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인과 아벨(창세기 4:1-26)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 4:1-15)
창세기 4장부터 11장까지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그 결과가 후손들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를 적극적으로 보여 준다. 죄의 번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구체적인 현상들은 부부 관계의 변화와 형제지간에 살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나타난 사건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일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온 인류가 죄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대로 그냥 두기로 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를 원수 관계로 만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제 이 두 계열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4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15절은 제사(1-5절)와 살인(6-15절)의 내용으로 제사를 드리는 아벨의 모습을 통해 여자의 후손에 속한 계열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가인의 살인하는 모습을 통해 사탄의 후손에 속한 계열의 특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16-24절은 가인 계열을 짧게 처리함으로 두 계열이 있다는 사실만 말한다. 그리고 25-2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후손에 대한 약속이 왜 ‘아벨’이 아니라 ‘셋’인가를 말씀한다. 그래서 5장에서는 셋 계열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아래의 표에서 창세기 4:1-16의 내용을 흐름대로 기록하고 3장을 통해 조명해 보면 죄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범죄 한 아담을 대했던 그 상황 그대로 범죄한 가인을 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를 두 계열로 나누시면서 특별히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하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자 그는 ‘얻음’이란 뜻으로 ‘가인’이라 이름 하였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 4:1). 이 말씀은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한데 ①한 사람 즉, 여호와를 얻었다 또는 ②한 사람을 얻었는데 여호와와 함께 얻었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보건대 하와는 가인이 원수의 머리를 짓이길 약속된 구원자일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물론 그의 기대는 단번에 무너졌고, 그에 따른 실망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아들을 낳았을 때 무(無), 헛됨이란 의미의 ‘아벨’이란 이름을 지었다. 즉 자신의 낙망함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아벨이 진정한 믿음의 계열에 속한 자였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의 사건은 단순한 제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건은 약속된 하나님의 계열을 단절시키기 위한 사탄의 획책이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는 가인의 계열이든 아벨의 계열이든 둘 중의 하나이다. 중간 지대는 없다. 그리고 가인 계열은 언제나 아벨 계열을 타협과 핍박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몰아넣었고, 겉으로는 언제나 가인의 계열이 강하고 승리하는 것 같이 보이나 결국은 아벨의 계열이 승리하고야 만다. 따라서 본문은 두 계열과 그들의 원수 관계가 강조되고 있고, 그것의 사건화 가시화된 것이 제사 문제를 통해서이다.
이것을 일차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각자의 직업에 따라 가인은 농산물로 제물로 드린 것이나 아벨은 양을 제물로 드린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본문에서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피의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받지 않으셨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그렇게 보아야 할 근거가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4-5절을 알기 쉽게 풀어서 쓰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눈여겨보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눈여겨보시지 않으셨다’는 말로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대조가 보여주는 분명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는 제물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당사자를 보신다는 것이다. 인류의 시작 때부터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제물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사람을 보셨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중심(마음)을 보셨다는 뜻인데, 그 의미를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히브리서는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믿음이란 히브리서 전체 맥락에 의하면 자신을 제물로 삼아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 이때 아벨이 우리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 믿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막연하고 실낱같은 구원의 약속을 받아 들였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이루시겠다는 구원의 약속을 붙잡았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놀랍게도 아벨의 그러한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을 성취하신 십자가를 알고 풍성하게 믿는 믿음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피의 제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중심으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받으신다는 것이다(참고 암 2:6-8, 마 5:23-24).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하나님께 중심으로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무조건 받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보면 아벨이 드린 제물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초로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도록 한 것은 출애굽기 30:30에 나온다. 기름이 발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에서이다.
일차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벨의 제사에서 굳이 기름에 대한 계시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벨이 기름을 구분하여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후에 기름에 대한 계시를 주시기 위한 전조인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아벨이 드린 제사에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는 것을 통해 장차 하나님께서 보여줄 약속의 실체를 증거 할 증거물로 가치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벨이 기름을 구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애초부터 가인이 아닌 아벨에게 있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다! 사람들이 헛되다고 여기고 실망하는 그 속에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 결국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피의 제사에 대한 부분도 아니고 아벨의 믿음에 대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문제가 아니고서는 달리 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에 대하여 화가 났다. 그 화는 곧 아우 아벨에게 화풀이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벨을 죽인 것은 아벨에게 화풀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꼭 받으셔야 할 이유가 있었는가? 죄 아래 있는 죄인들의 제사를 받으셔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심에 대한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이것이 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한다고 하셨고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가 아니라 죄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확인시켜 주신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 의해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반항과 분노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가인을 심문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심판과 저주의 말씀을 내리신다. 아벨의 피를 땅에 흘려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땅이 더 이상 가인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땅이 가인에게 양식을 주도록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셨으나 가인은 땅에 피의 저주를 자초하였다. 그래서 가인은 이제부터 땅에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더 이상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아담과의 관계가 계속 될 수 없도록 분리 되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최초의 복음으로 주신 언약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
가인에게 주어진 표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하나님은 가인을 통해 죄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고 있고 죄인이 땅에 유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어떤 두려움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 주셨다.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16-24)
가인은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언약의 범주, 즉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는 백성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거한다. ‘놋’이란 말은 ‘방황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벌을 연상하게 한다. 가인은 에녹을 낳고 성을 건설하면서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 붙인다.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였으나 가인은 성을 지어 하나님을 향한 죄성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을 짓는다는 것 자체는 자신이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자기 방어적인 행위이다. 또한 그가 건설한 성읍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것도 자기 자신의 의미를 아들과 성읍에 부여하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시 49:11-12).
이렇게 하여 그의 후손들은 도시와 산업을 발전시키며 라멕의 사악함에서 그 절정에 이른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라멕의 이 노래는 소위 ‘칼의 노래’(Song of sword)라 부른다.
아다와 씰라여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나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이를 죽였다
가인을 죽인 사람은 일곱 배로 벌을 받지만
라멕을 죽인 사람은 일흔일곱 배로 벌을 받을 것이다
라멕의 노래를 통해 볼 때 가인 계열이 죄에 대한 자책 없이 죄의 강도가 산술적으로 11배나 급성장하였음을 보여 준다. 더욱 심화되고 잔인해지고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멕은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자신을 스스로가 지킬 수 있다고 노래하였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은 인간중심의 문화이다. 인본주의 문화가 발달된 모습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① 야 발 :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
② 유 발 : 수금을 켜고 퉁소를 부는 모든 자의 조상
③ 두발가인 : 구리와 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조상
④ 나 아 마 : 관능적인 미의 조상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5-26)
두 개의 대립 문제가 제사 문제로 가시화되고, 언뜻 가인의 계열이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좌절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씨’(후손)를 주셨다. 다른 씨를 주셨는데 ‘아벨 대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인에 의해 아벨이 살해를 당함으로 하나님의 선택이 무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은 대신 ‘셋’(지정된 자)을 주셨다. 이는 아벨을 잃은 아담을 위로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언약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자리에 셋을 지정하셨음을 보았다. 이것이 언약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셋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소망은 다시 살아났다. 셋도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말씀은 가인과 그 후손들이 인간 중심의 문화들을 세워나가며 쾌락을 추구하며 힘을 과시하는 폭력을 노래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것으로 그리기 위하여 표현된 말이다.
셋의 후손은 에노스 이후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셋의 계열을 통해 여자의 후손을 이어가실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계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글 / 자유인_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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