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믿음의 선진들(3)-노아

하나님아들 2013. 1. 10. 16:25

믿음의 선진들(3)-노아

김 영익 목사

히11:7 창6:9,22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세 번째 믿음의 사람인 노아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어떤 믿음의 소유자였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경은 왜 노아를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고, 그리고 그의 믿음을 통해서 노아시대와 방불한 이 시대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경고를 경외하는 신앙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어떤 경고를 받았습니까?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여러분! 아담 이후 노아시대까지 그 시기에 살던 사람들은 심판이란 개념이 없이 살던 사람들입니다. 심판이란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노아에게 심각하게 들려올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심판에 대해 말씀하실 때 노아의 입장이 비슷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돔과 고모라성의 불의 심판과 같은 사건이나 전쟁을 경험했더라면 귀담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사건들을 경험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들였습니다. 성경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흘려버릴 말들을 귀담아 마음에 두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이 두 번의 황당한 꿈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창37:11,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예수께서 어린 시절, 예루살렘 방문 후 귀향길에 예수를 잃어버렸을 때,

눅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믿음의 근거는 항상 보이는 것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계시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노아는 자신이 보지 못한 일,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사위들,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노아는 경고에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경외란 거룩한 두려움,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서에 엘리라는 제사장이 소개되고 있고 그에게 두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기고 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 그 둘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들,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함부로 제사를 유린했던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그 행위대로 보응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오늘도 증거 되는 말씀을 마음에 두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 사도 베드로 :

눅5:45절에 보면,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말씀에 의지하여)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특별 한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은 곧 말씀에 의지하여 움직인 사람었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울 :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5) 이 말씀은 흉용한 바다에서 바야흐로 파선지경에 이르렀을 때 두려워 떨고 있는 선원들에게 외친 그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너를 버리지 않고 환난 중에 건지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것이 참 믿음이요 큰 믿음이요 큰 믿음인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꼭 그대로 믿고 그대로 움직였습니다.

보이는 현상대로 믿지 않고 하나님말씀대로 믿는 것이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노아를 가리켜 그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보지 못한 일을 꼭 보는 것인양 믿었던 것이 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세상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홍수의 징조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홍수가 나기 까지는 비라는 말도 또한 홍수란 말도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해가 뜨고 해가지는 평화로운 날들이 매일 계속됐을 것입니다. 홍수에 대한 위험을 느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홍수의 경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홍수의 경고를 꼭 그대로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그것을, 꼭 그대로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보이는 현실, 매일 경험하는 세상일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내세의 일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사람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못 믿습니다. 보이는 육신은 믿어도 보이지 않는 영혼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이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고후4:18). 노아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꼭 보는 것 같이 믿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위해서 보이는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노아처럼 말씀대로 믿어 세상을 정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를 예비한 신앙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현대인의 성경 -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체없이 배를 만들어..”

현대어 성경 - “그리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만들어..”

참된 믿음은 즉각적인 순종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지체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짓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명령이었지만 순종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조선소는 바닷가에 있지 산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 노아는 어디서 방주를 짓고 있었습니까? 바다에서? 바다에서 800km 떨어진 곳. 아라랏산 중턱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웃었을 것입니다. 기가차면 웃음도 안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을 3단계로 발전하고 있는데...

1단계 - 말씀을 듣는 단계.

2단계 - 말씀을 듣고 받아 들이는 단계.

3단계 -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 이렇게 할 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그들의 신앙이 공허한 신앙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씀을 많이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아도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노아의 믿음 -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한 믿음이었습니다.

노아가 지은 방주 :

요즘에 과학자들은 이런 사실들을 밝혀 내고 말았습니다. 300 규빗, 50 규빗, 30 규빗이면 모두 한 층이 축구 경기장에 1.5배가 되는 크기입니다. 그것이 3층이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화물차량 522 대의 용적과 맞먹는 크기입니다. 17,600종을 하나님의 지시 수만큼 넣으니가 모두 35,000마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용적에는 125,280 마리가 들어 갈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다 들어가고 그 동물들이 다 들어가고 일년분 양식을 다 넣을 수 있는 방주라는 것이 정확하게 발표되었습니다.

이런 방주를 120년에 걸쳐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노아는 바보처럼 순종했습니다. 그런 그의 삶이 결국 그에게 축복이 되고 의가 된 것입니다.

▶ 에스겔 14장 14절에 노아, 다니엘, 욥, 이렇게 세 의인이 나오는데,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이 노아입니다. 노아는 의인 중에서도 챔피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도 노아를 의(義)의 후사라고 하십니다.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니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니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열왕기상 2장 1절에서 3절에, 복 받은 다윗 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솔로몬에게 한 유언이 나옵니다.

“아들아! 힘써 대장부가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여러분, 담대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니 방주를 지을 때도 형통하고 삶도 형통하고 다 형통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일생에서 가장 값진 일은 무엇입니까?

방주를 지어 자기 가족과 코로 호흡하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생존하게 하는 귀한 일에 노아가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 현재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30년 전에 사도행전 13장을 읽다가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36절) 라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릭 워렌 목사님은 그때 자신이 뜨거운 불도장에 찍힌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윗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구나. 다윗은 성전을 짓도록 준비하는 일에,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구나. 아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목적을 주셨고 뜻을 주셨구나.’

그때부터 그는 목회를 새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하니 목회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펴내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십니다. 태초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택함 받았습니다. 또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에스더를 왕비로 만들어 주신 것은 하만의 압제 아래 다 죽게 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함이었고, 모세를 바로의 궁궐에서 키우신 것은 그를 통하여 바로의 노예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을 이방 땅에서 로마 시민권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이방인의 선교사로 만드시어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또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매일 매일 방주를 짓는 순종으로 나타났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참 택함을 받은 성도들의 믿음은 반드시 그 행위로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거기에 여러 신앙위인들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믿음은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기생 라합의 믿음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군들을 숨겨주는 행동으로 나타 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처럼 노아의 믿음은 방주를 예비하는 일로 그 믿음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제 고요히 머리 숙여 우리의 믿음이 지금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3. 세상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노아가 살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창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6:11-13,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 양적인 면에서 가득찼다.

2)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 - 질적인 면에서 회복 불가능의 타락한 현상.

3)사람 지으심을 탄식하시고 근심할 정도가 됨.

노아시대 사람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과 그 말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우리의 마음을 근심케 하고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과학 문명의 발달로 문화적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인간성 파괴의 범죄 행위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예)홍콩 목자교회 벤홍 목사 - 한국이 인터넷 음난 사이트 활동이 세계 1위.

요즘 성폭력범 전국이 불안한 상태.

오늘날 우리는 노아시대의 타락한 현상을 방불케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도전과 교훈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총체적 부패로 인해 하나님의 탄식과 근심을 자아냈던 그 시대, 에녹의 증손자였던 노아는 어떤 삶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까?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상대하고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상대해서 삽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람과 더불어 죄짓고 살다가 망하곤 합니다.

그런데 노아는 세상 사람들이야 무어라 하든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하든지 놀리든지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만 주목하고 하나님 앞에서 잘 달렸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He walked with God)』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사람이 없어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상대하며 살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상대하며 살았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을 상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상대하고 살면 아무리 세상의 풍랑이 극심해도 그것을 이겨냅니다.

▶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공산 치하의 루마니아에서 박해를 받아 14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처음 3년간은 햇볕도 전혀 들지 않는 지하 독방에 갇혀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들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정식 재판 절차도 없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 그는 “하나님! 제가 비록 거룩하지는 못해도 하나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해 왔는데 왜 제가 지하 감옥에서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 왜 제가 이렇게 여기에서 허무하게 죽어야 합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왜 그렇게 불안해하느냐? 왜 그렇게 초조해하느냐?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아라.”

그래서 목사님이 성경을 읽으며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찾아보니 366번이나 나왔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두려워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라고 이렇게 366회나 네게 말했느니라.”

그때 그는 ‘죽으면 어떻고 살면 어떠냐? 내 생애, 내 생명은 하나님께서 다 가지고 계신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고 평안이 넘치며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을 상대했습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지만 감옥 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환경이 힘들어도 감옥보다 더 힘들겠습니까? 혹시 우리가 감옥 같은 곳에 있을지라도, 아무리 슬픔과 한숨과 고통이 많아도 하나님을 상대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동시대 사람들과 다르게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본문 9절에 보면『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사는 일은 부담스럽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실 때도 좀 부담되는데 하물며 감히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걸어가는 것이 어찌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인을 만나러 가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물리치실 교만한 사람을 만나러 가고 어떻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어떻게 죄 짓는 자리에서 선악과를 쳐다보고 있겠습니까?

노아도 성정이 있는 사람이니 때로는 방탕하고 싶은 충동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창세기 9장 21절에 보면 포도주가 향기롭고 달콤하니 노아가 절제하지 못하고 많이 먹고 취해서 방탕한 사람처럼 옷을 벗고 누워 잤습니다. 약점이 있는 약한 노아이지만 늘 하나님을 모시고 사니 그래도 의로워지고 당대의 완전한 자라,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약해도 하나님 모시고 살면 하나님이 의롭게 보시고 완전한 자로 칭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 노아의 믿음은

1.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경외하는 신앙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명령따라 방주를 예비하는 순종의 신앙이었습니다.

3. 세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노아 시대 같은 이 세상에 살면서 노아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노아같이 살아 남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요세비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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