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은 귀신들림인가?
기독교 치유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정신병(psychoses), 신경증 중 특히 히스테리적 성향이 강한 병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정신병 중에는 정신분열증, 정신분열형 장애, 단기 정신병적 장애, 기분장애, 망상장애 등이 귀신들림으로 오해받고 있고, 신경증적 장애 중에는 신체형장애, 해리성장애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이런 경우 물론 적절한 치료가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래도 치료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병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정신병 중에 특히 정신분열증을 중심으로 정신병이 귀신들림이 아님을 고찰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한 농촌교회의 00 집사님이 심한 우울증에 빠져 병원에 오게 되었다. 그녀는 이도 저도 안될 때에만 입원하는 분이었다. 그녀의 증상은 어떤 때는 잠을 두 세시간만 자도 피곤치 않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신바람이 나며, 한꺼번에 많은 일에 끼어 들어 무척 바쁘게 돌아간다. 말이 많아지고 자신도 만만하여 못하는 게 없다. 심하면 말다툼도 하지만 워낙 능력이 있어 보이니까 주위 사람들이 속수무책이다. 결국 일의 끝마무리를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결과엔 관심이 없으니까 상관치 않는다. 이럴 때는 거의 병원을 찾아 온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녀 스스로 느끼기에도 신바람이 났고 또 교회에서도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사람으로 칭찬해주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도 열심이요, 교회 일도 열심이요, 성경 보는 일, 집안 일, 동네 일, 모든 일에 열심이지만 전혀 피곤해 하지 않으니, 이건 정말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독수리 같이....’라는 찬송가 그대로인 셈이다. 게다가 목사님의 칭찬은 그녀를 더욱 더 살맛 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몇 개월 지속되다가 서서히 시들어 가게 된다. 그러면 잠이 많아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말도 적어지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진다. 밥맛도 없고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진다. 그러니 새벽기도도 못나가고 교회 일은 물론이요 집안 일도 하기가 싫어진다. 늘 누워지내며 세수조차 하려들지를 않으니 시험에 들린 꼴을 하게 된다. 교인들이 쑥덕거리고 목사님마저 마귀 시험에 빠져서 그렇다며 회개하라고 한다. 교회에 나갈 면목도 없으려니와 도저히 귀찮아서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밥도 제대로 안 먹으니 사람 꼴이 말이 아니게 변한다. 주변에서 기도도 하고 안수기도도 받고 해보지만 헤어날 길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집안 식구들은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고 싶어하지만 병원에 간다는 것이 꼭 죄를 짓는 것 같고 믿음이 부족한 것을 표시 내는 것 같아서 선뜻 내키지를 않는다. 또 목사님마저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하니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결국 죄인처럼 남의 눈을 피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녀의 과거력 상 이런 식의 증상이 서너 번 반복되었다.
또 어느 화창한 다른 봄날, 오랜 세월동안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환청에 시달려온 0씨가 병원에 끌려오다시피 왔다. 그에 의하면 웬 남자의 목소리가 늘 귓가에서 맴돈다고 했다. 그래서 한 동안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여 결국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증상이 호전되면 부모들이 강제퇴원을 시켜서 안수기도나 금식기도처로 보내곤 하였다. 그곳에서 병이 악화되면 집안식구들이 견딜 수가 없게 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조금 나아지면 또 그렇게 퇴원하였다. 그러기를 몇 년 동안 계속하였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00 집사님의 병을 기분장애 중 조울증이라고 하고, 0씨와 같은 병은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떤 교인들은 마귀가 들어서 생긴 병이라고 믿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병 환자들은 현실감을 상실하고 있어 이해가 안되니 말이다. 자기가 구세주라 하기도 하고 수천 개의 우주선이 하늘에 떠서 자기를 감시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위대한 인물이라서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주로 혼자 가만히 있기 일쑤이고 또 무슨 제사의식을 치르는 듯한 행동을 반복해 보이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씨익 웃기도 하는 등, 우리들의 상식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날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면 그러려니 생각하겠지만, 멀쩡히 잘 지내다가 서서히 또는 갑자기 사람이 변하고 마니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 그렇지, 집안에 불길한 일이 벌어지더니 저 애가 부정을 탄 게 틀림없어!”, “실연을 당하더니, 또는 군대에 가서 모진 기합을 받고 나더니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저렇게 됐어!”, “마귀가 들어가 저 사람을 못쓰게 만들었구나!” 등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오간다. 그 중의 하나, 귀신들린 병이라는 생각을 부모나 친척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당들도 그렇고 몇몇 교인들도 그렇다고들 한다. 그뿐인가 성경엔 귀신들린 얘기가 적어도 여섯 번 이상 나온다. 또 항간에 듣기로는 안수기도를 받고 나서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도 한다. 그런데도 정신과 의사들은 ‘마귀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냐? 그 모양이 귀신들린 꼴인데 귀신 쫓는 일부터 해야지! 그러니까 푸닥거리 하고, 안수기도 받고, 금식기도 가야 병이 낫는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귀신병이냐? 아니냐?’하는 혼란 속에서 00 집사님과 0씨의 치료는 지연되고 말았다.
과연 정신병은 귀신들림의 한 형태일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귀신들림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의 범위가 전문적으로 볼 때 너무 넓기 때문이다. 흔히 귀신들림이라고 확신하는 경우를 몇 가지로 분류해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의 임상 예와 같은 주요정신병 즉 정신분열증과 조울증(기분장애)인 경우, 둘째는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면서도 짧은 기간 내에 말끔히 회복되는 정신병인 정신분열형 장애와 단기 정신병적 장애(단기 반응성 정신병)인 경우, 셋째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드라마틱하게 호전되는 히스테리(최근에는 이 병명은 쓰지 않고, 신체형장애와 해리성장애로 부른다)등 이런 것들이 흔히 귀신들림으로 오해받는 병명들이다. 기독교 치유가 이 세 범주에 속하는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개괄해 보면, 첫 번째 범주에 속하는 환자들에게는 거의 모두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치료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두 번 째 경우엔 안수기도나 축사행위의 시점이 그 병의 회복시기와 맞아 떨어질 때 마치 종교의 힘으로 나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세 번째가 가장 극적인 경우인데 이런 환자들은 안수기도 즉시 안보이던 눈이 보인다든지, 걷지 못하던 다리가 힘을 얻어 걷는다든지 하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1. 귀신은 있는가?
고대 이스라엘 및 희랍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해서 행동한다고들 믿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가 선하면 선행을 하고 악하면 악행을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이 악하고 불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했다면 그가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고 알고 결심하는 힘들, 즉 의식(의지)이라는 것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이십세기 초에 무너져버렸다. 의식(의지)은 강하고 바른 것이 아니며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무의식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의식이란, 말 그대로 의식할 수 없는 영역을 일컫는 단어이다. 무의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하며, 우리를 벗어나 있고,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처럼 의식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울의 고백처럼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우리들은 절망스럽게도 우리들의 뜻(의지)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우리의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력,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서 괴력을 우리의 의지에 내어 뻗는 힘의 존재들을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기까지 사람들은 장장 1900여년을 소모했지만, 2000여년 전 예수님은 이미 그런 것들에 대해 단호하게 영적 세력들이라고 표현하면서, 깨끗치 못한 영들, 악한 영들, 귀신들이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고 선포했다. 그러고 보면 귀신들은 현대적 언어로 말해서 부정적인 무의식들 속에 섞여 있는 존재라고 본다면 귀신은 있는 것이다. 물론 무의식이 곧 귀신들이라고 단순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귀신들과 귀신들림이 있다고 할 때 다음 물음에 이른다.
2. 정신병은 귀신들림인가?
밀라드 살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정신병은 귀신들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 귀신들린 사람들은 항상 예수와 그 제자들에게 강하게 반항했다. 그들은 예수와의 관계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마 8:29). 그러나 정신병의 경우는 신앙심이 열렬하다. 하지만 이런 신앙심은 환상적이며 현실을 왜곡하게 되어 예수이거나 백만장자이거나 큰 권력자처럼 자기를 믿게 된다. 이들은 예수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이다.
둘째, 마귀들은 분리된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항상 자기가 거할 몸을 구한다(마 8:31). 그러므로 마귀들은 사람들과 연합하기를 원하는 반면 정신병 환자들은 사람들을 피하고 사회에서 스스로 격리되어 혼자 지내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실감을 상실하고 내면적인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셋째, 마귀는 그들 자신을 알고 있고 예수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남과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병자는 현실에서 그런 대상을 상실해 버린다. 그들이 듣는 것은 환청일 뿐이다.
넷째, 귀신들림은 빨리 치료된다. 예수님이 영적인 방법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을 때 치유는 곧 일어났다. 그러나 정신병은 0씨의 경우에서처럼 안수기도나 금식으로 오히려 악화된다. 그러므로 다른 치료방법이 필요하며 대개는 치료기간도 오랜 시일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귀신들림이란 무엇일까?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즉 그것은 악마숭배자, 심령주의자 기타 이런 행위에 말려 들어간 사람들일 것이라고.
그래도 의문은 계속 된다. 그렇다면 정신병은 현대의학으로만 치료가 가능한가? 예수님의 사역 중 치유사역은 무의미한 것인가?
3. 예수님의 치유와 정신의학의 만남
예를 들어 정신분열증에 있어서 정신의학이 그 원인을 확실히 알고 있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여러 요인들, 이를테면 유전적 소인, 병리․생리적 요소, 가족과 사회를 포함한 환경적 요소 및 문화적 요소들 모두에 관심을 갖고 그 한 인격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정신의학적인 치료는 시작된다. 정신의학은 병과 만날 뿐만 아니라 그 병을 갖고 있는 인격과도 만나기를 노력한다. 약을 쓰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가족과 환경을 가급적 많이 알기를 바란다. 인격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가졌던 관심은 단순히 영혼구원만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인간의 몸을 포함한 인간 전체였다. 그러므로 정신병도 그의 관심사 중의 하나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안수기도나 금식 같은 종교적 행위 역시 정신병 치료에 유효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대단히 큰 오류를 범하고 만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치료의 방법을 열거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인 치료방법, 종교적인 치료방법, 주술적인 치료방법 하면서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으로 몰아세운다. 이 방법이 효과가 없으면 저 방법을 써보고 저 방법이 무효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돌아다닌다. 아니면 이 방법은 그르고 저 방법이 옳다고 비교하면서 배척한다. 안수기도만 옳고 정신의학적 치료는 그른 것이 되고 또 그 반대로도 이야기한다. 이런 생각들이 큰 오류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기적은 적어도 어떤 병의 치료방법을 보여준 사건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전체에 대한 관심사, 즉 우리들에 대한 사랑의 총체로서의 기적이었지 ‘금 나와라 뚝딱’하는 요술 방망이는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구세주였지 마술사는 아닌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심성(心性)들은 마술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착각한다.
정신의학이 병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인격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그 치료방법을 모색하는 학문이라면, 예수님은 그런 관점을 모두 포함한 인간 구원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다. 그것이 곧 사랑이었고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종교의 적이 아니다. 종교는 오히려 과학의 생명력이다.
'치료!! 치유!!! 신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신질환과 기독교 치유 (0) | 2014.01.22 |
---|---|
[스크랩] 인격치료 (0) | 2014.01.22 |
[스크랩] 성서적 용서와 심리치료 (0) | 2014.01.22 |
[스크랩] 성령의 임재하심과 치유와 회복 (0) | 2013.12.10 |
[스크랩] 성경속의 기적은 이럴때 일어났다 (0) | 201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