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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적각성과 도덕적 성결을 주도함 - 느헤미야

하나님아들 2015. 6. 24. 14:56

 

영적각성과 도덕적 성결을 주도함 - 느헤미야

 

 

*- 본문 : 느8:1-6(구약737쪽) -*

 

지난주에 우리는 수많은 성벽재건 운동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가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모든 적대세력의 조롱, 협박, 회유정책을 잘 이겨내고 또한 내부의 분란을 잘 잠재우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한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느헤미야는 기도의 모범과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모범과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오늘은 성벽을 재건한 이후에 느헤미야가 단행한 개혁들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52일 만에 성벽재건 완성을 이끈 느헤미야 *

 

 

느헤미야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을 하는 일을 완성시킨다. 너무나 감격적인일이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모두 크게 두려워하며 낙담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완성 된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이후에 영적 재건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하게 됩니다. 기대하세요.

 

 

1. 권한을 위임할 줄 아는 지도자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52일 만에 완성한 이후에 예루살렘을 다스릴 자를 세웠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총독으로 왔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자신의 지휘아래 진행되도록 통솔하고 관할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권한을 위임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자신의 동생이었던 하나니에게 자신을 권한을 위임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람 하나냐라는 인물을 세워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했다.

이 하나냐는 영문의 관원이었다. 그런데 이 관원을 발탁해서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세운 것이다. 이는 느헤미야가 사람을 얼마나 유심히 관찰하고 살펴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무엇을 맡겨도 충성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충성심은 다른 사람에게도 도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맡겨도 걱정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하나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어서 무리 중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는 하나냐가 신앙적으로 참으로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냐는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 가운데 바로 서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경외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냐를 지도자로 세운 것이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사람을 잘 관찰하고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해서 일을 맡기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지도자가 또 다른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은 더욱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교훈

권한을 위임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자신이 붙들고 있다면 그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러나 권한을 위임하면서 사람을 키운다면 그 역량은 상상하기 힘든 파급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권한을 위임하고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2. 말씀을 통한 영적 각성운동과 절기를 지킴

성벽공사가 엘룰월 25일에 마쳤다. 엘룰월은 종교력으로 말하면 6월에 해당된다. 6월 25일에 성벽 공사가 마쳐지고 나서 5-6일 후에 7월 1일이 되었을 때 모든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 이곳은 성벽과 성전사이의 큰 공간이었던 것 같다. 본래 7월 1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절을 지키는 날이다. 이 날 나팔이 울리면 모든 백성들은 일손을 놓고 하루를 안식하며 성회에 참석해야 한다.

이러한 나팔절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든 것이다. 이때 모든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청하게 된다.

여기서 이상한 대목은 2차 포로귀환을 이끈 에스라가 성벽재건을 하는 중대한 역사 기간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아마 에스라는 2차 포로 귀환자를 이끈 이후에 다시 페르시아 왕실의 소환으로 1년 정도 페르시아에 갔다가 온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와서 회중 앞에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서서 율법을 낭독하게 되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면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고 몸을 굽혀 당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했다.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모든 백성들이 다 완성된 성벽과 성전 사이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대하게 되는데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한결 같이 하나님께 손을 높여 찬양하며 아멘으로 화답하고 엎드려 경배한 것이다. 그리고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 때 모든 백성들이 일어섰다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에스라 혼자 말씀을 낭독한 것이 아니다. 에스라 주변에 늘어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레위인이다. 이들이 함께 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들려주니 모든 백성들이 그 해석하는 것을 다 깨달아 알았단다. 이 얼마나 어마 어마한 말씀성회인가? 모든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들을 때 서 있었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 일이 계속 진행되었으니 6시간 정도 말씀 성회가 진행 된 것이다.

이때 말씀을 깨닫는 백성들이 한결 같이 눈물을 흘리며 울음바다가 된 것이다. 말씀을 듣는 중에 대 성령의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고, 모두가 그 말씀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책이 수많은 백성을 한 자리에서 그 말씀에 집중하게 하고 그 말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하겠는가? 이는 아주 감동깊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장면이다. 모두가 말씀에 몰입된 상황이다.

느헤미야는 당시에 모든 백성들이 말씀을 가까이 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말씀 성회가 일어난 다음날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말씀을 더 자세히 밝히 알고자 하여 에스라에게 나왔고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니 7월에 지킨 절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절기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로 결단하고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초막절기를 지키게 하였다.

사람들은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지었다. 대대적인 초막의 작업이었다. 지붕위에, 뜰 안에, 하나님의 전 뜰에, 수문 광장에 등 틈이 나는 곳이면 모두가 나뭇가지로 초막을 지은 것이다. 마치 온통 푸른 나무 가지로 뒤덮인 것이다. 이곳이 광야와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그래서 여호수아 이래 이렇게 성대하게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친히 초막절을 지키면서 그 옛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셨음을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고, 일주일 동안 말씀 성회가 계속 이어지므로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아주 큰 성회가 일어난 것이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말씀의 은혜 가운데 빠져 든 것이다.

 

교훈

그렇다. 말씀은 위대한 능력이 있다. 히브리서에서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다.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말씀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소망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특별히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배워야 한다. 말씀을 배우는 중에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대로 실천하기 위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력한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 놀라운 말씀 성회를 이끌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킴으로 하나님을 새롭게 기억하고 느끼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항시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말씀이 바탕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결단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유능한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와 협력하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돌고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기에 느헤미야는 다른 재능있는 일군들을 잘 세워서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데도 큰 몫을 감당했다.

 

 

3. 이스라엘의 대 회개운동

말씀안에서 초막절의 대 축제를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2틀 뒤인 24일(여기서 초막절은 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킴으로 22일에 초막절기를 마친 것으로 보면 2틀 뒤가 맞다. 본문에서는 나팔절 다음 날인 2일부터 초막절을 지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지만 15일 전 까지는 초막절을 지키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대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앞에서는 절기를 지키는 기간임으로 슬퍼할 수 없으므로 큰 축제로 지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본래 7월 10일이 대 속죄일이었는데 이 때 대 속죄일을 지켰다는 언급이 없으므로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닫고 대속죄일 처럼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릎쓰고 이방 사람들과는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며 회개하는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도 낮 4분의 1은(6시-9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낮 4분의 1은(9시-12시) 죄를 자복하는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말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다. 회개에 합당한 몸부림을 친 것이다. 괴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티끌을 뒤집어 쓰고, 이방인들과는 관계를 끊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을 결단한 것이다.

 

교훈

우리 안에 이러한 깊은 회개의 운동이 있어야 한다. 사실 종교력으로 7월이 민간력으로는 1월이다. 어찌 보면 새해를 여는 벽두와 같은 시기에 대 속죄일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깊은 회개의 기간이 필요하다. 한 해를 시작하기 전에 아니면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깊이 돌아보고 성찰하며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결단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금식하며 회개의 복장을 하고 티끌을 무릎쓰듯이 우리는 이러한 깊은 회개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새로운 갱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결단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만져주심과 회복과 치유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는 것이다.

 

 

4.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

느헤미야가 드디어 성전 봉헌을 하게 되는데 이 봉헌식은 너무나 성대하고 큰 잔치였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성벽재건에 대한 봉헌식이니 이 봉헌식이 얼마나 화려했을까? 모든 백성들이 모여서 큰 감사제를 드리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힘들게 일군 사업은 그 만큼 감격이 큰 것을 볼 수 있다. 이날 모든 백성들이 모여서 나팔을 불고, 제사를 드리고 노래하며 춤추며 사람들이 대오를 이루어서 성벽위로 찬양하는 자들이 성벽위로 대오를 지어서 둘러서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봉헌식을 올리는데 이 제사는 엄청나게 큰 제사였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느12:43)

그렇다 성벽 봉헌식은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일을 만방에 알리는 일이었다. 자기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민족임을 선포하고 알리는 것이며 모든 백성들이 자신들의 응집력과 자신들의 찬양과 경배를 통해 크게 기뻐하는 과정이다. 이 즐거운 소리가 아주 멀리 들렸다는 것이다.

 

교훈

위대한 일은 멀리 멀리,,,, 그리고 널리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기뻐할 만한 잔치가 있을 때 이 잔치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엄청난 잔치로 만들 필요가 있다.

 

 

5. 느헤미야의 대대적인 개혁

느헤미야는 성벽봉헌식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이끌었다. 이 개혁은 영적각성뿐만 아니라 도덕적 성결을 가져오게 하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느헤미야는 크게 6섯 가지 형태의 개혁 작업을 단행하였다. 본문에서는 느헤미야가 잠시 페르시아와 왕에게 갔다 왔다는 일을 언급하게 된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 예루살렘 안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던것 같다.

 

1) 암몬사람과 모압사람들을 분리해 냄

2) 도비야를 제거함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전에 도비야를 위해 방을 만들어 놓았음을 알게 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것도 제사장 엘리아십이 그리한 것이다. 그 방은 본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십일조를 모아 놓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거제물을 두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방을 도비야에게 내어 준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느헤미야는 분개하며 도비야의 세간을 밖으로 다 내어 던졌다. 그러니 그렇게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핵심 멤버들 중에서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느헤미야는 이 일을 가감하게 근절 시켰다.

3) 레위 사람의 몫을 회복시킴

그리고 사정을 가만히 알아보니 레위인들이 받아야 할 몫을 주지 않아서 레위인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으므로 노래하는 자들이 모두 밭으로 도망을 간 것이다. 그래서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레위인들이 몫을 회복시키는 일을 했다. 이러한 과정들이 그리 쉽지 많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과감하게 이 일을 단행했다.

4) 안식일을 성결케 함

안식일에 물건을 파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안식일을 성결케 하는 일을 단행했다. 어떤 장사꾼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5) 이방인을 멀리하게 함

느헤미야가 가만히 보니 유다사람들이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이들이 이방의 방언은 절반쯤하는데 유다의 방언은 하나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느헤미야는 그들을 저주하며 때리고 머리털을 뽑으면서 외쳤다. 다시는 너희의 딸이나 아들이나 이방인에게 주지 않기로 하나님께 맹세하라....

솔로몬이 범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모든 것이 다 이방 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6) 제사장과 레위 직무를 정켤케 함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중 하나(즉 엘리아십의 증손)가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성전 방을 만들어 주더니 그 증손자는 이번에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느헤이먀는 아주 민감한 부분을 가감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그 사위를 내어쫓아 느헤미야를 떠나게 하였다. 당시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대제사장의 가문과의 정면대결이었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어려운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한 것이다.

그렇다. 개혁이 없다면 미래가 없는 것이다. 개혁이 없다면 그 자리는 서서히 썩게 마련이다. 고여있는 것은 썩는 것이다.

예) 우리가 목욕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목욕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고 그리고 병균이 우글거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온 몸이 병에 걸려 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개혁작업을 해야 한다. 성벽봉헌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형적인 성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부가 항상 갱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자리가 희망이 있는 것이다.

 

교훈

개혁이 없는 공동체는 썩게 되어 있다. 병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더라도 끊임없이 개혁을 단행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다.

 

 

결론

우리는 오늘 마지막으로 느헤미야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느헤미야를 통해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배울수 있겠는가?

1. 권한을 위임할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지도자이다. 권한을 위임할 때 사람이 세워지고 성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한을 위임할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다.

2. 영적지도자는 말씀과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말씀이 없는 곳은 영적인 광야와 사막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곳은 갈증의 독충들이 우글거린다. 회개 없는 영혼은 부패하고 썩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적지도자는 끊임 없이 말씀과 회개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3. 영적지도자는 끊임없이 개혁 작업을 해야 한다.

안주하는 지도자에게는 희망이 없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갱신을 추구하지 않는 지도자는 그 공동체를 더욱 병들게 만든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갱신이 필요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옛 습관의 껍질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 힘들어도 그 껍질을 벗고 나올 때 우리는 새로이 비상할 수 있다. 그 안에 공동체는 신선하고 살아있고, 행복의 향기가 가득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감이 귀한 자리를 내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회개로 영혼을 정화시키며 삶의 자리를 개혁하고 갱신해서 살만한 공동체 살았는 공동체 행복이 가득한 공동체를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출처 : 마음의 쉼터
글쓴이 : 쉼터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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