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론!! 집사! 권사! 장로! 교역자!

[스크랩] 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한 제직

하나님아들 2015. 9. 15. 17:00

자료제공/배종부목사

2013.1.18.금.전북 익산 8개 교회 연합제직수련회>

1강의 오전10:40-12:10-빌4:6-7절, 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한 제직......1 P

2강의 오후 1:30- 3:00-히13:7,17절, 목사님을 잘 섬기는 제직.......39 P

*강의안 요약본...................................................68 P

*설교에 원용하실 때 극단적인 예화들을 잘 가려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카페 http://cafe.daum.net/HolySpiritArmy에 殉命 배종부 목사의 글들이 있습니다.

메일 saesung7@hanmail.net 메일로 목회자료를 신청하시면 수 많은 자료들을 계속 보내 드립니다.

 

1.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한 제직

1.신앙생활은 기도생활이다

(6)아무 것도 염려(念慮)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祈禱)와 간구(懇求)로, 너희 구(求)할 것을 감사(感謝)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생활은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이며, 뿌리이다. 기도생활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되지 않는다. 깊은 기도생활이 없으면 신앙생활은 진전을 이룰 수 없다. 기도는 신앙인의 생명이요 호흡이다.

1>.하나님의 성령이 기도하게 하셔야, 비로소 기도할 수 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감화, 감동이 있어야 기도한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도하는 은혜는 정말 귀하고 복된, 은혜 중의 은혜이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기도할 수 없다. 기도의 분위기, 교회의 기도 풍토는 교회의 모든 사역 중에 제일 중요하다.

권사님들의 제일 사명은 기도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사랑의 덕을 세우는 일이다. 그 다음은 성도들을 돌아 보는 일이다. 기도 운동의 주도는 권사님들이 해야 한다.

매일 밤 권사님들이 팀을 짜서 저녁마다 기도하면, 저절로 교회에 기도의 불이 붙고, 교인들이 기도하게 되고, 교인들 전체가 기도하게 되면 교회는 신령하게 되며, 영력을 가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삶이 안락하고 편하면 절대 기도할 수 없다. 편한 사람 치고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죽음의 고난이 닥치고, 파산의 고통이 오고,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묶이고,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고난이 오면 비로소 인간은 기도다운 기도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편안한 삶 속에서 기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반대로 욥처럼 그러한 극한 시험과 환란을 당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릴 것 같은데, 오히려 하나 같이 믿음이 정금처럼 단련되어 나온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믿음을 잃고 낙심할 것 같은데, 아니다.

신학교 때 채플 시간에 남해의 한 낙도의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했다. 그런데 얼마나 설교가 구수하고 재미있는지 참으로 은혜가 넘쳤다. 그런데 그 분에게는 큰 시련이 있었다.

아들이 섬으로 이사 가서 3개월 만에 교회 앞에 파 놓은 웅덩이에 빠져 죽어 버렸다. 이후 사모가 석 달을 강대상 앞에 엎드려 밤낮으로 일어 나지도 않고 울면서 기도하더라 했다.

그 후에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는데, 섬 주민의 90%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서 3억짜리 배를 사서 운행하며 온 섬 주민들을 다 무료 운송해 주고, 성도들을 출석하게 하는 그러한 교회가 되었다. 목사님은 그 섬에서 교장보다 더 높은 유지로서의 대우를 받는단다.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에게 꼭 필요한 연단과 시험 만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그리고 기도한 만큼 그에 해당되는 은혜 만을 주신다.

세상에 우연한 일, 필요 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우리 생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계획 하에 되어지는 일이다. 우리 인생의 길흉화복 속에 숨은 하나님의 뜻은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하는 은혜가 충만 하시기를 축원한다.

2>.괴로울 때에 기도하라. 고난 중에 기도하라.

마음이 괴롭고, 고통이 있을 때 기도하라. 삶의 고난과 역경이 기도하게 한다. 오래 기도하라.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 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1:26)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삼상 1:27) 이 아이(사무엘)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행 16:25) 밤중 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 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3>.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

기도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나를 맞추어 가는 것이다. 초보자의 기도가 점차 성숙자의 기도로 바뀌어 간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기도하셨다.

(마 26:39) 조금 나아 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 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기도 응답의 확신으로 기도하라. 5대 확신의 기도를 하라.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

요16:24절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5>.주의 종의 기도를 받으라.

선지자(목사)의 기도는 나를 살린다. 범죄한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주의 종이 중보기도 하면 그 죄가 사함 받는다. 제사장(목사)의 축복기도를 받으라.

주의 종에게 신유기도, 축복기도, 예언기도, 영분별의 기도, 문제 해결의 기도를 받으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주의 종은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쉬면 아니된다. 주의 종은 성도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왕하 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 20:5) 너는 돌아 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고,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 할지니라.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 5: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왕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 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6>.주의 전에서 기도해야 한다.

(마 21:13) (예수님이)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새벽기도회, 삼일기도회, 금요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라.

7>.간구하라. 간절히 기도하라. 눈물로 기도하라.

기도는 이론이 아니다. 기도는 실습이다. 기도는 실제 해 보는 훈련이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고 비 오기를 기도했을 때, 얼굴을 무릎 사이에 집어 넣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무려 6번을 하인에게 물으며 기도했다.

“구름이 보이느냐?”,“구름이 보이느냐?”반복하여 묻기를 7번째에, 드디어 구름이 몰려 온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너무 낙심을 잘들 한다. 우리는 너무나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하지 않고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절)

(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 6: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8>.가난할 때에 기도하라.

(시 102: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 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옛날 제가 신학교에 들어 갔을 당시, 저는 무척이나 가난했다. 한번은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가려는데,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토큰 한 개와 1000 원짜리 한 장 뿐이었다. 아침을 굶고서, 교회에 갔다.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 속에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지금 내 손에는 단 돈 1000원짜리 한 장 뿐인데, 이걸 헌금으로 바치면 점심도 굶어야 하고, 더욱 끔찍한 것은 부산 북쪽 끝에서 남쪽 끝 송도까지 70리 길을 걸어 가야 하는데... 헌금을 바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헌금 시간이 되어 주머니가 돌아 오는데 이거 아직 결정을 못해서 큰 일이 났다. 그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이런 자책감이 일어 났다.“에이! 바보같으니라구! 하나님께 드려 버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 아냐?”

그래서 드렸다. 드리고 나니 이거 걱정이 더욱 커졌다.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 문을 나서는데, 어깨 힘이 쫙 빠져 걸을 힘이 없었다. 낙심한 사람은 배도 더욱 고픈 법이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혼자 터덜 터덜 걸어 가는데, 아! 그런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어느 집사님이 제게 다가 오더니, 자기는 청년부 회장이라면서 식사하시고, 얘기하고 가시라는 것이었다. 가서 식사를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내가 신학생인 것을 알고는 그 분이 부끄러운 듯이 봉투를 하나 주면서,“전도사님! 부끄럽지만 이거 가실 때 차비라도 하세요.”했다.

당시에 그 봉투 속에 30,000 원이 들어 있었다. 한 달 생활비가 되는 액수였다. 저는 당시에 전도사도 아니었다. 그 교회에 나간 지 겨우 2주일 되는 때였다. 하나님은 밥을 굶는 당신 아들의 형편을 보시고, 미리 믿음의 종을 통하여 이렇게 예비해 두셨던 것이다.

그 분이 지금도 부산 명륜제일교회를 섬기고 있는 장한식 장로님이시다. 나는 그 곳에서 2주일 후에 그 분의 소개로 아동부 교육전도사를 맡고, 아내를 얻어 결혼까지 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가 얼마나 오묘한가?

9>.기도는 하나님만 주목함이다.

기도는 하나님 들으시라고 하는 것이다. 기도에 사람은 필요 없다. 우리가 교회에 왔을 때 일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이고, 사실상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은 자칫 잘못하면 이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믿음을 추구하기 쉽다.

사람 의식하는 일, 직분 의식하는 일, 환경 의식하는 일 등에서 가식과 외식이 나온다.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 눈치 보며 살아라. 이것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날 때 가능한 일이다.

요셉을 보라. 창39:8-9절에,“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 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 하였어도 금한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아무도 보지 않고 혼자 있을 때에도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았다. CORAMDEO(하나님 앞에서)의 정신이 충만했다.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훌륭한 자가 참 대장부이다.

10>.기도 중단은 가장 큰 죄악이다.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이 계속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늘 계속하던 철야기도회를 없애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기도 하기를 싫어하는 모든 교인들이 다 찬성하는데, 그 중에 단 한 명의 성도가 그러면 안된다고 교회에 강력하게 건의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 혼자서 철야기도를 했다. 주일 아침에 어떤 사람이 빈정거리며 물었다.

“그래! 철야기도회에 사람들이 많이 나왔어요?”

“네! 아주 많이 나왔어요. 저는 큰 힘을 받았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어제 당신 혼자 기도 했다는데...”

“물론이지요. 그러나 저와 함께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도 기도하셨는걸요? 천군천사들도 함께 기도하구요. 그러면 충분하지 않아요?”

11>.중보기도(도고)는 능력 사역의 원천이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스펄전이 어느 날 한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 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교회 지하실에서 언제나 저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300 여 명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할 때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나를 위하여 기도와 간구로 능력을 입게 해 줍니다.”

유명한 영국 고아의 아버지라는 죠지 뮬러는 일생 동안 2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 그는 고아들과 함께 빈 접시를 놓고 기도하여, 응답 받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친한 3 친구를 위하여 기도했는데, 한 친구는 즉시, 한 친구는 3년 후, 한 친구는 죽을 때까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는 뮬러의 장례식에 와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다. 뮬러는 자신의 눈으로 친구의 구원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셨던 것이다.

뜻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드려야 할 기도는 하나님의 시간 계획의 때가 되었을 때에 응답되는 것이다.

12>.기도는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해야 한다.

24절에,“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어느 외진 수도원에 새로운 수도원장이 부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수도원의 수사들은 영성이 형편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은 서로 하지 않으려 하고, 교만해서 남을 다스리기만 좋아했다. 하루는 남루한 낡은 수도복을 걸치고, 어떤 수도사가 수도원 문을 들어 섰다. 대뜸 이들은 어디 지나 가는 수도사가 방문한 줄 알고 잡아다가, 부엌에 보내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러는 사이에 석 달의 세월이 흘렀다. 아무리 기다려도 수도원장이 오지 않아서 문의를 했더니, 수도원장은 이미 3개월 전에 부임했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들은 그제서야 큰 일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수도원장에게 가서 백배사죄를 했다. 그 후에 수도원의 기강이 바로 잡히고, 모든 수사들이 겸손과 섬김을 실천했다는 훌륭한 예화가 있다.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온전히 맡기고 사는 삶의 지혜를 보여야 한다.

13>.오직 믿음으로만 기도하라.

조용기 목사의 神癒(신유)에 관한 말이 참 의미심장 하다.

“참 많이 낫기도 하고, 안 낫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낫는 것만 말할 뿐입니다. 낫는 것만 생각할 뿐입니다. 낫지 않고 치유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전쟁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첩경이 기도이다. 정말 한번 붙어 볼 만한 영적 전쟁이다.

14>.기도 응답의 행복을 맛 보라.

사람은 경험의 존재이다. 기도 속에 행복하라. 기도하다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고, 즐거워 하라.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스스로 기쁨을 누리라.

지금은 처녀인 제 딸이 초등학교 1-2학년 때 한번은 공부를 검사하는데, 배를 잡고 웃을 일이 있었다.“병원이 없는 섬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원처럼 꾸민 배를 무엇이라 합니까?”

“해적선!”

“태풍의 위험을 무릎 쓰고 병원선을 타고 와, 만규의 병을 고쳐준 의사 할아버지에 대한 느낌을 10자로 써 보세요.”

“ 고마워서 미치겠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자녀가 하는 일은 이렇게 엉터리라도 기분 좋다. 사랑스럽다.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즐거워 할 수 밖에 없다.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주님 당신이 좋고, 주님의 일이 좋고, 주님 집이 좋고, 목사님이 좋고, 성도들이 좋고, 모든 것이 무조건 좋다. 어린아이처럼, 철 없고, 순수한, 사모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신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니라.”

기도 속에서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기라.

15>.염려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6)아무 것도 염려(念慮)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祈禱)와 간구(懇求)로, 너희 구(求)할 것을 감사(感謝)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신다. 성도는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성숙함이다.

어떻게 염려하지 않게 되는가?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때 염려하지 않게 된다.

2.“오직”-“유일한 방법”이란 뜻이다.

3.“모든 일에”- 인생의 모든 일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 속에 들어 오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

4.“기도와 간구로”- 일반기도와 특별기도를 하라.

5.“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하기 위하여 눈을 감으면, 제일 먼저 감사가 나와야 한다. 형식적인 감사가 아니라,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의 심정이 있어야 한다. 구하는 모든 기도 제목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6.“하나님께 아뢰라.”- 기도의 응답 여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맡기라. 떠났다. 이미 활을 떠난 화살이다. 하나님께 건너 간 것이다. 기도했으면 이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내가 간구한 문제는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평안이 차고 넘친다.

16>.기도는 인내의 전쟁이다. 조급함을 버리라.

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 똑 같이 큰 기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 기도의 지속적인 인내, 많은 양의 기도가 필요하다.

기장의 총회장을 역임한 구룡포 석병교회 이훈 목사는 양로원 하나를 두고,“10년 기도하리라. 안되면 평생 하다 가리라.”했다. 이 작고 끈질긴 욕심 없는 작은 헌신, 충성, 희생의 삶과 기도가 필요하다. 석병교회 당회는 별칭“똥 치는 당회”이다. 교회 변소 칸이 72개이다.

살전5:17절의“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신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축복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쉬지 말고 일하라.”하신 구절은 없다.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지, 주님의 뜻은 아니다. 주님은 6일만 일하고 하루는 쉬라고 하셨다.

이런 멋있는 말이 있다.“우리가 일할 때 일하는 건 우리!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일하는 분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Douglas Stimers는 이렇게 말했다.“당신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을 잘 먹이셔야 합니다. 영혼이 배 고프다고 이 세상의 주전버리로 채우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생명의 떡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요16:24절-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렘33:3절-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엡3:20절-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요15:7절-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 응답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약4:3절-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시66:18절-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 하시리라.

17>.부부 사이가 행복해야 기도가 응답된다.

엘가나의 훌륭한 점은 연약한 아내 한나를 깊이 사랑한 것이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했다.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자는 온전한 여자 대우를 받지 못하던 시대에 그는 한나를 끔찍히 사랑하며, 아꼈다.“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참으로 아내를 사랑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가장 못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교회를 세울 수 없다. 남편과 아내,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곧 예수님과 교회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부부관계가 가장 이상적일 때 신앙과 교회생활이 바로 이해가 된다.

18>.기도는 질이 아니라 양이다.

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듯이, 큰 기도는 질이 아니라 양으로 하는 것이다. 주님 앞에 오래, 많이 앉아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가장 빨리 간다.

조용기 목사는 개척 초기에 하루에 5시간씩 기도했다. 평생을 3시간 이하로 기도가 내려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하루에 3시간 이상은 기도한단다. 윤석전 목사는 하루 종일 기도한다. 어쨎든 간에 주님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

1.기도시간을 비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기도 장소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2.기도의 영, 간구의 영을 받아야 한다. 이는 오래 앉아 있어야 받는 것이다. 기도의 기름 부음은 다른 왕도가 없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는 네 보물도 있느니라. 성령님은 중심을 살피는 분이시다. 그 분께 집중해야 한다. 그 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19>.하나님과의 깊은 영교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은혜 받고, 성령 받은 이후 저는 10번 기도하면 9번은 응답 받는다. 그리고 방언 통역과 예언과 영 분별,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응답 여부를 미리 안다.

우리 집사님 한 분은 제 음성만 들으면 아프던 몸이 나아 버린다. 끔찍한 두통이 목사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씻은 듯이 물러 가 버린단다.

깊은 기도는 신령한 체험을 하게 한다. 나는 기도 중에“지옥 입신”체험을 했었다.

응답을 확신하고, 기도하라.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응답을 믿고, 염려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빌4:6)아무 것도 염려(念慮)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祈禱)와 간구(懇求)로, 너희 구(求)할 것을 감사(感謝)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0>.방언기도 하라.

방언은 능력 있는 기도의 출발점이다. 방언을 못하면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 다음에라야 묵상기도, 관상기도, 영교기도, 대화기도에 들어 간다.

묵상기도는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아니하고, 깊은 묵상 속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묵상기도에는 생각의 집중이 정말 중요하다. 이 기도는 나 홀로 있을 때에 가장 적합하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골방에서, 기타 개인적인 가정 기도시간에 가장 적합한 기도가 묵상기도이다. 교회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묵상기도는 기도의 마지막 경지이며, 높은 경지의 기도이다. 묵상기도의 내용들은 메모로 남겨 두면, 최고의 깊은 영감이 우러 남으로, 영성훈련의 좋은 지침서가 된다.

통성기도는 마음의 생각을 입술을 통하여 소리로 드리는 기도이다. 통성기도는 잡념이 들지 않고 집중이 잘 되며, 시인하는 기도이므로, 응답에 가장 신속하다. 신앙이 깊지 않은 초신자 들은 이 기도를 통하여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앙이 깊은 신자들도 통성기도에 익숙해져야 한다. 공동체의 예배에 가장 적합한 기도 방법이다.

금식기도는 우리의 인격이나 내면, 아름다운 생활을 훈련 시키거나, 크고 위급한 문제가 닥쳤을 때에, 또는 육신의 정욕을 억누르고 변화를 시도할 때에 가장 적합한 기도이다. 금식은 기도의 칼날을 예리하게 갈아 주며, 고도의 집중력을 제공한다. 금식기도는 기도의 꽃이다. 이것은 정말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도의 능력이다. 그러나 일반사람들도 정말 이 기도를 수시로 해야 한다. 금식기도는 가장 강력한 기도이다. 능력과 은사와 축사 등에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방언기도는 성령 충만을 받은 자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방언기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성령이 간구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다. 인간의 제약과 연약함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들어 갈 수 있게 한다. 100% 응답 되는 기도의 최고봉이다. 나는 오랜 기간을 시련과 연단을 통해 이러한 기도의 순례를 거쳐, 기도의 용사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관상기도를 배웠었다. 이는 말씀을 깊이 응시하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 속으로 내가 직접 들어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중요한 기도를 말씀하려 한다. 그것은 쉬지 않는 기도이다.

자기의 마음을 지켜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의 기도 분량을 지켜 나아 가는 쉬지 않는 기도의 영성 훈련이 정착되어야 한다. 쉬지 않는 기도를 하려면 일상기도가 습관화 되어야 한다. 새벽기도, 저녁기도이다. 구약의 제사 중에 매일 드리는 상번제가 있다. (민28:23)아침의 번제(燔祭) 곧 상번제(常燔祭) 외(外)에...

매일 매일 기도 무릎이 없으면 마음에 가시가 돋는다. 혈기, 미움, 분노, 시기, 질투, 다툼...... 말이 거칠어지고, 사람이 사나워진다. 기도 무릎이 없으면 기도가 낯설다. 입에 뻣뻣해진다.

이 모든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을 통해 응답을 받으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목적을 말한다면,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들이기 위해, 죄사함의 확신을 위해, 영생의 믿음을 얻기 위해, 인생의 짐을 덜기 위해, 질병에서 고침을 받기 위해, 마귀를 대적하고 소탕하기 위해, 시험 당할 때에 이기기 위해, 축복의 문을 열기 위해, 은사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성령으로 오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 기도한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21>.겸비와 회개의 기도를 올리라.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국가적으로 회개기도 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죄를 회개하고, 예배 드리고, 기도 드려야 하나님의 재앙이 그친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22>.금식하며, 기도하라.

(눅 2:37) (안나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끊고, 자유를 주며, 죄악이 떨어져 나가게 하고, 내적 상처가 떨어져 나가게 하며, 성결하게 한다. 권능을 준다. 영권의 온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폭발한다.

(사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壓制) 당(當)하는 자(者)를 자유(自由)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제 기억에 너무나 선명한 금식기도의 은혜 체험 중에 몇 가지가 있다.

어느 31일 금식을 할 때에 기도제목이“한국교회를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이름하여“한국교회를 위한 31일 작정 금식 금족기도”였습니다. 성전 강대상에서 자며, 31일 동안 3층에서 한 발자욱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은혜로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또 두 번째 41일 금식기도할 때, 12일 만에 시편84:5절의“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주(主)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大路)가 있는 자(者)는 복(福)이 있나이다. 그 때 하나님이“16차선의 하늘고속도로”를 제게 뚫어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늘나라에서 부두의 콘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것 같이, 하늘 트럭이 즉시로 출발하도록 부릉 부릉 항상 시동을 걸고 있는 상태의 환상이었습니다. 신속하게 하늘의 화물을 나르기 위하여 1, 2차선도 아니고, 무려 16차선의 하늘고속도로가 뚫린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정말 제게는 핍절함이 없는 기적이 연속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2-3가지의 기적이 언제나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물질, 마음, 가정, 교회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또 언젠가의 금식기도는 제 교회에 놓여진“식빵의 환상”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제 교회의 의자들에 식빵들이 착착착 놓여지더니, 사람들이 착착착 들어 와서 빽빽이 앉기 시작하는데 순식간에 온 자리에 차고, 강대상, 복도, 1, 2, 3층, 나중에는 교회 앞 삼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어 교통이 온통 마비되어 버리는 환상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그 꿈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기도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이 제게 폭발적 부흥을 주실 그 날을 꿈꾸고, 또 꿈꿉니다.

조용기 목사가 불광동에서 천막교회를 개척할 때에 눈을 감으면 천만 사람이 운집한 것이 보이고, 눈을 뜨면 빈 공간의 가마니떼기만 보였다더니, 저도 이 환상을 본 이후에는 자나 깨나 그 속에 젖어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의 기도는 간암에 걸린 최향희를 위한 51일 금식기도입니다.

두 번의 41일 금식기도를 하고는 하도 무서워서, 마지막 3번째는“언제 이 무서운 금식기도를 하나?”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느닷없이 최향희를 붙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하여 하기 바랐던 3번째 금식기도는 엉뚱하게 남을 위하여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41일을 작정하고 기도를 끝냈는데, 병원에 갔더니 아가씨의 간암은 더욱 커져 버렸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커서 금식을 풀지 못하고,“굶어 죽으리라”하고 계속 갔던 것이 그만 51일까지 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최고 장기금식 기록은 태백기도원(소원의 항구) 원장의 53일 기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남 양산 내원사의 어느 여승은 80일 이상을 했더군요. 제가 그 기도원장을 이기고 싶어 55일을 작정했는데, 하나님이 교만 그만 부리라고 하셔서 끝냈습니다.

기적은 그 후에 일어 났습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던 아가씨가 5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소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눈물 나는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3>.성령 받기를 기도하라. 성령으로 기도하라.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라. 성령기도 하라.

방언기도, 은사기도, 이성을 넘어 가는 기도, 영 분별, 환상, 투시, 영안, 예언, 방언 통역,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기도이다.

(행 8:15) 그들이 내려 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24>.가장 중요한 7대 기도제목:

1>.지켜 주옵소서.

2>.인도 하옵소서.

3>.가르쳐 주옵소서.

4>.도와 주옵소서.

5>.축복 하옵소서.

6>.함께 하옵소서.

7>.평강하게 하옵소서.

25>.기도의 자세

1.목표를 분명히, 2.말씀을 따라, 3.회개와 용서의 마음으로, 4.믿음으로, 5.성령의 도우심을 구함으로, 6.뜨거운 마음으로, 7.확신으로, 8.감사함으로, 9.구체적으로, 10.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수원 침례교회 김장환 목사님과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은 절친한 사이이다. 교세는 3,000명 대 70만명이다. 김장환 목사님이“조목사! 내가 당신보다 못한 게 뭐야? 나는 영어도 당신 보다 잘 해! 내 마누라는 미국 사람이고, 나는 미국에서 자랐고, 공부도 내가 더 많이 했고...... 그런데 왜 목회는 당신이 더 잘 해?”

조목사님이 대답했다.“당신 기도는 얼마나 해?”“하루 대강 30분 하지!”“나는 3시간 해!”“뭐 그리 할 말이 많아!”“이 사람아! 할 말이 많고 적은 게, 바로 당신하고 나의 차이야!”

기도할 그 때의 내 기도 내용을 살펴 보라. 그것이 바로 나의 영성 수준이다.

우리는 모임에 힘써야 한다. 특별히 기도 모임이 힘써야 한다. 모이는 그 곳에 은혜가 있고, 열심히 모이는 그 곳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 난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사탄의 가장 원하는 바이다.

어느 개척교회 목사가 교역자 모임에서 주관하는 태국 관광을 갔다.

한 코스에 갔더니 코끼리 조련사가 손에 금덩이를 하나 쥐고서, 누구든지 코끼리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에게 이 금덩이를 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는데, 이 개척교회 목사가 자기가 해 보겠다고 나섰다. 그는 코끼리 귀에 대고 뭐라고 한참을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만 코끼리가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조련사가 금덩이를 주면서 뭐라고 얘기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개척교회를 하면 고생한 얘기들을 몇 가지 해 주었더니 코끼리가 운 것이라고...

이번에는 조련사가 코끼리 앞 발을 들게 하면 금덩이를 하나 더 주겠다고 했다. 개척교회 목사는 그건 쉽다고 했다. 그는 코끼리에게 다가가 한 마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코끼리가 앞 발을 번쩍 들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야 간단하지요. 야! 코끼리야. 너도 개척교회 한번 해 볼래! 했더니 앞 발을 번쩍 들었다고......

개척교회 목회가 얼마나 힘들며, 얼마나 교회를 세우는 것이 힘든가를 알게 해 주시는 말씀이다.

교회는 기도를 먹고 자란다. 성도는 범사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야 한다. 기도가 살아 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저력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으로 끌어 오는 유일 무이한 방법이다.

26>.주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기도 응답)

하나님은 정말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합당하게 행하고, 의롭게 살고, 믿음이 좋기 때문에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영혼과 삶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 응답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지 가장 분명하고, 가장 적절하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심을 알아야 한다. 만일에 우리 욕심대로 기도가 다 응답되었다면, 마치 어린 아이에게 칼을 쥐어 주는 것처럼 우리는 벌써 다 망하고, 이미 죽고 말았을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절)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의 응답이 없고, 현실이 답답할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부르 짖으며 기다리시기 바란다. 우리의 믿음의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인내 후에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에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응답하실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내 시간 계획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현재 내게 좋은 것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사를 다 아시는 하나님의 합력 선의 역사를 따라 응답된다는 사실을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은 오로지 간구할 바를 간절히 기도해 놓는 일이다.

<1>.먼저, 신속하게 응답해 주시는 기도가 있다.(Yes의 기도)

당신이 급한 것은 소용이 없다. 온전한 말씀 순종과 성령의 사람이 됨으로, 하나님을 급하시게 하라. 온전한 말씀 순종의 사람, 성령의 사람 만이 하나님을 급하시게 만들 수 있다. 이 기도는 위급할 때, 들어 주시지 않으면 안될 때, 외면 하시면 당신의 아들 딸인 우리가 위험이나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이나 곤경에 빠지게 될 때, 기도 드리는 그 즉시 바로 응답하시는 경우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 자녀들을 즉시 즉시 기적적으로 도우시는지 아는가?

1>.새성교회를 개척하여 이사를 할 때, 상계동 이 곳에 와서 집을 구하게 되었다.

2>.이등병 때 100킬로미터 행군을 하게 되었다. 서울 원당에서 걷고 또 걸어, 27시간 만에 산정호수 밑에까지 왔다. 명성산 옆에 승진훈련장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하나님! 저는 이제 무릎이 망가지고, 배가 고파서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습니다. 제게 건빵 한 봉지만 주세요.”

기도가 끝난지 1분도 채 안되어서 60 트럭이 먼지를 휘날리며 제 앞을 휙 하니 지나 갔다. 선탑자는 우리 중대장이었다. 불과 10여 미터, 선두 맨 앞에 차가 서더니, 차례대로 건빵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3>.하나님은 1초란 시간의 차이로, 우리의 생명을 간발의 차이로 건지신다. 무궁교회에 부임하여 첫 주 심방을 할 때, 갓 면허증을 딴 나는 운전이 미숙하여 브레이크와 악세레다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할 때였다. 그런데 이런 나의 차 밑에 아이의 자전거가 들어 갔다. 브레이크를 잡고 급정거 한 후 권사님이 내려 가 보니, 아이의 머리가 앞 바퀴 바로 앞 30 Cm 거리 땅바닥에 닿아 있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30 Cm의 간격으로 한 어린 아이를 살리셨다. 나를 살리셨다. 그래서 그 교회 부임 첫 설교 제목이 <30 Cm의 간격>이었다.

4>.군에서 주일 저녁 8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소대 내에 장비 분실된 것이 많다고 해서 고참들이 직싸게 두들겨 맞았다. 그러니 중고참들이 또 전 소대원들을 일제히 검열하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저는 당시에 방독면을 분실한 상태였다. 방독면은 당시에 서울 남대문에나 와야 구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저는 간을 졸이며, 맨 졸병이라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제 앞 줄의 일병 하나가 구급대 하나가 없다고 해서 야삽으로 맞는데, 때리는 놈이 얼마나 무지 막지한지 그만 쫙 뻗어 버렸다. 잘못 맞아서 엉덩이 뼈를 쳤는데, 3일 동안 발발 떨며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맞는 장면을 본 나는“오늘 나는 죽었구나.”생각했다. 때리는 놈이 바로 내 앞까지 왔다.

그런데 때리는 고참의 동기가 되는 사람이 갑자기 제 앞에 오더니“야! 배종부. 너는 주일인데, 왜 교회 안가? 빨리 가 임마!”했다. 나를 맞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배려해 준 것이었다. 위기를 벗어나 교회에 갔다. 그 시각이 정확하게 저녁 8:25분!

<2>.뜻을 정하여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들어 주시는 것이 있다.(Wait의 기도)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즉시 즉시 다 들어 주시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도는 한 두번, 하루 이틀 만에 들어 주시는 기도가 아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하루에 3번씩 동쪽 창을 열고 고국을 향하여 기도했다.“해방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 가게 해 주옵소서.”21일 만에 다니엘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 이는 실로 70년 만에 이루어진 기도였다.

십자가를 지는 주님의 기도는 일평생 계속된 기도였고, 기도의 응답과 함께 주님은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뜻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드려야 할 기도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에 응답되는 것이다.

<3>.거부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기도의 응답이 있다.(No의 기도)

이것이 가장 크신 기도 응답의 은혜이다. 깨달음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는가?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고, 또는 지연되면서 깨닫게 하신 이후에 응답하시는 기도의 경우가 있다. 이 깨닫게 하시는 기도는 우리의 죄악과 잘못된 삶을 청산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며, 겸손하게 하며, 회개하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알게 한다.

욥의 고난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주는가? 욥은 고난 중에서 계속 주님께 부르짖는다.

“주님! 왜입니까? 저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고난을 당해야만 합니까?”

욥기 마지막에 가서야 주님은 응답하신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너를 단련 시켜 정금 같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고난 속에서 깨달은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절)

고난에는 하나님의 주옥 같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낙심치 말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한다.

위급할 때는 급하게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뜻을 정하고 기도해야 한다. 일생이 걸린 문제는 뜻을 정하고 오랫 동안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야 한다.

앞 날을 두고, 우리 모두 차분히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우리 계획대로 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야 한다. 덤벙 덤벙 할 일이 아니다.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삶의 역경과 고난이 파도칠 때 우리는 미련한 곰처럼 처신해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다 듬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추구하는 자가 되라.“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6:9절)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을 넘치는 기도 응답과 주님 만남을 통해 살아 있는 믿음의 길에 정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모래 위의 발자욱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님과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 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짝의 발자욱을 보았네.

한 짝은 내 것,

또 한 짝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욱이 멈춘 곳에서...

내 삶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삶의 길에

오직 한 짝의 발자욱만 보았네.

그 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픈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보십시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그 때 거기에는

한 짝의 발자욱 밖에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지요?”

주님께서 대답하시었네.

“나의 소중하고 귀한 자녀여!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를 결코 떠나지 않았단다.

네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발자욱 그것은

내 발자욱이니라.

그 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2.왜 성령신앙인가?

1.왜 성령신앙인가?, 행전2:1-4절

1>.영적 낙제 수준의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10점 정도)

약 20% 의 교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 년에 교회를 두 달도 채 나오지 않는다. 목사는 이들을 이끄는데, 목회력의 30%를 거의 다 소진한다.

2>.평균적인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30점 정도)

구원의 확신은 있으나, 빈 쭉정이 들이다. 일생에 몇 번 쯤은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어 보려 하나,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런 성도의 수는 약 50%이다. 목사는 이들에게 목회력의 40% 정도를 소진한다.

3>.육신적인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50점 정도)

이들은 외관상으로 전적인 헌신자 들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3년- 5년- 7년- 10년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탈진하기 시작한다. 승리감이 없다. 패배감이 든다. 영적으로 방황한다. 은혜를 찾아 헤맨다. 아무리 애써도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주님과 실제로 교제함이 없다. 끝없이 은혜를 찾아 방황한다. 뭔가가 더 있는데 찾지를 못한다. 심지어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는 영적 방황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교회에서, 다시 출발하여, 더 열심을 내어 보지만 역시 결과는 같다. 그는 자아의 힘을 극한까지 다하여 스스로의 영성을 밀어 올린다. 그러나 역시 허무와 공허 뿐이다. 율법과 짐을 더욱 더 느낄 뿐이다. 마음 속에 진정한 행복, 기쁨, 평안, 삶의 만족감, 영적 충족감이 없다. 영적인 세계가 도무지 열리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신앙의 뿌리가 성령이 아닌, 육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들을 위해 목회력의 약 20%를 소진한다. 이들은 교회 안의 최상층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30-35 % 정도의 신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4>.신령한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80점 이상)

이 그룹이 영적 성인으로 성숙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는 봉사, 충성보다, 자신의 영적 성장의 원리를 바로 붙든 사람이다.“무엇을 할 것인가?”보다,“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 들이다.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의 살아 있는 실제적인 교제가 있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충만함, 기쁨, 평안,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음, 하늘에 대한 소망, 영적인 것에 대한 실제적 체험, 일상의 것들을 채우시는 하나님 경험, 기적의 경험, 성령의 역사와 은사의 일상적 체험... 등이 생생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하나님께 훌륭하게 쓰임 받는다. 성령님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서 동행하시며, 인도하신다. 그의 영혼을 늘 그것을 느끼고 누린다. 그의 가치관은 세상에서 떠나 언제나 하늘에 가 있으며, 그의 목표는 영적인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경이, 놀람, 능력, 기적, 권능, 은사...의 삶이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신앙의 뿌리가 자아에 기초한 육에 있지 않고, 영에 기초한 성령께 닿아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 가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걸어 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힘으로 밀어 올리는 율법적 신앙생활이 아닌, 성령 안에서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범사에 그리스도의 삶과 동일시 되며, 성령의 사람이 된다. 그에게는 갑자기 풍성한 성령의 삶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자기 안의 그리스도가 살기 시작한다. 갈2:20절의 삶이 나온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肉體)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爲)하여 자기(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면, 마음 속의 넘치는 기쁨과 평안 때문에 때때로 황홀경 속에 들어 가기도 한다. 병 고침, 성령의 은사, 역사, 기름 부음, 능력 행함, 기적 들이 주변에서 수시로 일어 난다.

그러나 이런 사람 역시 항상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니다. 자아가 다시 살아나 영적으로 내리막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주목하고, 성령 충만함을 지키기 위하여 성령님께 복종하면 나날이 성령 충만한 삶이 진보한다. 그는 매일, 매 순간 성령님을 주목하여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힌 몸임을 확인한다. 자기 부인이 계속된다.

그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경험하며, 나날이 거룩하게 변해져 간다. 그리고 승리를 향해 다가 간다. 매 순간 항상 그의 자아는 죽음에 넘겨져야만, 영적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이 때 성령 충만한 그의 영적 점수는 90점-95점 대로 상승한다. 거의 그리스도와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죄와 무관한 삶을 살게 된다. 마음 속에 죄악을 생각만 해도 성령님의 탄식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성화란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내 속에서 이루어지고, 삶으로 살아지는 역사이다.

이런 사람은 교인 비율상으로 5% 미만이다. 아니, 2-3%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2.성령 세례(행전2:1-4절)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예수님의 경우 성령 세례는 어떻게 나타 나셨는가?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태어 나시고, 성령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신 후에 사역을 시작하셨다.

온통 성령 자체이신 예수님에 임한 성령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한 신앙생활과 사역을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 세례 이후에 놀라운 공생애를 비로소 시작하신 것이다. 성령 세례 이전의 30년은 그냥 한 인간으로 묻혀 있다.

2>.사도들의 경우 성령 세례는 어떻게 나타 났는가?

1>.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반을 살았다. 그러나 성령이 나타 나시지 않았다. 그들은 사역의 실패자 들이었다. 갈릴리신학대학을 나와도 안된다. 예수님께 직접 3년 반을 배워도 안된다.

성령 받기 전에는 사역하지 마! 개척 나가도 안돼! 실패야!

2>.그 다음, 부활하신 주님께 40일을 더 배웠다.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40일 간을 보충수업을 해도 안돼!

3>.그리고“몇 날”이 지났다.

행전11:15절,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 세례 -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聖靈)이 저희에게 임(臨)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행전2:38-41절, 초대 교회의 폭발 - (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悔改)하여 각각(各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받고, 죄(罪)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聖靈)을 선물(膳物)로 받으리니, (39)이 약속(約束)은 너희와 너희 자녀(子女)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主)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者)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또 여러 말로 확증(確證)하며 권(勸)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悖逆)한 세대(世代)에서 구원(救援)을 받으라 하니, (41)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洗禮)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弟子)의 수(數)가 삼천(三千)이나 더하더라.

오순절 성령 세례를 단회적 사건, 지나간 사건이라고 말하는 신학은 오류이다. 성령세례는 계속되는 사건이다. 이것이 성령의 나타남의 관건이다.

2004년 3월! 배종부 목사가 성령 세례 받은 그 날! 이렇게 울면서 기도 드렸다.

“주님! 이제는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 더 이상 물러 설 수도 없고, 물러 설 형편도, 처지도 아닙니다. 저는 마지막 선까지 밀려 나간 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길도 없습니다. 여기서 죽기를 각오하고, 이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나의 탈진한 심정, 무너진 경제와 목회, 새로운 길을 찾음, 환경과 여건 등을 바라 봄은 이제 그만 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 보고, 성령의 권능으로 일어 서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걸어 가게 하옵소서.

그 분을 너도 똑 같이 모셔라. 시대는 변했으나 그 분은 성경에 나타 나신 그대로이다. 모세도, 사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도, 사도 바울도 다 갔으나 이 시대에 빛을 밝히는 소명을 갖고, 내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이 시대의 하나님의 대안이며, 희망이며, 소망이며, 능력이며, 성령의 대변자이다.

네게 성령 세례의 그 날이 있느냐?

2004년 3월 초의 어느 날!

이전부터 오랫 동안 뭔가 툭 하고 터지려는 느낌을 들더니, 나는 드디어 성령 충만함 속으로 들어 갔다. 나에게는 예전에 방언 받을 때 성령 세례가 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2004년 3월에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 속으로 동시에 들어 간 것이다.

성령 세례는 일순간에 받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지속적인 일정 기간을 두고 받는 사람도 있다. 구원, 중생과 성령 세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은사를 받았다고 성령 세례 받은 것이 아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 말고, 직접 경험했느냐가 중요하다.

너도 사도행전을 경험했느냐?

왜 너의 개인적인 성령 체험이 교회 부흥으로 이어지지 않느냐?

왜 네게는 성령님이 나타 나시지 않느냐?

성령 세례가 임하는 경우:

1>.말씀을 듣는 중에 - 고넬료 가정의 경우

2>.안수 받을 때 - 사마리아 교회와 에베소 교회의 경우

3>.기도할 때 -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양수리 기도원에서 000 목사의 설교 도중에 찬양을 하는데 찬양이 충만해지니, 귀신 들린 여자 둘이 나왔다. 내가 먼 거리에서 축사(逐邪)했더니, 극심하게 이상한 몸짓을 하다가, 강대상에 쓰러져 버렸다.

왜 성령신앙인가?

(행1:4) 사도(使徒)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約束)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洗禮)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聖靈)으로 세례(洗禮)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主)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自己)의 권한(權限)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聖靈)이 너희에게 임(臨)하시면 너희가 권능(權能)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證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9)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사역 전체가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눅 4:14)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 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2.성령으로 영계가 열리며, 귀신들이 나가기 때문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3.위대한 주의 종들은 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 들이기 때문이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 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4.성령으로가 아니면 믿음도,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5.우리의 신앙과 사역과 교회 섬김과 전도도 다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성령을 훼방하고는 신앙생활도, 주의 일을 할 수 없으며, 성령으로 비로소 영적 사역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며, 알며, 가르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눅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행1:4) 사도(使徒)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約束)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洗禮)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聖靈)으로 세례(洗禮)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딤후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6.성령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성령이 없는 자는 곧 진정한 신앙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행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성령으로 은사와 권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8.성령 충만해야 진정한 주님의 충성된 헌신적인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9.인간의 계획과 경영은 모두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에, 오직 성령으로만 나아 가야 한다.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갈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聖靈)을 좇아 행(行)하라. 그리하면 육체(肉體)의 욕심(慾心)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肉體)의 소욕(所慾)은 성령(聖靈)을 거스리고, 성령(聖靈)의 소욕(所慾)은 육체(肉體)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對敵)함으로 너희의 원(願)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萬一) 성령(聖靈)의 인도(引導)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律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0.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지시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과 음성을 그대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14:26) 보혜사(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聖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 가,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계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1.성령과 성령 신앙 만이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며, 실제적인 간증과 증거와 전도도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 15: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12.성령으로 구원과 영생, 은사와 권능, 모든 하늘의 것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3.범사에 성령이 친히 도우시기 때문이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14.성령으로만 진정한 주의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롬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15.성령님 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 신령한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6.우리가 성령의 것이며, 성령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요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7.오직 성령으로 행하고, 육체로 행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8.성령을 소멸하거나 모독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히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성령님의 역사와 은사

1>.성령님은 누구신가?

1.성령님은 인격이시다.

요14:16-17절 - (16)내가 아버지께 구(求)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永遠)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저는 진리(眞理)의 영(靈)이라.

세상(世上)은 능(能)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居)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성령님은 영이시다.

(요4:24)하나님은 영(靈)이시니, 예배(禮拜)하는 자(者)가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예배(禮拜)할지니라.

(고후3:17)주(主)는 영(靈)이시니, 주(主)의 영(靈)이 계신 곳에는 자유(自由)함이 있느니라.

*영혼육의 사람:

<1>.육으로 사는 사람 - 먹기, 잠자기, 성욕 채우기, 육신의 정욕 채우기...

(요일2:16)이는 세상(世上)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肉身)의 정욕(情欲)과 안목(眼目)의 정욕(情欲)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世上)으로 좇아 온 것이라.

<2>.혼으로 사는 사람 -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채우기, 정신적 유희 즐기기, 지식의 우상화, 세상의 사상과 이론, 철학의 노예...

(골2: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擄掠)할까 주의(注意)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遺傳)과 세상(世上)의 초등학문(初等學問)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3>.영으로 사는 사람 - 신앙의 삶, 은혜의 삶, 성령의 사람...

(갈6:8)자기(自己)의 육체(肉體)를 위(爲)하여 심는 자(者)는 육체(肉體)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聖靈)을 위(爲)하여 심는 자(者)는 성령(聖靈)으로부터 영생(永生)을 거두리라.

3.성령님은 보혜사(도와주시는 분)이시다. 모든 영역에서 나를 도우신다.

*성령의 삶의 3대 요체 - 성령 주목, 성령 동행, 성령 충만

1>.거듭나게 하심 - (요3:5)예수께서 대답(對答)하시되 진실(眞實)로 진실(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聖靈)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2>.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 - (롬8:13)너희가 육신(肉身)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靈)으로써 몸의 행실(行實)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靈)으로 인도(引導)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3>.영적 가족이 되게 하신다 - (롬12: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肢體)가 되었느니라.

4.성령님은 은사를 부어 주신다.

우리가 능력있는 영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예:기도-일반기도와 방언기도)

2>.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성령님의 3대 역사)

성령님은 3가지 방면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in, by, on)

<1>.내 안에 계신 성령님: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절)

기타 갖가지 아름다운 인격적 열매:선행, 구제, 섬김, 궂은 일 감당함, 충성함, 성실함, 진실함, 양심적임......

인격적인 열매가 바로 은사로 쓰인다.

섬김(사역)의 은사(gift of service)

권위(권면,믿음의 격려)의 은사(gift of exhortation)

구제(기부,관대한 행위,나눠줌)의 은사(gift of giving)

긍휼(동정,슬픈 자를 위로함,친절을 베풂)의 은사(gift of mercy)

지혜(권면,말,성령이 그 때 그 때 가장 필요한 지혜로 주시는)의 말씀의 은사(gift of wisdom)

서로 돕는 은사(gift of helping)

목사(하나님의 백성을 돌봄)의 은사(gift of Pastor)

청빈의 은사(자발적 빈곤)(gift of poverty)(고전13:3절)

후한 대접의 은사(gift of hospitality)(벧전4:9절)

중보기도의 은사(gift of intercession)

<2>.내 곁에 계신 성령님:

대화, 교통, 인격적 교제, 인도하심, 동행하심, 가르치심, 생각나게 하심, 깨닫게 하심, 강권하심......

내 곁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에서 성령님은 최고의 인격적 관계로 모셔야 할 내 생애 최고의 주인이시다.

그 분을 늘 의식하고 복종하는가? 그 분을 진정으로 의식하고, 복종하는 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며, 함부로 죄짓지 못한다.

육의 사람은 늘 눈에 보이는 것만 의식한다.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늘 의식하고, 그 분과 동행하며, 절대 그 분에게 거역하거나 불복종하지 않는다.

1.늘 대화하라.

2.늘 배려해 드려라.

3.늘 사랑하라.

4.늘 마음으로 신경을 써 드려라.

5.배신 않고, 죄짓지 않고, 마귀에게 속하지 않아야 한다.

6.최선을 다하라.

7.늘 복종, 순종하라.

8.그 분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라.

9.성령님께 다 맡기라.

10.그 분께 세세히 다 말씀드리라.

11.비전을 의논하라.

12.사람을 위해 그 분과 의논하라.

사랑하는 이, 아픔과 고통을 주는 이, 미움을 주는 이...

성령충만해지면 사람에 대한 미움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13.생각나는 대로 범사를 성령님과 함께 나누라.

성도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옵소서.

성령충만해지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교우, 친구가 원수가 된다. 영적 전쟁에 실질적으로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시험을 주고, 믿음을 식게 만들고, 은혜를 소멸시킨다. 이 모든 일에서 조심하고, 경계하고, 기도하고, 초월해 넘어가야 한다. 사소한 감정적 굴곡의 부딪침의 단계를 훌쩍 넘어서, 바다 같이 넓은 성령의 마음으로 변해 버려야 한다.

<3>.내 위에 계신 성령님:

사역과 직분 수행을 위한 재능과 능력과 열정과 은사 - 목사가 은사와 능력을 받지 못하면 교인들은 구경꾼이 되고, 목회는 비참하게 된다. 부흥과 성장은 없고, 사람들은 방관자, 구경꾼이며, 시들 시들하고,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는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은사는 교회 부흥과 직결되는 것이다. 은사의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야 한다.“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1.예수님을 믿고 고백함은 성령님의 역사이다.(고전12:3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2.은사의 근원은 성령님이시다.(4절)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은사”는 성령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재능이요, 능력이요, 은혜요, 사랑이요, 역사이다.

3.직임 수행을 위하여 은사를 주신다.(5절)

“직임은 여러가지나 주는 같으며...”

교회 안에는 갖가지의 직임과 사역의 현장이 있다.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각자가 찾아서 일을 하라.

4.은사로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교회와 성도의 유익을 위함이다.(7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 교회 목사의 아버지는 차량을 운전하시는데, 너무 너무 행복해서 나이 80세가 다 된 노인이 얼굴에 광채가 나고, 건강이 시들 줄을 모른다. 신나고 행복하다. 행복할 수 밖에...

5.분쟁없이 지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게 하시려고 은사를 활용하게 하신다.(25절)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3>.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내 안에, 내 옆에, 내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3대 역사와 꾸준히 동행하라.

능력과 은사를 경험하라. 말씀(묵상과 설교)과 기도(통성,골방)와 찬양속에서...

4>.성령님은 어떤 은사를 주시는가? - 28가지 恩賜(은사)의 세계

하나씩 실습하며 공부해 나갈 것이다.

은사의 각 방면에 대하여 잘 알고, 항상 열려 있으며, 사모하고 있어야 한다.

한 일년 집중하며 기도하고 사모하면, 거의 남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탁월하게 특정 방면의 은사의 세계가 열린다.

사모하라. 구하라.

계속 강화하라.

능력과 은사를 극대화하라.

은혜 위에, 은혜 위에, 은혜가 은사이다.

은사는 쓸 수 있는 은혜이다. 단순한 은혜만 가지고는 쓸 수가 없지 않은가?

롬12장 6-8절

1.예언(설교,영적으로 감동된 발언,말씀으로 분별하는 일,앞 날의 지침)의 은사(gift of prophecy)

2.섬김(사역)의 은사(gift of service)

3.가르침의 은사(gift of teaching)

4.권위(권면,믿음의 격려)의 은사(gift of exhortation)

5.구제(기부,관대한 행위,나눠줌)의 은사(gift of giving)

6.지도력(권위,다스림,행정)의 은사(gift of leadership)

7.긍휼(동정,슬픈 자를 위로함,친절을 베풂)의 은사(gift of mercy)

고전12장 8-10, 28절

[고전 12:4-12절] 恩賜(은사)의 세계

(4)은사(恩賜)는 여러 가지나 성령(聖靈)은 같고, (5)직임(職任)은 여러 가지나 주(主)는 같으며, (6)또 역사(役事)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各) 사람에게 성령(聖靈)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有益)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이에게는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 지혜(智慧)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聖靈)을 따라 지식(知識)의 말씀을, (9)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聖靈)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聖靈)으로 병(病) 고치는 은사(恩賜)를, (10)어떤 이에게는 능력(能力) 행(行)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豫言)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靈)들 분멸(分別)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各種) 방언(方言)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方言)들 통역(通譯)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聖靈)이 행(行)하사, 그 뜻대로 각(各)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肢體)가 있고, 몸의 지체(肢體)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8.지혜(권면,말,성령이 그 때 그 때 가장 필요한 지혜로 주시는)의 말씀의 은사(gift of wisdom)

9.지식(공부,앎,영적 지식을 알고,전파하고,가르치는)의 말씀의 은사(gift of knowledge)

10.믿음(역사를 일으키는 권능)의 은사(gift of Faith)

11.병 고침(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의 은사(gift of healing)

12.이적(기적,능력 행함)의 은사(gift of miracle)

13.영 분별함(영적인 일들을 분별, 사람의 배후에 있는 영의 실체를 분간,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직시함)의 은사(gift of discerning spirits)

14.방언(방언은 어린 아기의 언어를 배움과 같다)의 은사(gift of tongues)

15.방언 통역(입술을 다스리는 자에게,은사의 최고봉 단계)의 은사(gift of interpretation)

16.사도적 은사(gift of apostle)

17.서로 돕는 은사(gift of helping)

18.다스림(행정,조직)의 은사(gift of administration)

엡4장:11-12절

19.복음 전하는 자(전도자)의 은사(gift of evangelism)

20.목사(하나님의 백성을 돌봄)의 은사(gift of Pastor)

21.독신,금욕의 은사(gift of celibacy)(고전7:7절)

22.청빈의 은사(자발적 빈곤)(gift of poverty)(고전13:3절)

23.순교의 은사(gift of martyrdom)(고전13:3절)

24.선교사의 은사(gift of missionary)(엡3:6-8절)

25.후한 대접의 은사(gift of hospitality)(벧전4:9절)

26.중보기도의 은사(gift of intercession)

27.구출(逐鬼축귀,逐邪축사)의 은사(gift of exorcism)

28.예배 인도의 은사

29.글 쓰는 은사

30.선교하는 은사

31.匠人의 은사

5>.方言(방언), 고린도전서14:1-40절

성령의 나타남의 출발점, 시작

(2)방언(方言)을 말하는 자(者)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者)가 없고, 그 영(靈)으로 비밀(秘密)을 말함이니라.

(4)방언(方言)을 말하는 자(者)는 자기(自己)의 덕(德)을 세우고, 예언(豫言)하는 자(者)는 교회(敎會)의 덕(德)을 세우나니, (5)나는 너희가 다 방언(方言) 말하기를 원(願)하나, 특별(特別)히 예언(豫言)하기를 원(願)하노라. 방언(方言)을 말하는 자(者)가 만일(萬一) 교회(敎會)의 덕(德)을 세우기 위(爲)하여 통역(通譯)하지 아니하면, 예언(豫言)하는 자(者)만 못하니라.

(13)그러므로 방언(方言)을 말하는 자(者)는 통역(通譯)하기를 기도(祈禱)할지니, (14)내가 만일(萬一) 방언(方言)으로 기도(祈禱)하면 나의 영(靈)이 기도(祈禱)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靈)으로 기도(祈禱)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祈禱)하며, 내가 영(靈)으로 찬미(讚美)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讚美)하리라.

(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方言)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노라. (19)그러나 교회(敎會)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爲)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一萬) 마디 방언(方言)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1)율법(律法)에 기록(記錄)된 바 주(主)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方言)하는 자(者)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百姓)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그러므로 방언(方言)은 믿는 자(者)들을 위(爲)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者)들을 위(爲)하는 표적(表蹟)이나, 예언(豫言)은 믿지 아니하는 자(者)들을 위(爲)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爲)함이니, (23)그러므로 온 교회(敎會)가 함께 모여 다 방언(方言)으로 말하면, 무식(無識)한 자(者)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者)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6)그런즉 형제(兄弟)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各各) 찬송(讚頌)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啓示)도 있으며, 방언(方言)도 있으며, 통역(通譯)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德)을 세우기 위(爲)하여 하라.

(27)만일(萬一) 누가 방언(方言)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多不過) 세 사람이 차서(次序)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通譯)할 것이요, (28)만일(萬一) 통역(通譯)하는 자(者)가 없거든 교회(敎會)에서는 잠잠(潛潛)하고, 자기(自己)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39)그런즉 내 형제(兄弟)들아! 예언(豫言)하기를 사모(思慕)하며, 방언(方言) 말하기를 금(禁)하지 말라. (40)모든 것을 적당(適當)하게 하고, 질서(秩序)대로 하라.

6>.神癒(신유)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1>.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2>.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3>.고치시니, (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나의 성령사역 소문도 멀리 멀리 퍼져가리라. 사람들과 병자들이 내게 다 오고, 고침을 받으리라.)

(마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든 자를 다 고치시니,

(말씀이 항상 기본이고, 원칙이다. 축사도 병 고침도, 모든 은사 사역도...)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 귀한 말씀을 잊지 말라.)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육은 병을 치유하고, 장애를 고쳐야 한다.

혼은 상한 심령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심령으로 회심시켜 강건하게 해야 한다.

영은 오직 성령님께 복종하고, 동행하며, 성령충만하게 만들어 사역자로 키워야 한다.

이 3가지의 영역의 치유가 바로 신유의 복음의 목표이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노방전도, 여행전도를 게을리 하지 말라.)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권능은 기도하는 자에게, 골방에 사는 자에게 예수님이, 성령님이 부어주신다. 골방의 은혜를 받으라.)

(마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모든 사역과 은사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병자에게 치유, 목음 전도가 목적이다. 개인의 영광과 치부, 영화는 없다. 치유자나 사역자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전도 뿐이다.)

(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을 다 고치시고,

(병은 다 낫는다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져야 한다. 어떤 병은 낫지 않으며, 어떤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엉터리이다. 낫지 않는 이유는 낫지 않을 만한 장애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요인들이 어떤 때에는 우리 눈에 영원히 가려져 있을 수 있다.)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인을 고쳐 주시니라.

(병인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넘쳐야 한다.)

(막 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왜 데려 오는가? 귀신을 내쫓으려고, 병 고치려고, 말씀 들으려고...)

(막 1:34) 예수께서 각색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귀신을 묶으라. 귀신은 자기가 위험한 자리에 오면 원래 발악하고, 소리지르고, 고함지르며 난폭하게 행동한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죄인들을 마다 하지 말라.)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옷깃만 스쳐도 병이 낫는다.)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막 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나, 성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한다. 성령 역사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

(막 6: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성령으로 기름부으라.)

(막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막 6: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성령의 권능은 전이된다.)

(눅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눅 4:40)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아기에게 배가 아파 치유기도했다. 장을 따라 검은 기운이 빠져 나갔다. 울던 아기가 가만히 있다가 좀 누워 있더니, 이내 일어나 명랑하게 뛰어 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적적인가?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치유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눅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말씀의 능력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

(눅 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성령충만으로 나오는 힘, 골방의 삶에서 나오는 힘, 늘 성령 동행의 삶에서 나오는 힘이 바로 성령의 권능이다.)

(눅 6: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말씀이 먼저, 병 고침은 그 다음이다.)

(눅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들어 죽게 되었더니,

(살 자는 예수님을 만난다. 을지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발목이 아파 딛지 못하는 아줌마를 만나 치유해 주려 하니, 바쁘다며 그만 가 버렸다. 불쌍한 여자! 수술해야 한단다. 수술하면 낫나?)

(눅 9: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축사, 치유, 능력을 부어주신다.)

(눅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병자들에게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라.)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초대교회의 성령역사는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행 5: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행 5:16)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다 낫는다. 여기“다”가 중요하다. 낫지 않으면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을 제거하면 다 낫는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4>.능력이요 그 다음은 5>.병 고치는 은사와 6>.서로 돕는 것과 7>.다스리는 것과 8>.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능력자도 지병이 있을 수 있다. 의학적, 자연적 치료법을 무시하지 말라.)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병 낫기를 서로 기도하며, 치유를 서로 서로 완성해 나가야 한다.)

2.목사님을 잘 섬기는 제직

1>.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님과 교회를 잘 섬김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좋은 교회, 좋은 성도, 좋은 목사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힘을 합쳐 끊임없이 만들어 가야 한다. 좋은 성도는 좋은 목사가 만들고, 좋은 목사는 좋은 성도가 만든다. 좋은 교회란 좋은 성도와 좋은 목사가 만들어 낸 걸작품이다.

세상을 떠나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하던 말씀이 생각 난다.

“온누리교회 교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선하고 좋은 사람만 모인 것이 아니다. 다들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지만, 온누리교회에 동화되면 새사람이 된다.”

무엇이 그들을 새사람으로 만드는가?

사랑의 친교, 성령의 역사, 은혜로운 일들, 자발적인 헌신과 충성의 마음... 등이다.

과거 저는 섬기던 부산 00교회를 떠날 때에, 성도들 앞에 참담한 심정으로 서 있었다. 좋은 목사가 되지 못하여 성도들에게 진정한 영적 유익도, 축복도 선사하지 못하고, 갈팡 질팡하는 목회 끝에 2년 만에 도중 하차하게 되었다. 담임목사로서는 너무 생명이 짧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적어도 담임목사는 5년 이상, 10년 이상은 목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첫 목회 경험지에서 저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음이 편할 수 만은 없었다. 저도 상한 마음으로 떠났고, 성도들도 교회의 구조적인 불합리함 때문에 7번째 목사가 또 쫓겨 가는 것을 보면서, 역시 상한 마음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이 상처를 지우는 데는 적어도 몇 달 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의 그 아픔 들을 통하여 나에게 더욱 더 유익을 주시고, 더 넓은 목회의 세계를 아는 축복을 주셨다고 확신한다.

내가 떠난 이후에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임하여 목조 건물인 교회는 홀랑 불타 버리고, 목사를 상습적으로 쫓아 내던 000 장로 부부는 내가 떠난지 4개월 만에 아내 권사가 암으로, 6개월 만에 남편 000 장로가 무너지는 교회 담장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 사건은 내게 충격이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었다.

당시 나는 훌륭한 목사가 아니었다. 문제 있는 목사였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훈련의 과정으로 인도는 하셨지만, 징계하시지는 않으셨다. 어리고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를 향한 주님의 손길은 징계의 채찍과 막대기가 아니라 사랑이요, 시련과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다.

2년 전, 제가 교통사고를 내서 어느 아줌마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 전에 나는 이미 주님의 심판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그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버리고 싶었지만, 부흥성회 인도 때문에 차마 너를 눕혀 놓을 수 없어서, 다른 죄 없는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 사건으로 나는 나의 죄를 확실히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과 예조를 느끼고 몸서리쳤고, 내가 살아 가는 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시는 은혜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좋은 성도란 어떤 성도일까?

성도라 하면 다 포함되는데 좋은 목사, 좋은 장로, 좋은 권사, 좋은 집사, 좋은 전도사, 좋은 일반 평신도...

목사 자신은 좋은 목사란 어떤 목사인지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 장로도 마찬가지, 권사도 마찬가지, 집사, 전도사도 마찬가지이다. 남이 잘 안다. 그런 점에서 좋은 성도 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역시 목사라 할 수 있다.

저는 목사로서 한 평생을 살아 가기로 주님 앞에 서약하고 안수 받은 사람이다. 좋은 성도 상에 대하여 앞으로 저의 관점이 부분적으로는 변해 가겠지만, 근본 관점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목사 입장에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성도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그것은“목사에게 잘 하는 성도”이다.

“하나님께 잘 하는 성도!”이건 너무 추상적이다.“교회에 잘 하는 성도!”역시 범위가 너무 넓다.

여러분 가운데는 분명히 이견(異見)이 계신 분이 있을 것이다. 틀린 것은 아니다.

“목사도 인간인데 그가 잘못할 때도 잘하란 말이냐?”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잘못하는 목사에게도 언제나 잘 하는 성도는 정말 좋은 성도이다.

나는 목회를 잘 못하는 목사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진실로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나의 성도들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 준다. 이런 좋은 성도를 만난 것은 진실로 나의 복이다. 어디 가서 이런 착하고 좋은 성도들을 만날까? 나는 아무리 좋은 교회 자리가 난다 할지라도 선뜻 부임해 갈 자신이 없다. 가면 대번에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큰 교회에 부임한다 하면 걱정부터 먼저 된다.“아이구! 저 사람 언제 또 쫓겨 날까?”하고...

중요한 사실은 목사 개개인의 됨됨이와 잘 잘못을 떠나서 항상 목사에게 잘하는 성도, 잘 하고자 하는 성도는 정말 좋은 성도이다.

부디 여러분! 이러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란다.

“좋은 성도”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사에게 순종 잘 하고, 목사에게 충성 잘 하고, 목사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고, 목회에 활력과 용기와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성도이다. 그리고 말로 만이 아니라 실제로 목회를 도와 주는 사람이다. 만일에 성도 중에 자기의 삶과 일에 우선권을 두지 아니하고, 목사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목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반대로 나쁜 성도란 목사에게 불순종 하고, 목사의 목회 일에 반대하고, 목사의 마음에 스트레스를 주고, 목회에 낙심과 좌절과 실패와 절망감을 주는 성도이다.

목사들은 이런 성도를 가라지라 한다. 물론 목사가 가라지라 해서 다 가라지는 아니나, 그러나 제가 판단할 때 목사가 가라지라면 95% 이상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훌륭한 목사란 어떤 사람인가?

골1:24-29절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 났고, (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성도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는 자(24)

<2>.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자(24)

<3>.성도를 위한 자(25)

<4>.성도를 완전한 자로 세우는 자(28)

<5>.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자(29)

<6>.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자(29)

벧전5:1-4절 (1) 너희 중(中) 장로(長老)들에게 권(勸)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長老)된 자(者)요 그리스도의 고난(苦難)의 증인(證人)이요 나타날 영광(榮光)에 참예(參與)할 자(者)로라. (2)너희 중(中)에 있는 하나님의 양(羊) 무리를 치되 부득이(不得已)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自願)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爲)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맡기운 자(者)들에게 주장(主掌)하는 자세(仔細)를 하지 말고, 오직 양(羊) 무리의 본(本)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牧者長)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榮光)의 면류관(冕旒冠)을 얻으리라.

<7>.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2절)

<8>.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하라.(2절)

<9>.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3절)

이상의 말씀은 목사와 장로가 언제나 기억하고 지켜야 할 지도자의 덕목이다.

3>.주의 종을 받드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

목사를 사랑하라.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로 하여금 행복하게 목회하게 하라.

[히 13:17-21절] (17)너희를 인도(引導)하는 자(者)들에게 순종(順從)하고, 복종(服從)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靈魂)을 위(爲)하여 경성(警醒)하기를 자기(自己)가 회계(會計)할 자(者)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有益)이 없느니라. (18)우리를 위(爲)하여 기도(祈禱)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善)하게 행(行)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善)한 양심(良心)이 있는 줄을 확신(確信)하노라.

<1>.순종하고 복종하라.(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순종은 납득이 될 때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에 어긋날 때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복종은 납득이 가지 않을 때도 따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복종이란 순종의 외형적인 자세이다. 틀려도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틀린 일은 복종은 하되, 순종은 할 수 없는 것이다.“목사님! 겸손히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신앙 양심으로 이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이러한 태도가 복종하나, 순종할 수 없는 자의 아름다운 자세이다.

<2>.나를 위한 목사의 기도를 축복 되게 하라.(17절)

축복이 진심으로 응답 되려면, 그에 합당한 믿음생활이 병행되어야 한다. 목사가 기도해 보면 진심으로 축복이 마음으로 우러 나는 성도가 있고, 입술로는 기도하나 마음은 없는 성도가 있다. 목사의 진심은“나도 모르겠다.”,“네가 그렇게 믿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실 리가 없지!”라고 말한다.

심지어 목사의 마음에“너는 매 맞아야 한다.”,“너는 저주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다. 목사 마음에 이 정도 되는 성도는 성도가 아니라, 진짜 가라지요, 마귀이다. 무서운 말씀이니,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저는 성령을 받고, 영분별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이 더욱 더 뚜렷하게 이 모든 사실을 다 보여 주신다.

하나님이, 주의 종이 진심으로 나를 축복할 수 있도록 예수 믿어야 한다.

<3>.목사가 목회를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17절)

근심하며 목회하지 않게 하라.(17절) 자심감에 차서 목회하게 하라.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하게 용기백배, 의기양양하여 목회하게 하라.

격려하고 용기를 주라. 허물을 감싸 주고, 덮어 주라. 목사를 괴롭히는 성도는 자기가 대신 제거하라. 기도하라. 신뢰하라. 사랑하라.

인간적인 감정으로 잘 하지 말고, 신앙적 척도에 바로 서서 잘하라.

<4>.목사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라.(18-19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목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라.

어느 개척교회 목사가 교역자 모임에서 주관하는 태국 관광을 갔다.

한 코스에 갔더니 코끼리 조련사가 손에 금덩이를 하나 쥐고서,“누구든지 코끼리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에게 이 금덩이를 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는데, 이 개척교회 목사가 자기가 해 보겠다고 나섰다. 그는 코끼리 귀에 대고 뭐라고 한참을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만 코끼리가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조련사가 금덩이를 주면서 뭐라고 얘기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고생한 얘기들을 몇 가지 해 주었더니 코끼리가 운 것이라고...”

이번에는 조련사가 코끼리 앞 발을 들게 하면 금덩이를 하나 더 주겠다고 했다. 개척교회 목사는 그건 쉽다고 했다. 그는 코끼리에게 다가 가 한 마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코끼리가 앞 발을 번쩍 들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그야 간단하지요. 야! 코끼리야. 너도 개척교회 한번 해 볼래!”했더니 앞 발을 번쩍 들었다고......

개척교회 목회가 얼마나 힘들며, 얼마나 교회를 세우는 것이 힘든가를 알게 해 주시는 말씀이다.

이런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개척교회라도 주의 종이 있고, 한 명 이상의 성도가 있고, 배고픔이 있고, 눈물의 기도가 있다.”고...

목사와 교회는 기도를 먹고 자란다.

성도는 범사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야 한다. 기도가 살아 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저력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으로 끌어 오는 유일 무이한 방법이다. 성도는 쉬지 않고 목사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잘 하지만, 사람인 목사에게는 보아 가면서 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된 것이고,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음으로 그 분에게 잘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일인 교회 일과 하나님의 사람들, 즉 목사와 교우 들에게 잘 하는 일이 곧 하나님께 잘하는 일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잘 지키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곧 신앙의 척도이다.

먼저, 목사의 말에 순종하라. 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거든, 복종하라. 목사의 마음을 즐겁고 평안하게 하라. 그의 목회가 기쁘고 신나게 하라.

목사와 좋은 인간 관계를 맺으라. 목사가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사람인지 아는가? 털끝 만큼도 그의 마음에 짐이 되는 사람이어서는 아니된다. 저는 목회란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운 길인 줄 알지 못했다. 아니, 목회의 길이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도 없고, 걸어 갈 수도 없는 길이다. 나는 다시 산다면 목사의 길을 걷지 않는다. 나 같은 천박한 사람은 고상한 목사의 길을 결코 걸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처 입는 대로 믿음을 빼앗기고, 낙심하고, 마음이 강퍅해진다. 한 인간인 목사도 그렇게 된다. 성도들은 자기들의 강퍅하고 못된 버릇으로 목사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서도, 목사가 목회 잘 하기를 바란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절대 축복이 가지 않는다.

목사든 성도든, 이럴 때는 기도하고 말씀으로 치료하여 회복해야 한다.

4>.목사님을 잘 섬기는 행복, 사무엘하6:1-14절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무엇일까? 목사는 성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성도는 목사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일까? 성도에게 목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이 세상의 최우선의 관계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목사와 성도의 관계 보다 더 이상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과 양의 관계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목사와 성도는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이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가장 소중한 사이이며, 반드시 함께 해야 할 사이이며, 법궤인 목사는 성도의 가슴 속에 가장 소중히 모셔야 할 보물이다.

육적 혈연관계도는 부부 사이는 무촌, 부모 자식 사이는 1촌, 형제자매 사이는 2촌,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가 3촌이다. 영적 혈연관계도는 예수님과 성도 사이는 신랑 신부 사이, 부부 사이이다. 목사님과 성도 사이는 부모 자식 사이 1촌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이다. 성도 상호 간은 2촌이다. 불신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는 삼촌이다.

십계명은 천륜 4가지, 인륜 6가지인데, 그 중 첫째가 부모 공경이다. 영적으로 보면 영적 부모 같은 목사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성도는 목사님의 보호와 지도 아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 성도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 불신자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각각 다르다. 하나님의 종의 잘 잘못은 하나님이 직접 처리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의 지도와 감독 하에 있을 때 하나님이 지키신다. 불신자는 일반은총의 영역 안에서만 지키신다.

<1>.하나님이 당신 이름을 두신 곳

족장 시대 - 제단에 두심

모세 시대 - 성막에 두심

솔로몬 시대 - 화려한 솔로몬 성전에 두심

포로기 이후 -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에 두심

예수님 당시 시대 - 예루살렘 성전에 두심

예수님 이후 신약 시대 - 심령 성전에 두심

광야와 같은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심령 성전을 잘 지어 가야 한다. 모세가 성막을 짓던 법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 마음 속에 성전을 지어 가야 한다.

성막 안에는 각종 기구 들이 있었다. 그 기구 하나 하나는 다 깊은 영적 의미를 갖고 있다. 성막을 잘 알면, 하나님을 잘 배우게 된다. 예수님, 인간론, 교회론, 예배론, 청지기론, 우주론, 천국론까지 다 뚫린다. 13가지 주제를 다 알게 된다.

성막의 휘장은 뜰문 휘장, 성소 휘장, 지성소 휘장 등이 있다. 뜰문은 지나면 성소에 번제단, 물두멍, 떡상, 금등대, 분향단, 그리고 지성소 휘장 뒤에 법궤 순서로 성물이 있다.

성 소:

1>.번제단 - 죽음의 능력, 죽어 제물이 되어야 한다. 자아가 죽어야 한다.

2>.물두멍 - 회개의 능력, 회개로 신앙의 출발을 해야 한다.

3>.떡 상 - 말씀의 능력, 날마다 말씀을 먹어야 한다. 성령의 조명한 말씀을...

4>.금등대 - 성령의 조명,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5>.분향단 - 기도의 능력, 기도의 삶이 늘 함께 해야 한다.

지성소:

6>.법궤 - 임재의 능력, 하나님이 내게 임재해 계셔야 한다.

지성소는 지성소 휘장을 지나 가야 한다. 예수님이다. 그 속에 들어 가야 법궤를 만난다.

법궤 위의 속죄소 중앙 양 그룹 사이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다. 하나님의 음성이 이 곳에서 들린다. 하나님은 법궤 위에서 말씀하신다.

법궤를 들고, 요단강을 건넜다. 법궤가 요단 강에 들어 서자 요단 강이 갈라졌다. 법궤를 앞세우고 여리고 성을 돌았다. 7일째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법궤를 앞세우고 가나안을 차례 차례 점령해 나갔다.

너의 심령 속에 법궤를 모셔 들여라. 네 속에 법궤를 모시고 나아 가면 요단 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삶이 형통해지고, 장사가 안되는 곳에 장사가 잘 되고, 갖가지 놀라운 기적들이 나타 난다.

법궤를 모시고,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 가라. 특히 목사의 아내 사모가 그리해야 한다. 내 남편이라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마음으로 섬겨라.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성막이 우리 심령 속에 제대로 지어지면, 이를 교회론으로 풀어 보면 뜰, 성소, 지성소로 나뉘어지고, 인간론으로 풀어 보면 육, 혼, 영으로 나뉘어진다.

<2>.“성도의 법궤는 목사이다.”

오늘날 우리 심령 성전의 법궤는 무엇일까?

지성소에는 가장 중요한 법궤가 있다. 법궤 속에는“만나 항아리”와“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다.

모세가 들었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영도력, 지도력이다.“싹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권능이 그 지팡이에 함께 하여“살아 있다”는 말이다.

“만나 항아리”는 하늘 양식이다. 말씀이다.“십계명”은 우리 일상생활의 기본 규범이 되는 말씀, 계명, 삶의 지침이다.

그러면 법궤는 무엇일까?

법궤는 하나님의 종 목사이다. 목사 속에 하나님의 생생한 살아 있는 지도력과 성령의 부어 주시는 말씀과 삶의 지침이 다 들어 있다.

법궤는 지성소 한 가운데 있다. 목사는 교회 한 가운데 있다.

법궤 위의 속죄소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목사가 강단 위,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우리의 심령 성전에 법궤를 늘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당신의 목사를 영적으로 늘 가슴에 품고, 그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받으며, 그의 꾸중과 훈계를 들으며 살아 가야, 당신의 영혼과 삶이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영적 위계 질서는 영적 세계에서는 어김이 없는 철칙이다. 이 말은 목사를 잘 만나면 일생의 축복이요, 잘못 만나면 패가 망신하고, 저주를 받아 죽고 만다는 것이다. 방자한 자, 교만한 자, 정계 받을 자, 자기 자리를 쫓겨 날 자는 법궤를 잘못 만나 그 길을 걷는다.

<3>.록펠러의 어머니의 10가지 유언

영국에서 어려서 고아였던 록펠러의 어머니의 10가지 유언은 의미 심장하다. 록펠러는 당대의 최고 부자였다. 이 유언은 미국 맨하탄의 록펠러 재단 빌딩 입구에 쓰여 있다. 그 어머니는 정말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여인이었다.

1.하나님을 너의 친 아버지로 섬겨라.

2.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오른쪽 주머니는 반드시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4.주일은 꼭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라.

5.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 자리에 앉으라.

6.하루에 성경을 한 장씩 읽으라.

7.하루를 기도하고, 시작하라.

8.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회개 기도를 하고 자라.

9.사람과 원수를 맺지 말라.

10.불쌍한 이웃을 힘이 닿는 대로 도우라.

이제 법궤인 목사를 대입하여 성경 본문을 주해해 보자.

(삼하6:1-23)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정예병, 최고의 군대, 항상 최고로 법궤를 모셔야, 교회 내 최고의 사람들로 하여금 법궤인 목사를 수종 들고 호위하게 해야 한다.) 다시 모으고, (2) 일어 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 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속죄소에 하나님이 계심)이라.

(3)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최고로, 존귀하게, 항상 새 것에 모셔야...)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저희가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법궤 앞에서 모셔라. 항상 남들보다 먼저 충성하라. 헌신하라. 뒤에서 보니까 법궤가 흔들리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목사의 허물이 보이는 것이다. 앞에 서면 목사의 허물과 단점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

(6)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문제가 생김, 교회 안에 시험이 생기고, 풍랑이 일어남, 소들은 집사들, 일군 들이다. 제직들이 날뛰고, 그 결과 꼭 목사가 다친다. 벧세메스로 올라 가던 암소가 울며 가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던 그 자세를 늘 기억하라.)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당연한 일, 잘한 일, 자기 눈에 법궤가 위태로워 보여 안정시키려고, 보호하려고...)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하나님 눈에는 사람이 잘못함, 붙들면 안됨, 하나님의 법궤를 침범하거나 붙들면 안됨,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의 장로 임직식-왜 장로가 됩니까? 목사님을 보좌하려고 합니다. 장로님이 돕지 않아도 나 스스로 목회 잘 하니, 장로 되거든 죽으시오.) 진노하사 저를 그 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법궤에 손을 대거나, 만지면 죽는다.)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 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법궤가 복으로 역사하는 경우)

(12)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얼마나 복을 크게 받았으면, 소문이 왕의 귀에까지 들렸을까? 법궤를 잘 모셔, 온 천하에 복을 받은 소문이 넘치게 하라. 록펠러의 어머니의 유언을 기억하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법궤는 기쁨으로 매어야 한다. 목사와 교회가 짐이 되고, 부담스러워짐은 그 영혼과 신앙이 이미 병든 것이다. 목사와 성도의 사이는 항상 최고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 기쁨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목사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말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 갈 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성령의 감동으로 최선을 다하라. 사람 눈에 우스워 보여도 좋고, 미친 것처럼 보여도 좋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목사도 그렇게 미쳐야 하고, 성도도 그렇게 미쳐서 목사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라.)

<4>.목자와 양의 관계

성도와 목사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 가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성도와 목사와의 관계를“목자와 양의 관계”라 한다. 이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유추된 것이다. 예수님은 목자요, 우리는 양들이다.

목사는 예수님의 위임을 받은 작은 목자요, 성도는 그를 통하여 예수님의 지도를 받는 양들이다. 목사가 만일 진정한 목자라면, 예수님이 하신 목양 자세 그대로 목회해야 한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목사는 진정 두려움으로 목회하게 될 것이다.

<5>.청지기 목사, 청지기 목회

나는 목사와 성도의 관계를 청지기와 양으로 비유하고 싶다. 그것이 가장 적절하다. “대목자장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는 작은 목자, 청지기입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중요한 영감을 하나 확실하게 붙들었다. 청지기 목사, 청지기 목회론이다. 나는 영적 세계를 알고, 영적 전쟁에 돌입한 예수님의 최정예 부대의 최고 정병의 최고 사령관이다. 나는 이제 이후 더 이상 마귀의 세력에 밀리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영적 오기가 아니라, 내게는 그런 권능이 이미 왔다. 나는 성령의 모든 은사를 소유했고, 성령의 권능의 종이다.

나는 이제 이후, 더 이상 나에게 맡겨 주신 예수님의 양떼들을 절대 저 이리 떼들의 밥으로 그냥 두지 않는다. 다 구출해 내고, 살려 내고, 내가 지키는 영적 테두리 안으로 데리고 와서 축복 받게 하고, 새 삶을 살게 하리라.

나는 성도 들을 지키는 영적 파수군이다. 양떼를 가장한 마귀들도 있을 것이나 그것은 자동적으로 분별이 될 것이다. 나의 성령님이 다 알게 해 주실 것이다. 그것은 내가 염려할 필요는 없다. 나는 무조건 청지기로서의 나의 사명을 다 감당한다. 양들을 미혹에서 건져 내어 살리는 것이 나의 목적이니, 성령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성도들을 건져낼 것이다.

살려 내야지!

양이란 어차피 철 없고, 분별 없고, 미혹 잘 당하고, 마귀가 노략하면 그냥 당하는 것이다. 약하니 성도의 잘못이 아니지! 지켜 내지 못한 청지기 목사의 잘못이지!

성도의 영혼과 가정, 가족을 돌보지 못한 죄를 회개했다. 성도가 미혹 당하는 징후가 나타났으나, 방치한 죄를 회개했다. 못된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알고도 막지 못한 것을 회개했다. 다른 오염된 영적 물을 먹으니, 양이 병들 수 밖에...

나는 절대 내 성도의 영혼을 찾는데, 포기하지 않는다. 불독처럼 물고 놓지 않으리라. 나는 내게 맡겨 주신 주님의 양떼 들을 단 한 사람이라도 절대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영혼을 두고 사투한다. 요10:10절의 속이고, 빼앗고, 죽이고, 멸망 시키러 오는 저 악한 원수 마귀에게서 나의 성도들을 다 찾아 오고, 축복을 받게 하리라.

저들 모두를 안전한 주님의 품 속에 거하도록 인도하리라.

<6>.목사가 성도를 지키는 5차 방어선

성도를 지키는 방어선을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 5차 방어선을 사수하라.

1차 방어선은 예배와 설교이다.

이 방어선이 뚫리게 해서는 아니된다. 여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예배와 설교를 위해 목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성령 목회로 전환한 후, 이전 목회의 첫 열매인 000 집사가 거꾸러졌다. 000 집사가 교회에 나오지를 못한다. 믿음에 문제가 있는 사람 들은 아예 다 나오지를 못한다. 마귀가 강력하게 붙들고, 교회에 못 가게 하는 것이다. 교회에 가면 성령의 나타 나심과 성령의 권능의 말씀으로 그 영혼 들이 살아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후 영적 전쟁에서 절대 패하지 않는다.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저 양떼들을 다 건져 내리라.

2차 방어선은 중보기도의 방어선이다.

이 방어선은 일차 방어선이 뚫린 자들을 위한 방어선이다. 제 2선에서 추락한 저들을 다 건져 내리라. 나는 단 한 영혼도 마귀의 손에 넘겨 주지 않는다. 사투하며, 저들의 영혼을 건져 내리라.

성도를 위하여 금식하며, 중보 기도하고, 그 영혼을 돌보리라.

3차 방어선은 전화, 심방, 편지, 강권 등의 돌봄의 방어선이다.

필사적으로 저들이 교회에 나올 때까지 저지한다. 저들이 멀리 이사를 하지 않는 한, 교회에 나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만든다.

나는 성도를 돌보고, 지키기 위하여 이를 악문다.

4차 방어선은 경고의 방어선이다.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신다고 경고한다. 반드시 저들이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라도 교회에 나오도록 만든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고...

이제 이후, 내 손에 걸려 든 영혼은 단 한 영혼도 빠져 나갈 수 없다.

5차 방어선이 있다. 인내의 방어선이다.

기나 긴 지속적인 전투를 여기서 계속해야 한다. 여기서 목사의 임무를 끝내라. 어떤 배신자도, 원수도 저주하지 말라. 목사가 버리고 저주하면 그는 패가 망신하고 죽는다.

성도가 저주 받아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의 매가 임하기 전에 필사적으로 인내하며 저들을 지켜 내야 한다. 이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면 그는 저주를 받으니, 패가 망신하고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7>.교회 내의 법궤를 허무는 자들:부목사들, 여전도사들, 장로들, 권사들, 집사들, 사모...

1>.부목사들:

자기 담임목사를 판단하고, 불순종 하고, 그 위에 올라 타고, 자기가 더 지식이 있고, 똑똑한 척 교만하고, 교인들의 마음을 빼앗고, 뒤에서 목사를 험담, 비판한다.

배목사 역시 큰 교회 목사님들, 선배 목사님들, 자기 위에 있는 목사님 들을 절대 비판하서나 씹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2>.여전도사들:이들은 여성적으로, 여성 사역이나 가정 사역, 상담 사역, 기도 사역 등 전문 사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가 저들을 사용한다.

그런데, 교회 내에 여전도사들이 시험거리이다. 문제 중의 문제이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의 능력이 있고, 또 열심히 기도하고, 나름대로 영적 일가견이 자리 잡은 사람 들이다. 그래서 사역의 길에 나섰다.

그런데 대부분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고, 인격 바탕이 갖추어지지 않고, 삶이 바닥을 헤맨 사람들이며, 이혼했거나 지식적으로 무식하다. 여기에다 나름대로 영적 편견이 오만으로 자리 잡고 굳어져 있다.

그들은 절대 자기들의 기도의 체험에서 온 경험을 보완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최고라고 말한다. 이들 눈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갓 부임한 영적으로 햇병아리 같은 목사는 도무지 눈에 차지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소위 기도의 능력, 성령의 은사, 영권이란 것을 내세우며, 목사를 마음으로 업신여기고,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의 마음을 허문다. 목사를 헐뜯는다. 이 사람들이 목사를 헐뜯고, 짓씹는데 언제나 앞장 선다. 목사를 보좌하고 하나님의 일을 세워야 하는데 허물고 다닌다. 여자들 특유의 짓씹는 짓을 앞장 서서 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 여전도사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 모두를 매도해서는 아니된다. 제대로 훈련 받고, 배운, 사역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 그들을 쓸 것이지만, 이 점을 분명히 짚고, 알고, 가려서 쓸 것이다.

3>.장로들:

한국교회는 장로들이 문제이다. 큰 문제이다. 한국교회의 장로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타락한 종류들이다. 저들 때문에 주의 종들인 목사의 가슴이 피를 흘리며, 신음한다. 들려 오는 소식은 전부 장로들이 목사를 친 얘기들 뿐이다. 끊임없이 싸우고 갈라진다.

나도 과거에 그런 뼈 아픈 경험을 가진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철 없던 어린 시절, 못된 장로에게 쫓겨 났다. 한국교회 내에 장로 때문에 이를 갈고, 욕을 하고, 목회를 못하고, 지옥 가운데서 신음하는 목사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부디 장로들을 제대로 길러 내라. 이것이 목사의 책임이다.

장로들이 법궤인 목사를 흔들린다고 붙든다. 붙드는 정도가 아니라, 흔들어 버리고, 갈아 치워 버리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는다. 자기는 신앙 양심과 교회 정의를 위하여 잘 하는 짓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웃사의 행동이다.

흔들리는 법궤를 붙드는 행위가 자기는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로운 영적 투사 같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니다. 절대 붙들어서는 아니될 영역에 손을 댄 것이다.

4>.권사들:

권사들이 기도하고, 덕을 세우고, 성도의 본이 되어야 하는데, 한 마디로 문제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모든 말과 문제와 교회 내의 시비가 권사 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바로 된 사람이 권사가 되어야 한다.

권사들을 제대로 길러 내야 한다.

5>.집사들:

면목동의 000교회의 한 남집사는 교회가 힘들게 건축할 때, 전세금을 빼서 교회에 갖다 바쳤다. 축복의 출발을 성령으로 감동으로 얼마나 잘 했는가?

그러나, 그 다음에 마귀가 되어 버렸다. 회계집사가 되고, 신임을 얻고, 힘을 얻자 목사의 목회에 간섭을 하고, 목사가 잘 하느니 못하느니 자기가 상목사가 되어 좌지 우지하기 시작했다. 목사가 차츰 차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목사가 너무 괴로워 우리 000 집사에게,“저 집사님 때문에 너무 힘들다,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했단다.

그러던 중에 그 집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어 버렸다. 그리고 본인은 집도 없이 가난 속에 허덕이다가, 떠돌이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 그 아내가 우리 교회에도 한번인가 다녀 갔다.

왜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생기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법궤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당신이 손을 대서는 아니될 성역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것 하나 만은 깊이 분별해야 한다. 법궤는 축복의 통로인 동시에, 저주의 통로이다. 하나님이 축복을 받을 사람은 법궤를 통해 축복하시고, 저주 받을 사람은 법궤를 통해 저주하신다. 그 방법은 법궤인 목사를 건드리게 하고, 다치게 하는 것이다. 본인은 그것이 저주로 가는 길인 줄 모른다.

<8>.법궤인 목사는 축복의 통로인 동시에, 저주의 통로이다.

하나님이 법궤인 목사를 축복의 통로로 만들었으나, 그로 인하여 실족한 자들이 저주를 받는다. 저주 받기로 작정된 자는 목사에게 죄를 짓고, 관계를 파괴하여 저주를 자초한다. 목사와의 관계를 모르면 저주를 자초한다.

은혜 받고, 축복 받고, 형통하려고 교회에 나왔는데, 어찌된 셈인지 빼앗기고, 저주 받고, 망하고, 죽어 끝장을 본다.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인간적 감정이나 정, 사랑, 의리, 가족 유대, 친분은 목사와의 영적 관계에 치명적인 적이다. 이것이 영적 질서와 하나님의 성령의 교통을 가로 막는 최고 장애물 들이 된다.

축복의 도구인 목사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파괴되고, 뒤틀리면 먼저 나의 은혜가 고갈된다. 그리고 영이 시든다. 그리고 죽는다. 마침내 삶의 귀퉁이가 무너지지 시작한다. 그러다가 와르르 무너진다.

자기 자리를 지키라. 영적 경계선을 절대 넘지 말라.

목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목회를 말아 먹든, 씹어 먹든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교회를 팔아 먹든, 말든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너 아니어도 간섭하다가, 저주 받은 사람 많다. 주제 넘게 나서지 말라.

목사가 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목사가 엉터리일 수 있다. 그러나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목사가 목회를 유기할 수 있다. 그러나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 조용히 떠나라. 네가 안 다치는 것이 중요하지! 일꾼인 잘못한 목사는 주인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 때에 당신이 그 막대기와 채찍이 되지 말라.

나는 지난 교회 초창기 4여 년 동안 목회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교회를 다 말아 먹은 사람이다. 사모나 거쳐 간 여전도사 들이나, 집사들이 여러 판단과 생각이 많았겠지만, 그들이 내 목회를 고친 것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하셨다. 나는 사람 때문에 고쳐진 게 아니라, 성령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쳐졌다.

괜히 마귀만 되지 말라. 법궤를 건드리면 마귀가 그 심령을 사로 잡아 버린다. 마귀가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목사의 일은 두 분이 결정할 일이다. 미안하지만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사모는 그 일에 끼어 들 영적 자격이 아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9>.법궤는 하나님의 종 목사이다.

법궤가 흔들린다고, 붙들지 말라. 법궤의 위치가 불안하고, 문제가 있고, 죄가 있고, 성격에 문제가 있고, 네 판단에 내가 붙들어 주어야 목회를 잘 하고, 교회를 잘 세울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 교만이다. 죽을 짓이다.

네가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될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 너의 판단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이건 절대적인 영역의 한계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대들 수 없고,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 수 없듯이, 이 영적 관계는 나의 심령이 살고,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는 필수적인 일이다.

만일에 그리한다면 벌써 너는 교만에 사로 잡혀 저주를 자초하고, 패망으로, 죽음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 예수를 잘 믿었는데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법궤를 잘 모셔야 한다. 내 중심에 모셔야 한다. 법궤를 소중히 해야 한다.

법궤는 내가 가르치고, 다스리고, 판단하고, 문제로 삼을 대상이 아니고, 무조건 잘 모셔야 할 가장 소중한 대상이다.

법궤인 주의 종을 그래서 잘 섬기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전부 나의 축복의 원천이 되고, 바탕이 된다.

너의 법궤를 찾으라.

성소는 나 자신이며, 지성소는 내 밖에 있다. 번제단, 물두멍, 떡상, 금등대, 분향단은 다 내 속에 있으되, 나의 법궤는 내 밖에 있는 것이다. 바로 내가 섬기는 나의 목사님이다.

여러분이여!

진정 내 영혼이 복을 받으려면, 나의 목사님이 있어야 한다.

<10>.십일조의 의미

십일조는 교회에 바치는 것이 아니다. 주의 종에게 바치는 것이다. 구약을 보라. 제사장들의 생활을 위한 양식이 십일조의 기원이다. 레위인들이 먹고 살도록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교회와 주의 종에게 말라기 3장의 십일조 축복과 저주를 명심하고, 예물을 드려라.

하나님께 바친다는 추상적인 얘기 하지 말라. 교회에 바친다고 뭉뚱거려 말하지 말라. 주의 종의 응식(應食)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교회 헌금은 목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집행할 성경적 권리가 있는 것이다.

<11>.나의 법궤를 어떻게 찾을까?

1>.자기 목사를 찾으라.

교회생활, 설교, 목사의 삶을 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잘 들으라. 당신의 판단이 옳다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가를 물으라.

감리교 군목 출신의 000 목사가 제대를 하고, 자기가 목회를 배울 목사님이 누군가 살피다가 금란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것을 보고, 김홍도 목사님을 찾아 와 말했다.

“목사님! 저도 목사님께 목회를 제대로 배워 큰 목회를 할 것입니다. 허락해 주세요.”

김목사님이 그를 부목사로 받아 주었다. 그런데 3개월 째에 사표서를 제출했다. 김홍도 목사님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김홍도 목사님이“자네는 뭘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꾸중했다.“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는데 왜 교회가 이렇게 크냐?”했다.

그는 그 날부터 6개월 동안을 새벽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었는데, 드디어 김홍도 목사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김홍도 목사님은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는 종이었다. 그는 7년을 김홍도 목사님에게서 목회를 배웠다. 지금 000 목사는 춘천에서 강원도의 제일 큰 교회를 건축하고 목회를 잘 하고 있다.

법궤인 목사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목사에게도 법궤인 자기 목사님이 있어야 한다. 그 속이 얼마나 깊은지 아는가? 그와 주님이 얼마나 가까운지 아는가? 당신 눈에 그것이 보이는가? 당신이 그것을 판단할 만한 영적 분별력이 있는가?

당신 꼴을 보라. 그런 분별력이 있어서 그렇게 형통한지, 대단한지, 남이 인정하는지... 자기 목사를 빨리 찾아야 한다. 그와 함께 살고, 죽으라.

2>.자기 목사를 최고의 지성으로 잘 섬겨라.

대접하라.

모든 좋은 것으로...

선물하라.

“목사님! 시골 동서가 마늘을 보냈어요. 최고 좋은 것 가져 왔어요.”

후에 심방 가 보니, 부엌에 더 좋은 마늘이 있었다.

“집사님! 이 마늘 우리 집에 갖다 준 것보다 더 좋은데..”

집사의 얼굴이 발개졌다.

집안 경조사에 항상 최고의 어른으로 모시라.

자동적으로 제일 먼저 생각이 나야 한다.

목사와 항상 함께 살라.

삶의 모든 일에 항상 목사님이 생각 나야 한다. 목사님은 우리 집에 살지 않지만, 우리 가족 중에 최고 가족이다. 최우선 대상으로 모여야 할 분이다.

000 목사님은 유언을“너의 목사님! 잘 섬겨라.”라고 말할 것이라 했다.

3>.자기 목사와 동역하라. 예배, 말씀, 기도, 범사에 동역하라.

예배 잘 참석하라.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은혜 가운데서 자라 가라.

10년이 가도 안 자라는 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꼴을 먹지 말라. 여기 저기 다니지 말라.

새벽기도를 다른 교회에 나가지 말라. 자기 교회로 오라.

영적 꼴을 한 가지로 먹어야 한다. 자기 교회, 자기 목사가 없는 사람은 잡식을 하다가, 탈이 난다. 양신이 든다.

양은 분별력 자체가 없다. 눈이 멀기 때문이다.

자기 목사가 힘을 다해 영적 설교를 하고, 영혼을 살려 놓으면, 새벽기도 나간 교회 목사가 다른 설교하여 그 영혼을 망쳐 놓는다. 영적으로 혼란이 오고, 나중에는 그만 양신이 역사한다. 미혹 당한다.

원로목사님 들이 하는 충고 3가지가 있단다.

<1>.장로는 반드시 그 아내를 보고 세우라.

장로가 신앙이 없어도 함께 사는 여자가 바로 되었으면, 그 남자는 바로 선다. 그러나 여자가 시원찮으면 틀림없이 말썽을 부린단다. 목사와 대적한단다.

<2>.우직하게 하나님을 섬겨라.

까불지 말고, 요란 떨지 말고, 잘난 척 하지 말고, 똑똑한 척 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오직 진실하고 꾸준하게, 표나지 않게 주님만 잘 섬겨라.

소처럼 우직하게... 낙타처럼 터벅 터벅...

<3>.하나님이 채찍질 하고 때려, 교인이 벌을 받고 망하려면 예배에서 차츰 차츰, 한 발, 한 발 멀어져 간다.

처음에는 졸고, 다음에는 앞에서 뒤로, 뒤에서 기둥 뒤로, 그러다가 결석하고, 그리고 교회를 떠난다. 물론 핑계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

예배에 실패하는 자가 되지 말라. 예배에 지각하지 말라.

기도에 동역하라.

목사가 기도하는 것을, 너도 기도하라.

다른 뜻 품지 말라.

“목사님과 맞지 않다.”

여전도사가 말한다. 집사가 말한다. 사모가 말한다. 끼리 끼리 모여 앉아 헛소리 한다. 웃기는 소리...

너의 영적 수준이 목사와 같으냐? 너의 신앙의 길이 목사 보다 높으냐? 아니 목사와 대등하냐? 너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냐?

얼마나 교만한가? 너의 세상 잣대로 재지 말라. 하나님이 세우시고, 제 자리에 두신 법궤를 네가 뭔데 판단하느냐? 목사의 견해 밑으로 들어 오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잘 기억하라. 영맥으로 진단하면 교회에는 목사 한 사람의 영맥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영적 견해가 목사를 통하여 흐른다. 잘난 부목사나 전도사나 사모나 장로, 권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맥이 결코 흐르지 않는다.

제가 이제 와서 깨닫는 것은 목사들이 성도의 수준을 너무 높이 본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볼 때 성도들은 유치원 아이 들이야! 어렵게 가르치면 절대 못 알아 들어! 반복해서 초보적인 것들을 쉽게 쉽게 가르쳐야 해!”

목사 앞에, 교회 앞에, 신앙생활함에 잔꾀를 부리지 말라.

자기 똑똑한 체 하지 말라. 머리 굴리지 말라.

소처럼 뚜벅 뚜벅 걸으라. 낙타처럼 뚜벅 뚜벅 걸으라.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 목회를 배우면 한결같은 대답이,“우직하게 믿으라. 바보처럼 믿으라. 등신처럼 믿으라.”하신다.

잘 믿어 복을 받는 자가 최고지!

광야에서는 주님이 우리를 진짜 죽었나, 여전히 살아 있나 계속 시련과 연단함으로 돌려 본다. 어떤 이는 그냥 광야에서 일평생 뺑뺑이를 돌다가 죽고 만다. 가나안에 들어 가지 못한다. 자기가 죽지 않아 일생을 고생만 하고, 연단만 받다가 죽는다.

일찌감치 자기 견해가 죽어 버려야지!

에덴동산에는 견해가 하나 뿐이다. 천국에는 오직 하나의 견해 만이 있다. 하나님의 견해이다.

반대로 이 세상에는 한 가족 안에도 견해가 다르다. 형제 간에도 생각이 다 다르다. 교회는 하나님의 견해 밑에 통일시키는 천국 훈련장이다. 견해가 하나가 되려면 내 견해가 죽어야 한다. 내 견해가 죽으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교회에 나오면 제일 먼저 목부터 따고 죽어야 한다. 제물이 끌려 오면 바로 죽인다. 죽인 다음에 각을 뜬다.

그런데 당신은 왜 죽지 아니하고서, 세상의 그 펄펄 살아 있는 판단으로 법궤인 목사를 대적하고, 판단하는가?

당신이 먼저 죽어야 돼! 그 다음에 말하자고...

교회에 나오면 처음부터 목사님 앞에,“제 목을 따 주세요.”목을 내 놓아야 한다. 자기가 죽어야 비로소 참다운 신앙생활이 시작된다.

번제단의 제물은 칼로 죽임을 당하고, 각이 뜨여지고, 더러운 것들은 다 갖다버리고, 번제로 온전히 불태워져, 재가 되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성령님이 마음껏 쓰시지! 내가 펄펄 살아 있으니, 어떻게 성령님이 쓰실 수가 있나?

교회 안에 목사의 의지, 장로의 의지가 다르니 어찌 조용한가?

오직 하나님의 의지만 있어야지! 하나님의 견해에 가장 합당한 자가 누구인가? 목사님이지! 아니라고?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 목사를 그 교회에 세웠어!

연단 받고 쫓겨 갈 재목이라고? 하하! 똑똑하네.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말 장난 하지 마!

자기 견해가 다 부서져야 천국 간다. 교회는 천국 가는 훈련소이다. 내 견해를 버리고, 하나님의 견해에 맞추는 훈련하는 곳이 교회생활이다. 그러니 먼저 목사님의 견해에 맞추어야지! 성도들이 교만하고, 게을러 말을 듣지 않으니 문제지, 다른 게 뭐가 문제야!

하나님의 의지는 목사를 통하여 흐른다. 흐르지 않으면 그의 목회는 안된다. 설교도 못한다. 목회 자체가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 목사님과 함께 하는가, 하지 않는가?”성도가 영적으로 벌써 안다. 전 성도는 자기 교회 목사님의 영적 의지 밑으로 들어 가야 한다.

교회의 법궤는 주의 종 목사이다.

성도 안에 심령 성전이 제대로 지어져야 한다.“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전 안의 가장 중요한 것이 법궤이다. 모든 문제와 축복과 저주는 다 내 속에 있다.

교회를 제단이라 한다. 사람이다. 건물이나 강대상이나 강단이 아니다. 교회의 법궤는 말씀을 나타 내는 목사님이다. 법궤는 말씀을 담고 있는 궤짝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나, 그 속에는 만나 항아리와 십계명이라는 우리 신앙의 전부가 그 속에 들어 있다. 법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다. 그래서 목사를 잘 섬기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구약의 법궤와 똑 같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여호와의 복이 법궤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음을 알고, 군대 3만명을 선발하여 법궤를 모셔 온다. 법궤를 모신 수레를 아효는 앞에서 몰고, 웃사는 뒤에서 호위했다.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소가 뛰어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붙들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법궤로부터 복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주도 나오는구나!”

그렇다. 법궤는 잘 모셔야 축복이 되는데, 잘못 모시니까 저주가 되는 것이다.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 다윗은 법궤를 버리고, 가 버렸다. 그 후에 석달 동안에 오벧에돔의 집안이 법궤를 모시자, 복이 쏟아졌다.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배가 아파 당장 법궤를 다윗성에 옮겼다.

법궤가 복으로 역사하는 경우와 저주로 역사하는 경우를 잘 보라.

오벧에돔이 석달 동안에 받은 복이 왕의 귀에 들렸다. 얼마나 복을 받으면 소문이 대통령에게까지 들릴까?

이렇게 복을 받으라. 전국에 소문이 다 나고...

예수 믿어 복 받는 소문이 전국에 다 나야지!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오는데 다윗이 춤을 추자, 온 백성이 다 웃었다. 가랑이가 다 벌어지고, 속이 다 보였기 때문에...

미갈이 그래서 업신여겼다. 그 때 다윗이 저주하여 이후 미갈은 다윗과 동침치 못하고, 자식이 없이 죽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울의 가문이 끊긴 것이다. 이것도 다 예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복과 저주가 이렇게 차이 난다.

구약시대에는 법궤 자체로부터 능력이 나갔으나, 신약시대에는 사람인 주의 종을 통해 능력이 나간다.

웃사는 법궤를 운반해 가다가 흔들리니, 손을 댔다. 그리고 즉시로 죽었다. 착한 일을 했는데... 왜?

우리는 성도로서 법궤를 운반해 가고 있다. 법궤를 내 심령 성전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 가고 있다. 오늘날 법궤인 목사가 성도의 눈에 보기에 흔들린다고 손대지 말라.

장로들이 주로 손을 댄다.

자기들이 볼 때 목사가 목회하는 것이 미숙하고, 불안하고, 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세상 경험으로 보면 목사는 철부지와 같다.

나름대로의 판단과 정의감 때문에, 교회를 바로 세운답시고 장로들이 목사에게 손을 대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예 대놓고 자기들이 그릇 되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목사에게 공공연히 손을 대는 장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저주 받을 장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친구 목사는 위임 받는 조건으로 3년 내로 교회를 배로 부흥시키지 못한다면 사임한다는 각서를 쓰고 위임목사가 되었다. 4년을 견디며 목회 했는데, 직접 손으로만 맞지 않았지, 말로 맞을 수 있는 매는 다 맞았단다.

아아! 교회 부흥을 목사가 시키나?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부흥이 일어나지! 이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인간 집단일 뿐이다.

복을 받으러 나왔다가 저주 받는 경우가 이렇다. 목사에게 손대면 웃사처럼 죽는다. 먼저 영이 죽고, 이어 현실 속에 그 저주가 나타 난다.

오벧에돔이 법궤를 잘 섬기니, 복을 받지 않은가?

웃사가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두려워 떨며 법궤를 모셨다. 경외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서 사표가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주변에서 본이 있어야 자란다.

다윗은 법궤를 사모하고 잘 모시니, 복을 받지 않은가?

그러나 웃사는 법궤에 손을 대니, 죽지 않은가?

웃사의 행위는 정당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잘못은 법궤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모세가 이방여인과 결혼하지 말라 하고서, 구스여인을 취하였다. 아론과 미리암이 험담하자, 미리암이 문둥병에 들어 흰 눈처럼 되고 말았다.

당연히 옳은 말인데 왜? 법궤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성역은 정의를 뛰어 넘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기가 막힌다.

잘못은 모세가 하고, 저주는 미리암이 받는다. 잘못은 목사가 하고, 저주는 성도가 받는다.

스스로 정의감에 뛰어나, 주의 종에 손대지 말라. 교회를 위한다고, 성도를 위한다고 주의 종에게 잘못하지 말라. 자살 행위이다. 목사에게 대드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마귀는 목사에게 합리성과 정의감으로 대적하게 함으로, 성도를 저주하고 죽음으로 몰아 간다.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에 그 목사가 진정 성령의 종이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종이라면, 당신은 바로 심판을 당한다.

부흥사 000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경북 풍기 시골 지방에 목사가 추수감사절에 전자 오르간을 봉헌하자고 했다. 500만원 헌금하여 구입하자고 했다. 목사가 돈 500만원을 가지고 서울에 가서 사 왔는데, 목사가 생색을 내려고 700만원 주었다면서, 거짓말을 했다. 자기가 헌금을 200만원 했다면서...

성도들이 감쪽같이 믿었다. 계산서에는 700만원이었다.

일년 후에 전자 오르간이 고장이 났다. 수리 기사가 와서 500만원이라 하니, 장로가 사장에게 전화하여 따지니, 사장이 목사가 그렇게 영수증을 쓰라고 해서 했다 하여, 그만 들통이 났다.

주일날 목사가 설교하는데 장로가 일어나, "네가 목사야! 내려 와. 너 같은 거짓말쟁이의 설교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강단에 올라 가 목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 날 저녁에 장로의 딸이 바로 죽어 버렸다. 여러분! 믿지 않지?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제가 처음 교육전도사로 부임한 부산 0000교회에서, 내 가족인 장로와 동료 000 장로가 목사에게 삿대질을 하고 대드는 것을 보았다. 제 가족인 장로가 이렇게 말한 것을 생각한다.“당신이 목사야! 내려 와! 당신은 사기군이야!”

힘없는 목사가 그냥“허허”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그 목사 성격에 문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인지 모른다. 목사가 부족하고 흔들리니까, 장로들이 엉겨 붙지!

그러나 보라.

000 장로는 2년 후에 개천에서 떨어져 죽었다. 누가 죽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집 장남이 교통사고로 병신이 되어 버렸다. 그 집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친척집은 그런 치명적인 벌을 받은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인 000 권사님이 목사님 편에 서서 남편 장로를 막고, 밤마다 교회가 어려울 때, 교회에 가서 밤새워 철야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 그 다음의 벌, 즉 심판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일생을 가난과 노동과 자식 때문에 고통 가운데 산다. 자녀 때문에 그 장로님, 권사님은 죽음 같은 고통, 고통을 당했다. 목사를 대적하고 해치면, 자녀의 앞 길이 안풀린다.

“말씀 앞에 감정 품지 마!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아! 인간적인 감정 품지 마! 회개하라고 해!”

이 놈의 인간의 감정과 자존심 때문에 축복은 놓쳐 버리고, 저주를 자초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버리시는 방법인 것을 본인이 알지 못한다.

강남침례교회의 유명한 부흥사 김00 목사님의 교회에 000 장로가 있었다. 재산이 1,000억이었다. 그가 교회를 다 짓고, 양수리 수양관을 다 지었다. 그가 십일조를 여러 곳에 희사했다. 극동방송, 기독교방송, 아세아방송...

“장로님! 이 십일조가 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주님의 일에 희사합니다.”

“안돼! 십일조는 본 교회에 내고, 그 다음에 교회가 처리하는 것이지!”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갈등이 계속되었다. 점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져 갔다.

한번은 김00 목사님이 미국에 부흥회를 가는데, 비행기에 000 장로와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가 함께 타고 있었다. 일등석 퍼스트 클레스에는 그들이, 김00 목사님은 꼬리에 타고 있었다. 김00 목사가 그만 돌아 버렸다.

다음 주일에 예배 석상에서 바로 000 장로는 제명 당했다. 교회 제직 중 380명의 집사가 000 장로 회사의 직원이었다. 그 집사들이 강대상에 올라 와 반대를 했다. 집사들이 강단을 점거하자, 000 장로는 밑에서 조종했다.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이후 제명 당한 000 장로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예배시간 마다 강단 밑에서 목사를 째려 보며, 버텼다. 견디다 못한 김00 목사가 출석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버렸다. 그리하여 제직 380명과 영동의 1,000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뛰쳐 나가 000 목사의 <000교회>를 세웠다.

000 장로는 공공연히“내 죽기 전에 김00 목사를 매장시켜 버린다.”고 호언하고 다녔다. 언론을 돈으로 매수하여 김00 목사의 매장을 시도했다. 김00 목사는 천문학적인 목회 활동비를 쓰고, 1억 5천만원짜리 욕조를 쓴다고 기독교 잡지에 광고했다. 한번은 000 목사님이 찾아 갔더니, 그에게 김00 목사님이 욕조를 보여 주며,“이게 1억 5천만원 짜리냐? 100만원도 안해! 나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라.”했다. 마침내 김00 목사님이 걸려 들었다.

000장로가 퇴직한 경찰을 동원하여 미국의 슈퍼마켓을 김00 목사님의 자녀에게 팔게 하고, 돈을 사모로 하여금 한국에서 지불하게 했다. 사모가 몇 천만원 주었다가 외화 밀반출 위반으로 구속되어 50일을 감옥에 갔다. 김00 목사가 울면서, 세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사모가 감방 들어 간 그 다음 날 000장로는 교통사고로 죽어 버렸다. 380명 집사들 중에 주동적으로 패역한 사람은 다 죽고 말았다.

이것은 침례교의 유명한 사건 중의 하나다.

제가 처음 담임목사로 있었던 부산 00교회의 000 장로는 6명의 목사를 쫓아 냈다. 내가 마지막으로 쫓겨 났다. 철 없고, 어린 나는 그를 처음에 아버님처럼 모시고 목회하고 싶었다. 그러나 2년 동안 지내면서 받은 설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저 개새끼! 저 새끼는 죽어 지옥 가야 돼! 저 새끼가 없어야 교회가 돼! 저런 장로 새끼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는 거야!”

나는 2년 만에 견디지 못하고 00교회를 사임하고, 서울에 부목사로 올라 왔다. 그리고 불과 4개월 후,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조건물인 00교회는 깡그리 불타 버렸다. 6개월 후에 건강하던 그 부인 권사가 갑자기 암에 걸려 죽었다. 돈이 있던 000장로는 교회를 자기 힘으로 새로 지으려고 준비하던 중에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10여 미터 높이가 되는 교회 뒷담 앞에 서 있다가, 느닷없이 담벼락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목사를 괴롭히고 잘 되는 교인은 없다. 부목사 시절 하도 하도 못된 권사가 하나 있어, 도저히 참지 못하고“하나님! 저 년을 한번 쳐 주세요.”했더니, 그 다음 날 교회 오다가 넘어져 코가 깨지고 다리 뼈에 금이 갔다. 저주한 내가 놀라서 황급히 회개기도를 했다.

목사인 나는 내가 저주하면 상대방이 패가망신하고, 바로 죽는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인 목사의 권위이다. 성령 받고, 권능을 받은 이후에는 정말 이 사실을 절감한다.

목사는 축복의 통로요, 동시에 저주의 통로이다.

목사를 잘 섬겨라. 예수 잘 믿는 길은 목사를 잘 섬기는 길이다. 여러분이 훗날 이 교회와 나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이 사실 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법궤를 잘 섬기면, 복이 온다. 여러분의 심령 성전의 중심에 법궤가 있다. 바로 목사가 있다. 네가 섬기는 너의 목사님에게 일등으로 잘 하는 사람이 되라. 만 가지의 복이 거기서 온다.

당신의 목사와의 관계가 바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복을 받지 못한다.

대구의 팔공산 뒤 시골교회로 000 목사님이 부흥회를 갔는데, 중풍 걸린 장로 부인이 왔다. 치유 안수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영감이 왔다.

“이 병은 낫지 않습니다. 장로님! 목사님에게 손댄 적 있지요.”

“어떻게 알아요?”

“당신 부인이 안 죽은 것 만도 천만 다행입니다.”

들어 보니 기가 막힌 사연인데, 이 또한 역시 목사가 잘못했다. 목사가 잘못하고, 성도가 죽는다.

이 장로의 아들 둘이 자치하다, 연탄 가스에 죽어 버렸다. 부인은 중풍에 걸리고...

부흥회에서 춘천의 00감리교회의 한 장로는 중풍에 걸려 부흥사 000 목사가 안수하니, 그가 바로 현대판 웃사였다. 목사들을 쫓아 내는 킬러였다.

000 목사님이,“장로님은 안수해도 병 안나아!”했다. 그 교회 담임인 000 목사도 4번째로 쫓겨날 판인데, 마지막 부흥회나 한번 하고 쫓겨 가자 하고, 000목사를 모셔 부흥회를 한 것이었다. 그 장로의 아들, 손자들이 다 죽어 버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이 신학대학 4년인데, 정신병자가 되어 패가망신해 버렸다.

“목사님! 어떻게 할까요?”

“쫓아 낸 목사님 4분을 일일이 다 찾아 뵙고, 양복 한 벌씩 해 드리고, 용서 받고, 그 분들의 안수를 받으라.”가르쳐 주었단다.

어느 장로는 이사 짐을 다 꾸려 놓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목사를 끌어내 내쫓는 장로도 있다. 이러한 악한 장로가 있음으로 하나님의 저주도 있다.

여러분이여!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 주님 오실 때까지 법궤를 잘 섬겨라. 당신이 축복을 받는 제일 지름길이 여기에 있다.

000 집사가 지난 6년 반을 그렇게나 교회와 목사를 잘 섬기더니, 한 일년 전부터 슬슬 병들기 시작하여, 교회와 목사에게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예배를 빠뜨리기 시작했다. 지난 주일에는 주일낮예배를 빠져 버렸다. 지난 두어 달 간 목사인 내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여러분은 주일낮예배 빠뜨리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데, 목사가 왜 말 한 마디 않는 줄 아는가? 당신 믿음 수준이 그 밖에 안되기 때문에 목사가 입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정신 차려야 돼!

알고 보니, 새벽기도회에 나가던 교회의 여자 목사에게 미혹을 당하여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떠나 버렸다. 완전히 사람 뒤통수를 치고, 배신해 버린 것이었다.

성도 여러분! 당신 목사님을 법궤로 잘 모셔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당신 자신이 법궤가 되라.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역시 법궤이다. 마찬가지로 불신가족이 핍박하면 역시 패가 망신하고, 죽는다.

자기 속에 심령 성전을 이루고, 법궤를 소유하라.

목사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사람은 복을 받기 위하여, 목사와의 관계를 회복하라.

000 목사님의 이모는 목사님을 욕하면 사정없이 귀퉁머리를 날렸다. 한번은 군목이 설교하는데, 다 졸았다. 어릴 때 000 목사님이 이모 집에 가서,“아이 씨! 목사님이 뭐 그래! 설교가 하나도 은혜 안된다.”했더니, 이모가 사정없이 귀퉁머리를 때리면서,“야! 이 새끼. 뭐! 하나님의 사자님한테 뭐라고... 나는 은혜 많이 받았다.”했다.

그런데 이모님도 졸았다. 이모님의 자녀들 4명이 다 서울대학을 나와 출세했단다.

록펠러 어머니의 유언을 기억하자.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기라.”

록펠러가 그래서 당대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

우리는 세상인 애굽을 떠나, 시련과 연단의 광야인 이 현실을 지나,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 간다.

가나안은 법궤 없이는 들어 갈 수가 없다. 법궤가 앞장 설 때 요단강 물이 갈라졌다. 법궤가 앞장 설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법궤가 앞장 설 때 항상 대적이 무너졌다.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 축복을 창조하려면 법궤를 앞장 세우고 가야 한다. 법궤는 여러분의 목사이다. 목사와 함께 영적 행진을 해야 한다. 당신 혼자서는 절대 안된다. 당신의 법궤가 없이는 안된다.

저도 개인적으로 나의 법궤가 있어야 한다. 수 많은 영적 선배 목사님들이 나의 법궤이다. 그 분들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나도 이 길을 간다.

주여! 제게 가나안을 주시옵소서.

가나안에는 법궤를 앞세우고 들어 감을 잊지 말라. 영적으로 무지하면, 축복을 다 놓치고 만다. 오히려 저주 받는다. 예수 잘 믿는다고 까불어 보았자 헛 일이다. 정신 차리라.

목사님을 잘 섬겨라. 나의 목사님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내 목사님이 있는가? 내 심령 성전의 법궤가 있는가?

과거 한얼산기도원의 이천석 목사님이 000 목사님에게 안수할 때,“오늘 안수는 부부에게만 축복 안수합니다.”해서 제일 먼저 나갔더니, 의자에 앉아서,“뭐 하는 놈이야!”“전도삽니다.”“전도사? 뭐가 소원이야?”사모와 함께 안수하면서,“하나님! 이 젊은 종이 주님을 위하여 원없이, 한없이 쓰임 받기 원합니다. 한국교회에 쓰시옵소서.”그러더니“들어 가. 이 새끼야!”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 훗날 이루어졌다. 그는 한국교회의 큰 부흥사가 되었다.

나의 법궤인 목사님을 통하여 축복을 받고, 또 받으라.

케냐의 18,000명 교회 목사이며, 1,000개 교회를 개척한 아더 키퉁가 목사님이 제게 안수하면서,“세계를 비행기를 타고 날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종입니다.”했다. 나는 굳게 믿는다. 믿고 믿고, 또 믿는다.

주여! 제게 법궤를 주소서.

법궤를 가진 자가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성경에 보라. 모세, 다윗, 주의 종들이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법궤가 되라.

법궤인 주의 종의 축복을 받으라.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 장로가 바로 목사님이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이해 안될 때, 불합리할 때, 싫을 때, 시험꺼리가 될 만한 일에, 내 힘에 부칠 때...)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목사가 목회를 즐겁게 하게 하라.)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엡6:18-2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 또 나(주의 종 목사)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나의 사정(형편, 마음, 처지)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사역과 하는 일)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왕상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이는 주의 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사르밧 과부는 작은 공궤로 가뭄을 이기고, 아들도 살림을 받았다.)

(왕하4:8-10)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 갔더라.

(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여인은 아들을 선물로 받고, 죽은 아들의 살림도 받았다.)

(롬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 하느니라.”

(000 목사의 0000교회 성도들은 70%가 목사님을 위하여 죽겠다고 하고, 전 재산을 다 내어 놓겠다고 공언한다.)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형 알렉산더와 함께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 루포이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요삼1:9-11)"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디오드레베의 반열에 서지 말라.)

<12>.목사님을 잘 섬기는 법;

1>.교회에서 으뜸 되려 하지 말고, 항상 목사님께 복종하라.

2>.범사에 목사님을 잘 대접하라.

3>.악한 말로 망령 되이 목사님을 폄론하지 말라.

4>.목사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시기하고, 소외시키려 들지 말라.

5>.야당성을 버리고, 악한 것을 일체 본받지 말라.

2013.1.18.금.전북 익산 8개 교회 연합제직수련회>

1강의 오전10:40-12:10-빌4:6-7절, 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한 제직

2강의 오후 1:30- 3:00-히13:7,17절, 목사님을 잘 섬기는 제직

1.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한 제직

1.신앙생활은 기도생활이다

기도생활은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이며, 뿌리이다. 기도생활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되지 않는다. 깊은 기도생활이 없으면 신앙생활은 진전을 이룰 수 없다. 기도는 신앙인의 생명이요 호흡이다.

1>.하나님의 성령이 기도하게 하셔야, 비로소 기도할 수 있다.

2>.괴로울 때에 기도하라. 고난 중에 기도하라.

3>.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

4>.기도 응답의 확신으로 기도하라. 5대 확신의 기도를 하라.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

5>.주의 종의 기도를 받으라.

6>.주의 전에서 기도해야 한다.

7>.간구하라. 간절히 기도하라. 눈물로 기도하라.

8>.가난할 때에 기도하라.

9>.기도는 하나님만 주목함이다.

10>.기도 중단은 가장 큰 죄악이다.

11>.중보기도(도고)는 능력 사역의 원천이다.

12>.기도는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다.

13>.오직 믿음으로만 기도하라.

14>.기도 응답의 행복을 맛 보라.

사람은 경험의 존재이다. 기도 속에 행복하라. 기도하다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고, 즐거워 하라.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스스로 기쁨을 누리라.

15>.염려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16>.기도는 인내의 전쟁이다. 조급함을 버리라.

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 똑 같이 큰 기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 기도의 지속적인 인내, 많은 양의 기도가 필요하다.

17>.부부 사이가 행복해야 기도가 응답된다.

18>.기도는 질이 아니라 양이다.

주님 앞에 오래, 많이 앉아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가장 빨리 간다.

19>.하나님과의 깊은 영교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20>.방언기도 하라.

방언은 능력 있는 기도의 출발점이다. 방언을 못하면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 다음에라야 묵상기도, 관상기도, 영교기도, 대화기도에 들어 간다.

21>.겸비와 회개의 기도를 올리라.

22>.금식하며, 기도하라.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끊고, 자유를 주며, 죄악이 떨어져 나가게 하고, 내적 상처가 떨어져 나가게 하며, 성결하게 한다. 권능을 준다. 영권의 온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폭발한다.

(사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壓制) 당(當)하는 자(者)를 자유(自由)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23>.성령 받기를 기도하라. 성령으로 기도하라.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라. 성령기도 하라.

방언기도, 은사기도, 이성을 넘어 가는 기도, 영 분별, 환상, 투시, 영안, 예언, 방언 통역,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기도이다.

24>.가장 중요한 7대 기도제목:

1>.지켜 주옵소서.

2>.인도 하옵소서.

3>.가르쳐 주옵소서.

4>.도와 주옵소서.

5>.축복 하옵소서.

6>.함께 하옵소서.

7>.평강하게 하옵소서.

25>.기도의 자세

1.목표를 분명히, 2.말씀을 따라, 3.회개와 용서의 마음으로, 4.믿음으로, 5.성령의 도우심을 구함으로, 6.뜨거운 마음으로, 7.확신으로, 8.감사함으로, 9.구체적으로, 10.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26>.주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기도 응답)

<1>.먼저, 신속하게 응답해 주시는 기도가 있다.(Yes의 기도)

<2>.뜻을 정하여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들어 주시는 것이 있다.(Wait의 기도)

<3>.거부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기도의 응답이 있다.(No의 기도)

2.왜 성령신앙인가?

1.왜 성령신앙인가?, 행전2:1-4절

1>.영적 낙제 수준의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10점 정도)

약 20% 의 교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 년에 교회를 두 달도 채 나오지 않는다. 목사는 이들을 이끄는데, 목회력의 30%를 거의 다 소진한다.

2>.평균적인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30점 정도)

구원의 확신은 있으나, 빈 쭉정이 들이다. 일생에 몇 번 쯤은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어 보려 하나,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런 성도의 수는 약 50%이다. 목사는 이들에게 목회력의 40% 정도를 소진한다.

3>.육신적인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50점 정도)

이들은 외관상으로 전적인 헌신자 들이다.

이들은 신앙의 뿌리가 성령이 아닌, 육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들을 위해 목회력의 약 20%를 소진한다. 이들은 교회 안의 최상층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30-35 % 정도의 신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4>.신령한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80점 이상)

이 그룹이 영적 성인으로 성숙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는 봉사, 충성보다, 자신의 영적 성장의 원리를 바로 붙든 사람이다.“무엇을 할 것인가?”보다,“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 들이다.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의 살아 있는 실제적인 교제가 있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충만함, 기쁨, 평안,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음, 하늘에 대한 소망, 영적인 것에 대한 실제적 체험, 일상의 것들을 채우시는 하나님 경험, 기적의 경험, 성령의 역사와 은사의 일상적 체험... 등이 생생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하나님께 훌륭하게 쓰임 받는다. 성령님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서 동행하시며, 인도하신다. 그의 영혼을 늘 그것을 느끼고 누린다. 그의 가치관은 세상에서 떠나 언제나 하늘에 가 있으며, 그의 목표는 영적인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경이, 놀람, 능력, 기적, 권능, 은사...의 삶이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신앙의 뿌리가 자아에 기초한 육에 있지 않고, 영에 기초한 성령께 닿아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 가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걸어 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힘으로 밀어 올리는 율법적 신앙생활이 아닌, 성령 안에서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범사에 그리스도의 삶과 동일시 되며, 성령의 사람이 된다. 그에게는 갑자기 풍성한 성령의 삶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자기 안의 그리스도가 살기 시작한다.

갈2:20절의 삶이 나온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肉體)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爲)하여 자기(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면, 마음 속의 넘치는 기쁨과 평안 때문에 때때로 황홀경 속에 들어 가기도 한다. 병 고침, 성령의 은사, 역사, 기름 부음, 능력 행함, 기적 들이 주변에서 수시로 일어 난다.

그러나 이런 사람 역시 항상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니다. 자아가 다시 살아나 영적으로 내리막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주목하고, 성령 충만함을 지키기 위하여 성령님께 복종하면 나날이 성령 충만한 삶이 진보한다. 그는 매일, 매 순간 성령님을 주목하여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힌 몸임을 확인한다. 자기 부인이 계속된다.

그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경험하며, 나날이 거룩하게 변해져 간다. 그리고 승리를 향해 다가 간다. 매 순간 항상 그의 자아는 죽음에 넘겨져야만, 영적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이 때 성령 충만한 그의 영적 점수는 90점-95점 대로 상승한다. 거의 그리스도와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죄와 무관한 삶을 살게 된다. 마음 속에 죄악을 생각만 해도 성령님의 탄식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성화란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내 속에서 이루어지고, 삶으로 살아지는 역사이다.

이런 사람은 교인 비율상으로 5% 미만이다. 아니, 2-3%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2.성령 세례(행전2:1-4절)

1>.예수님의 경우 성령 세례는 어떻게 나타 나셨는가?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태어 나시고, 성령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신 후에 사역을 시작하셨다.

온통 성령 자체이신 예수님에 임한 성령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한 신앙생활과 사역을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 세례 이후에 놀라운 공생애를 비로소 시작하신 것이다. 성령 세례 이전의 30년은 그냥 한 인간으로 묻혀 있다.

2>.사도들의 경우 성령 세례는 어떻게 나타 났는가?

1>.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반을 살았다. 그러나 성령이 나타 나시지 않았다. 그들은 사역의 실패자 들이었다. 갈릴리신학대학을 나와도 안된다. 예수님께 직접 3년 반을 배워도 안된다.

2>.그 다음, 부활하신 주님께 40일을 더 배웠다.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40일 간을 보충수업을 해도 안돼!

3>.그리고“몇 날”이 지났다. 성령이 오셨다.

오순절 성령 세례를 단회적 사건, 지나 간 사건이라고 말하는 신학은 오류이다. 성령세례는 계속되는 사건이다. 이것이 성령의 나타남의 관건이다.

성령 세례가 임하는 경우:

1>.말씀을 듣는 중에 - 고넬료 가정의 경우

2>.안수 받을 때 - 사마리아 교회와 에베소 교회의 경우

3>.기도할 때 -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왜 성령신앙인가?

1.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사역 전체가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2.성령으로 영계가 열리며, 귀신들이 나가기 때문이다.

3.위대한 주의 종들은 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 들이기 때문이다.

4.성령으로가 아니면 믿음도,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5.우리의 신앙과 사역과 교회 섬김과 전도도 다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성령을 훼방하고는 신앙생활도, 주의 일을 할 수 없으며, 성령으로 비로소 영적 사역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며, 알며, 가르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6.성령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성령이 없는 자는 곧 진정한 신앙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7.성령으로 은사와 권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8.성령 충만해야 진정한 주님의 충성된 헌신적인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9.인간의 계획과 경영은 모두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에, 오직 성령으로만 나아 가야 한다.

10.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지시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과 음성을 그대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1.성령과 성령 신앙 만이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며, 실제적인 간증과 증거와 전도도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12.성령으로 구원과 영생, 은사와 권능, 모든 하늘의 것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13.범사에 성령이 친히 도우시기 때문이다.

14.성령으로만 진정한 주의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15.성령님 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 신령한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16.우리가 성령의 것이며, 성령 안에 있기 때문이다.

17.오직 성령으로 행하고, 육체로 행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18.성령을 소멸하거나 모독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3>.성령님의 역사와 은사

1>.성령님은 누구신가?

1.성령님은 인격이시다.

2.성령님은 영이시다.

*영. 혼. 육의 사람:

<1>.육으로 사는 사람 - 먹기, 잠자기, 성욕 채우기, 육신의 정욕 채우기...

(요일2:16)이는 세상(世上)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肉身)의 정욕(情欲)과 안목(眼目)의 정욕(情欲)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世上)으로 좇아 온 것이라.

<2>.혼으로 사는 사람 -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채우기, 정신적 유희 즐기기, 지식의 우상화, 세상의 사상과 이론, 철학의 노예...

(골2: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擄掠)할까 주의(注意)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遺傳)과 세상(世上)의 초등학문(初等學問)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3>.영으로 사는 사람 - 신앙의 삶, 은혜의 삶, 성령의 사람...

(갈6:8)자기(自己)의 육체(肉體)를 위(爲)하여 심는 자(者)는 육체(肉體)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聖靈)을 위(爲)하여 심는 자(者)는 성령(聖靈)으로부터 영생(永生)을 거두리라.

3.성령님은 보혜사(도와 주시는 분)이시다. 모든 영역에서 나를 도우신다.

*성령의 삶의 3대 요체 - 성령 주목, 성령 동행, 성령 충만

1>.거듭나게 하심 - (요3:5)예수께서 대답(對答)하시되 진실(眞實)로 진실(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聖靈)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2>.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 - (롬8:13)너희가 육신(肉身)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靈)으로써 몸의 행실(行實)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靈)으로 인도(引導)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3>.영적 가족이 되게 하신다 - (롬12: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肢體)가 되었느니라.

4.성령님은 은사를 부어 주신다.

우리가 능력있는 영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예:기도-일반기도와 방언기도)

2>.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성령님의 3대 역사)

성령님은 3가지 방면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in, by, on)

<1>.내 안에 계신 성령님: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절)

기타 갖가지 아름다운 인격적 열매:선행, 구제, 섬김, 궂은 일 감당함, 충성함, 성실함, 진실함, 양심적임......

인격적인 열매가 바로 은사로 쓰인다.

섬김(사역)의 은사(gift of service)

권위(권면,믿음의 격려)의 은사(gift of exhortation)

구제(기부,관대한 행위,나눠줌)의 은사(gift of giving)

긍휼(동정,슬픈 자를 위로함,친절을 베풂)의 은사(gift of mercy)

지혜(권면,말,성령이 그 때 그 때 가장 필요한 지혜로 주시는)의 말씀의 은사(gift of wisdom)

서로 돕는 은사(gift of helping)

목사(하나님의 백성을 돌봄)의 은사(gift of Pastor)

청빈의 은사(자발적 빈곤)(gift of poverty)(고전13:3절)

후한 대접의 은사(gift of hospitality)(벧전4:9절)

중보기도의 은사(gift of intercession)

<2>.내 곁에 계신 성령님:

대화, 교통, 인격적 교제, 인도하심, 동행하심, 가르치심, 생각나게 하심, 깨닫게 하심, 강권하심......

내 곁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에서 성령님은 최고의 인격적 관계로 모셔야 할 내 생애 최고의 주인이시다.

1.늘 대화하라.

2.늘 배려해 드려라.

3.늘 사랑하라.

4.늘 마음으로 신경을 써 드려라.

5.배신 않고, 죄짓지 않고, 마귀에게 속하지 않아야 한다.

6.최선을 다하라.

7.늘 복종, 순종하라.

8.그 분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라.

9.성령님께 다 맡기라.

10.그 분께 세세히 다 말씀드리라.

11.비전을 의논하라.

12.사람을 위해 그 분과 의논하라.

사랑하는 이, 아픔과 고통을 주는 이, 미움을 주는 이...

성령충만해지면 사람에 대한 미움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13.생각나는 대로 범사를 성령님과 함께 나누라.

<3>.내 위에 계신 성령님:

사역과 직분 수행을 위한 재능과 능력과 열정과 은사

1.예수님을 믿고 고백함은 성령님의 역사이다.(고전12:3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2.은사의 근원은 성령님이시다.(4절)

3.직임 수행을 위하여 은사를 주신다.(5절)

4.은사로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교회와 성도의 유익을 위함이다.

5.분쟁없이 지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게 하시려고 은사를 활용하게 하신다.

3>.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내 안에, 내 옆에, 내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3대 역사와 꾸준히 동행하라.

능력과 은사를 경험하라. 말씀(묵상과 설교)과 기도(통성,골방)와 찬양속에서...

4>.성령님은 어떤 은사를 주시는가? - 28가지 恩賜(은사)의 세계

롬12장 6-8절

1.예언(설교,영적으로 감동된 발언,말씀으로 분별하는 일,앞 날의 지침)의 은사(gift of prophecy)

2.섬김(사역)의 은사(gift of service)

3.가르침의 은사(gift of teaching)

4.권위(권면,믿음의 격려)의 은사(gift of exhortation)

5.구제(기부,관대한 행위,나눠줌)의 은사(gift of giving)

6.지도력(권위,다스림,행정)의 은사(gift of leadership)

7.긍휼(동정,슬픈 자를 위로함,친절을 베풂)의 은사(gift of mercy)

고전12장 8-10, 28절

[고전 12:4-12절] 恩賜(은사)의 세계

8.지혜(권면,말,성령이 그 때 그 때 가장 필요한 지혜로 주시는)의 말씀의 은사(gift of wisdom)

9.지식(공부,앎,영적 지식을 알고,전파하고,가르치는)의 말씀의 은사(gift of knowledge)

10.믿음(역사를 일으키는 권능)의 은사(gift of Faith)

11.병 고침(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의 은사(gift of healing)

12.이적(기적,능력 행함)의 은사(gift of miracle)

13.영 분별함(영적인 일들을 분별, 사람의 배후에 있는 영의 실체를 분간,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직시함)의 은사(gift of discerning spirits)

14.방언(방언은 어린 아기의 언어를 배움과 같다)의 은사(gift of tongues)

15.방언 통역(입술을 다스리는 자에게,은사의 최고봉 단계)의 은사(gift of interpretation)

16.사도적 은사(gift of apostle)

17.서로 돕는 은사(gift of helping)

18.다스림(행정,조직)의 은사(gift of administration)

엡4장:11-12절

19.복음 전하는 자(전도자)의 은사(gift of evangelism)

20.목사(하나님의 백성을 돌봄)의 은사(gift of Pastor)

21.독신,금욕의 은사(gift of celibacy)(고전7:7절)

22.청빈의 은사(자발적 빈곤)(gift of poverty)(고전13:3절)

23.순교의 은사(gift of martyrdom)(고전13:3절)

24.선교사의 은사(gift of missionary)(엡3:6-8절)

25.후한 대접의 은사(gift of hospitality)(벧전4:9절)

26.중보기도의 은사(gift of intercession)

27.구출(逐鬼축귀,逐邪축사)의 은사(gift of exorcism)

28.예배 인도의 은사

29.글 쓰는 은사

30.선교하는 은사

31.匠人의 은사

5>.方言(방언), 고린도전서14:1-40절

성령의 나타남의 출발점, 시작

6>.神癒(신유)

2.목사님을 잘 섬기는 제직

1>.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님과 교회를 잘 섬김이다.

2>.훌륭한 목사란 어떤 사람인가? 골1:24-29절, 벧전5:1-4절

<1>.성도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는 자(골1:24)

<2>.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자(24)

<3>.성도를 위한 자(25)

<4>.성도를 완전한 자로 세우는 자(28)

<5>.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자(29)

<6>.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자(29)

<7>.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벧전5:2절)

<8>.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하라.(2절)

<9>.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3절)

이상의 말씀은 목사와 장로가 언제나 기억하고 지켜야 할 지도자의 덕목이다.

3>.주의 종을 받드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

목사를 사랑하라.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로 하여금 행복하게 목회하게 하라.

[히 13:17-21절] (17)너희를 인도(引導)하는 자(者)들에게 순종(順從)하고, 복종(服從)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靈魂)을 위(爲)하여 경성(警醒)하기를 자기(自己)가 회계(會計)할 자(者)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有益)이 없느니라. (18)우리를 위(爲)하여 기도(祈禱)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善)하게 행(行)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善)한 양심(良心)이 있는 줄을 확신(確信)하노라.

<1>.순종하고 복종하라.(17절)

<2>.나를 위한 목사의 기도를 축복 되게 하라.(17절)

<3>.목사가 목회를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17절)

<4>.목사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라.(18-19절)

4>.목사님을 잘 섬기는 행복. 사무엘하 6:1-14절

<1>.하나님이 당신 이름을 두신 곳

성 소:

1>.번제단 - 죽음의 능력, 죽어 제물이 되어야 한다. 자아가 죽어야 한다.

2>.물두멍 - 회개의 능력, 회개로 신앙의 출발을 해야 한다.

3>.떡 상 - 말씀의 능력, 날마다 말씀을 먹어야 한다. 성령의 조명한 말씀을...

4>.금등대 - 성령의 조명,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5>.분향단 - 기도의 능력, 기도의 삶이 늘 함께 해야 한다.

지성소:

6>.법궤 - 임재의 능력, 하나님이 내게 임재해 계셔야 한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2>.“성도의 법궤는 목사이다.”

오늘날 우리 심령 성전의 법궤는 무엇일까?

법궤는 하나님의 종 목사이다. 목사 속에 하나님의 생생한 살아 있는 지도력과 성령의 부어 주시는 말씀과 삶의 지침이 다 들어 있다.

법궤는 지성소 한 가운데 있다. 목사는 교회 한 가운데 있다.

법궤 위의 속죄소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목사가 강단 위,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우리의 심령 성전에 법궤를 늘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당신의 목사를 영적으로 늘 가슴에 품고, 그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받으며, 그의 꾸중과 훈계를 들으며 살아 가야, 당신의 영혼과 삶이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3>.록펠러의 어머니의 10가지 유언

1.하나님을 너의 친 아버지로 섬겨라.

2.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오른쪽 주머니는 반드시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4.주일은 꼭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라.

5.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 자리에 앉으라.

6.하루에 성경을 한 장씩 읽으라.

7.하루를 기도하고, 시작하라.

8.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회개 기도를 하고 자라.

9.사람과 원수를 맺지 말라.

10.불쌍한 이웃을 힘이 닿는 대로 도우라.

<4>.목자와 양의 관계

<5>.청지기 목사, 청지기 목회

<6>.목사의 성도를 지키는 5차 방어선

1차 방어선은 예배와 설교이다.

2차 방어선은 중보기도의 방어선이다.

3차 방어선은 전화, 심방, 편지, 강권 등의 돌봄의 방어선이다.

4차 방어선은 경고의 방어선이다.

5차 방어선이 있다. 인내의 방어선이다.

<7>.교회 내의 법궤를 허무는 자들:사모, 부목사들, 여전도사들, 장로들, 권사들, 집사들......

<8>.법궤인 목사는 축복의 통로인 동시에, 저주의 통로이다.

법궤가 흔들린다고, 붙들지 말라. 법궤의 위치가 불안하고, 문제가 있고, 죄가 있고, 성격에 문제가 있고, 네 판단에 내가 붙들어 주어야 목회를 잘 하고, 교회를 잘 세울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 교만이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다.

<9>.법궤는 하나님의 종 목사이다.

법궤를 잘 모셔야 한다. 내 중심에 모셔야 한다. 법궤를 소중히 해야 한다. 법궤는 내가 가르치고, 다스리고, 판단하고, 문제로 삼을 대상이 아니고, 무조건 잘 모셔야 할 가장 소중한 대상이다. 법궤인 주의 종을 그래서 잘 섬기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전부 나의 축복의 원천이 되고, 바탕이 된다.

너의 법궤를 찾으라. 성소는 나 자신이며, 지성소는 내 밖에 있다. 번제단, 물두멍, 떡상, 금등대, 분향단은 다 내 속에 있으되, 나의 법궤는 내 밖에 있는 것이다. 바로 내가 섬기는 나의 목사님이다.

진정 내 영혼이 복을 받으려면, 나의 목사님이 있어야 한다.

<10>.십일조의 의미

십일조는 교회에 바치는 것이 아니다. 주의 종에게 바치는 것이다. 구약을 보라. 제사장들의 생활을 위한 양식이 십일조의 기원이다. 레위인들이 먹고 살도록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교회와 주의 종에게 말라기 3장의 십일조 축복과 저주를 명심하고, 예물을 드려라. 십일조는 주의 종의 응식(應食)이다.

<11>.나의 법궤를 어떻게 찾을까?

1>.자기 목사를 찾으라.

2>.자기 목사를 최고의 지성으로 잘 섬겨라.

대접하라. 모든 좋은 것으로...

선물하라.

집안 경조사에 항상 최고의 어른으로 모시라.

목사와 항상 함께 살라. 삶의 모든 일에 항상 목사님이 생각 나야 한다. 목사님은 우리 집에 살지 않지만, 우리 가족 중에 최고 가족이다.

3>.자기 목사와 동역하라. 예배, 말씀, 기도, 범사에 동역하라.

예배 잘 참석하라.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은혜 가운데서 자라 가라. 10년이 가도 안 자라는 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꼴을 먹지 말라. 여기 저기 다니지 말라. 새벽기도를 다른 교회에 나가지 말라. 자기 교회로 오라. 영적 꼴을 한 가지로 먹어야 한다. 자기 교회, 자기 목사가 없는 사람은 잡식을 하다가, 탈이 난다. 양신이 든다. 양은 분별력 자체가 없다. 눈이 멀기 때문이다.

자기 목사가 힘을 다해 영적 설교를 하고, 영혼을 살려 놓으면, 새벽기도 나간 교회 목사가 다른 설교하여 그 영혼을 망쳐 놓는다. 영적으로 혼란이 오고, 나중에는 그만 양신이 역사한다. 미혹 당한다.

원로목사님 들이 하는 충고 3가지가 있단다.

<1>.장로는 반드시 그 아내를 보고 세우라.

장로가 신앙이 없어도 함께 사는 여자가 바로 되었으면, 그 남자는 바로 선다. 그러나 여자가 시원찮으면 틀림없이 말썽을 부린단다. 목사와 대적한단다.

<2>.우직하게 하나님을 섬겨라.

까불지 말고, 요란 떨지 말고, 잘난 척 하지 말고, 똑똑한 척 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오직 진실하고 꾸준하게, 표나지 않게 주님만 잘 섬겨라.

소처럼 우직하게... 낙타처럼 터벅 터벅...

<3>.하나님이 채찍질 하고 때려, 교인이 벌을 받고 망하려면 예배에서 차츰 차츰, 한 발, 한 발 멀어져 간다.

처음에는 졸고, 다음에는 앞에서 뒤로, 뒤에서 기둥 뒤로, 그러다가 결석하고, 그리고 교회를 떠난다. 물론 핑계는 다 이유가 있다. 예배에 실패하는 자가 되지 말라. 예배에 지각하지 말라.

기도에 동역하라.

목사가 기도하는 것을, 너도 기도하라.

다른 뜻 품지 말라.

“목사님과 맞지 않다.”

여전도사가 말한다. 집사가 말한다. 사모가 말한다. 끼리 끼리 모여 앉아 헛소리 한다. 웃기는 소리...

교회에는 목사 한 사람의 영맥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영적 견해가 목사를 통하여 흐른다. 잘난 부목사나 전도사나 사모나 장로, 권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맥이 결코 흐르지 않는다.

목사 앞에, 교회 앞에, 신앙생활함에 잔꾀를 부리지 말라.

자기 똑똑한 체 하지 말라. 머리 굴리지 말라.

소처럼 뚜벅 뚜벅 걸으라. 낙타처럼 뚜벅 뚜벅 걸으라.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 목회를 배우면 한결같은 대답이,“우직하게 믿으라. 바보처럼 믿으라. 등신처럼 믿으라.”하신다.

잘 믿어 복을 받는 자가 최고지!

교회에 나오면 처음부터 목사님 앞에,“제 목을 따 주세요.”목을 내 놓아야 한다. 자기가 죽어야 비로소 참다운 신앙생활이 시작된다.

번제단의 제물은 칼로 죽임을 당하고, 각이 뜨여지고, 더러운 것들은 다 갖다버리고, 번제로 온전히 불태워져, 재가 되어 사라져야 한다.

자기 견해가 다 부서져야 천국 간다. 교회는 천국 가는 훈련소이다. 내 견해를 버리고, 하나님의 견해에 맞추는 훈련하는 곳이 교회생활이다. 그러니 먼저 목사님의 견해에 맞추어야지!

하나님의 의지는 목사를 통하여 흐른다. 흐르지 않으면 그의 목회는 안된다. 설교도 못한다. 목회 자체가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 목사님과 함께 하는가, 하지 않는가?”성도가 영적으로 벌써 안다. 전 성도는 자기 교회 목사님의 영적 의지 밑으로 들어 가야 한다.

교회의 법궤는 주의 종 목사이다.

성도 안에 심령 성전이 제대로 지어져야 한다.“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전 안의 가장 중요한 것이 법궤이다. 모든 문제와 축복과 저주는 다 내 속에 있다.

교회를 제단이라 한다. 사람이다. 건물이나 강대상이나 강단이 아니다. 교회의 법궤는 말씀을 나타 내는 목사님이다. 법궤는 말씀을 담고 있는 궤짝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나, 그 속에는 만나 항아리와 십계명이라는 우리 신앙의 전부가 그 속에 들어 있다. 법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다. 그래서 목사를 잘 섬기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구약의 법궤와 똑 같다.

장로들이 주로 법궤인 목사에게 손을 댄다. 자기들이 볼 때 목사가 목회하는 것이 미숙하고, 불안하고, 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세상 경험으로 보면 목사는 철부지와 같다. 그래서 장로들이 나름대로의 판단과 정의감 때문에, 교회를 바로 세운답시고 목사에게 손을 대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예 대놓고 자기들이 그릇 되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목사에게 공공연히 손을 대는 장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저주 받을 장로들이 한 둘이 아니다.

목사는 축복의 통로요, 동시에 저주의 통로이다.

목사를 잘 섬겨라. 예수 잘 믿는 길은 목사를 잘 섬기는 길이다. 법궤를 잘 섬기면, 복이 온다. 여러분의 심령 성전의 중심에 법궤가 있다. 바로 목사가 있다. 네가 섬기는 너의 목사님에게 일등으로 잘 하는 사람이 되라. 만 가지의 복이 거기서 온다.

당신의 목사와의 관계가 바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복을 받지 못한다. 당신 목사님을 법궤로 잘 모셔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당신 자신이 법궤가 되라.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역시 법궤이다. 자기 속에 심령 성전을 이루고, 법궤를 소유하라.

목사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사람은 복을 받기 위하여, 목사와의 관계를 회복하라.

<12>.목사님을 잘 섬기는 법;

1>.교회에서 으뜸 되려 하지 말고, 항상 목사님께 복종하라.

2>.범사에 목사님을 잘 대접하라.

3>.악한 말로 망령 되이 목사님을 폄론하지 말라.

4>.목사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시기하고, 소외시키려 들지 말라.

5>.야당성을 버리고, 악한 것을 일체 본받지 말라.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