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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들 2016. 5. 12. 11:09

1.제직의 신앙적 자세
(1)주의 날을 존중히 여겨야 함(사58:13-14)
초기 교회는 안식후 첫날은 주의 날(계1:10)이라고 부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다.(행20:7)
1)주의 날이란?
하나님인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으니 주의 날은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주일 아침 부활하셨으니 주의 날은 부활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요, 주의 날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로 주신 날이므로 안식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다. 주의 부활은 천지 창조보다 중대한 의의를 가졌기 때문에 일요일은 [주의 날] [주일] 또는 [성일]이라고 부르면서 기쁨과 감사와 축복으로 지키게 되었다.
예배의 날
주의 날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현재도 계시다는 확신과 기쁨을 나타내는 날이다. 주의 날은 휴식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성별된 날이다. 주의 날을 존중히 여기지 않거나 예배를 드리지 않는 제직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20:8)는 주의 날은 예배의 날이다.
선행의 날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막2:17)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막12:12)고 하셨으니 주의 날은 선행의 날이 되어야 한다. 제직들은 주의날에 슬픔에 잠겨 있는 자, 병에 신음하는 자, 실패한 자, 옥에갇혀 있는 자를 방문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2)주의 날을 어떻게 지킬까?
주의 날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이웃을 위해 선행을 하는 날이므로 개인적인 모든 일을 스스로 쉬고 육신 사업을 정돈하고 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거룩하게 지켜야 함
주의 날에는 세상 일에서 떠나 쉬며 일체의 오락에서 떠나야 한다.(사58:13-14) 팔고 사는 일이나 거래하는 일체의 일을 그만 두고(느13:15-22), 모든 시간을 예배드리는 일에만 사용하여야 한다.(렘10:25,신6:6-7, 욥1:5, 삼하6:18-20 벧전3:7, 행10:22)
주의 날을 귀중한 날로 지켜야 함
주의 날은 거룩한 날이므로 귀중한 날이요, 또 영혼이 소생함을 얻는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주의 날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시고 쉬신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주의 날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시고 쉬신 날이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므로 중한 날이다. 예배는 신앙 생활에 있어 생명적인 행위이므로 예배없이 신앙 생활이 온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깨닫고 주의 날을 귀중한 날로 지켜야 한다.
주의 날을 기쁜 날로 지켜야 함
주의 날은 죄악의 고통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고 하늘의 위로를 받으며 기쁘게 지키는 날이다. 과거의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 기뻐하는 날이 주의 날이므로 이날은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이 함게 모여 즐겁게 찬송하여야 한다.
(2)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자세 (요4:24)
1)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의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하신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우리의 예배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하나님 즉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요4:24).
2)예배의 성서적 정의
예배는 살아계신 하니럼과 성도 사이의 인격적인 거룩한 교제(사6:1-5)로서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서적 특성을 지닌다.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돌리는 행위이다(시29:2).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감격한 찬미의 행위이다(눅7:37-38).
예배는 교회구성원 모두가 흔연일체가 되어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다(계4:11)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행위이다.(요 4:24)
예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의 보람과 기쁨을 거룩한 제사로 드리는 행위이며(히13:10-15),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 직분을 다하는 산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롬12:1).
예배는 인간 중심의 생활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로 돌아서는 행위(빌1:20)로서 성도들 상호의 사귐을 통해 하나님의 품 안에 초대받는 것이다.
예배는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단 한번 희생제물로 바침으로 거룩해진 자들을 계속하여 완전케 하시는 행위이다(히10:10-14).
예배는 성령의 역사로 시작되고 또 성령안에서 진행되는 것으로서 그때에 비로소 참 예배가 된다(롬 8:26).
이러한 예배는 말씀과 성례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만나 주시는 사건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3)예배의 목적
예배는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배는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는 예배(worship)라는 단어 안에 내포되어 있다. 예배라는 단어는 본래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worth(-의 가치가 있는)와 추상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ship의 합성어이다. 이말은 [가치를 돌린다](to ascribe worth)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divine worship)는 그분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배의 목적은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시 29:2) 것이 된다.
여기서 하나님깨 영광과 가치를 돌리는 것이 어떻게 표현뒬 수 있는가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며, 예물을 가지고 그 전에 들어올지어다(시 36:8) 즉 예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히브리인의 예배는 희생제사란 말로 묘사되었다. 이 히브리인의 회생에는 예배하는 자가 여호와의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가져온 헌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희생제사는 예수 고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필요없게 되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인류를 대신하여 완전하고 흠없는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기도, 찬송, 성서강해, 세례, 예물과 봉헌 등-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의 내용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가치를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예배를 통하여 인간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 곧 다름 아닌 자기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만 한다. 결국 예배의 목적이란 자기자신을 산 제물로 하여서 성부, 성자, 성령께 그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라 하겠다.(계4:11)
예배는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역사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신 구속적 사건을 기념는 행위이며, 이 축하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자신의 선교적 사업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시기 때문이다.(고후 5:20-21).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 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에 참예하도륵 결단케 하는 삶의 사건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또한 그분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결단케 하는 것이라 하겠다.
4)예배의 기본적인 원리
예배는 단순한 순서의 진행이나, 프로그램 형식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다. 아무리 그 형식이 잘 짜여진 예배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며 자기의 생명과 모든 것을 드리려는 소원과 결단의 표현이 아닐 경우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예배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깃들어야 있어야 한다. 이 경외감은 단지 감정적인 자극을 톨해서가 아니라 성서연구와 토의를 거쳐 확실한 깨달음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예배는 성도들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자, 설교자 및 성가대 등 몇몇 사람들만이 꾸미는 순서가 아니라 예배자 모두가 어떠한 형태로든 직접 참여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기에 그 순서는 신실하고 경건한 준비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예배는 고정적인 형식이 될 수 없다. 고착된 순서로 된 예배나 기성품식의 예배가 아닌 항상 개혁해 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5)예배의 자세
ㄱ)예배의 준비
예배에는 예배에 맞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 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실의 환경을 정돈해야 한다. 헌금상, 헌금대, 마이크, 커텐, 실내장식, 조명 등 예배실 안의 모든 설치물을 제자리에 바로 정돈해야 한다. 또한 예배의 진행에 참여하는 예배위원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모여 준비 기도회를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보다 경건한 예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ㄴ)예배위원의 임무
가)안내위원의 임무 : 안내위원의 직책은 예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임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내위원은 반드시 예배 30분 전까지 교회에 도착하여 기도로 준비하고 안내에 임한다.
복장은 계절에 관계 없이 항상 정복으로 갖추어 입어야 한다.
안내의원의 표지를 완쪽 가슴에 단다. 이때 안내위원 표지는 가능한 한 소박하고 아름다와야 한다.
예배환경을 정돈하고 헌금위원의 좌석과 새신자의 좌석 등을 표시하여 준비한다.
교우들을 대하는 자세는 항상 따뜻하고 친절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새신자가 올 경우 등록카드를 작성하게 하게 하고 정해진 때가 되면 전교우 앞에 소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교우들이 주보와 헌금봉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예배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번거로운 인사나 잡담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도시간에는 지각하는 교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표시판을 걸어 두고 안내한다. 그때 늦게 들어오는 교인은 기도가 끝난 후 조용히 들어가도록 한다.
예배시간중에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울지 않도록 미리 모자실로 인도한다.
혹시 도난사고가 돌발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예배가 끝나면 문 앞에 정렬하여 따뜻하게 환송한다. 이때 필요 이상의 잡담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헌금위원의 임무 : 헌금위원이란 교인을 대표하여 하나님에 제물을 바치는 직분으로 예배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성이 깃들어야 하는 임무이다. 그 구체적인 임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금위원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위원석에 앉아 대기해야 한다.
헌금시간이 되면 헌금상 앞에 서서 인도자가 주는 헌금바구니(또는 주머니)를 받아 다른 위원들과 보조를 맞추며 봉헌을 진행한다.
봉헌이 끝나면 중앙통로 뒤편에 모여 이열종대로 나란히 나온다.
특별헌금 봉투는 별도로 받아 한 사람이 종합하여 인도자에게 넘겨 준다.
인도자는 그 헌금을 강단에 바치고 헌금위 원들은 헌금상 앞에 일렬횡대로 선다.
헌금기도가 끝나면 보조를 맞추어 위원석으로 돌아온다.
다)기도위원의 임무 : 기도위원이란 교인을 대표하여 하니님께 기도드리는 직책으로 대부분 당회장과 장로가 돌아가면서 담당하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집사들이 맡기도 한다. 기도위원의 구체적인 임무는 다음과 같다.
기도위원(담당자)은 일 주일 동안 개인기도를 통하여 공중(대표) 기도를 준비해야 한다.
기도위원은 예배시간 30분 전에 출석하여 정해진 자리에서 대기해야 한다.
기도를 드릴 때 겸손과 진실함으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하되 기도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여 질서있게 해야 한다.
기도를 드릴 때 교회와 성도에게 덕이 되지 않는 말은 절대 삼가해야 하고 개인적인 기도도 피하여야 하며 교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기도가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믿음의 화신을 가지고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교우 가운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을 위해 꼭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줄거리는 대강 하나님께 영광, 감사, 회개와 고백, 간구와 소원, 하나님께 영광,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위원은 이런 줄거리에 따라 기도문을 작성해야 한다.
6)예배자의 자세
예배는 정숙하게 드려야 하며 예배자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준비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일단 예배실에 들어오면 출입을 금하고, 옆 사람과 속삭이거나 번거로운 인사를 나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을 경우에 떠들거나 소란을 퍼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배의식에 참여할 때에는 검소하고 깨끗한 복장을 착용해야 한다. 너무 사치스러운 옷이나 슬리퍼, 그리고 다른 교우로 하여금 불쾌감을 조장케 하는 복장은 착용하지 말아야 한다.
예배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예배 시작 전에 도착하여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예배 후에는 서로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친교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해야 한다.
예배자가 지켜야 할 자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교훈, 즉 너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요4:24)]는 말씀이다. 즉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또한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롬 12:1)로 하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3)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 (계22:18-19)
1)성경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신앙과 행위의 기준이 되는 복음의 진리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육신이 육의 양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신령한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인간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고 의로 교육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제직은 성경의 애독자가 되어야한다. 성경을 애독할 이유는 첫째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한다.(요20:31) 둘째, 성경을 통해서만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다.(시119:111) 세째, 성경은 신자에게 빛을 주며 바른길로 인도해 준다.(시119:105)
성경을 애독하는 정신은 첫째, 언제나 거룩한 마음과 기대하는 정성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둘째, 기쁘게 가르침을 받을 마음과 복종할 정신으로 읽어야 한다. 세째,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살고자 힘쓰며 읽어야한다.
성경 애독의 방법은 첫째, 성경은 매일 읽어야 한다. 둘째, 성경은 기도하며 읽고 읽으면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있어야 깨닫게 된다. 세째,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구를 풀려고 하거나 단지 지식으로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쉽다. 네째, 성경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복종하며 내 전부를 맡겨 버리는 태도로 읽어야 한다. 다섯째, 성경은 내 자신의 믿음과 덕을 높이는 한편 남의 믿음과 덕도 높이기위하여 내 경험을 살려 말씀을 전파하여야 한다.
2)설교를 존중히 여기는 자세
설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설교를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설교도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생각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설교도 하나님이 설교자를 통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이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라."(살전2:13)고 했다. 설교를 설교답게 하는 것은 말하는 기술이나 설교자의 종교적 사상도 아니고 설교자의 설득력도 아니다. 참된 설교가 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여질 때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의 교훈이므로 믿으려는 겸손한 마음과그대로 행하려는 태도로 들어야 한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제직들이 봉사하는 교회는 부흥한다. 설교를 듣는 정신은 첫째, 내 자신이 복음의 말씀 앞에서 죄인임을 자인하여야 한다. 둘째, 상한 내 심령을 고치려는 겸허하고도 간절한 심정이어야 한다. 세째, 새로운 사명과 과제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설교를 듣는 태도는 첫째, 성경 본문을 깊이 되새기며 들어야 한다. 둘째, 설교자를 바라보면서 다른 곳을 보지 않아야 한다. 세째, 설교의 중심점을 자기 생활에 반영시켜 자기의 것으로 받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설교를 들은 후에는 첫째, 의문되거나 이해되지 않은 점을 조용한 시간에 설교자를 직접 찾아 지도를 받아야 한다. 둘째, 설교를 통한 느낌과 소감을 간증하며 설교자와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면서 교회 생활에 힘을 써야 한다.
2.제직의 정신적 자세
(1)주인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벧전5:2)
교회의 신령상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교회의 조직 주인은 세례교인들이다. 세례교인이 공동의회의 회원이 되어 교회의 일을 의결하고 처리한다. 한 나나라의 주권은 국민이 있듯이 교회에는 세례교인이 주인이다.
교회의 행정상 주인은 목사이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나 국민들이 투표하여 세운 대통령이 그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이 목사는 세례교인이 모인 공동의회에서 투표받아 그 교회의 목사가 되어 그 교회의 행정을 맡아 일한다.
제직들은 세례교인 중에서 선택받아 교회를 봉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주인의 정신으로 일하여야 한다. 주인의 정신이란,
1)책임질 줄 아는 정신이다.
주인이란 일의 책임을 맡은 자이다. 주인은 일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감당할 책임이 있다. 일이 잘 되어도 주인의 책임이요 일이 잘 안되어도 주인의책임이다. 교회의 주인된 제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되 맡은 자들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양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벧전5:23).
2)일을 위해 일하는 정신이다.
주인이란 삯을 위해 일하는 자기 아니라 일을 위해 일하는 자이다. 주인과종의 차이가 무엇인가? 종은 삯을 위해 일하지만 주인은 일을 위해 일한다. 종은 억지로 할 수 없어 일하지만 주인은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
제직은 칭찬이나 대접을 기대하고 일하는 자가 아니라 맡은 일이 잘되기 위해 일하는 자이다. 제직은 제일의 관심은 보수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나 제직들도 베드로처럼"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마19:27)의 질문을 하게 된다. 교회를 섬기는 즐거움, 이웃을 봉사하는 즐거움은 일을 위해 일하는 제직들이 받는 보수이다.
모세는 미디안 들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40년간을 하루같이 양떼를 치되 삯도 없이 충성을 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충성했으므로 하나님의 집에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히3:5). 제직은 삯을 위해 일하는 청지기가 아니라 주를 위해 일하는 청지기이다.
(2)봉사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벧전4:10)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하였으니 제직은 봉사의 정신으로 일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다. 어떤 제직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제직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어떤 정신으로 사용하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1)봉사는 보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을 받을 때만 충성하거나 보상이 있을 때만 열심히 하는 것은 봉사가아니다. 이러한 사람은 일이 축복이거나 기쁨이 되기보다는 무겁고 고통스러운짐이 된다. 사람이 보상만을 위해 일하게 되면 품꾼에 불과하다. 일이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므로 축복이 고역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보상에 얽매이지 말고 봉사정신으로 일해야 한다.
2)봉사는 의무에 매여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의무에만 매여 일하는 사람도 일의 기쁨이나 보람을 맛보기란 어렵다. 의무나 책임이 나쁠 것은 없으나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순전히 의무감 때문에 한다면 일이 딱딱해지고 분위기가 굳어진다. 그러나 맡은 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제직으로서 봉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고 봉사정신으로 일할 때 기쁨이 넘치게 된다.
3)봉사는 주께 하듯 하는 생활이다 (엡6:7).
하나님은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맡은 일을 할 때 주께하듯 하는 것이 봉사이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니 영광으로 알고 일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니 정성을 다해 일하여야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일 조금도 고통스럽지않고 도리어 즐거운 봉사가 된다.
제직이 봉사 정신으로 일하려면 첫째, 협동 정신이 있어야 한다. 교인 사이에서나 제직 사이에 서로 양보하고 양해하는 협동정신이 없이는 교회에서 봉사할수가 없다. 나와 조금 다르지만 서로 양보하고 협조할 줄 알아야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같이 봉사할 수 있다. 교회나 세계를 위한 봉사에는 꼭같은 원리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둘째로, 오래참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좋은 일을 해도 난관이 반드시 있다.
이러한 난관이 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극복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봉사 생활이 좌우된다. 백번 찍어도 넘어 가지 않는 정신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자가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쁘세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나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1)하였으니 일을 당해도 참고 견디어 성공하기까지 더욱 힘써야 한다.
(3)모범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딤전4:12)
일꾼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범이 되려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모범이 되는 일꾼이란 구경꾼처럼 방관자도 아니요, 말꾼처럼말만 하는자도 아니요, 싸움꾼처럼 불평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1)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모범되는 일꾼이다.
교회 일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일의 방법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하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사람들은 독주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급하다고 하나님보다 앞서도 안되고 피곤하다고 하나님보다 뒤져도 안된다. 일마다 걸음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2)그 직책이 훼방하지 않도록 힘쓰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하기도 쉽고 남에게 오해를 받게도 된다. 그러나 제직은 그 직책이 휘방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나 아무에게든지 거리낌이 없이 힘써야한다. 바울이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았다"(고후6:3) 고 했다.
섣불리 잘한답시고 마구 돌아다니며 할 것 못할 것 함부로 손댈 것도 아니요, 잘한다고 하는 일이 도리어 하나님의 일꾼은 되기도 어렵고 된다고 하더라도 일하기가 어렵고, 일한다고 하더라도 모범이되기는 더욱 어렵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너무 쉽게 생각지 말고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
3.제직의 헌신적 자세
(1)희생을 각오하는 마음의 자세 (롬12:1-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하였으니 제직은 예수의 희생 정신을 본받아 소금처럼 녹아져 다른이를 유익하게 하여야 한다. 제직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희생과 사랑의 정신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직책이다.(요11:11).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라는 정신으로 예수를 위해 아낌없는 헌신자가 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 믿음이요 희생이다.
수고는 내가 먼저 하고 영광은 주께로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희생도 인색하고서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
1)최선을 다하는 자세 (행23:1)
바울은 공회에서 신문을 받을 때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23:1)고 고백하였으니,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전도자이다.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일하는 일꾼이 참된 일꾼이요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다.
예수의 두 아들 비유가 있다.(마21:28-31). 잘 믿노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이맏아들이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맏아들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무거운 것을 묶어 남의 어깨에 메우고 자기들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것(마23:4-5)이기 때문에 희생없는 외식주의를 신랄히 비판하여 "화가 있으라"고 일곱 차례나 지적하였다(마23:13-15). 그러므로 희생없는 헌신은 외식이요, 외식은 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교회의 제직은 존귀 영광 모든 권세를 홀로 주께 돌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만 붙잡는 희생정신으로 오로지 교회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2)먼저 그의 나라를 위하는 자세 (마 6:33)
무슨 일이나 먼저 할 일과 다음에 할 일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의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마6:33).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하는 생활을 하려면 믿는 마음 즉 확신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였으니 교회의 일꾼은 먼저 하나님을 앞세워야 한다.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길을 걸어도 일을 해도 항상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살았다.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았다. 어떻게 보면 자아도 주체성도 목적도 꿈도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제직은 항상 나보다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을 더 생각하여야 진정 바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가정에서의 헌신적 자세 (눅19:9)
가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다. 가정이 모여 사회를이루고, 사회가 모여 나를 이룩하는 것이며, 크리스챤의 가정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그 교회가 곧 천국이 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크리스챤의 가정들은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되어야 하고 특별히 제직들은 가정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하여야 한다.
크리스챤의 가정은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며 개인 신앙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개인 구원만 아니라 가정의 구원을 중요시하여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눅19:9)고 했다.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한 한 개인인 동시에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자기 가족 전부가 그리스도를 중심한 생활을 하도록 힘쓸 책임이있다.
1)신앙을 중심한 가정 생활
크리스챤의 가정은 하나님 중심으로 "이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크리스챤의 가정은 부부 관계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 원리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가정이란 육신의 요람이요, 정신의 안식처이다. 가정의 불화로 만사를 망쳐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따사로와야 하고 애정과 행복이 넘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 예배는 중요하다. 서양 주택은 파이여 플레이스(Fire Place)가 중심이요, 일본 가정은 도꾜노마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크리스챤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챤 가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가정마다 예배 드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감사하는 생활도 배우고 서로 양보하며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담력도 얻게 된다. 가정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안도록 힘써야 한다.
2)모범적인 가정생활
교회의 일군인 제직이 교회에서는 칭찬받으면서도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교회에서 훌륭한 제직이 가정에서도 훌륭한 제직이 되려면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야 한다.
참된 행복은 희망과 괘락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맡은바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는 데 있다. 땀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일수록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힘드는 일을 나의 의무로 알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제직된 사람이 가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솔선 수범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이 은연중 높아질 것이며 사랑과 기쁨이 가득찬 가정이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자의 아내된 제직들은 베드로의 교훈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내된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니"(벧전3:1-6) 하셨다. 그러므로 제직인 아내의 행위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교회 직분을 맡기 전보다 더 겸손하고 더 순복하고 더 착하고 깨끗하며 진실되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3) 교회에서의 헌신적 자세(행2:43-47)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집단이다. 교회는신자가 하나님과 신비적 교제를 가지고 신자들간에도 사랑의 친교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며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곳이다.
성경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엡1:23)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신자들이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적 산 조직체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선택받은 직원들은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책임이 있다.
1)힘써 모이는 생활
교회의 특징은 힘써 모이는 데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고 했다. 제직이 교회를 위한 헌신적 자세는 우선 집회때마다 열심히 참석함으로써 작은 등불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예배 시간보다 일찍 출석하여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집회만이 아니라 부흥회나 수련회 같은 특수 집회는 물론 제직회에도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훌륭한 헌신의 생활이다.
기독교는 본질상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기를 강조한다. 신자들이 모일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부터 모이기를 열심하였고(마18:20,행2:46-47)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였다. 모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마18:20). 그러므로 교회의 모임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요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따라서 모일 때는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전14:12-40). 그러므로 모임에서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직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힘써야 한다.
2)선교를 위한 생활
주 예수를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교회는 예배와 교육을 통해내적으로 제직들이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뜨거운 선교적 사명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선교적 사명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기 때문에 선교를 위한 생활은 크리스챤 공동체의 꼭 지켜야 할 일이다.
교회는 모이는 기능만 아니라 흩어져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교회가 병들고 허약한 자와 위로와 도움을 바라는 대중을 위해 그들의 상처를 고쳐주는 봉사적 기능을 다하여야 한다. 이러한 책임을 제직들이 주도적으로 역할할때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지원 선교사가 된 제직들이 지역사회에 흩어져복음의 빛을 비추어 줄 때 교회에 무관심한 주민들이라도 자기들의 삶의 요구를 교회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지역 사회의 핵(center)이 되어 개인의 문제나 지역의 문제가 교회에서는 논의되고 교회에서 해결될 때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을 제직들이 감당할 때 선교는 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제직들은 선교의 책임을 위해 뜨거운 가슴과 불타는 심정으로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 이해 관계나 경제 제일주의의 풍토를 벗어나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4.제직의 헌금에 대한 자세
헌금은 감사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전체 생활을 드리는 감사의 표로서 예배를 통하여 바치는 제물이다. 헌금은 하나님이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인 동시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신앙 고백의 실제적인 행위이다. 헌금은 주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것이다.
헌금은 신앙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나타내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아까와하거나 마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다(고후9:7).
헌금은 헌신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사회와 하나님게 대하여 어떤 의무를 다하기 위한 실천 행위의 하나이다. 헌금만이 헌신의 표가 되는것은 아니지만 헌금은 헌신을 나타내는데 매우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 헌금은 보답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받은 은혜에 대한보답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 일부로서 드리는 예배행위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일부로서 드리는예배 행위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에 참여하는 정신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제직은 각종 소득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정신으로 헌금해야 한다.
(1)헌금의 원리(잠3:9)
1)헌금의 성격적 원리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그 보답으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드렸고 (창14:20), 야곱은 벧엘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하였다(창28:22).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서 봉헌자와 레위인이 함게 먹으며 즐거워 하였으니(신14:22-29) 친교를 위한 봉헌이었다. 매 3년마다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26:12) 였으니 헌금은 구제 사업과 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주어서 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았으니 (민18:21,6-28) 헌금은 성직자의 보수로 사용되었고, 성전 관리와 종교 행사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헌물되었다(느10:32-39).
예언자 시대에도 헌금과 헌물을 하였고(암4:4,말3:8-10). 예수 시대에도 헌금하였고(막12:17,눅21:1-4, 눅12:21) 초대 교회에서도 구제와 봉사를 위해 헌금했다.(고후 8:1-5, 9:1-15, 행24:17, 롬15:26-27).
2)헌금에 대한 바울의 교훈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하고 아까와 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요,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고후9:6-7)하였으니 헌금은 자발적으로 전 수입과 헌금 액수와의 비율을 신앙에 의해서 정하여야 한다. 헌금은 그 자유로운 경제를 솜씨있게 관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고후9:7,11,13)
헌금은 자신의 소득의 일부를 바쳐서 헌신을 구체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바쳐진 헌금의 액수보다 돈궤에 남겨진 금액을 보고 계신다"는말이 있다.
두 렙돈을 바침으로 생활비가 제로가 된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는 누구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자기들의 넉넉한 데서 돈을 넣었으나 이 여인은 구차한 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눅21:1-4)고 하셨다.
규칙적, 계획적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전16:2,고후8:6,9:5)
헌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다"(고후9:7) 다른 선한 일과 같이 헌금도 각자가 자기의 기준에서 규율 있게 해야 한다. 헌금은 예산과 계획에 맞추어서 바쳐야 한다. 성소의 성막을 들기 위해 가져온 헌금품이 남았을 때에 그것이 중지되어졌다.(출36:5-7). 반대로 예산액이 부족하면 추가가 재촉되어졌다.(대하36:5-7). 예산 초과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초과는 주님의 축복의 표시이다.(대하31:10). 그러나 여러가지 모금에 즈음하여 이 만한 예산이면 자기의 "가져온 예물"과 "수입"이면 어느 정도의 필요한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획성이 필요하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격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후9:6) 인색함이 없는 후한 헌금이 되어야 한다. 많은 추수를 기대하는 사람은 파종에 인색해서는 안됨을 기억하여야 한다.
(2)헌금의 표준
어느 종교 의식이든 공통적인 것은 노래와 춤과 헌물이다. 신앙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믿는 대상 앞에 보은과 감사의 생각을 물질로 표현하고 있다.
1)구약의 시대의 십일조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 중심의 민족으로 저들의 전수입의 십일조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아브라함은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승하였을 때 축복해주는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창14:1-20).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하다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창28:22) 고 약속하였다.
레위기에는 땅의 십분의 일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실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을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식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도 여호와의 것(레20:30-32)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약에 보면 그 규정이 일정하지 않아 일년 수확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신12:6-19,14:22-27)와 3년 마다 레위인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드리는 십일조(신14:28-29,26:12-15)가 있었다. 말라기는 구약 최후의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지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라(말3:8)고 지적하였다.
2)신약의 시대의 헌금
예수께서는 단 두번의 십일조를 언급하셨는데, 하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이고 (눅18:12) 또 다른 하나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질책에서이다.(마23:23).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의도를 두고 학자들 간에는 의견이 있으나"마땅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가난한 과부의 소유를 다바친 연보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사실(눅21:4)을 기억하여야 한다.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헌금 행위를 강조하면서 교회와 교회 활동을 지원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가난한 교회도 후원해야 한다고 하였다.(고후8:1-5,9:12-13).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가져 올 것을 주장하면서 기뻐 바치는 헌금을 칭송하고 있다 (고후9:7).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금전적 보조 받기를 거절했다.(행 18:3,고후11:7-10, 고전 9:18) 그러면서도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것이 기독교 교인들의 정당한 권리(고전9:14)라고 주장하였다(고전 9:7). 성경학자들은 교회가 다음 몇 가지 계획을 발전시킬 만한 근거가 신약 성경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얻은대로 수입에 비례하는 내는 헌금.
둘째, 정규적으로 주일 헌금.
세째, 처음 작정한 대로 헌금 하기.
네째, 즐거이 하는 헌금.
다섯째, 타인의 곤궁을 돌보려는 의무감에서 하는 헌금.
여섯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온 마음을 다 바치는 헌금.
이상의 여러 가지 조건과 얻은대로 저축했다가 바치는 헌금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3)십일조 헌금의 필요성
소득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라고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청지기라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이라면 그 지도와 안내를 받아야 한다.
둘째, 십일조는 성경적 근거가 있을 뿐 아니라 청지기는 하나님 나라를위해 헌금할 의무가 있다.
세째, 그리스도인들이 헌금하는 습관을 조직적으로 들이지 않을 때에는청지기직분에 심각한 위험을 던져 준다. 교인을 돌보아야 할 교회로서는 교인을 주 안에서 성장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십일조 헌금을 역설하면서 주의 하여야 할점이 있다.
첫째, 받기 위해 낸다는 사상이다. 축복은 어떤 보상은 아니다.
둘째, 금전의 십일조만이 제일이 아니다. 청지기는 십일조를 냄으로 책임을다 한 것이 아니다. 재능과 시간과 노력도 바쳐야 한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것을 요구하신다는 (눅12:48).
(3)헌금의 관리 ( 요 12:5-6)
바울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하였으니, 교회헌금을 맡은 관리자가 불충성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가롯유다는 돈을 맡아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한 불의한 청지기이었다.
1)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교회의 재정을 맡아 다스리는 관리자이면 경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싸게 먹이는 것이라든지 싼 물건으로 고집하는 깍쟁이 근성이 아니고이상을 어느 정도 달성하는가에 관계된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결산보고가되도록 돈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인 것이다.
주인의 달란트를 받아 땅을 파고 감추어 둔 종은 한 푼도 쓰지 않았으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다 (마25:26).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을 저축만 하고 사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경제적이라고 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눅 12:20).
교회에서 재정을 맡은 관리자가 경쟁만을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야 한다(딤전6:17). 재정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교회라는 곳은 비용을 들이는 곳이다"고 어떤 신학자가 말했다.
교회는 어떻게 돈을 적게 들여서 운영할까가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훌륭하게 경비를 사용할까를 생각하여야 한다.
2)교인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의 결의 기관인 공동의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교회의 재정은 교인 총의인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예산안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 헌금자의 뜻에 반하여 그 이외의 용도에 관리자가 임으로 지출되어서는 안된다.
즉 예산안을 대폭으로 수정함에는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경정예산이 결의되어야 한다.그리고 지정된 헌금은 용도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재정부원이나 회계는 자신이 헌금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다른 교인들이 정성으로 드린 헌금을 취급하는 관리자가 헌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헌금을 취급할 자격이 없다.
교역자의 생활비는 사례금이나 구호가 아니다. 교역자는 그것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고전9:1-14) 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갈6:6) 인색함이 없이 드려야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왕하4:9-10).
3)헌금은 분명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바울은 관리자로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또 헌금자가 안심하고 헌금을 위탁하도록 하기 위해 여려 가지 배려를 했다. 고린도 교회 대외 봉사비를 모금하기 위해 디도와 다른 한 사람을 추가해서 파견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후8:20-21)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에 송금할 때도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게 가리라"(고전16:4-6) 고 신중하게 하였으며,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제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서"보내었다.(행11: 30) 이렇게 충실한 관리가 보증됨으로 안심하고 헌금을 내게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은 지출할 경우 될 수 있는 한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물품 구입 등은 가능하면 두 사람이 맡아야 한다. 매달 제직회에 보고하며 연말에는 반드시 감사를 받아야 한다.
Ⅴ.제직 생활 지침
제직이 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제직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진실한 믿음과 충성스런 봉사와 성실한 삶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집의 일을 맡은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1.청지기로서의 삶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청지기란 주인의 재산을 맡아 주인의 지시대로 그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제직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일을 맡은 청지기인 것이다. 이말은 경리사 또는 관리인이란 뜻이 있는데 영어로는 스튜어드(Steward)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시 돼지 우리 같은 곳을 지키는 직책을 말하는 것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높은 벼슬아치의 집에 드나 들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 돌보는 사람을 청지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청지기란 말에도 변화가 생겨 오늘에는항공회사나 호텔이나 빌딩 같은 곳에서 재산과 사람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더욱 예수께서 청지기 교훈을 주신 이후로는 점점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마20:8, 눅12:42).
1)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여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으니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물론 인간이나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청지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고백해야 한다.
2)하나님의 집을 맡은자로서 일해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하였으니 인간은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맡은 청지기인 것이다.
3)청지기는 맡은 것의 보관자요, 관리자임을 명신해야 한다.
만물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인간은 그것을 관리하며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일시 물건을 인간에게 맡겨 보관하고 사용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청지기는 맡은 것뿐이므로 결국 모든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따름입니다."(대상29:14) 그러므로 [내것]이란 주장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수 없음은 이것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4)청지기는 충성된 봉사자이어야 한다.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라고 하면서 관리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충성이라 했고(고전4:1-2),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겼다(딤전1:12)고 했다. 그러므로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와 태만으로 문책을 당하게 된다.(눅16:1-8).
5)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고전15:9-10)
청지기직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셨고,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셨으므로 감사한 마음에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네게 있는 것들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4:17) "네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약1:17) 우리의 자녀, 건강, 재산, 재능,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여야 한다.
2.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
(1)주일을 성수해야한다.
1)주일의 의미
주일은 구약에서는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이요,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일로서, 엿새동안 얽매어 있던 세속의 일과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서 부활하신 주님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날이다.
2)주일성수의 자세
몸과 마음을 정결케하고 기쁨으로 주일을 맞이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드린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웃과 친지들에게 전한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눈다. 가능한한 세속의 일을 피하고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일에 열중한다.
3)주일성수의 방법
주일에는 반드시 새벽기도회에 참여한다. 주일아침에는 특별히 온 가족이 모여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한다. 예배후에는 기도회를 갖거나 새신자 혹은 낙심중의 교우들을 심방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눈다. 가정에 돌아와서는 안식을 취하며 저녁예배를 준비하고, 저녁 예배후에는 휴식을 취하며 한주간을 위해 준비한다.
4)주일성수의 축복
진정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된다. 구원의 큰 기쁨속에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게 된다. 땅에서도 범사에 잘되고 축복된 생활을 누리게 된다.
(2)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해야한다.
예배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행위이며, 하나님께 화답하는 최선의 방법으로서 교회생활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1)예배의 의의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간의 거룩한 교제로서,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행위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부활하신 주님과 더불어 사는 삶의 보람과 기쁨을 제사로서 표현하는 행위이다. 교회의 온 성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행위이다.
2)예배드리는 자세
예배전
복장은 되도록 단정한 차림을 한다. 성경과 찬송을 꼭 지참하고 예물을 정성껏 준비한다. 예배시간 10∼20분 전에 도착하여 앞자리부터 정돈하여 앉는다. 세상의 잡념을 버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묵상 한다.
예배시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며 기다린다. 찬송은 힘차게 부르고 기도는 간절하게 한다. 말씀을 주의깊게 경청하고 순종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졸거나 한눈을 팔지 않는다. 예배도중 이동하지 말고 송영을 마치기전에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
예배후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에 따라 살것을 다짐한다. 성도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눈다. 교회를 정돈하고 기도회나 심방, 집회등의 행사에 참여한다.
3)예배를 신령하게 드리는 방법
먼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준비하고,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며, 온전히 회개하며 성령의 임재를 기다린다. 찬송을 부를때는 가사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며 간절하게 부른다. 대표기도자는 공적인 입장의 기도를 드려야하며, 모든 회중은 대표기도자의 기도에 함께 기도하며 아멘으로 화답한다. 설교를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새겨야 한다. 헌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므로 진정한 감사의 표현이어야한다.
4)설교를 듣는 방법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뜻을 깨달아야한다.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부족하고 허물 많고 그리고 죄된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잡념을 버리고 주의를 집중시켜 들어야한다. 가능한한 메모하여 예배후에 되새겨 보도록 한다. 말씀을 남에게 적용시키지 말고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5)참된 예배자가 받을 축복
믿음이 날로 성장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수 있는 신령한 지혜를 주신다.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되어 영적 생활을 하게 된다. 세속에서의 불안과 갈등이 사라지고 삶의 기쁨을 안겨준다. 영적,정신적,육적 안정감과 삶의 토대가 확고해진다.
(3)매일 성경을 읽어야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려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귀중한 계시의 책이다. 따라서 성경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알수 없고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도 알수 없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수 없게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영의 양식인 성경을 읽어야 한다.
1)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
교회와 성도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지표이기 때문이다. 신령한 지혜를 얻게해 주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중에 서령의 감동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과 인생의 참된 길을 안내해주는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양식으로서 성도들에게 신앙의 길을 걸어갈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2)성경을 읽는 자가 얻는 축복
영혼을 풍요롭게 해준다.(마4:4) 영혼을 변화시키고 신앙을 날로 새롭게 한다.(골 2:3) 인간의 죄악을 파멸시킨다.(렘 23:29) 모든 시험을 물리칠수 있다.(마 4:1∼11) 병든 심령이 치유받을수 있다.(히 4:12) 더러운 욕심과 생각과 행실을 정결케하여 거룩해진다. 주안에서 평안을 누린다.(요 16:33) 하나님의 뜻을 알게된다.
3)성경을 읽는 태도와 방법
시간을 정해놓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읽는다. 계획을 세워놓고 읽는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음으로서 자기삶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반복해서 읽는다. 성경은 세속의 책과 달리 읽을때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전후 문맥을 생각하며 읽는다. 성경전체의 뜻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올바른 의미를 찾게된다.
(4)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1)기도의 본질과 중요성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적인 교제이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 보다 가까워질 수 있으며, 그 응답을 통해 신앙의 기쁨과 삶의 힘을 얻게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하지 않는 믿음은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이 죽을수 밖에 없다. 기도는 성도의 의무이다. 기도는 신앙의 생명을 주는 것으로서 기도를 통해 세상의 유혹과 시련과 핍박을 이겨낼수 있게된다.
2)기도의 내용
영광과 찬양 :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신뢰의 표현으로 먼저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회개 : 자신의 모든죄와 허물을 겸손히 하나님께 아뢸때 죄용서함을 받게되고 그래야만 기도를 들어주신다. 감사 : 구원의 은총을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드려야 한다. 간구 :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먼저 살피고 합당할때는 전심전력으로 간구해야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한다. :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이름으로 기도해야한다.
3)응답받는 기도
죄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야한다. (시 66:18)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놓고 온전한 회개하여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히6:13∼20, 11:6)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해야 한다. 육신의 정욕에 따라 구해서는 안된다.(요일 5:14, 약 4:3) 낙심치 말고 인내로서 기도해야한다.(약 5:7, 눅 18:1∼8) 솔직하게 기도해야한다. 형식과 시간보다는 진실한 자기 고백이어야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를 전적으로 의뢰해야한다.(요 14:13,14)
4)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죄를 품고 기도했을때 (시 66:18)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기도.(마 18:35) 욕심을 품고 기도했을때(약 4:2∼3) 온전히 믿지 못하고 기도했을때(약 1:6∼7) 우상숭배하면서 기도했을때(렘 11;14)

출처 : 부산 참사랑교회
글쓴이 : 하늘의 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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