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감사 예화 5가지

하나님아들 2024. 12. 7. 23:20

감사 예화 5가지

 

 

 

 

(1) 감사로 치유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 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 서 범사에 감사하라.

 

 

 

(2) 감사가 있는 사람

 

무말랭이처럼 말라 비틀어진 육체를 지니고 언제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루 게릭병(근육 무력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다. 겨우 20세가 되던 해에 이 병에 걸렸다는 통고와 함께 앞으로 1, 2년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학적인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랄까. 죽음의 선고가 있은 지 무려 4반세기 이상을 살고 있긴 하지만 1985년에는 또 다시 폐렴에 걸려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말하는 기능까지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자. 그 불행과 고통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야 할까?

 

당사자인 호킹(Howking)박사의 <시간과 역사>라는 책을 대하면 유달리 농도 짙은 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우리가 통상 머리말이라고 하는 부분을 그는 감사의 말이라는 제목 하에 기술하고 있다. 그의 글이 또한 전개되어 가면서 그는 계속하여 자기의 행복을 고백하고 타인에 못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부단히 감격하고 있다.

 

호킹은 만인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불행의 요건을 남달리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인생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며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삶의 자세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정신적인 자세가 아니라면 그가 어찌 그렇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우리나라까지 와서 강연을 하겠다는 엄두인들 내겠는가? 호킹은 남달리 값지고 성공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원인은 곧 감사로 충만한 정신자세 때문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해 본다. 흔히 그는 현대의 살아 숨쉬는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사공의 마술사'인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이론 물리학자라는 평가도 받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기에 그는 나이 겨우 32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학문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왕립협회의 회원이 되는 영광을 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영국 케임 브리지 대학의 루카스(Lucasian) 수학교수로서 뉴턴의 영예를 계승하고 있다.

 

건강, 지위, 재산, 가문, 학벌, 건전한 가족운 등 남이 부러워할 만한 여건들을 한 몸에 독차지하고서도 불평 불만에 사로잡혀 찌들고 비뚤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은 천당에 옮겨다 놓아도 거기에서도 불평거리를 찾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지옥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이 보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워 보이는 삶의 여건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호킹 박사와 같이 본인의 기본적인 자세만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감사가 충만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인간임을 우리는 새삼스럽게 재음미해 보아야 한다.

 

 

 

(3) 감사하는 생활

 

J. C. 페니는 미국의 부호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1929년 미국 증권시장 파동 때 실수로 인해 많은 재산을 날리고 고민하던 중 불면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였다. 나중에는 대상포진이란 육체적인 병까지 생겨 통증으로 고생을 하며 밤만 되면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떨며 진정제나 수면제를 복용하고도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어느 날 아침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던 페니에게 병원 예배실로부터 찬송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후에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에게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페니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백하기를 “그것은 다만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찬송과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캄캄한 굴 속에 서서히 햇빛이 비치더니 나중에는 온 굴 속이 밝아져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인생의 새 출발을 하며 예수님의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자기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하여 그가 재기한 후 맨 처음 교회에 많은 헌금을 바쳐 플로리다에 은퇴 목사를 위해 주택 백 동을 건축해서 헌납하면서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감사하는 생활 속에 넘치는 복이 있음을 알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4) 역경 중에서도 할 감사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절하여 5년의 옥중 고생을 하고, 나환자를 위해 그 일생을 바치다가, 공산군에 의해 피살 순교한 손양원 목사는, 역경 중에 감사한 대표적 인물이랄 수 있는 분이다. 다음 편지는 그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투옥되어 있는 중에, 사랑하는 그 아내에게 낸 편지인데, 병든 아내에게 그런 때에도 감사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동인 어머니에게!

 

병고 중에서 얼마나 신음합니까? 이 같은 염천에 고열도 심한데, 게다가 병고까지 있으니 설상가상이다. 그러나 신애와 진리는 기후와 환경을 초월하니, 안심하소서. 꽃피고 '새우는 양춘 가절에만 신애가 있을 뿐 아니라 백설이 분분한 엄동 혹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며, 오곡 백과가 성숙하는 가을 9월에만 하나님이 있을 뿐 아니라, 한천출배를 이루는 이 같은 염천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며, 금전옥루에서 산해진미를 먹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찬미할 뿐 아니라, 수간두옥 속에 기한질고 중에서도 신의 사랑을 찬양할지니, 항상 기뻐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소서. 당신의 신앙이 능히 병고를 극복할 것을 믿고, 나는 안심합니다.

 

여보시오 나는 솔로몬의 부귀보다도 욥의 고난이 더욱 귀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가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부와 지혜는 나중에 타락의 매개가 되었으나 욥의 고난과 인내는 최후에 영화가 된 까닭이외다. 사람의 영화는 최후를 보아서 알고, 참다운 지혜는 죄악을 떠남이 참 다운 지혜이겠나이다. 안심과 희락은 만병의 보약이오니,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부디 병석을 떠나소서.

 

1943(소하18)년 8월 18일 손양원

 

 

 

옥중에 매여서도 오히려 밖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이런 글을 보낼 수 있었음은 그가 먼저 감사의 사람이기 때문이오, 신앙의 용장이기 때문이다.

 

 

 

 

(5) 은총 받은 생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 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 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감사의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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