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지켜야할 초막 감사절 (레위기 23:33-43)

하나님아들 2024. 6. 10. 23:37

지켜야할 초막 감사절 (레위기 23:33-43)

 

 

미국의 대표적인 심층 뉴스 TV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에디션(Inside Edition)」의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이 지은 『감사의 힘(THANK YOU POWER)』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감사 캠페인’ 열풍이 불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고객에게 감사하기’ 행사를 벌이고 있고, 한 시(市)에서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한 감사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감사는 새로운 행복의 키워드이자 마음 리셋의 중요한 도구로, 성공을 보장하는 에너지로 그 중요성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감사의 힘의 위대함을 배워오고 느껴왔다. 거의 대부분의 민족과 나라들에서 그 자녀들에게 “엄마, 아빠”라는 말 다음에 “감사합니다”를 가르쳐 온 것이 그 답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저자는 계속 말합니다. “대체 ‘고맙습니다’가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우리는 행복을 좇고 있지만 행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할수록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위대한 성공도 이 사소한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성공하는 삶이기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그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인생 전체를 바꿀 만한 강력한 힘이 있으며 각 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합니다. 감사하는 말만으로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기차고 스트레스 적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지면 데보라 노빌의 말처럼 행복해 집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진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추수감사절은 몇 가지 독특한 명칭이 있습니다. 이 절기를 초막절이라고도 하고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收藏)이란 말은 “창고에 곡식을 다 들여 저장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수장절이란 추수하여 거둬들인 것을 지키는 명절이란 뜻입니다. 수장절은 무교절, 맥추절과 함께 하나님이 지키도록 명령한 3대 절기 중의 하나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수장절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수장절은 연말에 지키는 절기로서 그들의 달력으로는 7월즉 티쉬리(Tishri)달 10일, 즉 7월 10일을 종교력으로 연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23:16을 보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였고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수장절은 어떤 면에서 추수감사절과 같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끝에서 시작으로 넘어가는 신년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장절은 또한 초막절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오늘 본문에서 초막에 거하는 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은 히브리어로 ‘수콧’이라고 합니다. ‘수콧’은 오늘 본문 34절 말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막절, 수콧”이라는 말은 초막을 의미하는 ‘수카’의 복수형으로서 유월절과 마찬가지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인 동시에 유대교의 가을철 추수감사절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창고에 들이는 7월 15일에 초막절 혹은 수장절을 지킵니다. 전에는 해마다 이 명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나가서 빈들에다가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집 옆이나 옥상에다가 초막을 짓습니다. 초막은 네 개의 기둥에다가 천 같은 것으로 사방을 막아서 벽을 만든 다음에 그 위에는 감람나무나 종려나무 혹은 버들가지들을 얹어서 지붕을 만듭니다. 이런 초막을 가리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수코트’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초막에 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초막에도 방문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서로 어울려서 파티를 열고 즐거워합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

 

34절에 보면 초막절은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야 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에 가장 핵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좋은 방법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일입니다. 절기상으로 봐도 초막절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초막절이 이스라엘의 달력으로 7월 15일입니다. 양력으로는 10월 15일입니다. 그런데 초막절 5일 전인 7월 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황소에게 안수하여 자신과 가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하여 제물로 드립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는 두 마리의 염소를 선택하여 안수를 합니다. 이 두 마리의 염소 중에 한 마리는 ‘레아도나이’라고 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고 한 마리는 ‘레아사셀’이라고 해서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레아도나이’는 도살해서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레아사셀’은 머리에 안수하고 붉은 끈을 매고 광야로 보내는데 이 염소는 죄와 수치를 상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염소를 향해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맞아서 죽으면 안 되니까 염소 주변에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염소를 끌고 가는 일을 처음에는 일반인이 했는데 나중에는 제사장이 염소를 끌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동쪽 광야로 가는데 10개의 쉬어가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발해서 해지기 전에 동쪽 절벽에 도착을 합니다. 그리고 동쪽 절벽에 아사셀 양을 떨어뜨립니다. 염소를 떨어뜨릴 때는 염소가 절벽을 보면 무서우니까 춤추는 자세로 염소의 앞발을 잡고 절벽을 보지 않게 해서 밀어서 떨어뜨립니다. 아사셀 양이 떨어져 죽으면 붉은 색 끈을 흰색 끈으로 바꿔 답니다. 그리고 흰색 깃발이 올라가고 중간에 쉬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연이어 깃발을 올리고 마지막에 감림산에서 하얀 깃발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 때 마지막 깃발을 확인한 성전에 있던 사람들은 시103:12로 찬양합니다. 시 103:13 말씀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말씀인데 여기서 동은 아사셀 양이 있는 곳을 말하고 서는 ‘레아도나이’의 피를 뿌린 지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하셔서 죄에서 구원하셨음을 기념하는 대속죄일이 지난 후에 곧 이어서 초막절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구원의 감사, 죄사함에 대한 감사의 절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추수감사절도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며, 주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의 부활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우리들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 말씀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치 않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구원받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죄 씻음 받아 의롭게 됨을 얻었다는 확신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t n 없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첫 번째 감사는 바로 나를 예수의 피로 죄가운데서 구원에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열매를 주심에 대한 공동체 감사.

 

39절에 보면 추수를 마치고 7월 15일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시기에 포도와 석류를 수확하므로 1년의 모든 수확이 끝이 납니다. 지난 1년간 무화과를 주신 하나님, 포도와 올리브를 주신 하나님, 석류를 주시고 밀을 추수하게 하시고 보리를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채우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생활하므로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이 절기는 언약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동참했던 것입니다. 초막절에 하는 몇 가지 공동의식을 소개합니다. 먼저는 헌수의식입니다. 헌수 의식은 절기 동안에 매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드리는 공동의식입니다. 초막절의 첫날 아침, 제사장의 행렬은 실로암 못에 가서 일주일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할 물을 그릇에 채웁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공동의식은 밤에 거행되었습니다. 이 의식은 축제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4개의 커다란 등대가 성전 4구석에 설치됩니다. 높이는 100규빗이니 약 45m 정도입니다. 이 등대는 제사장들의 낡은 에봇으로 만든 심지가 끼워집니다. 그 등대 밑에서 의식에 참석한 자들은 피리에 맞추어서 횃불 춤을 추었고, 레위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을 불렀는데 이스라엘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걸어 내려가려면 열다섯 계단을 통과하는데 한 계단마다 노래 하나씩을 불렀습니다. 사 30:29에서는 이 의식을 ‘밤의 거룩한 절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의식은 7일 동안 매일 밤마다 거의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셋째로 중요한 공동의식은 매일 새벽에 제사장들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닭이 울 때 그들은 성전의 동쪽 문으로 가서, 해가 뜨는 순간 서쪽을 향해 서서 성전을 마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암송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곳에 있을 때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 동쪽 태양에 경배하였으나 우리의 눈은 주께로 향했다."(겔 8:16) 이러한 세 가지 공통 의식을 7일간의 축제기간 동안에 매일 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공동의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공동의식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속한 것을 확인하고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초막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의 초막을 방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내 가족이 내게 위로가 된 것 못지않게 또한 주변에서 함께 하나님을 고백하고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더불어 격려와 위로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장 바니에는 “공동체란 모든 사람 대다수가 자기중심이라는 그늘에서 빠져나와 참된 사랑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장소”(<<공동체와 성장>>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속감을 갖는 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일까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는 ‘소속에의 욕구’도 있습니다. 그것은 식물로 비유하자면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열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소속감이란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열매를 드릴 때 혼자서 드린 다면 별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함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감사할 때 참된 사랑의 빛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

 

레23: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수장절의 정신은 드림에 있습니다. 출23:19을 보면 3대 명절을 지킬 때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이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를 취하라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좋은 열매를 가져와 드릴 때 중요한 드림의 정신이 무엇인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가 빠지면, 감사하는 태도가 없으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37절을 보면 “드릴지니”라는 말씀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화제도 드리고 번제도 드리고 이런 저런 제물을 드리지만 그런 것 외에 추수감사절의 예물을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6장16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이요.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골2:7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은 감사가 담긴 예물, 감사가 담긴 예배를 통해서 영화롭게 됨을 받습니다.

사회학자 스탠디 박사는 “현대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감사불감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기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감사할 때 기쁨이 계속 솟아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기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감사하십시오. 더 많이 기뻐질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감사가 있는 학생은 모범생이 되고 성적도 올라갑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승진합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곧 실패합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생활이 발전하지 못합니다. 감사불감증에 걸려 불평과 원망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고, 건강하지도 못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만사형통의 열쇠임을 믿고 감사로 축복 안에 사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의 농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민담이 하나 있습니다.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쟁기질이 끝나고 시장기가 돌 무렵이면 나무 밑에 놓아둔 빵 한 조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빵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맹물로 달래며 말했습니다. "오늘 하루 굶는다고 죽지는 않겠지. 누구든 그 빵이 필요했으니 가져갔겠지. 그 사람이라도 잘 먹으면 좋겠군." 그런데 그 빵을 훔친 것은 악마였습니다. 악마는 농부가 죄를 짓게 만들려고 빵을 훔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농부는 빵 도둑에게 악담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축복했습니다. 그 악마는 대장 악마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악마다운 지혜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다른 술책을 꾸몄습니다. 농부의 빵을 훔치는 대신 농부의 빵을 늘려주기로 했습니다. 하인으로 변장한 악마의 도움으로 농부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들어도 많은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곡식이 남아돌자 악마는 그것으로 술을 만들라고 부추겼습니다.

 

 

 

마침내 허기를 달래주던 일용할 양식이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뀌었습니다. 술이 생기자 농부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먹고 마시며 놀았습니다. 술자리를 마칠 즈음이면 너나할 것 없이 인간의 모습은 간데없고 동물들로 변했습니다. 비책을 묻는 대장 악마에게 악마는 대답했습니다. 자기가 한 일이라곤 농부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확을 준 것 밖엔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아도는 것이 생기자 농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인간의 마음에 묶여 있던 여우와 늑대와 돼지의 피가 다 뛰쳐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악마와 빵 한 조각>이라는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옛 이야기이지만 역시 우리 삶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말씀입니다. 가진 것이 많아야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울어져 있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김현승 선생의 시 <감사하는 마음>의 마지막 연에 감사에 대한 감동적인 글귀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主人이 누구인지를 아는 마음이다.” 감사할 줄 아는 이는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늦가을,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사의 마음을 되찾는 행복을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서인 『탈무드』에는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이 하나님위한 감사절,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절,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의 절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신명기 16:13-16)

 

첫째, 즐겁게 지켜야 합니다. 14절과 15절에 보면 즐겁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즐겁게 추수감사절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지켜야 합니다. 16절을 보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라고 말씀합니다. 신약적인 적용으로는 절기는 본교회에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드림교회 지체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드림교회에서 지키기를 바랍니다. 이상하게 절기 때면 예배에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절기 때는 세상 어떤 모임이나 일보다도 더 우선하여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의 통로가 막히게 됩니다.

 

 

셋째, 빈손으로 지키면 안 됩니다. 16절에 보니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감사의 제물이 필요합니다. 17절에 보면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풍속에 의하면 왕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예물을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러 나올 때 예물을 갖고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가 가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고마워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말로만?...”이라고 응수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상대를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 대접을 하거나 아니면 정성스런 선물을 주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정성스러운 예물이 필요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이 동반되었습니다. 부자는 소를, 보통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를 드렸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절은 1년에 1번 있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많은 재물을 드릴 수는 없어도 소나 양과 염소 그리고 비둘기 정도에 준하는 예물은 드려야 합니다. 올해 지키는 추수감사절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지켜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심에 감사하고 현재도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을 감사하는 것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의 필요를 준비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