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를 중심으로 본 히브리서
박상욱
1.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는 성경 66권 중에서 다른 책과는 달리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약은 율법과 제사 중심의 예표로,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한 실현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히브리서는 이 두 가지 사실을 한 책 안에서 아우르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와 같이 바울의 신학을 율법과 복음으로 집대성한 책도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초대교회에 복음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으로 그 구조가 일종의 대립 형식을 띠고 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을 하나로 이해하려는 차원에서 기록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히브리서를 공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고는 구약의 중심인 성전, 그 중에서도 핵심인 지성소의 개념을 중심으로 그 구조와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지성소를 다루는 10장을 중심에 두고, 전반부는 지성소로 나아가는 성소의 각 단계를 예수께서 어떻게 더 온전케 하셨는가를 설명한 후, 후반부는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지성소에서 나와 속죄와 연합을 선포하는 성도의 삶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2. 히브리서의 구조
히브리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선언적 의미를 가진 전체 서론(히 1:1-3)을 포함한 전반부의 교리 논증(히 1:1-10:18)과 후반부의 실천 부분(히 10:19-13:25)이 바로 그것이다.1) 이렇게 구분되는 히브리서의 중심에는 지성소가 있고, 그 내용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과 지성소에서 나온 후 행해야 할 의무를 기록하고 있다. 지성소는 하늘 차원의 처소로2) 죄인인 인간으로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예수께서 그곳에 먼저 들어가신 후 새롭고 산 길을 열어놓으셨다. 이는 우리도 그 길을 따라 나아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3)
히브리서는 이와 같은 구조적인 특징을 통해 믿음을 두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회심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필요함을 말하는데, 결국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다. 이 부분이 바로 교리적 논증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두 번째는 성장과 성화와 성숙을 위한 지식으로 이미 구원을 얻은 성도가 어떻게 하늘의 제사장을 닮아가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 실천적 부분이다.
2.1. 교리 논증(히 1:1-10:18)
히브리서의 첫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내용으로 다시 전체적인 서론과 실질적인 교리 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짧게 기록된 전체 서론(히 1:1-3) 부분은 히브리서가 말하려는 믿음의 근원을 설명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과 인성을 선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옛 계시는 히브리서 전반에 걸쳐 성막으로 대표되며, 새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계를 통하여 그 의미와 실상을 찾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결국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막을 기준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정되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서론에 이어 나오는 실제적인 교리 논증(히 1:4-10:18)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의 내용을 교리적으로 잘 설명한 신학 서적과 같다. 교리 논증의 부분은 믿음의 첫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하는 질문에 과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한 여러 가지 계시들과 비교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가 더 우월하고 온전하다는 사실을 증거함으로써 답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4)
- 천사보다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1:4-14)
- 천사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2:5-18)
- 모세보다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3:1-6)
- 아론보다 탁월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4:14-5:10)
-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로운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7:1-28)
- 새 언약과 참 장막을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8:1-13)
- 새로운 성소와 언약을 세우는 보혈의 능력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9:1-28)
-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10:1-18)
이러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저변에는 구약 율법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성소와 제사장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특히 지성소를 중심으로 하는 대제사장에 대한 기록은 구약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대제사장의 개념과 본분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5)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적인 논증 방법은 참 성소인 하늘의 모형으로 구약의 보이는 성소가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천사를 통하여 모세에게 전달된 율법의 불완전함이 더 우월하고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기록하면서 성소에 들어가는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6)
2.2. 실천 부분(히 10:19-13:25)
교리 논증 부분에 뒤이어 나오는 실천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지식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음의 네 가지 삶의 모습으로 설명한다.7)
- 지성소에 들어가 거하는 삶(10:19-25)
- 온전한 믿음으로 사는 삶(11:1-40)
- 소망과 인내로 사는 삶(12:1-13)
- 사랑과 선행으로 사는 삶(13:1-25)
이러한 네 가지 실천적인 삶의 제시는 교리 논증에서 설명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속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반부가 우리를 참 대제시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백성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물로 씻어 거룩하게 된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을 따르는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존재로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후반부 실천 부분은 구원을 위한 실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온전히 이룬 자들이 다시금 구원에 관한 의심이나 고민에 머물지 말고,8)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셔서 구원과 자유를 선포하셨듯이 동일한 사역을 담당하는 온전한 직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9)
3. 히브리서 구조의 중심 - 지성소
앞서 히브리서의 구조에서 본 바와 같이, 전반부 교리 논증(히 1:1-10:18)과 후반부 실천 부분(히 10:19-13:25)의 중심은 바로 10장이다. 이 10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이심(히 10:1-18)과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가 거하는 삶(히 10:19-25)에 대한 내용이다.
히브리서 전반부의 전체 구조를 보면, 천사보다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되어 이 땅에 오셨음을 설명하고(1-2장),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임의 우월성에 대해 가르친다(3-8장). 이어서 이 영원한 대제사장은 새로운 성소와 언약을 세우는 분이심을 말하며(9장), 그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이 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하셨음을 강조한다(10장). 그리고 뒤이어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한다(11-13장). 이와 같이 히브리서 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절정이며, 히브리서의 절정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히브리서의 중심이 지성소임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렇게 두 개로 구분된 지성소에 관한 지식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앞으로 이루어야 할 구원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가르친다. 따라서 히브리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성소가 가지는 다중적인 가치와 기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3.1. 지성소의 역할
성막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지성소는 성전 제사의 목적인 속죄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다. 성막의 기초는 바로 죄를 사하는 피를 보는 것인데,10) 지성소는 제사장 중에서도 구별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한번 있는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곳이다. 그곳에는 제물의 피를 뿌려 죄 속함을 받음으로 생명을 얻는 속죄소(시은좌)와 하나님의 계명이 들어있는 법궤(언약궤, 증거궤)가 있다. 성소와 지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는11) 휘장에 의하여 구분되는데, 단순히 공간의 구분이 아니라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근원적인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12)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까지는 휘장으로 구분된 곳이었으나, 이후에는 휘장이 사라져 히브리서 10장에서는 성소와 지성소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제사장만의 공간이었던 지성소가 피값을 주고 사셔서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신 우리13)에게도 열려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결국 지성소에서의 직분을 우리가 감당해야 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3.2. 지성소의 의미
지성소는 성소 안에 휘장으로 구별된 공간으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속죄의 일에는 세 구성원이 필요하다.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백성,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는 대제사장이다. 따라서 지성소를 보는 시각이 세 관점에서 이루어져 지성소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3.2.1. 하나님의 관점
지성소는 영광의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한 장소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곳이다. 죄 있는 자와 함께 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중에 오실 때에 천사를 통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하셨고, 그 장소가 바로 지성소였다. 성령이 들어와 계신 우리의 영혼을 지성소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지성소에서 보이지 않는 영이신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 아브라함을 통한 언약과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한 증거로 나타내셔서 체험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곳을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로 사용하심으로써 후에 아들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온전한 교제의 그림자를 내보이셨다. 결국 성막에 지성소를 두신 이유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속죄의 과정을 통해 살리시고 함께 교제하시려는 뜻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3.2.2. 백성의 관점
백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성소는 병과 저주의 근거가 되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이곳은 자신의 죄를 대신 짊어진 제물의 피가 뿌려져야 할 장소이고, 하나님이 용서를 베푸셔서 그 제사가 온전히 상달되어야 할 거룩한 공간이다. 지성소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백성의 생사(生死)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으로, 이를 통해 자신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반드시 확인받아야 한다.
따라서 백성이 바라보는 지성소는 늘 두려움과 함께 희망이 있는 장소요, 죄 용서함을 받는 제사가 성공한 이후에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기쁜 소식(복음)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여 응답을 구하는 장소다. 죄 있는 모양으로는 도저히 근접할 수도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저 자신을 대신하는 대제사장의 수고와 성결에 의지하여 속죄 받았다는 대제사장의 선언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3.2.3. 대제사장의 관점
대제사장에게 있어서 지성소는 자기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극한의 공간이다. 지성소는 자신과 백성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들어가야 할 불가피한 장소이지만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대제사장은 제물의 선택에서부터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순종으로 행하였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의 죄를 대신하는 일이기에 피하거나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소에서의 대제사장은 자기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신하는 존재가 되며, 그곳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응답과 영광을 보는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응답과 영광은 모든 속죄 제사가 끝난 후 성막 문 앞에서 나팔을 불며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여 하나님을 뵙지 못한 백성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뵌 것과 같은 동일한 경험을 하게 한다.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지성소 안에서는 백성을 대표하여 죄를 짊어진 제물의 모습을 가지고, 지성소 밖에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적 작정과 선언을 대신하는 사자(使者)의 직분을 가진다. 이는 마치 청지기와 같아서 주인 앞에서는 종의 대표로, 다른 종에게는 주인의 대리자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모습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였다.
이처럼 히브리서에 나타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지성소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듯 본질이신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으로 오셔서 죄 있는 백성을 만나려 하셨고, 백성의 입장에서는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을 당하는 제물의 모습으로 오셨다. 또 대제사장의 입장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있는 백성의 대리자로 속죄의 일을 담당하시고, 속죄된 사실을 선포하시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헐고 그가 다시 지으리라14) 하신 온전한 성막의 기능을 홀로 담당하시는 것이었고, 이러한 중보자의 직분을 그의 제자들에게 맡기셔서 옛 계명을 대신하는 새 계명을 주셨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함15)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온전한 지성소의 역할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반부의 교리 논증에 기록하여 우리가 온전히 의지해야 할 대제사장을 보여주고 있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해야 할 우리에게 어떻게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를 후반부의 실천 부분에서 가르치고 있다.
4. 지성소 중심으로 본 히브리서
히브리서는 그 내용의 중심에 지성소를 두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 피를 가지고 속죄 받으러 들어가는 과정과 속죄가 이루어진 이후 나와서 선포하는 과정을 좌우로 펼쳐 놓고 있다. 이는 마치 신앙의 양 날개와 같아서 온전한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믿음을 효과적이고 균형적으로 가르친다.
4.1.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은혜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즉, 죄인이었던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부분으로 육체의 행함보다는 제사장의 자격과 제물, 그 피의 능력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4.1.1. 유일한 문, 유일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성막의 문으로 다른 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듯이 속죄를 받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은 유일하다. 이 문을 넘어가는 것은 절도요 강도이기에 불법자에게 주어지는 형벌만이 있을 뿐이며, 정상적이지 못한 제사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가 없다.
유일한 문과 같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대제사장도 유일하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오셔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분이다(히 4:14-16). 이스라엘은 유일한 문 앞에서 제물에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제물을 죽여 유일한 대제사장에게 맡김으로써 속죄를 의탁하였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 되심은 짐승의 피가 가진 한계를 초월하여 영원한 속죄를 선언하는 것이다(히 9:12).
백성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고민하지만 자신이 죽는 것도 또 자신이 피를 들고 지성소에서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다른 제물이 피를 흘리며, 대제사장이 그들을 대신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지성소를 향하여 출발하는 것을 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모든 사역을 마치고 자신에게 돌아와 제사의 완성과 속죄의 성공을 선포하는 기쁨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다. 우리에게 피를 요구하심도 아니요, 위험을 감수하는 희생을 요구하심도 아니다. 오직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제물의 피와 대제사장을 의지하는 믿음뿐이다(히 7:24-25).
4.1.2. 성막 뜰
성막의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이곳은 죄를 짊어진 제물이 희생을 당하고 그 형체가 사라지는 곳이며, 그 흔적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곳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나 자신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나타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찢기시고 죽으심으로, 이 땅에 그 모양을 남겨두지 않고 하늘에 오르셨다. 또 물로 받는 침례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듯이 십자가에서 별세하심으로 그가 받아야 할 침례로써 자신의 공생애를 온전히 완성하시고 의를 이루셨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성막 뜰에서는 이렇게 모양은 사라지고 오직 공로만 남는다. 우리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라졌으나 그 공로는 분명히 남아 피에 생명이 있듯이 오직 생명으로만 지성소에 들어갈 권리를 남기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설 담력을 얻게 하셨다. 성막 뜰에서의 고난은 결국 세상의 지배자인 마귀를 멸하시려는 의지의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다(히 5:8-9).
4.1.3. 성소의 도구들
성소는 성막의 중심에 있는 공간이며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지성소에서의 피를 통한 속죄가 전제되지 않는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하다. 다시 말해서 성소에서의 섬김이 쌓이고 쌓여서 지성소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온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어린양의 피가 지성소에 들어갈 자격과 담력을 주는 것이다(히 9:7). 물론 섬기는 예법도 중요하지만 이는 피를 통한 속죄 제사가 성공한 다음에야 가능하고 유익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혈의 공로 없이는 성령의 감동은 가능하나 임재는 불가능하고,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나 의와 인과 신이 없이는 온전치 못하며, 간절한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없이는 응답이 보증 되지 않는 것처럼, 지성소의 속죄가 없이는 성소의 등대와 진설병과 향단은 의미가 없다. 피 흘림이 없이는 성막의 존재 이유 중 가장 기초인 죄 사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히 9:22).
4.2. 지성소에서의 삶
지성소에서의 삶은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임마누엘의 삶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성소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우리에게 영혼이 가장 중요하고 육체는 그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성막의 다른 부분은 결국 지성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지성소에서의 행위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나, 생명을 성취한 이후에 정해져야 할 방향성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4.2.1. 휘장
지성소는 둘째 휘장 뒤에 존재하는 공간으로(히 9:3), 휘장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롭고 산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의미한다(히 10:20). 곧 예수께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이 휘장은 대제사장과 제사장을 구분하던 기준이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간과 제사장이 섬기는 공간을 구분하는 도구였다(히 9:6-7).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열리므로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제사장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제사장으로서의 섬기는 일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인정하심을 입을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히 10:22).
4.2.2. 법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에는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 보관되어 있고, 이와 함께 하나님이 열매로 증거 하신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하나님이 명령하신 언약의 증거로 먹었던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들어 있다(히 9:4). 돌로 된 비석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성령으로 새겨졌다(히 10:16). 성령을 통한 은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성령이 성도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이고, 성령의 열매는 성도들 안에서 드러나는 증거가 된다.
성령이 임하신 성전 된 성도란 결국 지성소 안 법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법궤를 덮고 있는 뚜껑인 속죄소는 제물의 피가 뿌려지는 장소로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는 뜻의 시은좌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성령의 역사가 피 뿌리는 은혜를 통하여 나타남을 의미한다(히 9:13-14).
4.3. 지성소에서 나오는 길
지성소에서 나오는 길은 지성소 안에서 체험한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의 증거와 진리에 순종하는 행함을 의미한다. 지성소와 성소가 합쳐진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지성소에서 나온 이가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문제다. 마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와 증거를 구하며 이동하였던 것처럼, 안식과 기업을 향한 수고와 순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4.3.1. 제사의 완성을 위한 방향
지성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지만 지성소가 대제사장이 가야 하는 방향의 마지막은 아니다. 지성소에서의 속죄를 완성한 대제사장은 반드시 다시 성소를 통하여 뜰을 지나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는 자기만을 위한 제사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제사의 완성을 선포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두고 여러 가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안식을 향하여 담대히 전진하였던 것처럼(히 11장), 다른 이들의 죄가 사해졌음을 나팔을 불어 선언하는 것이 대제사장 임무의 온전한 완성이 된다(히 11:40).
4.3.2. 증인 된 고백
성소를 통과하여 백성 앞에 선 대제사장은 이제 당연히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갔던 제물의 피 뿌린 결과를 선포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성막 문 앞에는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이 있기에(히 12:1), 대제사장은 그가 받은 약속을 선언함으로써 지성소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성막의 문을 통과할 담대함을 가르쳐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새로운 삶을 결단하게 만든다.
증인 된 삶은 성막의 울타리를 두른 세마포와 같은 착한 행실로 성막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유일한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능력이 된다. 또한 은으로 되어 반짝이는 기둥머리와 세마포는 하나님과의 화목한 삶과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가르치는 능력이 된다(히 12:14).
4.3.3. 능욕을 지고 나가는 영문 밖
지성소의 피의 은혜를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던 것같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의무를 지닌다. 이는 모든 능욕을 지고 성문 밖으로 나가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대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히 13:12-13). 예수께서 의인이시나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하시고 간구하셨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처럼 경성하기를 원하신다(히 13:17).
예수 그리스도를 양의 큰 목자로 삼으셔서 영원한 언약을 이루게 하셨듯이 피 뿌려 거룩하게 된 증거로 성령을 받은 우리는 온전한 안식인 하늘에 들어가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히 13:20-21).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힘입어 자녀 된 권세를 나타내셨듯이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을 성령으로 보증 받아야 한다. 또 그리스도의 직분을 가지고 죽음과 부활로 영광을 얻으신 예수처럼 그리스도의 직분을 능히 감당하는 결단과 간구가 있어야 한다.
5. 나가는 말
히브리서에 나타난 지성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신 참 하늘에 들어가는 방법은 속죄와 신앙생활과 영생임을 잘 알아야 한다.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나아가 피 뿌림을 통해 얻는 것이 속죄이고, 지성소에서의 성공한 예배의 결과를 나타내고 그 영광을 섬기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 결과로 영원히 하나님과 막힘이 없이 만나고 교제하고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영생이다.
구원은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얻는 것이고,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둘을 성령으로 영원히 보증 받는 것이 바로 영생이다. 속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이므로 우리의 공로가 필요 없지만, 신앙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단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오는 이유는 바로 자기 십자가를 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깨닫고,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온전한 순종을 배우시고 영광에 이르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성소에 이르러 영생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살아있는 신앙이 필요하다. 히브리서는 지성소를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인 구원과 지성소에서 나가는 길인 신앙생활, 그리고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영생을 조화롭게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 Andrew Murray, 『지성소』, 정현대 역 (서울: 벧엘, 2008), 18.
2) Ibid., 289.
3)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0-22)
4) Andrew Murray, op. cit., 18-19.
5) 김기동, 『히브리서 강해 1』(서울: 베뢰아, 1997), 157.
6)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7) Andrew Murray, op. cit., 19
8)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9)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10) 김기동, 『성막의 모형과 실상』(서울: 베뢰아, 1998), 90.
11)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12) 김기동, 『히브리서 강해 2』(서울: 베뢰아, 2002), 115-6.
13)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15)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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