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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 강의

하나님아들 2024. 12. 18. 23:49

영적 전쟁 강의  

과 목 명 : 영 적 전 쟁
담당교수 : 민 경 섭 님
학 과 : 신학연구과 2학년
제 출 자 : 이 성 범
제 출 일 : 2006. 6. 16
「영적 전쟁」 강의 테이프 요약

<강의를 듣고 느낀 점을 보혈의 능력에 대한 간증으로 대신 합니다>

2003년 9월 외아들 재성이가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논산 훈련소의 연병장에서 입소식을 할 때, 우리 집 사람에게 성령께서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외아들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과 슬픔 보다는, 800여명의 젊은이들 가운데 있는 불신자들에 대한 아픈 마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집사람은 영혼을 위한 아픈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 아이들도 주님의 자녀와 동일하게 군 생활 동안 지켜 주소서, 보혈을 입혀 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나자 주님은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아이들의 빡빡 깍은 머리 위로 보혈이 소나기처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앞둔 어느 날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이번 훈련을 마치고 논산 연무대 교회에서 훈련병들이 세례를 받았는데, 아들의 표현으로는 거의 모두가 세례를 받은 것 같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 교회의 기독신문을 보았는데,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논산 훈련소 교회 사상 가장 많은 훈련병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보혈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 영적 전쟁을 하라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환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에덴동산의 모습으로 회복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귀라고 하는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움으로 , 잘못된 생각들을 주고 있는 것에 넘어가거나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 필요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 필요한 것이며, 영적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 가운데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이 영적 전쟁은 바로 귀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귀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근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칼을 들고 위협하는 적 앞에서 총을 꺼내들고 발사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신 이유는 영적 전쟁을 하며, 그 복을 빼앗기지 말고 누리라고 주신 것이다. 결코 기도의 끝에만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은 열쇠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정신적으로 눌려 오는 모든 생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풀어라, 제거해라, 씻어 버려라.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임을 빨리 간파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보혈로 명령하라. 그런데 우리는 과연 지금까지 예수의 이름을 얼마나 사용했는가?
이 영적 전쟁의 싸움터는 바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다. 가룟 유다의 경우에서처럼 마귀는 생각과 마음으로 공격한다.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또한 우리의 입술도 전쟁터이다. 그러므로 입술의 권세를 긍정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생활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그 삶을 살아감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품으로 채워지고 그분의 생애를 살아간다면, “귀신아 물러가라”하는 축귀가 없어도, 대적하지 않아도 이미 마귀는 범접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방패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역자로서 나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지키려면 말씀의 검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공격 무기이다. 우리가 영안을 열어 보면 각자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을 볼 수 있다. 이 칼은 사용하면 할수록 길어지고 힘을 발한다.

2. 그리스도인은 담대하라
우리는 강하고 담대함으로 누릴 수 있는 복을, 강하지 못하고 담대하지 못함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과 죄악과 사단 앞에서 담대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이란 강하고 담대한 행동으로 나타날 때 온전해지는 것이다. 스데반은 죽음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강하고 담대하게 드러내고 천사와도 같은 얼굴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요단강과 여리고성 같은 문제라도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가지면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러나 내가 못한다고 하면 하나님도 안하시는 것이다. 문제들이 악한 영들과 귀신 때문에 온 것을 인식하고 강하게 시작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존재로서 의식하지도 않고 있다면, 이들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는 이 문제 위를 강하고 담대하게 걸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죄가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회개는 죽은 행실을 잘라내는 것이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마귀의 계략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이 영적 전쟁에 있어서 천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여호와의 사자가 진을 치고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천사는 악한 영들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기도할 때, 우리의 문제들을 천사가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함으로 절망하지 않고 마귀와 싸울 때 천사는 나를 돕는다.

3. 영적 전쟁의 대상
영적 전쟁의 대상은 마귀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눈을 열고 보면 실제적 영적 전쟁은 “나” 그리고 “죄”와의 싸움이다. 마귀는 뒤에서 문제와 죄를 가지고 조종할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예수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으로 싸울 때 승리하는 것이다. 사실 육체에서 나오는 것은 선한 것이 없다. 오직 성령에 사로 잡혀 순종하는 것만이 생명의 길이다.
그러므로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더 죄에 눌리는 길이며, 매이는 길일 뿐이다. 영적 전쟁은 부부간에서도 부자간에서도 벌어지고, 구체적으로는 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구습들 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오직 말씀의 명령을 따라 단순하게 행하는 것만이 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4. 깊은 회개와 영적 전쟁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것이 죄이고, 이 죄로부터 열매로 열린 죄악 된 습성들을 고쳐가는 것이 회개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죄를 깨달음으로 회개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죄악이다 싶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간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구습에 얽매인 습관적 죄악들을 회개해야 한다. 이것은 옛 삶을 잘라버리고 바꾸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모든 것들이 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 앞에 내가 비추어지면 곧 나의 죄악은 드러난다. 이 때 우리는 바울처럼 “내가 죄인 중의 괴수”임을 고백할 수 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신다. 고백은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해준다. 영과 육의 상처들을 치료해주고 회복시켜준다. 성령은 죄로 인해 더러워진 곳에 계실 수 없기 때문이다. 회개하고 고백하는 정결한 마음에 거하시며, 그로 인해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는 것이다.

5. 전쟁 지역에 살고 있다.
영적 전쟁은 영적인 멍에와 갈등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진리의 대결이다. 사단은 비밀리에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로 무장하고 든든히 서서 대적해야만 한다. 사단보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선포하고 명령하며 싸워야 한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집안이 먼저 영적 전쟁터라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빛이 비추이면 사단은 자꾸 숨어 들어간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에 속게 되면 오히려 눌리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면 눌릴 필요가 없다. 진리만 붙들고 가면 사단을 능히 무찌르고 갈 수 있다. 마귀는 늘 틈을 노린다. 그렇지만 우리가 틈을 주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에게 들어올 수 없다. 예수께서 살과 피를 양식과 음료에 비유하신 이유는, 우리가 떡을 먹을 때마다 물을 마실 때마다 보혈의 능력이 적용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권세를 주장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또한 마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함부로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믿음의 말을 입 밖으로 내어 마귀를 대적하며 쫓아내야 한다. 마귀는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시인하며, 주께서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을 힘입어 마귀를 밟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6. 영적 전쟁의 무기
영적 전쟁의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성령 안에서 사용하는 예수의 이름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는 말씀에서, 강력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은 권능이지만, 우리가 그 이름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사용할 때에 권능이 나간다.
제복으로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영적 전쟁에서도 마귀에게 우리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적 제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다.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의 말씀처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힘은 이 진리에서 나온다.

7. 영적인 전쟁터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마음이 있다. 우리의 몸에 좋은 것이 들어가면 좋은 것이 흘러나와 복되게 하고, 나쁜 것이 들어가면 나쁜 것이 흘러나와 망하게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몸에는 영이 있어서 영적인 세계를 알게 한다. 예수님은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기분이 산란하고 안 좋을때, “성령님, 나를 씻어 주세요” 하면 성령께서 생수의 강을 흘려 씻어 주신다.
그런데 우리의 몸 속에는 내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귀의 생각도 있다. 사단은 우리의 생각이라는 문 앞에 악한 생각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그 문 앞에 엎드리게 한다. 이것이 영적으로 눌리는 것이다. 마귀가 문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을 받아들이고 자꾸 키우는 것이다. 이것들이 자꾸 새끼를 치고 자라갈 때에, 마귀는 그것에 자신의 분신을 남겨 놓고, 미움, 갈등, 분노를 갖게 하고 드디어는 우리가 그것을 다스릴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각의 문 앞에 보초를 세워서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의 사고방식이 되고, 가치관이 되어지지 않도록 생각을 잘 관리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세상이다. 이 세상이 주는 악한 영향은 우리가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문제를 더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는 작은 거짓과 생각들을 거절하고 잘라버려야 한다. 사단은 교묘하게 생각의 배후에서 영향을 미치고 우리를 속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분별하며, 과거의 실패 경험과 습관에 묶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과거를 십자가에 못박고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정복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오직 진리를 향하여서만 열어 놓고, 성령의 인도만을 받아야 한다.

8. 영적 전쟁과 축귀
예수께서는 죄와 질병 그리고 악령으로부터의 묶임 등의 3가지 문제의 영역을 다루셨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다루는 것을 교회에 위임하셨다. 이 영적 전쟁을 함에 있어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이렇게 하므로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 군병으로서 신지식으로 승리하여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귀신을 지배하고 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를 괴롭히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 뒤에 귀신이 있다. 그 문제 안에서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묶고 푸는 열쇠를 주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사건이 더 많이 생기게 되어진다. 마귀는 우리가 자신의 원수가 되었음으로 우리의 복을 빼앗아 간다. 이러한 마귀에 대한 축귀 사역은 죄, 질병, 악령들의 묶임 3가지 문제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이런 영역을 다루었다. 손을 얹은즉 나아야 하고 귀신 쫓아내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말씀에는 기적과 표적이 따라야 한다. 분명 악령은 존재한다. 모든 것을 귀신에 갖다 붙이는 극단과 아예 귀신이 없다고 하는 극단의 양극단이 오늘의 교계를 풍미하지만, 분명 악한 영들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중심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 마귀의 존재를 인정함에 있어서 주의할 것은 그들이 천사로 가장하고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병적인 집착을 하지 말 것이며, 오히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하여 성령을 깊이 알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소극성은 죄짓기 다음으로 악한 마귀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귀사역의 중요성을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씨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권세이기 때문이다. 악한 세력의 배후에는 계급과 조직이 있다. 이것이 바로 정사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천국의 열쇠들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교회는 깨어나야 한다. 교회는 거창한 프로그램만을 만들어 내지 말고 단순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생명력 있는 삶, 성령님과의 인격적 만남, 천국열쇠의 사용 등으로 믿음의 옷을 입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기독교 군병들로서 실제적 지식을 갖추고 배워서 마귀의 궤계를 알고 깨뜨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