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배소서 강해] 엡 1:7 - 12
: 전준식 목사
에베소서 1장 7절 - 12절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해서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부작용도 있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들로서는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알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이름을 짓고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도 보았습니다. 아이는 자기의 미음을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이름이 지어 졌다고 해서 아이는 자기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동사무소에 신고 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를 대신해서 동사무소에 가서 아이의 이름을 등록해야 합니다. 내 아들이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는 법적으로 한국 사람임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상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철들어서가 아니라 창세 전에 부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 이름을 짓고 기다리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가 되어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 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 앞으로 가서 양자로 등록하도록 도와 주서여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선교사님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찾으러 나가 계신 것입니다. 이들은 창조 전부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도 주민등록증을 소유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법적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열방에 나가 이들에게 가서 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어서 빨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천국 동사무소에 가십시오. 가서 아들로 등록하십시오. 외치는 것입니다. 선택한 자를 등록하도록 하는 일 이것이 곧 선교입니다. 우리교회가 바로 이런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가는 곳마다 외치십시오. 천국의 동사무소를 외치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도 양자 됨의 신분을 갖도록 도와 드리십시요. 오늘은 두 번째 신령한 축복입니다. 두 번째 신령한 축복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7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축복은 구속 곧 죄 사함입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죄 용서함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피가 무엇입니까? 왜 피가 우리의 죄를 구속하는 것입니까? 먼저 우리가 피를 알기 전에 죄를 알아야 왜 피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과 단절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란 곧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여려분 말기 암환자의 고통을 보셨습니까? 그들은 처음에 진통제로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영양분이 부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진통제로 그 고통을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진통제도 내 안에 진통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양분이 있어야 진통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없으면 우리는 내 안에 죄로 인하여 늘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를 술로 마약으로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죄는 더 분명하게 기억나고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는 점점 증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낫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가인은 예배를 잘못 드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이 죄는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아벨을 죽이는 죄까지 전이되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서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을 때 다윗은 궁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다윗은 옥상을 배회하는 게으름의 죄를 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인을 범하고 여인의 남편을 죽이는 교사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7절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피가 무엇입니까? 레위기 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질문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피를 넣지 않고 생기를 넣으신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으셨을 때 인간은 그저 흙덩이에 불과 했습니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을 때 비로소 인간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 할 수가 있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우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내 안에 있는 피가 그 생기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구나. 그렇습니다. 피는 생명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입니다. 때문에 우리 안에 이 피가 멈추면 우리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담의 부패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다른 곳에서 와야 합니다. 그 피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예수님에게 새로운 피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새로운 피를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담의 공통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벌거벗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담은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보혈로 덮으셨습니다. 이 보혈이 흘러 벌거벗은 우리 허물까지도 덮으시는 것입니다. 피 흘림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 이것이 완전한 구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 상에서 흘리는 피가 여러분 앞으로 흐르고 있습니까? 피가 뿌려짐으로 내 안에 생명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피 냄새가 진동하는 교회입니까? 피 냄새가 역겨워 도망가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한 구속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피 냄새를 즐겨야 합니다. 아니 피 냄새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내 몸에 발라야 합니다. 넘치도록 발라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구속입니다. 주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녹이고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성도들 모두가 이 피로 완전히 씻김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이 얻게 되는 현실적인 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8절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에게 주님은 두 가지 축복을 주시는데 하나는 지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총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통찰력이 생깁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으면 내가 이런 직업을 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구분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은 어떤 배우자를 택해야 할지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이 맑으면 부정한 것이 보입니다. 내 영이 깨끗하면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영이 맑지 못하면 더러운 것을 더럽게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형제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내 영이 맑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사기꾼에게 넘어갑니까? 만일 우리가 사기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절대로 사기꾼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가 맑은 영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겉모양만 그럴 듯한 사기꾼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결혼 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우리가 결혼을 후회하는 것은 상대방을 바로 보는 안목을,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 보는 안목을 가지고 싶습니까?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싶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샤워하십시오. 여러분의 찌든 영혼을 예수님의 피로 씻으십시오. 그래서 지혜와 총명을 소유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배우자를 선택하십시오. 세상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해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무엇을 아는데 까지 이르는 것입니까?--9절 그것은 비밀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늘의 비밀은 여기 성경 말씀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늘의 비밀을 발견합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성경 안에 계시된 비밀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감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이 오늘 묵상하는 말씀 가운데 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죄가 있으면 이것이 보이질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온 에디오피아 고위 공무원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이 사람은 병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경을 읽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명하시기를 그 내시에게 가서 성경을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성경을 풀어 주었습니다. 이사야53:7을 풀어 주면서 빌립은 이 본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 주자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즉시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에디오피아 사람은 고위 공무원입니다. 행정고시 출신입니다.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경을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고위 공무원도 아닙니다. 이름 없는 촌사람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입니까?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하늘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늘의 비밀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계시된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데 까지 이르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비밀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 비밀을 알려 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신 목적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0절 하늘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땅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과 모든 자연을 말합니다. 죄는 이 둘을 분리하였습니다. 하늘은 하늘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해서 사탄이 생겼습니다. 또한 땅은 땅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 학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세계관을 펼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간섭하지 않으신다. 예를 들면 시계를 만든 사람이 시계를 간접하지 않아도 시계는 돌아가듯이 세계는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관이 우리 가운데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인정은 하지만 더 이상 하나님은 이 세상을 간섭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리 된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 되기를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선교사님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님과 하나되게 하고 믿는 성도인 우리와 하나되게 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 전준식 목사
에베소서 1장 7절 - 12절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해서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부작용도 있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들로서는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알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이름을 짓고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도 보았습니다. 아이는 자기의 미음을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이름이 지어 졌다고 해서 아이는 자기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동사무소에 신고 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를 대신해서 동사무소에 가서 아이의 이름을 등록해야 합니다. 내 아들이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는 법적으로 한국 사람임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상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철들어서가 아니라 창세 전에 부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 이름을 짓고 기다리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가 되어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 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 앞으로 가서 양자로 등록하도록 도와 주서여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선교사님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찾으러 나가 계신 것입니다. 이들은 창조 전부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도 주민등록증을 소유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법적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열방에 나가 이들에게 가서 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어서 빨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천국 동사무소에 가십시오. 가서 아들로 등록하십시오. 외치는 것입니다. 선택한 자를 등록하도록 하는 일 이것이 곧 선교입니다. 우리교회가 바로 이런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가는 곳마다 외치십시오. 천국의 동사무소를 외치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도 양자 됨의 신분을 갖도록 도와 드리십시요. 오늘은 두 번째 신령한 축복입니다. 두 번째 신령한 축복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7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축복은 구속 곧 죄 사함입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죄 용서함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피가 무엇입니까? 왜 피가 우리의 죄를 구속하는 것입니까? 먼저 우리가 피를 알기 전에 죄를 알아야 왜 피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과 단절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란 곧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여려분 말기 암환자의 고통을 보셨습니까? 그들은 처음에 진통제로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영양분이 부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진통제로 그 고통을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진통제도 내 안에 진통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양분이 있어야 진통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없으면 우리는 내 안에 죄로 인하여 늘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를 술로 마약으로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죄는 더 분명하게 기억나고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는 점점 증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낫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가인은 예배를 잘못 드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이 죄는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아벨을 죽이는 죄까지 전이되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서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을 때 다윗은 궁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다윗은 옥상을 배회하는 게으름의 죄를 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인을 범하고 여인의 남편을 죽이는 교사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7절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피가 무엇입니까? 레위기 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질문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피를 넣지 않고 생기를 넣으신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으셨을 때 인간은 그저 흙덩이에 불과 했습니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을 때 비로소 인간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 할 수가 있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우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내 안에 있는 피가 그 생기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구나. 그렇습니다. 피는 생명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입니다. 때문에 우리 안에 이 피가 멈추면 우리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담의 부패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다른 곳에서 와야 합니다. 그 피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예수님에게 새로운 피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새로운 피를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담의 공통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벌거벗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담은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보혈로 덮으셨습니다. 이 보혈이 흘러 벌거벗은 우리 허물까지도 덮으시는 것입니다. 피 흘림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 이것이 완전한 구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 상에서 흘리는 피가 여러분 앞으로 흐르고 있습니까? 피가 뿌려짐으로 내 안에 생명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피 냄새가 진동하는 교회입니까? 피 냄새가 역겨워 도망가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한 구속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피 냄새를 즐겨야 합니다. 아니 피 냄새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내 몸에 발라야 합니다. 넘치도록 발라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구속입니다. 주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녹이고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성도들 모두가 이 피로 완전히 씻김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이 얻게 되는 현실적인 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8절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에게 주님은 두 가지 축복을 주시는데 하나는 지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총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통찰력이 생깁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으면 내가 이런 직업을 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구분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은 어떤 배우자를 택해야 할지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이 맑으면 부정한 것이 보입니다. 내 영이 깨끗하면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영이 맑지 못하면 더러운 것을 더럽게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형제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내 영이 맑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사기꾼에게 넘어갑니까? 만일 우리가 사기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절대로 사기꾼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가 맑은 영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겉모양만 그럴 듯한 사기꾼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결혼 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우리가 결혼을 후회하는 것은 상대방을 바로 보는 안목을,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 보는 안목을 가지고 싶습니까?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싶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샤워하십시오. 여러분의 찌든 영혼을 예수님의 피로 씻으십시오. 그래서 지혜와 총명을 소유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배우자를 선택하십시오. 세상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해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무엇을 아는데 까지 이르는 것입니까?--9절 그것은 비밀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늘의 비밀은 여기 성경 말씀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늘의 비밀을 발견합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성경 안에 계시된 비밀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감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이 오늘 묵상하는 말씀 가운데 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죄가 있으면 이것이 보이질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온 에디오피아 고위 공무원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이 사람은 병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경을 읽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명하시기를 그 내시에게 가서 성경을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성경을 풀어 주었습니다. 이사야53:7을 풀어 주면서 빌립은 이 본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 주자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즉시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에디오피아 사람은 고위 공무원입니다. 행정고시 출신입니다.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경을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고위 공무원도 아닙니다. 이름 없는 촌사람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입니까?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하늘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늘의 비밀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계시된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데 까지 이르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비밀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 비밀을 알려 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신 목적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0절 하늘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땅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과 모든 자연을 말합니다. 죄는 이 둘을 분리하였습니다. 하늘은 하늘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해서 사탄이 생겼습니다. 또한 땅은 땅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 학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세계관을 펼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간섭하지 않으신다. 예를 들면 시계를 만든 사람이 시계를 간접하지 않아도 시계는 돌아가듯이 세계는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관이 우리 가운데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인정은 하지만 더 이상 하나님은 이 세상을 간섭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리 된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 되기를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선교사님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님과 하나되게 하고 믿는 성도인 우리와 하나되게 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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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배소서 강해(1) / 엡 1:1 - 2 (0) | 2014.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