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glish Bible ---------------------------------------- Moses Flees from Egypt 모세의 이집트 탈출
Exodus 2:23-25 23During that long period, the king of Egypt died. The Israelites groaned in their slavery and cried out, and their cry for help because of their slavery went up to God. 24God heard their groaning and he remembered his covenant with Abraham, with Isaac and with Jacob. 25So God looked on the Israelites and was concerned about them.
flee vi,vt. 탈출하다, 달아나다, 도망하다 period n. 기간, 시대, 완결, 수업시간 groaner n. 신음하는 사람 slavery n. 노예의 신분, 노예 제도, 고역 covenant n,vi,vt. 계약, 맹약, 계약하다 concern vt,n. 관심을 갖다, ...에 관계하다, 염려하다, 걱정하다, 관계, 이해 관계
Psalm 111:1-10 1Praise the LORD. I will extol the LORD with all my heart in the council of the upright and in the assembly. 2Great are the works of the LORD; they are pondered by all who delight in them. 3Glorious and majestic are his deeds, and his righteousness endures forever. 4He has caused his wonders to be remembered; the LORD is gracious and compassionate. 5He provides food for those who fear him; he remembers his covenant forever. 6He has shown his people the power of his works, giving them the lands of other nations. 7The works of his hands are faithful and just; all his precepts are trustworthy. 8They are steadfast for ever and ever, done in faithfulness and uprightness. 9He provided redemption for his people; he ordained his covenant forever--holy and awesome is his name. 10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ll who follow his precepts have good understanding. To him belongs eternal praise.
extol vt. 격찬하다, 절찬하다 council n. 회의, 협의, 평의 assembly n. 집합, 집회, 무도회, 회의 ponder vt,vi. 숙고하다 majestic a. 엄위함, 위엄 있는, 당당한 glorious a. 존귀함, 영광스러운, 빛나는, 장려한 deed n. 행사, 행위, 행동, 실행 endure vt,vi. 견디다, 참다, 겪다, 받다 wonder n. 놀라움, 불가사의 gracious a. 은혜로운, 품위 있는, 정중한, 상냥한 compassionate a,vt. 자비한 인정 많은, 동정심 있는, 동정적인, 측은히 여기다 provide vt,vi. 공급하다, 준비하다, 조건을 정해두다, 규정하다 precept n. 법도, 교훈, 격언, 명령서 trustworthy a. 확실한,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steadfast a. 무궁한, 부동(불변)의 upright a. 정의로운, 곧은, 올바른, 정직한 redemption n. 구속, 구원 ordain vt. 세우다, 제정하다, (법률이) 규정하다 awesome a. 지존함, 두려운, 무서운
----------------------------------------------------------------- RELATED TEXTS Numbers 32:23 Acts 7:23-29 Hebrews 11:24-27 -----------------------------------------------------------------
Exodus 2:23-25 23여러 해 후에 애굽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Psalm 111:1-10 1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3그 행사가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4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 5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6저가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사 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셨도다 7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8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 9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0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NIV 독해를 위한 2560 단어 정복 366일 과정 (49/366일차 = 337-343 개째 단어)
compassionate a,vt. 자비한 인정 많은, 동정심 있는, 동정적인, 측은히 여기다 concern vt,n. 관심을 갖다, ...에 관계하다, 염려하다, 걱정하다, 관계, 이해 관계 deed n. 행사, 행위, 행동, 실행 extol vt. 격찬하다, 절찬하다 flee vi,vt. 탈출하다, 달아나다, 도망하다 ponder vt,vi. 숙고하다 redemption n. 구속, 구원
여호와의 일을 연구하는 즐거움 ------------------------------------ 시 111:1-10
성도가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하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목적은 좀더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학과 세상 학문과의 차이점입니다. 세상 학문은 지식 그 자체를 연구하는 데 의미를 두고, 거기에서 얻은 지식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신학, 곧 성경 연구는 처음부터 그 목적을 하나님 경외에 둡니다. 이런 까닭에 사람이 성경을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더더욱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증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사실이 실질로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가 제아무리 성경에 능통한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러한 모든 신학적인 작업은 스스로를 속이는 수단으로만 작용할 뿐인 것입니다.
1. 받은 구속의 은혜를 감사함
시편 111편에 나타난 여호와께 대한 시인의 감사는 "할렐루야!"로부터 시작됩니다. "할렐루야"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적절히 번역하면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 됩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독점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신약성경에서는 오직 요한계시록에서 네번 나옵니다(계 19:1,3,4,6). 사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도 여기 시편에 들어와서만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특별히 다섯권째(107편-150편)에 수록된 시들을 통하여 이런 특징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104-106,111-113,115-117,135-136,146-150편). 시인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그 기이한 일' 때문인데(4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신 일이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고 지존하시도다"(9절). 2-8절을 통하여 여호와의 역사들이 다양한 의미로 표현되었을지라도, 이는 여기 9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구원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요,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 시대'라고 하는 구속사의 구조와 관련하여, 이 당시 시대에 나타난 여호와의 구원 역사는, 이스라엘이 열방 속에서 국운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의 종들을 세워 개입하심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변 국가들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을 때, 백성들은 그와 같은 구원을 베풀어주신 여호와를 찬양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압제자로부터 겪었던 고난이 그쳐졌다거나, 또는 자기네 대적을 무찌름으로 그들의 영토와 재물을 획득하게 된 사실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드러난 여호와의 언약적 관계의 회복과 확증, 바로 이것이 기쁨과 감사의 근본적인 동기였고, 여호와께 대한 찬양의 근거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끝까지 지키심으로 영원토록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시고, 이에 입각하여 자기 백성이 압제자들로부터 받는 고난과 질고를 모른 척하지 아니하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압제자들의 침략 야욕을 허용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일에 선히 이용하셨을지라도, 이는 근본적으로 언약 관계에 입각한 징계인 것이요, 부성애적인 마음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회초리였을 뿐입니다. 성도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언약 관계에 있는 한에는, 그가 겪는 고난의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이 부성애적인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히 12:5-13). 이런 까닭에 성도는 고난을 당할 때에 회개함으로 더더욱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게 되며, 이와 같은 신앙은 급기야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 형태가 구약 시대 때부터 존재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의 때마다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이 어린 아이와도 같은 순박한 신앙이요, 참 신앙인 한에는 항상 응답하셨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구원 역사가 나타나 이스라엘이 해방을 맛보게 될 때마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신실하심, 의로우심, 전능하심 등등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찬양은 여호와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이미 성립되어 있는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실질적 신앙이기도 하였습니다. 구약 백성에게 성립되어 있던 이 실질적 신앙은, 오늘날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밝히 드러난 신앙의 내용과 다를 바 없으니, 곧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 역사의 궁극적 완성인 것이요, '성도의 견인'으로 설명되어지는 동일한 교리입니다. 구약 성도들 역시 구원의 궁극적 완성, 성도의 견인 교리를 이해했고 신앙하였습니다(시 138:8).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종을 구원하소서"(시 86:2). 여기 "나는 경건하오니"라는 말은, 개역성경 난하 주에 보충적으로 설명되어 있듯이 "나는 주께서 은혜주신 자니"라는 의미입니다. 주께서 베푸신 이 은혜는 다름 아닌 설정된 언약 관계를 일컫는 것입니다. 이 언약적 구원은 불가항력적인 구원인 것이요, 구원의 불변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빌 1:6). 시인은 이 사실에 근거하여 주를 의지하며, 또한 그러한 자기를 주께서 끝까지 붙잡아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영단번에 베풀어지는 것이요, 도중에 취소되거나 무시되지 않는다는 데서 그 뛰어난 특징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것이 여기 시편 11편의 기자가 "할렐루야!"라고 했을 때, 그의 마음 속에 있었던 구원의 의미인 것이며, 그러기에 그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를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1절).
2.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하는 일의 중요성
본 시편에서 살펴보아야 할 두번째 중요한 관점은 '성경 연구의 즐거움'에 대한 것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고백하고 찬양한 시인은 이내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2절)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행사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 곧 구속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지금 시인의 말인즉은 여호와의 은혜를 맛본 사람은, 그것을 더 깊이 알고 싶어하고, 그래서 열심히 연구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 '연구'라는 히브리 단어는 어원상(다라쉬< >)으로 '찾다, 조사하다, 탐구하다, 궁구하다' 등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는 '주의를 가지고 조사하다'는 의미가 가깝습니다. 이 단어는 영어역에서 '숙고하다'(NIV, ponder), '찾아내다'(KJV, sought out), 연구하다(NASB, study) 등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단어에서 대학(大學)이라는 어원이 나왔다고 연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진리성(眞理性)을 갖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실제적인 접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로 베풀어졌기 때문에 성도는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때 성도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는가 하면, 지식을 통한 이해 작용을 통해서인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다 하실지라도, 만일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것의 의미를 백성에게 알려주지 아니하셨다면, 저들은 자기네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가 우리에게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를 내셔서 친히 그같은 역사의 의미를 밝혀주시기 때문에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계시 역사를 항상 수반합니다. 이 계시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자기에게 베풀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소유하고, 간직하며, 소망하면서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시인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라고 선포합니다(4절).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일은 처음에는 선지자들의 입을 통한 메시지로, 이후에는 기록된 문서 형식으로 나타났고, 최종적으로 성경이 완성됨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 앞에 충분한 양(量)으로 주어졌습니다. 성도는 이 계시를 연구함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에 접촉하게 되며, 소유하게 되고, 누려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복음은 일종의 진리의 지식 체계인 것이지, 순간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마는 감정이나 분위기 따위가 아닌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우리가 어떠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들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어떠한 깨달음과 이해력을 가지느냐의 문제를 취급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제시한 책이며 따라서 이해력을 주시기 위한 책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계시는 일체의 것들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턱대고 단지 믿음을 빙자하여 - 사실 이런 것이 믿음일 수는 없지만 - '전에는 소경이었으나 이제는 보나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이루어진 구원의 원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구원 받은 것을 믿습니다'라고는 결코 말해질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의 의미와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벧전 3:15). 하나님의 복음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옵니까?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서 얻어집니다. 성경에서 계시되는 대로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그리고 충만하게 앎으로써 비로소 오는 것입니다(벧후 1:1-4).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지나친 의심과 성급한 판단은 절대로 금물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으면서도 머뭇머뭇 거리는 것은 확실히 의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 보였던 우유부단함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요 20:24-25).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내용을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믿음일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성급하게 주님의 고난을 가로막고 나섰던 만용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마 16:21-23). 무언가를 바르게 믿기 위해서 그것의 체계적인 상관 관계를 따져보고 살펴보는 것이 마치 불신과 의심인양 매도되어서는 아니됩니다. 마땅히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확실히 의심이며 불신앙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무조건 믿는 것 역시 조심할 일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사실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적인 일순간의 충동일 뿐입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믿으라고 요구하신 것은, 그마만큼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신 때문입니다. 즉 믿어야만 하는 일체의 진리 체계를 보이신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향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요구되는 것은 그렇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믿으라고 명령되는 것입니다(행 17:31). 성경은 이 믿을 만한 증거를 진리로써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리의 체계들이 이해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믿음은 생성됩니다. 지나친 의심과 반대되는, 감정적인 충동에 의한 맹목적인 믿음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알지 못하지만 무조건 믿는다는 말은 원래부터 기독교 진리 안에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을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감정과 분위기적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진리의 종교입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또한 진리로 말미암아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방편으로, 그리고 수단으로 하여 우리의 구원을 진행시키십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진리 안에서 더욱 견고케 되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 안에서 계속 자라가야 하고 성장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하고, 살펴보며, 깨닫고 이해하기를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성령께서 이같은 역사를 성도 속에서 일으키시기 위하여 그의 속에 내주하십니다. 따라서 성도가 진리 안에 거하기 위하여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위하게 되는 성경 연구의 일상성은, 그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친백성인 사실을 증거해주는 구원론적 보증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3. 계시 연구를 통하여 더더욱 여호와를 굳게 경외함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연구하는 목적에 대한 고찰입니다. 시인이 여기서 '여호와의 행사를 연구한다'고 했을 때, 연구의 내용과 대상은 하나님의 구속사일 것이고, 그 목적은 여호와를 더더욱 잘 경외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10절에서 이 사실을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인간의 참된 지혜요 지식입니다(잠 1:7 9:10). 성도가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하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목적은 좀더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학과 세상 학문과의 차이점입니다. 세상 학문은 지식 그 자체를 연구하는 데 의미를 두고, 거기에서 얻은 지식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신학, 곧 성경 연구는 처음부터 그 목적을 하나님 경외에 둡니다. 이런 까닭에 사람이 성경을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더더욱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증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사실이 실질로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가 제아무리 성경에 능통한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러한 모든 신학적인 작업은 스스로를 속이는 수단으로만 작용할 뿐인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성경 지식에 아주 능숙해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신앙화시키지 아니한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지적하셨습니다(요 5:39-40). 성도는 말씀을 듣거나 연구하려 할 때마다, 깨닫는 바를 반드시 삶으로 성화시키고야 말겠다고 하는 동기와 각오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질이 성도에게 성립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근본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하며 영원토록 그 명령을 지키는 인생이 되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전 12:13). 이것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내신 목적이이었습니다. 여기에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훼방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지는 구속사를 집행하심으로 이 처음 창조를 여전히 완성하시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립하신 새 언약에 속한 자가 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지위를 새롭게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장차 이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계시 - 구원 역사와 계시 역사 - 를 내셨고, 구약의 성도들이 이것을 충분히 깨닫고 기억함으로 더더욱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영원토록 구원하실 것이니, 곧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심으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5절).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연구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지극히 크심을 깨닫고 더더욱 여호와께 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1절). 당신은 어떻습니까? 평소에 성경을 연구하는 규칙적인 시간을 가집니까? 그 동기는 무엇이며, 그 결과 당신의 신앙 생활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