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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교다원주의II

하나님아들 2012. 7. 31. 11:41

               종교다원주의II


                 목  차


       서론

 

       본론
           1) 익명의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2)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3) 우리나라의 종교 다원주의에 대하여
           4) 교회 밖의 구원에 대하여


       결론

    서       론
우리나라의 어떤정승이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서 어느때이고 간에 누구의 자식이고 간에 함께 식사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싸움도 말려 주기도 했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이 싸우다가 정승에게 가서 재판을 요청했다.정
승이 싸우는 아이들의 말을 다듣고서 “야 네말이 옳다 ” 했단다 .
옳다는 판정을 받은 아이는 의기양양하였으나 반대로 다른쪽 아이는 기가죽었다.
“저는 뭐가 잘몼되었읍니까?”하는 항의에 “사실 너도 옳아” 했단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하여 싸움을 그만두고 정승을 나무라며 물러 갔단다.
이판결을 보고 있던 부인이 “아니 두 애가 다옳습니까?”하며 항의를 했단다. 정승의 말인즉 “여보 당신말도 옳소”라고 했단다.

최근 감리교의 제 19차 총회에서 다원주의의 신학을 주장해 오던 두 교수의 파문은 또한차례 우리들에게 여러가지를 말해 주고 있다 .
어쩌면 위의 정승의 이야기 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도 옳고, 너도 옳다.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이 두교수의 말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는 감리교의 분열까지도 이야기하는 단계에 까지 치닫게 되었다 .
사회의 환경이 느슨해 짐에 따라서 또다시 종교 다원주의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 다원 주의에 관한 논의는 에덴동산에서 인류가 추방된 이후의 계속되는 논쟁일 것이다 .
이스라엘의 종교와  다른 종교와의 관계를 비롯하여서 교보시대에 와서는 그 논의가 더욱 활발해 졌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간의 논쟁은 과연 기독교 이외에 다른 종교들에게도 구원이 있는가? ,기독교를 통하지 않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는 문제로 표면화 되고 다른 학자들 간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종교적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절대적인 입장에 비해서 상대적인 것에서 비롯되는데 절대적인 진리 조차도 주장하지를 못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은 이런 상대주의적 사고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구실이 되고 옹호 하고 있다 .
이러한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서 신학은 하나님 중심 보다는 신중심으로 다른 종교의 보편적인 구원에 너무 지나치게 너그럽다 보니 기독교가 거기에 맞춰가는 인상을 받는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에 대한 이론은 3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1
첫째로 기독교 절대 주의 ,둘째로 종교 다원주의 ,셋째로 포괄 주의가 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고 절대 종교라는 기독교 절대주의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맥락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모른다 .
필자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절대주의 입장을 토대로  하여서 현재 모든 종교의 상대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다원주의에 대하여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먼저  익명의 그리스도교의 의미에 대하여서 살펴보고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한국의 종교다원주의,교회 밖의 구원에 관한 여러가지  학설에 대해 소개를 하고 거기에 대한 나의 견해와 비판을 첨가하려고 한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관계는 기독교의 자기 이해를 위하여서 중요한
과제가 되는 동시에 다워주의는 기독교에 대한 큰위협과 도전이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와 같이 유일한 종교라고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라고 주장하는 종교가 없기 때문이다.


          본        론


1. “ 익명의 그리스도인” 에 대하여서
익명이란 의미는 어느 존재하는것(seiande)는 본질이 들어 잇는 것이 표현되지 않고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익명의 그리스도 인이란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한다 .
소요성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것보다도 완전한 본질 규명이 결여 되어 있고 그리스도 인이 가시적인 그리스와 그의미가 완전히 일치 되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것도 아니다 .
“익명의 그리스도교”가 의미 하는 것은 인간이 세례를 받기전에도 성화케 하는 은총을 소유 할수 있다는 것이다 .
다시말하면 가시적인 그리스도 밖에서도 의인의 은총을 소유할수 있다는 것이다. 2
라이너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두가지의 전제 적인 조건을 이야기한다 .
첫째는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세상에서 역사하는 초현적인 의지이고
둘째로는 타종교가 비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소망,사랑으로 구원을 받을 적에 칭의와 구원의 획득에 부정적인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교회 밖에 구원이 있다고는 하지 않지만 선하므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착함을 행함으로 인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는 남에게 선을 배풀고 서로 사랑 하는데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이것이 설사 교회 밖의 구원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비 성서적인것만은 틀림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들 즉 복음을 듣지못한 사람들의 구원에 관한 논의 이고 다른 종교와의 대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신학의 해석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

2.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세계교회협의회(W.C.C.World Council of Church)가 처음으로 발족된 것은 1948년 8월23일 부터 9월 24일 까지의 화란의 암스텔담에서였다.
W.C.C 는 세가지 병행 노선이 있다 .
선교,정치와신학의 구분 그리고 사회 정치적 문제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
이세가지 관심사가 첫째는 선교회의 둘째는 생활과 봉사운동에 관한 회의 셋째는 신앙과 직제에 관한 회의등에서 차례로 노의 되었다.
1948년 8월에 열린이후 계속해서 6차 총회가 카나다 밴쿠퍼에서 열렸다.
여기서 W.C.C의 6차례의 주제와 요점등을 알아 봄으로 인해서 동향을 알 수 있고 추구해오 방향등을 알 수 있고 나름대로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

  1) 1차 총회

총회의 주제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었으며 칼 바르트(Karl Barth)와(C.H.Dodd)박사가 주제 가연을 담당하였다 .
칼 바르트는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만들어 내 어떠한 종류의 계획과도 결코 혼돈되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칼바르트는 신정통주의 신학자였으며,W.C.C총회 대표자들 대부분도 인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자였으므로 “하나님의 계획”보다는 정치적 무질서가 주관심이었다.
가시적인 세계교회의 통일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구속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사회적 관심과 영향에 더 관심을 가졌다.
정치적인 권위나 경제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용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책임을 져야하며, 이러한 책임이 있는 곳에 복지가 있는 것이며 ,인간은 결코 정치나 경제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또한 죄로 말미암은 잃어버린 영혼의 구속 보다는 세계의 사회주의에 역점을 두었다.
또 국가와 교회와의 밀접한 상호동맹 관계를 주장하였다.
특별히 부명한 개념이 없고 그저 창백하고 단순할 뿐만 아니라 해석도 고의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는 뼈만 앙상한 교리의 선언들로만 나열되어 있다.
암스텔담 총회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주제를 놓고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4개 분과로 나누어서 토론 하였다.
제1분과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세계교회로서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서 칼 바르트는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증거할 증인들로 세우신 사람들이 모인 것이며,세우심을 입은 자들은 서로 교제를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제2분과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증언으로써 교회의 공동 과업은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라는 것이다 .
핸드릭 크리머는 모든 나라 ,모든 환경과 문명, 모든 환경과 조건에 처해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오늘의 혁명세계 형편 가운데 말과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세계적인 과업이라고 하겠다.
제3분과는 교회와 사회의 부조화로 현대문명의 부조화와 위기를 분석하고 “책임있는 사회”를 건설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
제4분과는 교회와 국제적 부조화로써 모든 종류의 독재와 제국주의를 싸워 물리쳐야 한다는 것과 기본적인 인권과 종교적인자유를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다.

  2)제 2차 총회

제1차 총회 후 6년뒤 미국에서  제2차 총회를 개최하였다.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희망”이었다.
제2차 총회의 주도적인 역활은 프레몬트 티틀박사가 담당하였다.
에반스톤 총회는 6개의 분과를 나누어서 연구와 토론을 하였다 .
제1분과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 교회의 분열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으며 그분열의 죄악을 벗고 교회의 전통과 특성을 부인하는 죽음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제2분과는 교회밖을 향한 교회의 선교에 대한 것으로써 선교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활을 강조 하였다 .
제3분과는 세계적 상황에서의 책임있는 사회에 관한 것으로써“책임있는 사회”에 대하여 보다 더 정확히 정의를 내리고 현존하는 모든 사회질서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
제4분과는 세계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 인의 투쟁에 관한 것이다 .
제5분과는 인종적 및 종족들 가운데 있는 교회로써 국제적 평화와 정의구현을 위한 교회의 사회적인 강조 하였고 세계국가들이 대중을 살해하는 무기 사용과 침략 행위를 금해야 한다고 하였다 .
제6분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와 직업에 대하여 하였다 .

  3) 제 3차 총회

1961년 11월 18일 부터 12월16일 까지 제3차 총회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렸다.
이대회에서는 세계의 사회적인 또는 정치적인 것에 가리워져 신앙 적인 것인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오직 “신속한 사회변화”와 저개발국가의 이익,즉 제3세계에 촟점을 맞추고 다음과 같은 영역을 포함한 행동을 요구 하였다 .
(1) 정치적인 독립과 민주주의
(2) 산업 및 도시개발
(3)시골및 농촌 생활 에 역점을 두었다.
서구의 교회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신속한 사회변화에 대처할 주요한 과업을 떠 맡아야 할 역활을 강조 하였다 .
뉴델리 총회에서는 교회의 3중 과업을 증거,봉사,연합으로 나누어서 토론 하였는데 그 제 1분과인 증거에서는 그리스도와의 복음을 내세우면서도 그리스활동의 보편성 내지는 범종교 주의를 인정 하는 듯 하였으며
제2분과는 봉사의 본질과 형태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기독교의 봉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세상의 일반 자선과는 구별 된다고 한다.
교회는 인종의 평등과 정의를 위해적극적으로 투쟁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으므로한가지 형태가 아닌 여러가지 형태의 방법을 통하여서 (화해,소송,입법화,주재,반항,경제적 제재,비폭력적 행동 및 세속적 단체들의 협력의 방법 보다는 과격한 혁명적 형태의 정치,사회 참여 ...)봉사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
제3분과는 연합의 본질과 목적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이시며 선물인 연합은 실질적으로 나타날수 있다고 한다.

  4) 제 4 차 총회

1968년 7월 4일 부터 20일까지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열렸다.
주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였노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이고 이 총회에서 이들은 4가지 중심문제 “인종 차별 평화 ,사회 정의,그리고 제 3 세계의 발전 ”이라는 것에 주점을 두고서 혁명적 폭력의 원칙을 옹호 하였다.
제 4차 웁살라 총회는 교회의 전통적인 노선 ,곧 전도 ,교육,봉사,구제 사업으로부터 교회 자체의 병행으로 급진적 개혁을 할것을 주장하였다 .
또한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을 지원하는 인종차별 투쟁 사업을 합법화 한 총회 이었다 .

   5) 제 5 차 총회

1975년 11월 23일 부터 12월 10일 까지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렸다.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한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이고 이총회는 적도 이남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였다 .
그리고 여성과 젋은이와 평신도에게 대표할 당제가 실시된 최초의 총회였다.
여기에는 로마교황청에서 파견한 16명의 천주교 사람들을 비롯하여서 불교 ,힌두교,모슬렘교,유대교 등에서도 옵저버로 참가 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이방 종교와의 혼합을 원하고 있었기에 대화를 주요시 여기고 있었다.
나이로비 총회에서는 “ 해방” 을 여섯 부분으로 말하고 있다.
(1) 오늘날 그리스도를 고백 하는 것
(2) 연합을 요구 하는 것
(3) 공동체에 대한 추구 ,다양한 신앙과 문화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 탐구,
(4) 해방과  공동체를  위한교육
(5)불의의 구조와 해방을 위한 투쟁 ,
(6) 인간 발전 등으로 구분을 지었다.

   6) 제 6 차 총회

1983년 7월24일 부터 8월 10일 까지 카나다의 뱅쿠버에서 열렸다.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 ”(Jesus Christ ,the life of the world)으로써 평화와 정의 문제를 비롯하여서 아프카니스탄 ,중미,세계기타 지역에서의 사건들에 이르기 까지 포괄적인 여러가지 주제에 대하여 다양하게 성명을 발표하였다 .
주 강사는 프랑스의 진 배니어박사 였다.
뱅쿠버 총회에서 우리들은 친공산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범 종교적인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유대교도 ,힌두교도 , 이슬람교도,불교도,시크교도등이 뚜렷이 부각된 여섯가지 공개 사업을 하였는데 이점은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뱅쿠버 총회는 이교적이며 비기독교적인 종교의 영향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견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견해 』

에큐메니칼 (Ecumenical) 이나 에큐메니즘(Ecumenism)이란 단어는 구약 성서의 에레초(erets)와 테벨 (tebel)의 두말이 70인 번역자들의 손으로 헬라어로 오미쿠메네(Oikoumene)로 번역 되어서 유래되었다.
현대적 의미는 두 교회, 두개이상의 교회의 연합을 의미한다 .
신약 성서의 마태복음 24:14 에 온세계라는 말에서 자주 인용 되며, “인간이 거주하는 온세계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
더 나아가 “전세계의 교회의 일치”  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
W.C.C가 주장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기독교 내의 수많은 교파들을 연합하여서 한세계적인 단일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
그들은 이것을 통합하고 하나로 이끌기위해서 연합 사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교리는 달라도 교회는 하나 , 봉사는 같이 한다 .”라는 슬로건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좋은 의견이고 신앙인들을 인정하고 통합하려는 것인것 같이 느껴지지만 비신앙적이고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W.C.C의 총무였었던 후프트의 에큐메니칼이란 말의 의미를 보면 더욱 싶게 짐작이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
1. 인간이 거주하는 전 지역을 나타낸다 .
2.로마제국의 전 판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
3. 전체 교회를 의미한다 .
4.전체교회가 타당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5.교회의 전 세계 선교에 관계된 말이다 .
6. 교회의 전 세계선교에 관련된 말이다 .
7.둘 이상의 교리들 간의 연합에 관계된 말이다.
8.그리스도 인의 일체성을 인식하며 이루고자 하는 태도나 활동을 의미하는 말이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많은 교파를 통합 하면서 로마 카톨릭과도,이방 종교와도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들은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고 , 그러기에 매 총회 때마다 참석하는 타종교 대표들과 같이 예배를  드린다 .
이것은 분명히 비성서적이고 불신앙의 모임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
한국의 에큐메니칼운동의 출발점은 선교사들이 시작하였다.
1885년에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셀러가 한자리에서 예배를 보면서 합동 전선을 폈다는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에큐메니칼운동의 지도자들은 교회가 이사회 속에 들어가서 눌린자 ,억울한자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함께 기뻐 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속 인간에게 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형이 상학 적이거나 종교적인 언어들을 극히 현실적인 언어로 바꿔야 함을 이야기한다.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사회문제를 인간 자체에서 본다 .
인간의 노력이나 힘에 의한 사회제도의 개선과 화해를 강조한다 .
성경의 일차적인 가르침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을 주는 것이 그리스도 인의 최고의 노력이라고 생각 하는 견지에서 보면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리 지양할것이 못된다고 생각을 한다.

W.C.C는 초교파적이고 맑스주의이며 자유주의 기독교의 연합 단체이다.
그들은 교리적 신앙적 전통성을 무시하고 배교와 불신앙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
더욱 이런 풍조가 한국 교회를 파멸시키기 전에 더욱 이러한 운동이 무엇인지 아려야 할 필요가 있고 다시 한번 더 우리의 전통성을 고수하고 전하는데 있어서의 노력을 아끼지 말것을 당부한다.

3.한국의 종교 다원주의

한국의 종교 다원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변선환 교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변박사는 다원주의를 주장하기에 주저하지않았고 그의 말과 글을 통해서 현재 한국의 다원주의를 이해하고 평가할수 있으리라본다 .
1982년 6월 26일 현대사회 연구소에서 주체한 “ 불교와 기독교와의 대화”모임에서 그리스도교측을 대표한 변교수의 강연은 교계에 파문을 일으켰었다.
그이후 그 발언에대한 그해 7월18일자 신문에 강연요지와 해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는 감리교의 19차 총회에서의 그의 논문으로 인해서 더이상의 설땅을 잃고 말았다.
“한국 교회는 도그마적인 요소에서 타피하여서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모색이 요청된다 .
현 한국 교회는 새로운 해석이 없는 성서주의 견지등에 소심하고 공격적인 정체성으로 인해서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 라고 주장한다.
변박사외에도 한국 다원주의를 논할 때 유동식 박사를 이야기 한다.
유박사는 모든 종교는 하나의 진리에서 나왔기에 모두 같다는 혼합주의적인 입장을 띠고 있다.
복음의 입장은 폴 틸리히의 “숨어 있는 교회 ”와 “드러나는 교회”로 보아서 전세계의 인구가 신의 자녀로서 교회 안에 있는 거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한국 교회도 이처럼 오래전부터 다원주의의 물결이 들어와 있었고 교육의 인식이 중요시 됨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4. 교회밖의 구원의 문제

우리가 교회내의 다원주의와 복음주의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지고 심각하게 노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세계의 종교 주에서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독교에서는 이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논의 되고 있는 것 같다 .종교 다원주의는 노골적으로 다른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변박사의 경우 “ 교회외에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것은 시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고 강력하게 교회외의 구원에 대하여서 주장한다. 만약에 선교사들이 100년전에 한국에 왔을적에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으니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번 생각해 본다. 이러한 주장은 타종교의 선교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구원 밖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우리의 신앙을 고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    론

주로 역사적인 맥락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이해할려고 했다.
서론에서 말했던 이야기처럼 정승이말한 다옳다라고 말한것이 하나님의 말씀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
그래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신앙이 나와 동떨어져있는 전혀 상관이 없이 평가를 한다면 필자도 정승의 말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신앙은 주관적인 것이라는 것에 우리모두가 다같이 인식하고 있기에 내자신또한 주관적인 신앙으로 유일신인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드리기에 망설이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의 물결속에 많은 교인들이 어떤것이 정말 진리일까 하고 의문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른 종교와 같이 똑같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믿었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에게 대한 반항이며 성서의 권위와 신성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결과로밖에 생각이들지 않는다.
그것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의미에서 신학을 발전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줄지모르지만 이런 주장이 더욱 많아질 수록 앞으로의 선교에 대한 어려움이 더욱 증가될것이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옛신앙을 고수해야한다 .
옛신앙의 절대성 이외는 이런 다원주의와 절대의 가치가 없고 상대적인 시대에 옳바른 신앙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신앙이 기독교를 그수많은 시간동안 보호하고 바전시켜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참 고 문 헌>
  박 영 호 .“W.C.C 운동 비판”『기독교 문서 선교회 』 1984.
 『신학사상』.한국신학연구소 ,1982

 

출처 : 두손선교회
글쓴이 : ysong77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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