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신앙고백

주기도문의 이해

하나님아들 2019. 3. 16. 22:37

주기도문의 이해

 

 


기도는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보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내용을 순서에 맞추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의 내용에 잘 드러나 있다. 기도는 어떤 내용으로 드려져야 하는지 알아보기 전 먼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님의 온 생애는 기도로 일관된 삶이었다. 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주님은 기도하셨다. 기도를 통해 주님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여 그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다. 이러한 주님을 모신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이신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눅11:1이하). 사실 제자들은 유대의 전통에 따라 시간을 정하여 기도해 왔었다. 유대인은 하루 세 번(9시, 12시, 오후3시) 기도하였고(단6:10,11,행10:3), 기도시간에 외우는 기도문(쉐마, 쉐모네, 에스레의 18가지 기도문)도 있었다. 왜 제자들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했을까? 이는 요한의 제자들을 포함한 다른 유대인 그룹들이 그들 나름의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서의 그들의 특징을 나타내 줄 기도를 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마6:9-13,눅11:1-4)이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은, 이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의 기본이요, 이 기도의 내용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 도표들은 주기도문의 바른 이해를 돕는 자료이다.



 


주기도문의 구조

 

Ⅰ. 서론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Ⅱ. 본론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

1) 아버지의 이름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하나님의 나라 : 나라이 임하옵시며

3) 하나님의 뜻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도

1) 일용할 양식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죄 용서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3) 시험에서의 승리 :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4) 악에서의 승리 :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Ⅲ. 결론 : 하나님께 드리는 송영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무의미하고 습관적인 기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먼저 질문들을 하나님께 제시하고,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는 자신의 기도를 드리는 방법이 있다.

주기도문

질문들

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은 나, 또는 다른 어느 인간도 해낼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는가?

우리 모두의 아버지 하나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오늘 나의 삶에서 무슨 일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낼 수 있을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오늘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을 아버지의 나라로 화하게 하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 나의 겟세마네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여기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나는 오늘 어떤 영양분, 또는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가?

오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양식을 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내게 있어 가장 용서받아야 할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누구를 용서해 주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을 우리가 용서해 준 것같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는 오늘 무엇으로부터 가장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나?

우리는 유혹에 빠지기를 원치 않사오나, 우리가 유혹에 빠졌을 때에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살고 있는가?

온 세상은 아버지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위에, 모든 권세로써 지금부터 영원까지 임하고 계시옵니다.


 

1) 경배와 찬양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기도의 시작은 당연히 그분을 찬양하고 그의 높으심을 경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경배’란 공경하여 공손히 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지 못할 경우 진정한 경배란 불가능하다. 입술과 몸짓의 경배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과 떨림이 없다. 심령의 무릎을 꿇고 진정한 경배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응답하신다.(단4:34,35)

 

2) 감사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영생을 주심에 감사하고 세상살이에서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특별한 것까지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배려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주시는 생사화복의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감사는 우러나와야 진정한 것이다. 배부른 아이에게는 맛있는 음식도 달갑지 않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하지 아니하면 결코 감사할 수 없다.(빌4:6,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3) 죄의 고백과 통회

우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남김없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 이 통회의 시간이 있어야 하나님과 정상적인 사랑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는 완악한 심령으로 드리는 기도가 바로 책망 받은 바리새인의 기도였다. 죄의 고백과 통회하는 심령은 놀랍게도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간다.(렘3:13,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4) 중보, 간구와 청원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나는 비록 부족하여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잘못한 이웃까지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용서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간구를 드려야 한다. 그밖에 꼭 필요한 사항들을 주님의 뜻에 맞게 청원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점검하지 않고 내 욕망대로 청원하는 것들은 응답받기 어렵다.(약5:13-16,엡6:18,딤전2:1-3)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딤전2:1-3).” 도고(禱告) :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

 

5)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우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다.(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6).”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7:25).” 

 



주기도문 해설 
 




성도가 신앙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3가지가 사도신경과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교리의 기준이고, 십계명은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하는가 하는 신앙생활의 원리이며, 주기도문은 기도의 표준입니다.
주기도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하고 머리에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주기도문의 내용과 참 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으며 이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아 주님 앞에 드리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주기도문은 간단하면서도 보편적인 기도이기 때문에 깊이 있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말하기를 "주기도문은 최대의 순교자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있지만 참된 의미와 진의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 혹은 “제자들의 기도” 라고 불려졌는데, 이 이름은 편의상 부르던 것이 관행이 된 것입니다. 감리교회를 '규칙주의자' 즉 'Methodist' 라고 별명을 준 것이 관행이 되었듯이.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내용 가운데 "우리가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라는 기도의 필요성이 주님께는 없기 때문입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주기도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르쳐 주신 기도문입니다.(눅11:1)


주기도의 첫 말씀은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한 것이니. 이는 지식이 그 능하고, 보호하시기를 예비한 아버지에게 가는 것과 같이 우리가 모든 것을 거룩하게 공경하는 뜻과 든든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을 가르치고. 또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가르친 것입니다. (사64:9, 눅11:13, 롬8:15, 엡6:18, 행12:5, 슥8: 21,딤전2:1-2)
(1) 하늘에 계신(신성) (사57:15)
(2) 우리 아버지(인류의 한 형제관계) (눅15:20, 10:12)
(3) 거룩하고 공경하는 의미로 든든히 의지할 것 (사43:1)
(4) 인격적으로 경배할 것 (말1:6)
(5) 타인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교훈한다 (슥8:11)


 하나님을 위한 간구

첫째 간구: 하나님의 성호의 거룩함을 위한 기도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함인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모든 일에 우리와 다른 이로 하여금 능히 그를 영화롭게 하고, 또 모든 것을 처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옵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시67:1-3, 살후3:1, 시14:5, 사64:1-2, 롬11:36, 계4:11)

둘째 간구: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위한 간구
"나라이 임하옵소서" 함은 사단의 나라가 멸망하고, 은혜의 나라가 흥왕하여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고 들어가 항상 있게 하시고, 또 영광의 나라가 속히 임하게 하옵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시68:1, 살후3:1, 시51:18, 67:1-3, 롬10:1, 계22:20, 벧후3:11-13, 마9:37-38, 요12:31). 
(1) 사단의 나라가 망하고 (시68:21)
(2) 은혜의 나라가 흥왕하고 (마6:33)
(3) 모든 사람이 항상 들어 오도록 (슥14:20)
(4) 영광의 나라가 속히 임하도록 (계22:20)

셋째 간구: 하나님 의지의 실현을 위한 기도"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함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사 우리로 하여금 범사에 그의 의지를 알고 순종하며 복종하기를 하늘에서 천사들이 행함과 같이 하옵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시119:34-36, 행21:14, 시103:20-22), 마26:39, 빌1:9-11)


 사람을 위한 간구

넷째 간구: 일용할 양식을 위한 간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함은 하나님의 은사로서 이 세상에서 여러가지 좋은 것 중에 만족한 부분을 받게 하시며 아울러 그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심을 더한 것 입니다.

다섯째 간구: 사죄의 은혜를 위한 간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함인데 우리가 그의 은혜를 힘입어 능히 진심으로 다른 이의 죄를 사하였은즉 더욱 용감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시51:1,2,7, 롬3:24-25, 눅11:4, 마18:35,14, 6:15, 막11:25)

여섯째 간구: 시험에서의 구원을 위한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옵소서" 하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혹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아니 하게 하시거나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시51:12, 살전5:23)

 
 

 송영: 나라 권세 영광

주기도의 마지막 말씀은 곧"(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하))

 대개(왜냐하면) 
 이 말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해 온대로 '대충' 또는 '대략'이란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원문을 보면 "왜냐하면"(for)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앞에서 기도한 7가지를 구한 것은 바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Kingdom) 
 나라는 주권을 말합니다. 모든 주권은 우리 아버지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통치자를 세우신 왕 중의 왕이십니다. 주기도문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님께 주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 후에 이 나라를 아버지께 돌려 드릴 것입니다.  
 권세(Power) 
 권세는 능력과 힘을 말합니다. 모든 능력과 힘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을 쫓고, 병을 고치고,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영광(Glory)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영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높이고 낮추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아버지(성부 하나님)께 있음 
 성도들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앙을 고백할 때에 우리의 기도와 신앙과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영원히(Forever) 
 세상의 권세와 나라는 일시적입니다. 그들은 일어났다가 또 즉시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은 권세를 잡으면 그 권세가 영원히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 나라에는 영원한 통치가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아멘 ! 
 아멘은 '진실', '충성', '믿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이 말을 통해서 "지금까지 기도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동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멘으로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하고 난 후에 도장을 찍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아멘 한 후에 더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우리 기도가 이러한 목적을 벗어나면,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 참고문헌 
 

1)이상근 신약주해(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2)박윤선 신약주석(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3)김응조 성서대강해(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4)기독교 대백과사전(교문사)




간단한 주기도문 해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부분은 신자들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신가를 알려준다. “하늘에 계신다”(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는 의미는 그의 주권이 하늘 이외에 다른 곳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늘”이 표상하는 바는 “높음”, “엄위로움”, “고상함”, “고귀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그의 얼머나 높으심을 찬송하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은 무한하시다. 그러나 그의 장엄하시고 높으시고 엄위로우심은 “하늘에 계시다”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그를 높이며 찬송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엄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

“우리 아버지”(Πατερ ημων)라고 할 때 “아버지”(Πατερ)는 성부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하나이신 하나님을 지칭한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우리 경배와 찬송의 대상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여상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도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할때에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의 본체로서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에게 계신 우리 아버지”(Πατερ ημων ο 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는 신자들의 간구의 대상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한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성호는 여러 가지이다. “엘사다이”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라는 성호는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의 성호이다. “아도나이”라는 성호는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시고 온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성호이다. “엘로힘”은 이방 종교에서도 부르는 “신”이라는 의미이지만 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엘로힘”은 그 백성의 하나님으로서 “엘로헤누”로 계시되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란 의미는 신자들의 찬송의 목적이다. 신자들의 찬송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기리며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자들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찬송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별스럽게 찬송을 드리지 못할 지라도 신자들의 삶 전체가 아버지 하나님께 찬송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를 드리는 신자들은 자신들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진 바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찬송은 신자들의 삶이다. 거기에는 입술의 열매를 포함한 전체의 삶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3.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기도문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간구하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는 신자들의 매일의 삶 가운데 임재하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임재는 항상 현재적이다. 지금 주님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서 이미 그 신자들에게 항상 임재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으로 혹은 진동으로 느끼는 나라가 아니다.

가장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오직 믿음으로 경험이 되는 나라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믿음으로 그 나라를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간다. 하나님 나라가 있다. 다만 믿음이 있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나라이기에 이 세상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세상 나라에 속한 많은 거짓 신자들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 멀리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그에게 나아가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히 11:6)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그의 나라를 매일 순간 순간 신자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내려 주신다.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다. 그것은 가장 가난한 삶 가운데 가장 충만하게 임재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물질의 부재로 인하여서 하나님 나라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부재하여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러한 자들에게 멀리 있다. 오직 믿음으로 만 경험이 가능한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다.

대부분 인생들의 어두움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게 가로 막는다. 그것은 죄악이다. 죄가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게 날마다 막아서고 신자들을 뒤흔들고 어지럽힌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중생한 신자들에게 날마다 경험되는 놀라운 거룩한 나라이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이며 정결한 나라이고 순결한 나라이다.

4.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뜻”이 헬라어로 “뗄레마”(θελημα)이다. 이것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이다. 그리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계획된 것이다. 그것은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며 왜곡과 뒤틀림이 없다. 오직 그의 뜻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섭리적 경륜의 역사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를 따라서 경륜적으로 구속사를 이루어가신다.

이미 천상에서 영원 전부터 계획된 그 모든 신적 작정은 일점 일획도 어그러짐이 없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그 복된 신앙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영광의 나라에 지금 현재적으로 임재를 경험하면서 더욱 충만한 완성을 향하여서 달려가는 자들이 신자들이다. 신자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서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달리기 선수와 같다. (빌 3:14)

세상의 면류관은 썩을 면류관이지만 신자들의 면류관은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다. 그 영원하고 완전한 면류관을 바라보며 달려 간다. 그 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씌워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이다. (고전 9:25) 하나님 나라의 계시(αποκαλιψις)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구약 성경은 무오하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 그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천지가 없어지기가 더욱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고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허망함이란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다.

신구약 성경의 무오성을 거절하는 순간 신의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이신론이다. 그리고 이신론은 반드시 무신론으로 나아간다. 결국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하나님의 실재를 부정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구속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로 성취되는 모든 지식을 우리는 신구약 성경으로부터 얻는다. 신구약 성경은 그 만큼 위대하며 높은 가치가 있다. 그것은 유일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계시이다. 그것은 신의 계시이다. 그래서 절대성과 영원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멀다.

그렇게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계획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은 신자들이 살아가는 역사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성취되고 있다. 결국 신자들이 확신과 경외심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신구약 성경이다. 그렇게 신구약 성경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완전하고 영원하다.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신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용할 양식은 두 종류이다. 첫째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이다.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 하셨다. 그러나 신자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가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그 위치에 있다. 신자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데 있다.

그 옛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라고 권면하였다. 이는 모든 인생들의 삶의 목적이지만 오직 신자들에게만 유효하다. 신자들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만나이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 만나를 받아서 먹고 살았다. 그들의 광야에서 생활 40년간 그들이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만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셔서 그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광야같은 매일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만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나의 실체이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자로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의 신앙은 금세 메마를 것이고 그들의 영혼은 곤고하여서 광야를 헤매는 가련한 영혼이 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서 신자들에게 성취된다.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무지는 실로 신자들에게 심각한 재난이다.

인간의 체온 보다 높아진 기온을 몸으로 받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바로 광야같은 삶이다. 주의 말씀만이 광야 같은 삶 가운데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구름 기둥이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19:1-11)

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사죄의 은총에 대한 간구는 실은 전적으로 그의 은총이다. 인간편에서 공로를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 가르치신다.

이는 우리가 이웃의 죄를 사하여 준 것이 그 공로가 되어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져 주지 못하는 그 죄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속죄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의 복을 위한 말씀이며 우리에게 어떠한 수고를 행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웃의 죄를 중심으로 사하여 주지 못하는 자는 그 죄가 항상 남아 있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힌다. 과거와의 결별이 불가능하다. 항상 과거에 매여서 살아가다 죽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증거하는 큰 빚을 탕감받은 어리석은 종의 비유에서 잘 드러나 있다. 큰 빚을 주인에게 지은 어떤 종이 그 빚을 탕감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그 종이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이었다. 그 재력가인 주인이 그 종의 요청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동관 하나가 곧 갚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빚을 당장 갚으라며 윽박질렀다. 동관이 조금 기다리면 갚아 주겠다고 했으나 전혀 무시하고 그 동관을 법정에 고소해서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 배은망덕한 짓을 한 이야기가 그 주인의 귀에 들어가고 그 주인이 그 종을 불러서 어마한 빚을 갚아준 주인의 은혜를 잊고 네 동관의 작은 빚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면서 그 종에게 모든 빚을 갚을때까지 감옥에 가 있으라고 명령한다. 이는 실로 이웃의 허물을 중심으로 사하여 주지 못하는 많은 신자들의 어리석은 모습이다. 이 비유가 주기도문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신자들은 중심으로 우리 이웃의 허물을 사하여 주어야 한다. 신자들이 중심으로 우리 이웃의 허물을 사하여 주게 되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사그라 들면서 그를 향한 애정이 싹튼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경험이다. 자신에게 범한 이웃의 허물을 중심으로 사하여 주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자세가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받는 것이다. 
신자들은 자신에게 죄를 지은 자의 허물을 중심으로 사하여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구속 받은 신자에게 최고의 은혜이다.

7.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모든 시험은 우리 각자의 죄악으로부터 비롯된다. 사도 야고보가 그의 저서에서 분명하게 증거하였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3-15)

인생들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은밀한 욕망이 시험에 드는 원인자이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사도 야고보는 증거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라 간구하라 하셨다. 이는 신자들이 항상 살펴서 시험에 들지 않게 주의하라는 의미이다.

8.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신자들이 악에 빠지는 경우는 자신들 안에 부패성이 절제되지 못할 때이다. 신자들은 부단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악에서 떠나야 한다. 악을 좋아하고 악을 따라가는 자는 멸망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복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서 그 율법을 밤낮아로 씨름하는 자이다”(시 1:1-2)라고 고백하였다. 시편 기자의 말씀처럼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삶이 복되다. 대부분의 망가져가는 인생들은 악인의 꾀를 좇는다. 잠시 유익있고 이익이 되며 이 세상에서 호의 호식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일 뿐이다. 더 어렵고 더 힘들게 살게 될지라도 주의 말씀을 따라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복되다.

9.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제 주기도문 맨 마지막 부분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이 있사옵나이다.”로 마친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권세와 그의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 하나님께 있다.

신자들의 간구에 맨 마지막에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송영이다. 그래서 맨 마지막 부분은 송영으로서 간구이다.

하나님을 찬송함으로서 기도를 마치는 것이다.

오직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