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배소서강해-4] 하나됨을 위하여 (엡 4:1-16)
4.하나됨을 위하여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16)
<하나되라>는 에베소서 1장 설교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는 온 인류가 하나되는 것임을, <그는 우리의 화평>이라는 2장 설교를 통해서는 인류를 하나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을, 그리고 3장 설교 <그리스도의 비밀>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이 위임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4장 설교 <하나됨을 위하여>는 교회에 위임된 사명, 곧 온 인류가 하나됨을 위해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 인종과 인종, 남녀 성의 벽을 허물고,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벽을 허물고, 그 가운데 자리잡은 모든 갈등과 부조리, 부조화를 그리스도 십자가 피로 해결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야말로 온 인류가 안고 있는 갈등과 부조리, 부조화를 해결하고 하나되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세계 통일이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거룩한 통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땅 끝까지 증거하여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통일의 도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와 성도는 "거룩한 통일"을 위한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이 첫째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어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보다 못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아닙니다. 예수께서 인간보다 못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 아닙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시지만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낮추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교회에 당부하십니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한 가정에서 누구나 섬김을 받고자 하면 그 가정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섬기려한다면 그 가정은 하나가 되어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나아가 나라 백성이 하나되기 위해 먼저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프로 야구 기록 중 가장 에러(범실)를 많이 범한 기록은 1900년 시즌에서 120게임에 출전하여 무려 91번이나 에러를 낸 뉴욕 자이언츠 팀의 찰스 히크맨 선수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쁜 버릇은 다리를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땅볼을 번번히 놓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뻣뻣하게 서 있기 때문에 '피아노 다리 히크맨'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팀에나 에러가 많은 팀은 다른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경기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빈번한 에러는 자칫 팀의 화목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에러를 적게 내려면, 그리고 삶의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조금 더 허리와 다리를 굽혀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되기 위해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라함은 성격이 온순해서 불편부당한 일에 대해 아무 소리 못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의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의분의 불꽃을 태우지마는 자기 자신이 당하는 불편부당한 대우나 모욕에 대해서는 노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것은 인간 스스로의 자제력을 능가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과 생각, 의지가 하나님의 통제,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삶은 자기 안에 자아는 죽고 오직 그 안에 예수만 살아서 예수의 마음과 생각으로 살며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과 성령의 지배아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과 교회, 나라 백성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자아가 죽고 하나됨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만이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자신에 대해 불편부당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 결코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가슴마다 예수가 증거되고 체험될 때 온 인류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이 하나됨을 위하여 온유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됨을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만 합니다. 모욕적이고 부당하며 불의한 경우를 당하거나 불편부당한 처우로 손해를 입었다해도 괴로워하며 원망 불평하며 참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에 낙심하거나 단념하며 참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기다리며 정중하게 그리고 불안 초조하지 않으며 평안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이러한 참음이 있을 때만 하나됨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멸시 천대하며 모욕하며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에 대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을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록키>라는 유명한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록키(실베스터 스텔론)가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상대자로 선택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록키가 이길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록키 자신도 자신의 역부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챔피언 도전자로 링에 올라간 이상 마지막 15회전까지 끌고 간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끝까지 버티자(Go the distance)"를 거듭 다짐하며 한 회 한 회 싸워 나갑니다. 결국 끝까지 링 위에 머물러 싸운 록키가 승리합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하나됨을 위해서는 그렇게 참을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도저히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보복은커녕 오히려 그가 자기보다 더 잘 되기를 위해 기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달고 조롱하는 그들이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나보다는 우리의 모든 이웃이 더 잘 되기를 위하는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이 더 잘 되어도,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에 평안함을 누리시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 되어야 할 이유와 근거는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한 소망과 한 믿음과 한 세례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됨을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인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함과 평안으로 신앙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이신 성령께서 역사하는 교회와 성도는 당연히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등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하는데 이는 "숨"(호흡)을 뜻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몸에 생명을 주는 숨은 바로 예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숨을 쉬지 않는 몸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숨과 같은 성령이 활동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란 사실상 성령이 떠난 것이어서 죽은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받은 바 은사에 따라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더욱 더 강하게 세워 나가기는커녕 문제를 야기시켜 분열과 분파가 생기게 한다면 그 교회와 성도는 결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하므로 하나됨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교회 직분을 받은 사람은 어떠한 은사를 받았다해도 그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그 자신은 지체에 불과함을 명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믿고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신앙생활하므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룩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숙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온 몸을 각 마디가 완전히 합쳐지고 연결을 가질 수 있을 때, 또 모든 관절이 제대로 연결하는 일을 할 때, 온 몸의 각 부분이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할 때 오직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되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마음에 어두움을 버려야 합니다. 어두운 마음과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허망해지며 무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마음이 굳어져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지어도 체면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됩니다. 또한 어두운 마음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어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예수를 마음에 영접해야만 합니다. 예수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세상에 참 빛이십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그 마음이 성령으로 채워질 때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마음은 결코 하나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가 없는 세계는 죄악으로 채워질 뿐이며, 그리고 분열과 분쟁을 일삼아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만일 지체가 되는 손과 발이 만져서 뜨거운 것인데도 머리에는 시원하고 괜찮은 것이라고 전해준다면 그 몸의 생명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몸의 각 부분이 진실한 정보를 머리에 전하고 다른 부분에도 전해주어야 우리 몸은 정상적으로 그리고 건강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실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 하나되기 위해 매사에 진실만을 말하기를 바랍니다. 진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일종의 거짓에 불과합니다. 참된 것을 말하는 진실의 생활로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현대의 로미오 군이 애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수잔, 그대의 눈동자를 보기 위해서는 태평양이라도 헤염쳐 건너가고, 그대의 손을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라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겠소. 다음 토요일에 찾아갈 것이오. 물론 비가 오지 않으면 말이요." 사실 이 사랑의 편지는 진실과 거리가 먼 편지입니다. 진실되지 못한 사랑은 결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거짓되고 부정부패한 것에 대해 분노할 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과 민족은 그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거나 더욱 더 가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기주의에 기인하는 분노는 오히려 하나됨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른다면 결국 힘없는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분열되어 갈등만 증폭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리고 죄만을 증오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아는 사람 백 명을 달라. 그러면 나는 온 세계를 진동시키리라."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의 분노, 통제되지 못하는 분노는 죄만 가중할 뿐이며 하나가 되어 성숙된 사회가 되는데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만 끼칠뿐 입니다.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희생적인 봉사를 위해 훈련받은 분노, 전혀 순수하며 사심없는 분노는 세계를 하나되게 하며 윤택하게 하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높은 나무 위에 있는 코코넛을 딸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무에 있는 원숭이들에게 돌멩이질하여 원숭이의 화를 돋구는 것입니다. 성깔이 난 원숭이들은 코코넛을 따서 사람들에게 던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쉽게 목적 달성을 할 수 있습니다. 공연한 성미를 부리게 되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만들어 줄뿐입니다. 참으로 분노에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됨을 위하여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더러운 일들이 많다 해서 거칠고 더러운 말을 마구 내밷는 것이 자신을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도 더러워지며 덕이 되지 못하여 하나되는 것을 파괴하게 됩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 기쁨과 은혜를 끼치는 말,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는 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상처를 싸매 주는 말로 교회와 성도의 덕을 세워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언행심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오래 된 원한을 가리켜 "악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욕과 손해와 멸시 천대를 마음에 품고 해가 지도록 분노하면서 풀지않으면 악독이 됩니다. 성도는 악독을 품지 않도록 자신이 받은 모든 모욕과 손해를 속히 잊어버리고 그들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큰 소리 내는 사람이 이기는 줄로 착각하지 말고 목소리를 낮출 줄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자함으로 이웃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인자함이란 이웃 사람의 일을 자기 일만큼 생각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감정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생각해주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갈등과 문제를 자기 자신의 것처럼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자한 사람은 항상 눈을 안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돌리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가 서로 인자하게 행할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자함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의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 위해 예수처럼 우리의 이웃에 대해 인자함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류 문학가 플로렌스 바클레이는 자기가 일곱 살 때 해주신 어머니의 말씀이 자기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아마도 사순절 중 어느 주일이었을 것입니다. 플로렌스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예배에 참석했을 때 목사님은 예수 수난의 기사를 낭독했습니다. 예수가 체포되어 끌려 다니다가 드디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읽을 때 어린 플로렌스는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이상 눈으로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듯 이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왜 그러니?" 하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 때 플로렌스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철모르는 소녀의 흐느낌이 고요한 성전에 울려 퍼질 때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던 예배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낮추고 여기저기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녀의 순진한 울음이 어른들의 습관적이며 불감증이 된 마음을 각성하게 하는 울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플로렌스 바클레이는 성인이 되고 사회의 저명인사가 된 뒤에도 어머니가 들려 주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의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메마른 인간, 메마른 신앙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기심과 용서함을 베푸신 예수의 마음과 삶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사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되게 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동희 목사)
4.하나됨을 위하여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16)
<하나되라>는 에베소서 1장 설교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는 온 인류가 하나되는 것임을, <그는 우리의 화평>이라는 2장 설교를 통해서는 인류를 하나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을, 그리고 3장 설교 <그리스도의 비밀>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이 위임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4장 설교 <하나됨을 위하여>는 교회에 위임된 사명, 곧 온 인류가 하나됨을 위해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 인종과 인종, 남녀 성의 벽을 허물고,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벽을 허물고, 그 가운데 자리잡은 모든 갈등과 부조리, 부조화를 그리스도 십자가 피로 해결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야말로 온 인류가 안고 있는 갈등과 부조리, 부조화를 해결하고 하나되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세계 통일이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거룩한 통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땅 끝까지 증거하여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통일의 도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와 성도는 "거룩한 통일"을 위한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이 첫째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어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보다 못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아닙니다. 예수께서 인간보다 못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 아닙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시지만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낮추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교회에 당부하십니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한 가정에서 누구나 섬김을 받고자 하면 그 가정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섬기려한다면 그 가정은 하나가 되어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나아가 나라 백성이 하나되기 위해 먼저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프로 야구 기록 중 가장 에러(범실)를 많이 범한 기록은 1900년 시즌에서 120게임에 출전하여 무려 91번이나 에러를 낸 뉴욕 자이언츠 팀의 찰스 히크맨 선수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쁜 버릇은 다리를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땅볼을 번번히 놓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뻣뻣하게 서 있기 때문에 '피아노 다리 히크맨'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팀에나 에러가 많은 팀은 다른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경기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빈번한 에러는 자칫 팀의 화목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에러를 적게 내려면, 그리고 삶의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조금 더 허리와 다리를 굽혀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되기 위해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라함은 성격이 온순해서 불편부당한 일에 대해 아무 소리 못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의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의분의 불꽃을 태우지마는 자기 자신이 당하는 불편부당한 대우나 모욕에 대해서는 노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것은 인간 스스로의 자제력을 능가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과 생각, 의지가 하나님의 통제,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삶은 자기 안에 자아는 죽고 오직 그 안에 예수만 살아서 예수의 마음과 생각으로 살며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과 성령의 지배아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과 교회, 나라 백성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자아가 죽고 하나됨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만이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자신에 대해 불편부당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 결코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가슴마다 예수가 증거되고 체험될 때 온 인류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이 하나됨을 위하여 온유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됨을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만 합니다. 모욕적이고 부당하며 불의한 경우를 당하거나 불편부당한 처우로 손해를 입었다해도 괴로워하며 원망 불평하며 참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에 낙심하거나 단념하며 참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기다리며 정중하게 그리고 불안 초조하지 않으며 평안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이러한 참음이 있을 때만 하나됨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멸시 천대하며 모욕하며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에 대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을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록키>라는 유명한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록키(실베스터 스텔론)가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상대자로 선택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록키가 이길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록키 자신도 자신의 역부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챔피언 도전자로 링에 올라간 이상 마지막 15회전까지 끌고 간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끝까지 버티자(Go the distance)"를 거듭 다짐하며 한 회 한 회 싸워 나갑니다. 결국 끝까지 링 위에 머물러 싸운 록키가 승리합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하나됨을 위해서는 그렇게 참을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도저히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보복은커녕 오히려 그가 자기보다 더 잘 되기를 위해 기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달고 조롱하는 그들이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나보다는 우리의 모든 이웃이 더 잘 되기를 위하는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이 더 잘 되어도,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에 평안함을 누리시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 되어야 할 이유와 근거는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한 소망과 한 믿음과 한 세례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됨을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인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함과 평안으로 신앙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이신 성령께서 역사하는 교회와 성도는 당연히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등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하는데 이는 "숨"(호흡)을 뜻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몸에 생명을 주는 숨은 바로 예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숨을 쉬지 않는 몸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숨과 같은 성령이 활동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란 사실상 성령이 떠난 것이어서 죽은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받은 바 은사에 따라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더욱 더 강하게 세워 나가기는커녕 문제를 야기시켜 분열과 분파가 생기게 한다면 그 교회와 성도는 결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하므로 하나됨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교회 직분을 받은 사람은 어떠한 은사를 받았다해도 그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그 자신은 지체에 불과함을 명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믿고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신앙생활하므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룩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숙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온 몸을 각 마디가 완전히 합쳐지고 연결을 가질 수 있을 때, 또 모든 관절이 제대로 연결하는 일을 할 때, 온 몸의 각 부분이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할 때 오직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되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마음에 어두움을 버려야 합니다. 어두운 마음과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허망해지며 무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마음이 굳어져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지어도 체면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됩니다. 또한 어두운 마음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어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예수를 마음에 영접해야만 합니다. 예수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세상에 참 빛이십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그 마음이 성령으로 채워질 때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마음은 결코 하나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가 없는 세계는 죄악으로 채워질 뿐이며, 그리고 분열과 분쟁을 일삼아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만일 지체가 되는 손과 발이 만져서 뜨거운 것인데도 머리에는 시원하고 괜찮은 것이라고 전해준다면 그 몸의 생명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몸의 각 부분이 진실한 정보를 머리에 전하고 다른 부분에도 전해주어야 우리 몸은 정상적으로 그리고 건강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실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 하나되기 위해 매사에 진실만을 말하기를 바랍니다. 진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일종의 거짓에 불과합니다. 참된 것을 말하는 진실의 생활로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현대의 로미오 군이 애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수잔, 그대의 눈동자를 보기 위해서는 태평양이라도 헤염쳐 건너가고, 그대의 손을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라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겠소. 다음 토요일에 찾아갈 것이오. 물론 비가 오지 않으면 말이요." 사실 이 사랑의 편지는 진실과 거리가 먼 편지입니다. 진실되지 못한 사랑은 결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거짓되고 부정부패한 것에 대해 분노할 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과 민족은 그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거나 더욱 더 가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기주의에 기인하는 분노는 오히려 하나됨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른다면 결국 힘없는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분열되어 갈등만 증폭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리고 죄만을 증오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아는 사람 백 명을 달라. 그러면 나는 온 세계를 진동시키리라."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의 분노, 통제되지 못하는 분노는 죄만 가중할 뿐이며 하나가 되어 성숙된 사회가 되는데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만 끼칠뿐 입니다.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희생적인 봉사를 위해 훈련받은 분노, 전혀 순수하며 사심없는 분노는 세계를 하나되게 하며 윤택하게 하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높은 나무 위에 있는 코코넛을 딸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무에 있는 원숭이들에게 돌멩이질하여 원숭이의 화를 돋구는 것입니다. 성깔이 난 원숭이들은 코코넛을 따서 사람들에게 던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쉽게 목적 달성을 할 수 있습니다. 공연한 성미를 부리게 되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만들어 줄뿐입니다. 참으로 분노에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됨을 위하여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더러운 일들이 많다 해서 거칠고 더러운 말을 마구 내밷는 것이 자신을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도 더러워지며 덕이 되지 못하여 하나되는 것을 파괴하게 됩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 기쁨과 은혜를 끼치는 말,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는 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상처를 싸매 주는 말로 교회와 성도의 덕을 세워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언행심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오래 된 원한을 가리켜 "악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욕과 손해와 멸시 천대를 마음에 품고 해가 지도록 분노하면서 풀지않으면 악독이 됩니다. 성도는 악독을 품지 않도록 자신이 받은 모든 모욕과 손해를 속히 잊어버리고 그들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큰 소리 내는 사람이 이기는 줄로 착각하지 말고 목소리를 낮출 줄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자함으로 이웃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인자함이란 이웃 사람의 일을 자기 일만큼 생각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감정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생각해주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갈등과 문제를 자기 자신의 것처럼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자한 사람은 항상 눈을 안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돌리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가 서로 인자하게 행할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자함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의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 위해 예수처럼 우리의 이웃에 대해 인자함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류 문학가 플로렌스 바클레이는 자기가 일곱 살 때 해주신 어머니의 말씀이 자기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아마도 사순절 중 어느 주일이었을 것입니다. 플로렌스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예배에 참석했을 때 목사님은 예수 수난의 기사를 낭독했습니다. 예수가 체포되어 끌려 다니다가 드디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읽을 때 어린 플로렌스는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이상 눈으로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듯 이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왜 그러니?" 하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 때 플로렌스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철모르는 소녀의 흐느낌이 고요한 성전에 울려 퍼질 때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던 예배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낮추고 여기저기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녀의 순진한 울음이 어른들의 습관적이며 불감증이 된 마음을 각성하게 하는 울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플로렌스 바클레이는 성인이 되고 사회의 저명인사가 된 뒤에도 어머니가 들려 주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의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메마른 인간, 메마른 신앙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기심과 용서함을 베푸신 예수의 마음과 삶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사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되게 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동희 목사)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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