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진들(5)-사라
김 영익 목사
히11:11-12(창21:1-7, 롬4:19-22, 벧전3:5-6)
우리는 히 11장에 나오는 기라성 같은 신앙 위인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중에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믿음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벧전3:6을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갈4:31에는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여기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라의 딸’ 또는 ‘사라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면, 사라는 믿음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사라의 믿음은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아는 신앙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믿음으로 사라는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읽어보면 사라가 이 믿음에 도달하기 까지는 많은 의심과 회의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그의 나이는 99세였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과 사라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난 이야기가 창 18장에도 나옵니다.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창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때부터 사라는 그 순간 실신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을 때에 하나님은 그 믿을 보시고 잉태하는 힘을 주시고 그는 결국 웃음이라는 뜻을 지난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았던 것입니다.
(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사라는 믿음으로 육체의 한계에 묶이지 아니하고 불가능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이때 사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렘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찾아 오시면 불가능이 극복됩니다.
(마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눅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서는 못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을 받으려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으면 불가능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무슨 일을 할 때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를 따지지 말고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따지고 믿음에 따라 순종만 하면 불가능은 극복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에게 속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나의 문제는 믿음으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 일뿐입니다.
슥 4:6 힘으로 능으로 안 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지만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 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1846년쯤 목사를 하겠다는 한 청년에게 의사는 "이런 병약한 몸으로 목회를 하면 1년 후 사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만 포기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순교한다는 각오로 복음을 증거했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구제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는 오히려 84세까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입니다. 그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의사를 버렸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했다. 이 믿음이 나를 지켜주었다."
▶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당신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어떻게? 라고 하는 질문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성과 신실하심을 믿는다면, 당장은 그렇게 행하시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넘어서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평범한 경찰관 랭은 식당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오다가 마침 팁을 줄 돈이 없자 복권이 당첨되면 절반을 주겠다고 여종업원에게 약속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400만 달러(48억원) 복권에 당첨되자 랭은 주저하지 않고 절반인 200만 달러를 약속대로 여종업원에게 줍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입니다.(Promise is promise).’ 부패한 인간 중에도 이렇게 약속을 귀중하게 여기는 신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기시거나 바꾸신 적이 없습니다. 죄악에서 인간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 때문에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성경을 통하여 수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으로부터 우리들을 주님이 만드신 영원한 처소인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약속에 신실하시고 끝까지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민수기 23장 19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그러나 세상은 온통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2. 순복의 신앙
벧전3:5-6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베드로는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는 아내에 대하여 교훈하면서 사라를 그 예로 제시합니다. 즉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했던 것을 따르라고 합니다.(벧전3:6) 여기에 기록된 사라의 순종에 대하여 구약의 예를 꼬집어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되었던 여러 믿음의 행위들을 함에 있어서 사라는 아브라함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이 믿음의 행동을 하려는 것에 대해 순종하는 자세야말로 아내의 신실한 믿음일 것입니다.
사라의 이름은 본래 사래였습니다. 그런데 '여주인'을 뜻하는 사라로 개명되었습니다(창 17:15). 이러한 개명의 역사는 성경에서 여러 차례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사라의 남편이었던 아브라함도 본래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뀌었고, 야곱도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뀌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과 변화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얍복 강에서 변화된 후 이름이 바뀌듯이 사라도 이름이 바뀌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그것은 이름이 바뀐 기록 후 곧 나타나는 대로(창 17:15-21) 사라는 이때 하나님으로부터 1년 내에 아들이 태어나게 되며 뛰어난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간 20여 년을 기다리다가 이 약속을 구체적으로 받는 이 시기야말로 사라의 삶은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것입니다.
족장들의 무덤인 막벨라 굴에 묻힌 사라는 오늘날도 순종과 믿음의 여인으로 불리고,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태도야말로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마땅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그러한 신앙을 가진 신실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무수한 구원 역사를 이루어 오셨던 것입니다.
믿음은 순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삼상15:22]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신30:20]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을 낮 삼아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 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세상에는 꾀를 내세우며 똑똑한 체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사람의 성실을 기억하십니다.
▶ 어떤 며느리가 친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답니다. 자기가 보기엔 친정 가족들이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시댁이 더 잘되더라는 겁니다 시댁은 한번은 다른 종교를 믿기도 했고 신앙생활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거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시댁은 하나님께 더 축복을 받는다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헌데 이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가 시댁과 친정 가족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시댁 식구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에게 잘못을 했을때 빨리 빨리 용서를
하고 하나님이 이게 아니다 하시면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거 같습니다 반면에 친정 식구들은 신앙생활은 열심히들 하시지만 무언가 마음에 미움이 있을때 그걸 빨리 풀어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올때도 자세를 빨리 바꾸지 않는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목사님께 정말 목사님의 말씀이 맞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느 날, 이 선생님의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제자 후보생이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들 후보에게 앗시시의 성자 프렌시스는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십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 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자질이 있는가? 어떤 명령을 주어도 그 명령을 받아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자질이 이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가? 이러한 것을 프랜시스는 보기 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순종의 교훈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성경의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OK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 자기 프라이드를 꺾고 하나님의 방법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겸손함이 얼마나 요청되는 것인지...
[벧전1: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히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파리 시내에 세계박람회 기념으로 철구조물인 에펠탑을 건립할 때의 일입니다.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모파상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이 그 일을 무척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탑이 완공된 후 모파상은 매일 에펠탑 카페에 올라가 차를 마시고 글을 썼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어서 누군가 그에게 "그렇게 이 탑의 건립을 반대하고 싫어하던 당신이 어떻게 이 탑을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모파상은 "이 탑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이 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비판과 반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하는 사람입니다. 충분한 토론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일의 방향이 결정되어지면 남은 것은 비판 대신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기쁨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예게 필요한 것은 사라 같은 협력자 들입니다.
3.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는 신앙
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사라의 믿음은 어떤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시118:6]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잠1:33]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3:25]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사12:2]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요일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0장 35절 말씀에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상을 받는 사람은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담대함은 성공의 비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하기 원하십니까? 담대하십시오. 행복하기 원하십니까? 담대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을 개척해나가기 원하십니까?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이로 인해 형통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을 담대히 하시기 바랍니다.
▶ 어느 청년이 인생에 필요한 가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명성 과 재산을 가치관으로 적고, 얼마 후에 건강을 첨가시켰습니다.
그러고는 그야 말로 완벽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그의 선생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생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니, 아니야, 자네는 인생에 꼭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어. 그 것은 마음의 평화지, 자네에게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명예나 재산, 건강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유대인들의 인사말은 '샬롬'입니다. '평화'라는 뜻으로, 이 말은 예수께서 살아 계신 당시에도 썼던 말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 부인들의 화장법 가운데 소위 심리화장법이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얼굴에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발라도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면 아름다워 질 수가 없다는 이론입니다. 온화한 마음을 가지면 온화한 얼굴이 되고, 사랑을 하면 아름다워집니다. 사람이 놀라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아름답게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유하고 정직하고, 인자하고, 겸손한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강퍅하고, 거짓되고, 잔인하고, 교만한 마음은 추합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신뢰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반대로 사탄의 능력은 당신을 동요케 하고 두렵게 만들어서 당신의 힘을 소진하게 합니다. 어떤 역경을 겪고 있다면, 단순하게 고요한 평정을 되찾으려 노력해 보십시오.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순간을 맞을 때마다 멈춰 서서 ‘지금 사탄이 무엇을 하려 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을 때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고난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 있다면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고 견딤, 평온함, 쉼과 같은 성경의 단어는 모두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쁨과 평안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31:7]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수1: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시27:14]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31:24]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히10:35]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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