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 (벧전2:5, 9-10)
1. 서 론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이고 둘째는 사람에 대한 의무이다. 5절에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한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의 첫째 의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또 9절 하단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우리의 둘째 의무는 그래서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거룩한 백성이다. 오늘은 이 중요한 우리의 의무인 예배와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본 론
1)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예배를 통하여 경험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우리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회개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능력을 받습니다. 에녹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즉 하나님을 늘 만나는 삶을 살았기에 그는 부도덕하고 패역하고 악한 세대에 거룩하게 살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 없이 우리는 홀로 세상의 온갖 유혹과 사단의 세력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지키고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이 교회를 지키는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파괴시키려고 온갖 유혹을 하고 덧을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전쟁은 우리의 의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재간이나 전략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 잘 압니다. 사단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는 종교로 옷 입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강력한 힘을 지원 받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받기 바랍니다.
왜 전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전도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한다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사단의 속박에서 구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속박에서 구해낼 수가 있습니까? 도저히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하기 전에 먼저 모여야 합니다. 능력을 받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번에 특별한 영적인 부흥집회를 준비하셨습니다. 17-22일까지 개최되는 부흥집회에 열심히 모여서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새롭게 체험하고 회심과 변화의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예) 몽골에서 일어난 일
벌레르나는 자매는 예배시간에 담에 범벅이 되어서 들어왔다. 그녀는 몇 달전 기도로 듣지 못하던 귀가열린 자매였다. 예배시작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고 있었다.
소를 찾아 헤메이다가 예배 시간이 된 것을 알고 그는 소를 찾는 것을 중단하고 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가 끝나자 소가 교회 문 앞에 와 있었다.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이 소녀는 예배와 소 모두를 얻었다. 예배가 우선이다. 우리의 삶에서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키신다.
“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서로 굳게 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특권을 게을리 할 때에 우리는 커다란 손실을 당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와 중대성을 잃고, 우리의 마음이 그것의 성화시키는 감화로 계발되고 부흥되기를 멈추고, 영적으로 퇴보하게 된다.”(부조, 541)
“ 신실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지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함께 계신다. 교회의 회중에게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지, 그 수가 비록 적을지라도 그 곳에도 계실 것이다. ”(소망, 442)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재림신도의 회집에 모여 왔다.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동기에서 각기 재림에 대한 교리를 듣고자 갈망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그들의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반대의 정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셨다. 때때로 사용되는 도구는 연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의 진리에 권능을 더하셨다. 그런 집회에는 천사들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신자들이 날마다 많이 증가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에 대한 증거가 반복 설명될 때에 많은 군중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그 엄숙한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과 땅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의 권능을 청년과 중년과 노년들이 모두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입으로 찬송하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그 기쁜 소리는 조용한 밤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런 회집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감명 깊은 광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쟁투, 369)
“성경은 어떤 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섰는데 사단도 그 가운데 와서 참석했다고 말한다(욥 1:6 참조). 사단은 영원하신 왕 앞에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의로운 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악한 술책을 쓰기 위해서 참석했다. 사단은 똑같은 목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곳에 참석한다. 비록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는 노련한 장군처럼 미리 계획을 세운다. 하나님의 종들이 성경을 상고할 때 그는 사람들 앞에 제시될 문제에 관하여 주목한다. 그러고는 그가 속이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기별을 듣지 못할 환경을 만들고자 온갖 계책과 수단을 쓴다. 경고가 가장 필요한 자는 꼭 참석해야 할 어떤 중대한 일을 보도록 만들고 또한 그 이외의 어떤 방법으로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든다.”(쟁투, 518)
2)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기 위해 모여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면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나아가 우리가 만난 주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우리를 세운 것은 주님의 아름다움을 선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아가 전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가고 들어오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방에만 들어앉아 책만 보고 예배만 드리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문제입니다. 나아가 누군가를 만나 깨달은 것을 삶에 적용하고 살아야합니다.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15:16에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예배가 우리끼리 모여서 기도만 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의 예배는 얼마가지 않아 힘을 일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계속하여 경험하려면 우리는 나아가 전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들끼리만 모이고 완전히 하늘만 바라보면서 완전히 세상에 무관심한 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동시에 세상을 향해야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증거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누룩이 밀가루 속에 석이지 않고는 결코 부풀게 할 수가 없습니다.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지 않고는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등불을 말 아래 두고 비출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셨다. 예수님은 섞이셨다. 예수님은 인성을 쓰고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말로만 설교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말로만 하늘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세상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예수님은 한번 슬쩍 방문하시고 서둘러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들어오신 세상에 머무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먼발치에서만 그분을 응시하게 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철저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을 만나셨다. 예수님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문둥병자 혈루병자들을 만지셨다. 예수님은 창녀의 애무에 뒷걸음질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인의 입장에서서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을 죽으셨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섞이셨다.
당신은 정말 주님이 말한 누룩인가? 당신은 정말 주님이 말한 소금과 빛인가? 그런데 왜 섞이지 않는가? 제발 나아가 저 밖에 있는 사람들과 사귀라! 그들과 섞이라! 친구가 되라! 그렇지 않고는 결코 전도할 수 없다.
먼저 친구 갖기 운동을 벌입니다. 이웃과 친구가 되십시오. 여러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친구가 되십시오! 4월에 소그룹 전도회(18-26)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사귄 친구들을 부담 없이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아가 저희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고 들은 바를 세상에 선포하여야 하였다. 그들의 직무는 이제까지 인간이 부르심을 받은 직무 중 가장 중대한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직무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였다. 구약에 열두 부조들이 이스라엘을 대표한 것처럼 열두 사도는 복음 교회의 대표자가 되었다.”(행적, 19)
“신자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할 때 그들은 구속주의 사랑과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더욱 힘있고 분명하게 증거하게 되었다.” (행적 49)
“오늘날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목적을 세상에 알리시고자 당신의 교회를 사용하신다. 오늘날 십자가의 전령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나라에서 나라로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의 표준은 높임을 받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시며, 그 감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한 증인이 된다. 많은 곳에서 헌신한 남녀들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확실하게 해준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그들의 빛을 계속 비추이게 할 때 더욱 더 많은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 이리하여 이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것이다.”(행적, 53)
3)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라!
9절에 의하면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우리는 섞여야 하지만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소금이라 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세상에 있으나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었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죄인의 친구이어야 하지만 죄에 물들지 말아야한다. 강한 것이 약한 것에 영향을 준다. 성경에는 죄의 누룩이 있고 의의 누룩이 있다. 우리가 의의 누룩으로서 강하면 세상 사람들 속에서 선한 영향을 미쳐 변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 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가? 기독교인들의 이중적인 삶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의 위선적인 삶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복음전도를 가로막은 가장 큰 요인은 기독교인들의 일관성 없는 위선적인 삶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디도서에 나오는 그레데의 거짓 교사들의 삶을 닮고 있다. 딛1:16에 이들을 가르켜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거창한 말을 하기 전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으로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보여 지는 그리스도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전혀 닮지 않은 교회와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한 행위로 너의 참된 믿음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빛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우리는 참 빛을 우리의 삶을 통해 비추어야 한다. 부정직한 사람들 틈에서 정직한 사람이 고통을 받을 지도 모르지만 그 정직이 감동을 준다. 음란하고 더럽고 누추한 사람들 속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술 취하고 방탕한 사람들 속에서 절제하고 자신을 구별할 줄 아는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사람들에게 생수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고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에게는 하찮은 사람도 없고 계급도 없었다. 예수님은 시시한 사람, 약자요 죄인인 사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그래서 때로는 비평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부류로 취급당했다. 그러나 그분은 한 점도 죄가 없는 분이셨다. 그러기에 그는 갈증으로 목말라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가 되셨다. 그러기에 그는 망가지고 절망 속에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생명이 되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희망이시다.
예) 오늘의 탕자
건망증 환자가 엄청난 보물을 자기 집 장롱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받은 은혜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교회에 와서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찾고서 "아! 내가 고귀한 신분이구나!"하고
느끼다가도 다시 세상에 나가서는 도로 다 잃어버리고 거지처럼 살다가 또 교회에 와서
자기를 확인하는, 목표를 잃은 탕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보물을 찾고 나서 다시 감추어 버리는 목표를 잃은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오늘의 탕자인
것입니다
3. 결 론
유월절 양이 죽던 날 이스라엘은 죽음에서 구원 받았다. 그날 밤 그들은 애굽을 나왔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구별된 백성이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하였다. 그들은 택한 백성으로서 이방인에게 빛이 되어야 하였다. 이것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였다.
신약에서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받은 우리는 영적이스라엘이다. 우리가 부름 받은 것은 오늘 본문에 분명히 나와 있는 것처럼 예배하고 증거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배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변화되고 선악의 싸움을 위한 능력을 받아야 한다. 예배에 모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 모이기를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자! 아무리 훌륭한 부흥사도 모이지 않으면 변화시킬 수 없다. 이번 부흥성회에 열심히 모이자!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변화와 은혜를 체험하자! 그리고 나아가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여주자! 우리는 예수님처럼 섞여야 한다. 섞이지 않으면 보여줄 수도 없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친구를 사귀자! 그리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자!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다음에 자기의 형을 제일 먼저 찾아가 말하였다. 와보라고 말했다.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귀한 진리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우리의 게으름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무관심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불 충성을 회개합니다. 주님 저희로 주님을 닮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열심히 예배에 모이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세상에 주님처럼 섞여 살지만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삶을 통해 주님을 들어내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드리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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