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하나님아들 2025. 1. 25. 21:15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 1122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중세기 어느 수도원에 신부복을 입은 낯선 구도자 한 사람이 찾아와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수도원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나가서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낯선 구도자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평안을 찾습니다.” 이 구도자가 유명한 신곡(Divine Comedy) 을 지은 단테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안은 모든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소원입니다. 평안이 있어야 쉼도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높은 지위와 큰 권세를 누려도 마음 속에 평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물질로 평안을 얻지 못하고 영화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세상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인 까닭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범죄한 다음부터 평안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 평안 상실의 시작입니다.

 

사탄 마귀가 하는 중요한 일은 평안을 깨트리는 일입니다. 사탄 마귀가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에게 뱀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저들을 유혹하므로 저들이 누리고 있던 평안을 깨트려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평안을 깨트려버렸습니다. 부부간의 평안을 깨트려버렸습니다. 자녀들간의 평안을 깨트려버렸습니다. 맏아들이 둘째 아들을 쳐죽이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사회적인 평화도 깨트려버렸습니다.

 

잠언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21:9)고 했습니다.

평안, 또는 평화는 행복의 조건이고 불화는 불행의 요건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평안은 불가능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불화했고 에서와 야곱이 불화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이 불화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불화의 역사로 이어져왔습니다.

 

평안을 찾습니다 세계 인류는 얼마나 간절하게 이 평안을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서는 점점 평화 대신 어두운 구름이 우리 앞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수단으로, 혹은 외교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누려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결코 한 번도 평화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평화를 깨뜨리게 된 근본 문제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인류의 평화를 깨뜨렸습니까

죄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등지고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서 동산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무서워집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한다고 했습니다(28:1).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말할 수 없는 가책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께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그 들 사이에서 생긴 가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그들은 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인데 이 형제 사이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갈라놓고 맙니다

갈등과 살인, 시기와 증오, 그리고 전쟁이 인류역사 속에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계급과 계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 사이의 끊임없는 싸움이 인간 역사 속에서 신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1.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평화의 왕 예수

 

평안이나 평화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 자체가 평화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위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찬송가 412장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 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예수님은 이 세상에 아기 예수로 나실 때부터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14:27 -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16:33 -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죄와 죽음의 세상을 이긴 승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요20:19 -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오셨고 평화를 성취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평화를 위한 사역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죄지은 자를 용서하시고 소외된 자를 위로하시는 모든 사역은 평화를 이루는 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려는 일념이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오늘 본문은 에베소 교인들과 평화를 찾는 우리들을 향한 평화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에베소서는 고대의 반셈주의와 유대교의 이방인 멸시의 완화될 줄 모르는 적대와 보복과 증오의 사회에서 형제답게 살아가는 새인간의 탄생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의 기록연대를 A.D 60년 경을 전후해서 볼 때 이 시기는 아그립바 1세로부터 제1차 유대전쟁이 끝나기까지의 기간(A.D.41-74)입니다

이 당시는 아그립바가 헬레니즘문화의 옹호자로 자처하던 시기였고(44년까지), 44년 그의 사망 후 로마가 팔레스틴을 직접 통치하는 총독통치기였습니다

총독들의 정책은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소요들이 발생하였으며 경제적인 상황은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평화와 화해의 복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한 마디로 <소외(疏外)와 갈등(葛藤)>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와도, 유대인과도 그 누구와도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평화롭게 살 수 없었습니다. 소외된 채 소망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서 받는 소외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매우 경멸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지옥불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창조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인 산모가 산고로 고통받을 때 그녀를 도와주는 것도 율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다른 이방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전까지는 이처럼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의 장벽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일 유대인 청년이 이방인 처녀와 결혼하거나 또는 유대인 처녀가 이방인 총각과 결혼하면 그 유대인 청년 또는 처녀의 장례식이 치뤄졌습니다

이방인과의 그러한 교제는 죽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화해시키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에베소교인들의 상태를 12절에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들은 그때에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영적인 축복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들인가 하는 것을 보아줍니다

2장 전반부에서도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일으키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런 축복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하기 위해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지난 날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은 하나님과 원수된 삶이요, 죽음의 절망이 뒤덮인 삶입니다.

 

둘째,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나라는 공간적인 이스라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영적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를 뜻합니다.

하나님나라 밖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귀찮아 해 탕자처럼 아버지의 나라를 떠나 먼 나라에서 제 뜻대로 살다가 끝내는 주신 것 모두 탕진하고 방황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언약의 약속들에 대하여 외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구약에서는 오실 메시야를 약속하셨고 신약은 우리 가운데 초림하셨던 그 메시야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야를 나의 구주로 고백할 때 그의 삶은 구원의 반열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고 진실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뤄졌듯이 신약의 예언은 믿는 우리들의 삶에서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사람들은 그 구원의 약속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자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영원의 세계를 선물로 받지 못한 사람에게 현세의 달콤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은 새벽 풀잎에 잠시 맺혀 있는 이슬과 같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풀잎의 이슬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집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의 풀잎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와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소망 밖의 사람이란 것입니다.

 

그런 소망없는 사람의 모습이 13절에 들어가서는 완전히 반전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절에도 보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으며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결코 만날 수 없었던 것처럼 여겨졌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중간에 막힌 담장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에수 안에서 그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너뜨린 이 담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 구내에는 안 마당과 바깥 마당을 가르는 벽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막아놓은 이 담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을 막아놓은 벽이었습니다

성전의 구조는 세 개의 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장들의 뜰이, 그리고 뜰 동편에 유대인들의 뜰이, 그 밖으로 여인들을 위한 뜰이 있었습니다

이 세 뜰에서부터 다섯 계단 내려오면 벽이 하나있고 벽의 다른 한쪽으로 다시 열네 계단을 내려가면 1.5m 정도 높이의 벽이 또 하나가 있는데 그 너머가 바로 이방인들의 바깥뜰이었습니다

이 벽에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이 벽을 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마가복음 15장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15:3738).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막고 있는 죄와 형벌의 담장,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막힌 담장이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격리되어있던 이방인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케 하신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소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

”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과 원수관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3. 새로운 가족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권속

 

예수님께서 여리고 마을에서 키가 작은 삭개오를 만난 이야기를 아십니까

삭개오는 여리고 마을의 세금징수하는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나라를 위해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동족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매국노라는 눈총을 받으며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전체가 흥분에 쌓였고, 축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로 몰려왔습니다

다 각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예수님 얼굴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길가에는 사람들이 죽치고 앉아있어서 키가 작은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해낸 것은 가로수를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는 길가 가로수 뽕나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당시 누구도 그런 발상을 하지 못했을 일을 그가 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수치심이나 조롱보다 예수님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은 삭개오 집에 들어가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910)

마을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소외되어 있었던 삭개오에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고 하시며 마을사람들과 화해를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있었고 서로 서로도 멀리 있었습니다

마치 여리고 주민들과 삭개오가 마을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과도 같이, 마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멀리 있었던 것과도 같이 우리도 그렇게 멀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모든 장벽은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든 한 가족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고백이며 삶의 모습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권속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오이케이오스(οἰκεῖος)라고 하는데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모두 한 가족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한 식구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가족의 삶은 평안의 삶입니다

평화의 삶입니다

화평케 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평화이시고, 평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주님을 믿는 새로운 가족에게 화목케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모퉁이 돌(Corner Stone)” 이란 표현은 상징적입니다

모퉁이는 맨 끝, 또는 머리를 의미합니다

건축물은 바로 이 모퉁이 돌 위에 세워진 기둥들에 의하여 지탱이 됩니다

이는 교회의 존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상합(相合)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 즉 머리가 되셔서 우리는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의 성전이 되어가는 지체들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간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린바 된 돌이란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시어 교회의 기초가 되셨음을 의미하는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오라고 권면합니다

이 돌은 모퉁이 돌로서 이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화평을 원하십니다

화평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갈등이 해소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계층간의 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부부갈등, 고부갈등이 종식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성결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화평을 원할지라도 죄를 가지고는 화평을 얻을 수 없고 이룰 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마련하신 구속을 믿는 자들에게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2:15)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세상에 구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건져 주시고 해방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게 하려고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죄에는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 공동체에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셔서 우리는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의 성전이 되어가는 지체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 성전이 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고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행 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행할 수 있으며,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있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단테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옥의 입구에는 이런 큰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일체의 소망을 버리라” 

그렇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는 곳, 거기가 지옥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소망이 있어서가 아닙니까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도 소망을 가지고 있는 한 좌절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화평케 하시는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의 지체입니다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은 이 땅에 평화를 전하며 또 우리 지체가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지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