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눈물의 선지자 - 예레미야

하나님아들 2015. 6. 24. 14:57

 

눈물의 선지자 - 예레미야

 

 

*- 본문 : 렘 1:4-10(구약1050쪽) -*

 

Ⅰ. 예레미야의 인적사항

 

1) 예레미야의 뜻 :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여호와께서 던지신다.”

2)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3) 베냐민 땅 아나돗에서 출생

4) 남유다 요시야 왕 13년부터 시드기야의 11년 5월까지 활동

5)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애굽에서 순교함

 

Ⅱ 시대적 배경

 

예레미야가 예언활동을 하던 시기에 국제 정세는 앗수르와 신 바벨론 사이에 세력다툼이 있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요시야가 대대적인 영적 대 각성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요시야가 갑자기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전사하자 남유다는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왕들의 악행과 실정이 계속 이어지고 나라전체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남유다도 신흥바벨론의 세력에 처참하게 멸망당하고, 파괴되는 암울한 시기이다.

 

Ⅲ. 예레미야의 특징

 

예레미야는 구약에서 굉장히 방대한 책이다. 그리고 시와 산문형식으로 기록되었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연대순으로 기록되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만히 보면 매우 무질서 하고 횡설수설하며 무질서한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레미야서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예레미야가 예언해야 할 일이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말하기 괴로운 일들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넘나들면서 이때의 상황, 저 때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실성한 사람처럼 말이다.) 마치 말다툼을 할 때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 말하면서 5년 전의 이야기를 했다가 1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또 5년 전의 이야기를 했다고 3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그랬다고 또 5년 전의 이야기, 이런 식으로 생각나는 대로 막 쏘아 붙이는 형국이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당시의 타락과 죄악상들을 눈물을 흘리며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넘나들면서 기록된 것이라 흐름을 잡기가 매우 곤란하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소명 받는 장면을 살펴보고 예레미야의 주요 예언 내용과 중요시기에 예레미야가 겪게 되는 암울한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예레미야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Ⅳ. 예레미야의 소명과 환상

 

1. 하나님의 선택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게 되는 부분은 아주 특이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를 때 이미 모태에 짓기 전부터 알고 계셨고,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성별하였으며, 여러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재능이 있거나 자격을 갖추어서 하나님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한 사람을 선택하여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 속에 하나님의 선한 일군으로 예레미야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구별하여 세운 것이다.(여호와께서 세우신다.) 그리고 열방의 선지자로 던지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다. 누가 하나님께 항변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2. 예레미야의 반응

이때 예레미야의 반응을 보라 예레미야는 ‘슬프다.’ 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 앞에 예레미야는 너무나 황당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어찌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래서 뒤 이어서 말합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는 자신은 아이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험도 없고, 재주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표현이다.

이러한 반응들이 우리의 반응일 경우가 많이 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3. 하나님의 말씀

아이라고 말하지 말라 내가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말하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손을 예레미야의 입에 대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게 됩니다. 이 소명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 앞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이다. 할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은 말합니다. 아이라 말하지 말라. 무엇이든지 그대로 하라. 두려워말라. 내가 함께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구원할 것이다. 그리고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걱정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도 자신의 경험이나, 재능이나, 지식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예레미야를 세운 것입니다. 잉태되기 전에, 그리고 태어나기 전에 이미 구별하여 세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 하나님의 부름 앞에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 예리미야가 본 환상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고 나서 두 가지 중요한 환상을 보게 된다.

1. 살구나무 가지 환상

살구나무 환상은 하나님이 하신 말을 지켜서 반드시 그대로 이루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살구나무라는 말은 지킨다는 말의 음과 매우 비슷하다.)

2. 끓는 가마 환상

예레미야가 두 번째 환상을 보는데 끓는 가마 환상을 보았다. 그런데 이 가마가 윗면이 북쪽에서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의 의미는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진다는 의미이다.

예레미야는 이 두 가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중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뜻을 정하고 그대로 이루시기로 작정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을 반드시 이루고 그 일은 북방의 민족들을 불러 유다와 예루살렘을 징계한다는 것이다.

 

 

Ⅴ. 예레미야의 예언 내용

 

예레미야가 예언한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유다에 대한 예언(2장-45장, 52장)

둘째는 열방에 대한 예언(46장-51장)

위의 환상처럼 하나님이 말씀히신 심판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하고 그 심판의 도구로 북방민족을 들어 사용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백성이 두 가지 큰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둘째, 우상을 섬긴 것이다.

●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이 생명의 젖줄인 생수를 얻기 위해서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는 우상이었다. 우상을 숭배하므로 위로를 얻고, 축복을 받고, 평화를 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생명의 물을 담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 인 것이다. 결국 남유다의 백성들은 어리석은 우상숭배를 한 것이다.

이는 배은망덕한 행위이고, 가장 강력한 악행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심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내용을 끊임없이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고발한 죄악상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유다의 죄악상들

렘2:19이하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렘2:31이하-32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이와 같이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배반한 것이다. 광야의 40년 동안 먹이고 입히신 하나님,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약속한 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유다는 교만했고, 탐욕이 가득했고, 어리석었다.

 

2. 유다의 우상숭배

렘2: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렘3:8-10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유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그 자리를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가득채웠다. 그래서 나무를 향해 아버지라 부르고, 돌을 향해 너는 나를 낳았다고 말하고, 그들과 뒹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를 간음하는 행위, 음탕한 행위라고 책망하셨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음란한 것이 항상 동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다백성들은 영과 육과 혼이 온통 우상숭배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대 각성을 일으켜도 그것이 뼈속 깊이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순결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미 전영병과 방사선에 노출된 존재처럼 오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이 유다의 죄악이다.

 

3. 유다의 거짓선지자들

렘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 렘6:13-14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유다가 오염되게 된 결정적인 요인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거짓을 예언하기 바빴다. 축복만을 이야기 하기 바빴다. 백성들의 잘못을 질타하고, 경고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해야 했는데, 백성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을 했다. 백성들은 죄악으로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데 백성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떠나고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데 영적인 의사의 역할을 해야 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말하기를 평강하다. 걱정하지 말라, 다 잘 될 것이다. 라고 속삭이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거짓을 예언한 것이다. 달콤한 말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가 더 빨리 타락의 길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위의 내용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아서 선포한 죄악상들이다.

 

Ⅵ. 하나님의 마음과 예레미야의 마음

 

 회개하며 돌아올 것을 선포

● 렘3:13-15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고 범죄하며 우상에 물든 유다의 백성들을 향해 경고하시면서 돌아올 것을 선포하신다. 이를 위해 많은 선지자를 보낸다. 그러나 유다의 백성들은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 렘7:25-26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그래도 하나님은 유다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다시 양육하신다는 것이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제발 돌아오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주시고 하나님의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짓선지자들의 달콤한 축복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들의 거짓속삭임에 속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찾으심

● 렘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제 그 옛날 노아시대의 홍수로 온 땅을 심판하셨던 것을 상기하셨다. 그리고 롯이 거주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상기하셨다. 심판의 유황불로 멸망했던 그 도시처럼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전히 타락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으시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고 계신 것이다.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을 찾으면 이 성읍을 용서하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가? 하나님은 지금 한 명도 없음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도 제대로 깨어 있는 사람이 없고, 정의와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이 성읍을 멸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물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몸으로 받고 그 아픔을 들어내는 것이 예레미야다. 예레미야는 탄식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탄식

● 렘4:19-20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렘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여기서 슬프고 아프다는 표현은 원어적으로는 “내 창자여, 내 창자여”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우기에 예레미야는 창자가 꼬이는 것이다. 너무 아파서 잠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9:1절에서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면... 어찌하면...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염없이 울 수 있을까? 라고 우울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울 기력도 없고, 이제는 더 이상 흐를 눈물도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울어서 눈물 근원이 마라 버린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탄식인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도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마치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던 모습인 것이다.

 

 백성을 위해 울지 말라

● 렘11:14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슬피 우는 예레미야에게 이제 더 이상 울지도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정해 졌다는 것이다. 살구나무의 환상처럼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 구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신물이 나서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른 것이다.

 

 예레미야의 생일 저주

● 렘 20:14-18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너무나 괴로운 예레미야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중보의 기도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유다를 향해 백성과 왕을 향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선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회개를 외치고, 돌아올 것을 외치던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이 나라 이 민족에 놓였으니 이제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이다. 이 예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자기는 동족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악담을 하는 저주꾼이 되는 기부니다. 매국노가 되는 듯하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다. 내가 저주 받아 태어 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어머니의 태가 내 무덤이 되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태어나서 고생과 슬픔의 날을 보낸다고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비에를 상상해 보라 고통의 연속이요, 슬픔의 연속이요, 괴로움과 두려움과,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자기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모두가 예레미야를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자 들의 멸망이 눈 앞에 훤히 보인다. 그들의 우매와, 그들의 어리석음, 측은함이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나 괴로워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 정도이다.

 

 바벨론에 항복하라

● 렘21:8-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

이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살 길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또 다시 새로운 훈련 장소를 예비하고 계신 것이다. 징벌의 채찍으로 강력한 징계의 채찍으로 자신의 백성을 정화시키기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오히려 항복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오히려 애굽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이 예비한 바벨론에 항복하여 바벨론에서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려는 예레미야

●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항복의 백기를 들라는 것이다. 나라를 포기하라는 말이다. 저주와 치욕과, 폭력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예가 되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예레미야는 왕과 백성들에게 선포해야 했다. 죽음을 무릎쓰고 했야만 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 있으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이 뜨거워 졌고, 괴로움이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소망의 창문을 소개해야만 했던 것이다. 항복하라. 항복하라. 그것이 사는 길이다. 역대 어느 선지자가 이런 예언을 했단 말인가? 오로지 예레미야가 이런 예언을 해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런 예언 때문에 예레미야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게 된다. 그리고 구덩이에 갇히기도 하고 시위대 뜰에 갇히기도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밖에는 없었다.

 

 멸망한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참고, 시드기야 왕 4년 5월에 하나냐라는 선지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꺽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토록 거짓 평화를 말하고, 거짓 회복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금년에 네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자 하나냐가 그해 7월에 죽었다.

지금까지 예레미야는 왕과 백성들에게 항복을 예언했다. 그러나 유다의 왕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결국 처참한 멸망을 맞이하게 되었다. 완전히 패망해 버렸다. 시드기야 왕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두 아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두 눈이 뽑혀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죽은 것이다. 이제 유다의 패망을 보고 탄식하며 노래한 것이 예레미야 애가이다. 그의 슬픔의 노래를 들어보자

● 애1: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 애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 애3:49-50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Ⅶ. 회복과 새 언약의 소망

 

● 렘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렘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는 죄악을 고발하고, 멸망을 예언하고, 항복을 종용하고 그리고 멸망한 예루살렘과 유다를 보면서 슬피 탄식하며 슬픔의 노래를 부른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새로운 훈련의 장소로 바벨론을 선택하신 것이다. 마치 토기장이가 토기를 빚듯이 잘못된 토기를 깨트리고 다시 극상품 토기를 빚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유다의 패망을 결정하시고,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잘 녹아 있는 것이 렘29:11-13절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닌 것이다.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바벨론의 이국 땅에서 참으로 자신의 기반이 없는 땅에서 나그네처럼, 노예처럼, 유리하는 자처럼 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부르짖고 기도하면 만난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참으로 심령 깊숙한 곳에서 갈한 영혼이 한 방울 물을 그리워 하듯 하나님을 사모하고 애타게 찾을 때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참 새물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만나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언한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70년이 될 것이다. 그 기간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새 언약의 약속

하나님은 여기서 머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새 언약인 것이다.

새 언약....

그렇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 언약은 하나님이 모세와 맺은 언약과는 다른 언약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을 직접 자신의 백성들의 속에 마음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이다. 새 언약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고의 법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기신 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을 알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완성하신 것이다.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하나님 스스로가 율법의 필요를 채우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짊어 지신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이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다. 복된 소망 새 언약의 소망.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지고 새 언약의 축복속에 사는 존재인줄 알아 더욱 감사로 기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마음의 쉼터
글쓴이 : 쉼터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