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5대 제국
(앗수르, 바렐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림을 기록한 책이다. “성경과 5대제국”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와 헬라, 로마라는 이스라엘에 영향을 끼친 강대국을 인문학적인 배경 안에서 역사, 지리, 인물, 문화 등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조명하고 있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5대제국의 왕을 들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유다왕국을 심판하셨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하고 바벨론의 포로를 귀환시키는 역사적 사건 등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I. 애굽과 요셉에서 드러난 성경의 의미(창, 출, 레 ,민, 신, 여호수아)
이집트는 4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고대 근동의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세상의 관심 밖에 있고 우리나라 교회들이 성지순례를 계획하여 고대 신하산과 모세의 여정을 따르는 여행 코스로 정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집트를 여행하다 폭탄테러나 인질이 되어 사회의 지탄과 관 심을 받고 있다.
B. C. 20c(4,000년 전)경부터 이집트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아수르나 바벨론에 못지않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고 각국의 포로들을 동원해 거대한 건축조형물들을 세운 나라였는데 그 힘은 나일 강을 중심으로 하는 풍요로움 때문이며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부터 애급은 등장하고 있다.
조그마한 부족을 이루던 아브라함과 후손인 요셉, 야곱과 유대민족은 애급을 중심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창 45: 3~4)”과 메시아사상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1. 민족주의 이스라엘과 제국주의 애굽의 관계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증가(출 1:7)는 풍요로운 경제력으로 제국의 꿈꾸고 있던 애급에게 쿠데타라는 사회적 염려로 작용되어 유대산파를 동원해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모세(출 1:9, 1:16)이며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유사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모세를 도구로 사용한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애급의 최첨단 무기인 병거와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시키고 강대국의 몰락을 초래하는 국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 개인에게 한 부족이 아닌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는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언약(창 12:2)을 하신다.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세워진 ‘민족’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출애굽기를 지나며 나라와 민족, 온 세계가 모두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경의 중요한 주제로 민족, 개인, 물질 등에 ism이라는 주의가 붙어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되어 국제 관계를 지탱하던 평화는 깨지게 된다.
제국주의는 민족을 넘어 다른 국가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치적인 권위를 가진 정치 공동체를 세우게 되고 침략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제국이 망하거나 주변국에게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그렇지만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130만 명이라는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제국이 아니라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해 자신을 종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국주의라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허락하신 나라의 경계를 넘지 않는 순종으로 다윗왕국을 지탱할 수 있었다(삼하 24:9).
아브라함의 후손은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나라로 쓰임 받는 복의 통로였다(창 12:1~3). 제국이나 제사장나라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제국은 민족을 계급화 시킨 반면 제사장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준행하여 제국위에 설수 있었다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레 26:3,8).
2.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이야기로 본 성경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은 애급의 종으로 가정의 집사, 억울한 죄수라는 신분을 거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삶을 살았다. 형들의 질투로 애급에 종으로 팔린 후 22년 만에 애급의 총리로 등극하고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과 재회를 하며 드라마의 막을 장식한다.
나일 강이라는 비옥한 땅에 강력한 제국을 형성한 애급은 그만큼 풍년이라는 경제력이 필수인데 애급 왕 바로의 꿈 해몽을 통해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대비하는 국가 비상 행정 체제의 중심인 총리 요셉의 이야기는 아버지에게로부터 배운 목축 지식과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으며 배운 농경 지식, 감옥 안에서 배운 교도 행정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훈련과 인내를 통한 승리라는 공식을 만들어 교훈하고 있는데 이미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외삼촌에게 목축업의 진수(창30:32,37~43)를 펼쳐 부를 이룬 것 같이 요셉도 각 분야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줬기 때문에 총리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애급은 요셉을 등용하여 고대 근동에서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꿈이라는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흉년이 계속되던 5년 후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춰 가족들을 애급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출애굽 할 것을 계획하게 된다.
애급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목축업(창 46:34)을 선택한 요셉은 부를 축적하고 고향에 들어가지 못하고 애급 땅에서 죽지만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고 요셉의 유언에 의해 400년 후 가나안 정복을 성취한 후손은 세겜에 유골이 장사 지내지며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던 요셉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게 막을 내린다(창 50:25, 출 13:19, 수 24:32).
이렇듯 성경은 따로따로의 이야기 같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하나의 이야기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속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졌다는 사실을 역사로 조명하고 있다.
II. 앗수르 제국과 이스라엘(요나, 나훔, 이사야, 아모스, 열왕기하, 역대하)
산업혁명 전까지 500년간 상 아시아의 대주였던 앗수르가 천박한 땅에서 비록 관개수로를 이용한 농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지는 미스터리 하지만 요나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니느웨(니네배)’를 통해 앗수르가 근동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지성 키케로가 극찬한 역사의 아버지 ‘헤로로토스’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을 기록한 “역사”라는 책에서 앗수르의 존재를 희미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앗수르는 처음은 작은 소도시였으나 동으로는 인도, 서로는 애급, 북으로 러시아, 남으로 아라비아 펠릭스까지 3,200km에 달하는 소아시아와 초원의 사막을 장악한 제국주의로 발전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1846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이어드’에 의해 세상에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고 발굴된 앗수르의 유적들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성경 내용 그 자체로 전시되어있다.
1. 요나(B. C. 8c)와 앗수르와의 관계
4장밖에 안 돼는 요나서에 언급된 니느웨는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상에 빠진 북이스라엘에게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앗수르를 통해 북이스라엘을 교훈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요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욘 1:2; 3:1~2)하지만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의 회개를 받으시고 구원(욘 3:9,10)하시며 하나님을 아시는 지식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과 가축들까지 아끼신다는 것을 요나서는 기록(욘 4:11)하고 있고 바울의 사도됨과 예수그리스도의 대위임령(마 12:41)을 거룩한 제사장나라의 시민이 가야할 길과 회개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앗수르라는 제국은 구원의 메시지를 순종하지 않음으로 야망으로 인해 150년 후 나홈 선지자가 선포한 것과 같이 멸망의 길에 들어갔다.
열왕기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열, 역대기는 다윗과 남 유다의 역사와 북이스라엘이 200년간 7번의 쿠데타로 19명의 왕이 난립하는 피 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록하며 다윗의 혈통들은 여보라함 같은 악한 왕들로 하나님의 계획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13:1~2; 13: 10~11; 14:23~24).
열왕기는 이렇게 선민이라고 자부한 북이스라엘은 15째 왕 ‘살룸(B. C.752)'을 죽이고 16번째 왕이된 ’므나헴(B. C. 752~742)'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의 돈을 강탈(왕하 15: 19~20)했지만 그러함에도 북이스라엘의 온 땅을 점령한 앗수르는 백성을 잡아갔고 마지막 19대 왕인 호세아(B. C. 732~722) 때 앗수르에 의해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만다.
예언서는 19명의 왕들에 의해 쿠데타를 일으키며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선지자인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의 능력을 두 배나 간구한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죄악의 길에서 나오지 않자 아모스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시어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회개를 촉구(암 1:1)하셨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북이스라엘에는 호세아(호1:1)를 보내시고 남 유다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를 보내시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결과는 앗수르가 아닌 바벨론에게 남 유다는 멸망당했다. 나훔서와 이사야서에는 B. C.609년경에 앗수르가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하 19:35~37; 사 37:36~38; 나 1:12; 나 3: 18~19). 앗수르는 수도 니느웨가 B. C. 612년 바벨론에 함락되어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주변 국가를 탄압하던 죄의 대가를 받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국가가 되었다. 다윗이 민족국가를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를 넘지 않은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거주의 경계를 만드시고 고유한 민족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앗수르 제국의 멸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III. 이데올로기 경영의 바벨론 제국과 율법 경영의 하나님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다니엘서, 에스겔, 하박국, 스바냐, 열왕기하, 역대하)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18만 5 천명이 죽어 위기를 맞은 앗수르와 남유다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한 사건(사 38: 3~5)은 동일선상에서 바벨론과 남 유다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사 39:1,2).
앗수르에 보낼 공물이 없어 성전과 왕궁의 금을 긁어모았던 초라해진 남 유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에 의해 앗수르가 폐했다는 소식은 제국을 꿈꾸고 있던 바벨론에게는 충격이었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생명연장 소식을 들은 바벨론은 인사를 핑계로 특사를 보내 염탐을 계획했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한 것이 아니라 무기고와 곳간을 보여주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런 히스기야의 어리석음을 보고 바벨론은 위기의 앗수르를 치고 남유다와 애급을 점령할 계획을 세운다.
히기스기야 자신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지만 자손들 중 몇은 치욕스럽게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고뇌(사 39:3~8)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가 55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산당을 세우고 우상 섬기는 악행을 저질러 요시야 왕이 이룬 치적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로 인해 남 유다를 멸망을 하시겠다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왕하 23:25~26; 대하 33: 11~13).
요시야는 다윗의 길을 따른 순종의 왕이었지만 애급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애급은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왕의 자리에 있던 여호아 하스를 애굽으로 끌고 가 죽이고 만다.
앗수르에 조공을 하던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붙었다 앗수르에 붙었다를 반복하자 바벨론은 아람과 모압과 암몬과 동맹을 결성하여 먼저 애급을 치고 므낫세에게 멸망을 예언한 것처럼 유다는 점령( 왕하 24: 1~4, 7)당하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를 ‘애급’과 ‘바벨론’이 벌인 “갈그미스 전투”를 모티브로 하여 바벨론과 유다의 역사를 다니엘서는 언급하고 있다.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대하 36:6~7, 10)’이 등장하는 “1 차 바벨론 포로” 이야기(단 1:3~4)는 남 유다를 경영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 차 바벨론 포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에스겔을 통해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인물을 등장 시킨 이유는 혼혈주의로 인해 멸망한 앗수르와 다르게 바벨론은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해 귀족과 인재를 포로로 하여 대영제국이나 일제가 행한 제국경영의 모델이 되었다.
성경을 통한 다니엘의 꿈 해몽(단 2:19~23; 2:31~35)은 요셉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와 연결(창 40:8)되어 왕 중에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고 있다(단 2:47; 6:26~27).
국가가 환란 중에 있을 때 예레미야처럼 같이 고통을 받으며 눈물로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렘 18:20, 20:2, 7~9, 37:15~16, 38:6)과 거짓 예언자 하나냐의 등장(렘 28:1~4)은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교훈을 주고 있는 상황 같다.
하나님께 거역하는 선지자는 하나냐 처럼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렘 28:16~17).
바벨론의 제국경영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이지만 하나님의 세계 경영은 율법 교육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계호기 앞에서 인간의 욕심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우리는 도전 받아야 한다.
IV.페르시아 제국(다니엘,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역대하 등)과 인간이 개수한 병사의 숫자
바벨론으로 1~3차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던 남유다 백성들이 페르시아에 의해 강대국 바벨론이 망하는 것과 페르시아에 의해 1~3차에 걸쳐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의 이데올로기 경영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 경영의 큰 뜻을 펼친 행정가이며 선지자 다니엘을 기록한 다니엘서, 1차 귀환 때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에 의해 16년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을 때 학개(학 1:2)와 스가랴(슥 1:1)를 기록한 3권의 성경은 페르시아와 관련되어 있고 1,2차 포로 귀환 사이에 벌어진 이스라엘 말살 정책에서 민족을 구한 페르시아 왕비 에스더를 등장 시킨 에스더서(에 1:1), 2차 포로 귀환을 지도한 학사 에스라(스 1:1), 3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 총독 느헤미야 이야기(느 1:1), 페르시아에서 파견된 총독 이야기(말 1:8)를 다룬 말라기까지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선지자를 세워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앞에선 전율할 수밖에 없다.
남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고 이데올로기 경영을 한 애굽의 바로 왕과 남유다 백성을 귀환 시킨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 고레스(키루스 2세)는 구약의 두 수레바퀴와 같이 사건의 중심이 되고 있는 왕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마음은 강퍅(출 9:12)하게 하셨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은 감동시키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스 1:1).
창세기에 나오는 바로왕은 요셉과 요셉이 믿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왕으로 요셉을 총리로 세우고 애굽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을 칭송하게 명령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애굽의 총리로 세운 왕(창 41: 38~43)이지만 출애굽기에 나오는 바로왕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출 5:2)되어 있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왕인 것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모든 세계를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찬양하며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조서를 내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예물을 드리고 남유다 포로들을 귀환 시킨다(스 1:1~4).
이렇듯 구약의 성경에 주변 강대국의 왕들을 등장 시키고 있는 성경의 의도를 우리는 환란 중에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예배드린 선지자들의 믿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니엘서( 6:7~8)와 에스더서( 1:17~18)에서 메대(메디아)와 바사(페르시아)라는 페르시아의 두 도시 국가가 등장하고 있는 데 통일 전 페르시아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구성되어져 있었는데 그리스에게 최초로 조공을 받고 있던 리디아(터키)의 크로이소스 왕을 2주 만에 굴복시켜 페르시아가 동방의 부를 대표하게 만든 왕 고레스는 탄생과 성장, 왕이 되기까지의 신화를 간직한 왕으로 페르시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데 정복자와 패배자의 관계를 우호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아테네의 솔론이라는 현자를 등장 시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부를 축적한 과정을 알게 되었을 땐 성경을 읽는 재미와 다른 지혜를 얻게 된다.
페르시아는 리디아라는 도시 국가를 통해 그리스의 철학과 학문을 접하게 되어 앗수르의 혼혈주의나 바벨론의 인질 교육 정책과는 다른 관용의 정책을 펼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 예레미야와 고레스 왕 (스 1;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스 1:1).
고레스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남은 자들은 후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어 매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에 십일조를 바치고 30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며 소비를 촉진 시켜 예루살렘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는데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였던 남유다 백성은 다른 이방인과 구별되어 유대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히브리인으로 불린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며 북이스라엘은 혼혈족 사마리아인으로 바벨론의 남유다 백성은 유대인으로 명칭까지 바뀌게 된 역사를 페르시아와 이스라엘 관계 속에서 알게 되었다.
페르시아의 왕 로레스가 29년간 통치하고 8년간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캄비세스는 이집트를 점령한 왕이며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고 3대 왕 디리오는 장사꾼으로 기록되어 있다.
1차포로 귀환 때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기초 공사 도중 중단 되었던 성전 건축은 페르시아 2대 왕 다리오 때 비로소 완공 되는 데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다리오 왕과 어릴 적 친구인 유대인 총독 스룹바벨인데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세상에서 믿음의 빛을 낸 결과였다.
성전 방해를 하던 사마리아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마침 솔로몬의 성전은 작지만 본 모습을 드러내는데 신약의 헤롯 왕 때 건축된 성전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2. 에스더 이야기
페르시아를 이야기 할 때 4대왕 아하 수에로의 왕비 에스더(에 1:1, 10~12, 15~16)를 빼 놀 수 없는데 술에 취한 왕은 왕비 와스디의 나체를 잔치에 참석한 자들에게 보여주려 했기 때문에 왕후 와스디는 거절했다고 유대 고대사 “요세푸스 Ⅱ”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일로 인해 왕궁에서 쫓겨 난 왕비를 그리워하다 아리따운 처녀를 후궁으로 맞이하는 데 바로 에스더였다.
유대에 의해 몰살당한 아멜렉의 후손 하만의 원한과 모르드개의 암투(에 3:13~15)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로 왕 앞에서 지혜로 민족을 구한 에스더의 사건은 12월 14~15일 이틀간의 부림 절이라는 유대인의 명절이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에 9:20~22).
3. 에스라 선지자와 2차 포로 귀환(B. C.458)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는 1차 포로 귀환(B. C.537년) 79년 뒤 2차 포로 귀환(B.C.458) 때의 제사장(스 7:1)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쳤으며 페르시아의 학자로 존경 받았다(스 7:6,10).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겠다는 계획에 페르시아왕 아닥스는 직접 공문을 여호와를 신실하게 믿는 에스라에게 내리고 많은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었다(스 7:12~26).
애굽의 바로 왕이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 전권을 준 것과 같이 페르시아 궁중 창고의 모든 재물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마음껏 쓰라고 공문을 주었고 재판권의 시작이 된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권까지 아닥스는 에스라에게 허락하였다.
4. 페르시아 총독 느헤미야와 3차 포로 귀환 (B. C.445)
에스라에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아닥사스 왕 20년 후 페르시아의 총독 느헤미야는 등장한다(느 1:1~3).
페르시아의 높은 관직에 올라 환란과 능욕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다는 느헤미야의 꿈은 아닥스다 왕에게 충성과 큰 제국을 통솔한 행정력이라는 신뢰로 페르시아 왕 앞에서 ‘수심’이라는 패(느 2:1,5~8)를 내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마치게 되었다(느 6:15).
느헤미야는 70년이라는 생활을 포로 생활이 아닌 훈련이라고 가르쳤고 귀환해서 그 하나하나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이스라엘 백성에 가르쳤기 때문에 유대 백성은 귀환한 후 한 동안 우상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페르시아는 군인들의 숫자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숫자가 아닌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면 각 나라와 민족의 경제적 안정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페르시아의 멸망은 경제 수치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이다.
V. 헬라 제국(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신구약 중간사)과 로마 제국(신약 전체)
구약의 끝인 말라기(말 4:4~6)와 신약의 처음인 마태복음(마 1:1) 사이에는 400년이라는 세월이 숨어 있는 것은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유대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냉소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묻고 확인하려한다(말 1:2).
아브라함부터 1,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늘 사랑하셨는데도.. 하나님은 믿음에 대한 불순종이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400년 만에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로 오시기로 결심하신다(요 3:16).
이러한 신구약 중간 사에 다니엘의 예언(단 7:6; 8: 3~8; 21~22: 11:3)처럼 알렉산더라는 헬라 제국의 영웅이 나타나 그리스 철학과 동방 오리엔트 문명을 합친 헬라 문화를 꽃 피우는데 헬라 문화의 주인인 마케도니아는 아테나와 스파르타라는 강력한 군사력 이전에는 페르시아의 속국이었지만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를 강력한 군가로 세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크레니데스라는 곳에서 금광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그곳을 “필립포스”라고 명명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은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중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듣고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유럽의 첫 교회를 그곳에 세웠기 때문이다(행 16:6~12).
이 때 그 유명한 성경의 구절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기록하는 데 바울이 옥에 갇힌 것도 옥문이 열려 바울이 탈출한 줄 알고 자결하려한 간수장의 이야기와 귀신 들렸다가 나은 여종, 자주 장수 루디아의 이야기가 우연일 수 없는 것은 어쩜 “빌립보 도시”가 세워진 것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1. 알렉산더와 두로의 멸망을 예언한 성경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와는 많은 우화가 있는데 이 영웅전이 집필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알렉산더가 두려워했던 것은 심오한 철학과 지식의 힘을 믿고 국가를 통치하려는 자신의 야욕에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저항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겔 28장 2절에 예언되어 있는 것 같이 강력한 해양 도시 두로 왕이 아무리 신같이 굴어도 사람일 뿐이라는 것(겔 26:4; 27:2~8)이 예언되어 있는 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에스겔의 예언을 믿을 수 없었는데 배를 만들고 자색 염색 산업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며 사치스럽던 두로가 쉽게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들어 쓰셨던 하나님께서 알렉산더를 들어 두로 성을 불타게 하여 그 교만이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암 1:9~10; 사 23: 1~3).
두로가 멸망한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가 에돔에 노예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된 두로의 교만은 결국 황무해지고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되고 말았다.
예수께서 이곳에 들려 귀신들린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고 이후 두로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198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마 15:21~28).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알렉산더를 피해 도망가다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하며 페르시아는 멸망하고 알렉산더는 파죽지세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고 정복한 지역에 그리스 문화와 헬라문화를 합하여 오리엔트 문화를 퍼트렸지만 인도의 인더스 지역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B.C.323년에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2. 하나님의 세계경영을 실천할 때
헬라 제국 경영의 키워드는 알렉산더가 그리스의 철학과 동방의 문화를 융합해 오리엔트 문화를 만들어 보급하며 제국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앗수르의 계급을 전제로 한 강제 혼혈 방식이나 헬라의 페르시아 여인과 마케도니아 군인들을 결혼 시켜 민족과 문화를 융합하려는 수평적 세계동포주의(cosmopolitanism)라는 인간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각 민족의 균형과 조화는 모든 만물을 종류대고 창조하시고 개인과 민족에게 각각 거주의 경계를 지정해주신 제사장 나라 적 융합으로 완성될 수 있는데 ‘각기 종류대로’‘수평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동질적 연대를 형성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세계 경영 방식은 바울이 헬라인은 헬라인에게 유대인은 유대인에 맞게 복음을 전한 것과 일치되는 것이다. 천하보다 귀중한 한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속하되 섞일 수 없는 유일한 한 민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각 민족은 독특한 하나님의 창조적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독특함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순혈 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이 하나님의 세계경영으로 돌아설 때라는 것을 헬레 문화의 멸망을 보며 알게 되었다.
VI. 로마 제국(마태복음~요한계시록)
신약 성경의 근간은 로마 제국과 연관성 속에 있는데 예수가 태어나시기 전에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러 간 것과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것 같이 유대의 사형 법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 처형도 로마의 사형 법이었다(마 27:27~31).
이러한 예수께서 로마의 속국인 유대의 왕으로 오신다는 소식은 온 예루살렘에 소동을 일으킬 사건 중의 사건이 되었고 예루살렘에 파견된 분봉 왕 헤롯과 로마 제국의 총독에 앞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왕의 탄생을 알고 찾고 있다는 사건은 헤롯과 예루살렘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 로마 제국의 출현과 가이사(카이사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와 같은 선지자들이 왕성하게 유대 땅에서 활동할 때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신화가 있다. 왕정과 공화정을 거친 로마는 카르타고와 3차에 걸친 120년의 포에니 전쟁을 치르며 급부상한 나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쥴리어스 시저)는 오랜 전통의 애굽이나 고대 근동을 모두 점령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잡았다.
종신 독재 관이었던 가이사르는 황제의 길을 열고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는데 로마의 세금을 누구에게 바쳐야 하느냐는 바리새인의 질문(마 22:15~22)에 동전에 그려져 있는 가이사를 보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시며 미묘한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해결했는데 가이사는 자신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 로마 제국 전체에 자신을 알렸다.
거대한 로마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공화정에 반대하고 황제 체제로 국가를 경영하려는 계획에 반기를 든 원로원이 가이사를 암살했지만 더 이상 거대해진 제국을 시민과 원로원의 협의체인 공화정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자신들이 암살한 가이사가 마련한 계획에 따라 가이사의 양자로 삼은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등극 시켰는데 그만큼 가이사는 로마 제국에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2.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왕은 누구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한 또한 사람은 헤롯으로 재위 15년째에 46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쌓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벌이고 A. D.70년 로마군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성전 장식에 공을 들인 로마의 분봉 왕 헤롯을 빼 놓을 수 없는데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터”는 유대의 하스몬 왕조를 B. C.63년에 로마에 넘기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내전을 할 때 카이사르 편에 서서 승리하고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고 그의 아들 헤롯에게 유대를 다스리게 했다(B. C.37~4년까지).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헤롯은 한 사람이 아니라 헤롯 가문의 왕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스라엘 땅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요셉의 이야기(마 2:20)에 등장하는 헤롯은 유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에돔 지역을 분할 받은 헤롯 아켈라오 왕이 등장하는데 요셉은 아켈라오의 눈을 피해 유대가 아닌 나사렛으로 갔다고 마태복음 2장 22절은 기록하고 있는 데 그만큼 아켈라오가 폭력적인 정치를 했기 때문인데 A. D.6년에 유대와 사마리아 귀족들이 로마 황제에게 숙청해달라고 요청해서 왕위에서 쫓겨났고 이 후 유대 지역은 로마 총독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저 여우”(눅 13:32)라고 부른 헤롯은 헤롯 빌립 1세의 형인 헤롯 안티파스로 자신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였고 세례 요한이 안티파스에게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자 세례 요한을 죽였다(마 14:3~4)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여우라고 말씀하신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에 등장하는데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의 분봉 왕으로 세례 요한을 죽이고 빌라도와는 원수지간이었지만 예수를 갈릴리 사람이라고 심문할 때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눅 23:12).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신 곳은 헤롯 빌립 2세가 로마 황제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립한 지역인 가이사랴 빌립보(마 16:13) 였고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왕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다 벌레에 먹혀 죽는 벌을 받았다(행 12:21~23).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인 아그리파 1세의 아들 아그리파 2세는 사도행전 26장 24절로 32절에 등장하는데 로마 군사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로마에서 죽었다.
3. 로마의 2대 황제 디베료(티베리우스)와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성경에 나오는 디베료는 A. D.14년 예수님의 청소년 시기부터 십자가 처형과 사도행전의 초기까지 37년 간 폭정을 한 왕이며 빌라도는 디베료가 황제가 된 지 15년째에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눅 3;1).
디베뇨는 가이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혈연에 연연했는데 유부녀인 리비아와 결혼하기 전 이미 3세였던 디베뇨는 어머니가 옥타비아누스와 결혼하자 친부 드루수스도 밑에서 성장했고 생부가 죽자 의붓아버지인 옥타비아누스와 황궁에서 살았다.
혈연을 중시하는 옥타비우스는 황제의 자리를 친족에게 물려주기 위해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유일한 혈육인 딸을 친구이자 동료인 아그리파와 결혼 시키고 외손자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지만 모두 죽자 디베료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 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디베료에게 아그리파와 살고 있던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조건을 달았고 디베뇨가 황제에 오르자 옥타비아누스는 딸 율리아를 간통죄를 빌미로 유배형을 내렸다.
디베뇨는 황제가 되었지만 강제 이혼한 첫 부인을 평생 잊지 못하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며 의붓아버지 밑에서 외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아마 “테러블 티베이우스”라는 폭군으로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디베뇨는 카프리 섬에서 운둔하며 문서 정치를 10년간 했고 이때 유대로 파견한 총독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였는데 헤롯이라는 유대 분봉 왕과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있는 대제사장, 바리새파, 사두개파, 유대의 고위급인 서기관들 틈에서 빌라도는 카프리 섬에 있는 폭군 디베뇨에게 민란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어갈 것이라는 강박감으로 두려워했는데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대제사장 세력은 민란을 빌미로 교묘하게 예수의 처형을 빌라도에게 요구한 것이다.
유대인의 유월절에 죄수 한 명 씩을 놓아주는 전례는 소동이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요세푸스의 신화는 기록하고 있다. 유대의 정치범을 한 명 놓아줌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불만을 감소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유대의 명절이 로마 제국에는 비상 사태였던 것이다.
빌라도가 노련한 정치가이며 행정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빌라도는 이러한 유대의 풍습을 이용해 예수를 특사로 풀어주려 했지만 오히려 대제사장들은 유월절을 이용해 민란이 날것이라고 겁박하고 예수를 처형하라고 요구한다(마 27:15~17, 21).
분명 돌로 쳐서 죽이는 유대의 전통 처형 방식이 있는데도 대제사장과 무리들은 로마의 처형 방식인 십자가 처형을 고집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로마에 전가시키려는 아론 대제사장의 후손인 유대 족속의 비겁한 자기 부인이었다(마 27:24~26).
비로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태복음 5장 17절로 20절에서 말씀하신 천국의 가르침처럼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심이 아니라 완성 시키셨다(마 26:56) 예언자 미가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마구간에서 탄생(마 2:5~6)하셨고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애굽에서 돌아오셨다(마 2;15).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헤롯이 2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죽였는데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로마와 예수님과 바울과 같은 사도의 행적에는 로마 제국과 다신교를 믿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등과 같이 예수님과 연관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페르시아에서 유대로 귀환한 후 출범한 산헤드린 공회는 A. D.6년 로마로부터 유대의 최고 대표기구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 예수님의 시신을 총독 빌라도에게 요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유대인의 재판권을 담당한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이었다는 사실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마 27:1~2).
성경과 5대 제국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의 끝은 로마 제국이 A. D.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A. D.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 화되었고 A. D.476년 로마의 멸망으로 끝을 맺는다.
로마가 모든 분야에서 부르짖은 것은 “관용”이었지만 노예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귀족 중심의 관용이었지만 “하나님의 세계경영은 십자가의 관용”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400년의 침묵을 깨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관용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결코 기독교의 십자가의 관용은 국가에서 이념으로 내세우는 종교가 아니며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그런 값없는 이름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천하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애굽의 바로, 앗수르의 산헤립,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페르시아의 고레스, 헬라의 알렉산더, 로마의 옥타비아누스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 까 ?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이 천하보다 소중하다는 사실과 모든 민족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나의 정체성을 찾고 가정과 민족과 조국을 통해 타인과 타민족,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염원하며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 길을 걸어 갈수 있는 권능을 달라고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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