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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교다원주의신학과 한국의 종교다원성

하나님아들 2012. 7. 31. 11:42

종교다원주의신학과 한국의 종교다원성

차 영 희

--------- 목 차 ---------

I. 서 론

II. 본 론

1. Post-modernis의 정의 및 성격과 특성

2. WCC의 종교신학의 발전과정

3.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해도

4. 종교다원주의의 틀

5. 초기기독교의 다원성

6. 예수의 유일성

7. 한국의 종교다원성

8. 국내신학계의 교육과제와 최근의 문제

III. 결 론

* 참고문헌

I. 서 론

우리시대는 불가피한 다원화의 과정에 있으며 이러한 시점에서 최근에 'Post-

modernism'이란 용어가 발생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여러

사회변화의 산물임 과 동시에 그 징후로서 각 분양에서 다원주의를 촉진시켰으며

당연히 문화의 실체인 종교에도 파급되어 이른바 종교다원주의를 형성케 했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에서 본 보고서를 작성하되 이를 위해 먼저 포스트

모더니즘의 배경 및 성격과 더불어 특성을 살핀 다음 종교신학의 발전과정과 주요

사상을 서술하고 한국의 종교다원성에 관해 언급한 후 결론을 맺고자 한다.

II. 본 론

1. Post-modernism의 정의 및 성격과 특성

포스트모더니즘이란 1960년 주로 미국에서 출발한 미술, 건축, 문학, 음악, 무

용, 과학, 기술 등의 영역에서 서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나타나기 시작한 일련

의 방향으로 그 정의가 분명치 않다. 다만 문자적으로 “후현대주의”라 할 수 있

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자주 “해체주의” 혹은 “탈현대주의”로 불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기존의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매우 위협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다음의 특징을 안고 있다.

1) 불확정성(Indeterminacy)

애매모호하고 불연속적이고 다원론이며 정통이 아닌 이단이고 필연적이 아닌

임의성, 반역, 곡해, 절충, 무작위성, 해체, 변용 등 확실하라는 것에 모두 거

부하는 것으로 이는 현대사상의 ’확실성‘과 대조되는 것이다.

2) 단편화(Fragmentation)

전체의 조화, 통합, 종합에 거부하며 직령이 아니라 병렬을 주장하며 귀족주

이나 전제주의가 아니라 평등과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3) 탈경전화(Decanonization)

규범, 정전, 경전 등에 반항하며 엘리트주의, 남성중심, 서양중심적 사고방

식에 반대한다. 사회, 문화, 과학, 신학에서도 표준적인 정경이 있을 수 없

다고 주장한다.

4) 이종혼합(Hybridization)

주로 문학에 있어서 쟝르의 경계를 마음대로 넘고 다니는 것을 말하며 고급

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별로 없애고 온 우주를 하나의 관점에서 보려는 사상를

거부한다.

5) 대중주의(Populism)

엘리트문화에 적대감을 가지며 대중문화적인 경향으로 주로 미술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며 예술활동

의 장소도 미술관이나 극장이 아닌 지하철, 광장 등에서 이루어진다.

6) 행위, 참여(Perfomance, Participation) 강조

저자와, 독자, 배우와 관객의 구별을 줄이고 예술에서는 구조나 작품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존재와 의미보다는 작용이 중요하다고 본다.

7) 재현불가능성(Unrepresentable)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강조하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것이란 재현자체

속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들이 주는 위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8) 보편내재성(Immanence)

정보, 지식, 의견의 산포, 상호작용, 소통, 상호의존, 상호침투 등으로 보편

적인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들어와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2. WCC의 종교신학의 발전과정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긴 역사를 통해 발전하였다. 차례대로 선교 대회의 성

격과 종교신학을 살펴본다.

1)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

타종교 속의 진리를 인정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라는 이중적 자세를 보임.

2) 1928년 예루살렘 선교대회

당시의 시대상황의 유럽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세속주의의 위협이 강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공동전선을 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되었으며 타종교의 가

치를 톨이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 대회의 종교신학은 기독

교는 다른 종교의 부족 보충, 보완해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소위 성취설인데,많

은 신학자들은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진리와 거짓의 흑백논리로 규정하는

것보다 이것을 바람직한 종교신학으로 환영하였다.

3) 1938년 마드라스 선교대회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바르트주의자인 화란

의 헨드릭 크래머는 그의 저서 'The Christian Message in a non - Christian

World'에서 부른너의 자연계시를 부정하고 성경의 계시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성경적 실재론으로 표현하고, 성경적 실재론은 타종교와 어떤 연속성

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4) 1947년 휘트비 선교대회

타종교에 관해 특별히 취급하지 않음.

5) 1955년 국제선교회와 공동개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살아있는 여러종교”에 관한 주제로 공동연구를 시

작하고 종교간의 대화를 모색.

6) 1961년 뉴델리 선교대회

WCC와 IMC가 통합함으로 교회와 선교가 분리되는 모순을 해소하였으나 통합

시초부터 대화가 전도의 한 형태가 되는 선교신학으로 인하여 WCC는 결국 선교

는 사라지게 됨.

7) 1963년 멕시코대회

대화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와 신자에게 주어진 의무임을 강조하고 타종교

의 사람들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연설.

8) 1968년 웁살라 총회

처음으로 대화를 행동으로 구체화하기 위하여 5인의 다른 종교지도자를 초청

하였으며 이후 중요대회때 타종교인을 초청하며 사원을 방문하기도 함.

9) 1975년 나이로비 총회

공동체와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세속적 대화를 분명하게 천명했으며 타

종교뿐 아니라 공산주의와의 대화도 제한함.

3.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종교관)

1) 3가지 종류와 설명

① 배타주의(Exclusivism)

참된 종교는 오직 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기독교만을 참으로 여겨 타종

교를 멸시와 배척의 대상으로 삼는다. Race에 따르면 바릍, 부루너, 크래머

가 이 입장에 속한다.

② 포괄주의(Inclusivism)

자신의 종교밖에도 고도의 가치를 지닌 종교가 있음을 시인하며 자신의 전

통에서 강조되는 진리의 주장이 다른 전통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다. 칼 라너가 이에 속한다.

③ 상대주의 혹은 병행주의(Parallellism)

만일 자신의 종교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옳은 방법의 상징으로 생각된다면

다른 종교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으며 다른 종교에 대해 간섭하거나 개

종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 다만 자신의 종교전통을 심화시키려는 의무

만이 긍정된다는 것이다. 클리히, 힉크, 트뢸취 등이 해당된다.

2) 주요 신학자들의 입장

① 칼 라너(Karl Rahner)

포괄주의 입장을 취하는 라너는 ’익명의 크리스챤‘이라는 뜻있는 명제를 제

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예수의 수육,

십자가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성취되었으며 이제는 타종교 속에서도 그리스

도가 그의 영을 통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객관적으

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구원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은총으로서의 ’초자연적인 실존성‘이 모든 사람에 존재하기 때문에 객관적으

로 모든 사람의 구월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은총의 역사속에 타종교도 포함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익명의 유신론자‘일뿐아니라, ’익며의 크리스챤‘됨을 라너는 지적하

고 있다.

② 한스 큉(Hans Kung)

큉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절대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편성이다

라너와 같이 포용주의에 속하지만 어떤 면에서 라너를 비판하고 종교간의 대

화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그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부인하지만 기독교의 독특

성을 포기하거나 완화시키지도 않는다. 큉은 다음과 같은 두개의 극단적인

입장사이에서 어려운 길을 택하는데, 첫째로 편협하고 우쭐한 절대주의를 배

격한다. 타종교의 진리와는 무관한 자유로운 기원이라는 뜻의 진리로 스스

로의 종교를 절대화 시키는 입장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타종교를 저주하는

배타적인 입장이나 스스로의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둘째로 무

책임하며 피상대인 상대주의에 반대한다. 다시 말해 진리나 가치가 냉담하

게 상대화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의적인 다원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4. 종교다원주의의 틀

1) 신 중심적 모델로의 전환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의 궁극적 혹은 결정적 규범성이

라는 지점을 문제시하고 이를 넘어가려고 시도한다. 이들가운데 옥텐(Ogden)

은 조금 독특한데, 그리스도교가 참된 종교라면 다른 종교들도 똑같이 참된

종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가능성은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 인해

구성된 게 아니라, 오로지 영원 속의 한 사건(신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성

되었으며, 구원은 항상 어디서나 가능하고 모든 종교적 실천은 변형되어서 그

종교는 참된 종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옥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신의 결정적 재현으로 보긴 하지만, 구원의 구성적.규범적 원인을 영원한 신의

사랑에 두는 한에서, 다원주의자들과 같이 결국엔 신 중심적 모델로 접근한다.

힉은(J.Hick)은 그리스도교 중심적 또는 예수중심적 모델로부터의 보편적인

모델인 신중심적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표현

한다. 이 전환은 그리스도교가 중심이라는 교리에서 신이 바로 모든 인류가 선

회하는 주변의 중심이 된다는 생각으로의 전환이다. 그런데 힉은 종교적 숭배

묵상, 체험의 대상을 ’영원한 일자‘라는 말도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

면 종교체험은 세가지의 중요유형을 갖는다; ①인격적 존재와 의지로서의 신

체험, ②온세계 또는 온 우주를 신적인 실재의 현현 내지는 매체로 경험하는

자연적 또는 우주적 신비주의, ③자아가 신적 실재에 일시적으로 흡수되어 일

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일자(알려진것)는 알고 있는 자의

양태에 따라 알려지고, 종교적 신앙을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기 때문에, 종교

적 신앙은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한편, 니터(P.Knitter)에 따르면 예수의 선교와 인격은 철저히 ’하나님의 나

라“ 중심적이었고, 이는 곧 신중심적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철저히 신 중심

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 중심주의 없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그리스도

교 계시뿐만 아니라 다른 신앙에서 발견되는 계시들에도 침입해 들어가는 우상

숭배로 쉽게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니터는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적 진술들

을 모두 신화로 취급한다.

2) 성육신의 거침돌 제거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신중심적 모텔을 위해 그리스도 중심을 해체하며, 그렇

게 하기 위해 예수의 신성을 벗기고 그를 인간으로 만들 뿐 아니라, 또 이를

위해 신의 성육신이라는 거침돌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J.힉은 성육신의 개

념을 은유적.신적표현 혹은 신회적 표현으로 본다. 즉 그는 전적으로 인간이

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특수한 인간 개념은 본래 상상력이 풍부한 많은

고대문화의 언어에 속하는 은유적 관념이었는데, 그리스도교 전통이 이런 시적

언어를 산문조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은유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삼위일체의

인격인 형이상학적 ‘성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R.파니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실재, 즉 신, 인간, 우주의 전체성에 대한 살

아있는 상징이다. 그리스도는 신, 인간, 세계사이의 통일의 상징이자 그 본질

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들이신 신, 로고스와 동의어이다. 그리스도 또는 로

고스는 궁극자의 외적표현, 창조적 전달로서 나사렛 예수안에서 성육신되었지

만, 이 성육신이 예수 안에서만 유일하게 궁극적으로 그리고 규범적으로 발생

한 것은 아니다.

5. 초기 기독교의 다원성

1) 유대교, 헬레니즘과의 관계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근대적인 역사의식이 눈을 뜨면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의 역사과정은 본격적으로 분석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기독교전

통의 결정적인 형태를 결정하였던 여러 요소 중에서 특히 그리스문명이 기독

교정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식하게 되었다. 하르낙이

말하고 있듯이 기독교의 ”교리는 그의 개념과 구성에 있어서 복음의 바탕위에

서의 그리스정신의 산물“이다. 더욱이 후기 유대교의 세계에서 나타났던 기

독교가 유대라는 경계를 뛰어넘어서 당시의 ‘보편적’ 세계였던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어가 통용되었던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독교가 그리

스 사상과 만남으로써만이 가능하였다. 즉 기독교의 발전에는 헬레니즘 시대

를 통한 그리스문명의 범세계적인 전개가 선행하였고 그리스도교는 이것과 만

나서 ‘헥레니즘화’됨으로써 ‘세계’로 신장될 수 있었다. 우리는 사도시대에

성립되었던 신약성서의 여러문서 가운데서 ‘기독교적 헬레니즘’의 최초의 단

계를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사상은 그리스어를 사용함으로써, 즉 그리스어

로 번역됨으로써 그리스어 고유의 여러개념. 사상의 범주, 전통적인 비유와

의미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함축성을 그대로 지니게 된 것이다. 또한 기독교

탄생 당시의 헬레니즘 세계의 플라톤 철학이나 스토아 철학이 종교적인 성격

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도 기독교의 구윈 내지 구원자 표상이 자리잠을 수 있

는 토양이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의 주요 사상들은 이미 헬레니즘 세계에서

그에 합당한 표현들을 찾을 수 있었기에 쉽게 그리스 세계로 전파 될 수 있었

다.

2) 신약성서의 격의성

기독교가 유대로부터 빚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초기

기독교의 성서는 주로 「70인역」이 사용되었으며 나아가 기독교는 자신들의

필요한 용도에 따라서 여기에 여러 수정을 가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

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급기야 유대인들로부터 반발을 사기에

이르렀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는 것은 구약에 대한 해석이

가미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초기 기독교인들은 구약성서를 독

립된 권위로서가 아니라 해석된 권위로 받아드렸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구약성서를 해석하였던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①신약성서 기자들이 해석을 목적으로 선택한 본문은 대부분이며 메시아적인

것으로 인정된 것들이었거나 또는 예수의 실생활의 견지에서 일견 메시아적

인 것으로 공인된 것들이었다.

②해석은 구약본문으로 인용된 문장들을 그리스도 사건의 견지에서 봄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예수에 의해 야기된 새로운 상황 및 예수에 의해 그 효력이

발생된 구속의 입장에서 조망함으로써 이루어졌다(갈 3:8, 고후 3:7-18 등).

③구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해석자의 상황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즉

여러 경우에 있어서 똑같은 구약본문이 신약성서 기자들에 의해서 각기 다르

게 해석되곤 하였다.

④신약성서 기자들은 구약성서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현재라는 빛에서

재해석하였는데, 이러한 재 해것은 구약의 이른 바 옛 계시를 파기하는 경우

에 까지 철저화되었다.

3) 신약성서의 다양성

기독교는 주변 유대교나 헬레니즘과의 대화와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형성

되었으며 따라서 처음부터 주위 세계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내부적으로도 처음

부터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다양성은 때로 그리스

도에 대한 신앙이라는 통일성을 위태롭게도 할 수 있는 철저한 다양성이었다

J.Dunn의 말을 인용하자면, “신약성서 안에 근거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러한 통일성이란 절대로 없었다. 초기 세기의 대 교회의 통일성은 신학적

인 통찰력보다는 사회적인 요인들에 더 많이 의존했으며 그리고 기독교의 대

안적인, 그러나 동등하게 정당한 표현들을 무시하거나 은페함으로써만 신학

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통상 그러한 정통은 모든 이단들 중에 가장 그

릇된 이단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편협한 완고성과 배타성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변함없이 부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른바 정통이란

기독교 신앙의 ‘현재’에서 타당성을 역사의 개방성에 열어 놓지 못하고 과거

의 것으로 고정시키는 오류인 것이다. 신앙은 늘 정경속의 정경을 찾아 기

독교 전통 전체를 이해하고 현재의 신앙의 자기이해의 위치를 전체 전통 속

에 놓이도록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6. 예수의 유일성

1) 종교해방신학과 그리스도의 유일성

해방신학의 방법론은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다원주의적

인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장과 출발점을 명백히 제시해주고, 그보다 더 복잡

한 문제인 그리스도의 유일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진정한 다원주의적인 종교간의 대화를 가로막는 기존의 절대주의적인 입장을

피하기 위해 그리스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결정적인, 규범적인 음

성으로 이해했던 전통적인 입장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거부라도 해야 할 것처

럼 보인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다종

교의 해방신학이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를

밝히기 위해 니터는 세가지 사고를 제시한다.

첫째로, 해방신학은 실천이야말로 이론이나 교리의 근원이며 확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먼저 진리를 알고 나서야 정당화되는 것은 ”행동“과 ”실

행“속에서 라는 것이 해방신학의 입장이다.

둘째로, 구원중심의 다종교의 해방신학의 우선적인 관심은 그리스도의 유

일성에 대한 바른 믿음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와 그 구

원사업을 확장시키기 위한 바른 실천(Praxis)이다.

세째로, 다종교의 해방신학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 절대주의적, 비 결정적

인 이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람들이 직면하게 되는 또 다른 장애물을 다

루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니터는 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언어를 철학적 언어와 구별하기 위하여

“생존”과 “사랑”의 언어라고 칭한다. 예수가 “유이리회적인”문으로 혹은

“독생자ㅓ”로 불렸던 것은 그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결정적인 신학적, 철학

적 진술을 했기 때문도, 타자들을 배척했기 때문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비젼

과 길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해이동이나 실천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러한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 신약성서 기자들이 “유일회적인”언어를 사용했

다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세주인가

①니터 (Paul F. Knitter)

교회중심의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하고 또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터는 새로운 형태의 기독론과 기독교의 독특

성을 제시한다.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는 기독교 및 예수의

독특성에 관한 물음이다. 옛날과 같이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기독교의 독

특성이 주장되고, 예수에 있어서만 참된 계시와 구원이 성취된다고 주장하

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너와 마찬가지로 비범한 독특

성의 암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모든 종교를 포함하게 되는 것이라면, 최소한 예수는 모든 종교에

서 구원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관

점에서는 ‘관계적인 독특성’이라는 기독교의 독특성을 표시할 수 있다면서

니터는 이에 동의한다. 니터가 생각하기에 예수와 예수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삶이 변화된 개인 및 집단적인 심오한 경험으로 기독론이 표현된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와같은 경험이 일어나는 문화의 맥락속에서

궁극성이나 배타성의 용어로써 그 경험을 표현하게 되었음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오직 하나이며 불변하는 규범적인 뜻

으로 진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러 진리 주장 가운데서 하나

가 옳으면 다른 주장을 지배하거나 흡수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진리는 다른 주장을 포용하는 식의 진리가 아니었다고 니터는 말한다

②힉크 (John Hick)

쉴라이에르마허의 영향을 받았으며 종교제국주의적이었다. 기독교에 대

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힉크는 수육의 교리를 시적으로 혹은 신화적으로 이

해한다. 다시말해서 예수의 독특성이나 규범성을 문자대로 시인할 수 없

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수육된 인간으로서의 예수, 삼위일체에서의 둘째

존재(person), 육신으로 된 영원한 로고스의 개념에 대한 강한 반론을 힉

크는 제기한다. 예수가 스스로를 메시야로 의식한 것도 부활사건 이후의

표현에서 나타나며, 예수는 자신을 수육된 하나님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라는 개념은 신화적인

뜻이며, 신성과 인성이 공존함을 액면 그대로의 사실로 이해하게 되면 오

히려 이단이 된다고 힉크는 지적한다. 그러므로 수육의 교리를 신화가 아

닌 문자적 사실로 주장하는 것이 이단이라는 것이다. 힉크의 결론에 의한

예수의 위상이란 수육의 교리를 신화적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한

충실하고 효과적인 접촉점을 예수가 수행한다고 생각하면, 예수남을 유일

의 접촉점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성취된다는 기독교의 신앙 때문에 그리스도 이외의 구원방법

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색다른 의미의 기독

론을 힉크는 차등기독론 또는 영감기독론이라고 명명하며 베일러가 은총의

역설로서 수육을 이해하거나, 램프가 말하는 영감기독론이 여기에 속한다.

③고가르텐 (Gogarten)

고가르텐은 한편으로 완성자로서의 예수를 말하면서 폐쇄적인 주장을 편

다. 그에 따르면, “폐쇄적”유일성 주장은 후기 희랍철학의 틀 속에 있었

던 중세신학이 전개하였었다. 거기서는 ‘인간의 유일회적인 타락’, ‘유일

회적인 성육신’이 온전히 가능했었는데, 그것은 저들의 이워니론적인 실제

개념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 고가르텡에 의하면, 예수는 원죄 교리 따위에 대하여는 어

떤 암시도 주지 않았다. 이 점에서는 고가르텐이 원죄교리를 신랄하게 비

판했던 트뢸취와 일치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유일서의 그니거는 초자

연적인, 초역사적인원리, 성육신 교리가 아니며, 예수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 사명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신앙’ 곧 “무제약적인 신앙의 복종”이다. 고가르텐 자신의 이해에서 볼

때 예수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발생한 게시는 “단지 역사에 불과한

것”이다. 비록 그에게 있어서 역사란 어떤 의미에서 상대적이긴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예수 역사의 유일성을 말하는데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성취된 자원과 빼앗긴 자원 사이의 구별에서 온다. 다른 하나는

삶의 통전성과 삶의 분산성과의 구별에서 생긴다.

7. 한국의 종교다원성

한국은 역사적으로 불교와 유교, 또 무당종교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타종교

의 역할이 그리 강한 것이 아니다. 그 반면에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한국에도

종교의 다원성을 부르짖는 소수의 신학자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볼 때 아직도 정

통적인 보수신학을 유지하여 왔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의 모범이 되는 교회로서 더욱 외국교회로부터 미치는 신학적인 압력과 다원주

의적인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의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신학자들 가운데 두 신학자를 택하여 그들의 신

학자를 택하여 그들의 신학적인 노선을 살피기로 한다.

첫재로, 인도의 파니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동식교수는 유교는 힌두교의 원

론, 다시 말하면 모든 종교는 하나의 진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모두

같다는 혼합주의적인 인도의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수하였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

는 마치 태양과 위성들간의 관계로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태양

자체는 빛을 내지만 달과 위성들은 자체적으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의 빛에

반응하는 역할로 빛을 나타낼수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타종

교에도 비치어 그들에게서도 복음의 말슴이 잠재되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안(inside)”과 “밖(outside)

으로 구별하지 말고 폴럴리히의 단어 ”숨어있는 교회“와 ”드러난 교회“로 보아

전 세계 인구가 신의 자녀로서 교회안에 속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

다.

둘째로, 변선환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과 다원주의 사상에 대한 주장은 이미

글로써 많이 표현되어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토론제목이 되어 왔다. 변교수는

작년 11월 서울 카톨릭 문화연구원이 주최한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대화모임

에서 정통주의 보수신학을 비난하면서 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새로운

각도의 신학적인 연구와 종교해방 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의

종교신학은 ”선교“가 아니라 ”대화“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

내에만 있고 하나님이 기독교인의 기도만 들어준다는 구식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타종교와 협조하여 하나님의 전인류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건설적

인 세상을 창조해 나간다고 주장했다.

8. 국내 신학계의 교육과제와 최근의 문제

1) 신학교 교육과 교회 교육

오늘날 신학교육의 위기 가운데 하나는 신학교 교육과 교회교육 사이의 관리

에서부터 오고 있다. 신학교 교육은 너무 이론화 되었거나 관념화 경향이 위

험성이 있고 반면에 교회교육은 너무 실용화되었거나 현실적이어서 이 둘 사이

의 긴장관계가 깨어질 위기기 있다.

신학교와 교회의 분리현상은 양쪽을 위해 매우 불행한 것이 아닐 수 없다.교

회쪽에서 볼때 이와같은 분리는 신학의 기초의 흔들림이자 비판의 목소리를 상

실함으로부터 오는 맹목의 가능성이 있으며 신학교 쪽에서 볼 때에 이는 그 열

매가 엄ㅅ는 공허함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 둘 사이는 분리가 아니라 상호

긴장과나계를 갖고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교회의

신학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신학의 교회화가 요청된다고 본다.

신학교는 다원화 상황 속에성의 교회의 기능을 위해서 그 질적 수준과 더불

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교회는 실용화만을 도모할 것이 아니라 본래성을 회

복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영성교육, 교양교육, 윤리교육, 공동체교육, 노

도교육, 생태계교육 등 제 요소가 신학교의 교육적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이

를 통해서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보며 교회역시 이렇

게 되면 신학교에의 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동질성의 위기를 모면케 될 수 있다

고 본다. 신학이든 교회신앙이든 그 사유화는 어는 쪽도 역사적 일 수 없으며

공종이 아닌 양쪽모두의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사이호간의 냉소적 태도가 아

닌 역사적 관심이 요청된다고 본다.

2) 최근 국내 신학계에 발생한 문제와 견해

얼마전 감리교 신학대학의 홍정수, 변선화 두 교수의 종교다원주의의 극단적

인 신학적 견해의 주장으로 국내 신학계, 특히 감리교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

켰고, 결국 이단시 되어 출교당하는 사태를 빚었다. 교회음악을 전공하는 학

생의 입장에서 신학적인 문제에 관한 지식도 약할 뿐더러 신학계의 반응과 같

이 예민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교회 연합 시니문에 이

문제에 관한 본인의 견해와 비슷한 글을 기고한 내용이 있어 이를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대신하고자 한다.

한국은 현대주의는 커녕 근대주의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갑작스레 닥쳐오는

탈 현대주의적 사고양식을 강요받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볼때 일치

를 기니급히 요하고 있을 때 또 다시 불일치로 내모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

러나 현대사회의 추세를 덮어 놓고 거부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그래서는 안되며 오늘의 교회는 이를 예견하고 이에 대한 정신적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다원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요구되는 것은 자명

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가운데서 교회와 신학계는 어떠한 신학적 견해

나 주자아에 대해서 신중하게 대응하고 반응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신학자는

우리의 상황속에서 주장이나 발언에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다원주의 사상이나 신학의 물결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한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믿는 근본적

인 신앙의 바탕위에서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III. 결 론

종전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자체도 생소했으며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으나 본 과제를 준비하면서 이제 어느정도 개면이 서게 된 것

같다. 아울러 느낌과 견해를 피력하자면, 현대사회의 다원화 현상은 피할수가

없고 그 속에서 신학사상의 흐름 또한 새로운 물결에 의해 도전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 갈등보다는 상호간 대화와 이해가 요구된다고

본다. 새로운 사상이나 신학에 대해 무조건 거부하고 이단시 하기 보다는 이질

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폭넓게 수용하면서 사랑과 관심 속에 포용하는 태도가 필

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넓게 전하는 기회로 삼는 동시에 냉정한 자기

비판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할 것이다.

< 참 고 문 헌 >

1. 홍정수, 다종교와 기독론, 서울 : 문명문황사, 1990.

2. 최봉기, 다원화상황에서의 신학교육을 위한 제요소들. 서울 : 한국신학교육

연구원, 1991.

3. 도정일, ”포스트모더니즘 무엇이 문제인가“, 창작과 비평 제 71 호(1991,봄)

4. 손봉호,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목회와 신학 (1991, 7)

5. 전호진,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목회와 신학 (1991, 8)

6. 나학진, ”다종교 상화아에서의 기독교“, 목회와 신학 (1991, 8)

7. 노봉진, ”한국의 종교다원주의 현황“, 목회와 신학 (1991, 8)

8. 이신건, ”종교다원주의자들의 부화리과“, 목회와 신학 (1992, 4)

9. 김승철, ”타종교와의 만남의 역사로서의 기독교“ 기독교사상제400호 (1992,4)

10. 김명천, ”포스트모더니즘, 다원사회속의 교회“, 교회연합신문 (1992,4) 5면

11. 박광래, ”폴니터의 종교신학연구“, 90년 석사학위논문, 서울:감리교신학대화.

1990.

출처 : 두손선교회
글쓴이 : ysong777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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