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즘 성경해석

[스크랩] (제3원리) 히브리 문장 구조의 접속사원리를 따라 설교하라

하나님아들 2014. 3. 24. 11:55

(제3원리) 히브리 문장 구조의 접속사원리를 따라 설교하라

 

접속사는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자신의 의도를 언어로 표현하실 때 접속사의 중요성에 그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접속사가 성경의 원문(헬라어, 혹은 히브리어)과 대조해서 정확히 번역이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또 접속사의 위치가 해석된 본문과 원문을 비교했을 때, 정확한 자리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접속사로 본문이 기록되었는지에 따라 해석에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귀납법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할 때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해석하고 있다.

 

히브리 문장구조의 접속사 ‘그러므로, (마28:18-20)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접속사에 히브리 문장구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경 해석의 원리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히브리 문장구조에 드러난 성경해석의 원리를 따라 신구약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먼저 성경에서 어떤 접속사 - 여기서는 인과 접속사 - 가 나올 때 히브리 사고를 따라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히브리 문장구조의 성경 해석의 원리다. 다음 도표를 보면 인과 접속사의 세가지 원리를 볼 수 있다.

 (도표)                           접속사

                               (그러므로)

       A  (주권선포) (18절)                      B  (보증) (20절)    

             (원인)                                   (결과)

                           C (사역) (19-20절)

 

히브리 문장구조의 접속사의 중요성

 

히브리 문장구조의 패턴을 몰랐을 때는 주님이 말씀하신 대위임 명령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설교자들이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해석의 원리를 빼먹는 실수를 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접속사가 나오는 부분만 본문으로 잡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교를 했던 잘못이다. 히브리 문장구조의 중요성을 모르면 두가지 정도의 잘못된 습관적인 해석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첫째, 히브리 문장구조의 원리로 성경 해석의 방법 중에 하나가 본문의 시작과 끝을 접속사의 연결로 이해하여 본문을 자기 생각대로 구분하는 잘못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대위임 명령이 나오는 본문을 이해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접속사의 뒷부분이 결론적인 말씀이라 생각하고 접속사의 앞부분의 말씀은 통상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쉽게 앞부분은 무시하고 접속사인 ‘그러므로’ 다음에 나오는 것을 중심으로 해석한다. 

 

둘째, 접속사를 해석할 때 앞부분의 결론적인 강조를 위해서 접속사를 사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해석하여, 오히려 하나님께서 본문을 기록하신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석을 해 온 잘못이다. 이 결과는 지금까지 접속사의 속성을 언어학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접속사는 히브리 문학에서 문장의 구조상 그 중요성이 너무도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학적인 습관 때문에 접속사의 히브리 문장을 우습게 이해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1.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선포 (마 28:16-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8절)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역에 대한 도전도 아니고, 다시 오신다는 보증에 대한 주님의 약속도 아니고, 주님께서 사역과 보증을 하시기 전에 우주적 주권에 대한 선포에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자신의 모든 우주적 주권을 이양하셨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접속사 그러므로 이전에 선언하신 말씀으로 우주적 주권을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으로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된 직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이미 이양했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때로부터, 이제 우주적 주권을 다 가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라고 선언하는 자리로 연결되는 접속사이기 때문에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의 우주적 주권에 의한 이 약속은 주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직접 나를 보내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권능을 행할 수 있도록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과 접속사를 등장시키신 주님의 의도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감당하던 대위임 명령의 사명을 맡기기 전에 먼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원인을 약속하고 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원인은 바로 주님이 주권을 가지시고 모든 권세를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 때문이다.

그러므로 접속사 뒤에 결과로 나오는 19-20절의 사역에 해당되는 말씀들은 접속사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주권에 대한 약속을 원인으로 삼고 있다. 접속사 앞부분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주권적인 약속의 힘이 백(100)에 해당된다고 한다면, 접속사 뒷부분에서 제자들이 그 약속에 근거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백(100)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능력 있게 사역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2. 사역에 관한 약속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19-20a절)

 

인과 접속사 ‘그러므로’ 의 앞부분이 주권에 대한 설명으로 원인(A)이라면, 뒷부분은 우리에게 주신 대위임 명령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사역에 대한 설명으로 결과(B)가 된다. 이는 주님께서 자신이 가진 우주적 주권에 대한 약속으로부터 우리가 사역을 할 수 있는 힘의 근거를 얻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더 확증이 되는 보증으로 확고히 해준다.

특별히 주님의 대위임 명령을 순종하는 사역에 관한 부분은 접속사에 해당하는 성경해석의 원리가 아니고 히브리 문장구조 중에 동사에 대한 해석의 원리를 따라 설명해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사역을 언급하실 때 네 개의 명령형 동사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개의 명령형 동사 해석

             A 가라         B 세례를 주라

              ↗          ↘                    

                                                

                                                

              ↖         ↙                     

   D 제자 삼으라

                           C 지키도록 가르치라

 

히브리 문장구조로 보면 주님이 사역을 언급하는 문장에서 네 개의 명령형 동사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한글 성경으로 보면 네 개의 명령형 동사가 순차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각각의 동사의 무게를 동이하게 보고 해석하는 경향이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네 개의 동사를 같은 무게로 해석하는 것은 히브리 문장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이다. 히브리 문장구조에서 네 개의 동사 중에 세 개의 동사는 헬라어 분사명령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다른 한 개의 동사와의 차이이다. 특별히 헬라어에서 분사형 동사는 영어의 진행형에 해당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계속해서 가야하고(Going), 세례를 주어야 하고(Baptizing), 그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르쳐(Teachinh)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본문이다. 히브리사고에서 명령형 동사의 해석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히브리 문장구조에 나타난 명령형 동사는 순종할 것을 전제하고 기록된 히브리 문장이다.

순종을 전제로 하나님께서 약속한 말씀에 해당한다. 이 명령형 동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순간부터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약속이 선포된 말씀이기 때문에 그 능력은 언제나 진행되고 있고 불변의 진리임은 틀림없지만, 이 명령형 동사는 순종할 것을 전제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특이한 약속의 말씀이다.

 

한 개의 목적 명령형 동사 해석

주님이 우리에게 순환 명령으로 마지막 날까지 계속 순종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제자 삼으라’는 목적 명령을 이루기 위함이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다른 사람을 제자 삼기 위해 가서 지속적으로 섬겨야 하고, 세례를 주어야 하며,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제자를 재생산해야 한다는 책임을 주신 것이다. 이 순환 명령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된다는 것이 히브리 문장구조를 통해서 드러나는 원리대로 성경을 해석한 결과다. 이런 위대한 사역이 계속될 수 있도록 주님은 먼저 자신의 주권을 선포하셨고 우리에게 권세를 위임하셨다. 그리고 나서 사역을 위한 순환 명령의 약속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목적은  바로 제자 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목적 명령인 ‘제자 삼으라’에 모든 것이 집중하게 된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왜 가야 하는가의 대답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 위해서 순종함으로 가야 한다. 또한 왜 우리가 세례를 주어야 하는가의 대답도 제자 삼기 위함이다. 우리가 왜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목적명령인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기위해 삶의 목적이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하나님의 보증의 약속(마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확증해주시는 보증이며 축복의 약속이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선언적 약속이다. 마태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예수님의 탄생은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마태복음은 그 이름이 ‘임마누엘’ 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마1:23).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역시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으로 마무리하셨다.

주님은 사역이 평탄할 때는 물론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사역에 힘과 능력을 제공해 주시겠다는 영원한 약속을 하셨다.

 

히브리 문장구조의 접속사 ‘이는, 왜냐하면’ (로마서 11:36절)

                                                                                                                                                               

‘호티’(ὄτί)는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접속사로 ‘이는, 왜냐하면’으로 번역한다.

본 절의 ‘호티’는 로마서의 전체적인 모든 내용을 결론적으로 요약하는 접속사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접속사중의 하나다.

(도표)

                                                              아멘!

                       이는

로마서 1:1 - 11:35절                                          

                       ὄτί

                              (Ⅰ) 주에게서     주에게로       주님께 영광이

                                   나오고       돌아감이라     세세에 있을

                                                 (Ⅲ)         지어다

                                   (Ⅱ) 주로 말미암고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기독교 전체에 해당하는 교리의 핵심을 한 절로 표현한다면 바로 36절을 말하기 위해서 긴 설교의 설명을 했다고 반증하는 단어가 바로 접속사 ‘호티’ 이다. 헬라어의 접속사 ‘호티’ 는 ‘왜냐하면 - - 때문이다’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로마서 1장에서 11장 마지막 절까지 길게 설교한 그 이유는 바로 본 절을 결론으로 말하려고 지금까지 설명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ὄτί), 만물이 ①주에게서 나오고 ②주로 말미암고 ③주에게로 돌아감이라 ④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사도 바울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 시작해서, 주님으로 계속되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결론적인 선안을 하고난 후 그냥 다음 글을 시작하지 않고 갑자기 아멘! 하고 본 절 안에 자신의 신앙고백 형태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의 아멘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울은 자신이 접속사 원리를 인용하여 본 절을 선포하면서 그 누구라도 다른 인간의 소리를 그치고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종결적인 기록으로 끝내고 있다.

 

주권사상과 영광사상 선포

 

사도바울이 접속사 ‘이는’을 통해 지금까지 교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는 바로 주님만 가지고 있는 주권 사상과 주님만 받을 수 있는 영광 사상을 말하고자 함이다. 바울이 우리의 신앙고백과 함께 주님만 가질 수 있는 주권 사상은 세 가지를 선포하고 있다.

 

“이는 만물이 ①주에게서 나오고         : 기원(시작, 과거)

             ②주로 말미암고           : 집행(과정, 현재)

             ③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종결(결론, 미래)

 

또한 주님만 받을 수 있는 영광사상에 대한 고백은 다음과 같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라는 선언이다.

 

아멘”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조건 아멘! 만 말하고 내 입을 닫으라는 선언이다.

 

칼빈도 사도바울이 모든 민물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두가지 주권사상과 영광사상을 신앙으로 고백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권사상과 영광사상이 모든 인간이 고백해야할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려야 한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바로 주님만 가지고 있는 주권사상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주님만 받으실 영광을 그분께 돌리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지금 우리이다. 우리가 접속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교하는지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주기도문에 나타난 접속사

 

마태복음 6장 9-13절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보면, 개역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대개’ 라는 이상하게 번역된 단어가 나오지만, 새로운 개역 개정에는 이 단어를 없애고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았다. 이 단어는 초창기에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중국 번역의 영향을 받아 주기도문의 접속사로 처리된 단어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대개’ 라는 단어의 뜻은 ‘대략 이와 같습니다’ 로 주기도문의 마지막 접속사로 보기에 아주 미흡한 번역이다. 이것은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접속사를 잘못 처리한 결과이다. 사실은 이 단어도 위에서 설명한 헬라어 ‘호티’ 로 접속사를 처리하고 있는 중요한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이상한 의미의 번역으로 접속사의 의미를 왜곡하더니, 이제는 아예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고 생략해 버리는 더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이 접속사가 결론을 유도하는 히브리 문장구조에서 언급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지막 부분의 접속사를 해석하지 않고 생략하면, 위에서 주기도문의 많은 내용의 고백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마무리 멘트 정도의 기도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마태가 주기도문의 모든 신앙 고백의 내용을 결론적으로 이끄는 접속사로 처리 할 때는 그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을 아는 것이 히브리 문장구조에서 찾은 원리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도한 내용의 모든 것의 결론으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고백함으로 마감하는 것이 본문의 접속사 원리이다.

우리가 주기도문 전체의 내용이 중요성을 가지느냐, 아니면 가볍게 지나가고 마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이 접속사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히브리 문장구조의 접속사 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히브리 문장구조의 다른 접속사

 

마지막으로 앞과 뒤의 내용이 완전히 반대적인 의미로 대조되는 접속사가 있다.

앞 내용과 뒷 내용을 비교하여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의 차

출처 : 이대희 성서나라
글쓴이 : 양치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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