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란 무엇인가?
별똥별 ㆍ 2012/01/09 ㆍIP: 98.xxx.205 ㆍ추천: 100 ㆍ조회: 6555
이선님을 비롯 많은 분들이 예언에 관해서 혼란스러워 하고, 이런 헛점을 이용하여,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현대도 예언, 직통 계시가 주어진다라고 호도하는 건전하지 못한 변질된 은사주의자들의 만행이 극에 달했으므로 경계해야겠기에 필자는 정리해 둔 예언에 관한 칼럼 글을 올려서 함께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세가 가까워옴에 따라,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는가 하면, 이곳저곳에 선지(예언자)학교라는 특수 학교가 세워지고 자칭 사도들, 예언자들, 선지자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현재 이곳저곳에 세워지는 선지(예언자)학교와 예언자 혹은 선지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좀 더 좁혀 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언이란 어떤 것이며 예언자의 자세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영적 세계란 사각지대(死角地帶)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람이냐, 벨리알의 사람이냐, 둘 중 하나, 영생의 길이냐, 영벌의 길이냐로 갈라지기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검증이란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예언의 정의:
예언이란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는 예언(豫言)과 동음어인 예언(預言) 이 두 단어의 뜻이 모두: ①앞에 올 일을 미리 말함 ②또는, 신탁(神託)을 받은 사람이 신의 말을 듣고 신의 의지(意志)를 사람들에게 전(傳)하는 일 ③또는, 그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예언’은 한자로 보면 예언(豫言)이 아니라 동일한 동음인 ‘預言’ (예언)을 뜻한다. 또 영어 'predict’ (prediction)이라는 단어와 'prophesy'(prophecy)라는 단어는 같은 뜻 같으나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 ‘predict’란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의 단순 예언(預言)을 뜻하며, 'prophesy’란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미로서의 예언 (預言), 신탁(神託)을 뜻한다고 보면 되겠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말씀 언(言)자에 맡길 예(預)자를 사용한 말이다. 인간의 미래를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을 맡겼다는 뜻이다.
(預言)자의 개념:
하나님의 선견자(先見者) ‘로에’ 와 대변자 (代辯者), ‘나비’로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의 대변자’, 선견자란 뜻이며,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곧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예언자들의 말은 그 자신들의 영(spirit)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Holy Spirit)에 의해 말하게 한 대언이었기 때문이다(삼상 9: 9, 렘 23: 16, 겔 13: 2절 참조). 구약 시대에도 선지 학교가 있긴 있었다. 선지 학교는 사무엘시대 이후부터 세워진 기록이 있고, 아마도 사무엘이 좋은 선지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선지 학교를 세운 것 같다. 그 후로 이스라엘의 각 지역에 세워진 선지 학교에서 수많은 선지자가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양성된 선지자들은 왕실에서 혹은 동리에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극진한 대접과 환대를 받으며 편하게 지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혹은 선견자(대선지자, 소선지자 포함)들은 선지 학교 출신들이 아닌, 평민으로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로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골라 특별히 불러 세우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선견자나 선지자, 예언자의 특성상, 인위적인 방법으로서가 아닌, 전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탁에 의해 주어진 말씀이어야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
또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서 주님의 영으로 부름을 받은 특별한 대언 자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신구약 성경이 완성, 정경으로 채택되어 우리 손에 들려져 있고, 주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면서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고 교훈도 하시는 성령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인 제사장’만 성립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만인 대언자’가 될 수 있음도 믿어야 한다. 대언이 어떤 특정인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새삼스럽게 인위적인 방법의 선지 학교나 그곳에서 배출된 선지자들, 혹은 예언자들이 필요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진정한 예언= 우리에게는 오직 무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언서인 신구약 66권 외에 다른 예언의 말씀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계22:18-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서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셨다. 가장 확실한 예언은 성경 말씀이다 (벧후 1:19-20).
3.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령한 예언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언이라기보다는 대언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보혜사 성령님께로부터 성도가 신앙생활을 더 잘 해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써, 때로는 예언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말씀을 레마로 주시기도 한다. 곧 모든 양이 그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직통계시적 형태를 취하는 태도를 삼가야 한다. 우리(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의 역활이시요, 사용되는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 안에 있어야만 한다. (행27:22-25)
참고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 속에는 크게 나누어 몇 가지 형태의 계시가 있는데 특별계시(예수 그리스도), 혹은 기록(문서)계시(성경), 일반(자연)계시로 나누어진다.
간단히 요약해, 특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고, 문서 계시인 성경 말씀 역시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요, 핵심은 인간 구원이다. 일반계시는 자연 속에서 (롬1:19-20절 참조)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시는 것이다. 현 세대에서 우리(성도)는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는 특별 계시, 혹은 문서계시는 받을 수도 없고(계 22:18-19절 참조), 또 받을 필요가 없다. 일반 계시도 자연 속에서 찾으면 되기에 우리가 다시 재창조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성도)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란, 곧 성령님의 조명하에 특별계시를 통해서, 기록계시 속에서, 혹은 일반계시 속에서 찾아지고 들려질 수가 있으며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차원으로 해석돼야 한다. 성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손에 이미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따로 선지(예언자)학교가 필요치 않다고 본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14;26).”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대언의 영으로 주시는 말씀도,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잣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a) 은사로서의 예언:
권면 하며 안위하며 덕을 세우기 위해서 대언의 영으로 증거(예언)할 수 있으나, 반드시 교회와 사람(개인)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 (고전14:3절, 계시록19:10절 참조.) 사업이 잘될는지, 자녀가 학교에 입학 가능한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어떤지...등등, 이런 류의 점치는 형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b)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신명기18:18-22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내가 고하라고 말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예수 그리스도)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 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c) 말씀을 들을 때 혹은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
(때론 너무나 뜨거워서 부모가 돌아 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을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큰 감동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절 말씀 )”.
d)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자기가 기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생각이 머리에 주입된다. 이때 들려지는 말씀이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절하반절)".
e) 그 생각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레마로 머리에 정확히 떠오르거나 입술에서 터져 나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4:26절)
f) 다른 이가 예언 은사적 말씀을 받았을 때에도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같이 마음이 뜨거워진다. (눅1:41-45절)
g) 항상 선한 말씀이 아니고 때론 책망함과 바르게 함으로 탄식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절)”.
결론적으로
이 혼탁한 세상에서 악한 영에 미혹 받지 말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에 의해서 잘 인도되고 내 귀에 아무것도 들리는 것 없고 내 눈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변하지 않고 온전하신 말씀 안에 내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겸손하게 주와 동행하는 성도가 복된 성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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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개혁교의 대표적인 분들(죤 칼빈, 마틴 루터, 벤저민 휫필드. 죤 매카터, 리처드 개핀, 대니얼 월리스) 등, 그분들은, 초대 교회 이후, 은사중단론을 지지한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중단설(cessationism)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초기교회 이후 방언, 신유, 은사, 계시 등이 끊겼고 사라졌다는 주장입니다. 그 이유로는 성경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만 모든 은사들이 필요하였고 그에 따른 임무(성경이 완성)가 끝났으므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성경을 많이 읽기 전에는 그것이 그런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우리가 모든 은사들이 중지되었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면 안전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요 14: 26 말씀이 성도에게 아무런 유익도 필요함도 없게 된다”는 것이 밝히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직통 계시적, 성경 말씀을 벗어나고 그 말씀을 대치할 예언은 중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가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에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내 속에 내주해 계신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신, 견인의 능력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 26)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오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면서, 오늘도 우리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가르켜 주시고 그 말씀을 지키게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무시하지 않는 성도들이 수많은 기적의 능력들을 실생활에서 체험을 하게됩니다.
믿는 자는, 새 방언을 말할 것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때부터...그 약속이 어떤 다른 데 기초를 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 마음속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면, 그분의 말씀이 생각나고 떠오름으로 내 앞길 인도함 받는 것 그 자체는 당연한 것인데,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극단적 신비주의자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신약 시대의 신앙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도 없습니다. 완성된 기록 계시 속의 예언이 마음속에 떠오르고 생각나기도 하고…이런 성령 하나님의 역할하심마저 인정하지 못하면 우리네 같은 선교사들, 제 3국에서 어찌 살아남을 수가 있을 것입니까?
성경은 어느 한 구절도 필요없는 구절이 없이 중요하지만, 앞 뒤 전 후 문맥도 살펴야 하고 통전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방언이 우리가 배워서 할 수 있는 외국어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new tongues(νέες γλώσσες)란 말씀을 쓰지 않으셨고, strange language(παράξενη γλώσσα) 혹은, 다른 방언 the other dialects( Οι άλλες διάλεκτοι)를 너희 믿는 자들이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배워서, 학습으로 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인지....그러나, 그 역시,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성령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을 믿기에,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언젠가 댓글로 말씀 드렸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분 중에 어릴 적 부모를 여이고 천애 고아로 성장하신 여성이 있습니다. 그분은 학교 문턱에도 가볼 수가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후, 첫 남편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찾아와 주신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교회를 나가긴 해야겠는데, 말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에 그분은 미국인 교회를 출석했습니다.
미국 교회에 나가니, 영어로 찬송도 불러야 하고 말씀도 들어야 하고...너무나 힘이 들어서 고통 하던 중, 영어 성경을 읽어보기로 작정을 했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영어 성경을 들고 읽어나가기 시작(읽는 것이 아니라, "I n t h e b e g i n n i n g 이렇게 알파벳을 한자씩 소리내어 읽었다는 군요.)했습니다. 화장실에서도 읽고...틈만 나면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녀의 입이 갑자기 열려서, 알파벳으로 끙끙거리던 그 말씀이 문장으로 줄줄 이어지고....
깜짝 놀란 그녀 자신, 그리고 그녀의 그런 음성을 듣고 있던 (재혼한 일본인 2세)남편이 놀라서 소동을 하고요....이렇게 배운 적없는 외국어도 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 안에서는....
또 고전 14: 2절의 영언(비밀)의 체험 사례: 그야말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교회로 빌려서 사용하는 건물에서 몇 몇 성도님들과 함께 철야 기도를 드리던 때였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주님께 기도로 아룁니다. 그날도 우리가 섬기던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의 이름을 넣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저의 혀가 구르면서 내가 평소에 쓰지않던 방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뜻이 연달아 깨달아지는데 "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그를 침상에 내어 던지리라!" 저는 너무도 놀라서 울며 불며, 조금만 더 참아주시고 그를 불쌍히 여겨주십사...아마도 저와 함께 하는 다른 분이 들으면 안될 것을 아시고...이런 것이 비밀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운 계시로서가 아닌, 성경 말씀을 들려주시되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 이분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신가 이런 말입니다. 저는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성령의 능력마저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치유도 주님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 주님의 뜻에 따라 일으켜주십니다. 그런데, 한 번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고 하여서, 자신이 신령하다고 착각을 한다던지, 다른 성도들보다 더 우월하다던지....이런 마음을 먹는 그 순간부터 사단이 그런 사람을 가지고 충동질 하기 시작하지요. "너는 신령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네가 기도해 주면 병도 낫는다." 등등. 그런 사단의 속삭임도 우리의 영혼이 깨어 감지해 내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용하여 자신을 신성화시켜서 모든 성도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삯군이요 거짓 선지자요 사단의 졸개일 뿐입니다! 그들이 지금 자신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보이지가 않습니까?
((개혁 교회는 성령의 음성과 인도가 없다고 가르치지요)이 말은 표현적으로 잘못되었기에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개혁교회(다는 아님)중 일부에서는 성령의 은사중 방언과 예언은 중지되었다고 가르치지요. (아래 참조를 올려두었음) 칼빈주의는 사도 시대와 함께 모든 은사가 중지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오늘날의 은사는 어떤 은사라 하더라도 사도성이나 계시성을 가지지 못한다 지적하고, 이부분은 우리 모두 동의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은 성령의 인도하심의 음성을(성령의 선물로서의 방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를 체험했지요. 그러니까, 체험을 한 성도님들이 달려갈 곳이 어디겠나요? 사단이 쳐놓은 덫, 극단적 신비주의자, 삯꾼들의 품밖에 더 있겠습니까? 어찌보면, 바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순진한 양떼들을 '은사중단론 자'들이 극단적 신비주의, 사단이 쳐논 덫, 그 함정으로 밀어넣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정통 개혁교회의 입장:
다음은 개혁교회의 입장에 관한 간추린 도움말입니다.
" 개혁주의가 중단되었다고 보는 은사는
1. 사도의 은사(the gift of apostle)
->예수님이 그냥 사도를 임명했다고 보기보다는 예수님이 부르셔서 사도의 사명을 주시고 감당하도록 사도의 은사는 주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2. 예언의 은사(the gift of prophecy)
->선지자의 은사와 동일한 뜻으로서 예수님이 직접 누구를 부르셔서 예언의 은사를 주면서 선지자로 세운다고 임명하지는 않았지만,
예언하는 사람(선지자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은 예언의 은사가 임했기 때문에 예언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3. 방언의 은사
4. 방언 통역의 은사
->이 두가지 은사도 개혁주의에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교회에 전달하는 것과 관련된 계시의 은사로 봅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이상의 네가지 은사가 이제 없다고 봅니다. 개혁주의 안에서 방언을 계시의 은사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출처-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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