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 작은 이야기!!

[스크랩]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Ⅲ. 전투의 본질과 적의 정체 파악을 위하여(강의안 1)

하나님아들 2017. 9. 20. 16:52

. 전투의 본질과 적의 정체 파악을 위하여

 

전투의 특성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성도들은 왜 전투에 임해야 하나

 

(1) 전투의 심각성

사도 바울은 사탄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싸움이 얼마나 격렬한가에 대해 잘 묘사했다. ‘씨름의 특성이 잘 말해준다. 씨름은 일 대 일의 경기이지 단체 경기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전투도 단독으로 싸움에 임해야 하며, 따라서 그 싸움은 격렬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모래판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또한 씨름은 직접 맞부딪치며 싸운다. 사탄은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의 몸을 움켜 잡고는 당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요동을 칠 것이다.

 

(2) 전투의 보편성

우리의 씨름이란 말에서 영적 싸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만 하면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영적 전투에 참가해서 싸워야 한다.

 

(3) 전투 기간

인간과 사탄과의 전투 기간은 각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이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15:10). 일단 성도가 되면 영적 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영적으로 거듭날 때부터 육신의 사망이 있기까지, 당신이 천국에 발을 디딜 때까지 사탄과 죄와 당신 자신과의 싸움은 지속될 것이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올바른 전투 방법)

 

(1) 하나님을 당신의 참모관으로 삼으라

즉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떻게 방어하고 공격해야 할지 잘 지도하실 수 있지만 당신이 그분의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전투에 임한다면 당신의 적을 이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언제나 든든하다.

(2) 훈련이 필요하다

고대 레슬링 선수들은 상대방이 쉽게 몸의 일부를 잡지 못하도록 온몸에 기름을 발랐다. 이처럼 당신도 옛 사람을 벗어버림으로써 사탄이 함부로 당신의 영혼을 걸머쥐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에서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18:23)라고 말한 바 있다. 사탄에게 빌미가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거룩하라.

 

2. 사탄의 특성

 

혈과 육으로부터의 공격

 

(1) 부패한 혈과 육

범죄한 아담의 자손들은 모두 아담의 부패성을 이어 받았다. 후대에게 전달되는 것은 원죄에 기인한 부패성일 뿐이다.

 

우리의 내적 타락을 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비그리스도적 특성과, 육적이고 세속적인 기질 때문이다. 또한 부패한 인간의 심성은 하나님에 대한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다. 이들의 모든 욕망과 기쁨과 관심사는 온통 이 세상에만 쏠려 있기에 당연히 육신에 속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혈과 육의 개념과 더불어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의 영적 싸움은 우리의 옛 사람새 사람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과는 대립되므로 그리스도인의 전 삶 속에서 이 둘의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즉 우리의 옛 사람이 거하는 육신은 사탄의 공격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적수는 내부에 존재하는 옛 사람인데 사탄이 그 옛 사람의 지휘권까지 손아귀에 넣었을 경우 우리는 마땅히 사탄을 겨냥하여 싸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소욕이 어떻게 해서라도 사탄의 권세와 영합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2) ‘혈과 육에 속한 존재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함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나 외의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도 내포된다. 즉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인간 내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부패한 속성의 씨앗으로 인해 사탄의 교묘한 술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끔 대적해야 할 대상이 인간일 경우가 있는데, 그때의 인간은 사탄의 이용물이 되어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은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가 성도와 성도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과 롯이 그러했고, 모세에 대항한 아론과 미리암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누가 더 높은가를 놓고 다툼을 하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라. 여기 다툼에서 드러나지 않는 주범은 바로 사탄이다.

 

이러한 사탄의 속성을 잘 파악한 바울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7)고 경고했다. 이 말은 마귀와 한 패가 되지 말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사탄은 기회만 있으면 싸움을 일으키는 무적의 용사와도 같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불을 보면 어느 새 몰려드는 나방과도 같다. 우리에게 분노의 열기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당장 달려들어 문제를 야기시킨다. 사탄은 불이 없어도 자기의 일을 벌일 수가 있다. 그 자신이 바로 타오르는 숯과 같기 때문이다. 꺼져 있는 불씨처럼 잠잠히 도사리고 있다가 그리스도인에게서 어떤 허점이 보이기만 하면 달려들어 불을 붙인 뒤 활활 타서 나중에는 재만 남을 때까지 부채질을 한다. 그 뒤엔 자신의 의도대로 마음놓고 그리스도인을 주무를 수가 있는 것이다.

 

다툼은 우리의 영혼을 혼돈에 빠지게 한다. 또한 그러한 혼란 속에서는 은혜의 법이 자유롭게 역사하기가 힘들다. 잘 순종하던 모세조차도 그가 화가 났을 때엔 어리석은 말을 내뱉곤 했다. 우리가 믿음의 형제간에 서로 다투게 되면 그것은 사탄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성도간의 분쟁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탄은 악인을 사용해서 성도들을 훼방하기도 한다.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성도들의 본성과 삶은 이 세상과는 상극이다. 그것은 물과 불, 또는 천국과 지옥 같아서 좀처럼 화목할 수 없고 늘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믿는 사람을 박해하고자 하는 악인의 들끓는 마음은 결코 잠잠해지지 않는다. 욥이 곤경에 처했을 때 한 마디씩 하던 친구들도 어떤 면에서는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성도들이 치러야 하는 전투에서 적의 우두머리는 늘 사탄이다.

 

말이나 행위를 통해 성도를 박해하는 자들은 모두 사탄의 도구라고 칭할 수 있다(2:9-10). 그리스도나 복음에 대해 기를 쓰고 대적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임을 기억하라. 자신의 지식이나 권세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에 사용하는 사람을 보거든 그들을 위해 애통해 하라. 만일 악인에게서 핍박이나 환난을 당할 때는 그들을 무시해 버려라. 그들은 단지 사탄의 하수인이다. 어쩌면 그들도 사탄의 휘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터에서의 명장이란 숱한 사망자만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적의 손에서 구해낼 수 있어야 한다. 영적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의 손아귀에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성도에게 위협을 주는 적()은 악령들이다

 

악의 영의 대부분은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다. 그들의 속성에 대해서는 에베소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악의 왕국을 세우는 데는 정치적인 이론이 적용된다. 첫째, 정부와 같은 조직체가 있어야 한다. 둘째, 그들의 권력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영토가 필요하다. 넷째, 그들의 공통된 특성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구체적인 적()의 대상이 설정되어야 한다(물론 그들에겐 하나님이 그들의 적()이다).

 

(1) 이 땅에 있는 사탄의 조직에 대해

‘Principalites’라는 단어는 사탄이 하나님에게서 찬탈한 영토의 주권이 사탄에게 있음을 스스로 공포하는 뜻을 지닌다. 즉 아직까지는 사탄이 이 땅의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여전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사탄을 일컬어 세상 임금’(14:30)이라고 했다. 임금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가 다스리는 백성이 있을테고 또한 영토도 있을 것이다. 사탄에게도 이 두 가지가 다 있다.

 

통치자가 신뢰할 만한 소수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탄의 휘하에 있는 충직한 악의 영들은 사탄에게 반역할 만한 별다른 이유를 지니고 있지 않기에 사탄의 위치는 공고해 보인다. 사실상 사탄을 숭배하는 무리들은 아주 맹목적이다. 그들에게 다만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이다.

 

사탄은 극악무도한 독재자로서 그의 법은 악으로 뭉쳐져 있다. 그의 법은 죄의 법’(8:2)으로서 그의 모든 권세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파생된다. 따라서 사탄을 열성적으로 따르는 죄인에게 명령이 시달되면 그는 곧 그것을 이행한다. 그리고 일반 통치자들의 경우처럼 여러 부하들 중 특히 신임하고 중책을 맡길 만한 사람이 있듯이 사탄의 경우도 그의 특명을 수행할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러나 사탄이 특별히 선발한 종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즉 사탄의 주된 관심사는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기에 부려먹을 대로 실컷 부려먹고서는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악덕 기업주와도 같다.

 

사탄은 자신의 주권을 내세운다

사탄이 주장하는 이 세상의 주권은 합법적이 아님을 기억하라. 그 이유는?

첫째, 사탄은 자기가 이 땅을 정복했노라고 큰소리 친다. 물론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탄은 정당한 방법으로 이 세상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탄의 주장은 마치 도둑이 자기가 훔친 물건을 놓고 원래의 임자를 향해 자신의 소유권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불법으로 취득한 것이 시간이 지났다고 합법화되거나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탄이 생겨날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유죄성에는 변동이 없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께 범죄케 한 사탄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가 아무리 정복자라고 외쳐댄들 설득력이 없다. 지금 사탄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모두 되찾으실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탄은 반칙을 통해 득점을 한 셈이다.

둘째, 사탄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지지하는 무리가 많다고 외쳐댄다. 선거에 비유한다면 아직은 다수로 존재하는 부동표가 결국은 자기의 것이 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 이 세상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으니 자기 쪽의 세력이 더 우세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사탄의 주장이 옳은 것 같기도 하지만 거기엔 교묘한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셋째, 사탄은 이 세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양 행동한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사탄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여 자기에게 절만 하면 이 천하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탄의 말이 아주 그럴듯하지만 모두가 진실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탄에게 넘겨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까지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사탄으로 하여금 당분간 이 세상의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이니까 허용한 것일뿐이지 결코 사탄을 어여삐 보아서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사탄의 주권을 환수하실 수 있다.

 

사탄의 그러한 주장을 묵과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우리 인간의 제한된 사고로는 왜 하나님께서 극악한 사탄에게 그러한 엄청난 주권을 허용하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당장이라도 사탄을 끌어내어 천사들과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박살을 내지 않으실까?

 

첫째, 죄에 대해 벌하시기 위함이다. 사탄으로 하여금 인간을 괴롭히도록 허용하심으로써 인간의 반역에 대해 벌하시고자 함이다.

둘째, 사탄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력을 과시해 보이도록 한 뒤 하나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셋째, 성도들의 영원한 기쁨을 보다 크게 하기 위해서다. 고통이 지나고 난 뒤 기쁨은 더 커지지 않은가?

 

(2) 악한 영의 권세

사탄에 대한 바울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그가 악한 영들에게 부여한 권세이다. 이제 사탄의 권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그들의 이름, 본성, 숫자, 그들의 조직, 위계 질서 그리고 그들이 신봉하는 일 등에 대해 다뤄보기로 한다.

 

첫째, 그들의 이름은 어떠한 권세를 드러내고 있는가?

성경에는 사탄, 악의 영들을 일컬어 큰 힘을 소지한 자’, ‘모든 것 가운데 뛰어난 존재’, 그리고 강한 자’(11:21)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렇게 강함으로써 아담의 후예들을 공격한다. 우리의 혈과 육만으로 사탄을 대항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는 밀림의 맹수인 우는 사자로도 묘사된다(벧전5:8). 사자가 한번 크게 으르렁대면 그 앞의 먹이들은 겁을 집어먹어 꼼짝도 할 수 없다. 그 틈에 사자는 여유있게 다가와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먹이를 먹어 치우는 것이다. 이러한 사자처럼 사탄도 죄인들에게 유유히 다가와서는 마음대로 올무에 가둔다(딤후2:26). 빵 부스러기로 새들을 유인하여 쉽게 사로잡는 능숙한 새잡이와 사탄의 행동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러한 사탄의 유혹에 순순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 흘리기까지 저항한다.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은 큰 붉은 용’(12:3), ‘공중의 권세 잡은 자’(2:2)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름 중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는 것은 이 세상 신’(고후4:4)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죄인들에 의해 하나님처럼 떠 받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듯 사탄을 숭배하며 섬기고 있다.

 

사탄의 본성, 즉 사탄의 진정한 정체를 파헤쳐 보면 역시 그의 권세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원래 천사였음을 명심하라(천사의 존재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중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천사는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 천사들은 영적 존재이기에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나다).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추방을 당해 이 세상으로 떨어지긴 했으나 천사로서 지니고 있던 본래의 능력까지 박탈당하지는 않았기에 만만치 않은 존재이다.

 

사탄은 영적 존재로서 결코 얕볼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그의 권세는 배가 되지 않겠는가? 사탄의 추종자인 악한 영의 무리들은 이 지구상의 곳곳에 깔려 있다. 따라서 그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이들은 즉 사탄의 군대인 셈이다. 마가복음 59절에서,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거대한 무리가 한 사람을 공격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도대체 무슨 재주로 견뎌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이 천국에 이르기까지의 길이 험한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악한 영의 무리가 여기저기에 깔려 있어 당신의 여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쫓겨났을 때 사탄은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괴롭힐 대상을 찾고 있다. 특히 천국을 향한 여정에 오른 성도들은 그들이 즐겨 찾는 공격 대상이다. 그들의 수적인 우세뿐만 아니라 질서정연한 조직으로 인해 그들의 힘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그들의 강한 결속력이 결코 사랑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을 공격하겠다는 공동 목표만이 그들의 결속력을 가능케 한다.

 

사탄의 권세, 위용있는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사탄은 절대로 창조자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도구를 훔쳐낼 수는 있다. 그것들을 용의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누구도 그 앞에서 항의할 수 없게끔 만든다. 바다를 요동치게 만들 수도 있고, 폭풍을 일으켜 하늘과 땅을 뒤흔들 수도 있다. 그리고 천둥 번개를 일으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도 있다. 다소라도 의심이 간다면 욥기를 읽어 보라. 욥의 자녀들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고, 그의 집이 어떻게 풍비박산이 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탄의 횡포는 자연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짐승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돼지 떼가 바다에 빠져 죽음). 또한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욥이 당한 고통은 자연 발생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사탄의 날카로운 발톱이 욥의 육체를 마구 할퀴어 놓은 것이다. 즉 육체의 고통을 가중시킴으로써 약해진 인간의 영혼을 자기 소유로 탈취하려는 의도이다. 사탄은 우리의 연약한 육체를 공략할 때에만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동일한 수법을 써서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사탄의 횡포를 중단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만이 사탄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사탄이 당신의 영혼을 침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사탄은 당신의 믿음의 경계선에서 외곽 공격을 할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탄의 손아귀에 떨어지게끔 그냥 내버려 두시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탄의 공격대상에서 벗어나도록 하시진 않는다. 사탄과 당신 사이의 싸움은 언제나 계속될테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의 힘만으로 대적하기엔 사탄이 너무 강한 적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도움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홀로 위험한 여행 길에 오른다면 당신은 그가 좀 모자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짜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의 행동거지는 도무지 천국을 향한 순례자라고는 보기 힘들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순례자 겉옷만 달랑 걸친 채 무턱대고 걸어가고 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어쨌든 사탄의 권세가 큰 것은 사실이나 결코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위해 말할 수 없는 보호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탄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사탄의 힘은 빌려 온 것에 불과하다. 사탄의 권세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탄의 권세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 놓여 있기 때문에 매사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보다 그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일 당신의 주인이 그리스도라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당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없다. 당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만이 당신의 죽음의 문제를 주관하신다. 천국의 기업을 주시는 분만이 이 땅에서의 고통도 함께 허용하신다. 물론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의 권세와 분노 속에 당신을 내어 맡기실 때도 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비밀스레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