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칼빈과 성경의 권위

하나님아들 2024. 7. 12. 20:59

칼빈과 성경의 권위

 

성경의 권위에 대한 요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이해는 너무나도 분명하여 이에 대한 다른 논의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 이외에는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가 없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한다.

 

     이 소논문에서 나는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으로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칼빈의 자명한 입장으로 상론한(I) 후에, 칼빈이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믿어야만 하는 교리를 논하는데서 이 원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II),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 문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III), 예배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지(IV),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으로서 성경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V) 중심으로 한 하나님 말씀의 기능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여 칼빈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로 어떻게 높이고 있는 지를 드러내도록 하겠다.

 

    이와 같이 성경의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는 칼빈이 16세기에 속한 사람으로서 당대의 거의 모든 사람과 같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 있게 보았다는 식으로 단순히 생각할 수 없게끔 하는 논의이다. 이는 칼빈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로 존중하였음을 보여 줄 수 있는 논의이다. 칼빈이 16세기에 속한 당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떻게 실제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실질적으로 순종하려고 하는지를 드러내어 줌으로써 이 논문은 칼빈의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 그저 16세기 사람들의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이었음을 잘 드러내 보여 주게 될 것이다.

 

 

I.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과 그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권위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다. [1]따라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2]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은 “성경 가운데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3]따라서 성경은 “성령의 학교"이고, 여기서는 필요하고 유익한 지식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또한 유익한 지식이 아니면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4]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존중과 같은 존중을 성경에 돌려야 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에게서만 기원한 것이고 인간적 기원을 지닌 것이 섞여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 이런 뜻에서 성경의 “글들은 그것들이 그로부터 기원하신 분, 즉 하나님에게서 그 권위를 얻게 된다”는 맥킴의 말은 매우 정확한 것이다.[6] 칼빈은 성경을 따라서 성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지만,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들을 때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듣는 듯이” 하여야만 성경의 권위에 제대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칼빈은 강조한다.[7]그는 성경 저자들은 “분명하고 참된 성령의 서기관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글들은 하나님의 말씀(oracles of God)으로 여겨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8]그러나 이렇게 사도들이 “성령의 참된 서기관들”이라고 말할 때 칼빈이 사도들을 기계적 역할만 수행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표현해 본 일이 없다. 그는 소위 말하는 기계적 영감설이나 구술 이론을 제시한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칼빈이 성경의 저자들은 “성령의 구술 하에서(dictante Spiritu sancto)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말을 한 적은 있다.[9]그러나 칼빈이 모든 성경이 구술되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10]이에 대해서는 칸저가 잘 지적한 바와 같이 칼빈은 ‘구술’(dictate, dictation)이라는 말을 “형성하다(produce), 확언하다(affirm), 또는 규정하다(prescribe) 등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11]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저자들의 오류가 있고 제한 된 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에 충분하다는 뜻에서 성경이 영감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만 권위가 있다는 식의 주장(소위 칼빈의 성경관의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의 주장)에 [12]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시편 119편에 대해서도 칼빈은 “우리가 우리의 눈을 열고서 보기만 한다면 여기서 오류 없는 빛(unerring light)을 발견할 수 있음을 확신하기로 하자”라고 말한다.[13]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인간의 모든 지혜보다 우월하다.[14]그러므로 칼빈이 성경이 때로 “교양 없는 방식으로 때로는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나 그 내용은 천상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15]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능력에 맞추어(accommodates, accommodare) 계시하셨다고 할 때[16]칼빈의 의도는 (로저스나 맥킴 등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성경의 유오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다는 의도로 언급된 것이 [17]아니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18]칼빈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된 그대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19]그래서 칼빈은 성경은 “주의 입”(the mouth of the Lord)이라는 말도 한다.[20]적응의 원칙(the principle of accommodation)이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이 아니다.[21]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칼빈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연적 충동에 의해  신성에 대한 의식”이 있고 [22]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잘 논의한다. [23] 그러나 특히 타락 상태에서는 이 신의식을 불의로 억누르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에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거나 그의 뜻에 자신들을 헌신하지 않는” 것이다. [24]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님을 계시하신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들의 주제넘음에 의해 자신들이 만든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25] 이런 우상숭배로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지식을 질식시키고 부패시키는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셔야 할 필요가 강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그 창조자에게 이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더 나은 도움을(another and better help) 주셨다.” [27]그런데 그 하나님의 구원적 계시 중에서 아주 필수적인 것을 성문화하신 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규정되고 글로 인쳐진 ...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다. [28] 성령의 작용으로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의 참된 의미는 자연적이고 단순한 의미이다”(germanus est et simplex). [29]칼빈은 “이를 받아들이고 단호하게 이를 붙잡도록 하자”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뜻에서 칼빈은 “성경은 ... 참된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성경을 안경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30]타락이 후의 “인간의 정신은 그 연약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도움을 받고 보조 받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에게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31]이제 우리는 안경 역할을 하는 성경을 통해서라야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고, 이 세상에 대한 바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의 가장 거룩한 입을 여시기 때문이다.”[32]

 

    그리고 성경은 그 권위를 교회로부터 끌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칼빈의 매우 중요한 주장이며, [33] 이것이 칼빈과 천주교회를 구별시키는 중요한 요점이다. 칼빈은 오히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는 에베소서 2:20 말씀에 근거해서 사도듥화 선지자들의 가르침, 즉 성경은 교회가 존재하기 전부터 권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논의한다.[34]

 

      이와 같이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칼빈은 또한 성령의 내적 증언(te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을 매우 강조한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신성에 대한] 성령의 내적 증언은 모든 이유보다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만이  당신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당신님 자신에 대해 가장 적절한 증인이시기 때문이며, 따라서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 인쳐지고서야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35]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이유들이나 판단들이나 추론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즉 성령의 은밀한 증거에서 확신을 추구하여야만 한다.” [36] 바로 이런 뜻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던 그 같은 성령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파고 드셔서 그들이 신적으로 명령된 것을 신실하게 선포하였다고 우리들을 설득하셔야만 한다. ”[37] 이와 같이  칼빈은 성경의 객관성과 주관성 모두를 가장 잘 강조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의 모든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고 그 모든 말이 그것이 말하는 것에 있어서 참되다고 믿었다”고 하는 갓프리의 말에 [38]우리는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 칼빈에게는 성경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은 로저스와 맥킴이나 레이뜨 등의 다른 생각에도 불구하고 아주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칼빈의 성경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 실제 그의 신학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논의해 보기로 하자.





II. 교리 문제에서의 성경의 권위

 

신학적으로 칼빈의 최초의 저술이라고 여겨지는 [39]“영혼의 수면에 대하여”(Psychopannychia)는 당대 재세례파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수면에 들어가 최후의 부활을 기다린다고 하는 견해를 반박한 문서인데, 칼빈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면서 긴 글을 쓴 이유도 역시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칼빈의 확신이 작용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칼빈은 이런 견해가 3세기에 아라비아에서 나왔던 이단적 견해이며, 교황 요한 XXII세가 이 교리를 주장하였었으나 1333년에 그 견해를 취소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이미 1513년 제 5 라테란 공의회에서 정죄된 교리라는 것을 잘 밝히고 있다. [40]칼빈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들을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재세례파를 염두에 두면서 칼빈은 그들이 성경지식이 부족하여 교회 안에 분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41]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이 사후에 존재하는 중간 상태는 영혼이 감정과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의식적 상태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주해하며 제시하고 있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칼빈은 영혼은 몸과는 다른 실체(substance)라는 것을 창조 이야기로부터 잘 논의하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과 종국적 부활 사이의 영혼의 삶과 상태에 대한 칼빈은 성경에 근거한 명확한 가르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칼빈의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이 그의 기독교 강요 앞부분에서 하는 그의 말이다: “참으로 인간의 마음은 자신 스스로의 실재에도 이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실재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지식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기꺼이 맡기도록 하자....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님을 계시해 주시는 모습 그대로를 인식하게 되면,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묻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될 것이다.” [42]그러므로 칼빈은 그의 <강요>에서 “성경의 문하생이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바르고 건건한 가르침을 조금도 맛볼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43]그래서 그는 “다른 방향으로 아주 빨리 달려가는 것보다 이 길을 따라 절뚝거리며 가는 편이 더 낫다”고도 말했던 것이다. [44]그러므로 칼빈은 신앙을 여러 모로 언급하면서, 특히 “그의 말씀 가운데서 파악한,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45]

 

     칼빈은 자신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갑작스러운 변개로(subita conversio, a sudden conversion) 나의 마음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teachableness)에로 돌이키셨다”고 말 한 바 있다.[46] 이 때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자신의 생각과 삶을 고쳐 갈 수 있게 하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유년기에는 아주 완고하게 교황의 미신에 헌신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47] 이런 뜻에서 그를 “하나님께서 가르침 받음에로 복종시키고, 성경 가운데서 발견되는 새로운 연구에로 방향을 돌린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성경을 "그의 집중적 지적 노력의 중심 문서"라고 표현하는 맥네일의 말은 옳다.[48] 이와 같이 칼빈 자신도 전통적 기독교로부터 성경의 가르침에로 고침을 받게 된 것이고, 그는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주장하기를 모든 종교적 교리에서 우리는 “겸손과 정신 차림이라는 하나의 규범을 주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외의 모호한 것들에 관해서는 말하거나 추론하거나 심지어 알려고 하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49] 예를 들어서 “천사의 본성과계급들과 숫자”와 같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헛된 사변들”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50]

 

     이와 같이 칼빈은 모든 교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하는 말 그는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 선다는 것은 항상 타당한 말이다.





III. 교회 문제에서의 성경의 권위

 

곤잘레스가 잘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루터는 성경에 위반 되는 요소만 교회의 전통에서 배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반면에, 칼빈과 개혁파 신학자들은 종교개혁을 좀더 철저하게 전개해서 신약 성경 유형의 원시 기독교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51] 이런 점에서 칼빈은 루터보다 훨씬 더 성경의 권위를 포괄적으로 생각하며 그 가르침에 종속하려고 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은 바로 이런 입장에서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말하는 성경적 직분들을 교회에 회복시키려고 하였다.[52] 이 때 직분자들의 평등성에 대한 강조는 성경의 원리를 중시하는 칼빈의 큰 강조점이었다.[53] 디도서 1:5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그 때에는 사역자들 안에 그 누구도 다른 이들에 대해 권위를 가지지 않고 더 높지 않은 그럴 정도의 평등성이 있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54] 이와 같이 칼빈은 교회의 직분의 회복 문제에 대해서도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었다.

 

     칼빈이 교회에서의 치리를 강조하는 것도 성경의 권위를 따른 것이었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1) 그리스도의 몸과 주의 만찬이 황폐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교회 안의 다른 사람마저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고, 죄인들을 회개에로 이끌기 위해서 치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55] 그러나 이런 치리를 강조할 때 한편으로는 천주교회의 관습을 반대하면서 성경의 가르침 밖으로 나아가 사제적으로 치리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고,[56] 또 한편으로는 재세례파 사람들의 여러 훈련들에도 반대하였으니 그들이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은 것을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은 태도로 시행하려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57]

 

      성례전에 대해서도 신약 성경에서 세례와 성찬 외에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의식을 은총으로 주셨다는 암시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칼빈을 강조한다.[58] 칼빈이 천주교회의 칠성례 가운데서 세례와 성찬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배제한 이유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 때문인 것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칼빈은 교부들의 견해를 언급하기도 한다. 교회의 옛 교부들도 다른 의식에 대해 성례라는 명칭을 준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교부들의 의견의 차이도 언급하면서 교부들의 의견들 가운데서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만을 의미 있고 존중할 것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성찬 문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칼빈이 교부들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이다. 그는 항상 교부들의 해석 가운데서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는 하는 것은 권위 있는 것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교부들의 의견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있는 것은 언급하지 않거나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세례 양식에 있어서도 칼빈의 기본적인 견해는 신약 성경의 단순한 관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세기 동안 이 관습에 덧붙여진 장식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59] 성찬에 대해서도 고린도전서 11:23-26의 성찬 제정의 말씀과 이에 더하여 나오는 27-29절을 강조하면서 성찬을 합당하게 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성찬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를 하였다. 이와 같이 회중들은 사도가 그리하라고 한 바와 같이 스스로를 살피라는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칼빈은 성도들로 하여금 천상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마음을 들 것(sursum corda) 강하게 요청했다.

 

      이와 같이 칼빈은 교회의 모든 것도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근거해서만 통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성경의 가르침, 특히 신약 성경의 가르침이 신약 교회의 모든 것에 대한 지침으로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지닌다는 것이 아주 실제적으로 우리들에 대한 지침이 되어야 만 실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보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다고 해야 한다.





IV. 예배 문제에서의 성경의 권위

 

칼빈에 의하면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에 근거해서 우리의 삶과 예배로 “그들의 존재 전체와 그들의 모든 행위들을 하나님께 갚아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드린다(Institutes, IV. xviii. 13). 예배를 이렇게 이해하는 칼빈은 교회 개혁에 관여하면서부터 교회의 예배를 성경이 말하는 요소를 중심으로 정비해 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칼빈에 의하면 참된 경건은 결국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규정된 대로의 적법한 예배”에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60]

 

     그 중의 하나가 예배 중에 회중 찬송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 위해 칼빈은 자신이 친히 시편을 운율에 맞게 번역해서 사용하기도 하였고 당대의 프랑스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던 마로(Clement Marot)의 운율적 번역을 사용하여 찬송케 하기도 했다.[61] 그는 이미 제네바의 1537년 규례(the Article of 1537)에서 “시편들은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 올려 줄 수 있으며, 우리의 찬양으로 그의 이름의 영광을 부르며 높이며 열심 있게 할 수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62] 1539년에 그는 불어 시편 찬송 초판을 발행하였는데, 여기엔 18편의 시편(이전에  사용된 시편 46, 25, 36, 91, 138편과 마로에 의해 운율적으로 재번역된 시편 1, 2, 3, 15, 19, 32, 51, 103, 114, 130, 137, 그리고 143)과 3편의 영창(canticles) 실렸고, 이 중 7편은 칼빈이 친히 번역했다고 한다. 이 시편 찬송들이 후에 제네바 시편 찬송(the great Genevan Psalter, 1562)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63] 1543년판에는 49편의 찬송이 실렸는데, 여기에는 이전에 사용되던  (그러나 개정되고 보강된) 30편의 시편과, 시므온의 노래, 십계명 찬송, 사도 신경 찬송, 주기도문 찬송, 천사들의 찬송, 그리고 성찬 전후에 부를 찬송 등이 실렸다.[64] 그리하여 시편 찬송은 핍박받는 위그노들의 특성이 되었다. 물론 개신 교회는 시편만을 부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후대의 규정적 원리는 시편만을 고집하고 나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지나치게 나간 것은 문제이지만, “시편의 하나님 중심적 경건의 풍성함이 개신교적 헌신을 특징 짖도록 했다”는 말은 참된 것이다.[65]

 

     1538년 제네바에서 축출된 후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프랑스 피난민 교회를 목회 하면서 1538년 11월에 처음으로 그 피난민 교회의 성례를 수종들과 그 뒤로는 한달에 한번씩 성찬을 시행했다고 한다.[66] 그리고 1541년 제네바로 다시 왔을 때 스트라스부르그의 부셔(Bucer)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사용된 예배 식순을 채용하여 제네바 예배식을 제안하고 실천하였다.[67]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트라스부르크의 예배 형식을 취하여 그 상당한 부분을 빌어썼다.”[68] 이는 그가 1542년에 낸 “초대 교회의 관례에 따른 기도 형태와 성례 집례 방식”에 나타나 있는 다음과 같은 순서의 제안에 잘 나타나고 있다.[69]

 

말씀의 예전(The Liturgy of the Word)

 

기원(votum or adjutorium: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영광송(Gloria)

죄의 고백에로의 초청과 기도

용서에 대한 성경 말씀 낭독과 주의 용서 선언의 말 선언

시편 찬송(운율에 맞춘 시편, 또는 십계명의 앞부분,

         각 계명에 대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Kyrie)로 반응함)

거룩송(경우에 따라 생략)

조명을 위한 기도

성경 봉독

설교

*(가난한 자들을 위한 모금[collection]

중보 기도를 포함한 기도

[뜻을 풀어 쓴]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 (이에 대한 설명)

[회중이 함께 부르는] 사도신경

시편 찬송

아론적 축복기도)[70]

 

다락방 예전(The Liturgy of the Upper-Room)

 

가난한 자들을 위한 모금(collection)

중보 기도

성찬 준비  [동시에] (회중이 함께 부르는) 사도신경

(뜻을 풀어 쓴)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

성찬을 위한 기도

성찬 제정 말씀 봉독

성찬을 위한 권면

성찬에로의 초대

분병, 분잔, 성찬

성찬 이후의 권면

기도, 시므온의 찬미(Dunc Dimittis, 눅 2:29-32)

아론적 축복 기도

 

그러므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의 부셔(Bucer)를 따르면서 중세에 존재하게 된 요소들과 의식들을 거의 모두 완전하게 버려 버렸지만 “예배 의식의 전통적 형태를 조심스럽게 유지했다”는 하게만의 말에 우리는 상당히 동의할 수 있다.[71] 그 때 기준이 된 것이 성경이 말하는 원리였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에 나타난 요소만을 사용하여 예배 순서를 구성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예배 전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예배 중에 선포되는 설교에 대해서도 칼빈은 매우 성경에 근거한 입장을 표명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목사의 설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만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돕기 위해서 해석자들과 교사들을 우리들에게 더해 주셨다. 바로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천사가 아니라 빌립을 선택해 보내신 것이다.”[72] 그처럼 교회에 보내진 성경 해석자와 교사가 목사이다. 칼빈은 목사의 직무가 근본적으로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임을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목사가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천상적 교리”를 선포할 때 그는 바로 “하나님의 입”(the very mouth of God)이라고 언급되기도 하는 것이다.[73]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목소리가 울리 퍼지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입과 혀에로 당신님의 낮추시기로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사요 특권인 것이다.[74] 성경 해석과 선포를 강조한 것도 결국 성경의 권위가 칼빈의 생각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V.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으로서의 성경의 권위

 

사실 칼빈의 궁극적 관심 중의 하나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살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강요������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양을 확대하여 간 것도 “기독교 교리의 끊임없는 조직화가 되기보다는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기독교인으로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안내서가 되기를 바랐다”는 곤잘레스의 관찰은[75] 정확한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고 그것을 세우려고 해야만 한다는 것을 칼빈은 아주 잘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그는 천주교 추기경 사돌레트(Cardinal Jacopo Sadolet, 1477-1547)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 사상을 자기 자신에게 국한 시켜서 자기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는 것이라는 일차적인 동기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건전한 신학이 못됩니다. 우리는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위하여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자기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거나 거기서 안주하는 것 이상으로 올라가는 데 있습니다.”[76]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방식을 오직 성경에서 정확하고 바르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다. 율법의 제 3의 용법(usus tertius legis)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은[77] 바로 이런 동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율법의 교훈적 또는 신학적 용도(usus elenchticus or theolgicus)를 율법의 “정당하고 가장 중요한 용도"(the proper and principal use)로 여기는 루터나 멜랑히톤에 비해서,[78] 칼빈은  이 제3의 용도를 율법의 가장 “가장 중요한 용도”(the principle use)로 언급하고 있다. [79]그러므로 구약 율법을 비록해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교훈적인 뜻은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삶의 규범(rule of life)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칼빈은 분명히 한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의 가변적인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가르침 받고 있는 것이다.”[80] 그런데 “율법의 규례들은 ... 하나님의 뜻을 다 포함하고 있고,”[81] “하나님께서는 율법 가운데서 당신님의 뜻을 계시하신 것이다.”[82] 따라서 율법에서 하나님의 뜻에 우리 눈앞에 제시되고 있으며,[83]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당신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제시하셨고, 용약하자면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모든 것을 제시하신 것이다.”[84]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여 그 정신에 따라 구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칼빈은 강조하며, 그런 바른 해석 작업의 좋은 토대를 제공하고 그런 해석의 에와 그에 근거한 삶의 규범을 잘 제시하는 작업을 해주었다. 이런 해석에 의해서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칙이 그저 구약의 율법을 문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님이 잘 드러난다. 그는 율법을 잘 해석하여 그 율법의 정신에 따라 살 것을 잘 보여 주고, 그것을 신약,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연관시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85] 칼빈은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그에 대한 “제일 좋은 해석자인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86]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정신 자체”(vere anima)요,[87] 그 생명이니,[88] 성경이 말하고 있듯이 그리스도는 율법의 성취(목표요 마침)이기 때문이다.[89] 그리하여 칼빈은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기괴한 규범을 도출시키지 않고, 부정적으로 표현된 것으로부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함의까지를 이끌어 내어 제시한다.[90]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십계명이 교회의 규범으로 나타나는 일이 드물다는 근거에서 개혁자들을 비판하는 에밀 부룬너나[91] 칼빈은 “예수님과 달리 ... 성경적 문자주의의 용어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여 문자주의적 규범집(a legalistic moral code)을 제시하였다”는 조오지아 할크니스 등의 논의는[92] 그들이 그저 문자만 보지 그 배후의 정신으로 헤아리는 바른 해석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93]





VI. 마치는 말

 

이상의 논의는 칼빈에게 있어서는 매우 자명한 것을 드러낸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실천의 모든 측면에서 실질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어 본 것이다. 칼빈의 이런 성경에 대한 존중을 부인하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칼빈이 그 당시에 이런 존중을 성경에 나타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이 전통은 개혁파 신앙고백서에 그대로 반영되어서 1559년 프랑스 신앙고백서에서는 성경을 “우리 신앙의 분명한 규범”(sure rule of our faith)이라고 하고, 1561년 벨직 신앙고백서는 “이 무오한 규칙”(this infallible rule)이라고 하고,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에서는 “신앙과 사랑의 규칙” (the rule of faith and love)이라고 하고,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1647)에서는 “신앙과 순종의 유일한 규칙”(the only rule of faith and obedience)이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성경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그 온전한 권위를 잘 드러낸 전통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에는 이 세상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기독교회에서조치도 (실천적 교계와 신학계에서서 조차도) 성경에 대해서 칼빈과 같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견지되는 일이 매우 드물다는 데에 있다. 성경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흥기하여 칼빈과 같은 성경에 대한 소위 비판 이전적 접근(pre-critical approach)를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서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칼빈을 그저 교회사적 주제로만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시대에도 살아 있는 교회적 목소리로 여기는 것인지가 나뉘어 질 것이다. 역사적 관심으로 가지고 칼빈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였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잘 드러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60년대 이후로 나타난 바르트주의적 칼빈 해석에 반하여 칼빈의 성경을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를 잘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작업이 역서 멈춘다면 객관적으로 칼빈의 성경관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으로 잘 드러내어 놓고서도 그것은 16세기적 태도로만 치부해 버릴 위험성이 없지 않다. 지금 여기서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 16세기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면서 기독교 전반에 잘 드러낸 칼빈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이 시기에도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의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까지 나아가지 않을 때 우리는 칼빈을 16세기에 속한 인물로만 머물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시기의 칼빈이 하나님 말씀으로서 성경을 존중한 그 동일한 태도를 가지고 21세기의 다양한 문제 제기 앞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며 그에 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개혁신학도들의 사명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이 시기에도 인정하는 것이며 진정 칼빈을 따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작업이 매우 드문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오늘날 급증하고 있는 형식적으로는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격을 인정하되, 기능적으로 그것을 부인하는 다양한 견해들을 배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1) 바르트주의적으로 성경비평을 용인하면서 성경의 하나님 말씀됨을 주장하는 것이나, (2) 성경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용인하면서 정경으로서의 최종 본문인 성경의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요구하는 정경적 접근이나, 또는 (3) 성경의 하나님의 객관적 말씀됨을 주장하면서도 해석학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해석학적인 상대주의를 용인하면서 우리들의 해석들은 모두 다 제한된 해석이므로 궁극적으로 바른 성경해석에 대한 궁극적 말을 할 수 없다는 성경해석학적 궁극적 의미 유명론 등의 주장 등이 시사하는 실질적 성경 무시의 태도를 배제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면서 이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1]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LCC edition, edited by John T. Mc Neill, translated by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Westminster, 1960), 1. 7. 1. 이하에서 이 책으로부터의 인용은 다음과 같이 약하기로 한다. Instititutes. 1. 7. 1.

[2] Calvin, Comm. Gen. 48:15.

[3] nstititutes. 1. 7. 4: "God speaking in Scripture."

[4] nstititutes. 3. 21. 3.

[5] Calvin, Comm. II Tim 3:16.

[6] Donald K. McKim, "Calvin's View of Scripture," in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ed. Donald K. McKim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4), 58f. 칼빈의 이런 태도를 정확히 보는 맥킴이 그 성경에는 오류가 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능한다는 견해를 칼빈이 가졌다는 식의 논의를(이하 각주 9, 11 등을 보라) 계속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7] Calvin, Instititutes. 1. 7. 1.

[8] Calvin, Instititutes. 4. 8. 9: "sure and genuine scribes of the Holy Script (certi et authentici Spiritus sancti amanuenses)."

[9] Calvin, Instititutes. 4. 8. 6; 4. 8. 8; Calvin, Comm. 2 Tim. 3:16; Calvin, Comm. I Peter 1:11, 또한 예레미아와 바룩에 대한 칼빈의 언급들도 보라.

[10] 이 점에 대한 좋은 논의로 B. B. Warfield, Calvin and Augustine (Philadelphia: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56), 48-70, especially, 64ff.; John Murray, Calvin on Scripture and Divine Sovereignty (Grand Rapids: Baker, 1978); Kenneth S. Kantzer, "Calvin and the Holy Scriptures," in Inspiration and Interpretation, ed. John F. Walvoord (Grand Rapids: Eerdmans, 1957), 137ff., 140, 141; J. I. Packer, ”Calvin's View of Scripture," in God's Inerrant Word, ed. John Warwick Montgomery (Minneapolis: Bethany Fellowship, 1974), 108ff.; 그리고 W. Robert Godfrey, "Biblical Authority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A Question of Transition," in Scripture and Truth, eds. D. A. Carson and John D. Woodbridge (Grand Rapids: Zondervan, 1983), 392f., n. 31을 보라.

[11] Kantzer, "Calvin and the Holy Scriptures," 140.

[12] 이런 입장의 대변인들로 다음 학자들을 들 수 있다: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2 (Edinburgh: T. & T. Clark, 1956), 520-22, 525; Wilhelm Niesel, The Theology of Calvin, trans. Harold Knight (Phiadelphia: Westminster, 1956); Edward A. Dowey, Jr., The Knowledge of God in Calvin's Theolog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1965), 90ff.; R. S. Wallace, Calvin's Doctrine of the Word and Sacrament (Edinburgh: Oliver and Boyd, 1953), 106ff.; J. K. S. Reid, The Authority of Scripture (London: Methuen, 1957), 제 2장; T. H. L. Parker, John Calvin: A Biography (Philadelphia: Westminster, 1975);  Jack B. Rogers and Donald K. McKim,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 Historical Approach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79), 421-23.

[13] Calvin, Comm. Psalms 119.

[14] Calvin, Instititutes. 1. 8. 1.

[15] Calvin, Instititutes. 1. 8. 1-2.

[16] Calvin, Instititutes. 2. 11. 13. Cf. Calvin, Instititutes. 1. 13. 1; 1. 14. 3, 11; 1. 16. 9; 1. 17. 12-13. 칼빈이 이해한 accommodation에 대한 좋은 논의로 Ford Lewis Battles, "God was Accommodating Himself to Human Capacity," Interpretation 31 (January 1977): 19-38, reprinted in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ed. Donald K. McKim, 21-42.를 보라.

[17]  이런 시사를 하는 이들의 논의로 McKim, "Calvin's View of Scripture," 53-54; Jack B. Rogers and Donald K. McKim,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 Historical Approach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79), 98ff.; J. T. McNeill, "John Calvin: Doctor Ecclesiae," in The Heritage of John Calvin, ed. John H. Bratt (Grand Rapids: Eerdmans, 1973), 13 등을 보라.

[18] 로저스나 맥킴 등의 주장에 대한 좋은 반론을 하면서 이글에서 필자가 제시한 입장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는 학자들의 글로 다음을 보라. John D. Woodbridge, Biblical Authority (Grand Rapids: Zondervan, 1982); Godfrey, "Biblical Authority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in Scripture and Truth, 225-43, 칼빈에 대한 논의로 230-34를 보라.

[19] 이 점에 대한 가장 좋은 논의로는 역시 Murray, Calvin on Scripture and Divine Sovereignty를 들 수 있다.

[20] Calvin, Comm. 2 Tim. 3:16.

[21] 같은 점에 대한 좋은 지적으로 Godfrey, "Biblical Authority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232를 보라.

[22] Calvin, Instititutes. 1. 3. 1: “There is within the human mind, and indeed by natural instinct,. an awareness of divinity."

[23] Calvin, Instititutes. 1. 4. 1: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종교의 씨엇을 심으셨다.”

 

[24] Calvin, Instititutes. 1. 3. 1.

[25] Calvin, Instititutes. 1. 4. 1.

[26] 그러므로 “자연신학이나 이런 죄된 상태에서의 인간의  추론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낼 수 없다”는 맥킴의 말은(McKim, "Calvin's View of Scripture," 51f.) 아주 정확한 것이다.

[27] Calvin, Instititutes. 1. 6. 1.

[28] Calvin, Instititutes. 4. 8. 6: “God's Sacred Word ... set down and sealed in writing" (강조점은 필자의 것임).

[29] Calvin. Comm. Gal. 4:22.

[30] Calvin, Instititutes. 1. 6. 1.

[31] Calvin, Instititutes. 1. 6. 4.

[32] Calvin, Instititutes. 1. 6. 1.

[33] Calvin, Instititutes. 1. 7. 1.

[34] Calvin, Instititutes. 1. 7. 2.

[35] Calvin, Instititutes. 1. 7. 4: "The testimony of the Spirit [to the divinity of the Scriptures] is more excellent than all reason. For as God alone is a fit witness to himself in his Word, so also the Word will not find acceptance in men's hearts before it is sealed by the inward testimony of the Spirit."

[36] Calvin, Instititutes. 1. 7. 4.

[37] Calvin, Instititutes. 1. 7. 4. 물론 칼빈은 성경의 독특한 엄위성이나 인상 깊음, 그 고대성(i. 8. 1-4), 이적들과 예언들(1. 8. 5-10), 단순성, 천상적 성격, 신약의 권위( 1. 8. 11), 교화ㅣ의 보편적 동의와 순교자들의 신실함(1. 8.12-13)과 같은 인간적인 논의들과 증언들도 길게 논의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은 “우리들의 연약성에 부합하는 이차적인 도움일 뿐”(1. 8. 13)이라는 것도 분명히 하면서 이런 인간들의 판단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의 내적 증언이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외적인 논의들은 성령의 내적 증언에 의해서 이미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다(1. 8. 1). 그러므로 이런 외적인 논의를 언급하는 것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논의하는 게리쉬의 논의에는(Brian A. Gerrish, "The Word of God and the Words of Scripture: Luther and Calvin on Biblical Authority," in his The Old Protestantism and the New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300) 그의 논문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말씀들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따라서 이런 외적인 논의 자체를 제거해 버리려는 숨어 있는 자신의 생각(agenda) 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칼빈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내적인 증언에 의해 성경의 신성, 즉 하나님 말씀됨을 받아들이지만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후에는 그 객관성에 매우 공정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게리쉬와 그에게 동의하는 맥킴 등은(Rogers and McKim,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 Historical Approach, 103ff.; McKim, "Calvin's View Id Scripture," 57, n. 37) 그런 객관성에 덜 공정하려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38] Godfrey, "Biblical Authority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in Scripture and Truth, 243,

[39] 물론 칼빈의 인문주의적 최초의 저술은 역시 세네카의 관용론(De Clementia) 에 대한 주석이고(1532), 그 이전의 간단한 글로는 그의 친구 뒤슈멩(Duchemin)의 알키아티에 대한 반론인 Antapologia의 서문으로 언급될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 Justo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III (Nashville: Abingdon Press, 1975), 이형기, 차종순 옮김, ������기독교 사상사������, III (서울: 대한예수교 장로회총회출판국, 1988), 183f.를 보라.

“영혼 수면설” 의 작성연대를  W, de Greef는 칼빈이 빠리를 떠난 뒤 1534년 오를레앙에 머무를 때라고 보고 있다(The Writings of John Calvin: An Introductory Guide, trans. Lyle D. Bierma [Grand Rapids: Baker Books, 1993], 165), T. H. L. Parker도 1534년으로 본다(한역, 81). 그를 출판한 것은 1542년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이루어진다(de Greef, 166).

[40] 이상에 대해서 de Greef, 166을 보라.

[41] Cf. John Calvin, Treatises against the Anabaptists and against the Libertines (Grand Rapids, 1982), 19-24.

[42] Calvin, Instititutes. 1. 13. 21.

[43] Calvin, Instititutes, 1. 6. 2.

[44] Calvin, Instititutes, 1. 6. 2.

[45] Calvin, Instititutes 3. 2. 6, 강조점은 필자의 것임. 칼빈의 신앙 이해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 이승구, “칼빈의 신앙론,”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서울: SFC, 2005)을 보라.

[46] Calvin, Comm. Psalms, xl-xli (서문)

[47] 이에 대해서는 칼빈이 사돌레에게 보낸 답신도 참조하여 보라. Tracts and Treatises, vol. 1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4-1851; reprinted, Grand Rapids: Eerdmans, 1958), 62.

[48] John T. McNeill, "John Calvin: Doctor Ecclesiae," 12.

[49] Calvin, Instititutes. 1. 14. 4.

[50] Calvin, Instititutes. 1. 14. 4.

[51] Gonzalez, 220.

[52] Calvin, Instititutes. 4. 4. 1.

[53] Calvin, Instititutes. 4. 4. 2; Calvin, Comm. Titus 1:5.

[54] Calvin, Comm. Titus 1:5. 그래서 칼빈은 헝가리 지역의 교회의 감독들과 대 감독들이 존재하는 것을 용인하였지만 그 때도 교회 회의체에서의 의장(presidents) 이상의 권세를 부여하면서 그들을 허용한 것이 아니다. Cf. Calvin, Instititutes. 4. 4. 4; 지그문트 왕에게 보내는 편지, cited in G. S. W. Walker, "Calvin and the Church,“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16 (1963): 371-89, reprinted in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212-230, 인용문은 214, n. 24에서 온 것임.

[55] Calvin, Instititutes. 4. 12. 5.

[56] Calvin, Instititutes. 4. 12. 7.

[57] Calvin, Instititutes. 4. 12. 12-13.

[58] Calvin, Instititutes. 4. 19. 1-3.

[59] Calvin, Instititutes. 4. 15. 20. 세례는 대개 주일 오후 예배 때나 주간 예예 중 설교 후에 행해졌고, 소금이나 기름이 아닌 평범한 물을 사용하여 세례했다. Cf. de Greef, 130.

[60] Calvin, Instititutes. 1. 2. 2: “... carries with it such legitimate worship as is prescribed in the law."

[61] James Hastings Nichols, Corporate Worship in the Reformed Tradition (Philadelphia: Westminster, 1968), 57.

The Article of 1537, cited in Klaas Runia, "The Reformed Liturgy in the Dutch Tradition," in Worship: Adoration and Action: 100. 이 논문은 졸역, “화란 개혁파 전통의 예배 의식”, ������개혁신학������ 제10권 (서울: 웨스트민스터 출판부, 1998), 189-224으로  번역되어 있다. 인용문은 p. 202에서 온 것이다. 이하 이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은 Runia, "The Reformed Liturgy," 면 수=한역, 면 수로 하기로 한다.

[62] The Article of 1537, cited in Klaas Runia, "The Reformed Liturgy in the Dutch Tradition," in Worship: Adoration and Action: 100. 이 논문은 졸역, “화란 개혁파 전통의 예배 의식”, ������개혁신학������ 제10권 (서울: 웨스트민스터 출판부, 1998), 189-224으로  번역되어 있다. 인용문은 p. 202에서 온 것이다. 이하 이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은 Runia, "The Reformed Liturgy," 면 수=한역, 면 수로 하기로 한다.

[63] Runia, "The Reformed Liturgy," 100=한역, 203.

[64] Cf. de Greef, 131. 1544년 9월 12일 마로가 뚜랑(Turin)에서 소천한 후에 계속되는 작업은 1548년 시편 16편을 시가로 만든 베자에게 주어져서 1562년에 제네바 시편가가 출판되고, 27,000 부가 프랑스로 보내지기도 했다고 한다(de Greef, 131).

[65] Clowney, "Presbyterian Worship," 118.

[66] 이에 대해서는 de Greef, 127을 보라.

[67] 사실 부셔가 스트라스부르그에 왔을 때(1530년) 그 도시는 이미 루터파인 디볼트 쉬바르츠(Diebold Schwarz)가 1524년 2월 16일에 만든 독일 미사(the German Mass)라는 좀 개혁된 예배순서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는 중세의 미사 가운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모두 정화하고, 몇 가지 고대의 반응들인,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Kyrie)’, 영광송(Gloria), 거룩송(Sanctus), 그리고 축복송(Benedictus) 등을 도입하였고, 신경 고백과 기도를 회중들이 하게 한 것이다. 부셔는 이 예배 의식을 “더 오래고 참되며 영원한”(das alt, recht und ewig) 형태로 좀더 고쳐서 회중들로 하여금 음악에 맞추어 시편을 부르도록 하였고, 니케아 신조 대신에 사도 신경을 도입하였고, 로마의 lectionary를 따르지 않고 “연속적 성경 읽기”(lectio continua)를 예배 순서 중에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도 고대 예배 의식의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상에 대해서는 Klaas Runia, "The Reformed Liturgy in the Dutch Tradition," in Worship: Adoration and Action: 99=한역 200을 보라. 또한 그는 기존의 제단(altar)이라고 부르던 것을 상(table)이라고 부르고, 벽면에 붙어 있던 것을 회중석을 향한 앞쪽 중앙에 위치하게 하고, 목사(minister)가 회중을 향해 서도록 하였으며, 성찬을 위한 성직자의 특별한 복장도 허용하지 않았고 주일에 검정 가운 입는 것은 무방하다고 하였다. 참조를 위해 스트라스부르크의 예배 순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준비, 영광송(Gloria), 죄의 고백, 사죄 선언, 시편 교송, 인사와 응답, 입당송, 자비를 구하는 기도, 영광송(Gloria), 기도문 낭독, 서신서 봉독, 복음서 봉독, 신조 고백

성만찬

봉헌, 배열 준비, 인사와 서송(“주를 앙망할지어다”), 성찬 제정의 말씀의 서문, 시편 95편, 손씼음과 기도문, 성찬 제정의 말씀 전문, 중보 기도, 생활을 위한 기도, 성찬의 말씀, 회상, (운율에 맞춘)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 입맞춤,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찬송, 성찬 기도, 성도들의 교제, 분병, 분잔, 참여, 성찬후 기도, 인사와 응답, 축도.

 

[68] Calvin's saying, cited in John M. Barkley, The Worship of the Reformed Church (London: Lutterworth, 1966), 17.

[69] “The Form of Prayer and Manner of Ministering the Sacraments according to the Use of the Ancient Church", in W. D. Maxwell, The Liturgical Portions of the Genevan Service Book (New York: Oliver and Boyd, 1931), 114-15. Cf. Geddes MacGregor, Corpus Christi (London: MacMillan, 1959), 53f.; Howard G. Hageman, Pulpit and Table (London: SCM, 1962), 27f.

[70]  *(  )안의 순서는 아래와 같이 성만찬이 뒤따르지 않을 때의 순서이다.

[71] Cf. Hageman, Pulpit and Table, 16.

[72] Comm. Acts 8:31, Calvin's New Testament Commenmtaries, ed. David W. & Thomas F. Torrance (Grand Rapids: Eerdmans, 1959-1972), vol. 6, 247. 이하 칼빈 주석으로부터의 인용은 관례를 따라 Comm Acts 8:31과 같은 식으로 표한다. Cf. Comm. Amos 8:11-12.

[73] Calvin, Homilies on 1 Samuel xlii (CR 39, 705), cited in the LCC Institutes, IV.1.5, n. 1.  

[74] Calvin, Instititutes. 4. 1. 5.

 

[75] Gonzalez, 235.

[76] Calvin, Reply to Sadolet (LCC, 22: 228), cited in Gonzales, 236, n. 173..

[77] 이 문제에 대한 좋은 논의로 I. John Hesselink, "Christ, the Law, and the Christian: An Unexplored Aspect of the Third Use of the Law in Calvin's Theology," in Reformatio Perennis: Essays on Calvin and the Reformation in Honour of Ford Lewis Battles, ed. Brian A. Gerrish (Pittsburg: Pickwick, 1981), 11-26, reprinted in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ed. McKim, 179-91을 보라.

[78] Martin Luther, Commentary on Galatians, in Luther's Works, 26 (St. Louis: Concordia, 1963), 91, 310-13, 345, 348.

[79] Calvin, Instititutes. 2. 7. 12. 칼빈이 이를 중요하게 언급하지만 멜랑흐톤도 제 3의 용도를 언급하고 (Loci Communes, 122-28), 콘콜디아 신조도(1577)도 이를 언급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The Book of Concord, ed. Thodore G. Tappert [Philadelphia: Fortress, 1959]. section 6 ("The Thord Function of the Law"), 479f.).

[80] Calvin, Instititutes. 3. 8. 4.

[81] Calvin, Instititutes. 1. 17. 2.

[82] Calvin, Instititutes. 2. 8. 59.

[83] Calvin, Comm. Jer. 9:15.

[84] Calvin, Comm. Isaiah 8:20.

[85] Cf. Calvin, Instititutes. 3. 7. 1; Calvin, Instititutes. 2. 8. 8; 2. 8. 49; 57; 3. 7. 5.

[86] Calvin, Instititutes. 2. 8. 7: “Christ, its best interpreter." Cf. Calvin, Instititutes. 2. 8. 51-59; Comm. on the Last Four Books of Moses. 여기서 칼빈은 항상 산상 수훈을 염두에 두고서 설명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의 작성자들과 많은 해설자들이 바로 이런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87] Calvin, Comm. Acts. 7:30. cf. Calvin, Comm. John 1:17, 3:38. 이 점과 이 문단에서 나는 헤셀링크 교수의 논의에 많이 힘입고 있다.Cf. Hesselink, "Christ, the Law, and the Christian," in Readings, 189.

[88] Calvin, Comm, 2 Cor. 3:16.

[89] Calvin, Instititutes. 2. 7. 2; Calvin, Comm. Rom. 10:4.

[90] Calvin, Instititutes. 2. 8. 8.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의 십계명 해설도 바로 이런 전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91] Cf. Emil Brunner, Dogmatics, vol. 2: The Christian Doctrine of Creation and Redemption (Philadelphia: Westminster, 1952), 219.

[92] Georgia Harkness, John Calvin: The Man and His Ethics (Nashville: Abingdon, 1958), 63. 그는 심지어 칼빈의 전체적 인생관은 그리스도 보다는 모세의 정신에 물들어 있다“고 지나치게 주장하기도 한다(113).

[93] 이런 논쟁의 상황 속에서 칼빈의 진정한 의도를 잘 드러내는 Hesselink, "Christ, the Law, and the Christian," in Readings, 185-87의 논의도 참조하여 보라.

 

안명준교수의 신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