지는 대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신자들이 많아져서 교회 전체가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방법으로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부패한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심판을 받겠지만 우리의 할일은 나 자신부터 모여서 조그만 공동체를 시작하고 그것이 점점 퍼지고 퍼져 마침내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받은 우리 신자들에게 부여된 책임인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방법
윗치만 니라는 유명한 성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요청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요청했읍니다. 그런데 거절을 당했읍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그 여인에게 요청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읍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의 생각이 계속 그의 마음 속을 지배했읍니다. 그는 그 여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모두 맡겼읍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두번째 요청을 했읍니다. 이때에 이 여인이 허락을 해서 10년 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읍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 인간적인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10년간이나 계속해서 그 여인을 따라 다녔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읍니다. 그는 주의 뜻을 구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읍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혼을 하게 되어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는 후에 간증을 남겼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
"당신은 기독교인이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은 `교파? 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가톨릭? 소속은?'등의 말들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교파와 교단에 관심을 갖듯이 하나님도 그런 일에 관심이 지대하신지는 의문이다. 나는 적어도 교파소속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상대방이 어떤 교파에 속했는지 물은 다음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어 놓지 않는다. 어느 한 교파에 속한 교인으로서가 아닌 독립된 인격으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교파 소속을 물어올 때 난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친구"라고 한다. 교파를 초월한 사랑과 이해의 관계가 바로 이 땅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제목: 하나님의 보배
어네스트 W.베이컨의 이야기이다. 로마 제국의 발레리아 황제 때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누가 로마의 주지사에게 카타콤에서 만난 신자의 지도자인 로렌스는 하나님의 보배를 맡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즉시 군인을 보내어 로렌스를 불러왔다. “그대는 그리스도인이지.” 주지사가 물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대는 하나님의 보배를 맡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사실이요.” “그럼 그대의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그 보배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돈이 매우 필요하다. 내게 그 보배를 가져오라. 그대의 머리털은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나흘 후에 가지고 오겠소.” 로렌스는 약속했다. 과연 그는 4일 후에 주지사 앞에 나타났다. “그대는 약속을 지켰는가.” “그렇소.” “그 보배는 어디 있는가.” “밖에 있소.” “그 보배가 그렇게도 수량이 많은가.” 황제는 놀라며 물었다. “그들은 보배롭고 또 많소.” “안으로 가져오라.” 로렌스는 밖으로 나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카타콤에서 예배를 위해 서로 만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의 보배란 바로 이 사람들이오.” 성이 난 주지사는 로렌스를 죽이도록 명령했다. 베이컨은 이렇게 덧붙였다. “옳았다. 하나님의 보배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 구속되고 그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들이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이 곧 하나님의 보배들인 것이다.”
제목: 하나님의 보상
초기 영국의 케스, 교단에서 가장 위대한 성경 교사들 중의 하나였던 웹피플이라는 성직자는 젊은이였을 때 해변에 갔다가 그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녀들 중의 하나를 갑자기 잃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오자 이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서재에서 무릎을 꿇고 이 슬픔의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위로가 마음에 찾아오지 않았으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그에게 아무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 벽난로 위에 길게 내려진 이 말씀을 맺힌 눈물을 통해서 다시 읽었다. 처음으로 그는 대문자로 인쇄된 한 단어를 주목하게 되었다. “족하다(is sufficient)"그는 성별된 눈으로 읽었다. 그리고 외쳤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나는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당신은 언제나 내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나는 족한 은혜를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리며 그것을 이제 제 것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적절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때를 위해 유용하다. 우리는 은혜를 구할 필요가 없다. 은혜는 이미 주어졌으며 우리가 받아들일 때에 머물게 된다. 이 언급이 얼마나 웅대하며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 실패한 결혼,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무정한 가정, 육체의 연약함과 고통, 선교 생활의 압박감, 압도해 오는 비애 중에도 은혜는 족하다.
우리의 무능력이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붙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 이는 위장된 축복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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