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밝혀진 것들과 더 밝혀야 할 것들
입력2025.01.15.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이 규정을 위반한 시설물 설치 탓으로 좁혀진다.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처벌의 무게가 달라질 전망이다. 과도한 비행 스케줄 등도 지적된다.사고는 하늘과 땅에서 일어났다. 하늘에서 발생한 사고 규명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새 떼 충돌을 비롯해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핵심 물증인 블랙박스의 연결 커넥터가 유실돼 자료를 추출하려면 이를 미국으로 보내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 직전 여객기 조종사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 기록이 알려지는 등 일부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블랙박스 기록이 공개되어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전망이다.
땅에서 일어난 사고 원인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로컬라이저(계기착륙장치) 안테나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결정적으로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로컬라이저는 여객기를 향해 전파를 쏴서 고도 및 위치 파악을 돕는 시설물이다. 무안국제공항에 동체착륙한 여객기는 시속 300㎞ 넘는 속도로 돌진하다가 활주로를 이탈한 뒤 2m 높이 둔덕과 충돌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6장(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장비 및 설치물) 제23조 3항은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실중량과 높이를 최소로 유지하고, 항공기에 대한 위험이 최소가 되는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라는 규정도 있다.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에 대비해 부서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한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24년 12월31일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서 수색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무안공항에 높이 2m 둔덕이 들어선 이유가 경사진 활주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안공항 활주로는 완만한 경사로 내려가다 로컬라이저가 세워진 둔덕 앞에서 움푹 들어간 형태다. 비용이 많이 드는 지면 평탄화 작업을 하지 않고 둔덕을 세워 높이를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애초부터 공항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1월1일 콘크리트 둔덕 최초 설계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애초 둔덕의 위치가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어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으나 논란이 커지자 전국 15개 공항의 항행안전시설 전반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참사 이후 이런 ‘장애물’이 다른 공항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항경주공항,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공항, 경남 사천시에 있는 사천공항에도 높이 1.5~2m 높이의 구조물이 있다. 여수공항에는 높이 4m 둔덕에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의 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번 사고처럼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오버런(Over Run·초과 질주)’하다 구조물과 부딪치면 위험한 상황이 재연되리라는 염려가 나온다. 반면 인천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은 둔덕 없이 철제 뼈대 구조물로 된 로컬라이저가 설치돼 있다.
이번 참사의 주무 부처와 책임 주체는 각각 국토교통부와 제주항공·한국공항공사다. 한국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민간 공항을 관리·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제주항공과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항공기 관리와 공항 관리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지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참사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처벌의 무게가 달라질 전망이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등의 문제로 인해 이용자 또는 시민에게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비행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추후에야 최종적으로 규명되리라 보인다. 사고 당시 기장은 “메이데이(긴급구조 신호)”를 외친 뒤 관제탑에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 고잉 어라운드(Going around·복행)”라고 교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떼와 충돌 후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위로 올려 다시 비행에 나섰다는 뜻이다. 생존 승무원도 “조류 충돌로 추정되는 사고 이후 한쪽 엔진에서 연기가 난 뒤 폭발음이 들렸다”라고 증언했다. 한 승객은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하는 중”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사고 발생 직전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비행 과정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전직 항공사 기장 A씨는 기자에게 한 가지 자료를 보여줬다. 사고 기종인 보잉737의 ‘승무원 교육 매뉴얼(Flight Crew Training Manual)’이었다. 406쪽 분량인 이 매뉴얼의 ‘새 떼 충돌(Bird Strike)’ 항목을 보면 ‘(활주로에) 접근 또는 착륙 중 새 떼와 충돌했을 경우 착륙이 확실하다면(assured) 이를 계속하는 것이 좋다’라고 적혀 있다. ‘더 많은 새를 만날 경우 새 무리를 통과해 착륙한다’는 대목도 있다(〈그림〉 참조). 1차 착륙 시도 때 랜딩기어가 정상적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착륙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복행’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잉737 ‘승무원 교육 매뉴얼’ 중 ‘새 떼 충돌(Bird Strike)’ 상황에 대한 내용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착륙 과정에서 새 떼 충돌이나 엔진 한쪽 이상 등 문제가 생겼을 때 그대로 착륙하느냐, 복행해서 문제를 수습하고 재착륙하느냐는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된다. 그때그때 경우의 수가 수백 가지이기 때문이다. 5~6년 전에 실제로 조종사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번 사고에서 기장은 복행을 결정했고, 이후 동체착륙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동체착륙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이후 비상탈출 절차를 진행하면 인명 피해는 최소화됐을 것이다. 둔덕과 충돌이 없었다면 이런 참사도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A 기장은 야간에만 운행하는 동남아 항공편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현재 동남아편 항공기는 낮에는 일본, 중국 등 가까운 곳에 투입됐다가 밤에는 동남아로 향하면서 ‘24시간 풀가동’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의 피로 누적, 정비시간 부족 등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야간 비행인 만큼 미국, 유럽행 여객기처럼 2인1조로 2개 조를 투입해 교대근무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은 참사 전날인 2024년 12월28일 하루에만 코타키나발루, 나가사키, 타이베이, 방콕 등을 쉬지 않고 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월28일 오후 8시52분 무안을 출발해 이튿날 0시38분(현지 시각) 방콕에 도착한 여객기는 1시간 33분 만인 오전 2시11분 다시 무안을 향해 이륙했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은 1월2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땅에서 일어난 사고 원인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로컬라이저(계기착륙장치) 안테나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결정적으로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로컬라이저는 여객기를 향해 전파를 쏴서 고도 및 위치 파악을 돕는 시설물이다. 무안국제공항에 동체착륙한 여객기는 시속 300㎞ 넘는 속도로 돌진하다가 활주로를 이탈한 뒤 2m 높이 둔덕과 충돌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6장(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장비 및 설치물) 제23조 3항은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실중량과 높이를 최소로 유지하고, 항공기에 대한 위험이 최소가 되는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라는 규정도 있다.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에 대비해 부서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한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무안공항에 높이 2m 둔덕이 들어선 이유가 경사진 활주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안공항 활주로는 완만한 경사로 내려가다 로컬라이저가 세워진 둔덕 앞에서 움푹 들어간 형태다. 비용이 많이 드는 지면 평탄화 작업을 하지 않고 둔덕을 세워 높이를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애초부터 공항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1월1일 콘크리트 둔덕 최초 설계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애초 둔덕의 위치가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어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으나 논란이 커지자 전국 15개 공항의 항행안전시설 전반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참사 이후 이런 ‘장애물’이 다른 공항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항경주공항,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공항, 경남 사천시에 있는 사천공항에도 높이 1.5~2m 높이의 구조물이 있다. 여수공항에는 높이 4m 둔덕에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의 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번 사고처럼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오버런(Over Run·초과 질주)’하다 구조물과 부딪치면 위험한 상황이 재연되리라는 염려가 나온다. 반면 인천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은 둔덕 없이 철제 뼈대 구조물로 된 로컬라이저가 설치돼 있다.
이번 참사의 주무 부처와 책임 주체는 각각 국토교통부와 제주항공·한국공항공사다. 한국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민간 공항을 관리·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제주항공과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항공기 관리와 공항 관리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지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참사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처벌의 무게가 달라질 전망이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등의 문제로 인해 이용자 또는 시민에게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비행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추후에야 최종적으로 규명되리라 보인다. 사고 당시 기장은 “메이데이(긴급구조 신호)”를 외친 뒤 관제탑에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 고잉 어라운드(Going around·복행)”라고 교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떼와 충돌 후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위로 올려 다시 비행에 나섰다는 뜻이다. 생존 승무원도 “조류 충돌로 추정되는 사고 이후 한쪽 엔진에서 연기가 난 뒤 폭발음이 들렸다”라고 증언했다. 한 승객은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하는 중”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사고 발생 직전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1차 착륙 시도 때 랜딩기어 정상이었는데
비행 과정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전직 항공사 기장 A씨는 기자에게 한 가지 자료를 보여줬다. 사고 기종인 보잉737의 ‘승무원 교육 매뉴얼(Flight Crew Training Manual)’이었다. 406쪽 분량인 이 매뉴얼의 ‘새 떼 충돌(Bird Strike)’ 항목을 보면 ‘(활주로에) 접근 또는 착륙 중 새 떼와 충돌했을 경우 착륙이 확실하다면(assured) 이를 계속하는 것이 좋다’라고 적혀 있다. ‘더 많은 새를 만날 경우 새 무리를 통과해 착륙한다’는 대목도 있다(〈그림〉 참조). 1차 착륙 시도 때 랜딩기어가 정상적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착륙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복행’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착륙 과정에서 새 떼 충돌이나 엔진 한쪽 이상 등 문제가 생겼을 때 그대로 착륙하느냐, 복행해서 문제를 수습하고 재착륙하느냐는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된다. 그때그때 경우의 수가 수백 가지이기 때문이다. 5~6년 전에 실제로 조종사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번 사고에서 기장은 복행을 결정했고, 이후 동체착륙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동체착륙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이후 비상탈출 절차를 진행하면 인명 피해는 최소화됐을 것이다. 둔덕과 충돌이 없었다면 이런 참사도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A 기장은 야간에만 운행하는 동남아 항공편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현재 동남아편 항공기는 낮에는 일본, 중국 등 가까운 곳에 투입됐다가 밤에는 동남아로 향하면서 ‘24시간 풀가동’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의 피로 누적, 정비시간 부족 등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야간 비행인 만큼 미국, 유럽행 여객기처럼 2인1조로 2개 조를 투입해 교대근무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은 참사 전날인 2024년 12월28일 하루에만 코타키나발루, 나가사키, 타이베이, 방콕 등을 쉬지 않고 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월28일 오후 8시52분 무안을 출발해 이튿날 0시38분(현지 시각) 방콕에 도착한 여객기는 1시간 33분 만인 오전 2시11분 다시 무안을 향해 이륙했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은 1월2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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