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그리스도인 예화

하나님아들 2024. 11. 19. 22:41

 

그리스도인 예화

1.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그리스도인

교부 크리소스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로마 황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맞섰습니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로마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감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하기를, "황제님, 크리소스톰은 크리스챤입니다."

황제가 고함을 질렀다. "크리스천이면 별 놈이냐? 빨리 집어넣어라!"
"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기다 가두어 넣더라도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중얼중얼 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 두게 하면 그에게 좋은 일만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라!" 신하가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 "황제님, 그건 더욱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할 것이며, 얼마 있지 않아 그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크리스천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무도한 악질죄인도 변화시켜 오히려 상급을 받게 해주는 일입니다."

황제가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면 그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당장!"
신하가 사색이 되어서 다시 말하기를, "아이구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처형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우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제일 좋은 것을 안겨주는 셈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아이고!"
/강재식 목사 (구미등대교회)




2.닭인가 독수리인가

독수리 알 하나가 굴러서 닭 농장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독수리 알을 달걀로 착각한 늙은 암탉은 독수리 새끼도 자기 새끼인 줄 알고 기르기 시작했고, 이 독수리도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끼 독수리가 문득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부러운 생각이 들어 “나도 저렇게 날 수 있을까?”라며 탄식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닭들이 말했습니다. “저기 하늘을 나는 멋진 새는 독수리고 너는 닭이야. 닭 중에서도 덩치가 크고 못생긴 닭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어.” 다른 닭들의 핀잔을 들은 새끼 독수리는 결국 자기가 평생 닭인 줄 알고 살다가 달걀도 하나 못 낳아보고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들은 닭이 아닙니다. 우리는 독수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날개, 기도의 날개, 용기의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힘이 없어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망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위에 업혀서 다시 하늘을 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3.그리스도인은

슬픔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춤을 추는 사람들입니다.
눈물 가운데에서도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절망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대적자들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원수들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용서하는 사람들입니다.
/최용우




4.그리운 그리스도인

몇년 전 한 모임에서 어떤 분에게서 명함 한 장을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그분의 다양한 경력이 기록돼 있었는데 맨 마지막에는 40일 금식기도 2회,성지순례 1회라고 적혀 있었다.
또 어떤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 당회장실에서 미국 모 신학대학원과 한국의 모 신학대학원과의 공동 학위 과정에서 받은 학위 수여 사진을 출입구 정면에 크게 걸어 둔 것을 봤다. 그런데 그분의 후임 목사는 바로 그 자리에다가 미국에서 받았다는 학위 3개를 걸어두고 있었다.

어느 교회 목사는 단 3개월 만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들어와 성대한 학위 취득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이라고만 말하고 지나쳐 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 공동체의 자랑하는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됨은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그리스도인도 있다. 자랑스러운 왕손가문 베냐민 지파의 사람,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종교적인 배경,당시 최고 학부였던 가말리엘 문하의 수석 졸업생이고 율법적으로 흠이 없었던 ‘바울’이란 청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모든 자랑이라는 깃발을 내리고 그 자리에 예수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올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고 고백했다. 그리고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였던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명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다. 또 그 일을 목표로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운동선수처럼, 군인처럼, 그리고 신앙의 용사처럼 그의 인생을 경영했다. 바울 같은 이런 그리스도인이 그립다.
/조갑진 교수(서울신학대)




5.마음의 눈

“다 잃었습니다. 겉만 보고 판단한 제가 잘못입니다.”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한 여인의 하소연이다. 한 여인이 아주 멋지게 생긴 기골장대한 얼짱을 만났다. 단지 상대방의 겉이 멋있고 매너가 좋아 신앙을 과감히 무시하고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유부남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아 자살하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외적인 면에 치중해 사람을 바라보곤 한다. 그것은 책 표지가 예쁘다고 최고의 책으로 여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더 이상 외모로 사람의 인격까지 판단해 버리는 그런 실수는 없어야겠다. 우리들은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으로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리스도인은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겉은 후패하나 속은 새로워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다.
/김학중 목사(새안산교회)




6.전도자 무디

세계적인 전도자요 설교자인 무디(Moody)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교회학교 생활도 엉망이었다. 그는 요한복음을 찾기 위해 창세기부터 침을 묻혔다. 무디는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독교교육이 미흡하고 학교생활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디는 그래서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다.
"너처럼 희망 없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사용될까?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
친구들은 무디를 향해 놀려댔다. 무디는 그래서 늘 고독했다.
그래서 그는 고독한 시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무디는 미약하나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를 올렸다. 결국 무디는 세계적인 전도자가 됐다. 하나님은 작고 미미한 것을 놀랍게 사용하신다. 무디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존재로 비쳐졌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희망의 재료'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한다.




7. 우리교회 오집사

우리 교회 오창석 안수집사는 장의사를 운영한다. 작업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수익금에서 생활비와 운영비를 빼고는 모두 구제 사역에 쓴다. 정박아시설,보육원 어린 양의 집 아이들의 장례를 전담해 치러주고 사할린 귀국 동포를 위한 무료 장례도 도맡고 있다. 일가친척은 물론 가족과 담임목사인 나도 모르게 생면부지의 고등학생에게 신장 한쪽을 기증해주었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두 사람 모두 건강하다. 고맙다고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느냐고 찾아온 그 학생과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수만 잘 믿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나는 감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감사 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 목숨도, 내 몸도, 내 재산도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 것입니다.” 오 집사를 보면 내가 부끄럽고 그의 인생이 부럽다. 나는 사후 장기 기증을 서약했으나 암을 앓은 후 장기 기증이 모두 취소됐다. 세상은 오 집사 같은 사람으로 인해 아름답게 빛난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8.반쪽짜리 그리스도인

트루먼트는 “틀림없이 불행해질 수 있는 조건은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교회와 세상에서 이중성을 가지고 살 때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크리스천 사업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혹시 교회에 다니면서 사업하는 사람을 모두 ‘크리스천 사업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만약 사업하는데 그 사업의 원리 속에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장사한다면 그것은 교회 다니면서 사업하는 사람이지 결코 ‘크리스천 사업가’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천 사업가’는 사업의 원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용해서 사업하는 사람을 말한다.
‘크리스천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의 원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 방법으로 직장 생활을 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크리스천들은 많지만 정작 일터의 현장 속에서 크리스천답게 사업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원리 속에 성경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중적인 신앙을 버리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밖으로 나타내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태어나자!
- 「탁월한 왕따되기」/ 박호근




9.그리스도인을 향한 기대

한 청년이 아침 일찍 공원에 들어가 벤치에 앉았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됐어도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공원 문을 닫으려고 관리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기에 앉아서 도대체 무얼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바로 지금까지 그 질문을 묻고 있는 중이오.” 그는 나중에 유명한 철학자가 된 쇼펜하워였습니다. 굳이 철학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유행가 가사가 말해주듯 인간은 늘 ‘내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같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불러내심을 받은 자들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란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특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는 구약시대와는 달리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누리는 특권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특권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던 그 순간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지면서 제사장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됐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도 거룩하지 못하지만 의로우신 예수와의 관계로 인해서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의로우신 예수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살게 됐습니다. 우리는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문과 직장, 도시와 국가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 주의 얼굴을 뵙는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 세상에 영광의 광채를 드러내는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왕국에서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왕국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조갑진 교수(서울신학대)




10.그리스도인의 역할

당신은 음식에 소금을 뿌렸을 때 그 음식이 소금 맛만 나기를 원했습니까? 아니면 소금이 음식의 맛을 더해주기를 원했습니까? 자, 이것은 당신이 세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함을 뜻합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제니 베이커 외 지음 ‘내 안에 들어온 예수님’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 이라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소금 자체로만 존재할 땐 가치가 없습니다.
다른 것들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 소금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소금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까? 우리 삶의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진가를 발휘하며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11.예수 믿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것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는 것 그리고 그 외에 무엇이 있습니까?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는 것 외에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증거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슬퍼집니다. 아주 가끔 예수 믿는다는 증거로 식사시간에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거짓말을 안 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남 흉 안보고 예수 믿기 때문에 뇌물 안 받고, 예수 믿기 때문에 질서를 잘 지키고 예수 믿기 때문에 남을 속이지 않고, 예수 믿기 때문에 양보 잘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인심 후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좀 너그럽고, 융통성 있고, 손해도 좀 보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어째 세상 사람들보다도 못한 고약한 사람들이 되어 가는지 모르겠네요.
/최용우




12.생활신앙

오래 전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란 글을 접했습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은 참을성을 잃지 않고, 화가 났을 때라도 건설적인 길을 모색하며, 다른 사람의 행운을 시기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가장 나쁜 점보다 가장 좋은 점을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과 생활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결론은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생활이 그리스도인다운 것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최고봉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름다운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아름다운 생활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수준급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생활에서는 수준이 미달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잘 하지만 생활신앙이 정립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제법 많은 데, 이것이 신앙인의 아킬레스건입니다.

마이크 머독은 그의 책에서 “일상생활을 바꾸지 않는 한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이 바뀌지 않는 한 일상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생활이 바뀌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이 바뀌어야 비로소 생활이 변화됩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죄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비로소 그들의 생활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 생활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 「도시 속의 사막」/ 이성희




13.교회의 적

백합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지만 썩으면 극심한 악취를 내는 꽃이다. 이러한 반대적 현상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돌아선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막스'(K. Marx)가 한 때 신학생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변절자가 오히려 기독교에 미치는 악영향이 어떠한 것인가를 대변해 주는 가장 훌륭한 예이다. 교회에 가장 크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기독교인처럼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라는것이 마음아픈 일이다.




14.만약에 그리스도인이 다 사라진다면

인천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침에 교회에 출근을 해 보니 교회 담벽에 '월드컵나이트클럽'이라는 신문지만큼 큰 나이트클럽 광고지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줄줄줄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잡아떼었더니, 풀을 얼마나 범벅을 해서 붙였는지 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화가나서 그 광고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도대체 뭡니까? 교회 담벼락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 나이트클럽에 오라는 말입니까 뭡니까 이게..."
"우리 나이트클럽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 많이 와요..."
"예에? ~~~" 저는 할 말을 잃고 그냥 전화를 끊었습니다.
만약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술집에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방에서, 음란도박장에서, 모텔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리에서, 경건하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비성경적인 드라마나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끄고 그 자리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홀연히 사라져버린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최용우




15.육적인 그리스도인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종종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뉘우침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죄에 대하여 실패하곤 한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와 싸워 이겨야겠다는 결의가 거의 없거나 현저히 부족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헐적으로 경험하기는 하지만 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에게는 결국, 주님의 은혜로도 자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불신앙적인 패배의식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가장한 충동적인 행동은 있지만 인격적인 주님과의 지속적인 사귐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신령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실패하지 않고 늘 승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실패 속에서 경험되는 영적 성장이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에게는 빈번한 실패만 있을 뿐 성장이 거의 없다.


그리고 영적으로 깊은 침체와 무감각 가운데서 지낸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병적인 유아 상태와 결별하고 건강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기를 사모해야 한다. 실패한 삶의 한복판에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는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고, 오직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만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고 그분의 만져 주심을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위와 무기력에 가득 찬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종말을 고할 수 있다. 나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16.현대 교인의 모습

많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진단하고 있다. 틸리히 교수는 현재 기성교인 중에 10%는 이미 죽었고, 80%는 잠들어 있고, 오직 10%만 이 살아서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알렌 교수는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25%는 기도를 드려 보지 못했고, 35%는 가정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없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85%는 전도를 한 명도 못했으나 교인들 100%는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17.매력있는 그리스도인

인도에 선교사로 간 맥스웰이라고 하는 분은 그곳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별나게도 인도는 마을마다 언어가 달라서 새로운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새롭게 언어를 습득해야만 됩니다. 한번은 어느 마을에 들어가 힌두교인 한 사람을 붙들고 말 좀 가르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내게 와서 말을 가르쳐주시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말만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힌두교인이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당신하고 함께 있어 그리스도인으로 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이 사람하고 만나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됩니다. 이 사람하고 말을 하면 누구나 같아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와 20년을 살았는데도 아직나 닮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렇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기독교인으로 어디 가서 머물든지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라고, 나와 같아지려고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저런 사람이 교인이라니, 나는 그런 종교 안 믿겠다."라고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참으로 볼품없는 기독교인이라 하겠습니다.




18.당당한 그리스도인

6·25사변 당시 충남에서 강경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종덕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강경 지방에 어느 날 공산당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들 공산주의자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겼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사님은 후배 목사님에게 두껍고 큰 종이를 가지고 갔습니다.
“목사님, 이 두꺼운 종이에 무엇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내 명함을 만들려고 하네.”

“명함이요? 생전 명함 한 장 안 지니시다가 갑자기 무슨 명함입니까?”
목사님은 말없이 종이를 자르시고 거기에 ‘강경침례교회 목사 이종덕’이라고 쓰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 명함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경찰이고 공산당원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눠주려고 하네.”
“아이고 목사님,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떡 하시려구요.”
“아니, 이사람이! 자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이종덕 목사님은 그 명함을 뿌리고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공산당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셨습니다.
- 「짧은 이야기 긴 감동」/ 이동원




19.그리스도인의 정체

자신을 이 땅에서 잠시 지나는 순례자로 자처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참된 신자가 부당하게 하나님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모든 것을 다 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바꿀 수 없고, 이세상의 자원들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좋으신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동안 누리는 그 신적인 달콤함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나그네로 자처하며 살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사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20.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본문: 골로새서 3장 12- 17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자, 그리스도를 닮은 자라는 뜻입니다. 온유 겸손하신 예수님, 죄인을 구원해주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닮은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처음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이 섞인 호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신문을 받는 중 그 기회를 이용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깜짝 놀라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바울을 책망합니다.


왕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라벨이 붙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침을 뱉듯이 외면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를 가르키는 별명입니다 원래 이 이름은 그리 명예스러운 내용으로 불리운 이름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신자들은 그들에게 붙여진 부끄러운 별명을 받아 오히려 놀라운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는 빛나고 존귀한 이름이 되도록 우리에게 좋은 영적 유산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주후 313년에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빛나는 이름을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진단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 알곡과 죽정이,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이 밝혀질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21.아름다운 성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통계에 따라서는 그리스도인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 우리 사회의 그리스도인 중에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서는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가 많습니다. 원래 평신도는 성직자와 대립된 개념에서 나온 것인데, 성직자가 교회의 주된 역할을 감당한다면, 평신도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평신도’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경에는 성직자나 평신도의 구별 없이 ‘성도’(saint)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분도 엉터리 직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직분 타이틀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성도가 된 후에 교회 안에서 직분이 있는 것이며, 그 후에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직업이나 직책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그 관 위에다 ‘성도 000 ’이라고 쓰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만큼 성도라는 이름은 아름다우며 축복된 이름입니다. 우리는 부활할 때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성도로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 김서택




22.아름다운 호칭

우리의 자매, 일꾼, 보호자, 동역자, 사랑하는 자, 권속, 함께 갇힌 자, 형제, 성도....
이 아름다운 호칭들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바울 사도의 편지에 27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씩 언급하면서 붙인 호칭들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2:20)
천국에서 불리는 호칭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가 아니라 분명히 우리의 자매, 일꾼, 보호자, 동역자, 사랑하는 자, 권속, 함께 갇힌 자, 형제, 성도....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호칭은 무엇이 될까요?
/최용우




23.이름 값

알렉산더 황제 밑에는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진 것입니다. 하루는 황제가, 병사 알렉산더의 천막을 찾아갔습니다. 황제는 알렉산더에게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네", 황제는 알렉산더에게 이렇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황제인 내가 자네에게 명령하네, 자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자네의 생활 태도를 바꾸게."




24.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이름

한국의 선교 역사에는 수많은 신앙의 거인들이 있었다. 저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한국 초기 선교사로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연동교회의 담임목사였던 게일은 자신이 만난 가장 위대한 신앙인으로 연동교회 초대장로였던 고찬익을 꼽았다. 고찬익은 원래 원산에서 게일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원산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였다. 가난한 신자들의 방 자리 밑에서 알 수 없는 돈이 나오고 혹은 뜰에서 쌀자루가 발견되었다. 또 원산 거리에서 거지가 매우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했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고찬익이 게일을 따라서 서울로 가게 되었고 그후에는 이런 이상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 사건들이 고찬익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고찬익은 게일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서 연동교회에서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찬익이 하루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나는 의식이 빈궁해서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고찬익은 “노동을 하면 먹을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양반 출신이어서 노동을 천하게 생각했다. 고찬익은 청년에게 “내일 아침 일찍 아침식사 전에 우리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고찬익은 집에 가서 지게와 수건을 둘씩 준비하고 아내에게 밥을 한 그릇 더 지으라고 했다. 다음날 청년이 약속시간에 고찬익의 집에 왔다. 고찬익은 청년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지게를 하나씩 지고 인근 선교사댁 건축 공사장에 가서 함께 종일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받은 노임을 그 청년에게 주었다. 고찬익은 청년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소중함까지 가르쳐주었다. 길선주 목사는 고찬익 장로를 “경성교회 기초사역에서 가장 유능한 전도자”라고 평했다.




25.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2002년 10월 어느 날,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어느 형무소에서 한 여성이 독극물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는 연쇄살인범으로서, 경찰을 비웃듯이 오랫동안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그러다가 결국은 꼬리가 길어서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그 여인의 살인수법은 혀를 내두를만하다. 그는 먼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난 것처럼 가장했다. 그러면 동정심 많은 중년 남자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는 창녀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를 쉽게 유혹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외딴 곳으로 가서 그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척 하다가는 갑자기 총을 꺼내 그 남자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대담하게도 그 남자의 시체를 고속도로 주변에 내던졌다. 그렇게 해서 일곱 명의 남자가 그에 의해 살해되었다.


결국 그 여자는 체포되어, 12년 동안의 재판을 거친 후에 사형에 처해졌다.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은 24세부터 34세까지의 10년간이었다. 한창 인생의 꽃을 피울 나이였다. 그리고 그가 처형된 것은 46세 때였다. 그는 사형판결이 내려지자 자기를 빨리 사형에 처해 달라고 악을 쓰며 몸부림을 했다. 자기 몸 속에는 증오심이 들끓고 있어서 기회만 되면 다시금 살인을 자행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이린이었다. 그 이름의 뜻은 평화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름과는 정반대 여자가 되었다. 마치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의 경우와 같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이름과는 정반대가 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이름에 적합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26.자랑스러운 이름

작은딸이 학교 육상부 대표 선수가 되어서 무슨 대회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온 모양입니다. 학년 구분 없이 여자, 남자만 구분하여 달리기를 하는 바람에 3학년인 딸은 5-6학년들과 함께 뛰느라 등수 안에는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내가 우리학교 육상 대표선수야. 대표선수!" 하면서 학교 대표인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초기교회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마치 학교 대표선수나 된 것처럼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행11:26) 복음서를 읽다보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 대표 육상선수란 이름을 얻기가 어디 쉽습니까? 그건 돈으로도 안됩니다. 그래도 달리기를 제법 잘해야 대표선수가 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엡2:10)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 자랑스러운 이름이 '개독'이라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네요. 언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호칭 속에서 '그리스도'가 빠져버리고 무늬만 남게 되었을까요? 마치 달리기 실력은 전혀 없으면서 '육상 대표선수'라 불리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달리기도 못하는 이름뿐인 육상 대표 선수는 대회에 나가면 나갈수록 조롱 꺼리가 될 뿐입니다.
/최용우




27.그리스도인의 숫자

최근 이현숙 집사라는 분이 「주님이 오십니다」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 무장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몇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볼 때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인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아무 때나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인은 교회에만 가면 됩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될 수 있는 것이 교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택이나 타인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임경택 목사(종로교회)




28.그리스도인

성경대학 졸업여행으로 애양원을 선택했다.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애양원 예배당이 있고 뒤쪽 동도섬에 세 개의 무덤이 있다. 당시 1000여명의 한센병 환자들을 상대로 목회하면서 신사참배 거부로 6년간 옥고를 치른 후 48년을 살고 가신 손양원 목사님의 무덤과 여순반란사건 때 25세와 19세의 나이로 순교한 동인군과 동신군의 무덤이 있다.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에는 고인이 사용했던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원수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 앞에서 눈시울을 적셨다. 그곳에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입적시킨 손양원 목사님의 숨결을 느꼈다. 한센병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직접 빨아주며 돌보셨던 산돌 손양원 목사님은 실로 예수님처럼 원수를 위해 십자가를 진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의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자이다. 오늘의 교회는 ‘아무나 오라’고 부르지만 천국에서는 ‘그리스도를 닮은 자들만 들어오라’고 하신다.
/최낙중 목사(관악교회)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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