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3) / 엡 1:4 - 6
: 전준식 목사
에베소서 1장 4절 - 6절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께서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늘 새해에 가졌던 마음이 쉽게 무너져서 자신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 만나는 게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싶은 마음이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자기 가운데 있는 알고 흥분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늘 흥분하며 사는 삶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성도가 된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 권사가 된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흥분하는 사람은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는 마음이 넘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며 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마시고 진정으로 목숨걸어야 할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분한 바울은 주님이 주신 감사와 감격으로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복 때문에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하여 4-14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4-14절을 분석해 보기를 원합니다. 4-14절까지는 3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7-12까지에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신령한 복을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13-14까지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하시는 신령한 복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신령한 복과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복을 말씀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성령께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시는 신령한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3번에 걸쳐서 구체적인 신령한 복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4절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말씀은 비단 오늘 본문에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 이 선택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선택하심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선택에 대한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심에 대한 말씀이 잘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런 사람이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저런 사람이 선택을 받았다면 나는 열 번도 넘게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에서입니다. 에서는 하나님께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야곱 같은 내 동생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께 당연히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이지요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요 예배 때 나누는 호세아서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택은 대단합니다. 고멜 같은 여자를 하나님은 택하십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선택하고 사랑합니다. 고멜 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끈질기게 택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찜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 이 일로 인하여 감사하고 우리 안에 자긍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자긍심이 우리 안에 겸손한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택함 받은 시기는 내가 지식이 있어 분별할 때가 아니라 창세 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다 보면 엉뚱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질문 가운데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칼빈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칼빈은 이 질문에 속이 상했는지 너 같은 사람을 위해서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명확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지옥을 만들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계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어떤 누구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울의 뒤를 이을 왕을 찾아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새의 집에는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은 첫째 아들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에게 묻습니다. 이제 다른 아들이 없습니까? 그 때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말합니다. 양을 지키는 막내 아들 하나 있습니다. 사무엘이 말합니다. 그 아들을 데려오십시오. 막내 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나는 식사를 하지 않겠습니다. 사무엘과 아버지 이새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집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충실히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형들이 와서 다윗을 집으로 데려 갑니다. 집에 도착한 다윗에게 사무엘은 기름을 붓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도 모른 채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이 언제 믿어집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사실이 믿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과거가 해석이 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그토록 마음이 아팠는지 알게 됩니다. 왜 나에게 어려운 시간들이 많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한결 같이 고백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셨구나!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내가 기도의 능력을 알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성령의 중보를 하게 하셨구나..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가 해석되어지면서 우리는 창세 전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창세 전부터 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4절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나가면 온갖 도처에 죄의 지뢰가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도처에 깔린 지뢰가 터지면서 우리 인생이 큰 오점을 남기기도 합니다. 상처가 남습니다. 괴롭습니다. 이 상처만 치유되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상처를 없애지 못해서 평생을 기를 피지 못하고 눌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맑아서 우리가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온통 죄 짓고 사는 세상이 정당화 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이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뒷 봉투 주고받으며 사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뒷 봉투 받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거룩하고 흠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이런 자긍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소중하기 때문에 거룩하고 흠 없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흠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거룩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흠 많은 존재로 사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보혈로 샤워를 마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먼지를 씻겨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발을 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끓고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먼지 많은 나의 발을 내어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내 발에 먼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발을 주님 앞으로 내어 드리십시오. 내 발에 먼지를 숨기면 숨길수록 먼지는 떨어지지 아니하고 쌓여만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이 무너지고 내 삶에 흠이 생겼을 때 주님이 씻기시는 은혜로 다시 흠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해가 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우리의 삶이 눈부신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5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부터 택하신 후에 때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들 삼아 주셨습니다. 양자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호적이 바뀐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 가족은 아들이 두 분과 딸 두 분이 계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들 한 분도 페결핵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아들은 6.25 때 인민군에게 학살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님 가정에 아들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저의 외 할머님은 큰집에 작은 아들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양자로 들이셨습니다. 그 아들은 이제 호적이 바뀐 것입니다. 호적이 바뀌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들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양자가 되면서 우리 어머니 집에 재산이 모두 이 아들에게로 상속 된 것입니다. 이 아들은 아무 한일 없이 어머어마한 재산이 자기 앞으로 상속 된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양자가 되면 신분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6절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 한일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으시고 자신의 모든 상속권을 우리에게 다 넘기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양자 된 아들은 양자로 들어오기 전에 살던 자기 집보다 새로운 집에 더 관심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양자로 들어온 집을 섬겨야 합니다. 양자 된 집안에 큰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 집은 정 반대였습니다. 어머니 집에 있는 재산을 몽땅 자기 것으로 챙기고 그 재산을 낭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 분은 우리 어머니 가정의 재산을 탕진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분은 값없이 주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몰랐기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찬양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이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무상으로 받았습니다. 다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그렇게 사무치도록 내 마음에 밀려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택함의 과정을 우리가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죄 용서의 선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 아니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양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지키고 싶어하고 이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속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주신 것이 아니라 태초 전부터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상속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복음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이를 남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날마다 듣는 것이 복음을 지키는 것이요 선교라는 것이 곧 복음의 이를 남기는 것입니다.
: 전준식 목사
에베소서 1장 4절 - 6절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께서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늘 새해에 가졌던 마음이 쉽게 무너져서 자신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 만나는 게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싶은 마음이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자기 가운데 있는 알고 흥분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늘 흥분하며 사는 삶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성도가 된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 권사가 된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흥분하는 사람은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는 마음이 넘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며 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마시고 진정으로 목숨걸어야 할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분한 바울은 주님이 주신 감사와 감격으로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복 때문에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하여 4-14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4-14절을 분석해 보기를 원합니다. 4-14절까지는 3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7-12까지에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신령한 복을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13-14까지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하시는 신령한 복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신령한 복과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복을 말씀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성령께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시는 신령한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3번에 걸쳐서 구체적인 신령한 복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4절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말씀은 비단 오늘 본문에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 이 선택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선택하심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선택에 대한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심에 대한 말씀이 잘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런 사람이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저런 사람이 선택을 받았다면 나는 열 번도 넘게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에서입니다. 에서는 하나님께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야곱 같은 내 동생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께 당연히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이지요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요 예배 때 나누는 호세아서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택은 대단합니다. 고멜 같은 여자를 하나님은 택하십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선택하고 사랑합니다. 고멜 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끈질기게 택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찜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 이 일로 인하여 감사하고 우리 안에 자긍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자긍심이 우리 안에 겸손한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택함 받은 시기는 내가 지식이 있어 분별할 때가 아니라 창세 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다 보면 엉뚱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질문 가운데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칼빈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칼빈은 이 질문에 속이 상했는지 너 같은 사람을 위해서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명확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지옥을 만들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계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어떤 누구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울의 뒤를 이을 왕을 찾아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새의 집에는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은 첫째 아들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에게 묻습니다. 이제 다른 아들이 없습니까? 그 때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말합니다. 양을 지키는 막내 아들 하나 있습니다. 사무엘이 말합니다. 그 아들을 데려오십시오. 막내 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나는 식사를 하지 않겠습니다. 사무엘과 아버지 이새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집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충실히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형들이 와서 다윗을 집으로 데려 갑니다. 집에 도착한 다윗에게 사무엘은 기름을 붓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도 모른 채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이 언제 믿어집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사실이 믿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과거가 해석이 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그토록 마음이 아팠는지 알게 됩니다. 왜 나에게 어려운 시간들이 많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한결 같이 고백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셨구나!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내가 기도의 능력을 알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성령의 중보를 하게 하셨구나..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가 해석되어지면서 우리는 창세 전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창세 전부터 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4절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나가면 온갖 도처에 죄의 지뢰가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도처에 깔린 지뢰가 터지면서 우리 인생이 큰 오점을 남기기도 합니다. 상처가 남습니다. 괴롭습니다. 이 상처만 치유되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상처를 없애지 못해서 평생을 기를 피지 못하고 눌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맑아서 우리가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온통 죄 짓고 사는 세상이 정당화 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이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뒷 봉투 주고받으며 사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뒷 봉투 받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거룩하고 흠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이런 자긍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소중하기 때문에 거룩하고 흠 없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흠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거룩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흠 많은 존재로 사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보혈로 샤워를 마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먼지를 씻겨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발을 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끓고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먼지 많은 나의 발을 내어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내 발에 먼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발을 주님 앞으로 내어 드리십시오. 내 발에 먼지를 숨기면 숨길수록 먼지는 떨어지지 아니하고 쌓여만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이 무너지고 내 삶에 흠이 생겼을 때 주님이 씻기시는 은혜로 다시 흠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해가 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우리의 삶이 눈부신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5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부터 택하신 후에 때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들 삼아 주셨습니다. 양자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호적이 바뀐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 가족은 아들이 두 분과 딸 두 분이 계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들 한 분도 페결핵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아들은 6.25 때 인민군에게 학살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님 가정에 아들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저의 외 할머님은 큰집에 작은 아들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양자로 들이셨습니다. 그 아들은 이제 호적이 바뀐 것입니다. 호적이 바뀌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들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양자가 되면서 우리 어머니 집에 재산이 모두 이 아들에게로 상속 된 것입니다. 이 아들은 아무 한일 없이 어머어마한 재산이 자기 앞으로 상속 된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양자가 되면 신분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6절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 한일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으시고 자신의 모든 상속권을 우리에게 다 넘기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양자 된 아들은 양자로 들어오기 전에 살던 자기 집보다 새로운 집에 더 관심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양자로 들어온 집을 섬겨야 합니다. 양자 된 집안에 큰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 집은 정 반대였습니다. 어머니 집에 있는 재산을 몽땅 자기 것으로 챙기고 그 재산을 낭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 분은 우리 어머니 가정의 재산을 탕진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분은 값없이 주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몰랐기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찬양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이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무상으로 받았습니다. 다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그렇게 사무치도록 내 마음에 밀려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택함의 과정을 우리가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죄 용서의 선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 아니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양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지키고 싶어하고 이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속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주신 것이 아니라 태초 전부터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상속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복음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이를 남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날마다 듣는 것이 복음을 지키는 것이요 선교라는 것이 곧 복음의 이를 남기는 것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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