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 - 1)말씀 2)꿈 3)환상 4)기도 5)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위한 절대적인 권위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으며 참된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요 1:14) 영적 성장은 말씀의 뿌리 위에 서서 자라납니다. 말씀의 뿌리가 깊은 사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산은 높을수록 골짜기도 깊고, 건물은 높을수록 기초가 깊고 튼튼한 가운데 세워진 것입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만 은사 사역에도 안정감이 있습니다. 영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깊은 신령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의 원천이신 주님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서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언이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더 이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 부분적인 생각이라고 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모든 성경을 통해 내 삶과 생활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은사는 성도와 교회에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 은사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교회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몸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성령께서는 다양한 은사로써 역사하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 12:8~11) 모든 은사는 교회의 몸된 지체로써 사명 감당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7) 그런데 만약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면 주님의 이름 위에 세워진 교회와 전혀 상관없는 독단적인 은사자가 되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 사역은 주님께서도 인정치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는 사단도 큰 능력으로 이적도 행하고 병도 고치고 예언도 합니다. 귀신의 영을 받아서 예언하는 무속인들을 쉽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을 조명하고 지도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잠 13:13)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성, 인성, 감성, 영성을 겸비하여야 합니다. 은사는 그 도구입니다. 2)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경로로 우리에게 대화하시길 원하십니다. 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통로임을 알아야 합니다. “~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단 7:1)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1:20)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 3:5) 사람은 꿈을 꿉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밤 꿈을 꾸는 이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 역시 꿈을 꾸는데 어떤 때는 꿈을 꾸면서 말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흥미롭습니다. 믿는 사람도 꿈을 꾸고 믿지 않는 사람도 꿈을 꿉니다. 그런데 어느 꿈이 영꿈이고, 어느 꿈이 세상꿈인가? 다니엘이나 솔로몬이나 요셉이 언제 영꿈을 꾸었습니까? 그들이 영적인 삶을 살 때 영꿈을 꾸었습니다. 성경 대부분의 인물들은 영적인 삶 = 영적인 꿈으로 연결되어집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환경, 주변 사람, 주변 환경, 자식, 사건 … 을 의식세계에 담습니다. 그런데 그 의식세계가 세상적이면 그는 잠자면서도 내면세계 속에 숨겨져 있는 세상의식이 꿈으로 표현됩니다. 반면에 그 사람의 의식세계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이라면 그가 꾸는 꿈은 영꿈입니다. 일반적인 꿈은 그 순간 잊혀지거나 희미합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잊혀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영꿈을 꾸면 순간적으로 벌떡 깹니다. 그리고 그 꿈이 선명하게 기억되고 확신이 섭니다. 얼마 전 영꿈을 꾸었는데 우리 교회에 불이 났습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다이나마이트가 펑펑 터졌습니다. 그리곤 순간적으로 잠이 깼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4:31)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면 주위가 진동합니다. 이 꿈을 꾼 이후 오순절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도 재현되었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2005년 10월 둘째 주 목요영성집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참석했던 대부분의 목사님, 사모님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도 성령이 뜨겁게 임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신 후 모두 강대상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날따라 뜨거운 성령의 운행하심이 감지되었습니다. 기도의 열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임재가 들어가신 분, 희락의 영이 임하신 분, 환상이 열려 예수님을 만나신 분, 성령의 불로 질병이 치료되어지신 분, 은사가 열리신 분, 후에 전화로 들었는데 그날 기도 이후에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어진 사모님들도 몇 분 계셨습니다. 그리고 앞자리에 나와서 기도하신 모든 분들은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너도나도 주님의 역사하심을 간증합니다. 마치 초대교회의 상황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성령의 나타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타오르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2005년 7월 말 강원도 지역의 부흥회를 인도했을 때에도 나타났습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다이나마이트처럼 펑펑 터졌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일주일후에 그곳 교회의 사모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흥집회 이후 기도회를 만들어서 전교인이 기도를 하는데 목사님께서 세 번이나 천둥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에서에게서 장자의 권리를 빼앗은 야곱은 형에게 미움을 삽니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삼촌의 집 하란 땅으로 피신시킵니다. 야곱은 그곳으로 향해 가다가 밤이 되니 돌베개를 하고 노숙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 28:12) 야곱에게 하늘의 통로가 열린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그후 부터 야곱의 생애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뒤따릅니다. 야곱에겐 땅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를 연결하는 문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축복, 능력, 권세, 은사, 사랑 모든 것이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누구의 후손입니까? 바로 야곱의 후손입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모습을 볼 때 특별히 잘난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야비하고 간사한 짓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늘과 땅의 세계가 열리는 꿈을 꾼 후 그는 그 장소를 귀히 여겨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그곳 지명은 루스였지만 자기 맘대로 이름을 바꾸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만난 장소이며, 하늘 문이 열린 곳이기에. “~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나님의 문이로다 하고” (창 28:17) 누구이든지간에 하늘과 통로가 열려 있으면 축복입니다. 문제는 하늘문이 닫혀있는 것이지요. 하늘의 통로가 열려 있으면 천사가 우리의 인생 속에 역사합니다. 먼저 하늘과 땅의 통로를 여십시오. 3)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환상들을 살펴보면 대략 세 가지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로 나타나는 유형은 빛으로 보는 영적 환상입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3~5) 여기에서 사울이 본 환상은 홀연히 하늘에서부터 그에게만 비친 빛이었습니다. 초창기 저도 환상이 열릴 때 이렇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빛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직 사울에게만 비춰졌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사울은 예수인줄 알게 됩니다. 둘째로 비몽사몽간에 열리는 환상입니다. 이것은 잠깐 정신을 잃은 듯한 현실 속에 영적인 세계가 열리면서 보이는 환상입니다. 아나니아에게 이런 환상이 열린 것을 압니다. “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 9:10~16) 셋째로, 육체적 감각이 정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의 눈이 열려 보는 환상입니다. 이때 내 육신의 눈이 닫힌 것은 아닙니다. 영안이 열리면 육신적인 모든 기능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영적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 10:2~5) 꿈은 밤에 잠잘 때 보는 그림이라면 환상은 깨어있을 때 보는 그림입니다. 환상을 볼 때 내 눈이 감겨있을 수도 있고 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환상이 열릴 때에는 내 눈 속에 눈이 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내 안에 영안이 열리면 모든 사물이 보입니다. 마치 눈을 뜨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초창기 나는 환상을 보는 재미에 빠져 내가 아는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성도들과 그들의 자식들까지 환상과 예언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환상을 보여주시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즉시 그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방언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통변이 되어져서 환상이 해석되어지고 풀어집니다. 솔로몬 왕이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기를 원했기에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9) 대부분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원어로는 레드 쇼메아인데 직역하면 “듣고 순종하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매사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와 순종하는 자세였습니다. 그것이 참된 지혜인줄 믿습니다. 나또한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알려주시고 풀어주십니다. 꿈이나 환상을 잘 해석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애굽왕 바로가 심상치 않은 꿈을 꾸곤 번민에 빠졌습니다. 꿈에 본즉 자기가 강가에 서 있는데 아름답고 살진 암소 7마리가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와서 살진 소를 잡아먹습니다. 영꿈을 꾸고 나면 곧 깬다고 했는데 바로도 그랬습니다. (창 41:4) 다시 꿈을 꾸니 한줄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는데 그 뒤에 세약하고 마른 일곱 이삭이 올라와서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충실한 곡식을 삼켜버렸습니다. 심상치 않은 꿈을 꾼 바로는 해석하는 자를 찾았습니다.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지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요셉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창 41 : 38~41)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으로 모든 꿈을 풀 수 있었습니다. 4)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평상시 대화중에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기도해 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만큼 기도는 주님의 음성이나 감화 감동을 받는 응답의 시간입니다. 물론 주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오더라도 내 옆의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를 때 그는 엘리 제사장이 부른 것으로 착각했지만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그 음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것을 나중에 알아차립니다. 영적으로 미성숙했을 때에는 이러한 미숙함도 보입니다. 때로 어떤 분은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 고요히 듣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그분은 자기의 언어 표현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해 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귀가 아닌 마음에서 들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식별하여야 능력 있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성령의 음성은 내 마음의 평안으로써 확신으로 옵니다. 때로는 내면 깊숙이 주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5)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중에서 식물들의 세계는 환경의 변화를 의식하면서 자기 생명을 유지해 갑니다. 식물들은 사람이나 동물처럼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귀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인 환경에 반응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모든 나무는 봄이 되면 뿌리로 내려와 동면하던 생명이 새 잎을 냅니다. 여름이 되면 무성한 잎과 열매로 푸르름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면 나뭇잎이 변화된 환경에 맞춰 대응합니다. 열매나 과일에다 자기의 생명(씨)을 퍼트립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오면 잎사귀로 숨 쉬던 생명을 다시 뿌리로 옮깁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식물들은 조금씩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대체적으로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명을 유지해 갑니다.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도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만물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창조주로서 다양한 환경의 변화를 통해 무감각한 신의식이 부족한 자들을 일깨웁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 1:20)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만물을 주장하심으로 분명히 보이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이 쉽게 깨닫고 느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욘 1:2) 그러나 요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니느웨 사람들에게 구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싫어서 다시스로 향합니다. 불순종하는 요나를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십니까?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신 분이고, 주장하시는 분이시기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탔을 때 바다에 태풍을 일으킵니다. 그리곤 바다에 빠지게 만들며 준비되어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모든 만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는 그 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
출처 : 주님뜻대로만 살게하소서
글쓴이 : 들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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