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 에베소서

[스크랩] [에배소서강해-5] 하나님을 본 받으라 (엡 5:15-33)

하나님아들 2014. 1. 2. 10:21
[에배소서강해-5] 하나님을 본 받으라 (엡 5:15-33)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 때가 악하니라 !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保養)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15-33)

인간이 세워야 할 삶의 최고 수준과 표준을 말한다면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가장 현명한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되는 훈련을 쌓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 받는 생활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가장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본 받는 생활이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말합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는 참된 사랑의 수준과 표준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희롱하고 희롱 당하는 성, 음란한 성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여성을 한 마디로 성적 노리개로 보았던 것입니다. 지조, 절개, 순결 등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음행을 일삼았던 풍조는 영지(Gnostic, 靈知)주의라는 철학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지주의란 물질은 언제나 결함이 있고 악한 것이며, 영적인 것만이 선하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오직 영적인 것만이 가치있고 물질은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에 따르면 육체적이며 성적인 죄는 육체 곧 물질에 속한 것이며 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가 범한 죄는 중요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육체가 아니고 오직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 어떠한 죄를 범해도 구원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몸과 마음 영혼 모두를 다 창조하셨으며, 따라서 그 모두가 다 중요하고 성결해야 하며 구원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몸(육체)을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거하시는 전(殿)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몸과 영혼, 전인(全人)적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육체와 영혼 전체의 구원을 말합니다. 고전학자 버럴(A.W.Verrall)은 고대 문명이 사멸한 중요한 병폐의 하나는 여성을 낮추어 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인 조차도 여성을 매우 낮추어 보았었습니다. 유대의 법에서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물건으로 취급하여 여자는 아무런 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했고 여자는 전적으로 남편의 소유물이었으며 따라서 남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헬라에는 법적인 이혼 수속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 생활이나 가족 생활이 거의 소멸된 상태였습니다. 로마 역시 가정생활은 파괴되어 있었고, 부인들은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고 결혼하기 위해 이혼한다고 기록할만큼 결혼의 순결은 완전 파멸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순결이란 증대하는 사치 문명 속에서 하나의 조난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초기 당시에도 이같은 시대적 음란한 풍조가 밀려와 결혼제도가 심각한 위기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결혼제도가 위협받는 시대에 어떻게 참되고 향기나는 사랑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같은 시대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본 받으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참된 사랑의 표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인공 자궁>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병원 실험실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습니다. 엄마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고, 가끔씩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러 갑니다. 10개월이 되면 돈을 지불하고 아기를 찾아오면 됩니다. 윤리적 문제가 있지만 인공자궁 기술은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자궁내막에서 세포를 떼어내 몸 밖에다 자궁을 만들고, 여성호르몬을 주입하여 착상을 유도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동물의 몸안에 자궁을 만들 수도 있고, 병원 실험실에 수많은 인공자궁을 만들어 놓고 수정란을 주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엄마가 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과 생식이 완전히 별개가 돼 사실상 자기 자식이라는 의미도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결혼제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일류라고 하는 미국 하버드 대학 대학생들이 자신의 정자를 매매하고 있고, 여성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들 정자 중에 자신의 취향에 따른 유전인자를 포함하고 있는 정자를 구입하여 실험실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성들만이 아니라 얼굴이 미인이며 건강한 여성들은 자신의 난자를 인터넷에 올려 난자 하나에 작게는 1만 달러에서 1만5천 달러에 팔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여성들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며 역시 자기 취향에 맞는 난자를 구입하여 인공 자궁을 만들어 놓고 남자들도 얼마든지 우수하고 예쁜 종자를 아들 딸 가려가며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머리는 지능과 사업에 뛰어난 벤처 기업가, 눈, 코, 입, 다리 등은 각기 부위에 따라 잘 생긴 배우나 탤런트 김현정 등으로 조합해서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인공 자궁이 성공하게 되면, 사랑과 생식이 완전히 별개가 되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라질 형편이 되고 있습니다. 남녀관계는 단지 육체적 쾌락이나 성적 만족을 위해 존재할 정도에 그치고 그나마 사이버 섹스가 등장해서 남녀관계에 성적 만족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되어 사실상 정상적인 남녀관계, 가정생활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21세기에는 남녀의 짝을 찾아 맺어 주는 소위 <사랑 산업>이 번창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짝짓기는 종족의 번식보다는 육체의 쾌락과 정신적 의존이 짝짓기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짝짓기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조건이 까다로워져서 좋은 짝을 만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눈을 빌릴 필요가 생겼는데 이것이 곧 <사랑 산업>의 번성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우 중매업체협회(ABIA)가 결성될 정도고, 인터넷 보급 이후 매년 5000만 파운드(8000만 달러, 약 1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지금 실제 인터넷을 통해 사랑의 대상을 자신이 직접 찾거나 이 일을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산업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찾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향기로운 사랑, 참된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먼저 찾아야 할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서로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거룩하며, 거룩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사람을 끌어내리는 거짓된 사랑, 인격을 순화시키고 높여주는 대신에 거칠고 천박하게 만드는 사랑, 거짓을 말하게 하는 사랑, 도덕적인 기질을 약화시키는 사랑, 인간을 더 악한 인간으로 만드는 사랑 등은 사랑이 아닙니다. 향기나며 참된 사랑은 십자가 사랑으로 그 인격을 높이어 삶의 수준을 높여 주며 몸과 마음과 영혼의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입니다. 호세아가 보여준 사랑은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더러운 창녀 고멜을 깨끗한 아내로 변화시키는 거룩하게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 사랑은 돌봐주는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 하여야 합니다. 왜냐 하면 참 사랑은 항상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참 사랑은 봉사를 시키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위로나 받고자 하는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편의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어내는 사랑이 아니라 쓴잔을 대신 마시는 사랑이 십자가의 참 사랑입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편이 아내를 밥이나 짓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집안 청소하는 사람,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면 올바른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일종의 영원한 종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돌봐주어야 할 책임을 진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와같이 희생적인 사랑, 깨끗하게 하는 사랑, 돌봐주는 사랑을 아내에게 베풀게 될 때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가 남편을 머리로 여기며 존경하고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죽은 것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원수와 화목을 이루어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39)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얼마든지 세상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병중에서 핍박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항상 빛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사랑을 삶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을 빛의 자녀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어두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은 빛된 생활입니다. 빛된 생활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란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과 그렇지 못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의 삶은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 모든 거짓을 밝히 드러내는 사랑, 약한 것을 강하게 하고 병든 것을 치유하는 사랑,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사랑입니다. 어둠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모두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맺어지는 사랑이야말로 참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빛입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살고 있는 집의 전등을 평소보다 10배 정도 밝게 해서 하루 다섯 시간씩 그 불빛 아래에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낮을 연장시키는 방법입니다. 겨울에 봄을 느끼게 하는 치료법입니다. 밝은 불빛이 곧 치료제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밝아집니다. 침울하고 음산한 사람은 사랑이 결여되는 있는 것입니다. 분이 날 때 어두워지고 질투할 때 더 어두워지고 미워할 때 아주 어두워집니다. 밤을 사는 사람과 낮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는 결국 사랑에 있습니다. 행복한 꿈을 꾸며 서로 사랑을 약속하며 가정들을 이루지만 참된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피차에 어둠 가운데 사는 가정들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찾지 못하여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상처받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찾지 못하여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이 상처받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찢기고 상처받은 사랑을 치료해주며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매맞는 여자들의 <작지만 큰 그늘>이 되어주는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 이명숙씨입니다. 그를 찾는 한국 여성들을 보면 심각한 가정생활의 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 열명중 아홉이 여자이며 대부분 못배우고 가진 것도 없는 서민들입니다. 남편에게 매맞다 도망쳐 나온 아내, 위자료 한푼 못받고 이혼당한 무일푼의 여자,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긴 엄마, 신혼초기의 기묘한 꿈으로 의처증에 걸린 남편이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찔러 실명 위기에 처한 여자, 혼수를 적게 해왔다는 이유로 불꽃 튀는 가스렌지에 젊은 아내의 얼굴을 들이미는 남편, 사촌오빠에게 강간당한 뒤 거리로 쫓겨난 여중생, 5살짜리 어린아이를 성폭행하는 유치원 원장 등등이었습니다. 이 변호사가 맡은 사건 중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35살의 어떤 여인은 줄기차게 바람을 피우는 한의사 남편을 간통으로 고소했다가 8개월된 딸아이가 마음에 걸려 다시 취소했습니다. 그 사이에 이혼을 당하고 아이마저 시댁에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없어 아이를 되찾을 길 없었던 여자는 다시 학력고사를 치러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유치원과 피아노학원에서 일해 작은 승용차까지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겠다며 이 변호사를 찾아왔습니다. 지역유지인 남자의 집안에 맞서 대법원까지 올라간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4년간 떨어져 산 아이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해 불리했지만 아이를 찾기 위한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한 법정이 모성에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25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년간의 연수원 생활을 마친 이명숙씨는 검사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법의 냉혹함보다 따뜻함을 실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 소송은 꿈도 못꾸는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 무료변론에 앞장서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들의 작지만 큰 그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 십자가 사랑으로 먼저는 가정을 밝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밝게 하여 더러워진 사랑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며, 찢기고 상처받은 사랑들을 돌보고 치료하며, 끊어진 사랑을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동희 목사)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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