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상식 이야기!!

[스크랩] "팔순 남편의 건강식, 공개합니다."

하나님아들 2012. 9. 11. 15:23

“팔순 남편의 건강식, 공개합니다”

[오마이뉴스 김관숙 기자]

점심밥상을 차려놓고 돌아다보니까 조금 전까지도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오후 1시30분경에 오는 수영장 버스를 타려면 지금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야만 하는데 코까지 고는 것으로 보아 어제 밤에 FX채널에서 밤 12시를 지나서까지 레슬링을 보더니 잠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깨울까 하다가 그만 둡니다. 이런 경우, 올해 팔순인 남편에게는 수영을 가는 것 보다는 푹 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웃들은 팔순인 남편이 매일 수영 가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건강하신가 봐"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남편은, 아직은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입니다. 어깨가 조금 굽고 머리가 반들거리게 벗어졌지만 젊었을 때부터 수영을 다니면서 술, 담배를 하지 않았던 게 일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다가 남편이 칠순을 넘자마자 밥상을 풀밭으로 바꾸라고 해서 그 즉시 바꾸어 버렸는데 돌이켜 생각을 해 보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제 친구들 점심모임에서 밥상 이야기가 나왔을 때입니다. 이 집 저 집 모두들 오늘 아침 밥상 메뉴를 공개했는데 우리 집 밥상처럼 풀밭에 잡곡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이든 한두 가지 쯤 있는 고정 반찬들이 기가 막히게도 짠 음식들 입니다. 장조림, 젓갈류, 장아찌 종류입니다. 우리 집 고정 반찬은 무나물과 양파채초무침입니다. 내가 말없이 바지락칼국수만 먹고 있자 옆에 친구가 물었습니다.

"팔순 어르신이 드시는 밥상 좀 공개 해 봐. 성당에서 건강하신 모습을 뵐 적마다 궁금했지 뭐야."

"그냥 풀밭이라구."

내가 공개한 풀밭 밥상 메뉴는 방금 차려놓은 점심 밥상과 똑같습니다. 나물만 바뀌었습니다. 어제는 취나물이었는데 오늘은 시금치나물입니다. 김치, 시금치나물, 계란1개, 무나물, 고등어찜, 무짠지, 오이깍두기, 미역초무침, 양파채초무침, 잡곡밥 반 공기 두부된장국입니다. 물론 간은 아주 싱겁고 또 맵지도 않습니다. 자식들이 맛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난 고기를 자주 안 먹으면 기운이 없던데. 커피를 안 먹었을 때처럼 말야. 그럼 고기는 일주일에 몇 번 먹어?"

"한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생선은 일주일에 한 번이구"

"그건 너무하네. 그 연세에 그렇게 먹구 어떻게 체력유지가 되구 또 수영을 하시나? 우리 나이에는 적어도 고기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먹어야 해. 안 그러냐구? "

그러자 칠십 대인 친구들은 모두들 맞장구를 쳤습니다. 채식을 하고 소식을 해야 건강하다고는 하지만 팔순 노인이 그렇게 먹고 살다가는 은근히 기력이 떨어져가기 때문에 자주 피곤하고 또 병 치례를 하게 되어 자식들에게 짐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후가 되니까 남편도 나도 식욕이 줄고 입이 짧아지면서 개운한 풀밭밥상이 좋아졌습니다.

남편은 매일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친구들이 있는 경로당에 들러서 저녁 무렵까지 놀다가 옵니다. 그래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습니다. 가끔 나와 같이 마트 장을 잔뜩 봐가지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무거운 장바구니를 혼자서 끌고 오다가 "뭐가 이리 무거우냐"면서 울타리길 길섶 의자에 앉아 잠시 쉬기는 합니다만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고정 반찬으로 매일 먹는 무나물과 양파채초무침 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남편입니다. 가끔 뭐가 이리 무거우냐고 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나물을 잘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무나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가 둘러앉은 밥상에는 언제나 싱거운 무나물이 놓였습니다. 아버지가 과음을 하고 들어온 다음날 아침에는 따로 아버지 밥그릇 옆에 무나물이 담긴 복(福)자 무늬가 둘러진 흰 사기대접이 놓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서 다듬이 방망이로 두들겨 죽죽 찢어서 끓인 북어국을 한 모금 마시고, 하얀 무나물에 참기름과 뜨거운 청국장 한 숟갈을 놓아 밥을 비벼 먹고 출근했습니다. 골목을 뚜벅뚜벅 나가는 아버지의 멀쩡한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젊고 고우신 어머니가 행복한 눈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무가 산삼 버금가지."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나물이 왜 좋은지 모르고 먹었지만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무에는 지방이나 단백질 같은 것을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들어있을 뿐만이 아니라 숙취해소의 효능도 탁월하고 독소 제거와 강장효과도 있고 또 비타민류가 풍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효능을 의식하고 일부러 무나물을 만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음식이라 안 먹으면 뭐 한 가지를 빼먹은 것 같아 그냥 매일 먹고 있습니다.

남편이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면서 식탁으로 오다가 벽시계를 보았습니다

"어, 늦었네. 아, 좀 깨우지 그랬어? "

나는 코까지 골면서 자는 팔순 노인네를 어떻게 깨우느냐고 하려다가 그만 둡니다. 아직도 남편의 두 눈은 맑지가 못합니다. 눈만 감으면 그대로 또 코를 골 것만 같습니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할 수 없지 뭐, 두시 반에 오는 버스를 타고 가서 세 시 수영반에 껴야 겄네."

남편은 재작년에 수영반을 바꾸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일반 수영반에서 새벽수영을 해오다가 오후에 있는 실버 반으로 옮겼습니다. 그것도 50m 레인을 9~10 바퀴만을 돈다는 것입니다. 작년보다 세 바퀴가 줄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밥상 앞에 앉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까 어제 친구들이 한 말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백내장 수술을 받은 이도 있고 퇴행성 무릎 관절염 약을 먹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자주 먹으면서 자식들이 사다가 준 영양제들을 달고 살아서인지 걷기운동을 할 때 보면 멀쩡합니다. 얼굴 혈색도 얼마나 좋은지를 모릅니다. 여행지를 의논할 때는 눈빛이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모두들 구구팔팔이삼사를 누릴 것만 같습니다.

나는 자꾸 흔들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친구들이 한 말 중에 "기력이 떨어지면 병 치례를 하게 되고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는 말이 무섭습니다. 아무래도 기력을 만드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상에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서 수영가방을 챙겨들고 현관을 나서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삼겹살 해 먹을까?"

"난 안 먹구 싶은데. 당신 먹구 싶음 해먹으라구."

지레 겁을 먹고 흔들렸었나 봅니다. 조금 전과 달리 남편의 눈에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고 싶어야 먹는 것입니다. 실은 나도 삼겹살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고기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를, 먹고 싶을 때만 먹고 살아야겠습니다.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도 구구팔팔이삼사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지 안 될지 역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의 충고는 고맙지만 모두 잊어버리고 부지런히 시장에나 다녀와야겠습니다.

요즘 시장에 가면 호박잎 단이 꽤 탐스럽습니다. 저녁에는 노랗게 잘 익은 막장과 함께 호박잎을 파랗게 쪄서 푸짐하게 상에 올려야겠습니다.

 




출처 : 복음 중 복음
글쓴이 : 임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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