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 에베소서

[스크랩] 에베소서 강해 (2) / 엡 1:2 - 3

하나님아들 2014. 1. 2. 10:23
에베소서 강해 (2) / 엡 1:2 - 3
: 전준식 목사



에베소서 1장 2절 - 3절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신분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가르켜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왜 우리가 성자입니까? 우리가 성자라고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착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성자라고 부름을 받는 이유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나를 양자 삼으셔서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누구도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무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누구에게도 무시당하며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때 즉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신분증을 꺼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라는 신분증을 꺼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보여주십시오. 나는 이런 신분이다. 나는 하늘의 사람이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놀다가 저녁이 되면 각자의 입으로 가듯이 내가 비록 여기서 너처럼 좋은 것 가지고 살지 못해도 나는 때가 되면 우리 집 하늘나라에 간다고 말하십시오. 이것이 성도됨의 신분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받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2절 그것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복을 말씀하실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인사 표현은 그냥 인사차 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바울이 하는 인사말을 보십시오. 은혜와 평강입니다. 평강과 은혜가 아니라 은혜와 평강입니다. 여기에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시작입니다. 그리고 평강은 믿음의 결론입니다. 은혜는 믿음의 진원지입니다. 평강은 믿음이 가지는 바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평강이 있어야 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 후에 광야에서 목이 말랐습니다. 때마침 마라라는 곳에 이르니 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은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평강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들어 쓴 물에 담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쓴 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족했습니다. 평강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평강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은혜 때문에 평강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주는 흑암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흑암이 깊은 곳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자 빛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찾으시기 전에 우리의 삶은 늘 쓴 맛만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은혜로 간섭하시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늘 어두움이었고 혼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나서부터 우리의 삶은 단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이 빛으로 말미암아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기쁨이 넘치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은혜는 평강을 가져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69장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평강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늘에서 옵니다. 돈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건강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무기가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소유한 사람은 가정에서 은혜로 남편을 대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남편과 평화하십니까? 아내와 평화 하십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먼저 아내에게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보십시오. 남편에게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보십시오. 그러면 부부사이가 화평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성도들 가정 모두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를 먼저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평강이 임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늘 평화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게 됩니까? -- 3절 특별히 우리는 3절로 들어서면서 바울이 흥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한글 성경에는 바울의 이런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3절부터 14절까지 성경 원문을 보면 마침표가 없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숨도 쉬지 않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장을 끝내기 위하여 자신의 말을 중단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바울은 숨도 쉬지않고 거침없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말하는데 너무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감격스런 마음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전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흥분한 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주체하지를 못합니다. 말을 하는데 매듭을 짓지 못합니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자신에게 부어주신 은혜의 주님을 쉴틈 없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노처녀와 노총각이 결혼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흥분하는 것입니다. 앉았다 하면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흥분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늘 흥분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눈뜨면 하나님의 은혜요 앉으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자기 위해서 누우면 꿈에서라도 주님과 대화나누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해야하는 부담 때문에 자면서도 주님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일 본문을 꿈에서라도 해석해 주셔서 새벽에 잘 전하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꿈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면 흥분한 바울이 제일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3절을 보면 그것은 찬송하면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송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고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만이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 보다 더 중요 한 것이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마음에 평강이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는 사람은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입에서 찬송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는 찬송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 없이는 찬송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찬양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은혜가 넘치는 교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화려하고 멋져도 은혜가 넘치지 않으면 찬양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넘치면 그 모임은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은혜가 사라지면 은혜가 넘치는 사람이 부르는 찬양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듣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은혜가 넘쳐 늘 찬양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설겆지 하시면서 찬송하십시오. 길을 가면서 찬송하십시오. 차를 마시면서 찬양하십시오. 내가 거룩한 성도로 부르신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십시오. 이렇게 찬양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3절 다시 한번 그렇습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찬양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복을 받기 위한 순서입니다. 여러분께서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찬송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더욱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찬송해봐라 그러면 내가 복을 줄 것이다가 아닙니다.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또 찬미함으로 이미 주님께서 주시기로 계획한 모든 복을 더욱 더 많이 받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신령한 복이란 무슨 복입니까? 신령한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은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정욕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이라는 것은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하늘에 속한 복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인이나 악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불교인이나 모두에게 내리는 하늘의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 공기, 햇빛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을 신령한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반적인 복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잘 버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축복입니다. 건강한 것도 축복입니다. 자식 잘되는 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우리는 신령한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 밖에서도 올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의기소침해 하지 마십시오. 어떤 독선적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햇빛과 공기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의 일반적인 복을 받은 사람은 이 땅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천국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출세하는 삶을 산다할지라도 그들은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처럼 동일하게 3끼를 먹는 사람에 불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잘 때에는 우리처럼 이불 한 채만 덮고 자는 사람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 하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입니다.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복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말합니다. 오직 구원받은 성도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에게 내리는 복입니다. 성령께서 내리시는 복입니다. 그 복은 이 세상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리는 복인 것입니다. 이 복은 얼마나 큰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아니 이런 축복을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숙되어 가면서 발견해 나갈 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일반적인 복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도 받은 사람입니다. 일반적인 복을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더욱 감사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더욱 감사한 것입니다. 아무에게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에게만 주는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복은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도들만이 받는 복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시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신령한 축복으로 인하여 우리가 자부심을 갖기 원합니다. 긍지를 가지십시오. 당당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복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산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늘나라를 가는 사람이기에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못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남들처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주눅들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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