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즘 성경해석

[스크랩] 제 4원리 : 히브리 문장구조의 동사 원리를 따라 설교하라. 히브리 문장구조 가운데 동사로 나오는 단어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

하나님아들 2014. 3. 24. 11:55

제 4원리 히브리 문장구조의 동사 원리를 따라 설교하라.

 

히브리 문장구조 가운데 동사로 나오는 단어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오늘날 누가 설교를 잘할 수 있는가바로 그 사람은 히브리 사고에 입각해서 동사 성경해석 원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경 해석에 바르게 적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는 히브리 문장구조를 따라 동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원리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런 사람은 성경에서 동사를 빨리 찾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목회자라고 본다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본동사와 보조 동사를 찾아 그 해석의 경중을 설교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설교자가 된다만약 우리가 본동사와 보조 동사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어떤 동사든지 상관하지 않고 똑같은 의미로 취급하면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을 할 수도 있다이제 저자는 히브리 문장구조에서 강조되고 있는 동사에 대하여 어떻게 설교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 볼 것이다.

 

우리가 한글로 번역된 동사와 성경의 원어에 나타난 동사를 비교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인 것은 틀림없다하지만 원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동사 중심의 해석을 통해서 준비된 설교자가 될 수 있다만약 우리가 동사를 중요시하지 않고 다른 단어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 해석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 것이다어떤 본문일지라도 동사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해석하고 연구해야 바른 설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모두 다 동사를 중심으로 전체 글이 집중되어 있다구체적으로 신구약 성경의 글의 구성에서 히브리어는 어순이 동사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주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목회자가 많지 않다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절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이것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 태초에 창조하셨다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이것은 우리가 구약과 신약을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우리말 성경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번역한 것은 우리말의 어순으로 불가피한 일이지만,실제로는 이 해석이 동사의 중요성이 강조된 문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여기서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세상을 창조하신 자신의 행위에 동사를 문장의 처음에 배치하여 자신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창조하다는 동사보다는 창조하신 분과 창조하신 내용에 더 초점을 두고 성경을 해석하는 실수를 범했다이런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하면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교를 하게 된다그러므로 동사 중심 원리를 가지고 설교해야만 하나님의 의도를 바로 따르게 된다.

 

앞으로 우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동사의 원래 뜻을 정확하게 추적해서 설교를 작성해야 한다.그러면 우리가 어디에서 히브리어와 셀라어의 원어적인 의미를 찾을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저자가 도움을 준다면 이미 시중에 나와 사전들이 원어의 단어를 설명해 놓은 사전류와 원어에 탁원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써 놓은 주석들과 히브리 사고와 헬라 사고를 가지고 쓴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특히 현재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사전을 참고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필자는 이 책을 읽고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도록 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참고 서적을 적어 놓았다그렇지만 저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히브리 사고의 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동시에 히브리 사고의 성경 해석에 동사를 중심으로 주석한 책이 없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히브리 사고의 동사 원리를 가지고 접근해서 연구하고 책을 출판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참고 도서가 생길 것이라 확신하다.

여호수아네 개의 명령형 동사로 본 히브리 문장구조

A: 입성 건너라(아바르1:2) B: 정복 취하라(라카드6:20)

C: 분배 나누라(할라크13:7) D: 미래 섬기라(아바드22:5)

 

여호수아는 전체의 내용이 네 개의 동사로 이끌고 가는 히브리 문장구조의 패턴이 적용되고 있다저자는 여호수아가 네 동사만 알면 전체가 열리는 히브리 문장 구조의 단순한 패턴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한다여호수아는 네 개의 동사를 중심으로 가나안 입성하는 전 과정과 어떻게 그 땅을 정복하고 있는 구체적인 과정을 언급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대로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취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키아즘의 구조이다따라서 네 개의 동사만 알면 그 전체의 흐름을 알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히브리 문장구조로 기록되어 있다.저자는 여호수아 전체를 네 동사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키아즘 프리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물론 여호수아 전체를 가지고 각 장마다 히브리 사고에 입각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다시 하는 작업은 이 책에서는 다룰 수 없고 다시 한 권으로 책으로 히브리 문장구조를 통해서 자세하게 다룰 것을 약속한다.

 

여호수아서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만 보는 것은 크게 실수하는 것이 된다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든 후 그들로 하여금 땅을 정복하고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는데그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땅을 투기와 권세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을 일삼은 일을 하게 되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새로운 질서를 세워 신본주의의 삶의 샘플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네 개의 동사를 통해 세워나가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마음이고 의지이며 결단의 표현이다결국 하나님께서는 네 개의 동사의 개념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모형을 보여주신 것으로 모든 성도들의 삶의 가이드가 되는 책임에 틀림없다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그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고그 땅을 공평하게 나누고그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가는 것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결심이라는 사실이다.

 

 

건너라(1:2) : 입성(1:1-5:15)

 

첫 번째 동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라는 명령이 주어지는 동사이다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하기 위해서 사십 년의 광야 연단을 시키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입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다한편 여호수아서는 모세가 죽은 직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에 믿음으로 건너라는 말씀을 따라 건너가서 가나안 ᄄᆞᆼ에 입성하ᅟᅳᆫ 이야기를 기로가고 있다여호수아의 시작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되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이야기로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하나님의 사람은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하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히브리 문장구조의 패턴을 설명한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여호수아가 명령하고 그 말씀에 백성들이 순종하여 하나씩 정복해 나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선택받은 백성들이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는 성경이 바로 여호수아라는 사실이다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오늘도 이 땅을 정복하면서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원리를 따라 순종하여 정복하길 원하신다는 말씀을 가르치고자 기록한 말씀이다하나님은 먼저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내어 성의 형편을 살피라고 명령한다그 명령을 따라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택해서 여리고 성을 정탐하게 했고그 두 사람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생 라합을 만나게 되고 여리고 성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와 분위기를 전해 듣고 위기의 상황을 그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정탐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구원하겠다는 사인을 주고 받은 후 돌아오게 된다히브리서 기자는 기생 라합의 행동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정타꿈을 영접했다고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과 함께 명망 당하지 않았다고 히브리 문장구조의 키아즘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11:31)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너는 것조차 믿음으로 건널 때 물이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여리고 성에 적들이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상황 중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할례를 시행할 것을 명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상황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시행하는 도박을 하고 있다사실 하나님께서 할례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안전한 곳에서 시술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했다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급박한 환경을 알면서도 가장 위험한 적진 한 복판에서 가장 모험적인 순종을 요구했다는 점이다이스라엘은 죽음을 담보로 하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훈련을 마친 것이다.

 

 

취하라(6:20) : 정복(6:1-12:24)

 

주님의 두 번째 명령은 여리고 성을 취한 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특히 여리고를 취하는 사건에 대하여 히브리인들은 나타티 전쟁이라고 부른다이런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은 히브리 사고와 히브리 문장구조를 모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저자는 여기서 히브리 사람들이 말하는 나타티 전쟁이란 무슨 말인가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히브리어 나타티란 나탄에서 파생된 완료형 동사이다.히브리어 나타티의 원래 동사인 나탄은 하나님께서 내 손에 이미 넘겨주셨다는 뜻으로 이미 하나니께 봉헌된 전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료형 시제로 사라들끼리 서로 싸우는 과정 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가서 취하면 되는 전쟁이라는 것이다실제로 여호수아에서 우리가 나타티 전쟁의 개념을 정확히 모르면여호수아를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설교하고 정확히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하지만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주석이나 책을 의지하여 자기 생각을 덧붙여서 설교하는 것은 정말 겁 없이 도전하는 대단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여호와께 봉헌된 이상한 전쟁

 

실제로 가나안 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을 받기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고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다그러므로 가나안 ᄄᆞ으이 정복은 일반적인 전쟁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봉헌된 전쟁이라는 히브리 개념으로부터 시작해야 정확한 해석과 설교를 할 수 있다이런 구체적인 설명은 여호수아서만 가지고 키아즘 책을 출판할 때 가능하기에 지금은 개론적인 설명만 하고자 한다따라서 여리고 성을 취하는 사건을 여호와께서 직접 전쟁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약속을 따라 순종함으로 취하면 되는 이상한 전쟁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전쟁은 총과 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여호와의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전쟁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그러기 때문에 여리고 전쟁을 시작부터 도무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이런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해할 수 없었고더욱 여리고 사람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짓거리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를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는 마음도 굳어지고 행동도 굳어져 두 눈을 뜨고 성이 함락되고 도륙되는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던 설명이 바로 여리고 전쟁의 전말이다.

 

여호와께 봉헌된 전쟁즉 그 이상한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사람들이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닌 여호와께서 직접하시는 전쟁이기 때문에 전리품은 하나도 인간이 취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모두 봉헌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무도 전리품을 취하지 말고 모두 봉헌하라는 명령이었다아간은 이러한 여호와의 거룩한 봉헌 전쟁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물건이 탐이나서 숨겨둔 것이 화근이 되어 온 집안 식구들과 재산까지 돌무덤에덮여 죽는 본보기의 사건이 등장하는 것이다우리가 성경을 볼 때 우리의 상식과 눈높이로 보려고 하는 순간 인본주의 개념이 도입되고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를 곡해하는 실수를 종종 범한다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접근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거싱 히브리 사고의 시작이다여호수아의 가나안 땅의 정복은 여호와의 약속을 성최하는 관접으로부터 시작해야 바르게 설교할 수 있게 된다.

 

 

나누라(13:7) : 분배(13:1-21:45)

 

주님의 세 번째 명령은 가나안 땅을 취한 후에 그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라는 말씀이었다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공평하게 그 땅을 나누라고 명령하셨다우리가 이 세상에서 공평하게 무엇을 나누고자 할 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하나님께서 제시하셨다그것은 각 지파의 대표들이 나와서 각각의 땅을 나눈 후 제비를 뽑아 공평하게 분배하는 원칙을 세우셨다성경에 나오는 제비뽑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나 무엇을 공평하게 나눌 때혹은 하나님의 사람을 세울 때 쓰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방법이다.(14:2) 제비뽑기란 히브리어 고랄이란 단어로 그 뜻은 여호와께서 각 사람의 분수에 딱 맞게 주신다라는 의미이다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제비뽑아 땅을 차지할 때에 아무도 불평하거나 문제를 제기한 사라이 없었다.

 

물론 제비뽑는 방법이 여호와께서 제정한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 사람들도 제비뽑기를 선호하고 있다제비뽑기가 마치 오래 전부터 조상들이 써온 방법으로 알고 있지만사실은 성경에서 시작된 것이 제비뽑기의 역시앋성경에서 제비뽑기가 분쟁과 싸움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여호수아의 역사를 보아도 분쟁과 갈등을 없애는 이 땅의 가장 공평한 방법임을 증명하고 있다제비뽑기는 여리고 성에서 범죄자를 뽑을 때도 사용해서 다섯 번 뽑아서 하나님은 야간을 찾아내어 심판을 했다세월이 지나 요나가 하나님을 피하여 멀리 다시스로 도망갈 때 뱃사람들이 사용했던 방법도 역시 제비뽑기였다신약에 와서도 가룟 유다 대신에 한 명의 사도를 충원할 때도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출했다그 어떤 상황에서도 제비뽑기가 싸움을 없애는 가장 공평한 방법임을 증명했다저자는 오늘날 사회의 모든 문제도 제비뽑기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사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국회의원을 뽑는 것도 투표 대신 제비뽑기로 대체하면 국력의 낭비도 좌우파의 분열도 다 막을 수 있다하지만 이 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들끼리 해 먹으려고 양봏지 않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물론 교회의 많은 문제도 제비뽑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곳이 바로 여호수아서이다.

 

 

섬기라(22:5) : 미래(22:1-24:33)

 

마지막 네 번째 동사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가장 중요한 목적이 언급되어 있는데그것은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선언이다이것은 지금부터 미래의 모든 사람들이 순종해야할 마지막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선언이다사실 이 목적을 위해서 출애굽과 광야의 훈련과 가나안 땅의 정복과 땅의 분배가 필요했다는 사실이다주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잘 섬기느냐 아니면 섬기지 못하여 실패한 인생을 사는가에 대한 히브리 문장구조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결국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을 실패한 기록이 바로 구약성경 전체의 내용이다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 죄의 실패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바로 신약성경의 기록인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여호수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 미래는 여호와를 잘 섬기는 것에 달려있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히브리 문장구조의 동사 원리로 여호수아 전체를 네 개의 명령형 동사로 처리하는 것을 살펴보았다이오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사를 알면 히브리 문장구조가 보이고 본문에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 설교하고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린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이제 저자는 히브리 문장구조의 동사를 정복하기 위한 훈련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

 

 

히브리 문장구조 동사 설교 적용(5:15-21)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세울을 아끼라고 말한 것은 마치 우리가 물건을 돈을 주고 사듯이 세월을 돈을 주고 사라는 의미가 있다또한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는 단어에는 너는 성령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깨닫고실천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사도 바울이 여기서 이해하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는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을 의도하고 사용한 것이다따라서 성령 추안함을 어떤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생활고 삶에 관한 실천적인 문제이다여기서 성령충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레루스떼로 성령에 의하여 지배되어지는 상태를 말한다이 단어는 수동태이인칭복수형현재형명령형으로 되어 있다이것은 어떤 힘에 의해서 차고넘치고수량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충만이라는 단어 때문에 성령이 어떤 양적으로 차고 넘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다시 말하지만 성령충만이란 어떤 수와 양의 관계가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의하여 지배되어지는 상태를 말한다이것은 인본주의로 살지 말고 신본주의로 살라고 하는 요구이다그러므로 본문에서 성령 충만한 자의 살은 세 가지 동사의 살을 살게 된다는 설명이다찬송하며(19), 감사하며(20), 복종하라(21)이다만약 우리의 삶에서 찬송과 감사와 순종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술에 충만한(세상이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찬송하라(19)

성령 충만한 삶은 예배에 나타나는 신앙 고백을 내포하고 있다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내 영혼의 신앙 고백인 찬송이 넘쳐 나야 한다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기분이 좋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는 것과 흡사하다우리가 성령에 의해서 강한 지배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는 찬양이 흘러나온다우리가 의도적으로 찬양을 부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자기 심령의 기쁨이 입을 통해서 신앙으로 고백되어진다이런 모습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외적인 모습이다자신도 모르게 내적인 신앙의 상태가 외적으로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이것은 의도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자의 삶에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시편 150편에 제일 잘 나타난다. 1절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를 고백하고 있다여호와를 찬양하는 장소는 바로 성소와 궁창이다이것은 교회안과 교회 밖 어디에서나 찬양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특별히 궁창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은 우주론적인 장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여호와를 찬양함에 있어서 장소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언제 어디서나 누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우리의 입에서 찬양이 그치면 그것은 바로 우리 심령의 성령 충만한 삶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찬양을 부른 것은 그들의 입과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계속해서 2절은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여호와의 능하신 행동으로 인한 그분의 구속 사역 때문이다또 하나님 지극히 광대하심으로 나타나는 그 분의 창조 사역 때문이다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바로 그 분이 이루신 구속 사역과 창조 사역을 위해서 찬양해야 한다또한 3절은 찬양하는 도구들을 말씀하고 있다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도구들은 나팔(관악기), 타악기현악기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가능하다하지만 이런 찬양의 도구들이 예배의 질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질서는 깨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그동안 한국 교회에 악기 사용 문제로 인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 예배 가운데 악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일이다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예배 가운데 많은 악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문제를 삼아야 할 것은 악기 자체보다는 그것이 예배의 질서를 깨지는 않는지의 문제다실제로 원어 성경을 살펴보면 악기 사용에 있어 질서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많은 교회에서 드럼 사용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이것은 단순히 악기의 문제가 아니다다만 드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질서를 깨고 예배의 중심을 하나님에서 사람의 감정으로 몰아간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질서를 방해하지 않고 도리어 도움이 된다면 긍정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시편 기자는 예배를 드림에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예배 참여자가 찬양을 부를 때 기쁜 마음을 가지고 불어야 하며우리의 손을 가지고 박수 치며 찬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좀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손들고 춤추며 동적인 찬양을 하는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면 누가 찬양을 해야 하는가이 땅에 사는 모든 사라 즉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만약 사람들 중에 호흡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사탄을 찬양하거나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찬양하고 있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이 부르는 찬양을 강조하고 직접 작사작곡해서 찬양을 ksg이 보급했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본문을 강해하면서 찬양의 두 가지 기능을 찾았다하나는 수평적 기능이고 또 하나는 수직적 기능이다.수평적 기능은 서로 화답하며’ 드리는 찬양이다예배를 드리는 청중이 서로 화답하며 찬양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찬양을 통해서 서로 은혜를 나누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어떤 사람들은 찬양의 기능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강조한다이러한 찬양에 대한 잘못된 정의로 말미암아 찬양의 수평적 기능을 무시하기 때문에 사람을 위한 찬양은 찬양이 아니라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성경은 통하여 하나님은 분명히 찬양의 수평적 기능을 말씀하고 있고이것이 찬양의 본질 가운데 중요함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히브리 사고의 성경 해석을 하고 있다.

 

또한 찬양에는 수직적 기능이 있다이는 우리가 주께 노래하며로 주님께만 온전히 드리는 찬양이 있다.그렇다고 해서 인간적인 어떤 감정이나 행위가 배제된 것이 결코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시편 찬양은 이러한 수직적 기능과 수평적 기능이 서로 조화롭게 강조되고 있다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찬양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잘못된 찬양관을 가지고 있다면 고쳐야 마땅하다따라서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도 하나님을 찬양하고성도들과 서로 화답하는 찬양으로 많은 은혜를 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감사하라(20)

 

성경에 감사라는 단어는 영어로 ‘Thanks’이다이 감사라는 영어의 단어는 생각이라는 ‘Think’에서 나왔다따라서 진정한 감사는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신앙 고백이다.한편 감사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축복이라는 뜻이 있다따라서 감사와 축복은 다 같은 단어이다.진정한 성도의 감사의 뿌리는 생각(마음)과 위로부터 내리는 모든 축복에서 출발한다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에 나타나는 당연한 성령의 열매다우리가 감사할 때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어진다우리의 삶에 감사가 사라지면 그 때붙는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라 악이 충만하고 원망과 불평이 충만하게 된다따라서 감사는 성령 충만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측량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3. 복종하라(21)

 

성령 충만한 사람의 세 번째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다사도 바울은 그것을 복종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그러면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어떤 질서에 복종해야 하는가그것은 가정의 질서부터 언급하는데 부인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22). 성령이 임재하면 개인의 삶에 질서를 회복하는데 먼저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이것은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권유가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당연히 요구되어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즉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데 마치 주님께 하듯 복종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남편들로 아내를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사랑하는 열매가 나타나야 성령 충만한 증거라고 선언하고 있따자녀들 또한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우리의 자녀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부모의 말에 순응하는 질서가 회복된다고 아울러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정의 질서가 회복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서도 역시 회복되는데 종은 상전에게 복종하고상전을 아래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직장에 나가서는 눈가림 식으로 일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되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6:6). 상전들도 마찬가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하듯이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대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이것이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죄로 인해 깨어진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리 사고에서 동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저자는 히브리 문장 구조의 형태는 본문에 기록된 동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를 알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좋은 설교자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도 성경의 전문가가 되길 원한다면 바로 동사에 밑줄을 긋고 히브리 문장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길 바란다그러면 당신은 얼마 되지 않아 좋은 설교자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을 저자는 확신하고 있다아직까지 히브리 사고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이 되면이 책과 저자의 키아즘 프리칭을 계속해서 읽어서 자신의 것이 될 대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라이는 마치 포로로 잡혀간 신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출처 : 이대희 성서나라
글쓴이 : 양치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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