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유다

[스크랩] 이스라엘,유다 멸망포로기역사 -차준희교수

하나님아들 2017. 12. 13. 12:44
 

                  

                 이스라엘,유다 멸망포로기역사


 [차준희교수 서울신학대학 ]


 목 차


  I. 머릿말

 II.유다왕국의 멸망과 포로기

    1.역사적 위기

    2.신학적 위기

 III.역사적 비극에 대한 신학적 응답과 미래의 설계

    1. 예레미야 애가

    2. 신명기 역사

    3. 4경 :P의 신앙

    4. 예레미야서

    5. 에스겔

    6. 이사야

 IV. 결론


I. 머리말


이스라엘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과 포로기 사건이다. 전자

는 이스라엘 신앙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Formative Period)였고, 후자

는 형성을 마무리하는 시기(Formation Period)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포

로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창조적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1) 이 시기에 오경

(Pentateuch),신명기 역사(Das deuteronomistische  Geschicht swerk)가 형

성되고, 예언활동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더 나아가 "성서는 하나의 문학작

품으로서 포로기의 산물이다."2)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서 포로기는 정치-경제적 위기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

제적 암울기를 신학적으로 응답,극복,승화시켜  창조적 기간으로 전화 위복

시킨 점을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본연구는 포로기라는 역사적

위기에 직면하여 야웨신앙인들이  어떻게 신학적으로 응답, 극복하였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본연구의 성격상 가능한 한,  포로기와 관련된 본문들만 (예레미야 애가,신

명기 역사,4경,예레미야,에스겔,제2이사야)으로  연구 범위를  제안할 것이

다.


 II. 유다 왕국의 멸망과 포로기


 1. 역사적 위기

 앗시리아의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앗시리아에  의해 네  부분의 주

(Provence)로 분할 예속되어 있었던  이스라엘이 다윗 통치시절로의 회복을

꿈꾸고 되었다.3) 이것이 남유다의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고대 근동의 세

력의 공백기에 남유다의 요시야가 개혁정치(종교개혁 621 B.C)를 실시하며,

잃어버리심을 표명하던중 (왕하 23;15ff) 4) 앗시리아의 잔존세력이 하란으

로 거주지를 옮겨 마지막  항전을 벌렸다.애굽의 느고9necho)가 앗시리아를

도우러 하란쪽으로 질주하던중, 그  길목인 므깃도에서 요시왕과 전투를 벌

려 급기야 느고에 의해 요시아왕은 죽게 되었다.(609 B.C :왕하 23:29,대하

35:20-27).


 유다는 요시양왕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느고가 시리아와 팔레스틴의 영토를 소유하기 위해 남쪽으로 급하게

다시 몰아 닥쳐 5)  여호아하스를 퇴위 시키고(3개월동안 재위:왕하 23:33,

렘22:10)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하여 봉신국의 왕으로 삼았다.


 시리아와 팔레스틴에 대하여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애굽과 바벨론의 갈등

은 그 후 몇년 동안 계속되었다.  609B.C. 이후 애굽이 그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다. 그러나 605B.C.가그미스(Carchemish)에서  바벨론이 애굽을 대파하

여 (렘46:2) 그헤게모니는 바벨론으로 넘어가게 되었다.6)


 애굽에 충성하였던 여호야김왕은  변절하여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붕신이

되었다. 601B.C 애굽의 변경지대에서  애굽과 바벨론은 승리하지 못하고 철

군하였다.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재정비하기  위해 철군하였다. 이때를 틈타

여호야김왕은 바벨론을 반역하여(왕하  24:1),다시 친 애굽정책으로 돌아섰

다.이것이 그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작용하였다.7)


 여호야김의 반역을 응징하기 위하여 바벨론의 왕은 예루살렘을 정벌하였다

(597B.C)여호야김 사후 8살된 그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왕으로 즉위하였다

(왕하 24:5-7). 그러나 여호야긴은  불행하게도 3개월만에 (597,3.16) 예루

살렘이 함락되어 많은 백성과 함께 바벨론으로 유배되어 갔다(왕하 24:5-7)


 여호야긴을 포로로 끌고 간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맛다니아)를 유다의 왕

으로 세웠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봉신이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

들은 시드기야왕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여호야긴왕이 속히 돌

아와 재집권하기만 원했다 (왕하 25:27-30).8)


 시드기야의 통치 기간(597-587 B.C)끊임없는 선동과 소란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라는 마치 자살하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마침내 치명

적 재앙을 자초하였다.9)


 595/4 B.C 바벨론에서 아마 일부  유대인 군인들도 관련된 듯한 폭동이 일

어났는데 이것은 바벨론 제국에 대한  저항을 부채질하여 응징의 불꽃이 튀

기게 했다. 그 폭동은 매우  신혹히 진압되었지만 멀리 팔레스틴 땅에 새로

운 희망을 일으켰다. 바로  그해 (594/3 B.C) 에돔,모압,암몬,두로, 시돈등

여러나라 사절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반란 계획을  숙의 하였다(렘27:30)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

다.10)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사절을 보냈거나 (렘29:3) 어쩌면 아마 그 자신이 직

접 가서 (렘51:59) 느부갓네살과 강화를 맺고 그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다짐

하였다.11)


 그러나 멸망의  최종단계는 단지 잠정적으로 연기되었을  뿐이었다. 5년도

채 안되어서 (589 B.C) 유다  왕국은 암몬과 연합하여 다시 한번 빈-바벨론

운동을 일으켰다(겔21:18-23,왕하 25:2 등).  2년에 걸친 포위 끝에 예루살

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었다. 시드기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게 되

었고 (왕하25:1-7),  예루살렘은 초토화되고,예루살렘 성전은  불에 타버렸

다. 한편 주민들 중 많은 무리 그리고 특별히 고위층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2. 신학적 위기


 포로기는 물론 역사적이고 사회-경제,치적인 문제였으나 보다 심각하게 된

것은 신학적 도전과 위기였다.12)

 신학적 위기를 네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루살렘 성전13)이 불타  버렸다는 것이다. 701BC 앗시리아의 산헤

립의 예루살렘 침공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시발점으로, 이사야 이후 예루

살렘의 불가침 신앙(Inviolability of  Zion) 이 확립되어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져 내려왔다  14) 유다인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축복의 상징이었다. 또

한, 하나님의 발등상(애가2:1),야웨를 볼  수 있는 장소(사1:12)였다. 야웨

를 볼 수 있는장소(사 1:12BHS) 였다. 또 성전은 유다인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상징이었고 하나

                  역사속에서 그들을 끊임없이 활동하

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성전은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애가4:11F;  비교, 애가

1:10,신23:2).더욱더 심각한 위기는 그들에게  야웨보다 더 강한 신이 있지

않는가?혹은 야웨가 그의 백성과 그의 성저을 거부하였는가?라는 강한 신앙

적 회의가 대두되었다는 것이다.15)


 둘째,왕조가 끝났다는  것이다. 야웨가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지

않았는가?(삼하7) 왕정  시편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간주하고 (시

2:7),야웨의  축복이 백서에게  전달되는 매개자로  간주하지 않았는가?(시

72).그런데 약속의 유효성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왕들 아사, 히스기야,특히

요시야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 않는가? 지금 유다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군사에게 붙잡혀서 목전에서 두 아들의 죽음을 목도해

야만 했고, 그  스스로는 두눈이 뽑히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신뢰할 만한가?라는 문제가 발생되었다.16)


 셋째, 족장 전승의 핵심이었던  약속의 땅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야웨는

그땅의 주인이었고,이스라엘에게 주기로 한  땅의 약속은 신명기 사가와 시

편 기자들 그외 많은 이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유산

인 그땅이 대적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왜 야웨는 능력이 없어서인가,아

니면 그의 백성을 향한 진노하심인가?17)


 넷째, 시내산 게약 전승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내산 계약

전승은 축복과 저주 혹은 생명과  죽음의 선택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심판

이후 하나님과 유다의 관계를 더  이상 설명해 주지 못하고, 특히 요시야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얻은 유댜인에게 그 이유를 주지 못하였다. 그리하

여 그 게약 자체에 대한 회의도 대두되었따.18)


 예루살렘의 초토화, 성전의 파괴,  다윗왕조의 패망과 바벨론의 포로생활,

이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위기였을 뿐만 아

니라,19)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신앙의 위기였다. "하나님은 왜 그

의 백성이 멸망 당하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하나님은 그들을 저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문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 유다왕국이  멸망한 것이 아닌가?(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회의)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생활이 죄에 대한 벌이라고 한다면, 죄에 비해 벌이 너

무 가혹한  것이아닌가?(하나님의 공정성에 대한 도전)  다윗왕조가 끊어진

상황에서 일찌기 다윗에게 주신 다위왕조의  영속성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

인가? (다윗 계약신학)"20) 이미 심판받은 이스라엘에게 시내산 계약전승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많은 신학적 질문들이 바벨론 포로기에 끊임없

이 제기되었다.


 III. 역사적 비극에 대한 신학적 응답과 미래의 설계


 1. 예레미야 애가


 애가서는 5편의  시들로 구성되어  있고, 1-4장은  알파베트 아크로스티콘

(Alphalbet akrostichon)21)   성전옆에서 대중집회때  사용된 것으로 보인

다.22) 애가서에는 유다왕국 멸망이라는 현재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그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해명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제시되어 있다(현재

-과거-미래).


 (1) 공포와 비탄의 표현(현재)

 애가서 저자는 예루살렘의 마지막 포위사건과  587 B.C 이후 이 땅의 비참

한 생활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그는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자세히 고발했

다. 그는 대적들의 조롱을 기록하였다.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1:7)

 "원수가 모든 원수가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

를.." (2:16)


 선택받은 이스라엘 자신의 비탄도 기록되어 있다.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2:1)

 "야웨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어찌 살육을 당하오리

이까" (2:20)

 이 밖에도 야웨의 발등상인  성전의 파괴(1:2,2:7,20), 국가의 소망근거이

며 하나님의 축복과 번영의 통로(시72:6,16)인 다윗 왕조의 멸망 (40:2) 이

기록되어 있다. 더욱더 비참한 기근과  기아,23) 심지어 카니발니즘 24) 도

자행되었음이 기록되었다. 어미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어린 자

식을 삶아먹는 장면이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인간이 처한 최극한 상황을 묘

사하는 것이다.


 (2) 재난에 대한 신학적 해명(과거)


 유다 멸망에 대하여 공식적 해명을  처음 시도한 이가 바로 애가서 저자이

다. 그는 8세기 예언자들의  선포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예루살렘으

로 하여금  죄악을 고백케하였다.25) 그는 예루살렘  멸망의 실질적 선도가

야웨였고, 바벨론의 군대는 야웨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따(2:21).26)

야웨가 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나?  그 이유로 그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예루살렘의 죄, 즉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27) 그들의 죄

악이 소돔의 죄악보다 더 극심하였다고 했다(4;6).


 그는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최후의 위기에도 시도한 바 있는 타국을 의존하

려는 것도 죄악의 내용으로 제시했다.26)  주목할 것은 그는 주된 죄인들로

종교지도자들을 꼽는다는 것이다(2:14).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무죄한자의

피를 흘렸다(4:13).


 아마 하나님의 공의가 문제시되었기 때문에  유다의 죄에 대한 꽤 많은 언

급이 필요하였던 것 같다. 즉 저자는 야웨는 공의로우시며, 우리가 그의 명

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재난을 당하였다고 해명하였다.29)


 (3) 비탄의 극복과 희망(미래)


 애가서는 예루살렘 멸망의  상황과 그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자에 의해서

쓰여졌다. 그  저자는 족장전승, 출애굽전승,땅전승,  시온전승과 다윗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 출애굽 같은 류도 언급하지 않

았다. 그렇다고 그의 메시지는 비탄과 죄악을 묘사하는 데에 만국한되지 않

았다.그는 억제된 희망을 제시하였다.30).애가서 3장이 비탄을 극복하고 희

망을 제시하는 분수령이 된다. 1-16절에 비탄에 싸여 고통받는 자들의 불평

이 나온다. 17-20절에는 절망한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야웨의 자비

는 끝장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긍휼은 아직도 남아 있었따가(3:22). 저자

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계약에 대한 특별한 전승도, 출애굽도, 다윗의 약속

도  땅의  선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격(merciful

character)이었다.31) 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성실하심이 백성들에게

새로운 아침을 가져다 주었다(3:22-23)


 그렇기 때문에  고난을 참으로 기다리라는 것이었따(3:25-26).  그 이유는

첫째, 야웨는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3:31), 둘째, 그가 괴롭게하

시나 그후에는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이며(3:32), 세째 하

나님께서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은 본심이 아니기 때문이다(3:33).


 이러한 모범적 탄식(paradigmatic  lament :1-39절)에 기초하여,국가에 요

구되는 것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self-examination),야웨께로순수하게

돌아가는 것(sincere repentance)이다(3:40-41).32


 애가서의 주제는 신적 통치, 공의,도덕성,

                품 가까운 미래에 임할 축복

의 희망이다.33) 결국 애가서의 메시지를 한 구절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야웨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

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옵소서.(5:21).


 2. 신명기 역사


 1943년은 신명기와 전기예언서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해에 본(Bonn)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마르틴  노트(M.Noth)가 세상을 뒤흔든 '전승사 연구

(uberkueferybgsgsgeschichtliche Studien) "라는 책을 출판했따.34) 그 책

은 이 분야 연구의 초석을 마련해 주었다.35)


 그의 공헌점은 다음과 같은 그의  논제이다. 즉 신명기에서 열왕기하는 포

로기 팔레스틴에 거주하였던  한 저자(ein "deuteronomistischer" autor)에

의한 한 권의  역사서라는 것이다.36) 그의 이 전  연구로는 독립설, 5경의

자료(JEDP)가 전기 예언서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에 치중하는 본서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논제의 단점은 만일 포로기 때 단일 저자가 썼다

면, 이미 왕국이 멸망을 경험한  이후에 다윗 왕조의 영원성과 성전의 영원

성을 언급한 부분은 자기모순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보완하는

이론이 이중 편집 (the  double Redaction theory)이다.37) 이 이론의 대표

자격인 하바드(Harvard)대학의 구약교수인 크로스(F.M. Cross)의 견해에 의

하면 신명기 역사서는 한 명의  저자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Dtrl과

Dtr2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Dtrl과 Dtr2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Dtr1은 포로기 이전 요시야왕  종교개혁 전후 (610-600 B.C)로 편집되었고,

Dtr2가 포로기  (550 B.C)에 새롭게 편집되었다는  것이다.38) 이 이론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이 이중편집 이론에 입각하여 전개

해 나가겠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신명기 역사가 이스라엘 역사의 멸망이 하나님의 정당

한 심판임을 입증하려는데만, 역점을 두었고,  희망적 내용은 담고 있지 않

다는 노트의 입장 39)을 수정한다.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40) 이

러한 몇가지를 전제로 하고,  포로기에 신명기 역사가가 어떻게 응답하였는

지를 살펴보자.


 (1) 유다왕국 멸망에 대한 신학적 해명(과거)


 크로스에 의하면 Dtrl은 "여로보암의 죄(왕상 13:34)라는 주제로 북이스라

엘의 역사를  재구성하며, 그 주제를 북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으로 삼는다.

또한 Dtrl은 "다윗과  요시야의 성실"(왕상 11:13,15:3-5,왕하 22:2,23:25)

이라는 또 다른 주제로 남유다역사를 기술한다.Dtrl 은 고대 신명기 계약신

학(the Old  Deuter-onomic Covenant Theology)에  근거하여 왕조의 백성의

멸망을 야웨의  대한 배반에  의한 징벌로 간주하며,  왕조 이데올로기(the

Royal Ideology in Judah)에 입각하여 다윗에 대한 영원한 보장을 약속하는

두가지 주제를 대조시킨다.


 Dtr2는 포로기에 예루살렘 멸망을  기록하고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하여 일

정한 주제를 설정한다. 그 주제는 '므낫세의 종교 혼합정책과 우상숭배"(왕

하 21:2-15)로써 이 때문에 유다가 멸망했다는 것이다."41) 그의 견해를 보

퉁하면 이미 유다 역사의 운명은 석양에 지는 해와 같이 저물기만을 기다렸

는데(므낫세의 죄로 인함)요시야가 등장하여 그  지는 해를 걸머지고 새 날

을 창조하려 했으나, 그의 의로움과  성실로 멸망을 조금지연시켰을 뿐, 결

국은 그도 죽임을 당하고 유다왕국은 멸망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나안 정착으로부터 유다왕국의 멸망까지를 포함하는 신명기 역사거는 전

역사가 야웨에 대한 반역의 역사였기  때문에 (계약위반) 멸망은 당연한 귀

결임을 입증해 주었다.42)  클라인(R.W.Klein)에 의하면 유다왕국은 르호보

암 때부터 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왕상 14: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멸망이 지연된 것은  다윗의 선택과 그와 맺은  약속, 부분적으로는 다윗의

행위,  세  왕의  장점 (아사,히스기야,요시아,:각각  왕상  15:11-14,왕하

18:1-8,왕하 22:8-13)에 기인한 것이다.43)


 요약하면 587 B.C 의 유다멸망은  하나님의 독단적 행위가 아니라, 이스라

엘의 긴 불순종의 역사에 대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44)


 (2)신명기 역사에 나타난 미래에 대한 기대 (미래)


 노트는 신명기 역사서가 과거 역사만을  기술하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기

록하고 있지 않는다고 하였다.45)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신명기 역사

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신명기 역사가는 그 근거로 두가지

를 제시하였다.


 첫째, 조상들에 대한 약속이다.  신명기 역사는 조상들에게 땅을 주기로한

야웨의 맹세를 자주 언급한다(신1:8,35등등)  야웨가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

으로 하나님이 되었다(신29:13). 그는 아브라함,이삭,야곱과의 약속을 지켰

다(신29;130.조상들과의 약속은 하나님의 자비에 제시된 강력한 희망근거는

조상들과 맺은 하나님의 맹세, 혹은 약속이다.46)


 둘째, 다윗에 대한 약속이다.  폰라트(G.von Rad)는 신명기 역사서에 깔려

있는 두가지  야웨 말씀을 제안하였다. 첫째,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씀이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경고가 무시되었기 때문에 721 B.C. 와 587B.C의

미극이 발생하였다. 둘째, 삼하 7장에 나오는 다윗에 대한 약속이다. 그 약

속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것이 여호야긴의 포로에서의 해방에서 입증

되엇다 (왕하 25;27-30).47)


 폰 라트에 의하면 신명기 역사에는 예언자의 예언과 그것의 성취가 상당히

많이 기록되었다고  하여 주목을  끌게 하였다(예.왕상  11:29ff와 12:15).

48) 나단 예언자에 의한 다윗에 대한 약속도 예언-성취 도식에 맞아 떨어져

이 역사 안에서 결국에는 실현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3) 신명기 역사의 중심 메시지:돌이키라(현재)


 볼프(H.W.Wolff)는 "신명기  역사의 중요한  정점에서는 회개(Umkehr)라는

주제가 나타나며, 이로서 이스라엘이  포로기의 심판아래서 듣고, 실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49) 고 하였다.


 신명기 역사 전반에 걸쳐서, 이스라엘에 돌이키도록 강력하게 촉구되고 있

다. 사사시대의 순환역사 (죄 -심판-야웨께 부르짖음(회개)-구원)에 비추어

보면 신명기 역사의 왕정시대는  두번째 단계에 처해있다. 그들에는 두번째

단계에 처해있다. 그들에게 지금 요청되는 것을 돌이키는 것(회개)이다.50)


 브르거만(W.Brueggemann)은 볼프의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면서 '회개-모티

프'의 상대개념인  '선 -모티프(good-motif)를  만들어 냈다.  그에 따르면

'케리그마'란  '선-

                션'의 자비(graciousness)와  '회개-모티프'의 촉구

(demand)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 '선'이라는 용어는 양자간에 충

성을 요구할 때 계약을 묘사하고 신명기의 고대 전통에서 사용된다.


 이것이 포로기 신명기 역사에서도 사용되었다. 가)이스라엘이 야웨께 '선'

하지 않았기 때문에 587B.C.의  비극이 일어났다. 나)야웨는 여전히 이스라

엘에게 '선'함의  빛 아래서 회개토록 촉구,B.C.  587의 와해는 이스라엘이

야웨와의 선한 관계(friends-hip) 를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야웨는 기를 원

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51)고 설명했다. '선'과 '회개'의 두

가지 모티브가 신30;1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야웨가 아직도 잊지 않은  조상들과의 계약으로 귀환하는 것으로서의 회개

는 이제 이스라엘이 해야할 것으로  남아 잇는 유일한 일이다. 회개는 압박

을 받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이다.52)


 3.4경:P의 신학


 P의 범위는 창조에서 시내산 예배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형성까지이다.53)

"P는 포로기의  문제들과 씨름하기 위해 원역사와  가나안 정착 이전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재기록하였다. 그가 과거에 촛점을 맞춘 것은 단지 문화적

기교를 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아와 조상들과 맺은 교대 약속

과  모세를  중개로  하여   광야시절에  형성하였던  예배  공동체(Cultic

community)를 상기시켜 이를 현재화함으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

할 것이라는 것을 제시해주기 위해서였다"54)


 (1) 계약과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과거)


 P가 포로기 혹은 그 이후에 속한 문헌이라는 견해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같다. 55) p는 이스라엘의 전 생활 구조가 완전히 붕괴되어버린 시점에서

그들에게 닥쳐온 딜레마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 어떤 면에서 P는 신명기 역

사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 같다.56)


 백성들의 국가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공동으로 묶어둘 수 있는 공동

체를 새로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대한  대덥으로 P는 이스라엘이

국가형태를 갖지 않았고, 야웨 이외  다른 왕을 섬기지 않았고, 이스라엘에

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격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P는

이스라엘이 국가 형태를 갖추지 않았고,  야웨 이외 다른 왕을 섬기지 않았

던 게약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원형이라고 제시 하였다."P는 고대 신정정치

(ancient theocracy)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였다."57)


 p의 그러한 시도는 왕정국가 체제의  회상에 매여 있었던 이스라엘에게 새

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격이 되엇을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p는 예배공

동체를 재건키  위하여 예배에 관계된 것들을  중심으로 기술해 나갔다.58)

즉 p는 계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이 그들의 영원한 소유인 땅에 돌아왔을

때 준수해야 할 프로그램을 제시한 셈이다.


 (2) 전통적 약속들에 대한 회의(현재)

 포로기를 당하여 이미 끝장나버린 상황에서 영원 계약에 대한 약속에 회의

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회의의 질문에 p는 이전에도 약속이 부분적으로 성

취되엇음을 지적하고,야웨의 절대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대처했다.59)


 전자에 대한 예로 p는 후손에 대한 약속이 점진적으로 성취되어 결국 출애

굽 직전의 애굽에서 성취되었다고 한다(창 47:27,출1:)땅에 대한 약속도(창

23;9,19-20등등) 점진적으로 성취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60) 이는 전통

적으로 약속에 대한 성취를 제시하며 약속에 대한 신뢰감을 고무하였다.


 후자에 대한 예로 야웨에 의한  이적을 많이 기술하면서 야웨에 대한 절대

적 우월성을 강조하였다.61) 또한 회의를  갖는 배경에는 바벨론 신들의 능

력이 더 우월하다는 유혹이 심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p는 조상들과의 게약(창15) 에 의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는 그

계약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신학적 강조점을 부과하였다.62) 영원한 계약을

신학적 기반으로 삼을 p에게 시내산 계약의 조건적 계약은 문제가 될 수 밖

에 없었다. 더군다나 시내산 사건은  p의 역사와 신학에서 중심역활을 담당

하였다.63)


 침멀리(W.Zimmerli)에 의하면 "p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약이라는 용어

를 노아와  아브라함과의 편무적 약속으로 국한시켜  변형시켰다."64) 고했

다.  이렇게 되어  시내산에서  야웨는 이상적  예배 공동체(ideal  cultic

community)65)를 규정하였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영원한  계약의 약속들은

실현될 것이다.


 (3) P에 나타난 희망의 메시지(미래)

 P의 전반에 흐르는 사상은 희망이다.  p의 희망의 메시지를 두가지 개념으

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재,  새로운 공동체, 이 새로운 공동체는 이전

의 왕정국가 체제와는 전혀 다른  예배 공동체이다. 이 새로운 공동체의 특

징은 야웨가  거하였던 장막, 합법적인 제사장,  합법적인 희생제사 제도이

다. 이 새로운 공동체의 특징은 야웨가 거하였던 장막.66) 합법적인 제사장

67),합법적인 희생제사 제도,68) 이다.69) 이 새로운 공동체는 노아와 아브

라함이 맺은 야웨의 과거의 약속에 의해서 형성될 것이다. p는 이러한 약속

들이 과거에 얼마나 효력을 발휘했는지  그리고 왜 그 약속들이 포로기에도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여주었다.70) p는 새로운 공동

체, 즉 예배 공동체(새땅)의 프로그램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 계약신학.p는  '계약'을 주제로 삼아 역사를  네시기로 구분하였다.

(창조-홍수/노아-아브라함-모세/시내산  계시).71) p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맺은 야웨의 계약(무조건적이며, 편무적, 영원한 계약적 요소를 띄게 했다.

 p의 독자들은 야웨가 그드로가 맺은  계약을 기억할 때 이스라엘에게 축복

이 올 것이고 그들의 압제자들에게는 저주가 들이 닥칠 것이라고 알았다. p

시대는 야웨가  분명히 계약을 망각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웨는  노아와 아브라함 계약을  영원히 잊을 수는  없다는 것이

다.72) 다만 포로된 이스라엘에게 동일성을  유지 하도록 지금 요구되는 것

은 안식일 준수와 할례집행이었다.73)


 4. 예레미야서


 예레미야의 개인적 배경에 대해서 분명한  것은 렘1:1의 서두에서 얻을 수

있는 간략한 정보 밖에는 더이상 없다.74) 그는 유다 요시아왕 13년에 예언

자로 소명을 받았다(627 BC). 그의 예언자 활동은 627 B.C 부터 587B.C이후

포로기에 대한 그의 태도가  예레미야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이 없다.

다만 간접적 언급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76)


 (1) 유다멸

                황커 펴진

 잘못된 평화의식(현재)

 이스라엘에 퍼진  잘못된 평화의식의  좋은 예는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렘

7:26장)77)에서 나타난다. 다윗 계약신학의  한 기둥인 성전의 영원성이 앗

시리아 산헤립왕의 예루살렘침공실패(710 B.C)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의식에

뿌리를 박히게 되었다. 또한 거짓 예언자 하나냐같은 이들이 유다의 평안함

과 승리를 예언하여(28:10-17) 거짓된 평화  의식은 더 만연하게 되었을 것

이다.78) 그러나  예레미야는 잘못된  평화 의식에  쐐기를 박았다(비교,렘

28:8-9).


 (2) 국수주의의 극복(과거)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억압을 무릅쓰고, 그는 약간의 타협점도 없는 메시

지를 선포했다.  유다는 야웨께 범죄하였기에 바벨론의  포로가 될것이라고

외쳤다(렘25:9-11 그외). 이 예언은 당시 유대인이라면 그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다. 유다의 대적  바벨론의 왕을 '야웨의 종'(27:6)이라고 하

며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야웨의  뜻이라고 외친 예레미야의 예언은 전

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으며, 도리어 반대와 핍박  투옥을 당하고 암살당할

뻔하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따(비교 렘26장).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역사적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

는 역사저 비극을 예레미야는 국가의 번영 여부에 따라 야웨의 능력을 결부

시키는 것을 철저히 거부함으로써 이해하였다. 예언자의 관심은 국수주의자

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28장) 79) 은 예레

미야가 야웨를 민족적  차원에서만 이해하지 않았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야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일뿐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세계에 질서를 주었고, 이세상의 모든 것은 그의 것이다.


 야웨는 또한 세상의 지배권을 그가  원하는 자에게 줄 권리가 있다.80) 야

웨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바벨론왕을 야웨의 심판의 도구였다는 것을 해명하

므로, 신학적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3) 예레미야서의 희망의 메시지 (멸망의 날 너머:미래)

 예레미야서 (정확히 말하면 :jer-D)가  이해하는 희망은 고난을 경험한 이

후의 희망이었다.

 Jer-D는 소명을 받을때마다 야웨의 말씀에는 심판과 제건 멸망의 약속이라

는 양면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말은  예언자를 통해 "뽑기도 하고 부수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라"(렘1:10)는 말씀에 잘 드러나 있다.특히

백성들이 잘못된 평화의식을 통해 잘못된 보호를 찾고 있을 때 멸망의 날이

오리라고 선언하였다.그러나 야웨의 목적은 단순히 파괴하고 부수는 데에만

있지않다고 본다. 이땅의 잘못된 기초가 허물어져야 야웨가 새로이 짓고 건

설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81)


 예레미야와 Jer-D  의 희망의 메시지를 세가지  개념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땅.회복,예레미야는 스스로 미래에 회복될 땅을 꿈꾸었다. 그는 하나

멜의   땅을  구입하였고(32:15),애굽으로   도주를   극구  반대   하였고

(42:17,43:8-12),바벨론의 선대를 거부하였다(40:4,6)  이 예언자적 행동자

체가 땅회복 이라는 희망의 메세지가 되었다.82).

 둘째, 포로귀한(Jer-D). 포로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 의하면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귀환하게 된다(29:10).

포로기는 행운으로 끝날  것이다. 바베론이 멸망되고, 새  출애굽, 땅의 선

물, 새왕국의 이상형이 그 포로기 대신에  주어질 것이다.83)

 셋째, 새 계약(Jer-D).새 계약의  의미는 부분적으로 '계약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것이고,   나는  그들이  하나님이  될  것이다

"(31:33,32:38).


 이 새 계약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성심의 새로운 깊이를 처음으로 보

여준다. 즉 복종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선물이다(32:39). 새 계약은 이전의

조상과 맺었던 계약과  같이 파기될 수 없는  계약이다. 이것은 계약파기후

처음으로 그 저주에서 면제된 사람과 맺은 진정한 새 계약이다.하나님의 용

서가 새 계약 시작의 선행 필수 조건이다.84)

 멸망을 넘어서 볼 때 이 책의  전승들은 이 공동체가 경험한 그 많은 요소

들이 어떻게 희망과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준다.86)


 5.에스겔


 에스겔은 여호와긴왕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잡혀온 지 5년 째 되던해

4월 5일인 593BC에 소명을 받는다(겔1:11). 그의 마지막 활동은 제27년 1월

1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517B.C에 해당된다. 즉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기간인 593-571 B.C 기간 동안  예언자 활동을 하였다. 그는 제사장 출신이

었으며 이스라엘 역사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16장.23장).


 에스겔서는 (1) 예루살렘 멸망전의 예언(1-24장,593-587B.C) (2) 이방나라

들에 대한 예언(25-32) (3)  예루살렘 멸망후의 예언(33-48장,587-517 B.C)

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여기서는 이 연구의 성격상 세번째 부분을 중심으

로 다루어 나가겠다.


 (1) 유다멸망에 관한 신학적 해명(과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호세아,86)  그리고 예레미야

(2:2ff)와는 달리, 에스겔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아무도 돌보는 사

람이 없는 고아였다. 야웨가 이를  불쌍히 여거 길렀을 뿐이다(16장). 이스

라엘은 그부모로부터 떠나오자마자 가나안 사람과 음행을 하는 등, 그 어떤

선한 것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예루살렘은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바

치며 이방 세력에 음행하는 일만 되풀이 되어 하여 왔다.87) 이스라엘은 전

역사가 죄만 더하여가는 반역의 역사였다.88)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벌써 정

죄당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야웨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정죄를 연기한 것

은 단지 야웨의  '이름',즉 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20:9).89) 지금 야웨가 이스라엘을 정죄하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으로 하여금 그가 야웨인 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20장).90)


 (2) 유다멸망 포로들의 상황(현재)

 유다멸망이전의 팔레스틴  본토인들과 포로들 모두 잘못된  성전관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같은  견해91)을 갖고 예룻라렘

멸망(1-24)을 예언하였다. 심판예언 일변도였던 예스겔 예언은 유다멸망 이

후 갑자기 희망 예언으로 바뀐다.92)


 멸망후 포로들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짧은 한마디는 '우리의 뼈들은 말랐

고, 우리이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더다"(37:11)이다. 유다

의 철저한 멸망 이후 에스겔 주변이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낙담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33:10).


 (3) 에스겔의 희망의 메시지(미래)

 에스

                 33-48장은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차 있다.  그 예로  새 추애굽

(20-32-44) 선한 목자(34장), 부활(37장), 새 계약 93),한 국가, 한 왕94),

땅 95), 새 성전(40-42장)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미래에  대한 에스겔의 희망 모두가  절정에 도달하고 초점이

맞추어지는   곳은  그의   백성에게  임하는   야웨의   영원한  거주(the

everlasting presence  of God with  his people)에서 드러난다.37-25-28은

드라마틱하게 약속을 토해내고 있다. (1) 뉘우친 이스라엘이 이땅에 영원히

거할 것이다. (2)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3) 야웨는 그 백

성에게 영원한 계약을 주 띵것이다. (4) 야웨가 그들 가운데 야웨의 성소를

영원하도록 세울 것이다.  야웨가 처소가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야웨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야웨의 백성이 될 것이다.96)


 야웨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새 출애굽을 베풀 것이며 자신이 선한 목자

가 될 것이다.  그는 포로 상태이세 죽은자와도  같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스라엘은 다윗같은  왕을 모시게 될 것이고 땅을 소

유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의 희망 약속의 중심은 그 백성에게 임하는

야웨의 영원한 거주였다. 이 약속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는 성전의 야웨 현

존에서 빛을 발하는 거룩을 나태내는 상징적 경계선에 맞추어 땅 그림을 그

렸다. 에스겔은 모든 나라가 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그때를 기대하

였다. 에스겔은 모든 나라가 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그때를 기대하

였다. "그때에 모든 나라가 내가 야웨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37:28).


 6. 제 2 이사야


 이샤야 40-55장 부분은 일반적으로 "제2이사야"로 구분한다. 그 내용은 전

체적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유다 백성들에 대한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다.97) 그를  보통 제2사야라고 하고,  그는 바벨론의 멸망  직전 약

B.C 540년에 바벨론에서 활동한 예언자였다.


 (1) 종교적 위기(현재)

 바벨론으로 유배된  이스라엘은 본토의 이스라엘보다는 육체적  고충을 덜

받은 것 같다. 그들은  유다의 정치적-종교적-지성적 지도층의 중진 엘레트

들이었고, 바벨론에서 어느 정도 여유있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98)


 이 무렵의 위기는 어느 정도  몸에 익은 정치적 위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위기였다. 이때 이스라엘인들의 신앙을  포기케 하려는 유혹이 매우 격심했

따는 것은 이사야서 40-48장의 대 논박설교가 증언해 주고 있다. 사태가 그

렇지 않았다면 이러한 논박 설교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99)


 이스라엘의 신앙은 처음부터 오직  한분의 신만을 섬겨 왔었고 이방신들은

비실재의 무의미한 것들로서 "신들이  아니다"고 선언해 왔었다. 그러나 국

가와 민족신학이 한 이교강국의  강타로 붕괴하였으니 어떻게 되었는가? 그

래도 바벨론의 신들은 정말  허깨비들인가?오히려 참으로 강력한 신들이 아

닐까? 많은 유대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궁리하였음에 틀림없다. 이런 사

람들은   전통적  야웨신앙에서   일탈하려는  심각한   유혹을  받았다(렘

44:15-19,겔20:32참조). 신앙을  전면적으로 상실당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

다.100)


 (2) 포로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거:이방의 빛을)

 제2이사야는 희망의 메시지를 외치기 전에  이 포로기에 대한 전통적 이해

(죄로 인한 심판)에서만 머물수는  없었다. 이 포로기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새로운 해석이 잘 묘사된 곳은  "야웨의 고난 받는 종"이다.101) 이 내

용을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 통치의 대리자가 될 것이

다(42:1-4). 그는 이스라엘  내에 약자와 병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물

론, 이방나라들의 빛이 될 것이다(49:1-6). 그는 고난받음에도 불구하고 그

는 야웨의  종국에 그는 변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신앙을  견지할 것이다

(50:4-9). 이방나라들은  야웨가 그를 얼마나 영광스럽게  일으켜 주셨나를

보게 되었을 때  놀라게 될 것이다. 반면에 그 종은  자신의 고난에 담겨진

심층적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고난을 통하여 그 종은 이방나라가 달

게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담당하였다. 그는  이방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다

(52:13-53:12).102)


 포로기란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지위진  처벌이 아니고 또한 이스라엘이 구

원받기 위하여 감수해야 하는  조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포로기에는 이스라

엘의 성실한 인내와 포로로부터의 승리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의

빛이 되도록 하였다.103)


 (3) 제2 이사야의 희망의 메시지(미래)

 그는 철저히 미래이 구원만을 외쳤다.  희망의 메시지를 나타내는 몇 가지

개념으로 제2이사야의 희망의 메시지를 개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야웨 유일신 신앙(monotheism). 그의 대 논박설교와 사 40-55전반에

걸쳐 선포된  유일신 신앙은 야웨말씀의 신빙성과  미래의 이스라엘 희망에

대한 예언자의  결정적 주장이었다. 그는 바벨론종교에  독설을 퍼부으면서

야웨에게서 떠나 승리자 바벨론의  신들에게 배교하려는 움직임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러한  신들은  "무용한   것"이라고  논박하였다  (사

41:24,29). 104) 여기서 주장하는 야웨의 창조적 능력과 역사주관이 이스라

엘에게는 희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둘째, 새 출애굽, 야웨가  약속한 "새로운 것"(43:18-19)은 이스라엘의 바

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신학적 지평을

넓혀 과거의 구원 역사에 펼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라고 외쳤다.105)


 셋째,영원한 계약. 그는 과거의 모든  과거의 모든 계약을 종합하였다. 일

단은 시내산 계약에 의하며 유다멸망을 이해하고 노아계약을 상기시켜 주고

(54:9),  아브라함 계약을  원용하고  (51:1-3), 다윗계약을  재언급하므로

(55:1-5) 영원한 계약을 재확인시켰다.


 IV. 결론


 유다 멸망이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위기는 결국 신학적 위기를 초래하였

다. 영원불가침  신앙의 온상이었던 예루살렘 유다성전과  도시가 몰락하였

고, 다윗의 영원한 계약이 와해될 위기에 직면하였고, 조상대대로 내려왔던

약속의 땅이 상실되었고 시내산 게약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했다.이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포로기의 야웨신앙인들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애가는 유다멸망에  대하여 공식적 해명을 처음  시도하였다. 그는 재난의

원인을 시내산 계약을  파기한 백성들의 배교에 두었고,  그와 함께 회개를

촉구하며, 희망의 근거를 야웨의 자비로운 성격에 두었다.


 신명기 사가는  가나안 정착부터 줄곧 불순종

                세영눙수 멸망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희망의 근거로 조상들과의 계약과 다윗계약을 들었다. P

는 이스라엘의 원형은 계약공동체임을  상기시켜 왕정국가의 멸망을 중요하

게 여기지 않고,새로운 계약공동체(예배공동체)와 영원한 계약을 희망의 근

거로 내세운다.


 예레미야와 Jer-D 는 국수주의를  극복하면서 멸망을 해명하고, 멸망 너머

의 희망을 땅회복, 포로귀환, 새계약을 들어 제시하였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반역의 역사로 규정하여 멸망을 설명하고

야웨의 영원한 거주를 희망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제2이사야는 포로기를 이방의 빛을 발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대속적 고난이

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야웨 유일신 신앙, 새  출애굽, 영원한 계약을

희망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국가 멸망의 불행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웨를  불신하고 다른 신을

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하나님 야웨의 새로운 발견과 해석에 힘썼

다. 이것이 바로 포로기의  이스라엘이 정치적인 독립을 완전히 상실했음에

도 불구하고 바벨론에 의해 붕괴되지 않고 살아남게 할 수 있었떤 원동력이

되었다. 포로기가 비록 역사적으로 가장 신앙 전승을 집대성하는 가장 빛나

는 창조적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각주>

 1) D.W. Thomas journal of Semitic Studies 6,1931,pp,33-46

 2) D.N.Freedman,Interpretation 29,1974,p.172

 3) 비교,M.Noth,The History of israes.p.272

 4)  실제로  이전의 북왕국  영토를  어느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비교

W.H.Schmidt,Einfihrung in das  Alte Testament,23:동저,Gottex Recht ais

lebenstraum,235:jun-Hee Cha, Micha und jeremia,p.56

 5) 비교 S. Hermann,A History of israel in Old Testament Times,p274.

 6)   비교,B.Oded,Israelite   and   Judaean   History   A.History   of

Israel,p.327

 7) 비교,j.Bright A History of Israel, p.327

 8)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유배되었지만  적어도 몇몇 집단들은 여전히 그

만을 합법적인 왕으로  간주하였다. 에스겔의 소명 기사를  다루고 있는 겔

1-3장 가운데서 연대 기록의 시발점을 현 통치자 시드기야 대신에 바벨론으

로 끌려간 여호야긴의  유배 시점으로 잡는 점이 하나의  좋은 증거가 된다

(겔1:2)비교.P.R. Ackroyd

9) 비교,J.Bright a.a.O.,P.327

10) 비교,Ebd,P,329

11) 비교 Ebd.

12) 비교.R.W.Kiein,Israel in Exile,A Theological Interpretation p.3

13)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은 엄격히  분리되어 사용되지 않고, 거의 혼용되

어 사용된 것 같다.

 14) 이 신앙은  시온신학(Zionsthe-ologie)을 형성하는 중요한 모티브중의

하나이다 시온신학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W.H.Schmidt,Alttestame-ntlicher

Glaube in seiner  Geschichte, pp.249-262를 참조,시온신학에 관한 참고문

헌을 위하여서는 Jun-Hee Cha,a.a.O.,p.49각주 7을 보라

 15) 비교 R.W.Klein.a.a.O.,pp.3-4

 16) 비교 Ebd.p.4.

 17) 비교 Ebd.

 18) 비교 Ebd.

 19) 북이스라엘이 역사에서 없어진  상황이기에 유다를 통칭하여 이스라엘

이라 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금부터는 문맥상  큰 차이가 없는

한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

 20) 박준서, [성서와 기독교.D.122

 21) 히브리어 두운법의 일종으로,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각 절이 시작되

는 문체이다. 시편119편도 전형적인  알파베트에 아크로스티콘 문형으로 되

어 있다.

 22) 렘41:5-6,슥 7:1-5,8,8:18-19,비교 R.W.Klein .a.a.O p.9

 23) 1:11,4:5,4:9,2:11-12,4:3-4

 24) 2:20,4:10

 25) 비교,D.N.Freedman,a.a.O.,p178

 26) 비교 R.W.Klein,a.a.O.,p 12

 27) 애 1:18,20,20:22-3,42:5:6-7

 28) 애 4:17,5;6,비교 호7:11,11:5,렘2;18,36,37:6-10

 29) 비교.R.w.Klein a.a.O. p.13

 30) 비교,Ebd

 31) 비교,Ebd.p.15

 32) 비교 Ebd. p16

 33)  비교 R.K.Harrison,Jeremiah  and Lamentations.:An  Introduction &

Commentary,p.200

 34) M.Noth, Uberlieferungsgesch-ichtliche Studien :Die sammelnden und

bearbeitenden   Gesch-ichtswerke   iM   alten   Testament,Tubingen   ,

1967(1943)

 35) 비교  G.E. Gerbrandt,  Kingship according to  the Deuteronomistic

History p 1.

 36)   M.Noth   a.a.O.pp   3-4   노트에  의하여   "신명기   역사서(Das

Deuterono-mistische Werk:Dtr) 라는 학습 전문 술어가 처음 생기게되었다.

 37)  비교. G.E.  Gerbrandt.a.a.O.,PP.12-151:F.M.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pp.274-280.R.D.  Nelson,The Double  Redaction  of the

Deuteronomistic History pp.13-28.이외에  괴팅엔(Gottingen) 학과의 이론

으로 스멘트(R.Smend)와 디트리히(W.Dietrich)와 베이올라(T.Veijola),  그

리고 뷔브트봐인(E.Wiirthwein)을 중심으로  하여 논의되는 Dtr H(Historie

의 약자로 역사서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바, 역사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역

사편찬, 작업에 관심을 집중시킨 초기의  편집층), Dtr P (Prophetie 의 얄

자로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과 역사 안에서의 그 성취에 관심을 갖고

이를 편집한 Dtr H이후의 편집층)  Dtr N(Nomos의 약자로 후기에 율법에 관

심을 갖고 이의 준수를 강조한 마지막 편집충)으로 나누어 신명기 역사서의

형성을 설명하는 편집 가설도 있으나,  이에 대한 자세한 검토는 이 연구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신명기 역사에

대한 최근의 연구동향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 :S L. Mckenzie, The Anchor

Bible    Dicti-onary    II.1992.pp.160-1681    M.D.Preuss,Theologische

Rundschau 58,1993,pp.229-2641 김운규,신학사상 85,1994 여름.pp.80-93

 38) M.Cross a.a.O.,p.288

 39) M.Noth a.a.O.,pp109-110,이러한 노트의 입장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 :F.m.Cross,a.a.O., pp-274-278:

 40) G.von  Rad.Studies in Deute-rnomy.pp.74-79:H.W.Wolff,The Vitality

of Old Testament Traditions  pp.83-100.폰 라트와 볼프는 각기 다른 방법

으로 신명기 역사서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를 부각시킨다.

 41) F.M Cross a.a.O.,pp 274-289

 42) 비교 R.W.Klein a.a.o.,pp.23-26

 43) Ebd.,pp.34-37

 44) 비교.W.Brueggemann,Interpretation 22,1968.p.387.이경숙

     기상 299,1983/6월 p.


 45) M.Noth a.a.O.,pp.100-110.

     비교.R.W.Klein a.a.O.,p.38

 46) Ebd.pp.38-39

 47) G.von Rad.a.a.O.,chap.7.

 48) 폰 라트는 "예언-성취도식(prophecy-fulfilment schema)"을 적지 않게

찾아서  예를 들어  설명한다  (동저.a.a.O.,pp.78-81)비교. E.W.Nicholson

Deuteronomy and Tradition pp.115-118.

 49) H.W. Wolff a.a.O.,p.91

 50) 비교.R.W. Klein a.a.O.,p 91

 51) W.Brueggemann a.a.O.,pp.388-389

 52) H.W.Wolff.a.a.O.,p.99

 53)   비교.B.W.  Anderson   Understanding  the   Old   Testement  pp.

453-454.W.Brueggemann,The      vitality       of      Old      Tesment

Traditions.pp.102-103.

 54) R.W. Klein a.a.O.,p 125

 55) 비교. P.r. Ackroyd.a.a.O., P85

 56) 비교 Ebd.p.84.

 57) B.W Anderson a.a.O.,p 466

 58) 비교 W.Brueggemann,a.a.O., p.101

 59) 비교.R.w.Klein a.a.O.,p139

 60) 비교 Ebd.p 140 클라인은  약속들이 점진적으로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흥미있게 묘사했다. 아브라함의 막벨라  무덤 구입도 조상의 죽음을 통하여

땅 약속이 점진적으로  성취된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p가 지적하는

포로기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는 공동체의 완전 붕괴와 땅의 상실이었다 (W.

Brueggeman a.a.O.,p 110.)이는 약속의 땅을 눈 파에 둔 p가 묘사하고 있는

예배 공동체와 좋은  유비를 이루며,  p의 묘사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61) 출 6:11,7:2,14;4,14:28-29 비교 ,Ebd.pp.140-142.

 62) W.H. Schmidt. Einftihrung. p.103

 63) R.W. Klein a.a.O.,p 142

 64) W.Zimmerli,Gottes.Offenb-arung p.215

 65) R.W. Klein a.a.o.,p.143.

 66) "p의 특징은 합법적 예배강조이고,  이 예배의 위치는 '장막'이며, 그

의도는 순결과 거룩을 보존하는 것이다." W.H.Schmidt a.a.O.,p.2.

 67) 합법적인 제사장은 레위지파가 아니라 이론과 그의 후소들로 규정했다

(민3-4,8,15:2-7).R.W.Klein.a.a.O.,p.2.

 68) 합법적인  희생제사는 속죄와 정결이 강조되었다.  Ebd.이 희생제사는

레1-7에 기록된 대로 속죄의 방편이다. 즉 파기된 계약관게를 회복하고, 한

님과 사람들을 재연합시키는 것이다.B. W.Anderson,a.a.O.,p.463.

69) R.W.Klein a.a.O.,p.147.

70) Ebd.

71) 비교.B.W.Anderson,a.a.O., pp.455-464: W.H.Schmidt,

72) R.W.Klein a.a.O.,p.148.

73) Ebd.p.147.

74) 비교.J.Bright Jermiah,LXXXV II.

75) 비교 E.W.Nicholson,The Book of the Prophet.Jeremiah Chap.1-25.p.1

76) 비교 P.R.Ackroyd,a.a.O.,p.56.

77)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하

라.Sa      Moon     Kang.신학논단      17,1987,pp.477-504:     Jun-Hee

Caa,a.a.O.,pp.47-63.

78) 비교 R.W.Klein a.a.O.,p.48.

79)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

라.F.L.Hoss-feld/1 Meyer,Prophet  gegen Prophet.pp.90-103:H.Mottu.신학

사상 58,1987.pp.587-609:김중은,기상 396.1991/12월,pp.81-97.

80) 비교.dl 경숙,a.a.O.,pp.226-227.

81) R.W.Klein a.a.O.,pp.60-61.

82) P.R.Ackroyd.a.a.O.,p.61.

83) Ebd.,p.62

84) Ebd.,p 66

85) P.R.Ackroyd.a.a.O.,p.61.

86) 호 2:17 b.9:10:1-:11 11:1.

87) 비교.이경숙.a.a.O.,p.229.

88)       비교.W.Zimmerli,Interpretation       23,1969,p.145:R.W.Klein

a.a.O.,pp.79-80.

89) 비교,이경숙 a.a.O.,p.229.

90) W.Zimmerli,a.a.O.,PP.147-149.이렇게 이스라엘의 멸망을 그가 "야웨인

줄 할게 하려고" 즉 "야웨의 이름"을 위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에스겔 신학

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경숙.a.a.O.,p.229.

90) W.Zimmerli,a.a.O.,pp.147-149.이렇게 이스라엘의 멸망을 그가 "야웨인

줄 알게 하려고"즉"야웨의 이름"을 위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에스겔 신학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경숙.a.a.O.,p.229.

91) 비교  J.Bright,A.history of lsrael,p.336:"매우  다른 사회적 상황에

놓여 있는  예레미야와 포로된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견해가 일치하며 서로  비슷한 초역사적 기준(metahistorical framework)을

사용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다"(K.Koch,The Prophet:The  Babylonian and

persian Period,P.85).

92)  겔 24장의  심판선포와 겔  33장의 회망  선포가  대표적이다. 비교.,

R.W.Klein,a.a.O.,p.96.A.J.Tkacik,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P.346.

93) 겔 34-25-30:37:26:16:59-63).

94) 겔 17:22-24:34:23-24:37:22+24-28:40-48장.

95) 겔 20:42,28:25,37:25,47:14 그의

96) R.W.Klein,a.a.O.,p.92.

97) 비교 박준서,a.a.O.,p.124:W.H.Schmidt,a.a.O.,pp.257-267 특히 257.

98) 비교,J.Bright.a.a.O.,pp.344-345.

99) 비교.Ebd,p.348.R.W.Klein,a.a.O.,pp.98-105.

100) 비교 P.R.Ackroyd  a.a.O.,pp.122-123.

101)  사  42:1-4,49:1-6,50:4-9.52:13-53:12 비교,R.W.Klein,a.a.O.,p.119

누가 고난 받는 종이냐 하는 문제는 영원한 수수께께로 남게 될 것이다. 그

대답으로는 적어도 구약학계에서는 (1) 제2이사야 자신, 혹은 (2) 인격화된

이스라엘, 둘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전승은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연결되어 해석된다. 본고는 후자를 취한다.

102) Ebd.,pp.123-124

103) Ebd.

104) 비교 Ebd.,pp.103-104.

105) 사 48:20ff.51:9ff,52:11ff,55:12ff.비교 Ebd.,p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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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말씀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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