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 마귀 귀신

[스크랩] 7장: 귀신의 정체

하나님아들 2014. 9. 27. 21:44

7장: 귀신의 정체

 

- 이다윗목사

  

 

마귀는 매우 강력한 조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 조직의 방대함을 볼 수 없기때문에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마귀의 조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방대합니다. 마귀의 세력은 하나님의 가지신 세력과 견줄만한 강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쫓김을 받은 마귀의 세력이 전체 피조물 중 3분의 1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처럼 자신을 따르는 삼분의 일이나 되는 악한 영들을 거느리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따르는 악한 영들은 '귀신'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이제 '귀신'의 정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귀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다는 것은 '귀신'을 대적하는데 있어 매우 유용합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귀신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한 자입니다. '사단'이라는 뜻이 '대적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자신과 뜻을 같이 할 추종자를 모았습니다. 얼마나 마귀가 뛰어났는지 그 추종자의 수가 자그마치 하늘에 있는 천사의 삼분의 일이나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 [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하늘에 있는 큰 붉은 용' '마귀'를 뜻합니다. 4절에는 그 마귀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천사 중의 삼분의 일이 마귀에 의해 타락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꼬리"는 마귀의 꼬리를 말합니다. 마귀가 하늘의 천사 중 삼분의 일을 땅으로 쫓아낸 것이 아니라 마귀때문에 하늘의 천사 중 삼분의 일이 땅으로 쫓김 받은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지은 바 된 천사들 중 삼분의 일이나 되는 무수한 천사들이 마귀에 의해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천사라 할지라도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하늘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비록 3구절 밖에는 안되지만 그 구절 속에는 하늘전쟁의 치열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하늘에 전쟁이 일어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단 한 차례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악한영은 없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그것은 하늘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였을 때 미가엘과 싸웠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지 않으시고 천사장 미가엘에게 마귀를 대적케 하셨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천군천사들을 대동하여 마귀의 무리들과 더불어 싸웠습니다. 하지만 마귀군대는 미가엘군대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마귀군대가 패배한 후에 더 이상 하늘에 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늘에 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내어쫓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땅으로 쫓으셨습니다.

 

"[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마귀가 하나님으로부터 땅으로 쫓김을 받을 때 그를 추종하던 영들도 함께 쫓으셨습니다.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겨났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하늘의 천사 중 삼분의 일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마귀와 땅으로 쫓겨난 악한 영들은 계속적으로 마귀를 섬기며 마귀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악한 영들을 가리켜 '귀신'이라고 부릅니다. 저들이 하늘에 있을 때에는 천사로 불려졌지만 마귀를 추종하고 난 후부터는 더 이상 천사라고 불리지 못하고 '귀신'으로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귀신의 역할

 

귀신은 여전히 마귀와 함께 합니다. 마귀를 추종하였던 하늘의 천사들이 '귀신'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귀와 뜻을 같이 하여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귀신의 역할은 마귀의 뜻을 돕는 것입니다. 마귀의 염원하는 목표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기때문에 귀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성경은 '귀신' '(spirit)'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퓨뉴마>라고 표기되는데 이 <퓨뉴마>는 성령님(holy spirit)께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귀신과 성령님의 이름이 모두 똑 같다는 것입니다. 다만 <퓨뉴마> 앞에 수식어가 붙는 것만 다릅니다. '귀신'이라고 해서 모두 똑 같은 귀신이 아닙니다. 귀신도 각각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사람 이름처럼 '홍길동'이나 '임꺽정'과 같은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마다 특화된 전문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어떤 귀신의 전문적인 역할은 절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귀신의 역할은 자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신의 이름은 각 귀신의 역할에 따라 불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성령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이라는 의미로부터 '성령님'이라고 불려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헬라어 표기는 <하기오스 퓨튜마>인데 여기의 언급된 <하기오스>란 단어의 뜻은 '성스러운'입니다. 다시말해 '성령' '성스러운 영'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귀신의 이름도 '벙어리 귀신' 혹은 '귀머거리 귀신'처럼 귀신의 역할에 따라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귀신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그 귀신이 어떠한 특화된 전문적인 역할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귀신인줄 알아야 정확한 축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벙어리 귀신'이 들어와 있는데 "귀머거리 귀신아, 떠나라!"라고 선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슬픔 귀신'이 들어와 있을 때는 "이 슬픔을 가져다 주는 귀신아 떠나라!"고 선포해야 정확한 대처법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이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육신이 주어질 때입니다. 귀신을 귀신되게 하는 것은 귀신에게 육신이 주어질 때입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영이기때문에 영으로 사역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영으로만 존재하면 귀신이 싸울 상대는 영적인 존재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귀신은 육신을 가지려고 합니다. 귀신이 인간 속으로 들어가야만 육신을 갖습니다. 이처럼 귀신이 인간 속으로 들어와 거주하게 될 때 비로소 귀신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이처럼 인간 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육신을 취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마귀의 목적을 달성키 위함입니다. 귀신이 인간 속으로 숨어 들어가야 비로소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듦으로써 마귀의 목적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귀신이 인간 속으로 들어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바울은 귀신을 가리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세상 풍조를 쫓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른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귀신이 일하는 방법입니다. 귀신은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른 자를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기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귀는 세상을 불순종한 아들들을 양성하는 교육장소로 삼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게 될 때 불순종한 아들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마귀는 세상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파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일단 마귀의 전략대로 세상이라는 그물에 낚여 불순종한 아들이 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귀신이 불순종한 아들들에게 들어갈 때에 역사를 합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역사한다'는 것은 헬라어 <에네르게오>인데 이는 '역사하다' 혹은 '일하다'란 뜻입니다. 이처럼 귀신은 우리들 속에 들어와 일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해진 형식에 맞춰서 일하거나 억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전력을 다해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전심전력으로 사랑하듯이 그렇게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자신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업가처럼 일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귀신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마귀를 섬기고 일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우리가 귀신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귀신은 "우리의 밥"입니다. 예수께서 마귀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셨기때문에 우리에게도 귀신을 물리치고 승리할 권세가 주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태만하거나 무관심할 경우엔 귀신의 집요한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인격체입니다.

 

귀신은 어떤 사물이나 물질이 아닙니다. 귀신은 인격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인격이 있듯이 귀신도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신의 성품이 좋고 나쁘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도 우리처럼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듯이 귀신도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분별이 있으며 마귀와 밀접하게 영적으로 연관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귀신은 육신이 없는 것만 우리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귀신은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보다 훨씬 수준이 낮은 단계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귀신이 영적인 존재라 매우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의 지식은 매우 단순하며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생 정도의 수준 정도라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또한 귀신의 감정은 어린아이의 것과 같아서 때로는 변덕이 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술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귀신의 속셈이 매우 치사하기도 하고 유치한 것이여서 귀신의 행동을 보면 금방이라도 귀신의 속내음을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또한 귀신의 의지는 우리 인간의 의지와는 달리 매우 조잡하며 쉽게 변질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사랑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헌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심령이 있기 때문에 매우 고결하고 헌신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에게는 의리라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의리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귀신처럼 의리가 낮은 사람은 없습니다. 혹 의리가 지나치게 낮은 사람은 귀신에게 묶임을 당했기 때문에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그렇게까지 의리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국성연에서는 축사사역을 할 때 가급적이면 귀신과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귀신과 대화를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귀신과 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신중하게 축사사역을 하기 때문에 귀신과 정이 들지 않습니다. 처음엔 대화를 나눠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축사사역을 많이 하게 될 때 자칫 잘못하면 습관화되고 형식화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귀신과 정이 들게 됩니다. 마치 내가 귀신같고 귀신이 나의 친구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런 경우는 사역자 스스로 귀신처럼 낮은 수준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맙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축사사역하는 사역자들이 점점 그의 지식수준이나 감정의 변화나 의지력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성연은 축사사역할 때 귀신과 대화하는 것을 조심하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귀신의 정체를 밝히셨기때문에 귀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가끔씩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 [ 8: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고 귀신의 정체를 확인하셨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축사사역을 보면 거의 대부분 꾸짖고 나가라고 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예수님은 귀신과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축사사역자를 보면 귀신과 한참 대화를 나눕니다. 30분이 넘기도 하고 1시간이 넘기도 합니다.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이 그 대화가 매우 깁니다. 이런 대화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죽을라고 환장을 하면 대화를 하십시오. 귀신에게 묶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줄 알고 싶다면 대화를 나누십시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면 대화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귀신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너 누구냐?"라고 간단한 말을 할 때에 귀신은 순순히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거짓말로 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귀신의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이어서 귀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자녀가 거짓말을 할 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귀신의 아버지 꼴인 마귀가 거짓말장이여서 그런 것입니다. 마귀가 거짓말장이니까 마귀의 졸개인 귀신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것입니다.

 

" [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처럼 마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이기때문에 귀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귀에게 속한 자는 거짓말장이가 됩니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마귀에게 속한자는 거짓말장이입니다.

귀신의 인격은 매우 치졸하며 간사하며 이기적입니다. 자기 자신은 나가지 않으려고 다른 동료귀신을 나가게 합니다. 금새 화를 냈다가도 금새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합니다. 도대체 줏대가 없습니다. 방금 거짓말을 했어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매우 뻔뻔합니다. 어린 자녀도 그렇게까지 뻔뻔할 수 없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도 양심이 있어서 거짓말을 할 때 얼굴이 빨개지면서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데 귀신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할만한 양심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유치한 귀신들을 향해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사사역자들을 보면 그렇게 담대한 것입니다. 때로는 비인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귀신들이 뻔뻔하고 말로해서는 안 될 매우 비겁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자는 "목사님, 쟤들도 인격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격도 인격나름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고귀한 것이지만 귀신의 인격은 고귀한 것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입니다. 누가 귀신의 인격을 인격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들의 아버지인 마귀도 귀신의 인격을 인격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귀에게는 함부로 대하셨습니다. 시끄럽게 굴 때는 "잠잠하라" 고함치셨으며 횡포를 부릴 때는 "멈추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을 괴롭힐 때는 "나가"라고 명령하셨으며 교묘하게 거짓말로 숨으려 할 때는 "너 누구냐"고 직설적인 표현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축사사역의 대부분은 꾸짖는 것이었지 인격적으로 달래거나 봐주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행하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전문성

 

대부분의 귀신은 앞서 설명한대로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형편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어떤 귀신은 그와 반대로 인간의 지시과 감정과 의지를 앞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귀신은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기 때문에 아는 지식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귀신과 지식을 논하게 될 때에 당합니다. 귀신의 지식이 나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어떤 귀신은 매우 사악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교묘히 흔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사악합니다. 이런 사악한 귀신들과 대화를 나누면 다른 사역자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교회 담임목사를 미워하게 됩니다. 배우자를 미워하게 됩니다. 나라의 지도자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축사사역을 하고 난 후에 부부싸움이 더 심화되고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가 다 귀신의 사악함이 묻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과 가까이 하는 것은 좋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귀신은 의지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그 귀신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신들린 사람이 그 귀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귀신이 빠져 나가는 것을 싫어하도록 그 사람을 매수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축사사역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귀신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성연은 성령의 불로 귀신의 집을 태우는 사역을 가르칩니다. 성령의 불은 안수에 의해 이뤄집니다. 안수를 하게 되면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저절로 귀신의 집에 불이 납니다. 귀신의 집에 불이 나게 되면 귀신은 자의적으로 떠나가게 됩니다. 집이 없는 귀신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귀신은 집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집을 지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일단 집을 짓게 되면 그 집에서 오래 살려고 합니다. 다른 동료들도 불러와서 함께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은 귀신의 거하는 집을 태워버립니다. 이렇게 성령의 불로 귀신의 집을 태우게 되면 잇점이 많습니다. 뒤에서 구체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게 되겠지만 집을 태우게 될 때 귀신의 거처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이 자의적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집이 없으니까 더 이상 귀신이 다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신을 강제적으로 쫓아내는 경우는 귀신이 나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합니다. 나가기 싫으니까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자기보다 더 약한 귀신을 내 보냅니다. 동료를 고자질합니다. 또한 사람을 건드립니다. 주변의 사람을 건드리기도 하고 특정한 사람의 가족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귀신은 나가면서까지 사람들의 관계를 상하게 하고 나갑니다. 사람들을 위협하는 말을 하면서 나가기도 하고 거짓 정보를 유출하면서 나가기도 합니다.

 

귀신의 성향

 

예수님은 귀신에 대해 잘 아셨습니다. 어쩌면 예수님보다 더 많이 귀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귀신에 대해서 많이 아셨으며 저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성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예수님의 전하신 예화를 보면 많은 중요한 내용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라는 말은 축사사역을 통해 귀신이 빠져 나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빠져 나간 귀신은 쉴 곳을 찾아 다닙니다.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라는 말은 귀신이 좋은 거처를 찾아 다녔다는 말입니다.

이전 집보다 더 멋지고 좋은 집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은 찾지 못해서 다시금 예전에 거한 집이 생각이 나 그 집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이전에 거하던 집에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비었다'는 것은 다른 아무 귀신이 그곳에 거하지 않고 있다는 뜻도 되지만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비어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축사사역을 할 때 귀신이 빠져나가면 빠져 나간 자리가 비어집니다. 축사사역자들이 실수를 범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축사사역자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후속처리가 부족하게 될 때 오히려 그 사람은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사실을 축사사역자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축사사역으로 인해 귀신이 빠져 나갔으면 그 빈 자리에 반드시 성령의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소제되었다'는 것은 그 집이 청소되었다는 것입니다. 축사사역을 통해 귀신이 빠져나가고 나면 매우 개운합니다. 시원하기도 하고 기쁨이 절로 납니다. 매우 행복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축사사역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보다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 집이 다소 깨끗해집니다. 그런데 귀신에게 있어서 그런 '소제된' 집은 오히려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도둑놈이 으리으리하게 잘 사는 집을 더 탐내지 못사는 초가집에 더 매력을 느끼지는 않듯이 귀신 또한 깨끗하고 정리된 집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깨끗해서는 오히려 귀신에게 당하고 맙니다. 그렇기때문에 날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수리되었다'는 것은 이전의 살았던 집이 수리하여서 매우 멋진 집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있어서 이처럼 매력적인 집이 또 어딘들 있겠습니까? 너무나 꿈에 그리던 집인 것입니다. 귀신에게 가족이라도 있다면 가족을 데리고 평생토록 살고싶은 그런 꿈의 집인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자신의 동료들을 데리고 옵니다. 성경은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12:45)고 말한 것입니다. 왜 귀신이 다른 동료를 데리고 온지 아십니까? 혼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귀신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미 자신은 한번 쫓김을 받았기때문에 혼자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어서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귀신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한 귀신을 쫓아냈지만 오히려 여덟 귀신이 들어온 꼴이 되어서 이전보다 그 형편이 더 나빠진 것입니다. 이 일을 많은 축사사역자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귀신을 쫓아 내고 기쁨충만함으로 축하 파티를 열 때에 여덟 귀신이 들어와 오히려 그 사람의 형편이 더 심해지는 일을 축사사역자가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쫓아내지 않은 것이 훨씬 좋을 뻔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예화를 든 것은 우리에게 축사사역의 핵심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축사사역의 핵심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축사사역은 귀신에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됩니다. 축사사역의 초점은 그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많은 축사사역자들이 귀신 쫓아내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 사람에게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귀신에게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다보니 귀신은 잘 쫓아 냅니다. 그런데 정작 귀신이 빠져 나간 그 사람은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후속절차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차만 팔고보자는 어리석은 판매원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불을 사용하십시오. 성령의 불은 가장 안전하며 가장 강력한 치유법입니다. 성령의 불은 귀신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며 행해지는 방법입니다. 성령의 불은 후속조치가 완벽한 방법입니다.

출처 : 예수생명 사랑의 종
글쓴이 : 이용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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