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 작은 이야기!!

[스크랩]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Ⅲ. 전투의 본질과 적의 정체 파악을 위하여(강의안 3)

하나님아들 2017. 9. 20. 16:53

(4) 사탄의 본질에 대하여

사탄의 본질은 악한 영이다. ‘악한 영에 대적하라는 말은 세 가지의 신학적 논리를 포함한다.

사탄은 영적 존재이다. 사탄은 악한 영이다. 사탄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죄를 범하게끔 유도한다.

 

사탄은 영이다

성경에서 (spirit)’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종종 천사들(타락한 천사도 포함)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된다(1:14, 왕상22:21). 사탄은 더러운 영’, ‘거짓 영’, ‘속이는 영등으로 종종 언급된다.

 

그렇다면 이란 무엇인가?

우선 은 형체가 없다(24:39). 인간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사탄은 어둠의 권세를 잡은 후에도 영적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사탄은 형체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존재이며 피조물이기도 하다(1:16).

 

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이 아주 높은 지력(智力)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어느 피조물보다도 지혜로운데 그 이유는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추방당할 때 하늘에 속한 지식을 많이 상실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지혜가 거룩한 천사들과 비슷하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알고 있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본래의 성격을 잃었기에 그것을 선용(善用)할 능력 또한 사라졌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죄의 극악함은 알지만 죄를 미워하지 않는다.

 

사탄은 악한 영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에 속한 극악한 자이다

타락한 천사가 바로 죄의 창시자이다. 그들 무리가 하나님을 향해 반역의 나팔을 불었을 때부터 죄는 그들과 함께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가 전에 없던 일이나 물건들을 만들어 내면 그 사람을 의 아버지라고 부르곤 한다. 성경에서 사탄을 일컬어 거짓의 아비’(8:44)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탄이 어느 정도로 악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우리는 거룩해지고 사탄을 닮으면 닮을수록 우리는 악해진다.” 수 세대가 지나도 사탄은 별의별 죄들을 만들어 냈다.

 

사탄은 죄를 유도한다

사탄은 죄의 선조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죄를 계속 만들어 내도록 종용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따라서 죄가 누구에 의해 행해지든 간에 사탄의 지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가 죄를 범하도록 충동질했다면 당신은 사탄이 운영하는 회사의 한 지부를 설치한 셈이다. 아무쪼록 사탄의 일을 거들지는 말기 바란다. 그의 일은 그가 알아서 하도록 간섭하지 말아라. 또한 사탄이 함부로 당신을 종처럼 부리지 못하게 하라. 당신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는 것은 사탄의 위력이 당신 안에서 맘껏 펼쳐지도록 하는 것과도 같다.

사탄의 악행은 곧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반역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정면 도전을 할 수 없는 사탄은 성도들을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간접 공격을 시도한다. 사탄은 성도들을 괴롭히는 일에 열심이다. 따라서 사탄은 성도들에게 흐르는 하나님의 자비의 강을 막기 위한 댐을 쌓으려고 애를 쓴다.

 

사탄의 본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탄의 사악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 의만 내세우는 죄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끔 함으로써 우쭐하게 만든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는 사탄의 속성에서 유래된 죄의 씨앗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행위가 의롭다고 내세우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당신이 거듭나지 않는 한 당신은 사탄의 자식이며 당신의 선한 마음도 결국은 위장된 사탄의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사탄의 본성은 사악하다. 당신의 본성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마치 죽을 병이 들어 있는데도 다만 그 증상이 양성화되지 않은 상태와도 같다. 그래서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것뿐이다. 이렇듯 당신의 병든 영혼을 치료할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밖에는 없다.

 

자기 의를 내세우지 말고 겸손하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자는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요소들을 파악해야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죄를 덜 범한다는 사실이 결코 당신이 잘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우리의 옛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과 동일한 칭호인 반역자라는 낙인을 지닌다. 그것은 천국에 이르러서야 던져 버릴 수 있는 칭호이다.

 

죄를 범하게 하는 사탄의 의중을 파악하라

죄를 범하게 하는 행위는 군대의 대장이 부하들에게 전투 명령을 내리는 것과도 같다. 지휘관은 군사들에게 상과 진급을 약속한다. 그러면 군사들은 그것을 생각하며 오로지 싸움에 전력한다. 사탄도 인간에게 권력과 명성과 재물을 약속한다.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탄의 그 약속을 믿고 열심히 죄를 범한다. 군대의 지휘관은 병사들을 전쟁터로 보낼 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지만 사탄은 다가올 심판과 죽음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사탄은 당신으로 하여금 승패가 뻔한 싸움에 목숨을 걸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싸움에서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성도들 가운데 있는 영적 사악함: 그 원인과 치료책

영적 범죄와 육신의 죄는 친밀한 관계에 있다. ‘영적 범죄로 명명되는 것들, 두 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마음으로 행하는 죄/우상 숭배, 영적 자만심, 무신론, 이방 종교 등과 같은 영적 범죄.

 

마음으로 행하는 죄에 대하여

죄를 범하기 전에는 으레히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처럼 악한 행동을 유도하는 생각들은 불경건한 생각이나 사악한 음모 또는 욕망과 같이 사람들의 속사람을 부패케 한다. 이러한 죄의 보이지 않는 선동자는 역시 사탄이다. 당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남을 비난하거나 악을 저지르게 된다면 그것은 사탄이 놓은 일종의 덫인 셈이다. 이러한 경우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첫째, 당신의 마음을 면밀히 감찰하는 것이다. 사탄이 당신의 마음에 거하고자 문을 두드릴 때부터 아예 아는 척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마음의 빗장을 열지 않으면 그는 결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주의해서 듣기 바란다.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일종의 명령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악하고 불의한 생각이 당신에게 엄습해 왔을 때 그것만으로는 아직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안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탄이 노리는 바는 바로 이 점이다. 마치 손님에게 호의를 베풀 듯이 사탄을 공손히 대한다는 것은 곧 사탄과 영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틈에 사탄의 뜻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말 것이다. 사탄을 대적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면서 육신의 정욕을 추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명심해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왕성한 곳에는 결코 불의한 사탄의 영이 발을 디딜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의 문을 기웃거리던 사탄이 당신과 그리스도의 정겨운 대화를 듣게 되면 꽁무니 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죄에 대해 어느 정도로 항거하느냐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향한 당신의 충성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유형의 죄라도 비록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 속의 죄도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하게 취급된다. 당신의 몸은 곧 성령의 전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모든 마음의 방에 머무르기를 원하신다. 혹시 당신이 당신의 마음의 일부를 사탄에게 빌려 준다면 먼저 거하던 성령은 떠나시려 하실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사탄이 당신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단연코 거절함으로써 하나님께 향한 충성심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육신의 죄, 즉 행동으로 짓는 죄보다 마음으로 짓는 죄가 훨씬 더 사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악한 마음이 가득할수록 그에 따른 행동도 자연스레 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탄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을 지켜서 그의 악한 생각들이 당신에게 스며들지 않도록 하라. 사실 당신이 태풍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없듯이 사탄의 유혹의 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태풍이 몰아 닥칠 것을 예견하고 경계 태세를 갖추듯 당신의 마음도 만반의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그 구체적인 경계 태세로서는 첫째, 예방 조치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즉 기도를 통해 마음의 문단속을 잘 하는 것이다. 결코 당신의 힘만으로 사탄을 물리칠 생각은 하지 말라. 둘째, 경계 태세는 행동을 감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적 감각 기관이 접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탄은 당신이 보고 듣는 것들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공격한다. 항상 거룩한 것을 대함으로써 거룩한 생각을 품도록 하라. 셋째, 주의 사항으로는 매일매일 마음을 감찰하라는 것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서 당신의 생각과 마음 상태를 살펴보고 그것으로 인한 행동들이 어떠한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라. 비유컨대 교실에서 선생님이 나가고 난 후 학생들의 태도는 어떻게 변하는가?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도 잘 훈련되지 못한 학생과 같다. 그래서 잠시라도 경계를 소홀히 하면 분노, 시기, 미움 등이 당신의 마음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다른 영적 범죄에 대해

영적 범죄가 갖고 있는 원리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영적 교만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영적 범죄의 기본 원리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때 그의 가라지도 함께 뿌려지는 것에 근거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복음의 원리를 왜곡하여 성도들을 흔들어 놓고자 한다. 말씀을 오류로 인도함으로써 성도들이 지녀야 할 하나님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만일 젖이 물에 의해 지나치게 희석된다면, 그 고유의 영양분 또한 감소하게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다른 불순물이 섞이면 그 능력이 많이 사라지게 된다. 진리를 왜곡하는 모든 오류는 그것이 아무리 순수하게 보일지라도 기생충과 같은 존재이다.

 

또 다른 비유로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그릇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영적 간음에 해당되며 그리스도의 침상에 다른 존재를 끌어 들이는 것과 같다. 간음이 지닌 위험성은 진정한 배우자에게 지녔던 마음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즉 첫사랑을 저버리게 하여 불법을 자행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발견된다. 즉 순수 복음에서 벗어난 교리를 신봉하는 무리들에 의해 진리가 왜곡되고 이단이 발생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품었던 열정을 저버리고 그릇된 교리를 열심히 좇는다. 이러한 경우 그들은 엄청난 상실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잃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교리상의 오류가 횡행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전염병과도 같아서 무섭게 번지고 있다. 따라서 전혀 면역이 되어 있지 않은 당신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영적 예방 접종이 필요하나 일단 감염되면 단 한 번에 치유되긴 힘들다. 그러므로 신앙에 대한 심층적인 확신이 필요하며 그릇된 진리에 대한 세심한 경계가 요구된다.

 

사도 바울이 서신을 통해 각 교회에 거듭 강조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 복음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이었다. 그러한 바울의 교훈과 충고는 오늘날의 우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사탄의 거짓 복음은 끊임없이 전파되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갈망과 연구는 사탄에게 뒤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첫째, 마음의 전적인 변화를 체험했는지에 대해 확인해 보라. 즉 당신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서 그것이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뿌리 내리고 있지 않다면 당신의 신앙은 곧 질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스도와 굳게 연합하고 있는 한 심각한 오류에 빠질 염려는 없다. 오류에 빠질 염려가 없다는 것은 완벽하여 결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혼까지 멸망할 정도의 오류에서는 단연코 벗어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공부하라. 사탄은 사람들로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만든 뒤 인간을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사탄은 성도들을 유혹하여 성경과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성경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를 한 마디라도 소홀히 여겨 무시해 버린다면 축복 전체를 잃게 된다.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자라고자 할 때, 새로운 교리에 대해서는 주의를 해야 한다. 그것들을 수용하기 전에 신중할 필요가 있고, 의심이 가는 것은 물어 볼 필요도 있다. 성경을 찾아보거나 목사님과 의논해 보라.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영적 범죄의 유혹의 도구 중 하나는 교만이다. 이 교만에 의해 사탄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던 천사의 위치에서 전락된 것이다. 따라서 교만이 지니는 죄의 위력을 사탄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범죄케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탄은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무나 잘 꿰뚫어 보고 있다.

 

교만이 지니는 무서운 점은 그것이 우리가 지니는 장단점을 모두 이용한다는 것이다. 교만은 모든 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교만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악하기 짝이 없다. 이 교만의 죄는 우리가 성인이라고까지 칭할 정도로 신실하고 기도에 열심인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 교만은 가장 성스럽고 선한 곳에 교묘히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자선을 베풀 때 진정한 동정심이 아니라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교만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은사에 대한 자만심

성령에 의해 소유하게 되는 영적 은사는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만이 침투하게 되면 우열의 계층이 조성되며 분열이 있게 된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교만을 지니게 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쓰여져야 할 우리의 은사는 제구실을 담당하지 못한다. 교만으로 가득차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놓고 자신의 행위가 인정받기를 원한다.

 

영적 은사나 능력이 충만한 설교가일수록 다른 사람의 권고나 충고에 잘 귀기울이려 하지 않음을 우리는 보아 왔다. 교만이 그렇게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3:17). 이 말씀처럼 교만은 자신이 부요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가여운 일인가? 만일 당신이 영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적으로 별볼일 없어 보이는 겸손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당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영적 은사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당신이 받은 바 은사가 다른 사람에게 뒤진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조건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남보다 많은 은사를 지녔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러러 보일지 모르나 교만해질 소지를 훨씬 많이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많은 은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그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주기 바란다. 그들이 받은 은사가 하나님 보다는 자신들을 위해 쓰이도록 유혹받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교만의 유혹을 받기 쉬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큰 은사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은사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들려 줄 말은, 교만은 뛰어난 은사를 소지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왕성하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겸손만이 당신을 지켜줄 수 있다. 사탄이 당신을 높은 곳에 올려 놓는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하게 밑으로 곤두박질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성취해 낸 업적은 당신이 지닌 재능 탓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음모이다. 또한 당신 자신을 의뢰하게끔 유도하는 것도 사탄의 짓이다. 당신이 받은 은사나 재능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깨우쳐 주는 성령의 음성에 둔감해지지 않도록 하라.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을 가지고 어떻게 자랑하겠는가?

 

교만이 활개치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고통받고 있다. 당신이 뽐내는 그 은사들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당신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지체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땅히 쓰여져야 한다. 교만이 흥왕한 곳엔 은혜가 시든다. 교만과 하나님의 은혜는 병존할 수 없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교만이 자리잡은 곳에서 하나님은 물러나실 수밖에 없다. 히스기야 왕이 그의 보화를 자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 그것들을 약탈하도록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체의 가시를 두셔서 우리의 교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 그 가시로 터뜨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허락한 사람들에게 그 은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평가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닌 은사대로 교회를 열심히 섬겨야 한다. 당신의 은사는 그 은사의 소유자가 아니다. 관리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교만에 빠질 위험성이 도사리게 될 때는 언제일까?

당신이 지닌 은사에 대해 은밀한 만족감에 빠져 자신이 아주 잘난 듯이 생각될 때가 바로 교만에 빠질 찰나이다. 위대한 설교가 버나드(Bernard)는 설교 중 그의 귀에다 속사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는데, “참 잘한다. 버나드 아주 잘한다라는 소리였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부추기는 소리로부터 선뜻 벗어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만에 빠질 위기에 처하면 성난 곰을 만났을 때처럼 일단은 줄행랑치는 것이 상책이다. 당신의 귀에 대고 달콤한 거짓말을 일삼는 사탄에게 솔깃하지 말라.

 

성도들은 어떤 식으로 교만에 빠지게 될까?

첫째, 자신이 지닌 은사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은사를 의존하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다. 베드로 그는 어떠했는가? 자신의 믿음을 과신했고 또 자랑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14:29). 우리가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얕잡아 보는 것일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또한 무모한 상태로 몰아 넣는 결과를 낳는다. 버나드(Bernard)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오늘은 다른 사람의 실족함을 보지만 내일은 내가 실족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겸손의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둘째, 우리의 교만은 우리의 받은 바 은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뽐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것을 성경에서는 자기 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는 대립되는 용어로 쓰여진다. 우리가 우리의 은사를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교만의 근본 원리는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성경의 그 어떠한 내용보다도 위력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분만을 의지하길 요구하시는가?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의로움만으로는 결코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만을 의지하다가 얻게 되는 것은 곤경과 비통함 뿐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는 영원한 평화와 기쁨을 얻게 된다.

 

축복으로 인한 교만

사탄은 축복을 통해서도 교만하게 만든다. , 성도 자신의 행위 때문인 것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각별한 축복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이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는 영적 체험을 했을 때 영적으로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육체의 가시(고후12)를 주셨던 하나님임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때는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임을 기억하라.

 

그 예방책으로 몇 가지 방법으로 제시하겠다.

첫째, 당신이 받고 있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의 양으로 은혜의 양까지 측량하지 말라.

둘째, 당신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있다고 해서 영적으로 헤이해지지 말라. 오히려 이러한 시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더욱 힘쓰도록 하라.

셋째, 당신 자신의 공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일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 하나님으로부터의 기쁨과 평화도 지속적으로 구해야 한다. 당신이 어제 즐거움으로 미소지었다고 해서 오늘, 혹은 내일까지도 그것이 저절로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은혜를 공급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곧 영적 고갈을 당하고 말 것이다.

 

햇볕을 쬐길 원하면서도 햇살이 비치는 자기의 창문을 꼭 닫은 채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알겠는가? 우리 또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안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의 은혜만을 바란다면 역시 어리석음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의 빛을 받을 때에만 그분의 공급하심을 느낄 수 있다. 부디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돌려라.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