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이해
1. 들어가는 말
하나님 나라 개념은 성경 전체에 내포되어 있는 중심 메시지이며 하나님 나라 사상은 예수의 교훈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모로 설명하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 창 12:1 참고)”고 하였는데 이 작업은 신약의 계시록 21장 2절에 와서 끝이 날 것이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런데 이것은 신약성경을 신앙하는 입장에서 볼 때에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곧 구원의 복음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신약 성경의 중요한 주제로 자주 나타나는 개념이다. 세례요한이 전파한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설교(예수의 첫 번째 설교: 막 1:15)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교(예수의 마지막 설교: 행 1:3)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천국이 가까웠다(마 10:7)”고 전하였다. 이를 보면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중심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며 활동한 것을 누가는 사도행전 마지막에서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고 요약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의
‘하나님 나라(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는 다르게는 ‘하늘나라’, ‘천국(η βασιλεια των ουρανων)’으로 불리우기도 하며, 또는 ‘그 나라(η βασιλεια)’, ‘아버지의 나라(η βασιλεια του πατρος)’, ‘아들의 나라(η βασιλεια του ὑιου)’ 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구약에서는 ‘말쿠트(תוכלט)’라는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실레이아(η βασιλεια)’라는 헬라어가 갖는 일차적인 의미는 한 왕의 권위, 지위, 왕이 행사하는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바실레이아’, ‘나라’의 기본적 의미는 상당한 주의를 요하며, 먼저 그 출발점은 언어학적 고찰이 되어야만 한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바실레이아’라는 단어의 우선적 의미는 ‘왕국’이나 ‘백성’보다는 ‘왕의 능력’, ‘권세’란 개념이 더 기본적이라는데 실제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언어사용에서 보통 ‘왕국’, ‘나라’로 번역되는 ‘바실레이아’라는 말은 모든 다른 용례보다 먼저 왕의 성격, 지위 등을 지칭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하겠다. 특별히 그것은 왕에 관한 말이므로 이는 먼저 그의 위엄, 그의 권세를 말한다. 그리고 히브리 단어는 통치, 지배, 혹은 주권 등에 대한 역동적인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말쿠트(תוכלט)’가 하나님에게 사용될 때 그것은 항상 그의 권위나 통치를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는 벧후 1:11절에도 언급된 것처럼 ‘영원한 나라’(영원한 사실)로서 이해되어지고, 다음으로는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땅위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되며, 마지막으로는 ‘미래에 그 완성이 기대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이 가운데 마지막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 개념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종말론적인 개념이며,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나아가서 다스리는 영토를 포함한 백성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종말론적 질서란 뜻이 숨어있다고 한다.
3. 하나님 나라의 요소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첫째로 왕 되신 ‘하나님’ 또는 ‘예수’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늘 왕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대한 비유 중에서 “천국은...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2)”, “천국은 마치... 집주인과 같으니(마 20:1)”, 또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 13:24)”, 등이 모두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 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둘째 요소로는 ‘영토(Territory)’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장소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 나라에 영토가 없다면 왕과 백성들이 거할 처소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신앙은 공중에 뜨게 되며 우리가 바라는 소망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역사상의 정통 기독교 신앙은 천국이 이 세상에서도 누리고 또한 사후의 미래에도 영원히 있게 될 일종의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분명한 하나의 장소라고 줄곧 주장해 왔다. 성자를 통하여 성부와 올바른 관계를 맺은 자들은 함께 천국에 있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밖에 내던져질 것이다(마 22:12-13, 25:10-12).
하나님 나라의 장소적 측면은 종말에 이루어질 ‘미래 천국’(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는 분명하지만 현재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세 천국’에서는 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셋째 요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 만약 백성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텅빈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곧 성도들이며, 이는 출생함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거듭남으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요 1:12,13, 3:3-5).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많아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 방법은 전도를 통해서 되는 것이고, 말씀 전파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끝으로 한 나라를 유지하고 다스리는데 ‘주권’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주권이 있으며, 통치와 지배의 원리가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요체는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으며, 또한 산상보훈에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생활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곳,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주권이 회복되는 영역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4.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1)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해서는 먼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선언에서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누가복음 11:20에 보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는 예수의 귀신 축출 사건에서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밝히고 있는 것이며, 같은 복음서 17:20-21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며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한국 성경의 표현대로 보면 마치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그들의 마음에 있다고 하는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의 바른 의미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영어 성경에 보게 되면 “...the kingdom of God is in your midst."라고 있든지 ...among you라고 되어 있다. 곧 너희 안에가 아니라, 너희들 중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맥상으로도 맞는 표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한 이들이 주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구절이 한국 성경에 표현이 된 것처럼 “너희 안에 있느리라”라면 불신자인 바리새인들의 심령에 주님 나라가 있다고 하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영어의 번역처럼 “너희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이다. 곧 바리새인들의 사이에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계시다는 것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왕의 권세 혹은 그 권세가 미치는 영역을 의미를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너희들 중에 있느니라” 하신 말씀의 바른 의미는 왕권을 가지신 주님께서 그들의 사이에 계신다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의 권세 자이신 주님께서 계신 곳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 중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심령에 왕으로 영접이 되었다면 그들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한국성경의 번역이 맞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을 왕으로 영접한 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안에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그들 있는 그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문 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사람들이 저마다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며 그의 의도였던 것이다. 여기서 땅은 사람들이 거하는 영토(領土)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마13:19-23)에서 알 수 있듯이 땅은 사람들의 심령(心靈)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씨 뿌리는 비유뿐만 아니라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마13:31-33)에서 알 수 있듯이 세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확장적인 능력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으로부터 소원(疎遠)하여 있지 아니하고, 계속 세상을 찾고 있으며, 세상과 광범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끝까지 그의 백성을 찾는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이다.
예수의 가르침 대부분은 언제나 현재시제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지금’(now)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사렛에서의 예수의 설교에 대한 누가의 기록을 보면, 예수의 설교에 이사야 61장의 내용이 인용된 가운데 ‘오늘’(today),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선포가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 나라임을 선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전파한 하나님 나라에 관한 메시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2)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장차 올 시대에 속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다. 권능과 가시적인 영광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왔다. 하나님 나라는 장차 올 시대 이전에는 온전히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에 대해서는 마가복음 10:15의 표현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왕적 통치는 성도들이 엎드려 절해야 할 현실적 실재이다. 그러나 그 통치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세상 끝에 권능과 영광 중에 찬연히 나타날 것이다.
5. 하나님 나라의 양면성의 조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점이 된다. 즉,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면과 미래면을 이해함으로써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다는 믿음과 장차 그 왕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누릴 줄 안다. 동시에 현재에 통치하시는 왕 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장차 그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실현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바라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즉 구원받았다는 확신과 장차 그것이 완성되리라는 소망 사이에 끼어 긴장하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 중에서 겨자씨 비유는 장차 큰 나무가 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현세계 속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예시해 준다. 겨자씨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다. 그러나 땅에 뿌려져 나무로 성장하면서 새가 깃들이고 둥우리를 지을 만큼 크게 된다. 누룩비유 역시 겨자씨 비유처럼 밀가루 전부에 누룩이 퍼진다는 의미에서 종말론적인 비유이다. 최대의 것이 최소의 것 중에 숨겨져 있으나 가장 작은 것 가운데서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생각하면 기적임에 틀림없는 것이라도 그것은 서로 관련이 있다. 시작에서 결과가 생기고 씨앗에서 열매가, 파종에서 추수가, 누룩에서 잘 부푼 떡이 생긴다. 이와 같이, 시작하는 지금 이 시간에는 보잘 것 없고 아무런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는 이미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장의 비유”에는 저절로 자라는 씨에 관한 작은 비유도 들어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6이하). 여기서도 비교 점을 눈앞에 꼭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이해 가능한 자연적 발전과정이 아니고, 더욱이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킨다는 사상은 아니다. 농부의 노동은 과연 마지못해서 할 정도의 극히 간결한 말로 기술되어 있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끝나있다. 오히려 땅이 ‘스스로’(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오직 그 자신의 능력으로만 오는 것이어서 인간은 다만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하나의 기적이다. 이 비유도 역시 노력에 대한 해답이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과거에 이미 성취되어 현재는 완전과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중간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Already) 개념과 미래적(not yet) 개념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양측면에 긴장관계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긴장관계는 베드로전후서에도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인 종말론적 긴장상태가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이미 그의 왕국에 거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의 왕국의 완전한 현현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때와 방식에 관하여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오직 그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만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완성의 정확한 본질은 여전히 비밀에 속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완성의 희망을 갖고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의 완성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와 미래의 연결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7. 나가는 말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입을 열어 제일 먼저 전했던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신약성경의 중심 주제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메시지는 창세전부터 세상 끝까지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창조와 세상 끝까지의 모든 경륜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의 왕국이 임하는 게 이스라엘 백성의 갈망이었다. 예수님의 사역초기에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주요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으니 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구약성경과 마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핵심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으며 특히 마태24:14절에서 예수님은 온 세상에 왕국의 복음이 전파되면 세상의 끝이 임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와 사도들과 바울을 비롯하여 수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뢰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하였으며 계속해서 완성을 향하여 확장, 발전 되어가고 있다. 아직 온전한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완성의 정확한 본질은 여전히 비밀에 속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때는 현재와 미래의 연결성 속에서 이해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 완성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신앙 또한 가져야 하겠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2:1-9의 말씀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림과 동시에 장치 임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면서 종말의 삶을 위한 권면으로서 거룩한 성도의 삶을 촉구하는 것이다. 또한 베드로전서 4:7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에 대하여 두 가지 양상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심판과 새롭고 의로운 질서의 도래이다. 베드로는 심판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주의 날과 심판의 날의 동의어가 되는 하나님 날의 도래는 타락된 현세의 질서를 완전하게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베드로는 옛 질서가 심판의 불로 파멸 될 것을 바라보면서 불연속성을 가장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파멸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후에는 옛 질서를 더럽힌 부패와 상관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이 올 것을 믿고 바라며 항상 말씀 안에서 깨어 기도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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