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첫사랑의 감격이 있는 교회(계 2:1-7)

하나님아들 2013. 3. 22. 12:11

첫사랑의 감격이 있는 교회(계 2:1-7)

 

처음 사랑이라는 말~ 즉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왠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언제나 처음이라는 설레임이 있지요. 마치 첫 만남, 첫 월급 등의 좋고 설레는 그런 느낌이 누구나 가지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첫 사랑이 또한 그러하지요.

 

첫사랑

 

빨간 홍시얼굴

맞잡은 떨리던 손

쿵딱 쿵딱 뛰는 가슴

 

밤새 쓴 편지 한 장

손에 주고 달아나서

하루종일 흐믓 흐믓

 

아련하게

때론 따스하게

가슴깊은 곳에 숨어있어

 

시 / 김 경곤

 

여기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첫사랑은 언제나 두근두근 거리면서 미소지어지는.. 흐뭇함이 있습니다.

 

그것만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그렇지요?

 

누구나 처음 사랑이 있듯이 여기 앉아계신 성도님들의 안양교회를 만난 지금의 모습이 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양교회와의 첫사랑~ 그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여기 성도님들은 더욱 안양교회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있지요. 그리고 오시면 언제나 즐겁기까지하구요...

 

우리는 이 즐거움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올 때의 지금의 즐거운 마음이 시간이 지나가 무뎌지면 감각이 점점 없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 감흥이 유지되고 커져갔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게 많은 칭찬과 함께 책망을 하시고 계시는데 그것은 첫사랑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이 에베소교회의 사랑의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가 시작 전에 눈여겨 봐야할 것은 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 자기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 2:1)

 

여기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누구일까요?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계 1:13) 인자

 

여기 말하는 인자가 누구일까요? 인자라는 칭호가 많이 들어보신 것 같지 않습니까? 예 사복음서에서 마가, 누가 복음에 끊임없이 예수님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자에 대한 뜻을 살펴보면 여러뜻이 있지만 하여간 여기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는 누구이십니까? 예~ 예수님이십니다.

 

그럼, 예수님이 어디를 다니시죠? 일곱금촛대, 일곱별...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수를 말하고 충만한 수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일곱 금촛대, 일곱별을 다니신다것은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다니신다는 것이고, 그 중에 에베소 교회에 편지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안양교회에 이렇게 편지를 쓴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편지를 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첫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지요.

 

우리가 건강한 교회를 꿈꾼다면 그 건강한 교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첫사랑의 감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시간에 나누고자 합니다.

 

1. 행위로만 완전해 질 수 없는 사랑

우리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에 이렇게 칭찬을 하시고 계십니다.

(계 2:2-3)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여기 말하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편지하면서 똑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 함이니』

 

믿음의 역사 e[rgon 엘곤 -노력, 행위 / 계시록 2장 2절의 행위와 같은 뜻. 같은 단어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그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기 에베소 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이런 눈에 보이는 믿음, 소망, 사랑의 행위들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끈임없이 행동하고, 끊이 없이 사랑의 수고를 하고, 끊임없이 소망의 인내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이 오늘 우리 안양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끊임없이 믿음으로 예배드리고, 끊임없이 사랑의 수고로 서로를 섬겨주고, 끊임 없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자신의 피곤쯤은 감당하는 우리 교회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지난 수요일에 우리 직무 임원님들은 9시에 모여서 열심히 교회의 장래에 대해서 2008년도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열심히 교회를 생각하다가 세상에 12시가 다 되어서야 시계를 보게 된 것이지요..

이런 수고가 여기 안양교회에 있는 것이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칭찬이 무색해 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기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지요?

“너희들 믿음의 행위도 있고 사랑의 수고도 있고 소망의 인내도 있는데 그 안에 사랑의 동기가 없단다...”

“처음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에 기쁨으로 그것들을 하더니.. 이제는 너희 안에 의무감만 남아 있구나~”

 

에베소 성도들은 참으로 신앙의 행위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믿음의 행동들, 수고들, 인내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믿음을 가져야 하지’하는 생각이 없더라도 모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이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믿음의 모습, 사랑의 모습, 소망의 모습들은 의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변합니다.

참 이상하죠? 아무리 좋은 것도 반복하면, 익숙해지면 형식적이 됩니다. 그 본질은 어디에 가버리고 형식만 남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혹시 그러한 것들이 없는지요.

언제부턴가 주기도문이 주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본질은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적이 되면 그 안에 기도가 빠져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으니까 하는 주문만 남는 것입니다.

 

비단 이것만이요? 우리가 받는 세례는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신 십자가의 공로가 믿어져야지, ‘그저 하는 거야’라고 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그들을 칭찬했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는 어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하는 봉사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봉사는 내가 의무감만을 가지고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감을 가지고서 하는 것이지요. 의무감과 책임감의 차이는 뭘까요?

국어사전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의무감1[義務感]

[명사] 의무를 느끼는 마음.

책임감[責任感]

[명사]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의무감은 단순히 그 해야한다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감은 다른 것이지요. 책임감은 내가 그것을 왜 해야 하는 것을 알아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일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마음속에 의무감만 남게 됩니다. 다른 사람 할 사람 없으니까하는...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섬기며 인내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에베소 교인의 이런 모습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2. 떨어지지 않게 채워야 할 사랑

그렇다면 잃어버린 사랑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어디서부터 그 사랑이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떨어진 사랑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그다음에 뭐요? 회개하여~

 

‘회개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다시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할 때를 생각하고 그 때로 다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회개란 말은 무슨 말일까요?

헬라어로 metanoevw 메타노에오 라는 말로

1)마음을 바꾸다, 후회하다, 뉘우치다

2)마음을 더 좋게 바꾸다, 진심으로 혐오스러운 과거의 죄를 고치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었을 때와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고 그 사랑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면 그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사랑이 많았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생각한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회개하여 그다음에 어떻게 하라고요? 처음의 행위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 사랑으로 행했던 그 때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다시 돌아가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제대로 보여준 예가 있지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라는 이름이 성경에 있다구요? 없다구요?)

작은 아들이 먼 나라로 가서 모두 탕진하고 그 곳에서의 종으로의 삶이 너무 비극적이어서 집을 생각하고 비교하게 됩니다. 정말로 집에 있을 때에는 잘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 집에 있는 종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잘먹고 잘 살았는데...

그런 생각만 하고 끝납니까? 아니요. 그다음에 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히 나를 받아주실까? 하면서도 그는 각오를 하고 돌아서요... 그리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예전에 어렸을 때에 찬양할 때에는 참 좋았는데 지금은 그 때에 기분이 안나와~’

그러면 그것으로 그치는 것입니까?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돌아서서 그 행위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떨어진 사랑을 다시 채우는 방법인 것입니다.

 

회개

교회의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모두 회개를 해야합니다.”"

 

목사님이 한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 회개를 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지요?”"

 

"예. 먼저 죄를 지어야합니다.”"

 

참 재미있지요? 하지만 이런 예가 우리에게도 있지 않겠어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믿음의 행위가 사랑의 수고가 소망의 인내가 예전만 못하면서도 다시 회복하려하지 않고 세월을 보낸다면 그것은 끊임없이 죄를 묵인하고 오히려 죄가 커갈 수 있도록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첫 사랑의 순수함을 회복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3. 구원의 촛대를 붙들어 주는 사랑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첫사랑을 회복해서 처음의 행위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처음의 사랑을 붙들어 놓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촛대가 무엇일까요?

(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럼 일곱 촛대가 일곱교회니까? 촛대는 뭡니까? 바로 교회예요...

 

그럼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은 그 교회를 교회라는 자격에서 제하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인 무리입니다.

그럼 그 구원을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옮기워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쉽게말하면? 구원의 계획에서 제하여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참 무섭지요?

하지만 무섭게만 보시지 마시구요. 반대로 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 구원을 붙다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사랑은 이런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면 절대로 그 구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밥먹여주냐? 하지요? 밥이 문제가 아니라 구원을 줍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 안양교회가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저는 이 에베소교회의 첫사랑을 통해 건강한 교회를 꿈꿉니다.

지금 우리 성도님들 가지고 있는 사랑의 열심·~! 절대 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껍데기만 남은, 즉 형식만 남은 것이 아니라 그 알맹이가 탄탄하게 차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안동에 갔더니 우리 안동 사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감자농사를 지시는데 한 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잎이 푸르고 무성하게 있어서 그 해 감자농사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었데요. 그런데 막상 케보니까 별것 없더라는 것이지요.

그러나보다 했는데 다음해에는 보니까 잎도 없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데요. 그런데 오히려 그 열매가 큼직하더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의 행위가 저는 이런 모습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다고 해서 행위가 없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가 사랑과 수고가 소망과 인내가 모두다 충만한 저희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충만한 이유가 하나님의 향한 첫사랑의 감동이 살아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 같이 나눴습니다.

모쪼록 우리의 첫사랑이 떨어지지 않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첫사랑 되시는 예수님~ 감사함을 드립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첫사랑을 잊지 못해 이렇게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신 것처럼 나도 그 사랑에 부응코자 합니다. 저로 더욱 예수 그리스도 당신만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배신자의 모습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당신과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하는 헌신과 제가 하는 형제사랑이 제가하는 이 세상으로의 인내가

오직 당신의 사랑이 이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로 더욱 강인한 사랑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은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에 저희는 어떤 원수도,

어떤 상황도 두렵지 않습니다.

부디 그 사랑의 끈이 굳게 묶여져서 우리러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을 가지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해주신 모든 말씀 들을만한 귀를 가져 말씀이 실천에 옮기워지는

저희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항상 주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며

당신의 첫사랑 되기를 소망하는 부족한 종이 기도드렸습니다.

출처 : 하나님의 종 바나바의 자료
글쓴이 : 끝장보는 신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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