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현대 구약신학의 주요 인물들

하나님아들 2017. 7. 18. 22:48

현대 구약신학의 주요 인물들

 

 

 

요약/정리: 유정섭(Ph. D in O.T)

 


[참고 문헌]

․Walter A. Elwell, J. D. Weaver. 「20세기 복음주의 성경 신학자들」장세훈 역. 서울:           이레서원, 2001.

․게하르드 하젤. 「구약신학: 현대 논쟁의 기본 이슈들」김정우 역.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9.

․프레드릭 C. 프루스너, 존 H. 헤이스. 「구약성서 신학사」장일성 역. 서울: 나눔사,              1993.

․벤 C. 올렌버거, 엘머 A. 마르텐스, G. F. 하젤. 「20세기 구약신학의 주요 인물들」강성         열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왕대일. 「구약신학」서울: 도서출판 성서학 연구소, 2002.  외 다수.

․클라우스 베스터만. 「구약신학의 요소」박문재 역. 경기도: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W. C. 카이저. 「새롭게 본 구약」김의원 역.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89.

․            . 「구약성경 신학」최종진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8.

․체스터 K. 레만. 「성경신학Ⅰ」김인환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엘머 A. 말텐스. 「하나님의 계획」김의원 역. 서울: 아가페 문화사.

․발터 침멀리. 「구역신학」김정우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에드몽 자콥. 「구약신학」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로널드 E. 클레멘츠. 「구약신학」김찬국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9.

․롤프 크니림. 「구약신학의 과제 1, 2」강성열.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2.

․발터 아이히로트. 「구약성서 신학 Ⅰ,Ⅱ」박문재.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G. 폰 라트. 「구약성서 신학 Ⅰ,Ⅱ,Ⅲ」허혁 역. 경북: 분도 출판사, 1999.

․Th. C. 프리젠. 「구약신학」노항규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발터 아이히로트(Walther Eichrodt, 1890-1978)

계약

 


<주요 약력>

․아이히로트의 「구약성서신학」이 가지고 있는 기본구조(하나님과 백성, 세계, 개개인 등과의 사이에 있는 관계)는 그의 스승 프록쉬(O. Procksch)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는 에어랑겐(Erlangen) 대학에서 프록쉬의 지도 아래 구약을 공부했으며, 그 대학에서 대학교수자격 논문을 완성했음(1915-1922).

․그는 벧엘(Bethel),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등지에서 철학과 신학을 연구했음.

․1921년 바젤(Basel) 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었고, 거기서 구약성서와 종교사를 1966년까지 가르침.

 


<신학적 개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수십 년 동안에 독일에서 구약신학에 대한 논의는 놀라울 정도로 활발했다. 논쟁의 한편에는 이스라엘의 종교가 단지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들은 이스라엘 종교에 대한 “발생론적인” 설명이 이스라엘 종교의 본질에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이히로트는 구약신학을 역사적인 연구로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해서 이스라엘 종교의 발전 과정보다는 그것의 본질 자체를 취급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만일에 구약신학이 “진정한 역사적인 연구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따른다면(1961: 13), 구약신학은 “역사주의의 횡포”에 빠지지 않은 채로 참으로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1961: 31).

   그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관계에 대한 아이히로트의 관심은 그로 하여금 유대교를 “몸통만으로 이루어진 미완성품”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그것이 이스라엘과의 사이에 갖는 연속성을 분명하게 거부하였으며 그것의 적법성까지도 부정하였다.

   아이히로트가 제안하고 실천한 방법은 소위 “구약성서 전체의 단면을 그리는 작업”(cross-section method)이었다. 구약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사상을 찾아내고 그 중심사상을 통해서 구약성서 신앙의 내부 구조를 구성하는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서 아이히로트의 신학 방법론이 역사적 원칙과 함께 역사를 하나의 단면으로 조직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이런 전제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1933년), 「하나님과 세계」(1935년), 「하나님과 인간」(1939년)이라는 세 권의 구약신학서를 저술하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에서 아이히로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관계를 구약신앙의 중심 축으로 본다. 「하나님과 세계」는 이런 축 속에서 하나님의 현현이 창조세계의 유지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파악한다. 「하나님과 인간」에서 그는 인간이 하나님과 이룩하는 관계를 경건과 용서라는 관점에서 해설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는 자기 신학의 세계를 하나님-인간-구원이라는 삼각형 도식으로 정립하게 된다. 그는 이처럼 구약신앙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개괄하고 조직적으로 배열하는 일에 뛰어난 흔적을 남겼다. 이스라엘 역사의 상황이 끊임없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가 일관되게 간직하였던 신앙세계를 연대기적인 방법이 아닌, 중심되는 주제를 드러내는 “단면 찾기” 방법을 통해서 추적하였다.

   아이히로트의 구약신학 세계를 일관되게 감싸는 개념은 “언약”(베리트, תירב)이다. 이스라엘의 신앙과 제도를 “언약 관계”, “언약의 규정”, “언약의 하나님”, “언약이라는 제도”, “언약의 파괴와 심판”, “언약의 성취”라는 항목으로 전개하고 있는 아이히로트의 구약신학 1권이 특히 그것을 드러낸다. 언약이야말로 구약성서를 해독하는 암호이자. 상징이며, 구약성서 전체를 축소시켜 놓은 도면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관계를 독특하게 설정하는 상징이다. 그는 바로 이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를 구약신학의 중심축으로 본다. 이런 그의 사고는 시내산 언약에 모세 종교의 출발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모세 종교야말로 이스라엘 신앙이 “계시 종교”로 발돋음하는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아이히로트는 구약성서의 메시지를 조직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결코 역사비평적 탐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주창한 언약이라는 개념도 역동적인 것이지 결코 교리적이거나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언약을 자신이 기술한 구약신학의 중심개념으로 부면서도 정작 구약성서 속에 언급된 언약들을 모두 분석하지 않았다. 예컨대 아브라함 언약(창15; 17장)이나 다윗 언약(삼하7장) 등은 아이히로트의 사고 속에서는 빠져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언약이란 개념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어떤 흐름을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삶과 역사와 문헌의 단면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주의적 함정이나 구약성서 안에 특정 교리를 부과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정당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구약성서의 중심단면 하나를 추적하고자 골몰한 나머지 구약 안에 있는 여러 다양한 이념, 사상 등을 놓치고 말았다는 큰 문제를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구약성서의 사상은 어느 한 두 개의 주제나 중심단어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히로트의 구약신학은 “구약신학을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가”라는 양식(방법)의 문제와 “구약신학이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내용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예에 해당된다.

 


<주요 저서들>

1961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제1권. John A. Becker 옮김. London:                     SCM/Philadelphia: Westminster.

1967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제2권. John A. Becker 옮김. London:                     SCM/Philadelphia: Westminster.

1970   Ezekiel: A Commentary. Old Teatament Library. Cosslett Quin 옮김. London:             SCM/Philadelphia: Westminster.

 

 

 

테오도루스 프리젠(Theodorus Vriezen, 1899-1981)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본질

 


<주요 약력>

․프리젠은 네델란드의 딩크펠로(Dinxperlo)에서 1899년에 태어났고, 우트레히트, 라이덴, 그로닝엔 등지에서 공부했으며, 나중에는 그로닝엔(1941-57)과 우트레히트(1958년부터 은퇴할때까지)에서 후학들을 양성함.

․이전에 그는 헤이그(1924-41)에서 교수로 봉직했으며, 시타드(1925-29)에서 화란 개혁교회의 목사로 시무했음.

 


<신학적 개요>

   프리젠의 저서 「구약신학 개요」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두 가지의 중심 주제가 지배한다. 그 하나는 구약성서의 통일성에 대한 것이다. 이 통일성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친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테면 이 친교는 희생제사들과 축제들을 통해 강화된다.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삶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성격이나 공동체와 그것의 사회적인 형태들 및 그것의 윤리적인 기준 등에 대한 강조는 구약성서에 공동체의 주제가 매우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프리젠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 또는 “교제”는 계시의 목적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에 의해 고전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계약은 단지 몇몇 사례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친교는 또한 “아버지와 자녀, 남편과 아내, 주인과 종, 왕과 백성” 등의 관계들을 통해서도 표현된다(1970: 170).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통해서 자라난다. 이 공동체를 프리젠은 “계약 공동체”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즐겨 부른다. 그 공동체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분이다. 이러한 사실은 친교의 가능성을 더욱 주목할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두 번째 주제는 기독교회의 구약성서 사용에 있다. 프리젠은 정경의 초기 부분이 오늘의 교회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약성서의 권위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진리-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 판정되는-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역사적인 진술들의 정확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1970: 99): “기본적으로 우리가 신약성서를 출발점으로 삼을 때, 우리는 구약성서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비록 구약성서의 메시지가 상당 부분 고대 근동 자료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구약성서가 그 선포내용에 있어서 권위있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1970: 115). 구약성서에 대한 신학적인 판단은 우리의 출발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프리젠의 주요 관심사는 이이스펠트와 아이히로트에 의해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신학은 서술적인 것인가 아니면 고백적인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역사 및 역사비평학 등의 쟁점들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주요 저서들>

1970   An Outline of Old Testament Theology. 제2판. S. Neuijen 옮김. Newton,                 Massachusetts: Branford/Oxford: Blackwell.

 

 

 

조지 E 라이트(George Ernest Wright, 1909-1974)

전사이신 하나님

 


<주요 약력>

․라이트의 관심사는 고고학과 신학에 있었다. 고고학자로서 그는 올브라이트(W. F. Albright)에게서 훈련을 받았다.

․그는 팔레스틴의 도기류에 관한 책을 1937년에 출판했으며, 세겜(이스라엘)과 이달리온(Idalion, 키프로스)의 발굴에 참여하기도 함.

․그는 「성서 고고학」(The Biblical Archaeologist)이라는 잡지의 창간자로서 25년 동안 편집장일을 맡아서 함.

․주석가와 신학자 일을 겸해서 했으며, 그가 쓴 18권의 책 중 절반이 그러한 범주에 속함.

․1939년에 멕코믹 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는 심장발작으로 자신의 65회 생일을 일주일 앞둔 채로 1974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학적 개요>

   라이트는 올브라이트의 제자로서, 고고학으로 그의 과업을 시작하면서 세계대전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후일 성서신학운동의 대표적 지지자가 되었다. 라이트는 구약성서와 그 신학에 대해 몇 가지 논제를 주장하였다. ①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나 교리는 “조직적이거나 사색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설립하게 된 사건을 설명하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1952: 44).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행하신 일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84쪽). “성서는 물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과 그것에 대한 인간 응답의 기록이다”(107쪽). ②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지식은 “인간 역사 안에 실제로 일어난”(44쪽) 사건을 통해 추리해 볼 수 있다.

   “성서 신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심적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성서 회의주의자들은 하나님이 모든 사건의 감독(렘5:12)인가를 의심하지만, 출애굽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가가 시내산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국가가 땅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 후에 개별적으로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셨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126-127쪽)

   라이트는 하나님의 계시나 지식이 “국가를 설립하게 된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44쪽), “역사적 사건의 추리”(106쪽) 또는 하나님이 행하신 것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당한 고고학 및 역사적 방법을 통해 연구함으로써 결정지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의 사실성과 객관적 실체에 주요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는 후일 발표한 글에서, 실제의 역사적인 사건과 그 해석을 종합해서 “사건”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라이트는 고백적인 역사를 통한 구약성서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그의 관심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고 있었느냐에 있다. 즉 하나님의 행동 양태들과 하나님의 일정한 표상들이 이스라엘의 신학을 형성했다고 보았다.

 


<주요 저서들>

1952   God Who Acts: Biblical Theology as Recital.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제8권.         London: SCM/Chicago: Regnery.

1969   The Old Testament and Theology. New York: Harper & Row.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 1901-1971)

주전 8세기의 예언

 


<주요 약력>

․폰 라트는 1901년에 독일 누렘버그의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남.

․에어랑엔 대학과 튀빙엔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음.

․그의 교직 경력은 1930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되었으며, 나중에는 예나 대학으로 옮겼고(1934-45), 전쟁이 끝난 후에는 쾨팅엔(1945-49)으로 옯김.

․마지막으로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초빙을 받아서 거기서 1949년부터 죽던 해인 1971년까지 후진을 양성함.

 


<신학적 개요>

   폰 라트는 구약학계에서 20세기 거장들 중의 한 사람이다. 알트(Albrecht Alt) 및 노트(Martin Noth)와 함께 그는 양식비평 방법과 전승사적인 연구방법을 발전시킨 선구자였다. 폰 라트의 영향력은 모든 대륙의 구약 연구 세대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200편 이상의 연구물들을 출판하였다. 주요 저작들의 상당수는 이미 몇몇 현대어로 번역되었다. 1929년에 시작된 그의 초기 저술 활동은 육경, 특히 신명기를 다루었다. 그의 연구 저작물들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출판되었으며, 구약성서의 역사전승과 예언전승, 지혜전승, 역사비평적인 재구성 작업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 등에 관한 주석, 책, 논문, 서평, 사전 항목 등등이 그에 포함되었다.

   오늘날 구약학을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폰 라트는 30년 정도에 걸친 강의, 연구, 저술 등의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 두 권으로 된 자신의 기념비적인 저서 「구약성서 신학」(Old Testament Theology, 독어판 1957, 1960)을 출판하였다. 이렇듯이 옛 거장들의 전통에 선 그의 방대한 저술은 원숙한 학문적 성찰의 결과로 생겨난 것으로서, 거의 일생에 걸친 자신의 전승사적인 구약성서 연구를 잘 요약하고 있다.

   폰 라트의 구약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것의 양식비평적이고 전승사적인 기본 전제들과 기초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Knight 1973:97-142; 124 쪽에서 인용함). 전통적인 하나님-인간-구원의 구약신학 도식과는 대조적으로 폰 라트는 전승사적인 구약신학을 독창적으로 개척하였다. 그의 구약신학은 그 방법과 본질에 있어서 통시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그는 구약성서가 “중심점”(Mitte)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였다.

․전승들의 신학

   폰 라트의 구약신학 제1권의 부제는 “이스라엘 역사적 전승들이 신학”이다. 2권은 예언적 전승들의 신학이다. 이렇게 “전승들”이라 복수를 쓴 것과 “전승”이란 말이 그의 신학의 본질을 말해준다. 전승의 신학이며, 계시의 신학이 아니다. 더구나 전승들의 신학이지 한 전승의 신학도 아니다. 성경에서 통일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폰 라트의 생각이다.

   폰 라트는 구약, 특히 오경에 대한 문헌비평(문서설)이 철저한 비판을 부분적으로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승사 비평의 견지에서 볼 때 미비한 점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서비평으로 오경은 주요 문서들로 구분되었다(J. E, D, P). 이런 문서 중에서 가장 이르다고 여겨진 ‘J'도 왕국시대 초기에 나타난 것이기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을 사건들이 일어난지 300년 이후에야 묘사한다. 이러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벨하우젠으로 대표되는 문서비평은 문서들이 제시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모습, 특히 애굽에서 노예생활, 시내산 체험, 광야 여정, 가나안 입성 등의 사건들이 직선적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즉, 현재 있는 문서들의 배후에서 우리는 역사적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전승사 비평은 이런 신뢰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폰 라트에 의하면, 육경에 제시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뢰성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육경이 문서설이 제시하듯 몇 개의 문서들로 구성되었다 해도, 그 문서 자체도 이전의 여러 복합적이고 서로 모순적이기도 한 여러 전승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식비평은 그러한 전승들의 존재를 전제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문서설이나 양식비평이 물었던 질문과 전승사 비평이 묻는 질문이 서로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 전승들 배후에 어떤 역사적 요소들이 놓였는가? 였지만, 이제는 이 전승들을 누가 보도하며, 어떤 견지에서 보도하는가? 보도자의 역사적,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가? 등이다. 이러한 질문의 배후에는 보도된 기사들이 보도자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놓여있다. 이는 이해할만한 자세이다. 그러나 전승사 비평가들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자기 견지에서 얼마든지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 입장을 개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폰 라트에 의하면, 육경 (그는 여호수아를 오경의 연속이라 본다)을 구성하는 J나 E문서는 자체로도 여러 전승들로 구성되었고(예컨대, 족장사, 애굽체류, 시내산 사건들, 광야 여정, 가나안 입성 등), 이 전승들은 역시 자체로 여러 가지 전연 독자적이었던 내러티브 단위들을 담고 있다. 이 내러티브 단위도 자체로 오랜 전승이 과정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현재 있는 모습이 나타나기까지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런 저런 입장과 견해들이 반영되어 수정되고, 첨가되고, 삭제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고착이 되었다. 현재의 모습을 탄생시킨 그 편집자는 자기 당대인들에게 전할 메시지로서 그 내러티브를 적절하게 적용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한 내러티브를 파악할 때에도 우리는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다. 내러티브 단위들은 원래 서로간에 완전히 독자적인 과정을 통해서 전달되어 왔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 내러티브들이 한 전승의 단위로 병합이 되고 흡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육경을 현재적인 모습으로 편집한 신학자(들)는 자신이 모은 그 전승들이나 그 전승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나 자기 당대에서 멀리 떨어진 과거였기에 정확하게 어떤 순서로, 어떤 인과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었는지 파악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현재의 역사 순서들-출애굽, 시내산, 광야 여졍, 가나안 정착 등-로 맞추어 졌던가? 그것은 폰 라트에 의하면 지방 성소들에서 신앙고백으로 낭송되던 고백문들이라 한다. 이 고백문은 신26:5b-10; 6:21-25; 수24:2b-13 등에서 나타난다. 이런 신앙고백문이 성소들에서 낭송되어 왔는데 이것을 근거로 시대마다 혹은 다른 장소들에서 약간 변용해서 사용했다 한다(삼상12:8; 시136, 135, 105; 출15 등이라 한다). 이 신앙고백문에서 중요한 것은 시내산 전승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전승은 추방이후에야 첨가되었다(느9장의 예). 정착 전승은 길갈의 77절에 낭송되었다면, 시내산 전승은 세겜에서의 언약갱신 의식에서 낭송되었다. 이렇게 원래 지방성소에서 낭송되던 고백문을 나중 여호와기자가 가나안 정착 전승과 시내산 전승을 합하고, 족장사, 원시사 등과 합하여 역사의 뼈대를 구성했다 한다.

 


․방법론적 고려: 역사-비평법

   이렇게 역사적 신빙성과 거리가 먼 자료들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비평가들은 이런 자료들을 그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현대의 역사관이 말하는 원리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이스라엘 역사와 현대의 비평적 연구가 제시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서로 상충한다. 하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다른 하나는 주관적이고 신학적이다. 역사-비평법이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할 때 방법론으로 활용된다. 그 세 가지 원리는 트뢸취의 역사적 방법론과, 교조적 방법론이란 글에서 고전적 예를 드러내었다(OT Theology, Ⅰ,107, n.3).

   1)비평원리(the principle of criticism or methodological doubt), 2)유추의 원리(the principle of analogy), 3)상관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correlarion)등. 이 세 원리 중에서 마지막 두 원리들은 역사란 서론 인과-원인의 관계로 고리를 연결되고 있는 까닭에 초자연적인 지적이 자리할 여지가 도무지 없으며(상관성의 원리), 현재 일어날 수 없는 일은 과거에도 생각할 수 없다는 소위 “전능한 유추의 힘”을 가리킨다. 이런 역사관은 기독교의 본질과 정면 상충되는 입장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니 그분의 역사개입(기적)을 배격한다. 폰 라트는 바로 이런 트뢸취의 원리를 신봉하는 현대 역사비평이 재구성한 이스라엘의 역사야말로 우리의 구약신학의 근거라고 했다. 폰 라트의 구약신학과 상응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모습은 마틴 노트의 「이스라엘 역사」이다.

   이렇게 원리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개입을 배제하는 역사비평법들이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 순전히 이성적으로 여타 문헌과 동일한 것으로 성경을 전제하고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이 김정준이 말하는 진지하고 순수한 학문자세를 대표할 수 있겠는가? 역사비평법은 초자연주의를 배격하고 순전히 이성적인 판단을 강조하면서 이것만이 가강 객관적인 학문적 자세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역사비평법이 순전히 객관적인 입장인지는 H. G. Gadamer(1982)나 폴 리쿼(Paul Ricouer)(1980) 같은 철학자들은 객관적 이성은 없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 허구성이 폭로되었다. 역사비평학주의도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계몽사상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전통 혹은 철학에 주관되는 편견적인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족장시대의 종교

   비평가들에 의하면, 족장시대의 종교는 여러 지방성소들에서 섬기던 잡신들의 종교였다. 이 성소들에서 각기 나름대로의 신을 섬겼고,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을 낭송하고 있었다. 그 신앙고백은 그곳에 나타난 어떤 신비한 경험과 연관되었다. 그것이 과장되고 미화되어 그럴싸하게 신앙고백문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고백문들이 다윗시대에도 계속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다윗의 궁정 사가가 모아서 J문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특히 알브레히트 알트의 족장들의 하나님이란 글이 폰 라트의 입장에 영향을 주었다(Old Testament Theology, Ⅰ, 7ff.).

 


․이스라엘의 신앙이 고백한 진술

   이상에서 언급된 바이지만, 폰 라트의 신학은 이스라엘의 영적 종교적 세계나, 그들의 영적 상태를 추구하고자 아니한다. 그에 의하면, 구약신학은 오로지 이스라엘이 여호와 신앙고백한바를 그 대상으로 추구해야 한다. 즉, 구약신학은 케리그마를 찾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제시하는 진술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듣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구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는다는 입장이다. 얼핏 보기에 그럴듯하다. 폰 라트에 의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약을 재 진술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폰 라트가 그의 신학에서 하는 일이란 구약을 재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신명기는 모세가 모압들에서 가나안에 막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는 메시지인데도 폰 라트는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들>

1962   Old Testament Theology. 제1권: The Theology of Israel's Historical Traditions.          David M. G. Stalker 옮김. New York: Harper & Row/Edinburgh: Oliver & Boyd.

1965   Old Testament Theology. 제2권: The Theology of Israel's Prophetic Traditions.           David M. G. Stalker 옮김. New York: Harper & Row/Edinburgh: Oliver & Boyd.

 

 

 

에드몽 자콥(Edmond Jacob, 1909년생)

하나님의 영과 말씀

 


<주요 약력>

․자콥은 프랑스의 베블렘하임에서 1909년에 태어남.

․목사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슈트라스부르와 파리, 예루살렘 등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 후에는 두 교구를 맡아 목회사역에 종사함.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구약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1946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같은 직위를 가짐.

․이스라엘 역사, 우가릿(Ugarit), 구약성서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였으며, 예언자들을 다룬 논문도 다수 있음.

 


<신학적 개요>

   자콥의 「구약성서 신학」(1958)은 그 나름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구약신학의 범위를 하나님의 관한 설명으로 한정시켰다. 자콥은 그의 주권에 명백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자로서의 그의 활동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활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었다. 자콥에게 있어서 이러한 요소는 계약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약보다 앞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신학에 대한 에드몽 자콥의 접근방식

   구약신학은 구약 전체에 걸쳐서 발견되는, 깊은 차원에서의 통일성을 형성하고 있는 특정한 종교적 개념들에 대한 체계적인 성명으로 정의될 수 있다. 구약의 본문이 아니요 구약의 신학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구약을 신약의 신학으로 해설하는 것이다. 즉, 의미는 사건에 있지 아니하고 해석에 있다. 그럼으로 신약은 구약의 한 신학이다.

 ①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유일성, 신인동형론.

 ②구약에 따른 하나님의 행위: 그 목표는 생명을 보존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의 도구는    “영과 말씀”이다.

 


<주요 저서들>

1958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Arthur W. Heathcote and Philip J. Allcock 옮김.         London: Hodder & Stoughton/New York: Harper.

 

 

 

존 L 맥켄지(John L. Mckenzie, 1910-1991)

제의

 


<주요 약력>

․맥켄지는 인디아나주의 테르 오트에서 태어나서 자랐음.

․캔사즈 주와 오하이오주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웨스톤 칼리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음.

․1939년에 신부서품을 받았으며, 인디아나 주의 웨스트 바덴(West Baden)에서 19년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로욜라 대학, 시카고 대학, 노틀담 대학, 시카고의 드폴(DePaul) 대학 등지에서 가르침.

․사교성이 좋고 재치가 많은 그는 때때로 교회의 권위에 상당히 거칠게 도전하였다.

 


<신학적 개요>

   맥켄지 신부는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볼 때 로마 카톨릭의 구약신학은 본질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교본과 마찬가지로 철학적 신학 내지는 조직신학-교의신학의 기본주제들을 따르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저서는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개요를 벗어난 최초의 카톨릭 작품으로서, “문서적인 기록을 통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체험한 방식”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제의, 여호와의 권위있는 대변자를 통한 계시, 역사, 자연, 지혜, 제도 그리고 이스라엘의 미래와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맥켄지가 주제를 선택하는 주요 원칙은 본문에 얼마만큼 보도되었으며, 또 이스라엘이 얼마만큼 체험하였는가에 있다. “여호와에 관한 모든 성서적 체험,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모든 조각이 똑같은 깊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얼마만큼의 체험을 했느냐 하는 것으로 이 구별을 짓는 것이다.”

   방법론상으로 볼 때 맥켄지는 구약성서를 일정한 틀과 구조에 맞추어 서술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까닭은 구약성서가 일정한 체계를 자신의 주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재, 곧 여호와를 핵심주제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경험이야말로 구약성서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구약성서 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여호와에 관하여 서술하는 그러한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구약신학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구약성서가 신약성서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까닭은 “구약성서가 기독교의 책이 아니기”(1974: 320)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구약성서를 기독교화하는 방식에 의해서는 결코 구약성서에 대한 연구가 발전할 수 없었다”(1974: 268). 그리하여 그는 마치 신약성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입장에서 구약 신학서를 저술했다.

   그는 신학은 제의(축제, 희생제사, 성전, 성소, 제사장 등)와 더불어 시작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여호와 경험은 제의를 통하여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는 제의를 포함한 주요 주제들을 논함에 있어서 종종 이스라엘의 신앙을 고대 근동에 있는 주변 나라들의 신앙과 비교하였다(예, 1974: 68, 76, 85, 132, 185). 이러한 방식으로 하여 그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경험이 갖는 독특성에 더욱 확실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예로써 그는 계약법의 전통이 “고대 종교들에 그 유례가 없는” 것이며,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미래지향성은 참으로 평행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974: 70, 268-69).

   이스라엘은 또한 계시적인 배경을 갖는 것들, 이를테면 예언(제의 예언자들, 궁중 예언자들, 문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여호와를 경험하였다. 신화와 대립되는 역사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경험하는 또 하나의 무대였다. 이로써 맥켄지는 약속과 성취 및 여호와의 구원/심판 행동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자연”과 “지혜”에 대해서도 취급하였다. 왜냐하면 이 둘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경험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가 사용한 방법론은 전체적으로 볼 때 교리를 설명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도리어 맥켄지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경험들에 관심을 기울였다(1974: 135-36). 그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희망과 관련된 상이한 형식들의 발전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1974: 270), 변화하는 개념들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여호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들>

1956   The Two-Edged Sword: An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 Milwaukee:             Bruce.

1965   Dictionary of the Bible. New York: Bruce/London: Collier-Macmillan.

1974   A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발터 침멀리(Waiter Zimmerli, 1907-1983)

하나님 앞에서의 삶

 


<주요 약력>

․침멀리는 1907년에 스위스의 쉬어스(Schiers)에서 태어남.

․취리히와 베를린, 괴팅엔 등지에서 신학과 셈어를 배웠으며, 수년동안 아르부르크(Aarburg)에서 개혁교회 전통에 선 목사로 봉사함.

․1935년에 그는 취리히 대학에서 구약성서, 종교사, 근동언어 등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함. 1951년에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긴 폰 라트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괴팅엔 대학으로 옮김.

․1975년 은퇴하여 1983년 12월 4일에 스위스에서 운명함.

 


<신학적 개요>

   괴팅엔 대학의 교수였던 침멀리는 알트, 노트, 폰 라트, 베스터만 등과 함께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구약 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는 성서신학계에서 특히 문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등의 도구를 사용한 뛰어난 주석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러한 재능은 두 권으로 된 에스겔 주석에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1979, 1983).

   구약성서의 중심점을 인정하지 않는 폰 라트와 계약개념을 중심점으로 본 아이히로트, 그리고 “친교”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구약신학을 서술한 프리젠 등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침멀리는 구약성서에 중심점이 있다고 본 아이히로트와 프리젠 등에 동의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살아계신 분, 자유로우신 분이신 여호와”야말로 구약성서의 중심점이라고 주장했다(1985: 9). 그에 의하면 “구약신학”은 구약성서가 통일성을 가진 전체를 이루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들을 서술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1978: 12). 이처럼 중심점을 지향하는 서술적인 침멀리의 구약신학은 전승사적이고 통시적인 방법론(Von Rad, Hartmut Gese)을 비롯한 다른 방법론과의 대조를 이룬다. 침멀리는 이스라엘의 시작인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모세 이전 시기의 하나님 상(像)에 대해 서술하는 일은 “이스라엘 종교사의 과제”에 속한다(1978: 28).

   침멀리는 그의 신학을 하나님의 이름, 또는 “나는 여호와다”라는 자기 주장을 중심으로 엮어 간다. 그에게는 여호와가 중심적 초점이며, 구약성서 증거의 내적이며, 권위적인 지속성을 제공하는 것이다(14쪽). 그러므로 그의 책 첫 장은 오경에 나타난 여호와의 계시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의 선물과 계명에 대한 장이 따른다. 선물과 계명을 받은 다음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지혜로 분석하여, 폰 라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 응답의 일부로 본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장인 위기와 희망은 인간의 실패로 빚어진 인간생활에 닥친 위기에 대한 여호와의 반응을 통해 “여호와의 성품을 완전히 드러낸 궁극적인 깊이”를 묘사하는데, 그 반응은 심판과 구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침멀리의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강조점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현대 해석사 중 침멀리만큼 “신학”(theology)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취급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주요 저서들>

1978   Old Testament Theology in Outline. David E. Green 옮김. Atlanta: John Knox/          Edinburgh: Clark.

1979-83  Ezekiel: A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Prophet Ezekiel. 1-2권. Ronald E.          Clements and James D. Martin 옮김. Frank M. Cross, Klaus Baltzer, Leonard J.          Greenspoon, and Paul D. Hanson 편집.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로널드 E 클레멘츠(Ronald E. Clements, 1929년생)

율법과 약속

 


<주요 약력>

․클레멘츠는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각각 런던의 스펄전 대학과 케임브리지의 그리스도 대학에서 받음.

․1961년 셰필드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셰필드와 스트라트포드에 있는 침례교회들에서 목사로 시무함.

․그의 교직생활은 에딘버러의 뉴 칼리지(1960-67)와 케임브리지 대학(1967-83)에서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런던 대학교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의 구약학 교수로 있음.

․다수의 주석을 썼는바, 그 중에서 출애굽기, 이사야1-39장, 예레미야 등의 주석서가 유명함.

 


<신학적 개요>

   클레멘츠의 「구약성서 신학」(1978)은 “새로운 접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새로운 접근”은 두 가지의 질문을 포함한다: 누가 구약성서를 가장 많이 활용했으며, 어떻게 활용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두 집단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구약성서는 정경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대인들이 구약성서를 무엇보다도 토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무엇보다도 약속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두 집단에게 있어서 구약성서는 율법과 약속의 책이다. 따라서 구약성서 신학은 율법과 약속이라는 이중 개념을 중심적으로 갖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럴 경우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대화가 쉬워질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또 다른 “새로운 접근”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것은 히브리 정경의 두 기본적인 부분인 율법(토라)과 예언(약속)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이 두 주제의 변형 형태인 성문서를 아울러 고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클레멘츠는 “구약 정경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 주지 못하는 구약신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1976: 131). 클레멘츠는 차일즈와 마찬가지로 정경 개념을 새로운 요소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그것을 계속 탐구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주제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구약성서의 통일성을 강조하면서도 그러한 통일성을 계약이라는 단일 주제에 초점을 맞춘 아이히로트의 방법과는 다른 형태로 전개하였다. 클레멘츠는 구약성서를 변증법적인 또는 타원형적인 양극 개념을 통해서 종합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구약을 율법과 예언서 및 성문서(torah, nabiim, ketubim)인 삼층의 권위 구조로 세분되는 것은 그 구성에 있어 정경성의 주역할을 잘 나타낸다. 그 중에도 신명기가 중심이 되는 율법은 정경의 기초가 되었다. 신약성서는 시편82:6을 인용할 때,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라는 표현을 쓴다(요10:34). 이처럼 구약성서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조차도 “율법”의 범주에 속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정경의 첫 번째 부분의 우선 순위와 중요성이 다른 두 부분들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임을 보여준다.

 


<주요 저서들>

1976   One Hundred Years of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Philadelphia: Westminster.         [영국판: A Century of Old Testament Study(Guildford/London: Lutterworth).]

1978   Old Testament Theology: A Fresh Approach. New Foundation Theological               Library. London: Marshall, Morgan & Scott/Atlanta: John Knox.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 Jr, 1932년생)

약속

 


<주요 약력>

․일리노이 주에 있는 휘튼 대학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카이저는 브란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에서 지중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음.

․휘튼 대학에서 8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64년 이후로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음. 현재는 그곳에서 학장겸 교무 부총장으로 있으면서 셈족언어들과 구약성서를 가르치고 있음.

․그는 몇몇 주석들을 검필하였으며 성서신학과 성서해석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그는 미국에 있는 복음주의 자유 교회의 안수 받은 목사이다.

 


<신학적 개요>

약속의 신학

   카이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일 주제는 약속의 신학이다. 카이저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서 “구역신학을 향하여”(Toward an Old testament)에서 이 주제에 집중하였다. 간략히 말하자면, 약속의 신학은 인류에게 전달된 거룩한 옛 약속의 발전 과정을 통해 성경의 중심 주제의 구조를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약속의 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과 중요한 시대들에 집중하면서 시작한다. 카이저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는 역사가 “연결된 사건의 연관성을 보여 주며, 그 내용, 상호 암시들 및 그 조직적 통일성으로 말미암아 중요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카이저는 성경 역사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와 민족과 자연을 향해 자유로이 행하신 “신적 축복”. “전달된 말씀”, “선언”, “약속” 혹은 “맹세”라고 주장한다. 이 성경역사의 내용은 타락한 세상을 다루며, 사탄을 심판하며 구속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를 보여주는 단일 구속사를 통해 계시된다. 이 구속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여전히 그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미래에 관한 “약속의 말씀” 혹은 “맹세”를 제시하는 “계시의 사건들”을 통해 역사해 오셨다. 그러한 사역들과 말씀들은 “인간의 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며, 동시에 이러한 방식을 통해 미래 세대에도 중요한 의미를 안겨다 줄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약속의 역사는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따른다. 이러한 약속의 역사는 발전과 개선의 과정을 통해 펼쳐진다. 카이저는 약속의 역사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의 점진적인 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약속의 특징들이 각 역사의 단계마다 동일 방식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약속은 변하지 않지만 그 약속의 표현 형식과 명료성은 변한다. 약속의 발전은 수목 혹은 나무의 성장과 같다. 약속은 하나의 단순한 씨로 시작한다. 본질적인 약속의 모든 특징들은 이 씨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특징들은 성장하여 결실을 이루어야 한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세월이 흐르면 약속의 국면들은 구체적인 개념과 사상으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오직 역사의 발전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의 완전한 실현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의 한 메시아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 혹은 위기의 통치 시대를 맞이한 한 역사적 왕에게 주어진 맹세와 같은) 약속의 원 특징들을 내포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한 본문 속에 약속의 말씀을 보게되며, 그 성취가 장차 역사에 나타날 하나님 사역의 한 전조가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카이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하려면 그 발전 과정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속의 역사의 각 단계들은 계시의 점증적인 단계를 보여 준다. 각 단계들은 이 선행하는 계시의 단계 위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약속의 역사의 과정 속에는 각 새 단계의 적절한 맥락을 제공해 주는 이전 계시들이 존재한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이전 성경 곧 모세 오경의 계시 위에 기초하였다. 카이저는 성경 신학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일련의 축적된 전문적, 신학적 표현으로 주해를 제공하며,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역사에 나타난 핵심적인 중요 사건들을 밝혀내며, 하나님의 통일된 핵심 사상 주변에 깔려있는 일련의 개념들-이것들은 그 시간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따른다-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 구약, 혹은 구약에 기록된 역사는 신약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하고도 알맞은 맥락을 제공해 주었다. 신약을 구약의 성취로 이해할 때 우리는 신약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카이저의 「구약성서 신학」(1978)의 주용 내용

제1부: 개념 정의 및 방법론(1-69)

제2부: 구약신학을 위한 자료들(71-261)

   약속에 대한 서설: 족장 이전 시대(71-83)

   약속을 위한 준비: 족장 시대(84-99)

   약속의 백성: 모세 시대(100-121)

   약속의 자리: 왕정 이전 시대(122-142)

   약속의 왕: 다윗 시대(143-164)

   약속 안에 있는 삶: 지혜자들의 시대(165-181)

   약속의 날: 주전 9세기(182-191)

   약속의 종: 주전 8세기(192-219)

   약속의 갱신: 주전 7세기(220-235)

   약속의 왕국: 포로기의 예언자들(236-249)

   약속의 승리: 포로기 이후 시대(250-261)

제3부: 신약신학과의 관계(263-269).

 


<주요 저서들>

1978   Toward an Old testament The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81   Toward an Evangeliacl Theology: Biblical Exegesis for Preaching and Teaching.         Grand Rapids: Baker.

1983   Toward Old Testament Ethics.  Grand Rapids: Zondervan.

1987   Toward Rediscovering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새뮤얼 테리엔(Samuel Lucien Terrien, 1911년생)

감추어진 현존

 


<주요 약력>

․테리엔은 1927년부터 1933년 사이에 파리에서 공부했으며, 1933-34년에는 예루살렘의 예꼴 비블리크(Ẻcole Biblique)에서 공부함.

․파리에서 그는 도즈메(Ẻduard Dohrme)밑에서 공부하면서 평생동안 그와 함께 욥기에 관심을 기울임.

․1935년부터 1941년까지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함. 오하이오 주의 우스터 대학(Wooster College)에서 1936년부터 1940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그 후로 은퇴하던 1976년까지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교수로 일함.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개혁 전통에 서 있다. 그의 활동은 성서와 고대세계 및 현대세계의 지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바, 특히 욥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편과 욥기에 대한 단행본과 주석서들을 출판했으며, 성서적이고 신학적이며 문학적인 주제들에 대한 책들과 논문들을 집필하였다.

 


<신학적 개요>

   테리엔은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성서신학으로 봐야하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성서신학으로 통합되어 있음을 고찰한다.

   변증법적 관심을 활용한 또 하나의 저서는 테리엔의 신학인데, 그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심적 주제, 또는 안목을 “하나님의 임재”로 보면서, 이것이 “성서 신앙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그 임재는 가리워진 것이다. “임재신학의 중심점을 시인하며,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의와 신앙간의 통합적인 상호관련성을 이해하는 것이 성서 종교 연구의 새로운 접근법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1978: 4). 테리엔에게 있어서 제의와 임재는 계약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다.

   “계약의식이 아닌 히브리의 임재 신학이 성서 역사의 여러 세기에 걸쳐 이스라엘 족장들, 개혁을 부르짖는 예언자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 시온의 시인들, 욥기의 시인,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을 서로 묶어 매는 힘이 된 것이다. 성서 종교의 역사는 히브리 임재 신학의 성장과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다.”

   테리엔은 구약성서 안에서 하나님 임재에 관한 주제를 족장들을 방문한 신현현, 시내산의 신현현, 성전에서의 임재, 예언자의 환상, 임재의 찬송, 지혜의 응답, 그리고 최후의 신현현 등으로 설명한다. 그의 토론을 통해 우리는 양극성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뛰어난 것이 윤리적/심미적이며, 그 밖에 귀/눈, 북/남, 이름/영광, 감정/사고 등이다. 아래의 인용은 그가 자료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호와 순수주의자들은 아모스로부터 예레미야에 이르는 위대한 예언자들의 후계자이며, 또 신명기 사가에 의해 모세의 신현현, 회막과 성전 등의 특수 전승 분석을 통해 이름을 들음으로써 임재를 확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와 반대로, 유다는 여호와 설화자로부터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에스겔 및 그의 학파에 이르기까지 모세의 신현현, 법궤, 성전 등의 특수 전승을 분석함으로써 영광을 보며, 그것을 통해 임재를 확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청각을 통해 임재를 학인하는 것은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윤리적인 행위와 사회 정의에 대한 열정이 강조되는 것이다. 반면, 시각을 통한 임재의 확인은 교제의 제의적 행위, 속죄의 제사, 성만찬 그리고 신비적 명상 등에 관심을 두게된다. 이 경우는 사회적 도덕성보다는 정확한 제의를 더 강조한다. 포로기 이후의 유대종교는 시온 신화의 영향을 입어서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켰으나, 많은 유대인들은 이 방법에 그냥 남아 있기로 작정을 하였으며, 그래도 그들은 조상의 신앙을 지켰다. 예루살렘의 성전 이외에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신학의 갈등을 낳게 하였다.

 


   그의 신학체계 안에서 지혜를 가장 잘 통합시키고 있다. 그는 지혜가 토라와 예언자들 사이의 미해결된 간증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토라에 나타난 모세의 현현과 예언서와 묵시문헌에 나타난 최후의 현현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역사 안에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지혜를 통해서 감추어진 하나님은 임재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1981: 137). 테리엔은 지혜를 통해 변증법의 주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격화된 지혜는 귀의 응답을 요구하는 이름의 신학도 불러들이며, 또 눈의 응답을 요구하는 영광의 신학도 불러들이는 것이다”(1978: 473). 끝으로, 지혜는 구약성서에서 신약성서로 옮겨지는 열쇠가 되며, 남성과 여성간의 변증적 대립을 조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테리엔의 「포착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임재」(1978)의 주요 내용.

성서신앙에 있어서 제의와 신앙(7-62)

족장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63-105)

시내산 현현(106-160)

성전 임재(161-226)

예언자들의 환상(227-277)

임재 시편(278-349)

지혜의 활동(350-389)

마지막 현현(390-409)

말씀으로서의 임재(410-447)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448-483)

 

<주요 저서들>

1978   The Elusive Presence: Toward a New Biblical Theology. Religious Perspectives         26.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1   The Play of Wisdom: Turning Point in Biblical theology.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3: 125-53.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 1910년생)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자비

 


<주요 약력>

․2차대전 기간동안에 베스터만은 독일군으로 근무하였고, 전쟁포로로 역류되어 있는 동안에 그는 구약성서의 심미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시편에 있는 찬양의 주제 쪽으로 관심의 방향을 정함.

․그 후, 튀빙엔, 마르부르크, 베를린 등지에서 공부했으며, 박사학위는 취리히(Zurich) 대학에서 취득함.

․루터교 목사로 봉사한 베스터만은 베를린 대학의 신학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함. 1958년에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겼으며, 그 후 계속해서 구약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으며, 지금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신학적 개요>

   베스터만은 변증법적 구조나 대칭구조를 사용한다. 그러한 접근법은 베스터만에게서 나타나는데, 그의 저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동료인 폰 라트와 마찬가지로 양식비평, 전승사비평, 그리고 바르트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 그에게서 구조적 연구에 대한 짙은 관심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구약성서의 기본적 구조를 “이야기”로 보아 “구약성서 신학의 구조가 개념보다는 사건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동사의 구조가 명사의 구조를 지배해야 한다. 그의 토론 중 변증법적인 측면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을 들려주지만, 동시에 말, 행동, 찬양 그리고 고백을 통한 인간의 반응도 포함한다. 예언서는 심판 신탁과 구원 신탁의 구조로 형성되었다. 인간의 응답인 시편은 탄식과 찬미를 포함하고 있다. 베스터만은 지배적인 변증법을 구속과 축복, 또는 역사와 창조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위의 전자는 여호와가 구원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고, 후자는 섭리라고 부를 수 있는 여호와의 꾸준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양극이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역사” 그리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과 창조”란 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 그리고 끝에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보존 행위의 양극성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응답을 다루고 있다.

   베스터만은 지혜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혜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또 원래 세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구약성서 신학 체계 안에 그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구약신학의 구조가 갖는 체계적인 측면은 중심적이나 중심주제(이이히로트나 프리젠)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변증법적인 상호관계에 있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함과 동시에 인간의 응답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본문을 중심으로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변증법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신학적 의미를 고찰한다.

 


<주요 저서들>

1979    What Does the Old Testament Say about God? Friedemann W. Golka 편집.              Atlanta: John Knox/London: SCM.

1980b  The Psalms: Structure, Content and Message. Ralph D. Gehrke 옮김.                     Minneapolis: Augsburg.

1982    Elements of Old Testament Theology. Douglas W. Stott 옮김. Atlanta: John              Knox.

1984-86  Genesis: A Commentary. 전3권. John J. Scullion 옮김. London: SPCK/                   Minneapolis: Augsburg.

 


베스터만의 「구약신학의 요소들」(1982)의 개요.

구약은 하나님에 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9-34)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역사(35-84)

축복하시는 하나님과 창조(85-117)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긍휼(118-152)

응답(153-216)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217-232)

 

 

 

엘머 마르텐스(Elmer A. Martens, 1930년생)

땅과 삶의 양식

 


<주요 약력>

․캐나다 사람인 마르텐스는 신학자 학위를 캘리포니아의 프레스노(Fresno)에 있는 메노나이트 형제 성서 신학교(Mennonite Brethren Biblical Seminary)에서 받았으며, 이곳에서 1970년 이후로 구약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9년 동안 학장직을 수행하기도 함.

․그는 1972년에 성서학-구약분야의 박사힉위를 클레어몬트 신학교(Claremont Graduate School)에서 받았으며 이어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교수생활을 함.

․그는 ‘새 미국 표준성서’(New American Standard Bible)와 ‘새 제임스 왕 성서’(New King James Version)의 번역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다수의 신학용어 사전들을 편찬함.

․그의 예레미야 주석은 그가 구약 편집장으로 있는 ‘신자들을 위한 교회 성서 주석’의 첫 번째 책으로 출판됨.

 


<신학적 개요>

   마르텐스는 지난 50년 동안 성서신학 또는 구약신학에 관여한 복음주의 계통 학자들의 전승에 속한 자이다. 그러한 학자들 중에는 보스(Geerhardus Vos, 1948), 페인(J. Barton Payne, 1962), 레만(Chester K. Lehman, 1971), 다이어니스(William A. Dyrness, 1979), 카이저(Walter C. Kaiser Jr, 1978) 등이 있다. 이들의 저작은 한결같이 복음주의 계통의 신학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마르텐스는 계시(Vos, Lehman), 계약/언약(Payne, 초창기의 Gustaf F. Oehler, Walter Eichrodt 등), 약속/성취(Kaiser) 등의 기본 원리들이 구약신학 작업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역사적인 주석으로부터 신학으로 옮겨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책에서 그는 성서신학이 주석과 조직신학 사이에 있는 서술적인 작업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 자신이 제안한 “통일성의 원리”(1977: 132) 또는 구약성서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계획, 곧 구원, 공동체, 하나님에 관한 지식, 풍성한 삶 등의 네 가지 요소들을 통합하는 계획”(1981: 3)이다. 이처럼 “구약성서 자료들을 하나로 묶는 기본원리는 몇몇 유사한 본문들에 대한 주석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한 본문들 중에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출애굽기 5:22-6:8이다”(1981: 12).

   중심점을 지향하는 이러한 연구방법은 구약성서의 중심점을 성서 본문(출5:22-6:8)에서 찾고자 함으로써, 중심점을 지향하는 연구방법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마르텐스가 얘기하는 네 가지의 요소들은 구약성서에 있는 자기 백성의 미래를 위해 여호와께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르텐스는 “서술적인” 방식을 취하고자 하며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왕정 이전 시대, 왕정 시대, 왕정 이후 시대 등의 셋으로 나눈다. 그는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할 때마다 마지막에 “신학적인 반성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둔다(1981: 59-64, 154-56, 187-89, 234-36, 247-48). 이것들은 성서의 메시지들과 관행들을 오늘의 세계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연결하는 모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점은 마르텐스의 연구 방법을 서술적이면서 동시에 규범적인 것이 되게하며, 그의 신학을 ‘구약신학 서론’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

   마르텐스는 다른 많은 구약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구약성서를 넘어 신약성서로 옮겨가는 작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이 갖는 네 가지 핵심요소들을 마태복음과 로마서에서 찾아내고자 함으로써 그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그는 네 가지 요소들이 특별히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안에서 성취되었지만, 역사를 넘어서는 영원의 차원에서는 “그 계획이 대단히 분명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하게 인식되기도 한다”고 본다(1981: 260).

 


마르텐스의 「하나님의 계획: 구약신학의 중심」(1981)의 주요내용.

제1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설명

   여호와와 그의 계획을 다루는 핵심부분(11-24)

   하나님의 계획을 예견케하는 초기의 언급들(25-35)

제2부: 하나님의 계획의 실행: 왕정 이전 시대

   하나님의 계획: 구원(36-64)

   하나님의 계획: 계약 공동체(65-79)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에 관한 지식(81-96)

   하나님의 계획: 땅(97-115)

제3부: 하나님의 계획이 겪는 시련: 왕정 시대

   서론: 호세아 2:14-23(119-123)

   구원(124-139)

   계약 공동체와 새로운 직분자들: 왕들과 예언자들(140-156)

   하나님에 대한 경험(157-174)

   생명과 땅(175-189)

제4부: 하나님의 계약의 확증: 왕정 이후의 시대

   서론: 에스겔 34:17-31(193-196)

   구원(197-210)

   포로기 이후 시대의 계약과 공동체(211-223)

   하나님에 대한 경험(224-236)

   땅(237-248)

   하나님의 계획과 신약성서(249-260)

 


<주요 저서들>

1981   God's Design: A Focus on Old Testament Theology. Grand Rapids: Baker. [영국         판: Plot and Purpose in the Old Testament(Leicester: Inter-Varsity).]

1986   Jeremiah. Believers Church Bible Commentary. Scottdale, Pennsylvania: Herald.

 

 

 

브레버드 차일즈(Brevard S. Childs, 1923년생)

정경

 


<주요 약력>

․차일즈는 미시간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바움가르트너(Walter Baumgartner)와 아이히로트가 스승으로 있던 바젤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함(1953).

․그는 1954년에서 1958년까지 미션하우스 신학교(Mission House Seminary)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그때 이후로는 예일 대학교에 있으면서 동 대학의 신학부에서 구약성서 비평학과 해석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함.

․그는 오랫동안 북아메리카의 구약학계와 성서신학계의 수장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그가 저술한 9권의 책들은 한결같이 신학적인 차원을 매우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그는 구약성서 개론과 신약성서 개론, 구약성서 신학, 출애굽기 주석 등을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신학과 해석학 분야의 잡지들에 개별적인 성서본문들과 주제들에 관한 무수한 연구논문을 발표했음.

 


<신학적 개요>

   정경에 대한 새로운 강조와 더불어 일반적으로 “정경 비평”이라 불리워지는 방법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이 접근법은 특히 차일즈와 샌더스(Sanders)에게 연결되어 있는데, 양자간에 차이점은 있으나 일반적인 특색은 다음과 같다. ①본문의 최종적 정경 형태를 산출해 내는 과정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성서연구의 새로운 강조점의 발전과도 유사한 것이다. 그것은 편집비평, 구조비평, 소위 “신비평(new criticism)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본문의 최종 형태를 강조한다. ②1940년대의 예전 ”성서 신학 운동“의 경우에서와 같이 역사 비평적 방법은 채찍질의 대상이 되었으며, 성서 신학을 괴롭히는 모든 것이 모두 그 탓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성서비평에 대한 적대감으로 개신교 성서연구와 신학이 거의 동일시되던 16세기에 대한 동경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③차일즈는 서술적인 과제에 국한되지 않고 교의학과도 중첩이 됨으로써 양자간에 대화가 성립될 수 있는 새로운 성서신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970: 93).

   차일즈는 그의 「성서신학의 위기」에서 자신의 접근법을 제시하며, 출애굽기 주석에서 구체적인 주석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그의 대표작 「정경 개론」을 출판했다. 이 후자는 최근 저서 중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서(JSOT 16호의 특집 서평, 1980, 2-60과 HBT 2, 1980, 113-211과 차일즈의 답변을 보라) 정경적 성서신학의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그는 정경적 신학에 관해서 “정경의 문맥에서 볼 때 본문이 무엇을 뜻했는가와 또 무엇을 뜻하는가는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은 모두 성서를 정경으로 해석하는 과재와 관련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접근법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철의 장막을 세우며, 또 성서를 교회의 정경으로 연구하기에는 부적당한 방법”(1970: 141-142)인 비평적 방법을 비판하는 것이다.

   새로운 성서신학에 대한 차일즈의 제안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정경은 성서신학을 위한 문맥이 되어야 한다(1970: 99-106). ②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포함하는 정경만이 그리스도 교회를 위한 거룩한 정경이 된다. ③“정경은 그것을 귀히 여기는 신앙 공동체에서 갖는 기능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④정경은 “계속되는 교회가 생명을 받는 도구이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교훈하시며 훈계하신다”(99쪽). ⑤성서는 “하나님 실재의 도구”(100쪽)이며, “교회의 정경으로 이해할 때는 하나님이 교회와 세상을 위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기능을 갖는다”(104쪽). ⑥성서 영감의 교리는 새로운 의미를 띠며, 사실상 차일즈는 “성서 신학 운동의 실패 중 큰 요소가 성서 영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05)라고 말한다. ⑦신약성서가 구약성서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보여준다(114-118). ⑧본문의 역사 이전이나 정경 이전 단계, 또는 역사 이후나 정경 이후 단계에 규범적인 역할이 부여될 수 없으며, 다만 정경의 최종 형태만 중시되어야 한다.

 


  정경의 최종 형태를 강조하는 이유는, 정경을 형성하는 요소인 본문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성서본문의 형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만남의 역사를 보여준다. 정경은 이 특수 관계를 기술하는데 봉사하며, 그 과정의 처음과 끝을 설정함으로써 그 범위를 제한한다. 그것은 인간 역사 중 이 특별부분에 특수한 성격을 부여하며 모든 후대의 신앙 공동체에게 규범이 되게 한다. 성서본문의 최종형태의 중요성은 그 부분만이 계시의 전역사에 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내에서는 문헌의 형성과정이나 정경화의 역사도 독립된 특이성을 갖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이 재구성하기도 한다. 성서를 전면으로 규정짓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체험에 대한 증거가 역사적 과정을 재구성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본문 그 자체의 효과에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정경은 이스라엘을 위한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 활동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그 자체는 계시의 수잔이 되지 않는다. 규범적인 역사가 종말에 도달한 최종 형태에서만이 성서본문의 계시적 역사의 완전한 효과를 알 수 있는 것이다(1979: 75-76).

 


   차일즈는 구약신학이 정경적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성경은 교회와 신학의 규범이 된다고 보지만,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적 비평적 연구의 타당성을 옹호하며 성경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각종 문서들이 편집되었다고 이해한다. 즉 차일즈는 성경연구에 있어서 양식비평적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성경연구에 있어서 역사적 비평적 연구방법으로 성경을 재구성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차일즈는 진리의 기준을 성경 밖에다 두고 이 기준에 맞추어서 성경을 재단하려는 것을 반대한다.(최승락, “성경신학의 사명: 구약신학의 관점에서” 「교회와 문화」제5호(2000. 8), 한국성경신학회, 45.)

   그는 성경을 대하는 역사적 방법과 신학적 방법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은 신학적 이유에 의해서 서로 다른 시대의 자료들이 함께 섞여 편집이 되었으므로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정경을 역사적 비평적 방법에 의해 재구성하는 것은 정경의 본래의 의도를 무시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차일즈는 성경의 정경성을 강조하여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이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것이라고 본다.

   제임스 던(James G. Dunn)은 “Levels of Canonical Autholity"(The Living Word, London, 1987, 141-74)라는 논문에서 차일즈가 산발적으로 주장하는 정경의 권위에 대해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시해 준다.

 ①전승사의 단계- 단위적 전승들이 가지는 권위 →정경적 과정(canonical process)에 해당한다. 이는 전승의 단편들이 하나의 책으로 수집되기 훨씬 전에 이미 정경적 권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승들은 계속적으로 전승되어왔고 또한 경우에 따라 재해석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②최종 저자의 단계- 정경적 형성(canonical shape). 여러 전승이 하나의 책으로 모아진 상태에서 한 책의 최종 형태가 가지는 권위를 말한다.

 ③정경단계에서의 권위인데 이는 차일즈의 정경적 맥락(canonical context)에 해당한다. 단 권의 책들이 정경 전체의 맥락 안에서 해석되어질 때 가지게 되는 권위를 말한다.

 ④교회적 단계의 권위인데 이는 차일즈의 정경적 의도(canonical intentionality)에 해당하며 이것의 의미는 정경의 권위가 그것이 형성되던 과거의 역사적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의 믿음의 공동체에 연속되도록 처음부터 의도되어졌다는 것이다.(최승락, “성경신학의 사명: 구약신학의 관점에서” 「교회와 문화」제5호(2000. 8), 한국성경신학회, 45.)

 


   한편으로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신학자들을 볼 때 중요한 제안이기는 하지만 차일즈는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한 예로 오경은 모세가 쓴 것이 아니지만 신학적 이유 때문에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거짓 기록이 되었고 이것은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한 표시를 찾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에 그의 주장의 허점이 있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경의 증언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가 성경을 정말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형태라고 인정한다면 성경의 증언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요 저서들>

1970   Biblical Theology in Crisis. Philadelphia: Westminster.

1974   The Book of Exodus: A Critical, Theological Commentary.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Westminster/London: SCM.

1979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Philadelphia: Fortress.

1984   The New Testament as Canon: An Introduction. Philadelphia: Fortress.

1986   Old Testament Theology in a Canonical Context. Philadelphia: Fortress.

 

 

 

하르트무트 게제(Hartmut Gese, 1929년생)

전승사

 


<주요 약력>

․게제는 서독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그는 1950년대 중반에 에스겔40-48장에 대한 전승사적인 연구를 가지고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으며, 뒤이어 1958년에 구약성서의 지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의 교직경력은 1958년에 독일의 튀빙엔에 있는 에버하르트-칼스 대학의 루터교 신학교에서 시작되었는바, 아직까지도 그는 이 대학에 머물고 있다.

 


<신학적 개요>

   올렌버거(Ben C. Ollenburger), 마르텐스(E. A. Martens), 하젤(G. F. Hasel) 등은 앞으로 진행될 󰡒구약신학하기󰡓(Doing Old Testament Theology)를 󰡒21세기의 구약신학: 앞으로의 작업󰡓(The Way Forward: Old Testament Theology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가지로 전망1)하고 있는데, 그 중 본문에서 다루는 하르트무트 게제를 첫 번째로 다룬다.

 


하르트무트 게제와 구약신학의 전승사적 전개 (구약신학과 신학신학 그리고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관계)

  폰라드의 제자인 게제는 1958년부터 독일 튀빙엔(Tuebingen)의 에버하르트-칼스-대학(Eberhard-Karls-Universitaet)의 루터 신학부 교수로 활약했던 학자이다. 게제는 폰라드의 우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만큼 폰라드의 구약신학을 방법론적으로 계승하면서 구약성서에 수록된 전승의 통시적(역사적) 전개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게제가 생각하는 구약신학의 과제는 원칙적으로 신구약성서의 전승 속에 펼쳐진 계시의 본성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전승이 어떻게 해서 신약으로, 신약의 전승이 어떻게 해서 구약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발전되어 왔는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제가 생각하는 성서신학에서 구약의 가르침은 반드시 신약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서신학적 작업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신약성서는 구약에서 시작되고 발전된 계시의 흐름을 계승하여 그 최종적인 끝마무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제는 조직신학이 성서 본문에 근거해서 어떤 특정 교리를 제공하는 일을 학문하기의 근간으로 삼는다면, 성서신학은 각 본문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학문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즉 구약신학은 구약의 본문을 역사적으로 제시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혜 전승

   구약과 신약의 전승사적 연결에서 게제가 소중하게 보는 것은 구약의 지혜전승이다. 구약의 지혜전승이 구약 전승사의 최종 단계에 있으면서, 구약을 신약과 연결시키는 핵심적인 고리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신약의 기독론이 구약의 지혜전승에서부터 시작된 󰡒인자󰡓(Son of Man)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게제는 이를 위해서 욥기28장, 잠언8장, 벤시락의 지혜서24장의 지혜전승을 통시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주전5세기 후반의 욥기(28장)가 주전4세기의 잠언8장에서 어떻게 변용되어 주전3세기말 벤시락의 지혜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욥기28장에서 지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영역에 있다(욥28:25-27). 이 지혜가 잠언8장이 찬양하는 지혜에서는 인간 세상의 질서(잠8:12-21)와 우주의 질서(잠8:22-31)를 판단하는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전3세가말 벤시락의 지혜서는 지혜의 창조행위를 이스라엘의 구원사의 계시적 작업에까지 확장시킨다. 지혜와 계시가, 창조와 구원이 조화를 이루면서 벤시락에게 가서는 지혜가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온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바로 지혜라고까지 단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게제는 창조의 질서로 여겨지던 지혜(욥28장)가 창조의 질서 속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이해되게 되고(잠8장), 그것이 나아가 하나님의 구속사의 현존으로까지 간주되게 되었다고 본다(벤시락의 지혜서). 그것이 다시 󰡒인자같은 이󰡓가 하나님의 왕권을 대행하게 되는 주전2세기의 메시야 사상(단7장; 에녹의 비유 37-71)을 만나면서 전통적인 다윗-메시야 사상이 인자-메시야 사상으로 수정되게 되고, 배타적이던 메시야가 모든 인류를 위한 메시야로 대체되게 되었다고 본다. 게제는 바로 이런 메시야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개념이 신약의 인자 개념이라고 본다. 예수의 인자 칭호란 구약의 지혜전승의 의미를 극대화시켜 놓은 종말론적 지혜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약의 지혜전승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에 대한 신앙이 생겨났고, 왜 기독론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신학 방법론

   게제에게 있어서 구약신학은 역사적이어야만 한다. 게제는 그의 스승 폰라드처럼 구약성서의 사상세계에서 어떤 중심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약성서는 결코 어느 한 두 사상으로 요약하여 정리될 수 있을 만큼 통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자연히 게제는 방법론상 구약성서의 증언을 조직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게제의 구약신학 방법론은 전승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약성서 해석의 전승사적 추적이다. 전승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추적해 가는 작업이 결코 󰡒교리적인 형태󰡓(doctrinal forms)로 가르치지 않는다. 여호와의 계시는 이스라엘이 헤쳐 나가는 삶의 과정에서만 체험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진리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학문적 방법론은 오직 전승사이다. 전승사적 성서해석만이 이스라엘의 삶 저편에 있는 텍스트의 차원을 추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되풀이하여 말하는󰡓(retelling) 신앙증언을 전승사적으로 설명해 가는 형태야말로 구약성서를 가장 신학적으로 설명한 형태라는 것이다.

 


   게제가 폰라드와 다른 점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에 놓여 있는 연속성(continuity)을 추적하려는 그의 노력에 있다. 게제의 신학적 관심은 구약성서에 머무르지 않는다. 게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하나로 연결되는 신학, 곧 성서신학의 구성을 자신의 󰡒신학하기󰡓의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 이 점에서 게제는 역사 비평적 성서해석의 중요성을, 그 가운데서도 전승사적으로 성서를 읽어간다는 것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신학을 우리에게 학문적 열매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구약성서 안에 흐르는 전승형성의 과정을 너무 획일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전승 쌓기의 현상학󰡓(a phenomenology of tradition-building process)에만 머무르고 만다. 신학은 현상학이 아니다. G. Vos가 그의 저서?성경신학?에서 기록한바와 같이, 성경의 특별계시는 그 역사적 점진성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리고 이 역사적 점진성을 통해 나타나는 성경의 특별계시는 구속사(언약)적 이해와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주요 저서들>

1977a   Tradition and Biblical theology. 301-26쪽 In Tradition and Theology in the Old          Testament. Douglas A. Knight 편집. Philadelphia: Fortress.

1981a   Essay on Biblical Theology. Keith Grim 옮김. Minneapolis: Augsburg.

1981b   Wisdom, Son of Man, and the Origins of Christology.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3:23-57.

 

 

 

월터 브루거만(Walter Bruggement, 1933년생)

 


<주요 약력>

․유니온 신학교(뉴욕)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음.

․모교인 미주리주의 웹스터 그로우브스에 있는 에덴신학교에서 25년 동안 가르침.

․1986년 이후 조지아주의 디케이터에 있는 컬럼비아 신학교에서 고수로 재직하고 있음.

․그리스도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의 안수받은 복사로서, 교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설교자를 위한 잡지」(Journal for Preacher)와 Sojourners지의 공동 편집자로 사역하고 있음.

 


<신학적 개요>

   브루거만은 구약성서 해석의 지평을 시회학적/사회사적 영역으로 넓혀간 학자이다. 브루거만의 출발점은 1970-1990년대를 좌우하였던 구약해석의 두 기둥 중 하나로부터 출발한다. 이 시기 구약 연구 방법론으로 풍미하였던 작업들은 하나는 사회학적/사회사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수사학적/문예학적 비평이다. 브루거만의 구약해석은 이 사회학적 해석을 구약학의 방법론적 토대로 삼는다. 지난 세기의 마지막 30년은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나,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나, 텍스트를 해석하는 공동체에 있어서나 대단히 다양했던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사회학적/사회사적 해석이나 수사학적/문예학적해석은 역사비평 일변도에 머물렀던 구약학 연구에 축을 수정하는 일에 다른 어떤 방법론보다도 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브루거만의 구약신학은 구약성서의 사회학적/사회사적 해석이 어떻게 신학화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좋은 예에 속한다.

   사회사적 관점으로 구약의 말씀을 이해할 때 이스라엘의 신앙은 결코 어떤 추상적인 아이디어들을 모아놓은 결과물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먹고, 입고, 살았던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실체이다.

   삶과 유리된 텍스트란 결코 없다. 삶의 구조를 떠난 독자도 없다. 구약의 독자는, 그렇기에, 구약의 증언과 독자의 해석에서 작용하고 있는 권력(power)과 이해(interest)와 이데올로기(ideology)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신학적 해석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구약신학은 구약의 본문에 소개된 공동체에 의해 선포되고 평가되고 전달되었던 “이야기의 증언”(narrative reality)이 과연 얼마나 규범적 (normative)인지를 상상력(imagination)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부르거만은 창세기 1:1-2:3의 창조기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창세기 1장의 본문에는 어떤 갈등도, 투쟁도, 싸움도, 고민도 없다. 거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질서 있게, 짜임새 있게 창조하셨는지를 선포하고 고백하는 소리뿐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처럼 “예배 의식적인 구도로 조성된 이야기”(liturgical narrative)를 통해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잘 짜여지고, 의지할 만하고, 생산적인 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본문의 세계는 위협과 공포와 갈등이 지배하는 포로기의 현실과는 대조된다. 이것은 창세기의 창조신앙이 포로기의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대안적인 질서의 실체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벨론의 무질서한 세계로부터 벗어나 질서 있는 삶 속에 살 수 있는 희망을 이 창조사건을 고백하는 공동체에게 불어 넣어주고 있으며 이런 창조의 이야기를 예배 때 낭송함으로써 바벨론의 권세/왕권을 불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부르거만의 구약신학은 사회학적 콘텍스트(context)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텍스트를 텍스트되게 한 콘텍스트를 바로 알아야 해석학적 고백을 동반하는 구약신학의 작업을 완수할 수 있다. 부르거만이 강조하는 구약신학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단순한 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구약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몸부림치는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작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르거만의 공헌은 구약성서 안에 흐르는 두 부류의 서로 대립되는 정신사조(trajectory, 궤도)를 부각시키는 데 있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정신사조이다. 하나는 모세의 정신을 전승의 기반으로 삼는 사조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하나님의 자유,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의 변혁을 강조하는 정신이다. 이 정신 속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구약성서 안에서 약자, 가난한 자, 비천한 자를 떠받치고 있는 신앙 기둥이다. 구약성서 저변에 흐르고 있는 약자를 위한 신앙이다. 다른 하나는 왕조의 성립과 왕조의 유지를 전승의 기반으로 삼는 사조이다. 여기에서는 다윗 왕조와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이 강조되고 있다. 이 정신은 기존질서의 유지에 관심을 둔다. 다윗과 그 왕조, 다윗과 그 도성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부르거만은 구약성서 안에는 “두 개의 상호 대립적인 축”(bi-polarity)이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구약신학이 할 일이 무엇인가? 사실 구약성서의 증언 자체는 기존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소용되기도 하고, 소외된 자의 아픔을 감싸안는데 종사하기도 한다. 전자는 일종의 대중적인 신앙 유형이다. 후자는 말하자면 시편의 탄식시 등에 집대성되어 있는 신앙 유형이자 약자의 아픔을 껴안는 신앙 전통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신앙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소수인의 신앙이다.

   부르거만에게 있어서 문제는 이 두 유형의 정신사조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는데 있다. 여기에 부르거만이 털어놓는 구약신학의 과제가 있다. 부르거만이 간파하는 구약신학의 핵심은 후자에 놓여진다. 구약신학이란 이른바 약자의 “고통을 껴안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약신학자는 구약성서 속에서 이 두 사조 사이의 긴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지를 축적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자의 아픔을 어떻게 감싸 안으시는지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르거만의 구약신학하기-그것은 구체적인 사회적 정황 속에서 구약성서의 의도를 읽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거기에 부르거만의 독창적인 신학적 주석이 자리잡고 있다.

 


<주요 저서들>

1972   In Man We Trust: The Neglected Side of Biblical Faith. Richmond: John Knox.

1977  The Land: Place as Gift, Promise, and Challenge in Biblical Faith. Overtures to         Biblical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1984b The Message of the Psalms: A Theological Commentary. Augsburg Old                 Testament Studies. Minneapolis: Augsburg.

 

 

 

존 D. 레벤슨(Jon D. Levenson, 1949년생)

창조와 계약들

 


<주요 약력>

․레벤슨은 하버드 대학에서 고대근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75년에 동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함.

․그는 웰레슬리(Wellesley) 대학(1975-82)과 시키고 대학의 신학부에서(1982-88) 히브리 성서를 가르쳤으며, 1988년에 유대교 연구를 목적으로하는 알버트 리스트 교수(Albert A. List Professor)의 자격으로 하버드 대학에 복귀함.

․레벤슨의 연구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며, 히브리성서에 대한 연구의 방법론, 유대교의 성서해석, 신학 등을 포함한다.

 


<신학적 개요>

   구약성서는 기독교인의 책이기 이전에 유대인의 책이다. 구약성서는, 그것이 구약성서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 전, 유대인들에게 타낙(Tanakh)으로 일컬어졌다. 주후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이후 유대인들은 성전을 대신하여 자기들이 생존할 수 있는 근거를 타낙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는데 두었다. 구약신학의 직업에서 유대인의 아픔과 유대인의 영성을 소중하게 취급해야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대인의 시각에서, 유대인의 경험과 아픔에서, 유대적인 영성의 틀에서 구약성서의 하나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토론해 가는 학자가 하바드 대학교의 교수 레벤슨이다. 레벤슨은 우선 구약성서라는 용어 자체를 강하게 거부한다. 구약성서라기보다는 히브리어 성서로 부르려고 한다. 구약신학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서의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구약신학이 구약성서의 신학으로 남아 있는 한, 기독교인이 수행하는 신학은 여전히 “반 셈족주의”(anti-Semitism)나 “비유대적”(non-Jewish)인 작업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고 경고한다. 레벤슨에게 있어서 진정한 구약신학은 “유대적 성서의 신학”(Jewish Biblical Theology)인 것이다.

   구약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유대인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은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상대역을 맡은 주요 배역이다. 히브리성서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주님이 한 분 여호와이심을 배운다. 거기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익히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레벤슨이 제기하는 질문, ‘왜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이 자리잡게 되는 터전이 된다. 이런 터전에서 레벤슨이 심각하게 문제삼는 구약신학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창조와 계약이다. 레벤슨은 이 둘이 어떠한 점에서 중요한지를 보여주며, 히브리성서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가 어떻게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모두를 위해 그 두 주제를 조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그는 구약신학 안에서의(Within) 대화 및 신학에 관한(about) 대화를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레벤슨은 대단히 유대교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비평적인 성서연구가 때때로 자신이 섬기는 신앙 공동체에 신학적으로 계속 관심을 갖게되는지를, 그리고 그 공동체와 건설적으로 관련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레벤슨의 질문은 “홀로커스트”(holocaust)의 대학살을 경험했던 유대인의 아픔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님이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박해와 시련을 당했다. 유대인들이 당해야 했던 숱한 고통과 수난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이 정의가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심각한 의심을 품게 한다. 레벤슨이 이해하는 히브리성서의 창조신학은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누르시고, 하나님의 권위로 “삶을 지탱하는 질서”(life-sustainung order)를 깔아 놓으셨음을 가르쳐 준다. 레벤슨은 이 때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질서가 “깨지기 쉬운”(fragile)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창조신앙을 고백하는 히브리 성서의 본문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혼돈과의 싸움”(Chaoskampf)을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창조사건의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아니면 신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전제하고 있다(창6-9; 욥38:8-11; 40:25-26; 시74:89; 104:6-9; 사24-27; 51:7-13; 54:7-10; 비교, 창1:1-2:3; 시104). 사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에도 악은 결코 제거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이 경험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가 있다. 하나는 예배 때 고백하는 신앙적 실체이고, 다른 하나는 삶에서 경험적으로 체득하는 깨달음이다. 예배 때 그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고백한다. 그러나 삶에서 그들은 악이 “끈질기게 존재하고 있음”(persistence)을 경험한다. 하나님이 혼돈을 무찌른다는 희망은 신앙고백이다. 이때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우주적 승리를 고백하는 시점이 언제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주적 승리를 얻기 이전인가, 아니면 얻은 다음인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혼돈을 이기신다는 고백을 그런 승리가, 있기 이전에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를 외치고 있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의 참된 의미가 있다.

   레벤슨은 구약의 창조신앙이 인간이 하나님의 주님 되심에 복종하고, 동시에 하나님도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장치로 받아들인다. 유일신 하나님 신앙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 있는 것이다. 창조신앙이 전하는 유일신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모든 신의 주관자이심을 공포한다. 하나님 외에는 주님이란 없다. 하나님의 창조와 함께 등장하는 하나님의 언약은 피조물 된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께 변함없이 충성할 것을 요구한다. 언약으로 맺어진 사랑이안 우리를 다른 신에게 빠지는 유혹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다. 유일신 신앙과 언약 신앙이 하나되어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공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철저히 예배 때마다 이스라엘이 고백하고 응답하는 신앙고백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면서도 하나님과 논쟁을 벌이는 변증법적인 신학이 성립되는 것을 보게 된다.

   레벤슨의 구약신학은 히브리어 성서의 정당성을 유대적인 상황 속에서 탐사하는 노력이다. 히브리 성서의 전승 저 너머에 도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물으려고 하는 개신교 학자들의 비평적 노력이란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가치가 없다. 히브리어 성서 안에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의 주장들이 있다는 것도 유대인들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서 안에서 통일된 어떤 중심사상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 성서 안에 다양한 사상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란 기독교인들의 문제이지, 유대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레벤슨에게 있어서 성서의 메시지는 그 전승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공동체)의 상황 속에 “풀어질 때”(contextualized) 제 기능을 감당하게 된다. 레벤슨이 추구하는 히브리어 성서의 연구는 옛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히브리어 본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유대인답게 히브리 성서와 랍비들의 유대교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저서들>

1985    Sinai and Zion: An Entry into the Jewish Bible. Minneapolis: Winston.

1988a  Creation and the Persistence of Evil: The Jewish Drama of Divine Omnipotenc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8b   The Eighth Principle of Judaism and the Literary Simultaneity of Scripture.             Journal of Religion 68:205-25.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 1932년생)

여성 해방적인 성서신학 서론

 


<주요 약력>

․트리블은 유니온 신학교(New York)에서 자신의 지도 교수인 마일렌버그(James Muilenburg)의 지도 하에 박사과정을 마침. 그녀는 지도 교수의 수사비평방법론을 그대로 추종하였으며 1978년에 저술한 책을 스승에 영전에 바침.

․1979년 이후로 그녀는 유니온 성서신학교(Union Biblical Seminary)에서 가르쳤으며, 지금은 이 학교에서 볼드윈 교수(Baldwin Professor)로 재직함. 앞서 그녀는 앤도버 뉴튼 대학교(1971-79)와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1963-71)에서 가르친 적이 있음.

․그녀는 호주,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일본 등지에서 초청 강연을 하였으며, 미국내의 수십개의 신학교에서 강연을 하기도 함.

․1985년 이후로 그녀는 여성해방론적인 종교 연구 잡지(Journal of Feminist Studies in Religion)의 편집위원으로 활동중임.

 


<신학적 개요>

   20세기 후반에 우리가 배웠던 성서해석의 창조적 열매 가운데에는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이라는 실험이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지난 100년간의 성서해석은 남성의 언어로, 남성 중심적으로, 남성 문화 중심적으로 성서를 읽고 대했던 노력이었다. 이런 풍토 위에서 지난 세기 후반을 강타한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은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경험으로, 여성의 상상력으로 성서를 대하고자 했던 참신한 시도이었다.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구약을 가르쳤던 트리블 교수는 바로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트리블의 구약해석은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이 지나치게 객관적 진리의 탐구하는 신기루에 메몰되어 있었음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서해석이란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성서해석은 남성 중심적인 작업이었다. 남성중심적인 사고에 물들어져 있었고, 남성 중심적인 언어에 길들여져 있었다. 트리블의 과제는 이런 경향에 반하여 여서의 관점에서, 여성 신학적 사고와, 여성 해방적 언어로 남성의 문화에 억압받았던, 또는 남성의 폭력에 짓눌렸던 구약성서의 세계를 탐구하려고 한다.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이 성서해석의 역사에 남긴 자취는 결코 한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은 첫째, 옛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얼마나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억압을 받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여성들이 얼마나 이스라엘의 제의에 주역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며, 구약의 규정과 가르침들이 어떻게 여성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둘째, 성서 안에서 잊혀져버린 전승들을 재발견하거나, 또는 여태까지 왜곡되어 왔던 전승들을 재해석하였다. 이를테면 슬로브핫 딸들의 이야기나, 하갈, 디나, 다말처럼 남성의 폭력에 어처구니없이 희생당한 여성의 비극적 삶의 자취를 세밀히 들여다보았다. 그럼으로써 그 본문에 새겨져 있는 남성들의 폭력과 여성들의 아픔을 고발할 수 있었다. 셋째, 신구약성서 안에서 작지만 크게, 미약하지만 힘차게 나타나고 있는 여성 긍정적인 본문들을 발굴해내서 성서본문의 이미지를 반(反)가부장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열매를 남겼다. 그 결과 넷째, 남성 중심적-가부장적 이미지로 받아들였던 하나님의 이미지를 수정하여 하나님의 여성적 심상이나 여성적 형상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가 하나님을 산파나 어머니로 묘사한다거나(시22:0; 신32:18; 사66:13), 히브리어 “레헴”(םחר)이 단수에서는 여성의 자궁을, 복수에서는 자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소중하게 갈무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성서 읽기에서 “해방의 힘”을 캐야 된다는 도전으로 성서 읽기의 방식을 새롭게 교정하였다.

   트리블의 작업은 방법론상 문학비평적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사학적 비평이다. 트리블의 구약해석은 본문을 세밀하게 읽는 작업을 근간으로 삼는다. 트리블은 이 방법을 스승 마일렌버그(J. Muilenburg)에게서 배웠다. 트리블은 구약성서 본문에 새겨진 글의 은유, 본문의 문학적 구조, 이야기의 흐름과 단어 사용의 패턴 등을 정밀히 추적하면서, 거기에서 본문 저자의 문화적, 사회적 비평을 재구성해 보려고 시도한다. 이를 위해 트리블이 선택한 가장 큰 수단은 본문의 정독(精讀)이다. 성서 본문을 아주 세밀히 읽어간다. 수학적 기교를 동원하여 읽어간다. 구성의 예술을 파악하며 읽어간다. 성서본문을 자료나 양식 등에 따라서 구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문학적 기교와 구성에 따라서 문예학적(literary)으로, 수사학적으로(rhetorial) 해석한다. 이런 작업으로 거쳐 성서본문이 고발하는 가부장적 문화나 남성의 폭력, 여성의 희생을 고발한다. 나아가 그런 토대 위에서 오늘, 우리의 문화에 대한 강한 비평(critique of culture)을 제기한다.

   트리블의 구약해석은 아히로트식의 언약 모델이나 폰라드 식의 전승사적 구속사 신학 모델을 모두 다 거부하고 있다. 트리블은 본문의 어느 한 주제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히로트를 넘어서고, 본문의 주제가 다른 본문에서 어떻게 수정, 확장, 재해석되는지를 추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폰라드를 넘어서고 있다. 트리블의 구약해석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최종 형태의 본문 자체를 주석하는 것이다. 본문의 세밀한 읽기(close reading, 또는 intrinsic reading)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과 단서를 가지고 복잡한 오늘의 상황을 푸는 고리로 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구약성서의 초점인 신앙을 설명하고 있다.

   트리블의 방법론은 문헌비평을 따르지만 시각은 여성 해방론의 입장에 서 있다. 그녀가 보기에 여성 해방적인 해석은 문화에 대한 비평을 의미한다. 예로써, 하나님은 성적인 차원에서 볼 때 남성과 여성을 초월하신다. 트리블은 자신의 첫 번째 책에서 하나님을 ‘신’(Deity)으로만 칭하지, 결코 대명사(남성, 여성, 또는 중성)로 칭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해방적인 시각이 초기의 불균형과 주석의 오류 등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구약신학의 형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저서들>

1978   God and the Rhetoric of Sexuality. Overtures to Biblical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1984   Texts of Terror: Literary-Feminist Readings of Biblical Narratives. Overtures to          Biblical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1989   Five Loaves and Two Fishes: Feminist hermeneutics and Biblical Theology.              Theological Studies 50:279-95.

 

 

 

롤프 크니림(Rolf Knierim, 1928년생)

체계적인 구약신학

 


<주요 약력>

․크니림은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1962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1965년에 교수자격을 취득하였으며, 지난 20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클레어몬트(Claremont) 신학교와 그곳의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침.

․그는 성서해석 방법론에 관한 몇 개의 중요한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그 논문들은 그의 구약신학 작업에 큰 영향을 줌.

 


<신학적 개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폰 라트의 제자로, 조교로 활동했던 크니림은 폰 라트의 구약신학을 전승사적인 흐름을 따라 계속 발전시킨 독보적인 인물이다. 사실 크니림은 “거의 30년 동안” 자신이 폰 라트의 뒤를 따라 “‘전승사적인 연구 방법이야말로 신구약성서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들 중에 속해 있었다고 말한다(1981: 106).  그가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제기한 문제는 전승사적인 연구방법의 적법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약신학에 대하여 적합한 것인가의 문제였다.

   폰 라트의 구약신학에서는 구약전승들의 역사가 이스라엘 신학의 지극히 역사적인 성격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크니림은 결코 역사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구약성서의 계시를 연구한 결과 그는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강조는 구약성서 자료들의 상당 부분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1971: 228). 그는 폰 라트에게 헌정한 한 논문에서 이러한 결론을 피력하였는 바, 그것은 곧 폰 라트와의 결별의 시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크니림의 후기 저작은 구약성서가 역사에 관해서 말하고 또 역사에 기초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세계와 창조 및 세계 질서 등에 관해서도 말한다는 관찰에 근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구약신학의 과제는 역사와 창조에 관한 전승들 및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의 세계 통치에 관한 전승들을 그들이 가진 다양성 속에서 그들 나름의 역사를 따라 연구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신학은 또한 그러한 전승들이 어떻게 해서 서로 관련되는지를 물어야 하며, “그것들을 한데 묶어 주는 신학적인 기초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1981: 107). 전승사적인 연구만으로는 그러한 물음들에 답변을 줄 수 없다.

   그 대신에 크니림은 구약신학(또는 성서신학)의 과제가 체계적인데에 있다고 제안한다. 성서신학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의 제안이 놀라운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서신학은 한세기 동안 성서를 조직신학이나 기독교 교리에서 빌려온 용어들이나 개념들로 설명하기보다는 성서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니림은 구약성서의 “다양한 신학들”이 체계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며, “만일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우리는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크니림의 구약신학은 방법론상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중요시한다. 이것은 폰 라트의 구약신학 방법론에 가려서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아이히로트 식의 구약신학 하기에 대한 재평가일 수 있다. 물론 크니림은 구약성서에 중심점을 찾는 일에는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구약신학을 조직적인 토론으로 이끌어가려는 크니림의 노력에는 구약신학을 구약성서에 관한 조직신학이어야 한다고 까지 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신학이 조직신학과 대동소이한 것은 아니다.

   크니림이 강조하는 것은 구약신학의 최종적인 비평기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정의롭고 공평하게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야말로 구약신학이 논해야 할 최종, 최고의 과제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을 총괄하는 구약신학의 실체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구약성서의 모든 주제, 모든 신학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크니림의 구약신학은 올렌버거 등이 지적했듯이 성서주석과 조직신학 사이에 놓여져 있는 중계자 역할을 맡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요 저서들>

1981  Cosmos and History in lsrael's Theology.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3:59-123.

1984   The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y.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6/1:25-57.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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