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성장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하나님아들 2025. 1. 6. 22:41

성장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누가복음 2:40, 52

 

서론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 외국여행이 중단되어 비행기들이 대부분 멈췄습니다. 비행기는 날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항활주로에 내려앉은 모습도, 활주로에서 바퀴를 내리고 기어가는 모습도 원래 모습은 아닙니다. 비행기는 창공을 날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들이 공항 활주로에 주저앉았었습니다.

 

관광버스들도 여행 가는 사람들이 없으니 2년을 고스란히 멈췄습니다. 보는 우리도 안쓰럽거늘 관광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주차된 대형버스들을 보면서 답답하고 낙심이 클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코로나19, 한 주간만 지나면 이제 딱 2년입니다. 그동안 주저앉은 것은 비행기, 관광버스, 산업만 아니라 우리 믿음도 주저앉았습니다. 믿음이 계속 자라도 세상 발전과 따라갈 수 없는데 예배와 함께 주저앉아버린 우리의 모습은 공항활주로의 비행기들이나 관광버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양새가 우습습니다.

 

모든 것은 움직일 때가 아름답습니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갈 때, 버스들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나무들은 바람에 나부낄 때, 어린아이들은 쑥쑥 클 때 아름답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올해로 103세이지만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어르신입니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 사랑의 수필로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지금은 100세가 넘었으면서도 왕성한 강연과 집필을 하며 변함없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교수님이기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균형 잡힌 그 분의 성장은 부러움과 함께 귀감이 됩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4:15)고 합니다. 우리가 자라나야 할 영역과 지점은 어디까지일까요? 예수님의 유아-유년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구세주가 되시기에 완벽하십니다. 자랄 필요도, 성장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완전함을 포기하시고 자라나시는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넓게 성장했습니다.

아기 예수는 52, 키가 자랐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하나님은 하늘이요 사람은 땅입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하늘에서 땅까지 자라나시면서 땅에서도 하늘을 사셨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옆에서 옆으로 넓게 사랑을 받는 존재로 점점 성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습니다(1:28). 생육과 번성은 땅에 서의 충만입니다. 넓게 사방으로 퍼져가는 양적인 성장입니다. 사람이나 동식물 수가 많아지는 것-그래서 지구에 생명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의 기본적인 성장은 양적인 성장입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도 숫자적 성장을 기대합니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서로들 독려하여 예배시간마다 채워지고 자리마다 빈자리가 없을 만큼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마음이 점점 넓어지는 성장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육신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마음의 키, 배포 회개의 분량이 커졌습니다. 위로 옆으로 회개의 분량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서 여리고에서 가장 큰 남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통이 크고 마음에 여유가 있고 이해하는 마음이 넓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인품 성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깊게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은 40절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지혜는 깊습니다. 로마서 11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물속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 깊어 사람은 그의 판단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되면 정신적으로 깊어집니다. 인생의 시련과 압력에도 견디는 힘이 강해지고 회복탄력성도 강해집니다. 바닥에서 나오는 힘이고 믿음의 뿌리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아들을 등반사고로 잃은 니콜라스 윌터스도프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에서 이런 신비를 간증합니다.

고통의 골짜기에서, 절망과 비통함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그곳에서 역시 품성도 만들어졌다. 고통의 골짜기는 영혼이 다듬어지는 계곡이 되었다.”

높은 언덕에서만 성장이 아닙니다. 인생의 깊은 계곡에서도 성장이 가능합니다. 좋은 날만 아니라 궂은 날에도, 낮에만 아니라 밤에도, 우리는 구덩이에서도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깊은 성장입니다. 깊은 성장이 뿌리가 되어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깊게 성장하지 못하고 옆으로만 위로만 성장한다면 강한 바람에 넘어지는 나무처럼 우리가 시련에서 뿌리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높게 성장했습니다.

가장 높은 존재는 누구이며 가장 높은 지식과 지혜는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높은 하나님으로 계속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원수들도 존경하는 높은 수준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도덕적인 수준들이 자라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거룩의 목표가 술 담배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모델로 삼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주님에게서 모델로 삼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신관계에서, 대인관계에서 언어생활에서, 물질관계에서 그 분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 성장하셨습니다. 위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받았다! 인정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크게 성장했습니다.

강력한 성장입니다.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우리 믿음이 강력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강력함은 영향력입니다. 영향력이 없이 자라는 것은 오합지졸 성도에 불과합니다.

삼손은 성인(成人)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성들을 접촉했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별을 잃게 될 때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여인의 노리개가 되었고 이방인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거인이었지만 아무런 영향력도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맷돌을 돌리는 그의 어릿광대짓을 보면서 아무도 두려워하거나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영향력은 우리의 직분, 지위가 아닙니다. 내가 갖고 있는 돈도 영향력도 사라집니다. 진짜 영향력은 도덕적인 감화력입니다. 말을 많이 해도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화력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합니다. 대형교회들이 수도 없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영향력을 잃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 감화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 빨이 서지 못합니다.

한국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개인들이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크게 성장하려면 감화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같게 성장했습니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에게도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답게 자라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답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라는 고백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답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답게 살아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답게, 장로님들은 장로님들답게, 권사님들은 권사님들답게, 집사님들은 집사님들답게, 성도님들은 성도님들답게 성장해야 합니다. 안수를 받고 임직을 했다고 하루아침으로 그 직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목사로, 참된 직분자들로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으며 인정을 받으며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직분에 맞는 직분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길게 성장했습니다.

평생 성장입니다. 비행기가 멈추면 떨어지듯 그리스도인도 성장을 멈추면 죽습니다.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석화되었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수용할 그릇이 되지 못했습니다. 성장이 멈추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리더 자질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성장했습니다. 배우는 것만큼 성장했습니다. 계속 성장하고 점점 성장해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자갈이 반석이 된 것입니다.  

 

한국인은 머리도 좋고 열정도 있지만 뒷심이 부족합니다. 대학 갈 때까지는 열심하는데 가서는 멈추어 버립니다. 남성들이건 여성들이건 학교만 끝나면 손에서 책을 놓아버립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계속 자라는 사람입니다. 평생 학습자가 매일매일 사진을 새롭게 리모델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하는 노인들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석화(石化)됩니다. 그러면 성장을 오히려 가로막습니다. 더욱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 33세에 돌아가시지 않고 100세를 사셨으면 얼마큼 성장하셨을까,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은 33세를 사셨어도 100세를 사신 것만큼 성장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도 성장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용서, 의연함, 담대함, 영적인 예민함 등은 넓게’ ‘깊게’ ‘높게’ ‘크게’ ‘답게’ ‘길게 성장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19:30)라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다 자란 모습입니다. 이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4:14)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장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거기만큼 자라려고 하면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요즘 갈렙을 모델로 위기관리에 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갈렙은 계속 성장하는 노인이라 합니다. 상황의 위기에서도, 후계자 탈락이라는 패배에서도, 노년의 빈그물 상황에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손인 다윗이 조상할아버지가 개척한 헤브론에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나이 85세에서도 계속 성장한 조상 할아버지 덕분입니다.

스탠리 존스는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활동한 감리교 선교사. 90 평생을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80대 초반에 심각한 심장 마비가 와서 말도 못하고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웅크려 들지 않고 앞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는 누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수락>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주님께로 나아오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막혀진 골목에서도, 사람들의 평판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쭉쭉 뻗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어항에서 10cm까지 자라는 관상어는 넓은 수족관으로 옮기면 더 큽니다. 강에서는 무려 1m 자랍니다. 내적 성장은 주변의 상황에 맞게 성장합니다   

성장하는 어른들이 아름답습니다. 성장하는 노인은 더 아름답습니다. 예수 안에서 넓게 깊게 크게 넓게 계속 성장하는 늘빛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