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4일
본 문 : 마5:16
제 목 : 친절터치
몇 년 전에 세계적인 잡지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세계 35개 도시의 친절도를 각 나라 수도에 거주하는 시민 60명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점검테스트항목은 다음의 세 가지로 하였습니다.
1. 뒤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가?
2.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점원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가?
3.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서류뭉치를 떨어뜨렸을 때 줍는 것을 도와주는가?
서울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놀랍게도 35개 나라 중에서 32위에 머물렀습니다. 서울이 세계적인 대도시 중에서 불친절하기로 몇 위 안에 드는 부끄러운 결과였습니다.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친절한 것 같습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데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아파트 안에서도 먼저 인사를 해야 겨우 답례를 하는 젊은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친절히 대하면 혹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저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닌가 하고 경계심부터 가지게 됩니다. 친절이 생활화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불친절이 습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수년 전에 고객만족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각 기업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에 기업의 사활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고객이 단지 만족하는 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객감동의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너도 나도 역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친절입니다. 고객에 대한 친절이야말로 고객을 만족케 하고, 감동시켜 재 구매를 촉진시키는 가장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기업마다 친절서비스운동을 펼치고, 직원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전문가를 초빙하여 친절서비스 교육을 실시하곤 하였습니다. 저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친절교육을 강의하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절 교육을 실시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웃는 얼굴을 만드는 것입니다. 친절은 먼저 웃는 얼굴에서 나오는데 나이가 들수록 워낙 오랫동안 웃지 않다보니 얼굴 근육이 굳어져서 웃는 얼굴이 도통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전문 강사들도 굳었던 얼굴 근육을 풀어서 웃는 얼굴로 만드는데 진땀 빼는 진풍경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우리 생명나무교회 성도님들은 평소에 모두 다 잘 웃는 얼굴들이니 이런 교육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친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됩니다. 친절한 사람들은 그 친절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그로 인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오늘은 터치전도 세 번째 주일로 친절터치주간입니다. 성도님들이 제출한 예비신자들을 이제 찾아가 친절로 그들을 섬기는 주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제목도 친절터치로 잡았습니다. 먼저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 질문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나는 친절한 사람인가?”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찾아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인사합니까? 눈이 마주쳤을 때 먼저 눈인사를 하거나 목례를 하고 있습니까? 처음 교회에 오는 분이 있으면 얼른 그 옆에 앉아 성경과 찬송가를 찾아줍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지극히 친절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친절한 성도로 가득 차기 보다는 다소 친절하지 않은 성도들로 차 있는 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친절을 베풀어야 할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바라볼 때 경직된 얼굴로 바라보고, 말이라도 걸라치면 외면하고,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는 모습들이 더 많은 안타까운 일들이 도처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에서 기업들이 친절서비스운동을 펼치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친절이라는 성품은 교회에서 세상을 향해 빛으로 발해야 할 요소입니다. 친절은 성령의 열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 그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습니까? 고전13장은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가장 명확하게 내려줍니다. 고전 13장 3절을 보면 “사랑은 온유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온유를 영어성경에서는 kind 즉 친절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온유이며 온유는 곧 친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친절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성품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친절의 성품을 세상으로 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세상에서 친절운동이 거꾸로 교회로 역류해 들어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터치전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는 무엇보다도 친절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친절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성품입니다. 또한 친절은 무엇보다도 인간관계에서의 좋은 만남과 이해와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자, 그렇다면 누구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까요?
친절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친절을 멀리 있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불친절할 때가 많습니다. 가까우니까 이해하겠지 하는 마음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먼저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교회 안에 성도들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끼리 친절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 안에 성도 간에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성도 간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요, 형제 자매들입니다. 그렇기에 서로를 사랑으로 친절히 대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 성도들 간에 서로를 친절하게 대할 때 교회 밖에 사람들에게도 친절히 대하게 됩니다.
마크 코너목사가 쓴 “당신의 교회를 변혁시켜라”라는 책에서 ‘우리 교회는 과연 몇 점이나 될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흥하는 교회와 부흥하지 못하는 교회를 방문하여 점수를 매겼습니다. 평가기준이 뭐냐 하면,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교회 성도 중 한 사람에게라도 미소를 받는다면 10점, 한 명에게라도 인사를 나눈다면 10점, 만일 어떤 성도와 서로 이름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눈다면 100점, 만일 인사를 나눈 사람이 다른 성도를 소개해 준다면 1000점, 만일 그 사람이 목사님에게 소개해 준다면 2000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배정했습니다. 인사만 나누어도 100점은 받을텐데 놀랍게도 많은 교회에서 이런 환영을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 교회는 그 누구에게서도 미소나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리포터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만일 어떤 교회가 뜨거운 찬양과 강력한 말씀선포가 있을지라도 예비 신자나 교회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자신을 반겨줄 그 어떤 사람도 찾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 교회에 다시 오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친절도를 이렇게 평가한다면 과연 몇 점을 맞게 될까요? 한 2000점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런 면에서 참 잘해오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더욱 친절한 교회로 평가되는데 모두가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오고 싶은 교회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가족이나 성도에게 먼저 친절을 베푼다면 다음은 누구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까요? 이제 대상을 넓혀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의 예비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분을 만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친절을 베푸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지불식간에 친절을 베풀어서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려고 그곳으로 내려가려는 하나님과 천사들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알고 지극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을 때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지나가는 천사들을 집으로 영접하는 친절을 베풀었다가 딸들과 함께 구원받게 됩니다. 모압 여인 룻이 그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다윗왕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보아스도 모압 여인인 롯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그는 다윗왕조만이 아니라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비바람 치던 날 늦은 밤, 이 곳에 있는 한 여관에 어떤 노부부가 찾아와 “이 근처에 웬만한 여관이나 호텔은 모두 다른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방을 구할 수 없군요. 혹 이 여관에는 들 방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안내인은 마침 이 도시에 세 개의 큰 총회가 모이는 관계로 빈방이라곤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알려 주며, “객실은 모두 다 사람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밤 한 시에 이렇게 비 쏟아지는데 당신들과 같은 멋있는 부부를 거리로 쫒아내고 싶지는 않군요. 누추한 제방에서라도 쉬었다 가시면 어떨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손님은 “아,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이제 걱정을 덜었군요” 하고 안내인의 방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노신사는 방값을 지불하면서 그 안내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 주인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그러한 훌륭한 호텔을 하나 지어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내인은 그냥 웃었습니다. 2년 후, 뉴욕행 왕복 차비와 함께 자기를 찾아와 달라는 초청장이 날라 왔습니다. 초청한 분은 그 비바람 치던 날 누추한 자기 방에서 잠을 자게 된 그 손님이었습니다. 안내인은 초청장이 동봉된 편지를 받아 들었을 때도 그냥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의를 생각해서 초청장을 들고 뉴욕으로 갔습니다. 초청한 그 노신사는 그 젊은 안내인을 데리고 거리로 나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새로운 빌딩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운영해 보라고 지어주는 호텔일세.” 그에게 은혜를 베푼 그 노신사는 바로 윌리암 왈도르 후하스톨이였고 그 호텔은 그 당시로서는 가장 최고급 호텔인 윌리암 왈도르 후아스톨리아 호텔이었습니다. 그 젊은 안내인은 한 번의 친절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한 번의 불친절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노신사가 은행을 찾았습니다. 마침 이 신사가 만나야 할 직원이 출장을 가고 자리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오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세워두며 받아온 주차카드를 여직원에게 내밀며 확인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직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저희 은행에서 아무 업무도 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신사는 여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여직원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했고 신사의 요청은 거듭 거절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요청을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신사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여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은행에서 아무 업무라도 보면 주차카드에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여직원은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였습니다. 신사는 예금 인출서를 작성하여 여직원에게 주었습니다. 예금 인출서에는 이 신사의 통장에 든 모든 예금을 인출하겠다고 기록하였는데 그 액수가 100억원이 넘었습니다. 직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잠시 후에 은행지점장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노신사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내 모든 예금을 해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여직원의 작은 불친절이 이렇게 큰 낭패를 불러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웃이나 아예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주님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친절이 큰 성공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날마다 친절을 베푸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친절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마더 테레사 수녀가 친절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을 거쳐 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더욱 좋아지고 행복해져서 떠나게 하라. 하나님의 사랑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도록 하라. 그러려면 당신의 얼굴에 친절이, 당신의 눈에도 친절이, 당신의 미소 속에 친절이, 당신의 따뜻한 인사 속에도 친절이 서려있게 하라” 친절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눈길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따뜻한 미소를 띄워주고, 상냥한 말로 먼저 인사하는 것이 친절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뭔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 친절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친절은 어떻게 베풀어야 할까요?
첫째는 환한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누구나 경계심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표정을 살피게 되고 그 표정을 보고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때 환한 미소와 따뜻한 시선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면 경계심이 사라지게 되고 친근한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좋은생각 2월호에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나는 시애틀의 우편배달부”라는 에세이의 저자 권종성씨의 이야기입니다. 권종성씨는 1990년에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가 친절 하나로 지역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입니다. 그가 평소에 배달하던 구역이 조정된지 1년여만에 예전에 배달구역에서 자주 만나던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그 변호사는 너무도 반가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당신은 아주 훌륭한 우체부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권종성씨가 이에 대하여 “잠깐 우편물 건네고 가는 사람인데 무슨 훌륭하다는 칭찬까지 해주느냐고 너무 부끄럽다”고 말하자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냐, 늘 웃으면서 배달했잖아. 당신을 보면 우리도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거든” 미소를 띠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습니다. 사실 얼굴이 잘 나고 못 나고는 차이가 없습니다. 얼굴에 가식적이 아닌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는 상대방을 기쁘게 해줍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평소에 어떤 얼굴이십니까? 환한 미소를 듬뿍 담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습니까? 이 시간 서로 옆에 있는 성도님들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미소를 담아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절로 웃음꽃이 얼굴에 피지 않습니까? 웃는 얼굴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반면에 얼굴이 굳어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왠지 가까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늘 따스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히 담아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인사를 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때마다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잘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맺고 이끌어 갑니다. 어떤 분들은 생전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인사하면 마지못해 까딱 목례만 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인사해도 답례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인간관계를 이끌어 가는데 힘이 많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인사만 잘 해도 겸손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셋째로, 칭찬과 격려의 말을 잘 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절한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녹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투도 잘 사용하여야 합니다. 똑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사람이 말할 때는 아주 좋게 받아들이는데, 어떤 사람이 말할 때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나의 말투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고치려 노력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라는 책의 내용처럼 칭찬은 마음 문을 여는 귀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칭찬도 시의적절하게 해야지 시도 때도 없이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오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물러가게 합니다. 생명을 줍니다. 생명을 자라나게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빛의 사명을 감당하시겠습니까? 친절터치로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은 친절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가슴 깊이 새기고 특별히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고, 더 나아가 예비신자들에게 친절을 베풂으로 그들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데 힘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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