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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의 선진들(6) - 공통적인 신앙

하나님아들 2013. 1. 10. 16:27

믿음의 선진들(6) - 공통적인 신앙

김 영익 목사

 

히11:13-16

본문에서 저자는 앞에서 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 등이 믿음을 따라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다 죽었는데 그들이 원래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하늘이 있는 본향을 소망하였다고 말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해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을 따라 죽은 신앙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

'이 사람들'이란 8-12절에 언급된 인물들 즉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모두 가나안 땅과 그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었으나, 그 약속의 성취는 보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보고'는 신체적인 눈으로 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것을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Morris). 즉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된 구원을 가리킵니다(Bruce).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때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보고 기뻐하였습니다(요 8:56).

(1) 많은 사람들이 약속은 얻었어도 그들에게 약속된 것을 즉시로는 받지 못합니다는 사실입니다.

(2) 지상에 사는 성도들의 현재 상태의 불완전은 그들의 행복이 현세의 쾌락과 많은 제물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장래 저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는 사실입니다.

불안정한 세상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계속된 저희 믿음의 행위. 비록 그들이 아직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지만 다음의 것들을 행하였습니다.

(1) 그들은 약속을 멀리서 보았습니다. 믿음은 맑고 강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는 아직 멀리 있는 약속된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날이 아직 멀리 있을 때 그날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요 8:56).

(2) 그들은 그 언약들이 참되며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은 참되시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안정되게 해 줍니다.

(3) 그들의 믿음은 승낙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긴 팔을 가지고 있으므로 멀리 떨어진 축복을 끌어안아서 현재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누림으로 기쁨을 맛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앞당기어서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약속들을 믿으면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서 모든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충분히 믿는 가운데 죽었습니다(13절). 그들은 죽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 그들은 믿음으로 속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탄의 격렬한 창을 꺾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였으며, 죽음의 가시를 무력케 하였고,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안락과 십자가를 즐거이 하직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행위는 이러하였던 것입니다.

2. 땅에서 나그네로 여기고 산 신앙 [히11:14]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외국인과 나그네'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한 말 즉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창 23:4)와 야곱이 바로에게 한 말 즉, '내 나그네 길...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창 47:9)을 인용한 것입니다. 저자는 본절에서 옛 신앙의 위인들의 그러한 고백을 통해 그들이 이 땅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나그네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참된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살았음을 강조합니다.

이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한 것은 자신들이 살았던 이 땅이 본향(本鄕)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Bruce). '본향'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트리다'(*)는 '선조의 땅', '고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존재하였으며 그들의 목적지가 하늘나라였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인생은 이 세상에서 얼마동안 나그네와 같이 살다가 떠나간다는 뜻입니다.

▶ 중세 시대에 수사들은 성도들을 일컬어 라틴어로 ‘비아토르(viator)’라고 했습니다. 비아토르는 여행자나 나그네, 곧 ‘세상을 지나가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를 나그네라고 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을 지나가는 여정 가운데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순례자의 삶을 좀 더 역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기억을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를 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기억했습니다. 애굽에서 모든 장자의 죽음에서 보호하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귀한 존재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한 기대를 가졌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된 것을 상속하라’고 하신 약속을 붙들고 장차 다가올 삶을 기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억과 기대가 떠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순례자의 삶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인생이 잠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고난과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인사할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빨리 지나가기 바랍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아서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 이태리의 밀라노 대성당에는 세 가지 아치로 된 문이 있는데 첫째 문은 장미꽃이 새겨져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하는 글귀가 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가 새겨졌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입니다”라고 쓰여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고 합니다. 인생살이는 고통도 잠깐이고 즐거움도 잠깐이기 때문에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인생이 나그네라는 뜻은 사람이 세상에서 떠나갈 때에 모든 것을 두고 가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 이 세상에서 항상 나그네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본향을 사모하는 신앙 [히11:15-16]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

그들은 지상의 고향을 자신들의 본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 쉽게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키려고 할 때 가나안 땅의 여인들 중에서 신부감을 택하지 말고 자신의 고향, 즉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신부 감을 구해오도록 그의 종에게 당부하면서도 '삼가 내 아들을 그리고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창 24:6)고 하였습니다.

야곱 역시 메소포타미아를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창 30:25;31:3).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 땅에 묻었으며 자신 역시 그 곳에서 장사되었습니다(창 23:19;25:9-10).

이삭이나(창 35:27-29) 야곱도(창 49:29-33;50:13) 가나안에서 장사되었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고향을 찾았다면 자신들이 태어난 지상의 고향으로 충분히 돌아갔을 것입니다(Bruce). 그러나 그들의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지상의 고향을 찾지 않고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영원한 고향을 찾고자 했습니다.

[히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그들이 찾았던 고향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곳, 즉 '하늘에 있는 고향'이었습니다.

'사모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레곤타이'(*)는 '...을 향해 뻗치다', '열렬히 갈망하다'라는 의미로 그들이 간절히 하늘나라를 갈망하였음을 시사 합니다.

한편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 15, 16)이라고 말한 사실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았던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하늘나라에 '한 성'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성'은 '장막'(9절)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처소를 가리킵니다.

하늘에 있는 도성, 즉 천국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임시로 외국에서 우거하는 자와 같이 본향인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는 임시로 머무르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상 그 본향(천국)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그곳에 가서 살 준비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이 신앙을 본받아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그곳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자기 본향으로 삼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요, 주님의 재림과 하늘나라에 대한 준비를 잘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 있는 본향을 찾으려하지 않고 오직 하늘에 있는 본향을 찾으려고 힘쓰고 늘 그 본향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준비하였습니다.

땅에 있는 본향은 잠시 살다가 이 세상 떠날 때 영원히 떠나게 되나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릴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본향을 더 나은 본향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선진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았으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했습니다.

요한복음 14:1-3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속을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성취로 인하여 창세전에 예비하신 하늘나라에 성도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그 백성들을 위하여 한 도성 즉 그의 백성에게 울리는 행복의 장소를 예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낼 만한 적당한 장소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지 못하거나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기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칭에 부끄럽지 않을 나라를 그들을 위해 하늘에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한 백성으로 자기의 양자들로 삼으시고 그러나 그들에게 적절한 대우는 해 주시지 않았노라는 비난을 받으실 일은 결코 하시지 않았음이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도성을 향한 사랑을 불태우고 소망을 넓히며, 부지런한 노력으로 열심을 내야만 할 것입니다.

▶ 한 할머니가 일찍이 홀로 되셔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키셨습니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나름대로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 사는데도 할머니는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작은 오두막집에 혼자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녀들은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 이제 우리들도 모두 잘 사니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며 살 수 있어요.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서 혼자 살지 마시고 저희랑 좋은 집에서 사세요”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애원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지어다오. 집 바닥은 온통 유리로 하되 기둥은 12개로 하고 그 기둥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라. 보석은 각기 다른 색깔로 하고 문은 12개가 되어야합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어머니, 농담이시죠.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을 어떻게 짓나요?”라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대한 어머니의 말은 더 걸작이었습니다.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왜 없냐? 나는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분양 받았는데…. 그래서 곧 그곳에 살게 될 테니 나보고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살자고 하지 말려무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며 사십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본향을 바라보며, 그곳을 향해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들도 우리 신앙의 선진들처럼 이 세상에서 끝까지 신앙 잘 지키며 살다가 믿음으로 죽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근심 걱정하지 말고 나그네로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천국 본향에 소망을 두고 살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요세비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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