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성경의 인물 요압연구

하나님아들 2014. 10. 4. 21:11

성경의 인물 요압연구

 

본문: 삼하 12: 26- 31

 

- 공로도 퇴색시킨 ‘자기중심의 순종

오늘은 다윗 왕의 군대장관이였던 요압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인적 사항

①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심’이라는 뜻.

② 다윗의 이복 누이 스루야의 맏아들(삼하 2:18)..

③ 형제로는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음(대상2:16).

④ 다윗 왕의 군대 장관(삼하8:16; 대상11:6).

 

2. 시대적 배경

요압의 주활동 연대는 B.C.1010-970년 경으로서 다윗의 도피 시기로부터 솔로몬의 즉위 등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였다. 그러니까 요압은 다윗 왕정의 수립부터 솔로몬 왕정의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던 군대 장관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시기의 위대한 장군이었다. 반면에 그는 권력에의 지나친 집착으로 인하여 민심 수습과 정치적 안정이 절실히 요구되는 역사적 과도기에 아브넬 살해 사건, 아마사 살해 사건, 아도니아 반란사건 등을 일으켰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큰 혼란을 야기시켰던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3. 다윗과 요압

다윗과 요압은 숙질간이다.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었다. 다윗은 요압의 외삼촌이었고 요압은 다윗의 조카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인척 관계를 넘어 왕국 건설에 주역을 담당했다. 다윗은 사울을 이어 나라를 통일했고, 요압은 다윗에게 충성한 건국 공신이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어디에 나라의 중심지를 삼을까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다와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나라의 중심지를 어디로 정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다윗은 예루살렘이 적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나안 땅이 정복된 지 수 백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토족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아 남의 땅은 쉽게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윗이 명령을 내렸다. “여부스족을 치고 예루살렘을 빼앗을 자가 누군가? 그를 군대 장관으로 삼으리라.” 요압이 올라가 여부스족을 치고 예루살렘을 빼앗아 다윗에게 돌렸다. 그 때부터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그 후 다윗이 모압, 암몬, 아람, 블레셋, 에돔, 아말렉을 쳐서 영토를 확장할 때 요압이 앞장을 선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특히 암몬 왕의 성 랍바를 쳐서 취할 때 요압은 다윗에게 절대 신임을 얻었다.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기 전에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랍바를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싸움은 내가 할테니 영광은 왕이 취하라는 말이었다. 다윗은 군사를 이끌고 랍바로 들어가 성을 점령하고 암몬 왕이 썼던 보석 박힌 면류관을 썼다. 그 면류관은 금이 한 달란트였다. 이것은 요압이 전적으로 왕을 높이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남이 알지 못하는 저의가 숨겨져 있었다고도 볼 수가 있다.

또 한편 요압은 평화주의자(peacemaker)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3년 동안 다윗 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못했다. 압살놈이 암논을 죽인 이유는 암논이 압살놈의 누이를 강간한데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압살놈은 이런 이유로 장자인 암논을 없이함으로 자기가 왕위에 오를 심산이었다. 이것을 안 다윗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 다윗의 마음도 누그러졌다. 암논은 이미 죽었지만 다윗에게 있어서 압살롬까지 잃어버리는 것은 큰 아픔이었다. 이것을 눈치 챈 요압이 연극을 꾸몄다. 드고아의 한 지혜로운 여인을 다윗에게 보냈다. “왕이여, 나는 과부입니다. 내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둘이서 싸우다가 형이 동생을 때려 죽였나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동생을 죽인 놈을 살려 둘 수가 없다.” 하며 끌어내 죽이려고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이 대답하기를 “염려 말고 돌아가거라.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여인이 말하기를 “왕이여, 삼가 아뢰옵니다. 그러할진대 왕은 어찌하여 내어쫓긴 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으시나이까? 왕은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별하실 줄 아나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윗의 마음에 충격이 갔다. 이거 내 말이구나. 그리고 짐작이 갔다. “여인아, 숨기지 말고 대답해라. 누가 너더러 이런 말을 하라고 했느냐? 그게 요압이지?” “예, 요압이 내게 명하였나이다. 왕은 요압의 충성된 마음을 통촉하소서.”

다윗은 요압을 불렀다. “내가 네 중심을 알겠다. 소년 압살롬을 데려오너라.” 요압은 엎드려 절을 하며 왕을 위해 복을 빌고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해서 요압은 다윗에게 신임을 굳혔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요압이 다윗의 가슴에 여러 개의 못을 박았다. 첫째, 압살롬을 죽였다. 압살롬은 패역부도한 다윗의 자식이었다. 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다윗을 왕궁에서 쫓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다.

아버지의 후처들과 백주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간통한 패역한 자식이었다. 죽어 마땅한 자식이었다. 마침내 다윗의 군대와 압살놈의 군대가 왕궁을 서로 점령하려는 싸움이 벌어졌다. 다윗이 이기면 다윗이 왕궁을 차지하고 압살놈이 이기면 압살놈이 왕궁을 차지하게 되는 싸움이었다. 그 때 다윗은 출전하는 군인들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윗은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요압은 상수리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린 압살롬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것도 그러한 압살롬을 발견한 신하는 왕의 명령을 상기시키며 죽이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죽였다. 요압은 정의감은 있었으나 용서하는 마음이 없었다. 요압은 충성심은 있었으나 순종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한 번 한다고 생각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신하는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가 아무리 옳다고 여겨도 윗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안 해야 한다. 오늘 세상에도 상하의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다. 군신유의도 없고 장유유서도 없다. 사제간의 의리도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넘지 못할 선이 있다. 임금과 신하와 스승과 제자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사람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반역 행위이다. 압살롬이 죽은 것을 다윗이 슬퍼하자 요압은 협박을 했다. “왕이여, 왜 이러십니까? 우리가 누구를 위해 싸웠습니까? 왕이 악인의 죽음을 슬퍼하시면 정의를 위해 싸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왕이 이러시면 한 사람도 왕 곁에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왕이 이러시면 왕이 젊었을 때 당한 화보다 앞으로 당할 화가 더 클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을 손아귀에 넣고 놀았다.

둘째, 요압은 아마사를 죽였다. 아마사는 아비갈의 아들이었다.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었다. 요압과 아마사는 이종 사촌간이었다. 다윗과는 역시 숙질간이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때 압살롬은 아마사를 군장으로 세웠다.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싸우게 되자 요압과 아마사가 싸우게 되었다. 그 싸움에서 압살롬은 죽고 다윗이 이겼다. 그러나 그 싸움은 승부가 없는 싸움이었다.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이겼을 때 다윗에게 영광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은 싸움이 끝났을 때 다시 화합을 시도했다. 다윗은 압살롬의 군장이 되었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장관으로 임명했다. 이것이 요압의 분노를 샀다. 나는 뭐냐? 어떻게 역모에 가담한 놈을 군대장관으로 세우나? 가슴에 비수를 품고 기회를 노렸다. 마침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다윗을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다윗은 세바를 진압하기 위해 아마사에게 군대를 동원하라고 했다. 아마사의 군대 동원이 늦어졌다. 그렇게 되자 요압이 아우 아비새에게 세바를 추격하라고 했다. 아비새가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가 군대를 동원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요압이 아마사를 맞이하여 인사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수염을 잡았다. 지금도 아랍인이나 터키 사람들은 친한 사이에는 수염을 잡고 인사를 한다고 한다. 요압은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는 채 하면서 한 손으로 아마사의 배를 찔러 죽였다. 요압은 비겁하게 아마사를 죽였다. 자기와 라이벌이 되는 사람만 나타나면 가차없이 제거했다. 나라야 어떻게 되던 상관하지 않았다. 자기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셋째, 요압은 또 한 사람 아브넬을 죽였다. 아브넬은 다윗의 선왕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다. 사울이 죽자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신하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민심은 다윗에게로 돌아가고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브넬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넬은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장로들을 설득시켰다.

“우리가 다 하나가 되어 다윗을 왕으로 모시자.” 장로들의 동의를 얻어 다윗을 찾아가 충성을 약속했다. 다윗도 아브넬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기쁜 마음으로 돌려보냈다. 요압이 뒤늦게 그 소식을 들었다. “이럴 수가 있나? 왕은 어찌하여 아브넬을 평안히 돌려보냈나? 아브넬은 기회를 엿보러 온 스파이가 아닌가? 아브넬을 불러 오라.” 아브넬은 영문도 모르고 돌아왔다. 다윗은 모르는 일이었다. 요압은 아브넬에게 조용히 이를 말이 있다고 하면서 성문으로 데리고 가서 배를 찔러 죽였다. 이유는 전에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보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속셈은 아브넬을 라이벌로 생각했기 때문에 죽였다. 이와 같이 요압은 다윗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 거기다가 요압이 다윗을 손안에 넣고 주무를 수 있는 사건이 생겼다. 그것은 다윗의 실수였다. 때는 암몬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가 되어 여러 해 동안 전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를 모으고 요압의 손에 맡겨 암몬 군대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해 놓고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한가하게 지내고 있었다. 저녁 때 다윗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우리아는 요압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었다. 다윗은 그 여인을 불러들여 동침을 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그 여인이 다윗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당신의 아기를 몸에 가졌습니다. 다윗은 그 말을 듣자 이거 큰 일 났구나. 신하들은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왕인 내가 왕궁에 평안히 거하다가 신하의 아내와 간통죄를 저질렀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내가 어떻게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있을까?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다윗은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 요압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우리아를 내게로 보내라. 요압은 우리아를 불러내어 다윗에게로 보냈다. 우리아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윗을 뵈었다. 전쟁 중에 특명을 받아 왔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우리아에게 요압의 안부를 물었다. 군인들의 사기가 어떠한가를 물었다. 전황이 어떠한 것도 물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너는 너의 아내가 기다리는 네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했다. 우리아가 나가자 왕이 하사하는 식물이 우리아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왕궁 문에서 왕의 신복들과 같이 잠을 잤다. 신하 중 한 사람이 다윗에게 고하기를 우리아가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왕의 신복들과 같이 밤을 지냈다고 아룄다.

다윗은 우리아를 불러 너는 어찌하여 네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잠을 잤느냐고 물었다. 우리아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언약궤와 온 이스라엘 군대가 군영에 나가 있고 요압과 왕의 신하들이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내 좋은 대로 먹고 마시고 아내와 잠을 잘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아는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다윗은 부끄러운 왕이었다. 다윗이 그 말을 들었을 때 깨닫고 회개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윗은 수단을 썼다. 그러나 그것은 바보의 수단이었다. 다윗은 다시 우리아를 불러들였다. 오늘도 여기 머물어라. 내일 너를 보내마. 그리고는 우리아와 술자리를 같이하여 우리아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였다. 우리아는 왕이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우리아가 취중에 돌아가 아내와 동침하도록 하려고 했다. 우리아는 술이 취했어도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다. 우리아가 왕이 꾸미는 음모를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았을 것 같다. 의인과 선인도 마귀의 유혹에 빠지면 못하는 일이 없다. 지혜롭게 한다고 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을 하게 된다. 다윗은 더 악한 수단을 썼다. 우리아를 전장으로 돌려보냈다. 보내면서 편지를 써서 요압에게 보냈다. 그 편지 내용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터에 맨 앞에 내세우고 너희는 뒤로 물러서서 우리아를 적군에게 맞아 죽게 하라. 요압은 다윗이 하라는 대로 했다. 우리아는 적군에게 맞아 죽었다. 요압은 전황에 대한 보고를 다윗에게 했다. 그 보고를 할 때 너희는 어찌하여 적군이 진치고 있는 성에 가까이 가서 많은 군인을 잃고 싸움에 패했느냐고 다윗이 물었다. 보고를 하는 신하는 요압이 시키는 대로 대답했다. 그 싸움에서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다윗이 요압이 보낸 사자에게 말하기를 이 일로 염려하지 말라고 해라. 칼은 이 사람도 죽이고 저 사람도 죽이느니라. 너희는 담대하라. 이제부터 싸워서 성을 점령하라고 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인 음모를 요압이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고도 남음이 있다. 요압은 다윗의 음모에 협력한 공법자였다. 그리고는 요압은 다윗을 손아귀에 넣었다. 당신이 그렇게 해서 우리아를 죽인 이상 나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요압은 완전히 다윗을 배신하고 돌아섰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 줄려고 했다. 요압은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할 음모를 꾸몄다. 요압의 음모는 실패로 끝났다. 다윗과 요압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다윗이 나이가 많아 죽을 날이 임박하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게 되었다. “아들 솔로몬아, 나는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게 되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어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해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하게 행해라.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말하기를 너는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을 잊지 말아라. 저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너도 알거니와 그가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그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느니라. 너는 그로 하여금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유언을 했다. 마침내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다. 솔로몬은 할 수 있는 대로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왕위를 빼앗긴 아도니아가 긁어 부스럼을 일으켰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통해 부왕 다윗에게 수종들었던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했다. 솔로몬을 더 참을 수가 없어 아도니아를 칼로 죽였다. 아도니아가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요압이 살기 위해 제단 뿔을 잡았다. 솔로몬이 브나야를 보내어 요압을 제단에서 끌어내라고 했다. 요압이 나는 여기서 죽겠노라고 했다. 솔로몬은 백발이 휘날리는 요압을 제단에서 죽여 땅에 묻었다.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원수 아닌 원수를 죽여 원수를 갚았다. 그것도 다윗이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아니하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겨 원수를 갚았다.

다윗이 한 일은 잘한 일인가? 잘못한 일인가? 솔로몬은 자식의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가? 솔로몬도 잘못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다윗과 요압 사이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압에 대해서는 더 말할 여지가 없는 줄 안다. 요압은 나쁜 사람이었다. 자기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기와 라이벌이 된다고 하는 사람은 다 없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나라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인물다운 인물의 씨를 말린다. 한국 농촌에 비상이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왕 개구리가 개구리라는 개구리는 다 잡아먹고 논과 밭과 도랑에 왕 개구리 천지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요압은 사람에게서 약점을 잡으면 그것으로 사람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먹는 사람이었다. 요압의 눈에는 친척도 형제도 왕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는 말은 요압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윗의 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윗이 요압을 등용한 것은 잘한 일인가? 잘못한 일인가? 다윗이 솔로몬에게 요압을 죽이라고 유언을 한 것은 잘 한 일인가? 잘못한 일인가? 다윗은 만대 성도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좋게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지은 죄는 죄로 여기지 않고 회개한 것만 들어내 칭찬을 하는 수가 많다. 다윗은 완전무결한 의인인가? 그렇지 않다. 다윗에게도 죄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다윗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다윗은 어찌하여 장가를 가기 위해 블레셋 사람 200명의 양피(생식기)를 배어 그것을 사울에게 갖다 바치고 사울의 사위가 되었을까? 물론 그러한 요구를 한 사울 왕이 나쁜 왕이다. 사울은 그렇게 해서 다윗을 죽여 없애려고 했다. 그렇더라도 사울이 요구한 것은 블레셋 사람 100명의 양피를 요구했는데 다윗은 200명의 목숨을 끊어 바쳤다. 그것은 잔인한 일이 아닌가? 충성도 지나친 충성이 아닌가?

다윗은 어찌하여 아내를 그렇게 많이 두었을까? 그때 당시 세상 왕들이 다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이 상식이라 하더라도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아니었던가? 다윗은 처음에 아히노암을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나서 마온에 있는 나발이 망령되이 행하다가 죽임을 당하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았다.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 거하자 또 아내를 두고 또 아내를 두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침상을 썩히면서 회개를 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여 솔로몬을 낳기까지 할 수 있을까? 나만의 의문이 아닐 줄 안다. 다윗과 요압과의 관계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왜 요압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했나? 인척이요 친척이란 명분 때문에 얽히고 설킨 것이 아닐까? 요압의 어머니는 자기 누님이었다. 아마사의 어머니는 자기 누이 동생이었다. 어머니 누나 삼촌 사촌 사이에 얽힌 인정 때문에 다윗은 판단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혈연과 인연은 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공과 사는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부모라도 부당한 것은 거절해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불법을 저지를 때에는 과감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 아사왕은 어머니가 우상을 섬기자 국모에서 폐위시켰다. 다윗은 혈연과 인연에 얽매여 실수를 저질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고 반문하신 적이 있었다. 혈연과 인연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윗은 왜 요압에게 약점을 잡혔던가 하는 것이 안타깝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임으로 자기의 범죄를 숨기려고 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을 요압의 손을 빌어 우리아를 죽였으니 요압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인의 손아귀에 잡힐 짓을 하면 안 된다. 어리석은 꾀를 쓰려고 하면 안 된다. 다윗과 요압 사이에 일어난 일은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다윗에게도 원통한 일이었고, 요압에게도 원통한 일이었다. 같이 나라를 세우고, 같이 전쟁을 하고, 같이 피땀을 흘렸는데 마지막이 원수가 되었다. 마지막에 죽이고 죽는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왜 그렇게 되었나? 요압이 고집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예수를 믿으면서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집사가 되어 일하면서 물고 찢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교회를 세우고 눈물, 땀 흘리면서 죽이고 찢는 사람들이 있다. 고집을 버려야 한다. 고집을 부리면 망한다. 항우도 고집 때문에 망했다. 어찌 내 생각만 옳으랴? 양보는 고집보다 아름다운 미덕이다. 경쟁심을 버리자. 하나님은 내 갈 길과 내 할 일을 따로 정해 두셨다. 그 사람이 나타남으로 내 받을 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돕고 협력하자. 순수한 마음으로 따르고 받들자.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우자

 

4. 요압의 생애

 

요압은 수리야의 세 아들 중 둘째였다. 아비새 요압 아사헬 3형제는 장군의 기질을 가진 유능한 장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요압은 더 뛰어난 사람으로 군대장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왕에 의해 선택받아 다윗 왕과 함께 평생을 지낼 만큼 측근에서 일한 사람이다.

요압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세운 나라를 다윗이 세운 나라에 통합하여 다윗왕국을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었다. 그 후에도 에돔 암몬 수리아 라마 등을 무너뜨리고 정복하는 데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 외에도 다윗을 도와 그림자처럼 참모로 일한 다윗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요압은 능력을 갖춘 행운아였다.

그러나 요압이 다윗에게 항복하고 귀순하여 돌아오는 아브넬을 죽인 것은 큰 잘못이었다. 아브넬은 사울 왕의 충신이었고 사울 왕이 전사하자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그러나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국운이 다윗에게 기울어지고 이스보셋과의 불화가 생기자 다윗 왕에게로 돌아왔다.

그때에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요압이 아브넬을 정적으로 여기고 또한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해석이 많다. 요압이 그런 이유에서 아브넬을 살해했다고 하면 큰 인물을 역사에서 제거시킨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 역사의 흐름을 막아서도 안되고 역사의 방향을 그르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선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협력자가 되어야 하고 나라와 민족을 돕고 보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역사에 상처를 남겨도 안되고 역사를 부정하게 만들어도 안된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필요하고 소중한 인물이라면 더욱 보호해야 한다. 요즘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하고 섭섭하기까지 하다. 공작정치는 예사고 거짓말이라도 강하게 밀어붙이고 덮어씌우면 승리한다는,질 나쁜 방법이 국회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이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일인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싹트겠는가. 이 책임을 생각해봤는지 정말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요압과 같이 자기를 위해 남을 죽이는 일은 하지 말자.

이 사건을 통해 요압에게서 더 큰 실수를 찾는다면 다윗 왕이 용서한 아브넬을 요압이 죽였다는 사실이다. 신하가 왕에게 바치는 충성은 자기 중심의 충성이 아니라 왕이 바라는 충성에 최선을 다하는 순종이어야 한다. 요압이 생각하는 충성의 표현과 다윗이 바라는 충성의 기대가 분명 다르다.

요압은 자기 생각대로 다윗을 섬기려는 자기 주장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이나 봉사도 이와 같다.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요구하고 소망하는 그 뜻에 자신을 잘 적응시켜야 한다. 열심히 일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어떤 목사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목사의 생각으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생각했다. 그러나 “네가 좋아 네 일을 한 것이지 네가 내 일을 한 것이냐?”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그가 깨달은 메시지는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더 원하신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교가 하나님의 일보다 그 목사에게는 더 필요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순종은 많은 사역보다 더 유익한 것을 깨닫게 된다.

다윗이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명하자 요압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하기를 원하나이다…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대상 21:3)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요압이 다윗 왕에게 목숨을 내놓고 권고한 참으로 위대한 사역이었다. 요압이 많은 전쟁에서 큰 전과를 거두어서 나라를 크게 번영시키는데 공헌한 만큼이나 버금가는 귀한 일이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에게 선지자 갓을 보내어 3년 기근과 3개월 적에게 쫓기는 일과 3일 온역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자 다윗이 3일 온역을 택하여 7만 명의 백성을 잃게 되었다. 이 큰 실수에 대한 뜨거운 회개를 통해 다윗은 자기 일생을 통해 영적으로 크게 경성하는 기회를 삼게 되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위엄 다음으로 다윗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사람으로 두고두고 다윗은 요압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러한 인연이 요압과 다윗 사이를 평생 조력자로 묶는 큰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일생동안 사명은 하나일지 모르지만 사역과 봉사의 방법은 다양하게 마련이다. 그 중에 요압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소중하게 아끼는 사람에 대해 꼭 전해야 할 말을 전달하는 것만큼 소중한 일도 없다. 상대방이 윗사람이요, 내가 크게 섬기는 사람이라도 필요한 직언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이고 그를 위한 최선의 예우일 수도 있다. 더욱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받은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충성되고 정직하게 충언해야 한다.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주변에서 이렇게 영감을 통해 돕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도자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양심을 파는 사람들이 대를 잇는 것 같다.

요압이 압살롬을 환궁시키기 위해 드고아 여인의 두 아들의 비유를 든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 압살롬을 데려왔으나 압살롬의 모반으로 다윗 왕은 씻을 수 없는 정치적인 시련을 겪게 되었다. 압살롬의 난으로 전쟁중일 때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요압이 창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이때에 다윗은 또 한 번 아들을 잃는 마음의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요압의 계획대로 압살롬이 돌아왔는데 요압의 손에 압살롬이 죽게 된 결과가 되었다. 요압이 압살롬의 환궁을 계획한 것은 다윗 왕과 왕실을 위한 화해를 이루는 값진 일이었다. 그 일이 성사된 것도 요압의 분명한 공로였다. 물론 요압의 정치적 이익 때문이었은지는 알 수 없으나 다윗 왕실을 위해서 공헌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압살롬의 생각과 그의 의도는 전혀 달랐던 것을 알아야 하겠다. 여기서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의 친교도 분별해야 한다.

사람과 사귀는 일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생각없이 가까이 했고 영적으로 거르지 않은 채 사람을 사귀었다가 큰 실수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을 가까이 할 때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내게 접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하겠다. 요압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 요압의 주요 생애(정리)

1) 다윗 도피 시절에 다윗과 함께 함(삼하 23:18, 24)

2) 이브넬과의 싸움에서 승리(삼하 2:14-28)

3)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살해(삼하 3:27)

4) 다윗에게 비난과 저주를 받음

5) 여부스족의 성읍을 점령(삼하 5:6; 대상11:6)

6) 군대 장관이 됨(대상 11:6)

7) 다윗 성을 중수(대상 11:8)

8) 에돔을 점령(삼상 8:13,14)

9) 아람․암몬과의 전쟁을 지휘(삼하 10:6-14)

10) 다윗의 우리아 살해 음모에 가담(삼하 11:14-17)

11) 압살롬을 환궁케 함(삼하 14:1-23)

12) 압살롬의 반역시 다윗을 도움(삼하 18:1-5)

13) 압사롬을 죽임(삼하 18:9-15)

14) 군대 장관직을 잃음(삼하 9:13)

15) 세바의 폭동을 진압(삼하 20:7-22)

16) 군대 장관으로 복직(삼하 20:23)

17) 다윗의 인구조사를 반대(삼하 24:3)

18) 인구조사 시행(삼하 24ㅣ4-8)

19) 아도니아를 왕으로 지지(왕상 1:7;2:28)

20) 솔로몬의 명으로 죽임 당함(왕상 2:29-34)

 

5. 성품

① 여부스족을 몰아내고 에돔, 암몬 동맹군 등을 격파한 것을 볼 때 용감하고 책략이 뛰어 난 자(삼하 10:9-14).

② 압살롬의 귀환을 위해 다윗과의 중재에 나섰으나, 압살롬의 왕이 될 가망성이 희박하자 곧 압살롬을 외면할 정도로 처세술에 능하고 약삭빠른 자(삼하14:1-33)

③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순한 아브넬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살해한 것을 볼 때 잔인하고 비열한 자(삼하 3:22-30).

④ 압살롬의 반역 시에 다윗 왕을 끝까지 돕고, 비윤리적일지라도 왕의 우리아 살해 음모를 전적으로 도울 만큼 왕께 충성을 다한 자(삼하 11:14-17;18:1-5).

⑤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일 만큼 성격이 급하고 방자한 자(삼하 18:5,14).

⑥ 세바의 반란 때 아마사를 죽이고 군대 장관으로 복직을 꾀할 정도로 권모술수에 능한 자(삼하 20:7-20).

⑦ 다윗 왕의 인구 조사를 반대하고, 또 전쟁에서의 노략물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친 것을 볼 때 신앙적 통찰력을 지닌 자(삼하 24:3;대상 26:28).

 

6. 구속사적 지위

① 다윗 왕정 수립시 군대 장관으로서 공헌한 자(삼하 20:23).

② 사울 왕가와 다윗 왕가가 합쳐질 시기에 아브넬을 살해함으로써 이스라엘 통일에 방해된 자(삼하3:27).

③ 솔로몬을 반대하고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한 자(왕상 1:7).

 

7. 주요 공적

① 여부스, 에돔, 암몬, 아람 등의 주변 이방족속을 평정시키고, 세바의 난을 진압 함(삼하5:8).

② 다윗 왕과 압살롬과의 화해를 중재함(삼하 14:1-23).

 

8. 실수

① 자신의 명예와 감정에 의해 귀순한 아브넬과 군대 장관 아마샤를 무모하게 죽임 (삼하 3:27; 삼하 20:7-22).

② 부하 장수 우리아를 전장에서 혼자 죽게 만듦

(삼하 11:14-17).

③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시에 아도니아를 지지함(왕상 2:28).

 

9. 요압을 통해 얻는 교훈

요압은 다윗에게 있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일등공신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그는 좋은 머리를 가졌고 통솔력도 좋았으며 종교적인 영감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그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었다면 자아가 너무 강한 것이 흠이었다. 그러므로 때로는 요압이 다윗의 생각을 앞지르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었다. 항상 하나님의 영감이나 말씀을 앞세워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요압이 다윗왕에게 인구조사에 대한 잘못을 권고한 것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사람은 친분이 두텁고 신임도가 높을수록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따라야 한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영혼을 위해 그를 사랑하는 하나님 중심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꼭 해줘야 할 말이나 권고를 하는 것도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①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서 여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책략가였다. 그러나 권모술수를 행하며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나쁜 버릇으로 인하여 결국은 불의의 피값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왕상2:34). 혹여 우리에게도 매사에 이처럼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 권모술수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는가? 술수로 인한 기쁨은 수난적인 것에 불과함을 기억하라!(욥20:5).

② 다윗 왕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요압은 충신 우리아를 죽이라는 왕의 그릇된 명령에까지도 맹종했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다윗의 잘못이 크나,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게 된 부하를 위해 탄원하지도 않은 채 권력에 아부하고자 했던 요압의 행위 역시 크게 잘못되었다(삼상11:16-21). 이같이 세상에서는 때로 불완전하고 잘못된 것들이 우리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결코 이러한 죄악을 묵과하거나 타협․동조해서도 안되겠다.

③ 요압은 그의 용맹과 지혜를 다하여 이방 족속을 격파하고 이스라엘의 평정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삼하5:8;8:13). 이는 주님의 군사된 성도들 역시 사단과의 싸움에 있어 용맹과 지혜를 다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보여 준다. 지금 당신은 사단의 유혹 가운데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가? 혹여 영적 싸움 중에 자꾸 실패하게 되는 문젯거리는 없는가?

④ 다윗 왕을 위해 충성을 아끼지 않았던 요압이 나이가 든 후 어리석게도 아도니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를 왕으로 지지하게 되었다(왕상2:18). 이처럼 나이 들거나 어떤 고비를 지나 안주하고 싶어질 때 어이없게도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도의 신앙태도에도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주위 가족이 교회 다니는 것을 극심히 반대할 때에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도, 오히려 핍박이 없을 때는 나태해지거나 사단의 유혹에 쉽게 귀기울이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평안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더욱 성경 말씀을 상고하여 힘을 얻는 자 되자(요 5:39; 히 2:1-4).

⑤ 요압의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일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군사적 전략으로 갖가지 전투를 훌륭하게 수행해 냈듯이 하나님의 군사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지혜롭게 전략을 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고전16:13)

⑥ 요압은 뛰어난 전투 수행능력을 인정받아 군대장관의 영광을 얻었지만, 반면 비겁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아도니야 왕위 옹립사건에 가담한 결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요압의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일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군사적 전략으로 갖가지 전투를 훌륭하게 수행해 냈듯이 하나님의 군사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지혜롭게 전략을 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고전16:13)

⑧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부하장수(우리아)를 죽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처럼 세상의 법은 불완전하고 잘못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악한 법이나 제도는 무조건으로 순응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다윗 왕의 명령으로 요압은 우리아를 죽였다. 물론 그는 다윗 왕의 명령에 순응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왕에게 충실한다는 구실로 신앙과 명예와 참 군인의 규율을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로서는 이 땅의 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⑨ 요압이 다윗 왕가의 일등공신이 될 만큼 큰 공로가 있었으나 무력을 남용하다 자기도 심판되었다.

⑩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 요압이 인구조사에 반대한 것은 그의 장점이다.

⑪ 이스라엘 왕국의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은 다윗과 거의 동고동락한 인물로서 다윗의 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즉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한 것을 알고 드고아 여인을 다윗에게 보내어 압살롬을 용서하고 환궁시키도록 연극을 꾸미게 한다.(삼하14:1-24) 왕의 심정을 파악하여 충성하는 것은 신하된 도리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인도하시는 역사의 방향을 모른 것은 큰 잘못이었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부하장수(우리아)를 죽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처럼 세상의 법은 불완전하고 잘못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악한 법이나 제도는 무조건으로 순응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다윗 왕의 명령으로 요압은 우리아를 죽였다. 물론 그는 다윗 왕의 명령에 순응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왕에게 충실한다는 구실로 신앙과 명예와 참 군인의 규율을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로서는 이 땅의 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12.. 요압이 다윗 왕가의 일등공신이 될 만큼 큰 공로가 있었으나 무력을 남용하다 자기도 심판되었다.

13.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 요압이 인구조사에 반대한 것은 그의 장점이다.

14.  이스라엘 왕국의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은 다윗과 거의 동고동락한 인물로서 다윗의 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즉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한 것을 알고 드고아 여인을 다윗에게 보내어 압살롬을 용서하고 환궁시키도록 연극을 꾸미게 한다.(삼하14:1-24) 왕의 심정을 파악하여 충성하는 것은 신하된 도리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인도하시는 역사의 방향을 모른 것은 큰 잘못이었다.

 

* 묵상성구: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샤를 칼로 주였음이라...”(왕상2:32)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발이 이르는 곳마다 복을 주시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 받게 하옵소서. 원컨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더하사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우리를 도우사 근심이 없게 하시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하옵소서. 주님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온 땅에 전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하시고 고난 중에도 항상 찬양할 수 있는 마음과 굳건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거짓된 유혹에서 보호하여 주시고 언제나 의로운 삶, 정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출처 : 한태완 목사 설교자료집
글쓴이 : 복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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