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추수감사절)
본 문 : 골 3:15-17
제 목 : 감사로 인생을 바꾸라
성도 여러분은 매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감사가 아닐까요? 한해를 거의 마무리하는 이 시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 주위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해를 보내면서 가장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느 교회를 보니 게시판에 감사나무를 부착해놓고서는 모든 성도들이 잎사귀 모양에다가 감사한 내용을 적어 달아 놓는데 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우리 교회도 내년부터는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지난 한해동안 너무도 힘들어서 되새기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래도 뒤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저는 뒤돌아보면서 가장 감사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나름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감사할 일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들었을 때 분당우리교회를 통해 생활비 지원을 받게 되어 당분간 생활비에 대한 염려 없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 올해 우리 교회에 새롭게 등록한 성도님들이 여섯분이 되는 것도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무엇보다 감사할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잘 생활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할 제목과 내용을 열거하다보면 오늘 하루가 다 갈 것 같아서 이만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감사할 것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저처럼 감사할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사라집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이미 2천년 전에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1절2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감사가 차지할 자리에 불평과 원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우리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갈 뿐만 아니라 건강도 빼앗아 갑니다. 죤 헨리라고 하는 저명한 의학자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감사하면 맥박이 고르게 되고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력을 증진시켜 기분까지 상쾌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평은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맥박을 급하게 하는 동시에 위장의 운동을 정지시켜 뱃속으로 들어온 음식의 소화를 거부해 건강에도 어려움을 겪게 한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신체도 건강함을 유지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현대에 왜 온갖 질병이 더 늘어가고 있습니까? 바로 감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로 살펴봅니다.
첫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너무 높아 커트라인이 없는데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 사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하나를 간절히 원하다가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을 원하고 더 많이 바라다가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자족할 줄 모르는 인생은 욕구가 채워져도 감사하지 못하고 또 다시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약1:14,15에서는 이 욕심에 대하여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둘째는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서 소득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였고,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누리는 각종혜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왠만한 가정이면 승용차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고, 초등학생들까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왕도 제 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신선한 과일을 이제는 사시사철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왕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때보다 행복을 맛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행복지수는 오히려 그 때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이 비교의식으로 인하여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데 이는 절대빈곤보다 더 심각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거나, 나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거나, 더 좋은 집이나 차를 소유하고 있거나 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만이 늘어나게 됩니다.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서 오는 슬픔도 아니고 실패에서 오는 고통도 아닙니다. 재능이 모자라서 내뱉는 탄식도 아닙니다. 가장 큰 비참은 비교에서 오는 것입니다. 난 너무 못생겼고, 난 너무 뚱뚱하고, 난 너무 키가 작고, 난 머리가 좋지 않고, 난 좋은 대학을 다니지 못했고, 난 집안 배경이 좋지 않고, 난 가진 돈이 없고, 등등 끊임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해서 보기 때문에 그 인생은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기 때문에 행복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것을 자족할 때 생겨납니다.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번 필리핀에 갔을 때 운전하던 필리핀 장로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그 분이 필리핀 사람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저의 마음 깊이 각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소유 여부를 가지고 행복의 잣대를 삼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염려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염려하는 일 중에 오직 10%만 현재에 부딪힌 문제이고 나머지 90%는 이미 과거의 일이거나 미래에 아직 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90%를 붙잡고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염려합니다. 내일 일은 아직 닥치지 않은 것이고 꼭 오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염려 때문에 고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6:34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러나 사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염려가 생길 때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도할 때에는 다 주님께 맡긴 것 같은데 기도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다 내려놓은 짐을 다시 짊어지고 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의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길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구할 것을 감사로 아뢰어야 합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오직 감사로 간구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염려의 먹구름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가득 차게 됩니다.
이렇게 자족할 줄 모르며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감사가 사라지고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있는 것을 족하게 알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염려 대신 감사함으로 간구하는 사람이 참된 행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을 참으로 복되게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감사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독했던 시편 136편을 보면 전체가 26절로 되어있는데 무려 26번이나 감사하라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니 그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반복하여 감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해서이지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책엔가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집에 식수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천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명의 사람들보다, 하루 한 끼라도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명의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백만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30억명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며, 만일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다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다면 이 세상의 8% 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이다. 부모가 아직 살아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 모두가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는 바로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깨닫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49:20절에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짐승은 깨달음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이는 감사할 수 없고, 감사가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열 명이 모두 주님께로부터 문둥병을 치유 받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지만 그 중에서 다시 주님께로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한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육신의 질병만이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받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닫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고, 감사가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힌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이제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물에 새겨야만 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세상의 삶 속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늘 칭송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심히 적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그 당시는 감격하고 기뻐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공로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 은혜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은혜, 구속의 은총을 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일에 분주하여 그곳에 매달려 있는 동안 그 크신 은혜를 잊어버린채 감사보다는 작은 일에도 불평하며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어찌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사야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이유는 자족할 줄 모르고 더 큰 것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받은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더 큰 은혜를 끊임없이 구합니다. 그렇기에 감사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주신 은혜를 되새김질하여 그 은혜를 늘 묵상함으로 감사가 회복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1장 21절에는 불신자들의 특징을 두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 한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느 정도는 압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불신자들은 많은 것을 얻었을 때 기뻐할 줄은 알아도 감사할 줄은 모릅니다. 감사는 믿음을 가진 자 만이 누리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조차도 최선의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 그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평안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워 고통 중에 있을 때도 여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살전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후부터 일생을 감사와 감격 속에 살았습니다. 사도는 딤전1:12-14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 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셨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 때문에 그렇게 심한 어려움을 당해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수고를 많이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역사 하는 주님의 은혜라고 겸손히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스러운 마음 가운데서 그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고 하는 노력일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하는 근심밖에는 없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감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습니다. 여기 "모든 것"이란 말은 역경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역경까지도 선을 이루는데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역경이 선을 이루는 데 사용될까요? 그 하나는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다른 하나는 역경 속에서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중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현재 당하는 처지에 만족해서 환경이 좋아서 감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사랑을 믿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쓰라린 사정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다 나은 데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을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사는 역경 속에서의 감사요,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가 성도 여러분들이 삶 속에서 넘쳐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
사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도저히 감사드릴 수 없는 환경이 아닌 때가 많습니다. 사방으로 깜깜한 벽에 둘러 쌓여 있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목록을 작성해 보십시오. 놀랍게도 참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감사의 제목이 있는지 모릅니다. 환경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은혜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감사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고백이 삶 속에서 넘쳐날 때 날마다 감사할 일이 넘쳐나게 되며 삶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감사할 일이 더욱 넘쳐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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